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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인데 마음이 편치 않았다. 집안은 귀곡산장처럼 뒤숭숭하고, 미래는 콜라 밑바닥으로 보는 세상처럼 불투명했다.
태풍이 몰아치기 전 뒷산에 올랐다. 유난히 까마귀떼가 시끄럽게 울었다. 놈들이 덮쳐서 눈이라도 파먹는 거 아닌가, 하는 두려움 때문에 걸음이 절로 빨라졌다. 순간 최인호의 <개미의 탑>이 떠올랐다. 집안에 들끓는 개미에 시달리던 사람이, 마침내 욕조에 설탕 포대를 넣고 휘저은 다음 개미에게 몸을 내맡긴다는 얘기다. 24년 전 김정춘 생물 선생님이 말해줘 읽었다. 김정춘 선생님은 절대적인 존재였는데, 엄청난 성적 지식으로 무지한 우리를 절절매게 했기 때문이다. 이제 막 이부자리에 몽정을 하기 시작한 우리로서는 김정춘 선생님이 전하는 자연의 이치가 전율 자체였다. 내가 알지 못하는 성인 여자로부터 전해 듣는 성적 진실. 선생님이 전해준 <개미의 탑>은 원작보다 훨씬 더 에로틱했고 무서웠고 신비로웠다. 까마귀의 울음소리가 24년 전 절절매던 몽정기의 나
[오픈칼럼] 기억할 말한 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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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연말에는 축전을 보낼 생각이다. 서울시 마포구 공덕동 116-**번지 한겨레신문사 4층 신윤동욱씨 앞으로. “당신의 직장생활 10년을 축하합니다.” 정말로 내 평생에 단 한번 챙기고 싶은 기념일이 다가오고 있다. 내가 직장생활 10년을 버텨낼 줄은 정말로 몰랐다. 정말로 장하다.
서울 1996년 겨울, 신윤동욱 소년은 밥벌이를 시작했다. 방년 스물다섯의 소년 아니 청년은 학교를 떠나기가 너무나 무서웠지만, 더이상 머무를 명분이 없었다. 스무살에는 아니 스물다섯살까지 왜 그렇게 두려운 일들이 많았는지 모르겠다. 정말로 학교를 떠나서 감당해야 할 관계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어쩌다 빨간 물이 들어 있었고, 성격은 소심했으며, 게다가 술도 못 마셨다. 어쩌다 운이 좋아 취직이 됐을 때, 후배들은 내기를 했다고 했다. 내가 6개월 버틴다, 1년 버틴다, 내기를 했다고 했다. 그렇게 나의 공포는 들키기 쉬웠다. 조직이 무서웠고, 세상이 두려웠다. 서른이 넘어서야 뒤늦게 알았지만, 모
[이창] 당신의 10주년을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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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의도: 당 영화는, 잠자던 우리의 가슴살 한점 한점에 화르르 민족혼의 불을 지핀 <한반도> 1편의 얼을 오늘에 되살려, 안으로 독립만세의 자세를 확립하고 밖으로 초전박살의 정신을 계속 이어나가기 위해 기획되었다.
시놉시스: 주인공은 유치원간 축구 대항전을 촬영하여 생계를 유지하는 언더그라운드 스포츠 비디오 저널리스트이다. 평소 한국의 월드컵 우승을 통하여 한민족의 위대함을 세계만민에 떨치어낼 그날만을 고대하며, 한국의 A매치 화면을 분석 또 분석해오던 주인공… 그러던 어느 날, 그는 2006 월드컵 한국 대 스위스전을 목도한 뒤 비분강개하여, 혈혈단신으로 축구협회를 찾아가 외친다. “회장님, 동영상은 있습니다!!” 결국, 스위스팀의 명백한 페널티킥 반칙을 증명해낼 동영상을 찾아오라는 축구협회장의 밀명을 받은 그는 스위스로 날아간다.
스위스에서 축구장 전문 소매치기를 만나게 된 주인공은, 그의 도움을 받아, 죽지 않을 만큼의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마침내 그 어
<한반도>를 감상한 투덜군, 민족정신에 고취되어 속편을 구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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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인기 티브이 시리즈 〈위기의 주부들〉의 한국판이라는 소문으로 관심을 끌었던 문화방송 주말극 〈발칙한 여자들〉이 뚜껑을 열었다. 26일 문화방송경영센터에서 열린 시사회에서 이승렬 피디는 “〈위기의 주부들〉 한국판보다는 14년 전 최수종, 최진실이 주연했던 〈질투〉의 주부판에 가깝다”고 했다.
제작진은 “한국의 가족·남녀관계의 유형을 담다보니 미국의 〈위기의 주부들〉과는 달라도 한참 달라졌다”며 “한국 가족이 부닥치는 문제를 현실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캐릭터 안배에 가장 고심했다”고 했다. 〈위기의 주부들〉처럼 이 드라마도 4명의 여자들이 주인공이다. 전남편(정웅인)에게 복수하기 위해 미국에서 돌아온 미주(유호정)의 비중이 가장 크고, 유부남을 가로채 결혼해놓고 남편의 선배와도 몰래 만나는 은영(임지은), 흠잡을 데 없는 전업주부이면서 도벽에 알코올중독까지 있는 상미(사강), 작업의 달인 다림(오주은) 등이 함께 30대 기혼여성의 현실적인 문제를 대변한다.
미국이든 한국이든
30대 기혼녀들의 쿨~한 이야기, MBC 주말극 <발칙한 여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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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승완 감독이 베니스에 간다. 오는 8월30일부터 9월9일까지 열리는 제63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 류승완 감독의 <짝패>가 비경쟁부문으로 초청됐다. <짝패>는 베니스영화제에서 상영될 유일한 한국영화다. 경쟁부문에 진출할 것으로 관심을 모았던 홍상수 감독의 <해변의 여인>과 임상수 감독의 <오래된 정원>은 초청되지 않았다.
7월27일 발표된 전체 초청작 리스트를 보면 올해 베니스영화제 절대 강세는 미국영화와 아시아영화다. 총 21편이 초청된 경쟁부문에서 미국영화는 개막작이자 경쟁작인 <블랙 달리아>를 비롯해 대런 아로노프스키의 <파운틴>, 알폰소 쿠아론의 <인간의 자식들>, 에밀리오 에스테베즈의 <바비> 그리고 TV시리즈 <소프라노스>를 연출한 앨런 콜터의 극영화데뷔작 <할리우드랜드> 등 총 5편이 진출해 있다.
아시아영화도 5편이 포함됐다. 곤 사토시의 <파프리카&g
류승완 감독 <짝패> 베니스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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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독립영화 DVD 제작지원을 받은 DVD 다섯장이 출시됐다. 올해 두번째로 출시된 독립영화 DVD 제작지원작은 한국영화독립협의회와 영상미디어센터 미디액트가 공동기획하고 시행하는 사업이다. 먼저 ‘사라지는 순간들’에는 충무로의 기대주로 꼽히는 김종관 감독의 단편 여섯 편이 수록됐다. <Wounded>부터 <사랑하는 소녀>, <폴라로이드 작동법>, <영재를 기다리며>, 최근작인 <낙원>, <엄마 찾아 삼만리>가 해당작이다. 두번째는 ‘미메시스 단편 애니메이션 작품집’이다. 독립애니메이션 스튜디오 미메시스의 1994년부터 2004년까지의 작품을 대상으로 했다. 전승일 감독의 단편 8편과 오진희 감독의 단편 2편을 포함한 총 10편이 수록됐다. 그 외에도 주현숙 감독의 다큐멘터리 <계속된다 - 미등록 이주 노동자 기록되다>, 류미례 감독의 <엄마...>, 문정현 감독의 다큐멘터리 <슬로브핫
독립영화 DVD제작지원 DVD 5종 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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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청춘에게 고함>을 만든 김영남 감독의 중편상영회가 열린다. 필름포럼은 김영남 감독이 과거에 만들었던 <나는 날아가고, 너는 마법에 걸려있으니까>와 <뜨거운 차 한잔>를 7월 30일과 31일 양일 저녁 7시에 상영한다. 김영남 감독의 장편데뷔작 <내 청춘에게 고함>은 로카르노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다. <나는 날아가고…>는 과거 칸느영화제 시네파운데이션 부문에 초청됐고 <뜨거운 차 한잔>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선재상을 수상한 바 있다.
<내 청춘에게 고함>의 김영남 감독 중편 상영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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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영화의 ‘숨겨진 거장’ 나루세 미키오의 회고전이 8월17일부터 25일까지 하이퍼텍 나다에서 열린다. 구로사와 아키라, 오즈 야스지로, 미조구치 겐지와 함께 일본영화의 4대 거장으로 꼽히지만, 비교적 뒤늦은 1980년대에 와서야 발견된 작가인 나루세 미키오는 현대적인 느낌이 강해 ‘일본영화 누벨바그의 선구자’라고 불리는 감독이다. 2002년 서울에서 열린 회고전 당시만 해도 서구권에서조차 충분히 인지되지 않았던 나루세 감독은 최근들어 세계적으로 가장 주목받는 일본 감독 중 한명이다. 특히 오즈 야스지로, 에드워드 양, 왕가위 같은 당대의 대가들이 그의 영화에 대한 애정을 피력한 것은 나루세의 재발견에 도움을 줬다. 4년 전 열린 나루세의 회고전에는 박찬욱, 허진호, 이재용, 김지운, 류승완 감독 등 영화광 감독들이 찾았고, 박찬욱 감독은 <친절한 금자씨>에서 영화 속 빵집 이름을 ‘나루세’로 짓기도 했다.
모두 10편이 상영되는 이번 회고전에서는 마이니치 영화콩쿠르
나루세 미키오, 4년만에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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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CJ엔터테인먼트와 CJ CGV가 수입한 아시아의 인디영화들과 미개봉작 4편이 상영되는 ‘인디, 세상을 만나다!’가 9월21일부터 10월18일까지 서울 CGV 상암과 CQN명동에서 열린다. 이번 행사에서는 <불량공주 모모코> <시티즌 독> <내곁에 있어줘>처럼 국내 개봉 때 좋은 반응을 얻었던 영화들과 지난해 CJ아시아인디영화제에서는 소개됐지만 개봉되지는 못했던 이란 모하마드 아마디 감독의 <쓰레기 시인>, 중국 닝하오 감독의 <몽골리안 핑퐁>, 타이 콩데이 자투라나사미 감독의 <택시운전수의 사랑> 등이 선보인다. 또 LA의 댄서들의 삶을 치밀하게 묘사한 다큐멘터리 <라이즈>(데이빗 라샤펠)도 상영될 예정이다. 9월21일부터 10월4일까지는 CGV상암에서, 10월5일부터 18일까지는 CQN명동에서 열리며, 지방 순회상영도 계획 중이다. 섹션별 전체 상영작 리스트는 다음과 같다.
나는 성장한다/ &
CJ 인디컬렉션 영화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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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의 시장규모가 항목별로 세계 3위~8위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화진흥위원회(위원장 안정숙)이 발간한 <2004년 세계 영화시장 규모 및 한국영화 해외 진출 현황 연구>에 따르면, 2004년 현재 전세계 영화시장 규모의 80% 정도를 차지하는 주요 10개국과 비교했을 때, 한국영화는 자국영화 점유율 기준 극장 매출 규모에서 미국, 인도, 일본, 프랑스에 이어 5위를 기록했다. 또 한국영화는 자국영화 점유율에서 3위, 1인당 관람회수 7위, 총관객수에서 8위에 해당했다. 또 전체 영화 시장 규모에서 미국, 일본, 영국, 프랑스,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호주에 이어 9위를 차지했다. 한편, 이번 보고서에는 세계 영화시장의 규모 및 현황 뿐 아니라 한국영화의 해외진출 현황에 관한 조사 결과를 싣고 있다. 이 보고서는 영화진흥위원회 인터넷 홈페이지(www.kofic.or.kr)에서 목차와 요약본을 열람할 수 있으며, 전문을 실은 책자는 전국 대형 서점 및 주요 인
한국영화 시장규모 세계 3~8위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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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의 <괴물>(제작 청어람)이 7월27일 본격 개봉을 앞두고 하루 전 열린 전야제에서 전국 15만1486만명(서울 5만3116명)을 동원했다. 제작사인 청어람은 “이같은 성적은 기존 전야제 최고 기록인 <왕의 남자>의 9만명을 깬 최고기록”이라고 주장했다. 27일 620개 스크린에서 개봉되는 <괴물>은 예매율에서도 90% 가까운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어 <태극기 휘날리며>가 갖고 있는 개봉 첫 주말 누계 기록인 177만여명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괴물>, 전야제에서 15만명 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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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원장 서병문)과 일본 영상산업진흥기구(VIPO·이사장 사코모토 준이치 쇼치쿠 대표)는 7월27일 양국간 문화콘텐츠산업 발전과 인력양성 및 상호교류촉진에 관한 업무협약(MOU)를 체결했다. 양국의 문화콘텐츠기구인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과 일본 영상산업진흥기구는 이번 협약에 따라 양국간 산업동향 등 정보교류, 지식 및 지적재산 분야의 상호교환, 인적교류의 상호지원, 자국내 문화콘텐츠 관련 행사 상호홍보지원, 공동제작 촉진 등에 대해 함께 노력키로 했다. 양 기구가 합의한 첫번째 공동사업은 오는 10월 도쿄국제영화제와 함께 열리는 ‘아시아퍼시픽엔터테인먼트마켓’을 주제로 한 ‘TIFFCOM 2006’ 행사에서 양 기관 공동주최로 ‘한일문화콘텐츠산업세미나’(가칭)를 열기로 한 것. 이 행사를 통해 양 기관은 아시아 문화콘텐츠의 세계 진출 방안과 아시아 기업의 마케팅 및 교류활동 지원책을 모색할 예정이다.
양 기관은 앞으로도 한일 애니메이션 워크숍, 한일 뮤지션 합동 쇼케
한일 문화콘텐츠기구 업무제휴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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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갑을 눈앞에 둔 초로의 감독이 20여년 만에 독재 치하의 조국에서 작품을 만들겠노라고 한다. 철권의 독재자는 체제의 우위를 알릴 호기라 보고, 각본의 사전검열을 조건으로 흔쾌히 허락한다. 평론가들은 망명 생활에 지친 감독의 고집이 꺾이는 순간이라 한탄을 했고, 작품에 대해 아무 기대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1961년 칸영화제 마지막날, 아무도 보지 못했던 작품이 첫 상영되고 그 충격적인 이야기와 영상은 사람들을 찬사와 동시에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감독은 가뿐히 황금종려상을 가지고 돌아갔고, 바티칸 사제와 각국의 검열관들은 신성모독 혐의에 분노를 표출했으며,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독재자는 작품과 관련된 모든 자료를 파괴하라 지시하였다. 영화보다도 더 영화 같은 이 이야기는 영화 사상 최악의 스캔들로 꼽히는, 초현실주의 감독 루이스 브뉘엘과 그의 작품 <비리디아나>에 관한 것이다. 종교적 구원을 바라는 견습수녀 비리디아나가 예기치 않게 환속하게 되면서 겪게 되는 인간 심연의
[해외 타이틀] 브뉘엘의 저주받은 걸작, <비리디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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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니> 음성해설의 진행자 허문영 평론가는 시작하자마자 허를 찌르는 질문을 던진다. “이 영화가 제대로 소통될지 걱정되어 잠이 안 온다는 감독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극장에서 성공적이지 않았죠?” 정지우 감독, 김정은, 프로듀서 모두 대단히 기묘한 느낌의 폭소를 터트리고 청자는 굉장히 당황스러워진다. 과연 이 분위기로 진행이 제대로 될까 순간 걱정이 될 정도로. 아마도 <사랑니>를 ‘꽝’이라고 생각한 관객이 극장에서 터트렸을 웃음이 이런 게 아니었을까. 다행히 음성해설은 무리없이 진행되지만(프로니까, 당연하다) 이 질문과 웃음의 여운은 끝까지 남는다. 서른살 여자와 열일곱살 남자의 사랑. 영화의 완성도와는 관계없이 관객의 감정적 반응을 이끌어낼 수밖에 없는 소재이고, 그것을 평범하지 않은 방법으로 보여주기까지 했으니 <사랑니>가 관객을 설득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던 것은 어쩌면 당연했는지도 모른다. 감독 역시 ‘영화는 주관적 감수성의 문제’라며 ‘감성
[코멘터리] 영화는 주관적 감수성의 문제! <사랑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