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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네시 윌리엄스는 영화와 동시대를 호흡한 작가 중 첫 세대에 속한다. 그는 울적한 현실을 잊고자 즐겨 극장을 찾았고, 성공적이진 못했으나 한때 MGM과 작가 계약을 맺었으며, 훗날 성공을 거둔 작품들은 연이어 영화화됐다. 지난 5월 미국 워너홈비디오는 윌리엄스의 원작 영화 여섯편을 모은 박스 세트를 발매했는데, 한국에선 대표작인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와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 두편만 출시됐다. 자신과 가족을 희곡에 투영하던 윌리엄스가 ‘나는 블랑쉬 드보아다’라고 말했을 정도로 <욕망이라는…>은 작가의 애정이 묻어나는 작품이다. 남부의 몰락한 가문의 여자가 삶의 막바지에서 도착한 뉴올리언스의 빈민가. 윌리엄스 작품의 정서인 슬픔은 그곳에서 흐릿한 빛을 통과해 시적 비애감을 빚는다. 정신병원으로 끌려가는 블랑쉬가 “나는 항상 낯선 사람들의 친절에 의지해왔어요”라고 말하는 마지막은 <유리동물원>에서 유리 일각수의 뿔이 부서지는 장면
[명예의 전당]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특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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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톨이라는 작은 섬마을을 배경으로 한 미스터리스릴러. 9년전 감쪽같이 사라졌던 아이들과 조우한 마이크, 그리고 섬에 숨겨진 충격적인 비밀을 묘사한 4시간30분짜리 미니시리즈. 타고난 이야기꾼 스티븐 킹의 소설이 원작으로 탄탄한 드라마가 지닌 흡인력이 상당하다. 특히 적지 않은 제작비 투입으로 시각효과 또한 텔레비전 미니시리즈답지 않는 볼거리를 선사한다. 2장의 디스크에 3개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진 <센트리 스톰>은 비록 부가영상은 전무하지만, 영화 자체만으로도 소장을 권하고 싶은 타이틀이다.
스티븐 킹 원작의 흡입력, <센트리 스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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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망나니의 인간 만들기 프로젝트. 집안 대대로 교직에 몸담은 가문의 흐름을 이어가고 싶은 할아버지의 소망. 그러나 매일매일 흥청망청 노는 것에만 모든 정력을 쏟는 손자 때문에 골치다. 결국 보다 못한 할아버지의 조치로 그는 할 수 없이 2년간 교편에 서게 된다. 비록 박건형이 연기한 캐릭터가 생날선생이긴 하지만, 부가영상을 보면 하루 동안 교생 실습에 임하는 바른 선생님의 자세를 보여준다. 약 3분여 분량의 삭제장면에서는 학교에서 벌어지는 해프닝이 추가되었다.
알고보면 바른 선생? <생날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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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동안 이루어진 세번의 만남과 순수한 사랑의 이야기. 늘 기다리는 남자 조강과 비밀을 품고 떠나기를 반복하는 여자 아리의 감상적 사랑을 그린 영화. 변화된 모습의 강혜정으로 인해 이번 DVD 타이틀은 그녀를 좋아하는 팬들에게는 특별한 의미로 다가올지도 모르겠다. 촬영현장 곳곳에서 만나게 되는 강혜정의 모습은 마치 오래된 사진첩을 넘기는 듯한 묘한 느낌을 전해준다. 또 다른 부가영상으로는 강지은 감독의 인터뷰, 촬영하면서 가장 애를 먹었다고 하는 미스터리 서클 만들기의 현장을 공개한다.
오래된 사진첩을 넘기듯, <도마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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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1970년대 이후 음모와 정치영화의 시대가 저물었다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다. 오락으로서의 정치영화도 언젠가부터 스파이물로 변질되어 보여지는 게 고작이다. 지금은 정말 오락을 위한 시간이다. 이런 상황에서 작금의 국제정치와 권력관계의 지형도를 그리고 있는 <시리아나>의 가치는 적지 않다. 그러나 미국에서 정치적 목소리를 내기 위해선 상당한 용기가 필요한 법. <시리아나>는 현실 정치 상황을 제시하는 선을 넘지 않는다. 교통상황을 보여주되 교통정리까진 안 하겠다는 뜻일까. 조지 클루니가 인터뷰에서 “끝나지 않은 냉전 상황을 그리고 싶었지 다른 정치적 의도를 삽입하려던 것은 아니다”라고 밝힌 사연도 그런 정황을 확인하게 만든다. 그러니 진짜 악당, 구체적인 악의 세력을 지목하는 건 언감생심이다. 20세기의 마약으로 불리는 석유가 세계관과 정치관에 어떻게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짚어보는 <시리아나>의 의미는 일단 아랍을 포함한 타자에 대한 왜곡된 시선을
석유로 재편된 국제정치와 권력관계, <시리아나: 특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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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어김없이 물난리가 났다. 흙탕물이 집안 가득 들어찼고 소와 돼지가 강물에 떠내려갔으며 비닐하우스가 주저앉았다. 거동이 불편했던 할아버지, 할머니는 산사태가 나도 꼼짝 못해서 흙더미에 깔려 돌아가셨고 집도 가재도구도 몽땅 못 쓰게 된 일가족은 초등학교 강당에서 앞날에 대한 두려움에 떨며 새우잠을 자야 했다. 다시 한번 수재민 돕기 특별방송이 기획되고 천재지변을 어쩌겠냐는 관련 공무원의 말과 그걸 인용보도하며 인재임을 강조하는 뉴스가 흘러나온다. 해마다 되풀이되는 일인데 어째서 이 모든 사태를 올해도 꼼짝없이 앉아서 지켜봐야 하는가. 아마 그건 이 재난이 빈곤한 이들만 괴롭히기 때문일 것이다. 돈이 없어 수해방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그래서 수해를 당하면 가난해지고 다시 가난 때문에 이사를 못해 수해를 당하는 악순환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긴급구호자금이나 성금으로 떼어놓을 수 없는 가난과 재난의 동거 앞에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전염병 방지용 소독약을 뿌리는 것뿐이다. 집을
[편집장이 독자에게] 물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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情男은 정부란 뜻이다. 유부녀와 정을 두고 깊이 사귀는 남자. <황산벌>의 거시기와 <마파도>의 순박한 형사를 연기했던 이문식과는 좀처럼 어울리지 않는 단어다. 하지만 그를 설명하는데 정(情)보다 더 적합한 글자가 있을까. 의미의 역설. 그의 얼굴엔 사전적 정의 따윈 가볍게 무시해버리는 순진무구한 웃음이 있다. 1995년 영화 <돈을 갖고 튀어라>의 ‘달수 친구2’로 스크린 데뷔해, 이후 수많은 영화에 조연으로 출연했던 그는 아무것도 모르고 전쟁터에 끌려온 농사꾼(<황산벌>), 말만 하면 핀잔 듣는 조폭(<라이터를 켜라>) 등 어리숙한 역할들을 도맡아왔다. 양아치, 조폭 등 인물의 외양과는 달리 풍겨나는 흙냄새, 이 둘의 조합을 그는 아이러니라는 단어로 설명한다.
“양아치 역할로 연기를 시작했지만, 사실 나는 양아치, 조폭 같은 인물들을 혐오한다. 살아오면서 피해를 본 것도 있고, 참 아이러니하다. 어떻게 하다보니 연기 인생이
거시기의 힘찬 도약, <플라이 대디>의 이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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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男 이준기의 탄생설화에 대해 우린 아주 잘 알고 있다. 이건 흔한 일이 아니다. 이준기는 별안간에 부인할 수 없는 시대의 도상이 됐다. 처음에는 각종 매체가 멋도 모르고 ‘봉길이’ 혹은 ‘공갈이’로 불렀다. 공길과 그 역을 맡은 이준기에 대해 사람들은 큰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그때를 상상하는 것이 도리어 어렵다. 지금 이준기에게 놓인 건 행복한 고민의 가시밭길이다. 가시밭길이라고? 의아하게 들리겠지만 그렇다. 그건 이준기가 더 잘 알고 있다.
“바꿔가고 있어요. 하지만 무리하게 바꾸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무리하면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 같을 테고, 그렇게 연기하면 어색할 테니까요. 그래서 차라리 이준기 안에 있는 모습들을 꺼내자, 그러면 폭이 커질 거다, 욕심이 나는 작업은 언젠가는 할 수 있으니까 지금은 이준기에게서 나올 수 있는 역할들에 치중하자(라고 생각해요).”
인터넷과 야오이 문화와 그것으로는 성이 차지 않는 팬픽의 세계가 겹겹이 둘러싸며 이준기
행복한 가시밭길을 날다, <플라이 대디>의 이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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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비가 내리던 주말 저녁, 이태원의 한 보트가게에서 예정된 표지 촬영은 계속 지연되고 있었다. 드라마 촬영과 빗속 교통난으로 이문식이 지각 통보를 전해왔기 때문. 먼저 도착한 이준기는 잠시 잠을 청했고, 그치지 않는 빗소리는 촬영장의 분위기를 정적 속으로 몰아갔다. 모든 게 정체된 것만 같은 순간. 이준기를 기다리는 팬들의 웃음소리만이 맴돌고 있었다.
상황의 급반전. 특유의 기분좋은 웃음을 보이며 등장한 이문식은 촬영장의 분위기를 띄워놓았다. 보트 안에서의 촬영으로 두통을 호소하던 이준기는 “선배님, 드라마 빨리 끝내세요. 그래야 술이라도 같이하죠”라는 인사말을 전했고, 이문식은 “다음주면 프리”라는 답변을 건넸다. 이 둘은 마치 함께 있어야 힘을 내는 사람들처럼 활기차게 ‘놀고 있었다’. 이준기는 슈퍼맨 포즈를 취하며 “소년중앙”이라고 외쳤고, 이문식은 개구쟁이 같은 몸동작으로 하와이 해변가의 느낌을 연출해냈다.
이준기와 이문식, 영화 <플라이 대디>로 함께 만
美男과 情男의 조화, <플라이 대디>의 이준기, 이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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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의선에 관한 모든 권한은 우리 일본이 갖고 있다.” 일본의 이 한마디에 한반도가 얼어붙는다. 100년 전의 조약을 근거로 남북의 경의선 개통식을 방해한 일본은 개통을 취소하지 않을 경우, 한반도로 유입된 모든 기술과 자본을 철수하겠다며 대한민국 정부를 압박한다. 이에 대통령은 일본의 억지 주장에 강경하게 맞서려 하지만, 국가안보와 경제안정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총리(문성근)와 보수파 장관들의 주장도 거세긴 마찬가지다. 한편, 사학계의 이단아 취급을 받아온 역사학자 최민재(조재현)는 100년 전 조약문서에 찍힌 국새는 고종이 직접 만든 가짜이며, 진짜 국새를 찾는다면 한국과 일본의 근대사가 다시 쓰일 수 있다고 확신한다. 최민재에게 마지막 희망을 건 대통령은 ‘국새발굴진상규명위원회’를 구성하여 그에게 일임하고, 불화의 씨를 없애려는 총리는 국정원 서기관 이상현(차인표)에게 최민재를 저지할 것을 명령한다.
영화의 첫 장면은 강우석 감독이 비분강개하는 한반도의 현실을 드러낸다.
강우석 감독의 팩션 블록버스터 <한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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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란젤리나. 브래드 피트와 안젤리나 졸리를 한데 일컫는 이름이다. 톰캣(톰 크루즈 + 케이티 홈즈), 보니스톤(빈스 본 + 제니퍼 애니스톤), 가플렉(벤 애플렉 + 제니퍼 가너), 애시미(애시튼 커처 + 데미 무어) 등 유사한 스타일의 합성어들이 할리우드를 떠돌고 있지만, 브란젤리나의 막강한 파워 앞에서는 모두 아류로 보일 지경이다. 물론 처음엔 브란젤리나도 통속적인 삼각관계의 주인공처럼 보였다. 그러나 현존하는 가장 섹시한 남녀 스타의 결합이라는 프리미엄에다가, 당당한 연인을 넘어 실천하는 박애주의자로서 세계를 누비는 안젤리나 졸리의 특별한 행보는 이 할리우드 스타 커플에게 인류의 평화와 복지를 추구하는 현대적 귀족의 아우라를 둘러주었다. 게다가 브란젤리나는 지난 5월 ‘완벽한’유전자 조합의 2세, 실로 누벨 졸리-피트를 낳고 연예 저널의 지면을 도배하면서 영국 왕실 뺨치는 세계적 로열 패밀리로 자리잡는 듯한 모습마저 보이고 있다. 스캔들을 뛰어넘은 스캔들, 미세한 움직임만으로도
브란젤리나 신드롬, 가십에서 판타지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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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미한 역사 상상력으로 채우고
강대국관계 등 갈등 풀어넣어
능력보다 핏줄 의존 ‘전근대적’
방송을 시작한 지 한달 보름여 만에 문화방송 드라마 <주몽>(극본 최완규·정형수, 연출 이주환·김근홍)이 시청률 40%를 넘나들고 있다. 에이지비닐슨 자료를 보면, <주몽>의 시청자 가운데 28.9%가 30대다. 50대가 주축인 <연개소문>보다 주시청층이 젊은 편이다.
옛날 옛적에…=<주몽>은 무협물을 닮았다. 애초에 제작진은 이 드라마가 역사적 사실을 복원하는 정통 사극이라기보다는 픽션에 방점을 뒀다는 점을 밝혔다. 정통 사극을 내세운 <연개소문>처럼 진지한 역사논쟁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까닭이기도 하다. 임기환 교수(서울교대·고구려사)는 “<연개소문>은 역사적 기록이 있어 드라마가 어떻게 변형·왜곡했는지 검증할 수 있지만 주몽과 관련해선 기록 자체가 희소하고 그나마 설화”라며 “드라마 <주몽>을 판타지물
‘주몽’, 무협물 닮은 사극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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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 원피스에, 슈퍼맨 복장에
정신없이 놀다보니 “웃기는 놈 다 됐다”
비밀 끄집어내는 게 걱정도 됐지만
“재미있다고 서로 넣어달라네요”
〈재용이의 순결한 19〉(케이엠 수 오후 5시30분)는 연예계에 암암리에 오고가던 ‘엑스파일’을 표면 위로 끄집어낸다. 성형수술로 ‘용’된 여자연예인의 순위를 매기고, 연예계에 떠도는 소문들을 정렬시키기도 한다. “저러다 매장당하는 거 아닐까?” 보는 이가 더 애탈 만큼 아슬아슬하게 곡예를 넘는다. 그 중심에 디제이 디오시, 정재용이 있다.
“처음엔 가요순위 프로그램인 줄 알았어요. 피디와 작가를 만나보니 다 나처럼 정신이 하나도 없는 게, 코드가 맞더라고요. 뭔가 평범하진 않겠구나 싶었죠.” 이하늘, 김창렬 두 멤버에 비해 ‘그나마’ 얌전했던 그가 뜻밖의 입담으로 프로그램이 자기 색깔을 내는 데 일조했다. ‘물 만난 고기’처럼 기량을 펼치는 그를 두고 ‘재발견’이란 평가가 나오기도 한다.
처음엔 이래도 되는 걸까, 걱정도 됐다. 동료
KM ‘재용이의 순결한 19’ 진행 정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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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회분 방영뒤 여주인공 연기력 논란
산만한 전개에 드라마 완성도 ‘입길’
지난 24일 첫 전파를 탄 한국방송 2텔레비전 〈포도밭 그 사나이〉(극본 조명주, 연출 박만영, 월·화 밤 9시 55분)는 〈궁〉에 이어 윤은혜가 두번째 선택한 드라마로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첫회 시청률 6.4%, 2회 7.3%(에이지비닐슨 미디어리서치 집계)에 그쳐 부진한 출발을 보였다.
시청률 40%를 넘나드는 문화방송 〈주몽〉과 맞붙은 탓도 크지만 〈포도밭 그 사나이〉 자체 이야기 전개에도 아쉬움이 남는다.
〈포도밭…〉은 최근 미니시리즈의 경향을 고스란히 채택한 드라마다. 방학을 맞은 10대와 20대 초반 젊은 시청자들을 겨냥한 듯 시종일관 가볍고 발랄한 로맨틱 코미디를 지향한다. 그러나 〈내 이름은 김삼순〉 이후 줄기차게 대물림되는 여주인공의 캐릭터는 식상한 편이다. 평범하다기에는 지나쳐 푼수 같은 인상도 풍겼다.
〈포도밭 그 사나이〉는 1년만 내려와 농사를 지으면 1만평의 포도밭을
<포도밭 그 사나이> 열매는 시큼? 달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