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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리피 할로우> <레모니 스니켓의 위험한 대결>의 에마뉘엘 루베즈키
촬영감독은 카메라를 드는 사람이 아니라, 화면 안의 무드를 만드는 사람이다. <이투마마> <위대한 유산> <구름 속의 산책>처럼 태양광을 매력적으로 포착한 로케이션영화와 <슬리피 할로우> <레모니 스니켓의 위험한 대결>처럼 조형적인 세트 안에서 모호한 시공간의 리얼리티를 재현한 영화. 얼핏 연결되지 않는 듯한 영화들을 촬영한 에마뉘엘 루베즈키는 그 오묘한 무드를 가장 중요시한다. 그의 화면은 더위와 추위, 음산함과 따뜻함, 딱딱함과 말랑말랑함 등 직접적인 감각뿐 아니라 독특한 시대의 정서와 숨결까지 전달한다.
‘치보’라는 애칭으로 통하는 루베즈키는 그러나 촬영감독의 기계적인 덕목에는 관심이 없다. 강렬한 콘트라스트보다는 방향을 파악할 수 없는 부드러운 조명으로 분위기를 만든다. 풀숏과 클로즈업에서 빛이 서로 다른 방향에서 들어오는 경
21세기 촬영감독 10인 [2] - 에마뉘엘 루베즈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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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예술 사이에서 태어난 영화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촬영감독은 가장 주도적인 역할을 해왔다. 감독이 영화의 주인으로 군림한 이래, 자주 잊혀지는 그들의 하는 일은 우리의 예상을 넘어선다. 앵글과 프레임의 사이즈, 카메라의 움직임을 결정하는 것은 빙산의 일각이다. 다양한 포맷, 다양한 필름, 다양한 렌즈와 카메라와 현상방식, 무한한 변수를 지닌 조명…. 화면의 질감과 온도, 분위기를 책임져야 하는 촬영감독들이 매 순간 결정해야 할 목록들이다. 이 정도면 촬영감독은 영화의 눈이 아니라, 심장과 보조를 맞추는 머리에 비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러므로 촬영감독을 중심으로 일련의 영화를 꿰는 것은 영화를 더욱 풍부하게 읽을 만한 또 하나의 기준이 되어준다. 갈수록 새롭고 자극적인 이미지가 눈길을 잡아끄는 요즘. 영화 고유의 가능성을 각자의 방식으로 고민하고 있는 해외 촬영감독 10인을 소개한다. <와호장룡>의 피터 파우를 제외하면 모두 1990년 이후 첫 번째 장편영화를 촬영
21세기 촬영감독 10인 [1] - 로드리고 프리에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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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수년 전 호텔 파친코를 일제 단속한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사회부 말단 기자여서 이런저런 취재에 동원됐다. 도박중독자의 자구모임인 ‘단도박’ 회원 몇몇을 취재했는데, 아직도 기억에 남는 40대 중반의 K씨. 그는 슬럿머신 중독이었는데, 도박 경력이 20년이었다. 대기업 사원이었던 그는 회식을 마치고 직장 선배와 함께 파친코에 첫발을 내디딘 이후, 20년간 6억원을 잃었다고 했다. 도박을 끊기 위해 경찰에 신고도 하고 언론사에 제보도 해봤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고 했다. K씨는 검지가 없는 오른손을 내보이며 “가족 잃고 재산 다 잃고 난 뒤에 하도 화가 나서 손가락을 잘라버렸다”고 했다. 그런데 K씨는 상처가 다 아물기도 전에 붕대 감은 손으로 다시 슬럿머신을 당겼다고 했다.
이 당시에도 성인 남성 10명 중 1명은 기계도박에 중독돼 있는 걸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니 이 엄청난 시장을 업자들이 가만둘 리 없지 않은가. 호텔 파친코가 문을 닫자 무허가 성인오락실은 오히려 호황을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바다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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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무렵, 대학교 M.T 자리에 자주 등장하던 놀이 중 이미지게임이란 게 있었다. 술잔을 돌리고 술을 가득 따른 뒤 한 사람이 질문을 던지면, 나머지 사람들은 답변에 해당하는 사람을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이중에서 학창 시절 가장 잘나갔을 것 같은 사람은? 가장 잘 안 씻을 것 같은 사람은? 가장 거짓말을 잘할 것 같은 사람은? 질문의 종류는 광범위하다. 정말 유치한 것부터 꽤 심오한 난이도까지. 질문이 떨어지면 사람들은 주위를 살피기 시작한다. 과연 어떤 사람이 잘 안 씻을까, 어떤 사람이 잘나갔을까, 어떤 사람이 거짓말을 잘할까. 보이지 않을 것 같던 이미지의 실체는 곧 다수의 손가락질을 받은 사람의 모습으로 대체된다. 호쾌하거나 어색하거나, 웃음이 터져나온다. 하지만 사실 가장 안 씻을 것 같은 사람으로 지목받을 때, 마냥 웃고만 있을 속 편한 사람이 있을까. 또 거짓말을 가장 잘할 것 같은 사람은 정말 거짓말쟁이일까, 혹시 다른 누군가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오픈칼럼] 이미지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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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가 얇아서일까, 심사가 꼬여서일까. 남들이 ‘별로’라고 한 영화를 보면 ‘괜찮네’ 하면서 극장을 나서고, 남들이 ‘괜찮다’고 한 영화를 보면 ‘별로네’ 하면서 극장을 나서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아마도 귀가 얇아서 ‘만빵’으로 기대했다가 적이 실망하고, 심사가 꼬여서 남들이 별로라고 하면 만족도가 자극되나보다. 최근엔 <다세포 소녀>는 ‘별로’라는 말을 듣고, <천하장사 마돈나>는 ‘괜찮다’는 이야기를 듣고 봤다.
역시나 입소문은 정확했다. <천하장사 마돈나>의 시사회(언론시사가 아니라 일반시사였다)에는 시종일관 웃음꽃이 피어났고, <다세포 소녀>의 극장은 한여름인데도 한기가 돌았다. 심지어 영화를 보다가 거금 7천원짜리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관객도 있었다. 나도 <천하장사 마돈나>를 보면서 웃었던 횟수가 <다세포 소녀>를 보면서 웃었던 순간보다 많았다고 기억한다. 그런데 극장을 나서면서는 <다세포 소녀>
[이창] 무쓸모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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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내면서 치부라고 말하는 건 좀 변태스럽지만 어쨌거나 나의 101가지 치부 가운데 하나는 행동거지가 꽤나 무식하다는 거다. 남자관계에서 말이다. 그 기나긴 고함과 욕설과 때로는 무언가 날아다님의 역사를 펼쳐놓고 싶지는 않다. 딱 두 가지만 이야기하겠다. 지금 사는 집에 이사오기 전 옆집 사람들이 나의 소속을 알게 되지나 않을까 전전긍긍했고- 나 하나 욕 먹는 건 참을 수 있어도 회사 이미지에 먹칠은 할 수 없다는 애사심, 샤방!- 성질 많이 죽인 요즘도 음, 실은, 음, 가끔, 아주 가끔 화가 나면 “야, 이 삐이익아!”가 튀어나온다. 흠흠. 이런 무식한 삑!
내가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을 남몰래 하반기 최고 기대작 가운데 하나로 올려놓았던 이유도 방송에서 영화의 ‘진국’ 장면들을 미리 보여줬을 때 떠오르는 아스라한 기시감 때문이었다. 그래 뭐, 저렇게 연애할 수도 있는 거지. 존대말을 쓰며 우아하게 신경전을 벌이건 육두문자 휘날리며 육탄전을 벌이건 연애
투덜양,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 속 연애담에 우울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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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중학교 3학년 때 교복, 두발 자율화를 경험한 세대다. 거꾸로 말하면 중학교 2학년까지 머리 깎고 교복 입고 모자를 썼다는 말이다. 어려서 교복에 심한 거부감을 갖지 않았기 때문에 막상 자율화가 이뤄지자 얼마간 당황했다. 교복을 입었을 때 감춰졌던 빈부격차가 한눈에 드러나 학교 가는 일이 우울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자율화는 기쁜 일이었다. 복장이나 머리 때문에 선생님한테 싫은 소리 들을 일은 없어졌기 때문이다. 요즘 청소년들은 교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내게 자율은 빈부격차의 노출에도 불구하고 억누르고 금지하는 것보다는 나은 조치였다.
그러나 사복을 입고 머리를 기르게 됐다고 자율의 세상이 온 건 아니었다. 자율학습시간이 자율이 아닌 것처럼 대학 진학도 정말 자율적인 목표는 아니었다. 대학을 가야겠다 생각한 건 아마도 그곳엔 진정한 자율이 있을 거라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막상 대학에서 얼마나 자율을 만끽했는지는 기억이 희미하다. 마신 술의 양으로
[편집장이 독자에게] 다름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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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수는 맑은 남자다. 서울 구치소에서 사형수들을 만났을 때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는데, 윤수 역시 오랫동안 감옥에 갇혀있다 보니 세상에 대한 원망과 욕심도 사라지고 어느 정도는 해탈의 경지에 도달한 남자다. 윤수라는 남자를 처음부터 이해할 수 있었던 건 물론 아니다. 죄수복을 입고 머리를 자르는 순간 비로소 윤수가 다가오기 시작했다. 아침밥을 먹다가 사형집행을 선고받는 장면을 찍을 때는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윤수는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였고 나 역시 그랬다. 섬뜩했다.
송해성 감독과 항상 윤수에 대한 생각이 같았던 것은 아니다. 유정에게 “나 좀 그냥 죽게 놔두란 말이다!”라고 외치는 장면에서, 나는 윤수의 감정이 폭발적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감독님은 좀더 자제하라고 했다. 물론 감독님의 버전이 쓰였다. (웃음) 윤수를 경상도 남자로 설정한 것도 송해성 감독님이다. 나는 안 하겠다고 했다. 나를 편하게 해주려는 의도라면 싫다고 말했다. 그런데 감독님은 경
머리를 자르자 윤수가 다가왔다, 강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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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은 얼음공주다. 자신의 아픔을 스스로 파헤치는 여자, 상처를 아물게 하기보다는 덧나게 하는 여자다. 햇살이 너무 눈부셔 수면제를 털어넣을 정도로 시작부터 극한에 서 있는 인물. 호기심이 생겼다. 밑줄을 쳐가면서 책을 읽고 또 읽었다. 가슴이 저며왔다. 배우로서 꼭 하고 가야 할 인물이었다. 송해성 감독님의 감성에 믿음이 갔고, 사형수 윤수가 강동원이라는 사실도 매력적이었다. 상투적이지 않았으니까.
유정의 내면은 너무나 압도적이었다. 과거의 상처로 인한 아픔, 엄마에 대한 원망, 윤수를 향한 안타까움. 수많은 감정들이 촘촘히 얽혀 있었다. 가만히 앉아 있는 순간에도 눈빛과 손짓으로 복합적인 감정을 표현해야 했다. 힘들었다. 때로는 촬영장이 사형장 같았다. 언제부터였을까? 닫혀 있던 유정의 세계가 윤수를 만나며 조금씩 열렸던 것처럼, 난 유정으로서 성장을 거듭했다. 사형제도에 대해 아무 생각도 없던 난 사형수들을 직접 만나면서 새로운 세계를 알게 됐다. 분노도 욕심도 존재하지 않
난 유정과 함께 성장했다, 이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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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의 원작을 영화화한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은 절망의 한가운데서 부르는 사랑 노래다. 세 사람을 살해하고 사형을 선고받은 남자 윤수(강동원), 정신과 카운셀링 대신 사형수와의 면담을 선택한 대학교수 유정(이나영). 두 사람은 일주일에 3시간, 목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1시까지 면회실에서 만나고, 점점 서로에게 마음을 허한다. 그러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라는 제목은 아플 만큼 역설적이다. 윤수와 유정의 행복한 시간은 결국 사형대 위에서의 고백과 함께 사라져버릴 운명이기 때문이다.
송해성 감독은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 “강동원과 이나영의 재발견이 될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보자. 공지영이 만들어낸 비극의 주인공들에게 강동원과 이나영을 대입해본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 세상에 대한 분노를 속으로 껴안은 사형수 윤수와 어린 시절의 비밀을 감당하지 못해 밥먹듯이 자살을 기도하는 여교수 유정은 쓰리고 독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의 강동원, 이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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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삶>
감독: 지아장커
배우: 자오 타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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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터처블>
감독: 브느와 자콥
배우: 이실드 르 베스코, 베랑게르 본보이신, 마르끄 바베, 제레미 일케임, 루이스 드 란퀘이상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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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장소에서의 개인적 두려움>
감독: 알랭 레네
배우: 랑베르 윌슨, 사빈느 아젬마, 앙드레 뒤솔리에, 라우라 모란테, 피에르 아르디티, 이자벨 카레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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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인 독>
감독: 호 유항
배우: 쿠안 춘 와이, 쳉 윙 홍, 리우 와이 홍, 피트 테오, 야스민 아마드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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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치구이시열전>
감독: 오시이 마모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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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2006] 화려한 스타들의 생생 화보 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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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 트레이드 센터>
감독: 올리버 스톤
배우: 니콜라스 케이지, 마이클 페냐, 매기 질렌홀, 마리아 벨로, 스티븐 도프, 마이클 쉐넌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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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북>
감독: 폴 버호벤
배우: 카라이스 반 하우텐, 세바스찬 코치, 톰 호프만, 왈데마르 코버스, 할리나 레진, 데릭 드 린트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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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비>
감독: 에밀리오 에스터베즈
배우: 앤서니 홉킨스, 데미 무어, 샤론 스톤, 엘리야 우드, 린제이 로한, 프레드 로드리게즈, 스벳틀라나 멧키나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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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포리쟈>
감독: 이반 비리파에프
배우: 폴리나 아게르바, 막심 우스카보브, 마카일 오쿠네브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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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별>
감독: 지아니 아멜리오
배우: 세르지오 카스텔리토, 타이 링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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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2006] 화려한 스타들의 생생 화보 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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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 사태 5주년을 맞아 이 사건의 현장을 직접 재현해 보여주는 미국 영화 두 편이 잇따라 한국에서 개봉한다. 〈블러디 선데이〉의 감독 폴 그린그래스가 메가폰을 잡은 〈플라이트93〉이 오는 8일 개봉하며, 올리버 스톤 감독이 연출한 〈월드 트레이드 센터〉가 10월 중순에 개봉한다.
알다시피 9·11은 수많은 사상자를 낳았고, 이후의 세계정세를 바꿔놓았으며, 지금도 음모론이 끊이지 않는 ‘뜨거운 감자’다. 이런 사건의 현장을 5년 만에 직접 대형 스크린으로 옮긴다는 게, 이른 일일까 늦은 일일까. 한국 같으면 80년의 광주민주화운동이 〈꽃잎〉을 통해 부분적으로나마 스크린을 타기까지 16년이 걸렸다. 아닌 게 아니라 지난 4월 말 스크린에 걸린 〈플라이트93〉의 개봉을 앞두고 “너무 이르다”는 논란이 미국 안에서 일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논란은 개봉 뒤 시들해졌고, 8월 개봉한 〈월드 트레이드 센터〉와 함께 두 영화는 미국에서 좋은 흥행성적을 거뒀다.
미국이 영화에 관대
[팝콘&콜라] ‘무사착륙’에만 신경쓴 9·11 영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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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일본에서 개봉한 〈괴물〉이 비평에서는 좋은 반응을 받았지만 흥행 성적은 기대에 못미쳤다. 전국 250개 스크린에서 개봉한 〈괴물〉은 같은 날 개봉한 〈마이애미 바이스〉에 크게 밀리면서 주말 박스오피스 7위에 머물렀다. 이는 일본에서 개봉한 한국영화 중 〈태풍〉과 비슷한 수준으로 시사회와 언론의 호평으로 미뤄 짐작했던 예상에 크게 못미치는 “의외의 결과”라는 게 한국 제작사와 일본 배급사 ‘가도카와 헤럴드’의 공통된 반응이다.
일본 언론들은 대부분 〈괴물〉을 주요 개봉영화로 다루며 모두 후한 점수를 줬다. 〈아사히신문〉은 영화평에서 “이야기는 파란만장하고, 어투는 가벼우며, 특수촬영은 정교하고, 게다가 주제는 명쾌하다”며, 영화의 서스펜스와 사실적인 세부묘사, 유머를 높이 평가했다. 이 신문은 이어 금기라고 할 수 있는 정치·사회 문제를 영화에 버무려 넣은 패기와 곡예사 같은 움직임이 돋보이는 괴물의 모양새를 들어 “특히 칭찬해야 할 점은 틀에 박힌 괴물영화에 과감하게
일본 간 <괴물> 호평에 웃고 흥행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