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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기술이 발전한 오늘날에는 자동차 액션 영화를 만드는 데 예전만큼 공력이 투입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모든 것을 일일이 사람 손으로 영화를 만들던 시절, 자동차영화, 그중에서도 레이싱영화는 아무나 만들 수 없는 영화기술의 집대성이었다. 1966년 존 프랑켄하이머의 손에서 태어난 포뮬러원 레이싱에 관한 영화 <그랑프리>는 이런 레이싱영화에서도 으뜸으로 꼽히는 아날로그 액션 영화의 금자탑이다. 실제 포뮬러원 머신에 올려진 슈퍼-파나비전70으로 촬영한 레이서 눈높이의 시점숏을 중심으로 감독의 전매특허인 와이드숏과 다양한 줌, 클로즈업 등의 촬영기술과 영상 디자인의 선구자 솔 바스와의 협력으로 탄생한 화면분할 등의 편집, 모리스 자르의 사운드트랙의 결합은 더 이상 기술적으로 다다를 곳이 없는 3시간짜리 화려한 기계들의 오페라를 만들어낸다. 특히 시점숏의 스펙터클은 오늘날 비디오게임에 익숙한 세대마저도 입이 저절로 벌어질 만큼 강렬하고 극사실적인 체험을 선사한다. 하지만 이 작
[해외 타이틀] <그랑프리: 특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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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드 혹스와 니콜라스 레이, 프레드 진네만 등이 웨스턴 장르의 균열을 만들어낼 동안 다소 구시대적인 서부영화를 만들던 존 포드는 1956년, <수색자>로 장르의 최전선에 복귀하면서 진정한 성인 웨스턴을 선보인다. 남북전쟁에서 돌아온 이산(존 웨인)이 코만치에게 살해당한 동생 가족의 복수를 위해 보내는 10여년 세월이 <수색자>의 배경이다. 끝없이 이어지는 시간과 공간의 미로를 헤매는 이산은 서부영화 역사상 가장 복잡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포드와 웨인의 연작을 보았던 사람은 주인공의 동기가 한 여인과의 사랑으로 인한 것이며, 점점 심해지는 광기는 그녀와 결별한 때문임을 안다. 가족, 전통, 공동체에 관심을 기울인 포드가 정작 애정을 쏟은 서부 사나이는 아이로니컬하게도 그 안에 정착할 수 없는 외로운 동물 같은 남자였다. <수색자>는 열린 문으로 들어왔던 남자가 다시 문 밖으로 떠나는 영화라고들 한다. 그 남자가 멀리 사라져 갈 때 눈물을 머금어
[명예의 전당] <수색자: 특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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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공개 당시 호평을 받았던 동명의 영화를 리메이크했다. 아이들을 돌봐주는 베이비시터로 일하는 여고생 질(카밀라 벨). 그녀가 낯선 사람에게서 온 전화를 받고 시작되는 공포. 새로움이란 전혀 없지만, 제한적인 장소에서 심리적 공포를 추구한 것은 최근 공포영화들과는 분명 차별되는 점이다. 효과음에 공을 들인 만큼 DVD 타이틀의 사운드는 그 자체로 즐길 만하다. 부가영상으로 감독과 주연배우의 음성해설(한글 자막 없음), 삭제장면, 메이킹 필름을 제공한다.
낯선 공포, 사운드로 즐기기, <낯선 사람에게서 전화가 올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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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뮤얼 잭슨과 줄리앤 무어를 앞세운 범죄 스릴러. 한 의료센터 응급실에 백인 여성 브렌다 마틴(줄리앤 무어)이 들어온다. 그녀는 흑인 남자가 자신의 차를 훔치고 아이를 납치했다는 증언을 하고, 로렌조 형사(새뮤얼 잭슨)가 사건 해결에 나선다. 장르영화의 쾌감보다 흑백 갈등에 무게중심을 둔 덕분인지, DVD 타이틀에 수록된 부가영상 가운데 하나는 흑인 경찰들이 얘기하는 인종간의 갈등에 관한 이야기가 수록됐을 정도다. 그 밖에 소설에서 영화로 옮겨지는 과정, 메이킹 필름, 삭제장면을 제공한다.
흑인 경찰이 바라보는 인종 갈등, <프리덤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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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승원의 두 번째 변신작.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멜로연기를 하는 배우의 변신은 성공적으로 보인다. 사랑하는 여인을 북에 두고 남한으로 넘어온 김선호. 유약하고 우유부단한 성격의 한 남자가 겪는 엇갈린 사랑의 아픔. 남과 북이라는 뚜렷한 정치적 배경에도 신파적 멜로를 지향한 것이 뜻밖이다. 부가영상은 기본적인 구성이다. 감독 음성해설과 인터뷰, 메이킹 필름, 그리고 많은 공을 들인 미술과 세트, 가극 공연 제작현장을 감상할 수 있다.
차승원, 멜로연기를 하다, <국경의 남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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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에 의해 가면이 씌인 사람들이 있다. 중동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그렇다. ‘중동=아랍지역=무슬림의 세계’라는 잘못된 등식으로 우리는 그들을 대한다. 경제적 빈곤, 종교적 박해, 정치적 억압, 문화적 소외로 점철된 그들의 삶을 제대로 보려는 노력은 뒷전인 채 우리 머릿속에 그들은 대부분 ‘성질 나쁘고 포악한 아랍인’의 인상으로 남아 있다. 어쩌면 그게 다 미국이 만들어놓은 건 아닌지 모르겠다. 세계화에 걸림돌이 되는 존재에 박아놓은 미운털 같은 것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천국을 향하여>는 색다르고 중요한 경험이다. 팔레스타인 사람과 유대인의 영토분쟁을 2차대전 이후의 일로 알고 있는 다수 관객에겐 정공법을 택한 영화가 필요했을 터. 그러니 이스라엘에서 태어난 팔레스타인 사람인 하니 아부 아사드가 연출한 <천국을 향하여>를 타자의 시선으로 멋대로 재단하기는 쉽지 않다. <천국을 향하여>는 자살폭탄 공격을 지시받은 두 아랍 청년의 이야기다. ‘이슬람’은
아랍과 아랍인에 관한 객관적 시선, <천국을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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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판 <오만과 편견>은 원작을 잘도 농축해놓았다. 놓친 부분이 아쉽지 않을 정도로 각색이 뛰어나고, 무엇보다 극의 경쾌함은 21세기형 <오만과 편견> 탄생의 일등공신이다. 특히 (5시간의 리허설과 3시간의 촬영과 15번의 테이크를 거쳤다는) 두 번째 무도회 중 3분여에 이르는 유려한 싱글숏은 영화만의 쾌감을 전한다. 그러나 극장판이 속도감만을 자랑하는 건 아니다. 때때로 삽입된 시적 영상은 극의 강약을 성공적으로 조절해, 전설적인 BBC판의 팬일지라도 긴장감 넘치는 인물간 관계와 인상적인 영상을 거부하진 못할 것 같다. 이렇게 해서 제인 오스틴의 유명한 고전은 뛰어난 해석을 하나 더했으니, 그리 유쾌하지는 않았던 작가의 삶과 달리 원작소설들은 참 복도 많다. 뛰어난 화질과 음질, 영화만큼 시원시원한 감독 음성해설이 담긴 DVD도 만족스럽다. 부록은 영화의 주제에 맞춰 다양한 메뉴를 준비하면서도 분량은 간결한 기존 유니버설 DVD의 특성을 따른다. 화목한 현장
극장판과 다른 DVD판 결말은? <오만과 편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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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13일까지/ 정보소극장/ 02-745-0308
시민 거의 전부가 빚더미를 떠안고 있는 작은 지방도시에 엄청난 갑부가 된 노부인 클라라가 돌아온다. 그녀는 연인 알프레드에게 배신당하고 이웃에게도 냉대를 받으며 임신한 몸으로 고향을 떠났고, 혼자 낳아 입양보낸 딸아이는 일년밖에 살지 못하고 죽었다. 복수를 하고자 하는 클라라는 전 재산을 고향에 기증하겠다고 선언한다. 다만 알프레드의 시체를 대가로 받을 수 있다면. 그날 이후 도시는 아직 손에 쥐지도 못한 부(富)를 상상하며 사치로 흥청거리고, 알프레드는 출구없는 미로에 갇힌 새앙쥐처럼 궁지에 몰린다.
프리드리히 뒤렌마트의 희곡 <노부인의 방문>을 각색한 <그녀가 돌아왔다>는 이처럼 복잡한 줄거리를 가지고 있지만 공연시간은 한 시간에 불과하다. 영화 <고독이 몸부림칠 때>의 이수인 감독은 연극무대로 복귀한 첫 작품을 각색하면서 과감하게 서사를 걷어내고 다만 그 순간의 감정과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방
친절한 클라라씨의 복수, <그녀가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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뮈오는 섹스를 머리로만 알고 있다. 프랑스에서 정신분석을 배운 그는 프로이트와 라캉에 대해서라면 몇 시간이고 이야기할 수 있지만 순결하기 그지없는 그의 몸은 여자를 모른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꿈속에서 남근의 상징물이 어떤 것인지는 알고 있지만 뮈오는 숫총각이다. 지독한 근시, 못생긴 얼굴. <D의 콤플렉스>는 딱할 정도로 강렬한 기사도 정신에 휩싸인 뮈오의 이야기이다.
마흔살 뮈오는 11년 만에 프랑스에서 중국으로 귀국했다. 스무살 때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을 접하고 열렬한 숭배에 빠진 그는 파리에서 정신분석학을 공부하고 ‘프로이트 뮈오’라는 별명을 얻는다. 중국 최초의 정신분석가 뮈오가 다시 찾은 중국은 그에게 전혀 호의적이지 않다. 기차를 타고 여행하던 그는 아가씨의 발인 줄 알고 빗자루의 손잡이를 어루만지다 흥분해 슈트케이스를 잃어버린다. 이야기는 현재와 가까운 과거, 그리고 뮈오의 내밀한 생각을 오가며 뮈오가 고행에 가까운 여정을 계속하는 이유를
프로이드 추종자의 중국 순회 정신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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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이 1905년에 발표한 상대성이론, 광전효과, 브라운운동의 핵심 아이디어는, 첫 번째 부인 밀레바 마리치의 것이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밀레바에게 갖은 학대를 일삼다 유부녀인 사촌누이 엘자와 재혼했는데, 그녀의 딸, 그러니까 자신의 의붓딸에게도 청혼했다. 영민한 과학사학자 홍성욱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라고 했지만, 내겐 익숙하게 들어왔던 너무 ‘이해 가능한’ 일이다.
최근 사회적 ‘유명 인사’가 다수 여성을 상대로 ‘성폭력’을 저질러서, 시민운동가와 지식인을 중심으로 ‘000(가해자 이름)의 여성에 대한 폭력과 인권 침해 사건 대책위원회’가 꾸려졌다. 내게도 연일 관련 소식이 배달되고 있는데, 나는 이 메일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지 않았다. ‘사회적 매장’은 가혹한 처사일 뿐 아니라, 여성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가해자를 ‘일반’ 남성과 구별하고 낙인찍는 것은, 성폭력을 남성의 일상적 문화의 구조적 결과가 아니라 특수한 개인의 문제로 사소화, 사사화(私事化)하기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연애와 성폭력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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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귀는 나의 오랜 전략은 그저 솔직해지기다. 나의 이렇고 저런 세계에 함께 젖기로 한 이들과는 친분이 꽤 오래 지속된다. 부작용도 있다. 속없는 푼수 같은 이미지만 남길 때가 있다. 이런 탓인지 최근에 찾아간 암스테르담, 아니 네덜란드는 솔직함을 국가적 자산(혹은 그냥 큰돈)으로 영리하게 만들었다고 여겨졌다. 그곳은 마약과 매춘이 합법화한 곳이다. 예쁜 운하를 끼고 있는 양편에 당당하게 몸을 팔고 있는 사람들과 그 사이사이 환각성분이 든 커피를 파는 카페가 끼어 있다. 파리의 몽마르트르 아랫녘이 그렇듯 축축한 느낌은 이곳도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훨씬 명랑해 보였다. 다양한 형태의 관광객으로 들끓은 풍경이 보탬이 됐을 것이다. 어차피 존재하는 것, 차라리 양성화해서 보호할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기로 했을 때, 왜 논란과 진통이 없었을까 싶다. 솔직한 게 더 효율적일 것이라는 목소리가 더 컸기에 합법화가 가능했으리라. 그 대가로 암스테르담은 세계의 젊은이들에게 자유도시의
[오픈칼럼] 솔직함의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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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1. 게이(여기서는 남성 동성애자)는 서울쥐다. 도시의 공기는, 익명의 공간은 그들에게 자유를 허한다. 혹시나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낼 수밖에 없는 순간에 익명은 그들을 감싼다. 게이바에 들어가는 순간, 게이바 옆 가게 주인이 그들을 본다고 해도 주인은 그들이 누군지 모른다. 그들에게는 정말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엄마의 친구가 가게 주인인 동네의 게이바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면, 정말로 끔찍한 일이다. 더구나 게이바에서 옆집 아저씨를 만난다면, 정말로 당혹할 일이다. 이렇게 도시의 공기는 그들을 자유롭게 만든다. 아직도 서울의 게이바는 후미진 뒷골목, 어두운 거리에 늘어서 있다. 그리고 게이바 앞에는 종종 하수도가 흐른다. 도시의 쥐들이 시궁창의 어둠에서 이동할 자유를 누리듯, 서울의 게이들은 어둑한 종로의 뒷골목에서 활보할 자유를 찾는다. 그 어둠 속에서라야 초로의 사내들은 후줄근한 양복 소매 사이로 슬며시 서로의 손을 맞잡을 용기를 얻는다.
##어둠2. 어느 날 어둑한 종
[이창] 어둠의 광명 혹은 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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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많은 친구들>은 좀 이상한 영화다. 이 영화의 캐릭터에는 관객이 기대하는 ‘정의’가 없다. 돈없고 애인없는 올리비아라면 성격이 아주 좋거나 독특한 삶의 기준 같은 게 있어야 할 텐데 대체 머리가 뭐가 들었나 싶을 정도로 한심한 그녀다. 반면 200만달러를 선뜻 기부하는 프래니라면 남편이 바람이라도 나야 정의사회구현이 될 텐데 그녀는 성생활조차 네 친구 가운데 가장 훌륭하다. 사는 데 돈이 전부는 아니지만 돈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게 단지 영화라면 욕이나 한마디하고 끝날 수 있을 텐데 현실은 더하니 씁쓸해질 뿐이다.
더 이상한 건 영화의 진짜 주인공이 네명의 여자들이 아니라 그중 한명의 남편이라는 데 있다. 영화의 주인공(히어로)이란 주변 인물들의 편견이나 상식을 가장한 관습의 폭력과 싸우며 세상을 정직하게 보는 유일한 드라마 속 인물이라는 사전적 기준에서 본다면 말이다. 바로 ‘신경쇠약 직전의 여자’ 제인의 남편 아론이다. 아론은 영화의 드러나지 않는
투덜양, <돈많은 친구들>의 패션과 우정을 즐기는 아론을 발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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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필버그의 영화 <뮌헨>에서 인상적인 대목 하나.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들이 뮌헨올림픽 선수촌에 들어가 이스라엘 선수들을 납치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이스라엘이 발칵 뒤집힌다. 당시 이스라엘 총리인 골다 메이어는 에릭 바나가 연기한 주인공을 집으로 초대해 팔레스타인 테러조직의 요인들을 암살하는 비밀지령을 내린다. 무시무시한 암살명령이 이뤄지는 상황이지만 영화에서 묘사된 집안의 분위기는 너무도 평화롭고 아늑하다. 당시 정치상황을 잘 모르는 관객이라면 자상한 할머니가 오랜만에 장성한 손자를 만나 반갑게 대화하는 장면처럼 보일 정도다. 정부의 최고지도자가 직접 요인암살을 지시하는 장소라면 으리으리한 총리관저나 은밀한 제3의 장소가 적당할 것 같지만 <뮌헨>에선 평범하고 일상적 공간에서 음모가 진행된다. 오늘 저녁은 뭘 먹지, 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투로 그놈들을 다 찾아서 죽여버려, 라고 말한다. 지금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습도 그런 식으로 시작됐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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