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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한 현실, 그래도 살아가야 한다
<카불 익스프레스> Kabul Express
카비르 칸/ 2006년/ 인도/ 106분/ 아시아영화의 창
미국이 오사마 빈 라덴의 은거지로 아프가니스탄을 지목하자 파키스탄은 그동안 지원해온 탈레반 정권으로부터 등을 돌린다. 다큐멘터리 형식을 가미한 <카불 익스프레스>는 그즈음인 2001년 11월, 아프가니스탄에서 만난 다섯명이 지프 ‘카불 익스프레스’를 타고 국경으로 향하는 로드무비다. 인도 저널리스트 슈엘과 카메라맨 제이는 가이드 겸 운전사로 고용한 카비르의 안내로 탈레반을 인터뷰하려고 하지만 성과를 얻지 못한다. 카불을 배회하던 그들은 낙오된 파키스탄인 탈레반 임란에게 납치되어 파키스탄 국경으로 향하게 된다. 도중에 세 사람은 임란을 제압할 뻔도 하지만 카불에서 만나 뒤를 따라온 미국인 저널리스트 제시카까지 덩달아 포로가 되고 만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몇편의 다큐멘터리를 찍었던 감독 카비르 칸은 극영화로는 데뷔작인 &
제11회 부산국제영화제 추천작 [3] - 리얼리즘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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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진진한 긴장감, 유쾌한 웃음보따리
<혐오스러운 마츠코의 일생> Memories of Matsuko
나카시마 데쓰야/2006년/일본/129분/아시아영화의 창
<불량공주 모모코>를 만든 나카시마 데쓰야의 신작. 컴퓨터그래픽의 도움을 받은 화사하고 몽상적인 이미지가 TV광고처럼 흠없는 뮤지컬 장면들과 어우러져 추락만을 거듭했던 한 여자의 일생을 그린다. 이야기는 20살의 청년 쇼우에서 시작한다. 18살에 가출해 고향을 떠난 그의 앞에 어느 날 아버지가 찾아온다. 30년 전 집을 나가 연락이 끊긴 고모 마츠코가 공원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는 말과 함께, 아버지는 고모의 집을 정리하라고 말한다. 쇼우는 고모의 짐을 정리하다가 고모의 삶에 대해 하나씩 알아간다. 중학교 선생님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마츠코에게 인생은 핑크빛이었다. 하지만 문제아 학생이 일으킨 절도사건을 수습하려다 오히려 범인으로 몰린 마츠코는 학교에서 쫓겨나고 집에서도 뛰쳐나온다. 이후 마츠코는 동거
제11회 부산국제영화제 추천작 [2] - 대중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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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을의 영화축제 제11회 부산국제영화제가 10월12일 개막작 <가을로>를 시작으로 10월20일까지 아흐레 동안 열린다. 전세계 63개국에서 온 245편의 영화가 선보이는 이번 부산영화제의 가장 큰 특징은 월드 프리미어 작품이 크게 늘었다는 점이다. 대니얼 고든 감독의 <푸른 눈의 평양 시민>을 비롯해 린킨 파크의 조 한이 만든 단편영화 <시드>, 한국영화 <열혈남아> <폭력서클> <경의선>까지 모두 64편이 부산에서 첫 상영을 맞게 된다. 프리미어 작품이 아니더라도 바흐만 고바디, 고레에다 히로카즈, 차이밍량, 왕차오, 가린 누그로호, 모흐센 마흐말바프, 아핏차퐁 위라세타쿤, 마뇰 드 올리베이라, 라스 폰 트리에, 난니 모레티, 브루노 뒤몽, 아키 카우리스마키, 마이클 윈터보텀 같은 감독들의 신작을 만날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시네필들은 즐거움에 겨울 것이다. 심사위원장인 이스트반 자보, 브루노 뒤몽, 유덕화, 아오이
제11회 부산국제영화제 추천작 [1] - 거장들의 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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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무당을 일컫는 또 다른 이름인 샤먼은, 신비로운 어감과는 달리 좀 싱거운 유래를 가졌다고 한다. 17세기 끝 무렵에 러시아를 여행하던 어느 네덜란드 상인은 시베리아 바이칼 호수 부근에서 듣도 보도 못했던 종교의식을 목격한다. 퉁구스족 박수무당이 벌이던 일종의 굿이라 짐작되는 의식이 서구 기독교도의 눈을 휘둥그레지게 만든 것이다. 상인의 ‘저게 무엇이냐?’는 질문을, 현지인들은 ‘저 사람이 누구냐?’는 말로 착각해 ‘샤먼’이라 답했다고 한다. 학자들 사이에서는 원래 산스크리트어에서 왔느니 만주어에서 시작했느니 유사한 단어를 증거로 여러 주장이 아직까지 엇갈리고 있지만, 한낱 일개 무당의 이름이 아시아 곳곳에서 수천년을 내려오는 거대한 종교현상을 대표하는 말인 샤머니즘의 어원일 수도 있다는 사실은 어딘지 모르게 해프닝처럼 느껴진다.
우리가 가진 무당에 대한 평소의 생각과 시선은 어떨까. 퍼포먼스 공연장에서 느끼는 것처럼 신기하고 재미있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낯설게 바라보다가, 결
<사이에서>, 인간과 신, 삶과 죽음, 그 사이에서의 존재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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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시함이라는 형용사에 팔다리가 있다면 박시연의 몸매가 되었을 것이다. 게다가 얼굴은 작고 이목구비는 시원시원하다. 누가 미스코리아에 CF 모델 출신 아니랄까봐, 카메라 셔터 소리에 맞춰 능숙하게 포즈를 취한다. 얼굴 표정도 몸짓도 거침이 없다. 외모가 주는 인상을 조합해보면 새침함과 까탈스러움이 마땅한 결론인데, 박시연이 입을 여는 순간 그런 생각은 자취를 감춘다. 고생을 했을 법한 상황들을 떠올리면서도 너털웃음을 곧잘 터뜨리고는 “그런가?” 하고 고개를 갸웃하는 게 다다. 딱히 뭘 감추는 것 같지도 않은데 말수도 적다. 차분한 성격이라서? “차분한 게 아니라 말투가 느리다. 사실 <마이걸>에서 감정 기복이 심하고 대찬 역할을 맡았는데 내 성격과 너무 달라서 힘들었다.” 그리고 다시 너털웃음.
박시연은 얼마 전 영화 데뷔작 <구미호가족>을 찍었다. <구미호가족>이 개봉하기도 전에 박시연이 다음 영화 <일편단심 양다리>에 재희와 함께 주인
아이 예뻐라, 구미호, <구미호가족>의 박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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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이 할리우드로 보낸 최고의 선물.” <타임>은 장쯔이를 그렇게 평했다. 장쯔이가 신작 <야연>과 함께 9월18일 한국을 방문했다. 서울에 도착한 지 얼마 안 된 그를 숙소 W호텔에서 만났다. 어린 시절 고된 무용 수업을 견디다 못해 베이징댄스아카데미를 도망치기도 했던 소녀는 할리우드를 놀라게 한 배우로 성장했고, 지금은 아시아 스크린을 호령하는 여신으로 거듭났다. 쿠키를 오물거리며 쾌활하게 웃는 장쯔이의 얼굴은 스물일곱살의 8년차 여배우보다는 <와호장룡>의 완을 연상시키는 소녀의 풋풋함을 느끼게 했다. 하지만 <야연>의 화면에 나타난 그는 어느 때보다 고혹적이고 성숙한 여인의 향기를 자아낸다. 장이모, 리안, 왕가위, 로우예, 스즈키 세이준 등 당대의 거장들과 작업한 장쯔이는 대륙의 대표 흥행감독 펑샤오강의 영화에서 무엇을 하고 싶었는지 궁금했다.
-오랜만에 중국에서 촬영했다. 펑샤오강 감독과도 처음 작업인데 수많은 시나리오 중에
<야연>의 장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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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스필버그’ 펑샤오강이 한국에 왔다. 1990년대 후반부터 대륙 인민을 웃고 울리던 흥행감독 펑샤오강은 <야연>으로 처음 국내 관객과 만난다. <야연>은 중국에서 개봉 4일 만에 700만달러를 벌어들였고, 최종적으로 2500만달러 이상의 박스오피스 성적을 거둘 전망이다. 장이모와 첸카이거가 무협대작으로 깜짝흥행을 선보였다면 펑샤오강은 <갑방을방> <몰완몰료> <수기> <따완> <천하무적>을 비롯한 히트작을 양산하며 근 10년 가까이 중국을 대표하는 인기감독으로 군림했다. ‘설영화, 블랙코미디의 일인자’였던 펑샤오강이 웃음기를 지워버린 비극 <야연>을 만든 심경이 궁금했다. W호텔에서 만난 펑샤오강은 처음 만든 비극 <야연>과 서민적인 영화의 중요성에 대해 느릿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2000년대 초반 무협대작은 만들지 않겠다고 했다. 게다가 주특기인 코미디를 배제하고 고전 비
<야연> 감독 펑샤오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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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호 대표는 매의 눈과 코뿔소의 다리를 동시에 가진 사람이다. 한양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한 뒤 CF감독으로 오랫동안 필드를 지킨 워커 홀릭기 다분한 이 CEO는 빠르고 정확한 판단력과 주저없는 추진력으로 업계에 정평이 나 있다. 2000년 광고제작사로 시작한 옐로우필름은 광고, 뮤직비디오를 제작해왔고 올해 초 <연애시대>로 드라마 제작에 뛰어들었다. 또한 2006년 실리샌드를 통해 코스닥시장에 우회상장했고 바른손, 몬스터 등의 매니지먼트사를 식구로 꾸리면서 만만치 않은 캐스팅 파워까지 얻었다. 또한 배두나, 김민준, 오윤아, 이진욱이 출연하는 <썸데이>가 공중파가 아닌 OCN에서 첫 방영되는 것으로 한 차례 언론으로부터 “지상파와의 전면전”이라는 호들갑스러운 관심을 받기도 했고, 2007년 초 방영 예정으로 올해 11월부터 제작에 들어갈 <에이전트 제로>는 설경구, 손예진, 차인표라는 화려한 라인업 이외에도 대한민국 최초의 시즌제 드라마라는 점에서 상
드라마 극본 공모전 주최하는 (주)옐로우앤실리샌드 오민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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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이 돌아왔다. 해마다 명절이면 애크러배틱 액션으로 우리를 황홀케 했던 그분이 올해도 어김없이 돌아왔다. 성룡 총제작, 각본, 주연. 이 사실만으로도 <BB프로젝트>가 어떤 아우라를 풍길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 눈여겨볼 점이 있다면, 성룡이 할리우드의 과도한 특수효과를 벗어던지고 홍콩으로 돌아왔다는 것. 오랜만에 홍콩 도심을 누비며 담백한 맨몸 액션을 구사하고 있으니, 성룡의 팬이라면 환호할 만하다.
영화는 2인조 전문털이범으로 보이는 뚱땅(성룡)과 난봉(고천락)이 금고를 따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한눈에 보기에도 선량해 보이는 얼굴. 진지함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지만, 이들에게도 나름의 규칙은 있다. 살인, 유괴, 강도짓은 하지 않겠다는 것. 하지만 그놈의 돈이 뭔지! 생활고(?)에 시달리던 이들은 갱단의 ‘BB프로젝트’ 즉, 빌리언 달러 베이비 유괴작전에 뛰어든다. 그러나 초반부 아찔한 유괴작전이 성공한 이후, 영화는 <god의 육아일기>를 연상케
최적의 추석 맞춤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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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트 불리>는 디즈니 실사영화 <애들이 줄었어요>(1989)와 드림웍스 애니메이션 <개미>(1998)의 기본 아이디어를 결합해놓은 3D애니메이션이다. 개미만큼 작아지는 ‘호호 아줌마’나 동화 ‘엄지공주’, SF영화 <마이크로 결사대>(1966) 등을 예로 들지 않더라도, 일상적인 사물들이 비일상적으로 거대하게 변하는 순간은 언제나 즐길 만한 스펙터클을 제공해왔다. <앤트 불리> 역시 이같은 소인국적 상상으로부터 영화적 즐거움을 빚진 모험담이다.
교외 마을의 10살짜리 안경잽이 소년 루카스(자크 테일러 아이젠)는 우울한 청춘이다. 사춘기 누나는 나날이 구박에, 할머니는 외계인의 침략에 전전긍긍하는 음모론자이며, 덩치 큰 골목대장은 몸집이 작은 루카스를 괴롭히는 게 취미다. 스트레스가 쌓일 때마다 루카스는 마당에 있는 개미집을 망가뜨리며 기분을 풀곤 한다. 이런 루카스를 ‘파괴자’라 부르며 두려워하던 개미들은 마침내 묘안을 찾아
소인국 세계의 롤러코스터 모험담, <앤트 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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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12월 마카오는 중국으로 반환되었다. 왕가위나 프루트 챈이 반환을 앞둔 홍콩의 불안을 형상화했듯, 팡호청은 <이사벨라>에서 중국으로 반환되기 직전, 마카오의 마지막 여름을 보여준다. 비리에 연루되어 쇠락한 경찰 싱(두문택)은 유흥가를 떠돌다 얀(이사벨라 롱)을 만나 하룻밤을 보낸다. 싱에게 얀은 그저 하룻밤을 보낸 상대였지만, 얀은 자신이 싱의 딸이라고 주장한다. 그날부터 얀은 싱에게 돈을 요구하고 결국 둘은 이상한 동거를 시작한다. 비록 만남은 어색했지만, 세상에서 홀로 남은 이 둘은 점차 마음을 열고 서로에게 적응해간다.
그런데 이들은 정말 부녀지간이었을까? 아니면 그들은 아닌 걸 알면서도 서로를 속이고 있는 걸까? 영화는 몇 가지 단서를 제시하기는 하지만, 명확한 답을 해주지는 않는다. 팡호청의 관심은 이들이 부녀인지, 연인인지의 사실관계를 따지는 데 있는 것 같지 않다. 근친상간을 떠올리게 하는 극단적 소재는 낯선 두 타인이 소통을 통해 과거의 상처를
뒷골목의 감각적인 풍경, <이사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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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될 기회는 천년에 단 한번 찾아온다. 가족을 사랑하지만 너무나도 어수룩한 아버지(주현), 어딘가 정신이 나간 듯 과격하고 정신없는 아들(하정우), 항상 발정난 상태로 남자들만 호시탐탐 노리는 첫째딸(박시연), 예쁜 아이의 얼굴을 둘러썼지만 의심스러운 행동이 잦은 막내딸(고주연). 천년째 되는 날 인간의 간을 먹고 완벽한 인간으로 변신하기를 꿈꾸는 구미호 가족은 인간을 끌어들이기 위해 서커스장을 개업한다. 그러나 피와 살점이 튀는 사지절단쇼가 군중을 끌어들일 리 만무하다. 다른 방도를 찾아 헤매던 가족에게 여자들의 몰래카메라를 찍어서 팔아먹는 사기꾼 기동(박준규)이 우연히 흘러들어온다. 첫째딸과 합방을 한 기동은 곧 이들 가족이 구미호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변신장면을 카메라로 몰래 찍어 한몫 챙길 궁리를 한다. 이제 구미호 가족은 기동의 제안으로 서커스단 모집 공모를 내 싱싱한 간을 가진 인간들을 끌어들이려 한다.
<구미호가족>은 익숙한 구미호 설화를 뮤지컬과
충무로의 뮤지컬 장르 도전, <구미호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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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인구성장률이 경제성장률을 앞질러 국가적으로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고 외치던 그때, 충북 정선군 금내면 용두리에 가족계획요원 박현주(김정은)가 찾아온다. 그녀는 전국 1위를 자랑하는 이곳의 출산율을 낮춰야 할 임무를 띠었다. 그러나 마을 유지인 강 이장(변희봉)을 비롯해 보수적인 주민들은 반감부터 나타낸다. 네 아이를 힘겹게 부양하는 변석구(이범수)만이 마음을 열고 그녀를 돕기 시작한다.
<잘살아보세>는 한때 유행처럼 복고풍을 지향하던 한국영화가 간과했던 시절로부터 새로운 이야깃거리를 풀어놓는다. 국가주도의 경제개발이 속행되고 이른바 ‘선진의식’ 없는 국민들을 대상으로 집단 계몽이 이뤄지던 시대. 도시와의 격차가 무한대로 커지는 가운데 저개발국가의 낙후된 풍경이 전부였던 농촌을 배경으로, 이 영화는 인정으로 뭉친 가난한 공동체이자 봉건적 계급문화의 잔재로 불평등과 불합리에 눌려 살던 서민들의 삶을 입체적으로 접근하려는 의욕을 초반부에 드
가난한 시절에 대한 의미없는 돌이킴, <잘살아보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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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나이로 태어났으면 까짓 거 악셀 한번 밟아봐야 되는 것 아닙니까? 인생도 예술로 한번 살아보고.” 한때 평범하게 가구공장에서 일하던 고니(조승우). 이제 전설의 타짜 평경장(백윤식)에게 사사받은 손기술 좋은 노름꾼이 되어 있다. 도박판에서 홀라당 까먹은 누나의 이혼 위자료를 되찾고, 자신의 삶을 어그러뜨린 박무석 일당에게 복수하는 데도 성공하지만, 고니는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아니, 멈출 수 없다. 더이상 노름에 손대지 말라는 평경장의 경고를 뒤로하고 고니는 고광렬(유해진)과 함께 정 마담(김혜수)을 따른다. 목숨까지 내걸고 화투패를 쪼며 인생을 태우는 타짜들의 세계에서 고니는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타짜>의 승부수는 캐릭터다. 내러티브 흐름에 다소 걸림돌이 된다고 해도, 영화는 등장인물들에 대한 애정 표현을 멈추지 않는다. 단적으로 원작의 장점을 극대화한 영화의 형식이 그걸 보여준다. 1장 ‘낯선 자를 조심해라’를 시작으로 박무석, 평경장, 정 마담, 고광
‘타짜’들의 허기진 욕망에 관한 보고서, <타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