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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가 맘에 들면 B가 문제고, B가 해결되면 C가 불안하다. 영화를 찍기 위한 최적의 조건을 충족시켜주는 세트와 달리 100% 완벽한 로케이션을 찾아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정작 촬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 장소를 찾기까지의 모든 어려움은 무의미해져버린다. 통제 불가능한 모든 것들이 상시적으로 잠복해 있기에 로케이션 촬영은 스탭들에게 각자의 한계와 능력을 시험받는 계기가 되게 마련. 그러나 힘든 도전일수록 성취한 뒤의 기쁨도 크다. 각 부문 스탭들에게 자신이 기억하는 악몽의 촬영장소와 이를 극복한 후일담을 청해 들었다. 한여름의 하수구에서 한겨울의 유원지까지, 가장 자연스러운 화면 속에 감춰져 있어 더욱 의미심장한 눈물의 로케이션 이야기.
촬영: “세트가 아닌 실제 장소엔 큰 제약이 따르게 마련”
한강의 하수구/ <괴물>
-김형구(<비트> <아름다운 시절> <봄날은 간다> <역도산> <극장전> 등)
한국영화 로케이션 대백과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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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들 때까지, 도전 또 도전
<취화선> <천년학>의 임권택 감독
그의 인물들은 떠돌이 운명을 지녔다. 그와 함께해온 스탭들 또한 다르지 않다. 촬영이 진행되는 동안 스탭들은 ‘유랑’을 각오해야 한다. <취화선>에서 오원 장승업이 정처없이 떠도는 장면. 모든 스탭들이 강원도에서 전라도까지 버스로 이동하며 장승업의 궤적을 만들어갔다. 눈감고 상상해보라. “아, 여기야”라는 감독의 낮은 탄성. 기다렸다는 듯 모든 스탭들이 버스에서 내려 촬영 준비를 서두르는 풍경을. <취화선>뿐만이 아니다. <천년학> 제작진 또한 9월부터 또 한 차례의 유랑을 계획하고 있다. “세트를 짓더라도 대개 10%밖에 안 찍는다.” 한 스탭의 말이다. ‘남도화첩’이라 불러도 좋을 법한 영화 속 가경(佳景)들은 발품 팔아 찾은 실경(實景)들이 거개다. 지치고 꺼릴 법도 하건만 스탭들은 감독의 이런 스타일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오랫동안 감독을 도운 한 스탭
한국영화 로케이션 대백과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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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예술종합학교 뒤편 골목은 일단 유보
다음 확인헌팅 장소는 한국예술종합학교 뒤편 골목에 있다는 반장 집. 앞차를 놓쳐 조금 늦게 도착했는데, 스탭들은 곧장 이동 분위기다. 사진으로 본 이미지가 나쁘지 않았고, 밤 촬영이라 무난할 것 같았는데, 실제 보니 너무 낡았단다. 퇴짜 이유는 또 있다. 김동천 촬영감독은 “배우들의 동선이 확보가 안 되는데다가 반장 집 앞 장면은 비가 내려야 하는데 강우기 설치하는 것도 만만찮아 보이네요”라고 한다. 여기저기서 터져나오는 불만을 접수한 김효정 제작실장이 “여기가 사실 제 출퇴근길”이라며 평소 눈여겨봐뒀다는 골목길을 보여주겠다고 나선다. 길잡이를 자청한 김효정 제작실장의 걸음이 빨라진다. 뒤에서 누군가가 목소리를 높인다. “실장님, 너무 초조해하지 마세요!” “제 성격 알잖아요. 초조해하는 것하곤 거리가 먼데….” 응원과 위안의 대화가 오가지만, 점점 스탭들의 보폭도 빨라진다.
“대문이 하나였으면, 담이 좀 낮았으면, 중산층 정도의 집이었으
한국영화 로케이션 대백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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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허가를 받지 못해서 도둑촬영을 했다. 한국과 중국의 축구경기였는데 우여곡절 끝에 얻은 방송사 조끼를 껴입고서 카메라를 반입하는 해프닝을 벌였다.”(<쉬리>) “약속이 되어 있던 나이트클럽이 문을 안 열어주는 바람에 결국 촬영을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비트>) “섭외를 위해 주인에게 ‘젊은 놈 하나 살려주십시오’라는 눈물로 쓴 장문의 편지를 보내야 했다.”(<8월의 크리스마스>) 불과 몇년 전 일들이다. 그때, 한국영화 로케이션 공식은 저지르고 보는 무데뽀였다. 감독이 점찍은 공간이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촬영허가를 따내야 했고, 틀어지면 불법을 저질러서라도 촬영을 강행해야 했다. “제작부 막내 때 스탭들이 식사할 식당 잡아놓고 난 다음에 하는 일이 다음날 촬영 장소 섭외였다. 지금처럼 감독과 스탭들이 함께 사전 헌팅 회의를 하고 로케이션 계획을 미리 짜는 것도 불과 얼마되지 않는다.” 싸이더스FNH 윤상오 이사의 말처럼, 지난 몇년 동안
한국영화 로케이션 대백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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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다 본 첫 느낌은, 한마디로, ‘뜨악했다’. 말 그대로 <시간>은 ‘선뜻 끌리지 않는’ 또는 ‘미덥지 못한’ 김기덕의 영화였다. 다시 말하자면, <시간>은 매우 ‘낯선’ 김기덕의 영화였다. <시간>의 영화적 공간은, 그동안 익숙해져버린 전형적인 ‘김기덕의 공간’이 아니었다. 그 공간은 <악어>의 ‘다리 밑’과 같은 도시 주변부적 삶의 치열한 생존의 공간도, <수취인불명>의 기지촌과 같은 역사적 공간도, <섬>의 ‘저수지’와 같은 상징화된 우화적 공간도 아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기대 또는 예상과 달리 너무나 대사가 많은 ‘수다’스러운 영화였다. <시간>의 공간은, 전형적인 홍상수적 공간에 가까워 보였다. 그 공간과 김기덕의 ‘유치한 대사’와의 만남은, 왠지 모르게 낯설고, 어색해 보였다.
새로운 공간에서도 침묵을 지킬 수 있을까
나는, 이제까지 이 글을 과거 시제로 써왔다.
김기덕의 <시간> 4인 비평 [4] - 변성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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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먼저 두 가지 점에서 흥미를 끌었다. 제목에서 드러나듯 영화는 최근의 문제적인 감독들이 즐겨 다루는 ‘시간’의 모티브로 출발한다. 그 시간이 선형적인 진행형이 되지 않으리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시간>은 시간의 종착점과 출발점이 동일한, 순환적인 시간개념을 다루고 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에서 보여줬던 시간의 순환성에 대한 또 다른 사유의 결과인데, 이번에는 순환의 구조 속에 동일한 인물이 배치돼 있다. 다시 말해, 시간의 시작과 끝에 만날 수 없는 같은 사람이 동시에 등장한다. 그런데도 비현실적인 인물배치가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허구 속에서 매듭지어 있다. 아마 우리 영화에서 시간에 관한 사유의 소재를 이만큼이라도 제공한 작품은 드물 것이다.
익숙한 소재, 희미한 사유
이런 ‘새로운’ 시간개념에 들어 있는 주내용도 문제적인 감독들이 최근에 자주 다루는 정체성의 분열에 관한 것이다.
김기덕의 <시간> 4인 비평 [3] - 한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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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존재와 관계를 변화시킨다. 그러나 존재는 어떻게 동일성을 유지하는가? 변화하는 건 무엇이고, 불변하는 건 무엇인가? 자기동일성을 유지하면서 관계의 새로움을 꾀하는 것은 (불)가능한가? 시간은 흐르는 것인가, 존재하는 것인가? <시간>은 철학적 난제들로 가득하다. 물론 답도 있다. 그 답은 변증법적이거나 불교적이거나 들뢰즈적이다(가장 자신있는 키워드를 골라보시라). 어쨌든 <시간>의 세계관은 안티-플라토니즘적이다.
1. 세희와 새희, 그녀는 하나인가 둘인가
그녀는 지우와의 관계(R)를 새롭게 하고자, 세희의 얼굴을 버리고 새희(New희)가 된다. 그러나 그녀가 얻은 것은 ‘신선해진 관계’(NewR=New희&지우)가 아니다. 그는 세희와 열렬히 사랑했던 당시의 지우가 아니라 세희에게 실연당한 지우, 즉 지우^이다. 따라서 관계는 새희&지우^=R^이 된다. R^은 그녀가 바랬던 NewR과 다르다. 그녀는 지우^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과거의 연
김기덕의 <시간> 4인 비평 [2] - 황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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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덕 감독의 신작 <시간>이 드디어 8월24일 개봉한다. 그동안 개봉 여부에 대한 논란도 많았지만, 어떤 식으로든 극장에서 만난 건 환영할 만한 일이다. 이제 문제는 그 다음이다. 김기덕 감독은 이 영화가 한국의 극장에서 개봉될 마지막 영화일지도 모른다는 뉘앙스를 남겼다. 더불어, 이 영화가 “20만명이라도 들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간의 흥행실적이나 배급규모로 볼 때 상황이 좋지는 않다. 과연 우리는 김기덕 영화를 다시는 한국의 극장에서 볼 수 없게 될 것인가? 황진미, 한창호, 변성찬, 남다은 네명의 평론가가 영화평을 보내왔다. 응원이든 비판이든 <시간>은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를 많이 남기는 흔치않은 영화다. 4인4색 영화평을 통해 <시간>이 던지는 철학적, 영화적 질문이 무엇인지 살펴보자.
죽음만 남을 때까지 계속되는 반복
고백하자면, 나는 김기덕의 영화를 진심으로 좋아해본 적이 없다. 한때는 그가 여성을 다루는 방식에 도무지
김기덕의 <시간> 4인 비평 [1] - 남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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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누구랑 비슷하다는 느낌에서 시작했다”
홍상수 감독의 인터뷰를 흥미있게 읽을 수 있는 방법은 행간읽기다. 그는 아주 구체적인 것에만 답할 수 있거나, 아니면 어떤 큰 덩어리의 전체 생김새를 상대방에게 이해시키기 위해 애쓴다. 처음 듣는 사람은 좀 낯설 수도 있다. 하지만 그의 대답은 언제나 어떤 문제를 가까이서 집요하게 헤집어본 경험이 있거나, 무엇이든지 자기 식대로 한 걸음 비껴서서 조망해보려고 노력해본 사람들에게 무릎을 칠 만한 구절이 많다. 그의 대답을 상기하며 영화를 상상하는 게 필요하다. 이게 홍상수식 어법을 귀담아듣는 포인트일 수 있겠다. 개봉 전 인터뷰임을 감안하여 주로 현장 연출을 중심으로 묻고 답했다. 모르는 건 모르는 대로 하자며 시작했지만, 진심으로 아는 건 모두 말해주었다.
-어떤 상황이나 단상에서 시작된 영화인가. <해변의 여인>에 관해서는 처음으로 나가는 인터뷰니, 상투적이지만 이 질문으로 시작해보자.
=보통 몇 가지가 섞이는데, 처
홍상수 감독의 신작 <해변의 여인> 촬영현장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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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의 신작 <해변의 여인>이 8월31일 개봉한다. 홍상수의 7번째 영화다. <씨네21>은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극장전>에 이어 그의 영화현장 취재기를 세 번째 허락받았다. 게다가 이번에는 길목마다 놓인 꽤나 흥미로운 장면을 보는 행운도 얻었다. 서해안 신두리해수욕장에서 벌어지는 1남 2녀의 사랑, 아니 그렇게 말하고 나면 항상 부족한 홍상수식 영화 모험을 곁에서 보고 담아왔다. 홍상수의 현장은 조용하지만, 역동적이다. 독자들에게 그 느낌을 전하고 싶다. 보충하여, <해변의 여인>에 관한 감독의 인터뷰도 함께 실었다.
동해가 아니고 서해구나, 편견이 있었구나. <해변의 여인>의 현장을 찾아가며 그렇게 중얼거린다.
홍상수의 영화에서 그 남자(들)의 여행은 여자의 장소로 찾아가는 행위이거나, 그 장소에 가면 여자를 만나는 신기한 사건이거나, 그녀(들)의 흔적을 뒤따르게 되는 은연중의 탐문이다. 그러나 남자와
홍상수 감독의 신작 <해변의 여인> 촬영현장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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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일러가 있으니 유의해서 읽으십시오.
<각설탕>의 장르는 뭘까? 우선 스포츠영화는 아니다. 마칠인삼(馬七人三)의 경마에서 천둥의 경주역량이 ‘고무줄’ 처리되고, 기수의 기승술이나 조교사의 전략구상이 전무한 영화를 스포츠영화로 보긴 힘들다. 여성영화로 보기도 어렵다. 직업세계에서 벌어지는 성차별이 노골적으로 나오지만, 시은에게 쏟아지는 성차별이 다른 동료여성에겐 그다지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박해의 본질이 ‘주인공이기에 존재하는 역경’, 즉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 ‘캔디-콤플렉스’를 형성하기 위해 동원된 역경이라는 의혹이 강하게 들기 때문이다.
<각설탕>의 장르는 엔딩 크레딧의 사진들이 증명하듯 ‘인간과 동물간의 우정’을 그린 ‘(반려)동물영화’이다. 인간과 정을 나눈 동물이 죽는 슬픈 영화를 ‘동물 신파’로 정의한다면, 동화 <플란다스의 개> <집없는 아이>부터 <내사랑 토람이>(TV)나 <에이트 빌로우
천둥이는 정말 뛰고 싶었을까? <각설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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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로서, 그것도 한국의 건축가로서 나는 동시대의 예술가 및 창작인 중에서 봉준호 감독에게 상대적으로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첫 번째 이유는 그의 영화적 고향이 바로 ‘지금의 여기’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영화감독이건, 건축가건, 화가 혹은 조각가, 작곡가건, 창작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누구나 그 창작 세계의 근간을 이루는 고향 같은 것이 있다. 그 고향은 두고두고 그의 삶에 영향을 끼친다. 어떤 사람들은 여기는 여기인데 지금의 여기가 아닌 어떤 다른 시대의 여기를 꿈꾼다. 또 어떤 사람들은 지금은 지금인데 여기가 아닌 전혀 다른 곳의 지금에 관심이 있다. 물론 여기에도, 지금에도 관심이 없고 자기 머릿속에 존재하는 상상의 세계만을 추구하는 사람들 혹은 고향을 상실한 사람들 또한 존재한다.
봉준호의 고향은 ‘지금의 여기’
지금까지 발표된 대표작 세편, 즉 <플란다스의 개> <살인의 추억> 그리고 <괴물>을 통해
한강의 재해석, <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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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호 이 지면에 실린 정성일의 <괴물>평은 ‘그러므로 나는 이 글을 여기서 멈춘다. (하지만…)’으로 끝맺고 있다. 다른 이의, 아마도 다른 의견을 초대한다는 뜻일 것이다. 그는 사적으로도 전영객잔의 다른 두 필자가 <괴물>에 대해 쓰기를 몇 차례나 권했다. 내키지 않는 일이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썼고 게다가 정성일이 150매 분량으로 쓴 영화에 대해 같은 지면에 곧이어 쓴다는 건 여러모로 좋은 소리 듣기 힘든 일이다.
결국 쓰게 된 건, <괴물>을 두 번째 봤을 때 첫인상과 좀 달랐기 때문이다. <괴물>은 훨씬 복잡하고 불균질한 영화였다. 한마디쯤 더 붙여도 좋겠다고 생각하게 됐다. 나는 정성일의 대의에 동의한다. 이 글은 일종의 첨언이다. 나는 그와 같은 의문에서 시작해 얼마간 다른 경로를 거쳐서 몇 가지 의견을 첨부하려 한다. 그리고 <괴물>을 새로운 영웅의 도착이라고 말한 3주 전 이 지면에서의 내 결론을 보충하려
끝까지 둔해빠진 새끼들은 누구인가? <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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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음악이 흐르는 스튜디오. 초등학교 2학년 여자아이가 할아버지를 떠올리며 울고 있다. 영문을 모른 채 눈물을 흘리던 소녀의 사진은 서태지가 부른 <Take Five>의 포스터가 됐다. 8년이 흐른 지금 신세경은 “그때는 친구 생일파티에 빠지는 바람에 햄버거를 못 먹은 일만 아쉬워하던 아이였다”며 쑥스러워했다. 서태지 앨범의 표지모델이 된 뒤 신세경에게는 드라마 출연, 화장품 광고 모델, 심지어 음반 취입 제안이 봇물처럼 쏟아졌다. 하지만 그녀는 오랫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얼마 전 모 패션지에서 영화배우 10명을 소재로 한 화보를 촬영했을 때, 그를 최연소 배우로 추천한 김지운 감독이 “<장화, 홍련> 때는 연락이 닿지 않아 같이 작업할 수 없었다”고 말했듯이 신세경은 서두르지 않았다. “소년소녀 문학전집을 방바닥에 차곡차곡 쌓아올리며 읽는 것을 좋아하던” 신세경이 다시 얼굴을 드러낸 영화는 <어린 신부>였다. 문근영의 친구 혜원으로 출연해
작지만 당찬 목소리, <신데렐라>의 신세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