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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인의 사내가 질주하오, 길은 황야가 적당하오
<달콤한 인생>을 완성한 김지운 감독은 프랑스 칸을 시작으로 영화제를 순례하며 여섯 대륙을 주유했다. 그리고 지금 그는 또 다른 여행의 아퀴를 짓는 중이다. 호러(<장화, 홍련> <메모리즈>), 코미디(<조용한 가족> <반칙왕>), 누아르(<달콤한 인생>), SF(<천상의 피조물>) 역을 거친 장르 역정의 종착지를 만주 웨스턴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가제)으로 작정한 것이다. 옴니버스 <인류멸망 보고서>의 에피소드인 <천상의 피조물>은 편집을 끝낸 상태고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의 시나리오는 80신 언저리까지 펜을 달렸다. <좋은 놈…>은 김지운 감독의 영화사 그림의 첫 작품이며 바른손 엔터테인먼트가 투자한다.
김지운 감독의 혈관에 광야의 바람이 든 것은 오래된 일이다. 여러 해 전
이명세·김지운·장준환의 신작 [2] - 김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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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의 슬프고 무서운 수수께끼를 찾아서
“내 영화 씹은 사람 중 한명이야.” 인터뷰를 하러 간 기자를 이명세 감독이 장난스럽게 소개한다. 기본적으로 애정을 갖고 있는 감독에게, 그것도 한국영화의 노련한 장인에게 그런 말을 듣고 진땀이 안 날 리가 없다. 순간 난처하다. 그런데 해놓고 오히려 재미있다는 듯 표정을 짓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보니 분명 여유가 있다. 마음이 좀 놓인다. 여유가 있다는 건 지난 평가에 개의치 않고 지금 자신의 상태에 자신이 있다는 뜻일 수 있기 때문이다.
2005년 9월8일 개봉한 <형사 Duelist>는 확연히 반응이 갈렸고 상업적으로는 예상보다 못한 수치에서 멈췄다. 그러나 자칭 21세기 신인감독 이명세는 거기에 붙잡혀 있지 않았고, 거의 정확히 1년 만에 그의 21세기 두 번째 영화를 준비 중이다. 제목은 <M>(<형사…>를 창립작으로 했던 그의 제작사 이름도 M프로덕션이다). 10월 중에 촬영에 들어가, 내년 2∼
이명세·김지운·장준환의 신작 [1] - 이명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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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로 향하는 서해안의 여인
다만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생각. 서해안에 가서 찍은 이 영화는 서울을 꼭짓점으로 한 다음 지정학적으로 남서쪽에 가서 진행되는 이야기인데도 그 세 사람이 도착해서 바다를 바라볼 때 이상하게 자꾸만 동해안에 가서 진행되는 것처럼 90도 상상선을 그은 다음 그들을 바라보고 왼쪽 45도에 카메라를 세운다. 그런데 <강원도의 힘>에서는 강원도의 바닷가에 가서 반대로 진행하였다. 지숙은 그녀의 두 친구와 함께 강원도 해변가에 간다. 짧은 신이지만 여기서 <해변의 여인>과 거의 동일한 장면이 나온다. 그녀들은 해변에 도착해서 바다를 본 다음 돌아서 모텔을 보는데 그 앞에 웬 말이 서 있다. 주인은 이 말 이름을 ‘주필이’라고 가르쳐주는데 지숙의 친구는 그 이름을 듣고 “주피야, 주피야, 넌 어쩌다 여기까지 왔니”라고 묻는다. 그런 다음 다시 그 세 사람은 해변가에 앉는다. 그런데 카메라는 구태여 그녀들을 마치 서해안에 온 것처럼, 그러니까
정성일의 가을 영화 산책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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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의 사연. 나는 간절하게 하소연하고 있었다. (후렴) 지금은 가을이니까. 영화는 내게 연애를 하자고 조르고 있었다. 그래서 책상에서 일어나 거리로 나오라고 속삭이고 있었다. 그렇다. 나는 너무 오래 책상에 앉아 있었다. 텔레비전이 보는 사람을 안방의 정주민으로 만든다면 영화는 우리로 하여금 거리를 쏘다니는 유목민으로 만든다. (들뢰즈가 아니라) 레지스 드브레가 한 말이다. 영화를 보러 달려가는 두근거리는 마음 혹은 보고 난 다음 지금 막 보고 나온 영화를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영화는 오가는 길이라는 사유의 시간 속에 있는 것이다. 나는 대부분 영화를 길에서 깨달았다. 나는 교실에서 영화를 배운 적이 없다. 또다시 하염없이 긴 글을 쓸까 지레 겁을 먹은 김혜리 기자는 일단 홍상수의 <해변의 여인>을 쓰지 않겠다는 약속에 안심을 했음이 분명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가까스로 허락받은 산책. 나는 인터넷을 종료하고 영화를 보기 위해 거리로 나갔다. (
정성일의 가을 영화 산책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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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통해 작년 최고의 독립영화들을 관람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됐다. 서울독립영화제가 10월 2일부터 11월 26일까지 서독제2005 수상작 온라인 상영회를 개최한다. 올해로 네번째를 맞이한 온라인 상영회는 무료 상영이며, 상영작들은 8주 동안 한국영상자료원과 서울독립영화제 홈페이지를 통해 만날 수 있다.
상영되는 작품은 총 12편으로 서독제의 전국순회상영회 목록과 유사하다. 2005년 서독제 대상 수상작 김태일, 카토 쿠미코 감독의 <안녕, 사요나라>, 최우수상 김종관 감독의 <낙원>, 우수상 이지상 감독의 <십우도 2- 견적 見蹟>, 신연식 감독의 <좋은 배우>, 코닥상 최지영 감독의 <산책>, 집행위원특별상 김선/김곡 감독의 <뇌절개술>, 관객상 양익준 감독의 <바라만 본다>, 영화진흥위원회 영문 자막 프린트 지원작 배성근 감독의 <공항가는 길>, 김아론 감독의 <온실>, 이종윤
서독제 2005 수상작, 온라인 상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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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짜1: 고니-조승우
“무조건 고니는 조승우였다. 물론 시나리오 완성할 때까지 말은 못했다. 다 쓰기 전까지 당신이랑 하고 싶다 말하는 편도 아니고. 그냥 <헤드윅> 공연 보러 가서 눈도장 찍었을 뿐이다. 슬쩍 흘리긴 했다. 쉴 때 집에서 뭐 하냐고 했더니 아무것도 안 한다고 해서 그럼 만화나 봐라, <타짜> 되게 재밌다고, 했다. 고니를 승우가 했으면 했던 건 원작 표현대로라면 ‘탈이 좋아서’였다. 저 순한 얼굴이 돌변해서 기를 뿜으면 어떨까. 그런 상상하면서 시나리오를 다 썼다. 또 하나는 <말아톤>의 조승우를 바꿔보고 싶었다. <후아유>의 부드럽고 온화한 이미지를 깨보고 싶었다. 첫 촬영하는데 승우는 자기는 화투도 못 친다면서 미스 캐스팅이라고 놀렸지만, 금방 적응하더라. 나중엔 뭘 특별히 주문할 것도 없었다. 그냥 여기선 인상 한번 써줘, 뭐 그런 식이었으니까. 촬영 끝나고 나서 백(윤식) 선생님이 그랬다. 아직도 승우 곁에 가면
최동훈의 <타짜>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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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캐릭터에 전념하고 싶었다
<타짜> 시사회 때 최동훈 감독은 탈진 직전이었을 것이다. 4개월 동안의 촬영을 끝낸 뒤에도 그는 후반작업에 매달리느라 숨돌릴 틈이 없었다. 시사회 이튿날 인터뷰 때도 컨디션은 마찬가지였다. 밀렸던 매체들과의 인터뷰를 밀린 숙제하듯 임하느라 파김치 상태였다. 밤 9시가 되어서야 얼굴을 마주한 최 감독은 “바람 좀 쐬고 시작하자”면서 행복한 피곤을 호소했다.
-촬영을 진행한 도시만 15곳이라 들었다. 스탭이나 배우나 다들 힘들었겠다.
=주인공들이 떠도니까. 광양에서 아침까지 찍고 밤새고 서울 올라와서 또 찍고. 그런 날이 많았다. <범죄의 재구성>은 널널하게 찍었는데, 그때보다 분량도 많고. 도박장면은 하루 14시간, 15시간씩 찍고 나면 배우들이고 스탭들이고 다들 탈진할 정도였다. 인사 대신 도박장면이 얼마나 남았죠 그랬었고. 내일 하루 쉰다고 하면 너무들 좋아했으니까. 5일 동안 일한 것은 까마득히 모르고.
-이태원에
최동훈의 <타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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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짜>가 드디어 패를 열어 보였다. 허영만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한 <타짜>는 <범죄의 재구성>으로 성공적인 데뷔전을 치른 최동훈 감독의 두 번째 작품. 조승우, 김혜수, 백윤식, 유해진, 김윤석 등 쟁쟁한 배우들이 함께 출연한다는 점에서 촬영 시작부터 화제를 모았다. 9월18일 서울 CGV용산에서 첫선을 보인 <타짜>는 로케이션 촬영이 많은 탓에 제작 기간이 다소 늦어졌고 결국 시사회 전날까지 믹싱 작업을 해야 했다. 서둘렀다고 허술한 만듦새의 영화일 것이라고 넘겨짚진 말 것. <범죄의 재구성>에 이어 또다시 범죄영화를 빌려와 인간들의 욕망 놀이를 들여다보는 최동훈 감독의 장기는 이번에도 여전히 흥미롭다. 능글맞고 노련한 배우들의 연기에 힘입어 캐릭터들이 빛나는 영화라는 게 시사회 직후의 중평. 데뷔작부터 함께 손발을 맞춰온 스탭들과의 협업이 볼 만한 비주얼을 만들어낸 것도 분명하다. 9월28일 개봉에 앞서 “장르영화를 즐길
최동훈의 <타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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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다리만 잘 건너뛰면 정말 긴 연휴다. 만약 이 긴 연휴가 사막 위의 오아시스처럼 반갑게 느껴진다면 당신에게 이 글은 무용하다. 이 글은 온갖 잡일에 시달려 몸과 마음이 시들어버린 ‘추석 노동자’, 누구는 해외로 떠나는데 고향조차 내려갈 수 없는 기막힌 사연의 주인공, 그리고 가족도 애인도 없이 추석 기분 낸답시고 홀로 전 부치고 앉아 있는 고독한 인간, 오직 이들을 위한 것이다. 청명한 가을, 남들 놀러갈 때, 어둠침침한 방구석에서 텔레비전이나 껴안고 있다고 자학하지 말자. 텔레비전, 맥주, 그리고 이미 본 영화라도 처음 보듯 즐길 수 있는 자세만 있다면 당신도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어야 한다). 아무리 <두사부일체>나 <몽정기>처럼 재탕, 삼탕, 백탕 된 영화들이 집에서 텔레비전만 보고 있는 당신의 감수성을 무시하더라도, 텔레비전을 끄지 말고 차라리 영화가 끝날 때까지 온갖 꼬투리를 잡아 신나게 저주를 퍼붓자. 다행히 올해는 비교적 싱싱한 최근작들
추석 종합선물 [4] - TV영화 추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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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은 가족의 시간이다. 이른바 민족 대이동이라고 불리는 그 엄청난 교통난을 겪는 것 자체가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기 위해서 벌어지는 일이고, 연휴를 만들어주는 것도 바쁜 일상에 한번쯤 시간내서 가족끼리 한번 모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풍요로운 계절, 풍요로운 마음으로 가득한 채로 가족이 모여들어 모두들 행복한 웃음을 짓는 따듯한 광경…. 뭐, 그렇게 끝나면 좋겠지만, 이야기는 계속된다. 모처럼 모였고 반갑기도 하지만, 같이 모여도 뭐 별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반가움은 한때, 무료함 내지 심한 경우 껄끄러움은 나머지 만남 내내. 게다가 만약 여성이라면 그 끝없는 가사노동은 또 어떤가. 여하튼 어서 끝나고 나머지 연휴기간 동안은 난데없던 대가족의 향연에서 벗어나 푸욱 쉬고 싶다는 마음이 앞서도 그렇게 양심에 걸릴 일이 아니다.
바로 그럴 때, 만화책은 좋은 동반자다. 집에서 편안히 쉬면서 볼 수 있고, 은둔해버리지 않더라도 서로 귀찮게 하지 않고 각자 혼자 몰두하며 볼 수 있다
추석 종합선물 [3] - 좌충우돌 가족 만화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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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지곡에 대한 추억은 아무래도 ‘1970∼80년대’와 연관된다. 1990년대 이후는 금지곡의 ‘파장’과 ‘논란’이 아무래도 그때만 못하기 때문. 그렇다면 7080? 이미 상업화되어버린 이 용어를 쓰기는 찜찜하지만, 어쨌거나 그 시대로 돌아가기는 해야 할 것 같다. 단, “그때 정말 황당했어요”라는 말 이상이 필요할 텐데, 이상하게도 이때 이야기를 하다보면 그렇게 되어버린다. 각설하고.
비틀스, <A Day in the Life> in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1967)
‘록음악 최고의 명반’이라고 평가받는 비틀스 음반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의 한국 발매반은 가히 만신창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최초의 ‘컨셉 앨범’이라고 평가받는 이 음반에서 정작 그 ‘컨셉’을 이루는 두곡이 빠져 있다는 사실. <A Day in the Life>와 <L
추석 종합선물 [2] - 금지곡 명반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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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재지이> 포송령 지음 | 김혜경 옮김 | 민음사 펴냄
<세계 호러 걸작선> 아서 코넌 도일 외 지음 | 정진영 옮김 | 책세상 펴냄
6권의 묵직한 하드커버로 출간된 포송령의 <요재지이>에 실린 모든 이야기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어떤 남자가 우연히 예쁜 여자를 만나서 연애도 하고 섹스도 했는데, 알고 봤더니 귀신(또는 여우)이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남자는 여자랑 계속 살고 여자가 겪는 문제도 해결하고 심지어 애까지 낳아 편하게 산다. 가끔 그 남자들은 여자들을 한명 이상 데리고 같이 살기도 하는데, 여자들이 질투하거나 싸움하는 꼴을 못 봤다.
정말 이렇게 단순하지는 않다. 하지만 태반이 이런 이야기이고 6권을 다 끝내놓고 보면 개별 이야기들보다는 이렇게 뭉쳐진 막연한 인상이 더 잘 기억된다. 다들 칭찬하는 포송령의 이야기꾼의 상상력은 비교적 제한된 곳에서 빛을 발한다. 절세미인 귀신과 연애하는 남자 이야기 말이다. 결국 <
추석 종합선물 [1] - 단편집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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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마시는 커피가 최고야”라고 말하고 만다. 열살 때 훔쳐 피운 첫 담배를 기억하는 자무시는 담배와 커피없는 삶이 얼마나 괴로운 것인지 아는 사람이다. 자무시가 1980년대에 시작한 <커피와 담배> 연작은 보지 못한 영화광에게 한때 전설로 통하던 영화였으니, 그가 기발표작을 손보고 새로 찍은 장면을 더해 장편영화 <커피와 담배>를 완성한 건 당연한 결과다. 잘난 체하는 찌질이들이 이름을 먼저 대고 싶어 바쁠 정도로 유명인들이 줄줄이 나오는 <커피와 담배>는 일견 안전한 소품이다. 그러나 영화를 지탱하는 건 바탕에 깔린 격자무늬의 견고함이며, 마지막 에피소드의 정적은 <커피와 담배>가 얕보기 힘든 상대란 걸 증명한다. 건강에 나쁘다는 카페인과 니코틴을 절친한 삶의 동반자로 대하는 <커피와 담배>는 금연을 결심한 사람에게 악마에 버금가는 작품이다. 조심하길. 장편 작업을 위해 손을 보긴 했으나 에피소드간 화질의 편차는 어쩔 수 없는
커피와 담배가 없는 삶은 괴로워, <커피와 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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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비디오와 DVD 중 어느 매체를 선택할 건지 묻자, 다른 남자는 그릇에는 관심이 없다고 답한다. 마르코 벨로키오의 신작 <웨딩 디렉터>에 나오는 한 장면은 홈비디오의 오랜 화두를 떠올리게 한다. 때마침 그 화두를 다시 꺼내게 만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컬렉션> DVD가 출시됐는데, 그 시기가 공교롭게도 차세대 홈비디오 매체 중 하나인 블루레이 디스크가 첫 출시될 즈음이다. 상대적으로 열악한 화질의 이 DVD가 때깔 고운 신작을 고스란히 수록한 블루레이 디스크와 여러모로 비교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뒤늦게 출시된 이 세트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여기 수록된 이른바 ‘지그재그 삼부작’의 경우 매끄러운 화질로 완전하게 수록된 DVD는 아직껏 세계 어디에도 없으며, 특히 앞 두편의 화질을 보자면 제작사가 마스터 관리를 제대로 하고 있는지조차 의심스럽다. 그러므로 이들 작품이 조만간 차세대 매체로 출시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자, 이제 당신은 영화 자체가 소
지그재그 삼부작의 체리향기,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컬렉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