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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기록하는 기억장치 칩이 머릿속에 내장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된다면 과연 우리는 어떤 행동을 할까? 너무나 끔찍해서 자살이라도 할까 아니면 좋은 기록만 남기려 개과천선 노력할까? <파이널 컷>은 이런 질문과 함께 시작되는 SF영화다. 시간적 배경은 명확하지 않은 미래사회, 한 사람의 평생 기억을 담는 ‘조이칩’은 아이의 출생과 함께 머리에 이식된다. 비용은 비싸지만 아이를 위해 기꺼이 구매하는 부모가 많아서 인구 20명 중 한명꼴로 칩이 이식되었다. 칩은 죽은 다음에야 제거되는데, 보통 1시간40분 분량의 영상물로 편집되어 장례식장에서 상영된다. 영화는 여기서 좀더 심화된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다.
앨런(로빈 윌리엄스)은 조이칩 기록을 편집하는 ‘커터’이다. 영상을 보면서 고인을 추도하는 장례의식 ‘리메모리’를 위해선 당연히 아름다운 기억만이 선택된다. 앨런은 그 방면에 이름난 숙련된 커터로, 자신의 일은 죽은 자가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을 위한
가까운 미래에 실현될지도 모르는 이야기, <파이널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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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빠져나간 삶을 생각하는 일은 누구에게나 공포에 가까운 슬픔을 불러일으킨다. 특히 현재 나의 삶에 사랑하는 이가 있다면 그 슬픔은 미안함과 걱정을 동반하게 된다. 이자벨 코이셋의 영화 <나 없는 내 인생>은 앤(사라 폴리)이라는 스물세살의 젊은 여성이 자궁암 말기 선고를 받고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그녀에게 남은 시간은 고작해야 두달에서 석달. 앤에게 청춘은 17살에 너바나의 마지막 콘서트에서 만나 사랑에 빠진 남편과 그와 함께 낳은 두 아이로 인해 즐기는 것이기보다는 버텨내는 것에 가까웠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에게 남겨진 짧은 시간 동안 진정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해보기로 마음먹는다. 그녀는 예고된 죽음을 비밀에 부치고, ‘죽기 전에 하고 싶은 10가지’ 리스트를 작성한 뒤 하나하나 실천해간다. 아이들에게 생일 메시지를 녹음해둠으로써 남편에게는 새로운 아내가 될 여자를 소개해 줌으로써 미래를 준비해둔다. 그리고 헤어진 여인을 잊지 못해 황폐한 집에 살던
눈물없이 볼 수 있는 시한부 인생, <나 없는 내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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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실존했던 역사적 사건을 영화화하는 과정에는 필연적으로 현재의 관점이 그 사건의 일부로 스며들 수밖에 없다. 이는 역사영화가 필연적으로 시대착오(anachronism)의 성격을 지닐 수밖에 없는 한계이지만, 이러한 시대착오성이야말로 역사영화가 존립할 수 있는 토대이기도 하다. 미국 정치사에서 영화적 소재를 즐겨 발굴했던 올리버 스톤이 2001년 9월11일 뉴욕의 월드 트레이드 센터 폭파사건을 영화화한 <월드 트레이드 센터> 역시 마찬가지이다. 올리버 스톤이 이 작품을 두고 ‘9·11 사건’에 대한 비정치적 접근이라고 제아무리 주장한다 할지라도, 우리는 이러한 그의 주장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이는 정치적 사건의 비정치적 접근이야말로 가장 정치적인 발언으로 이어진다는 의미에서뿐만 아니라, 이러한 비정치적 접근이라는 태도 속에서 9·11이라는 역사의 외상(trauma)에 대해 현재의 미국이 어떠한 봉합을 원하는지에 대한 시각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는 의미에
미국의 무력함을 치유하기 위한 처방전, <월드 트레이드 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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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경비대, 할리우드의 새로운 영웅으로 등장하다
미국은 영웅을 좋아한다. 미국만큼 영웅이 흔한 곳도 없다. 서부영화의 고독한 총잡이부터 슈퍼맨, 스파이더 맨 그리고 뉴욕 소방관에 이르기까지 ‘영웅적’ 존재들이 사랑과 존경을 받는다. 평범한 개인도 고결하고 뛰어난 ‘신화적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미국적 의미의 영웅이다. 개인의 삶을 결정짓는 사회적 시스템의 영향력은 종종 무시된다. ‘영웅 만들기’의 내러티브는 미디어뿐 아니라 일상에도 깊숙이 침투해 있다. 한때 영웅들은 공권력이나 초능력을 등에 업고 나타났다. 9·11 이후 영웅들은 일상에서 ‘발견’된다. 공공서비스를 담당하는 소방관이나 의료진의 활약상은 이미 스크린과 텔레비전을 점령했다. 더이상 남아 있는 영웅이 있을까 싶지만 할리우드는 기어이 새로운 영웅을 찾아냈다.
소박하지만 철저하게 미국적인 영웅 신화
이번에는 ‘해안경비대’(Coast Guard)다.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보통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현지보고] <가디언> LA 시사회 및 주연배우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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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의 아시아영화 이끌 한·중·일 영화학도들을 만나다
도쿄에서 전철로 40분 거리에 위치한 요코하마는 인천이나 부산에 비할 만한 일본 제1의 항구도시다. 1859년 개항 당시, 외국 문물을 받아들이는 관문이었던 오래된 도시는 일본 최대의 차이나타운이며 유난히 아담한 디자인을 자랑하는 건물들로 관광객의 눈길을 잡아끈다. 세계화를 넘어 획일화가 판을 치고, 거대 자본을 등에 업은 영화만이 국경을 넘나들며 돈을 끌어모으는 21세기. 도시의 곳곳마다 타 문물을 향한 관대함이 느껴지는 아늑하고 쾌적한 요코하마는 동아시아 3개국의 학생영화를 소개하는 영화제를 위한 장소로는 최적인 셈이다.
환경운동가 에노키다 류지가 이끌고 있는 요코하마 프로젝트 그룹이 기획하고, 요코하마시가 후원하는 요코하마학생영화제는 올해로 5회째를 맞이했다. 극장에서 개봉할 수 없는 새로운 영화를 소개하는 지역영화 상영회로 시작해 5년이 흐른 올해. 과거 이마무라 쇼헤이 영화학교로 유명했고 현재는 일본 영화평론계의
[현지보고] 9월22일부터 24일까지 열린 제5회 요코하마학생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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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매력이 뭐냐고 묻는다면 사람마다 다르게 답할 것이다. 우주 전쟁이나 괴물처럼 상상 속 존재를 눈앞에 보여주기 위한 것일 수도, 압도적인 스펙터클을 제공하는 것일 수도,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짜릿한 긴장감을 주는 것일 수도, 인생의 극적 순간을 압축해 경험하게 만드는 것일 수도 있다. 이런 다양한 매력 가운데 시간을 거슬러 과거를 재현할 수 있다는 점을 빼놓을 수 없다. 영화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자유롭게 왕래하면서 순간을 영원으로, 영원을 순간으로 만든다. 영화를 시간의 예술이라 칭하는 것도 시간을 다루는 데 있어서만큼은 영화가 미술, 사진, 음악, 연극 등 다른 예술 장르보다 우월하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가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는 데 있어서 가장 일반적인 형식은 플래시백이다. 회상장면을 통해 관객은 인물의 심리에 동화되거나 흩어진 퍼즐의 조각을 맞춘다. 쉽고 효과가 확실한 방법이라 플래시백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자주 등장한다. 너무 흔히 볼 수 있어서 그만큼 식상한 기
[편집장이 독자에게] 플래시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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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1일 국내 첫 출시, 대용량과 고화질 무기로 시장 공략
블루레이가 왔다. 소니픽쳐스홈엔터테인먼트(이하 소니홈)는 9월1일, 블루레이 타이틀을 국내 최초로 출시했다. 지난 6월 처음으로 블루레이 타이틀을 발매한 미국에 이어 두 번째다. 삼성전자는 미국에서 타이틀 출시 직후 세계 최초로 블루레이 플레이어 BD-P1000을 선보였고, 8월22일에는 국내에도 출시했다. 소니홈은 이번에 <울트라 바이올렛> <트리플X> <스텔스> <특수기동대 S.W.A.T.> <Mr.히치: 당신을 위한 데이트 코치> <첫키스만 50번째> <블루 스톰> 등 총 7개 타이틀을 발매했고, 2007년 상반기에는 40종이 넘는 타이틀을 쏟아낼 예정이다.
DVD와 동일한 모양인 블루레이 디스크의 장점은 다양하다. 일반 DVD의 10배, 듀얼레이어를 감안해도 5배가 넘는 50GB의 용량. 기존 TV시리즈를 단 한장의 블루레이에 담을 수 있
일반 DVD는 가라, 차세대 블루레이 디스크가 왔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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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산 조명감독이 지난 9월28일 세상을 떠났다. 지병이었던 간경화로 지난해 간 이식수술을 받았으나 최근 병세가 악화됐고 결국 유명을 달리한 것이다. 향년 52살. 밴쿠버로 출국하려던 봉준호 감독이 9월28일 점심 강남성모병원에 마련된 빈소를 부랴부랴 방문했고, 영화 준비로 중국에 있던 김성수 감독과 조민환 나비픽처스 대표가 당일로 귀국했다. 연출부로 참여했던 <닥터 K> 촬영장에서 아버지뻘 되는 이강산 조명감독의 팔짱을 끼고 현장을 누볐다는 류승완 감독은 언론에 부고 소식을 알려왔다.
배우도 감독도 촬영감독도 아닌 그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여지껏 한국영화에서 본 적이 없었던 빛을 나열해야 한다. 강렬한 음영대비와 극단적인 색감(<비트>), 암울한 청춘의 공기를 드러내는 사실적인 무드(<태양은 없다>), 미세한 눈빛과 널찍한 채석장을 아우르는 빛의 컨트롤(<살인의 추억>) 등이 그것이다. 혹은 단편 <비명도시>부터 <괴물&
추모, <괴물> <살인의 추억> <비트>의 이강산 조명감독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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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도 단편영화 마니아.’ 관객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서려는 제4회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AISFF)의 슬로건이다. 나무, 꽃, 새, 물고기, 건물 등이 어우러진 포스터에서 드러나듯 AISFF는 경계를 뛰어넘는 발칙한 상상력을 반긴다. 올해는 아시아, 유럽, 미주뿐 아니라 키프로스, 루마니아, 보스니아를 비롯해 다양한 태생의 단편을 불러모은 점이 눈에 띈다. 11월9일부터 6일간 광화문 씨네큐브에서 상영될 AISFF 개막을 앞두고 한창 바쁜 사람들이 있다. AISFF의 프로그램을 총괄하는 이주연 프로그래머 역시 그중 하나다.
-어떻게 프로그래머 일을 시작하게 됐나.
=원래는 외국계 화장품 회사에 다녔다. 영화에 관심이 있어서 틈나는 대로 영화 관련 워크숍에 참여하다가 본격적으로 영화 공부를 하기 위해 미국 유학을 떠났다. 뉴욕에 머무르는 동안 여러 영화제에서 일했고 그것이 계기가 돼 AISFF의 프로그래머가 됐다.
-AISFF만이 지닌 장점을 몇 가지 꼽아달라.
=무엇보다
[스팟] 아시아국제단편영화제의 이주연 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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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콕, 위험하다? 니콜라스 케이지가 신속하게 방콕을 탈출했다. 타이에서 군사 쿠데타가 일어났다는 소식이 전해진 9월19일, 영화 촬영도 내팽개친 채 말이다. 당시 케이지는 방콕에서 홍콩 출신의 쌍둥이 감독 옥사이드 팡, 대니 팡(<디 아이>)이 연출하는 <방콕 데인저러스>를 촬영하고 있었다. 쿠데타 발발 소식을 전해 들은 케이지는 일말의 망설임없이 호텔로 돌아가 짐을 싼 뒤 개인 비행기에 올라탔다. 영화사쪽은 “정국이 빠르게 안정되고 있기 때문에 촬영에는 지장이 없을 것”이라고 밝혔지만 케이지가 다시 방콕에 가려고 할지는 의문이다.
니콜라스 케이지의 무책임한 방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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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오스카를 수상한 작곡가 말콤 아놀드가 84살의 나이로 눈을 감았다. 아놀드는 <콰이강의 다리>로 아카데미 음악상을 수상했으며 영화음악 132편, 교향곡 8편, 발레곡 7편, 오페라 2편를 작곡하는 등 왕성한 작품활동을 벌여왔다. 음악에 대한 기여로 1993년 기사 작위를 받기도 했지만 그의 일생은 평탄치 않았다. 심각한 우울증과 알코올 중독으로 몇 차례나 자살을 시도하는 등 굴곡 많은 삶을 살아온 것. 첼리스트인 줄리언 로이드 웨버는 “그는 행동거지가 나쁜 천재였다. 하지만 모차르트도 그렇지 않았나”라며 고인에 대한 조의를 표시했다.
영화의 음악친구 말콤 아놀드, 세상을 떠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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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파라치 때문에 죽을 뻔했어요~. 카메론 디아즈와 저스틴 팀벌레이크 커플이 자신들의 목숨을 위협했다는 이유로 LA경찰에 한 파파라치를 신고했다. 디아즈의 말에 따르면, 두 사람이 친구 집을 떠나려는 중 파파라치가 달려들었고, 항의하던 그들을 차로 밀어버리려 했다고. 하지만 파파라치쪽은 오히려 디아즈에게 화살을 돌렸다. 그가 자리를 떠나려던 파파라치의 차를 몸으로 막는 어이없는 상황을 연출했다는 것. 양쪽의 논쟁이 감정싸움으로 붉어지는 와중에 LA경찰은 사건 조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파파라치의 대담한 공격 혹은 스타 커플의 오버? 진실은 저 너머에~.
스타와 파파라치의 진실게임 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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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은 스크린을 타고?! 톰 크루즈가 데이비드 베컴의 일대기를 영화화한다. 현재 베컴 역에는 폴 베타니가, 베컴의 아내 빅토리아 역에는 케이티 홈즈가 내정되어 있는 상태. 베컴과 크루즈는 평소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경기마다 베컴이 귀빈석에 크루즈의 자리를 별도로 마련했을 정도. 얄궂게도 현재 두 사람은 각자 힘겨운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베컴은 시즌 개막 뒤 2경기째 벤치를 지키고 있고, 크루즈는 얼마 전 파라마운트로부터 일방적인 결별을 통보받으며 구설수에 휘말렸다. 위기의 두 남자에게 과연 이번 프로젝트가 부활의 발판이 될 수 있을지?
톰 크루즈, 데이비드 베컴 일대기 영화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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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22일 밤 한강 난지캠프장 인근 서울요트클럽에 차려진 <미녀는 괴로워>(제작 리얼라이즈 픽쳐스, KM컬쳐) 촬영장. 리허설이 벌어지고 있는 와중에 김용화 감독은 배우들의 연기 공간인 식탁 아래 쭈그려 앉아 있었다. 잠시 뒤 이날의 주인공이 등장하니 그는, 아니 그것은 하얀 말티스 강아지다. 이윽고 감독의 슛 사인이 떨어지자 주진모와 마주앉아 있던 김아중은 강아지를 보고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짓는다. 강아지는 김아중의 무릎 위로 폴짝 뛰어오르더니 마구 엉기기 시작한다. 저런저런, 강아지와 영혼이 ‘체인지’됐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할 무렵, 감독은 “컷”을 외친다.
<미녀는 괴로워>는 일본 작가 스즈키 유미코의 만화를 기본으로 하지만, 디테일은 상당히 다른 영화다. 엄청난 비만여성이 대대적인 성형수술을 마친 뒤 놀라운 미인이 된다는 설정은 똑같지만, 이후 남자친구를 사귀면서 벌어지는 소동극에 집중하는 원작 만화와 달리 영화는 주인공으로 하여금 ‘내가 원하는 것을
사랑 고백은 몸무게를 타고~ <미녀는 괴로워> 촬영현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