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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라는 분야의 창조성 때문일까. 충무로에는 유독 눈길을 끄는 이름들이 많다. 청어람, 백두대간, 신씨네, 필름있수다, 오락실, 래핑보아, 유쾌한 확성기, 올댓시네마, 스폰지 등. 어떤 명칭은 금방 알 것 같지만 어떤 명칭은 도통 짐작이 가지 않는다. 하긴 그 의미를 알아도 놀랍기는 마찬가지다. 가벼운 외양과 달리 제법 진중한 풀이를 새긴 것도, 큰 포부를 담았으리라 짐작했건만 의외로 소박한 것도 있다. 하지만 어떤 이름이든 고심해서 고른 것인 만큼 지향하는 영화에 대한 뚜렷한 가치관을 보여주지 않을까. 가치관이라는 표현이 너무 거창하다면, 적어도 영화사를 세우며 마음에 품었던 소박한 바람이나 취향 정도는 충분히 읽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니 영화사 명칭을 충무로의 지형도를 가늠할 지표 중 하나로 받아들인다 해도 우스울 것이 없다. 게다가 단어 하나하나 자세히 들여다보니 충무로 브랜드네이밍도 꽤 근사한 목록을 갖췄다. 너무 유명해 익숙한 이름부터, 귀에도 입에도 낯선 생소한 이름,
[충무로 작명소] 충무로 간판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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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리 “<익사일> 같은 영화를 보면 ‘액션을 더이상 뭘 새롭게 찍겠어?’라는 오만방자함이 박살나요.”
이동진 “오래된 클래식 액션영화의 묘한 인상이 있어요.”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님(김혜리 vermeer@cine21.com)이 입장하셨습니다.
이크! 스타일님(이동진 lifeisntcool@naver.com)이 입장하셨습니다.
이크! 스타일님의 말(이하 이크) : 죄송, 이제야 막 들어왔어요.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님(이하 시체) : 으악, 놀래라! 망했다. 이번주 개봉작에 실려나온 시체 숫자 세고 있었는데, 부르시는 바람에 어디까지 셌는지 까먹었잖아요. T-T
이크: 진짜 많이 죽는 장르는 사실 공포가 아니라 액션이죠. <람보2> 같은.
아무: 끙, 그렇죠. 하지만 그 경우는 죽음보다 파괴에 가깝게 느껴지니까요.
이크: 대량사상이라면 재난영화도 있네요. <딥 임팩트>가 최다사상자 영화인가요? 참, <지구를 지켜라!>
[메신저토크] <익사일>은 극도로 순수해서 숭고한 장르영화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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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방울토마토>의 배우 신구와 함께한 톡톡 튀는 인터뷰입니다.
관객의 재미있는 질문과, 배우의 톡톡튀는 답변! 씨네21에서만 볼 수 있는 2원 생중계!
<동영상 보기> 버튼을 눌러 주세요.
[talk talk talk] 신구의 톡톡 튀는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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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엄(마르티나 게덱)과 앙드레는 아들 닐스와 그의 여자친구 리비아(스베아 로드)를 데리고 여름휴가를 떠난다. 미리엄은 열두살이라는 나이에 비해 지나치게 성숙한 리비아가 처음부터 마음에 걸린다. 아들과 보트를 타러 나갔던 리비아는 빌이라는 남자와 함께 돌아와 그를 가족에게 소개한다. 이때부터 어린 연인들과 미리엄 그리고 빌과의 미묘한 긴장관계가 시작된다. 아들의 친구이자 아직은 미성년자인 리비아를 보호한다는 명목하에 시작된 미리엄의 간섭은 점차 그녀가 빌에게 이성적으로 끌리게 되면서 이상한 라이벌전으로 변질되기 시작한다. 이로 인해 평범하고 안전해 보였던 한 가족의 여름휴가는 욕망이 교차하는 심리전으로 탈바꿈한다. 처음에 보호자적인 태도를 취했던 미리엄이 점차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관계의 권력구조를 교묘하게 이용하는 모습을 통해 인간의 이중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일체의 인위적인 사운드를 배제함으로써 이 영화는 욕망의 줄다리기를 일체의 심리적 과장 없이 담담하게 드러낸다
욕망의 줄다리기 <미필적 고의에 의한 여름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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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너의 악극으로도 잘 알려진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켈트인의 전설에서 비롯되어 비극적 사랑의 원형으로 끊임없이 회자되어온 이야기다. 리들리 스콧과 토니 스콧 형제가 기획과 제작을 맡은 영화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으로 비극에 이르는 연인이라는 고전적 뼈대를 차용하되, 그 위에 로마 멸망 뒤 영국과 아일랜드의 대립이라는 시대적 맥락을 입혔다. 아일랜드가 부족 단위로 흩어진 영국을 지배하던 시대, 영국의 통합을 도모하는 군주 마크(루퍼스 스웰)의 손에서 키워진 트리스탄(제임스 프랑코)은 전투에서 치명적인 부상을 입고 장례절차에 따라 바다에 띄워 보내진다. 해안가에 떠내려온 트리스탄을 발견한 아일랜드의 공주 이졸데(소피아 마일즈)가 그를 살려내고, 두 사람은 서로의 신분을 알지 못한 채 사랑에 빠진다. 정치적인 음모와 배신, 어긋난 사랑의 파국 등 익숙한 요소들로 조합된 <트리스탄과 이졸데>에서 눈에 띄는 새로움을 찾아보기란 힘들다.
견고하게 빚어낸 세공품 <트리스탄과 이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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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전 순도 100%의 액션영화 한편을 보았다. 여기에는 불순물이 전혀 없다. 오로지 스타일만으로 만든 <익사일>은 넋이 나갈 정도로 매혹적이기도 하고,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터무니없기도 하다. 그게 무엇이든, 극단에 도달하는 순간의 어떤 경지 같은 것이 이 영화에 있다.
<익사일>은 있는 것과 없는 것이 명확한 작품이다. 스타는 있고 캐릭터는 없다. 스타일은 있고 플롯은 없다. 카메라는 있고 시나리오는 없다. 동사는 있고 접속사는 없다.
그러면, 이 영화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대체 어떤 내용이냐고? 조직을 배신했다는 죄목을 뒤집어쓰고 피신해 있는 아화의 집으로 옛 친구 넷이 찾아오면서 영화가 시작된다. 먼저 방문한 두명은 그의 안전을 지켜내기 위해서 온 것이고, 나중에 온 두명은 조직의 명령을 받아 그를 처단하기 위해서 온 것이다. 한참 뒤에 아화가 집으로 돌아오자 다섯 사람은 서로 총을 쏘기 시작하지만, 아화의 하소연을 듣고 예전의 우의를 되찾는다. 이
순도 100%의 액션영화 <익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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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용한 스릴러와 호러영화는 관련 정보를 미리 알고 본다 해도 재미가 크게 훼손되지 않는다. 심지어는 스포일러조차 큰 차이를 만들지 않는다. 영화 스스로 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디센트>는 네발로 기며 어둠을 더듬는 영화다. 암중모색의 쾌감을 제대로 연출한 이 영화의 어둠은 진짜다. 그 속에 무엇이 기다리는지 모를수록 <디센트>는 짜릿하다. <디센트>의 한글 제목을 붙인 사람은, 원제의 의미 ‘하강’과 ‘전락’ 중 하나만 고르기 난처했을 것이다. 영화 속 여섯 여자들은 지하 동굴을 탐험하는 느린 하향운동을 하고 거기서 고립된 채 맞이한 재앙을 통해 동물적인 상태로 굴러 떨어진다. 인물을 동굴에 들여보내기까지 닐 마셜 감독은 적당한 시간을 들여 심리적 복선을 깔고 많은 캐릭터를 최소한 스케치한다. 여자친구들과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겨온 세라(쇼나 맥도널드)는 래프팅 여행 중 끔찍한 사고를 당한다. 1년 뒤. 세라의 기운도 북돋울 겸 그룹의 리더 주노(내털
암중모색의 쾌감 <디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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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한 피범벅
<도살자> The Butcher/ 김진원/ 한국/ 2007년/ 76분/ 금지구역
<도살자>를 본 관객은 배우들의 신변과 영화를 만든 데빌그루브픽쳐스가 도대체 어떤 일당인지 궁금해질 것이다. 사채업자에게 시달리던 한 부부가 어느 도살장에 끌려온다. 이곳에는 돼지머리를 가진 괴물을 주인공으로 스너프영화를 찍는 도살업자가 있다. 그는 괴물의 희생양이 될 사람들의 머리 위에 카메라를 매달아놓고 그들의 사지를 절단하며 영화를 찍는다. 끌려온 사람들의 머리에 4대, 도살장에 1대, 도살업자의 목에 1대씩 달려 있는 총 6대의 카메라는 <도살자>의 공포감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몸에 달린 카메라는 고통과 함께 흔들리고, 거친 사운드는 대사보다 비명을 더욱 강렬하게 전달한다. 하지만 말 그대로 작정한 고어영화인 <도살자>는 공포감 조성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는 잔혹함까지 놓치지 않는다. 톱에 갈리며 죽어가는 사람의 비명이 귀청을
[제11회 부천영화제 가이드] <도살자> <바람 속의 질주> 外 8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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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보다 무서운 인간이 여기 있다
<다이어리> Diary/ 옥사이드 팡/ 홍콩/ 2006년/ 86분/ 부천 초이스
타이의 옥사이드 팡이 호러물의 재주꾼임을 보여주는 소품이다. 그닥 새롭지 않은 소재로 출발선을 잡고서, 게다가 적당한 복선과 관습적인 카메라워크를 지극히 제한된 공간 안에서 펼치는 것만으로 기승전결의 맥을 만들어낸다. 귀신은 없으나 귀신보다 무서운 인간이 있다. 선천적 악마 사이코패스는 아니다. 후천적으로 앓은 사랑의 후유증이 위니의 몸뚱이를 감싸고 있다. 그녀가 기괴한 기운을 내뿜으며 불길해 보이는 목각 인형을 만들어내는 건 저주의 영혼을 불어넣겠다, 는 의지가 아니라 그나마 스스로를 위로하는 소일거리다. 그녀의 본업은 예쁜 뷰티숍의 점원이다. 그곳에서 나와 상당량의 생선과 고기를 사고, 그 생선과 고기를 어두컴컴한 부엌에서 칼로 다지며 요리를 만드는 건 저주의 카니발 의식이 아니다. 사랑하는 남자 세스를 위한 애정 행위다. 문제는 그 세스가 떠나버렸다는
[제11회 부천영화제 가이드] <다이어리> <미러마스크> 外 8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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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 장르의 기막힌 혼합
<클라우드> The Cloud/ 그레고르 슈니츨러/ 독일/ 2006년/ 105분/ 월드 판타스틱 시네마
두세 가지 장르를 배배 꼬인 전선줄처럼 뒤섞어가는 장르 혼합은 다반사가 된 지 오래다. 하지만 장르의 흐름이 이야기의 맥락을 타며 급변하거나 리듬을 타면서 경계를 그어가는 그 자체가 재미를 주는 작품은 많지 않다. 마치 세 토막의 장르를 무처럼 동강내 시미치 뚝 떼고 딱딱 이어붙인 듯한 <클라우드>는 언뜻 매끈한 할리우드영화 같다. 거침없이 장르적인 연출이지만 언어와 건축물, 그리고 그 주인인 사람이 명백한 독일산이다. 처음은 밝고 명랑한 십대 학원물이다. 한나는 등교보다 늦잠 자는 게 좋고, 여자친구와의 수다도 좋지만 핸섬한 남자에게 눈이 돌아가는 평범한 소녀로, 부유한 집의 외아들 엘마와 가벼운 사랑의 암초를 헤치고 눈을 맞춘다. 그걸 키스로 확인하는 순간 요란한 사이렌이 울린다. 두 번째 장르, 암울한 재난영화의 시작이다
[제11회 부천영화제 가이드] <클라우드> <블랙 쉽> 外 8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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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영화평론가 정성일씨와 인터뷰에서 지아장커는 <스틸 라이프>에 관해 “사라져가는 기억과 싸우는 영화”라고 말했다. 중국 인민폐 10위안에 새겨질 정도로 아름다운 산수로 유명한 싼샤가 거대한 댐 건설로 파괴되는 현장을 보여주는 이 영화는 보지 않으면 믿지 못할 광경을 펼쳐 보인다. 철거 중인 텅 빈 건물 한가운데 뻥 뚫린 창문 밖에서 거대한 건물 하나가 폭발로 순식간에 무너지는 데도 영화의 두 남녀는 동요하지 않는다. 지금껏 그들에게 주어진 삶이 어제까지 존재했던 모든 것이 사라져도 놀라지 말라고 가르쳤기 때문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16년 전 헤어졌던 아내를 찾아 나선 사내 한산밍이 싼샤에 도착하자마 경험한 일을 돌이켜보라. 마술을 보여줬으니 돈을 내라고 협박하는 자들에게 사내는 망설임없이 칼을 들이민다. 하루에도 2~3번씩 그런 협박을 받아본 적 있다는 투로 자연스런 한산밍의 동작은 지금 중국에서 벌어지는 충격적인 일들이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겐 일상임을 알려
[편집장이 독자에게] <스틸 라이프>와 대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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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자면 기획에 참여한 기자들도 부천영화제 초청작들을 전부 다 보지는 못했다. 아니, 볼 수가 없었다. 33개국 215편에 달하는 영화를 일주일 만에 보기란 도무지 가능한 일이 아닌 것이다. 어쩔 도리 없이 박스 가득한 테이프를 밤낮으로 틀어놓고 응시하던 기자-좀비들의 뺨을 열렬하고 강렬하게 작렬해버린 영화들만 딱 24편 골라냈다. 사실 부천판타스틱영화제란 게 원래 ‘취향’만으로 똘똘 뭉친 영화의 천국과 지옥 아니었던가. 그러므로 여기 소개하는 24편의 영화들은 순전히 <씨네21> 기자들의 취향으로 골라낸 변덕스런 리스트의 일부다.
[제11회 부천영화제 가이드] 판타스틱에… 홀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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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거절할 수 없다> 쓰치야 겐지 지음/ 좋은책만들기 펴냄
다운시프트족이 유행이라고 한다. 밤을 새운 만큼 보장되는 높은 연봉, 사람들에 치이지만 남들 다 알아주는 직책보다 돈 덜 받더라도 삶을 즐길 수 있는 여유를 갖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는 말이다. 하지만 다운시프트족의 삶을 ‘선택’할 수 있는 여유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월급이 적고 일은 고되고 많은 직장을 누구인들 선택하고 싶겠는가. 원치 않았으나 제멋대로 빡빡해지는 인생, 지칠 때면 나른한 말투로 장동민처럼 “그까이꺼, 대충”이라고 내뱉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쉽게 거절할 수 없다>의 저자 또한 그런 사람이다. 쓰치야 겐지는 도쿄 오차노미즈여대의 철학교수인데, 자신이 제자들과 가족들에게, 지인들에게 얼마나 무시당하며 사는지, 그러거나 말거나 자신은 얼마나 효율적으로 명예와 일로부터 도망다니며 살고 있는지를 들려준다. 끊임없는 투덜거림의 연속인 듯, 느슨한 듯 보여도 뼈가
사회적 허약체질의 당신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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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명진-green home’전 | 7월4~14일 | 노화랑(02-732-3558)
“초록 식물을 워낙 좋아합니다. 그림에 등장하는 풍경은 살고 있는 동네의 일상풍경. 그 익숙한 풍경들을 낯설게 재해석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들은 그 주변의 자연환경을 임의로 컨트롤하고 구조마저 변경해 사물화시키고 있잖아요. 작품 속에 손가락을 닮은 캐릭터는 스스로 독립된 정체성을 잃고 획일화된 인간들의 모습이고요. 가느다란 실은 뭔가를 만들 수 있는 최소 단위라고 할 수 있는데, 길게 늘어진 그 실타래는 인간만의 쉼터나 임의의 파라다이스를 만들고 있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는 겁니다. 인간이 살아가는 모습은 결국 자신만의 아지트를 거미집처럼 짓고 있는 모양새가 아닐까요?”
송명진의 그림은 시간이 멈춘 녹색 풍경이다. 흔히 녹색은 파릇한 생명력이나 생동하는 에너지의 상징이다. 하지만 송명진의 붓끝에선 일상의 풍경이나 녹색마저 낯설게 느껴진다. 친숙하면서도 왠지 생경한 낯섦. 상반된 두 가지의 감정을
시간이 멈춘 녹색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