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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는, 아니, 동성애를 소재로 한 영화는 난감하다. 비유하자면 사회가 금지한 마약과 같다. 경험한 사람은 그것이 알려지는 것을 꺼려 제대로 이야기할 수 없고, 알고 있지만 경험하지 않은 이들은 자신의 말이 거짓말처럼 들릴까 두려워 발언을 삼가거나 에둘러 표현한다. 물론 존재 자체를 혐오하는 사람들도 다수다. 그래서 이송희일 감독은 꽤나 오랫동안 외로웠다. 1999년 방송을 통해 전국적으로 커밍아웃하고 첫 번째 단편 <언제나 일요일 같이>(1998)가 제1회 서울퀴어영화제에서 상영된 지 8년이 흘렀지만 그는 여전히 ‘게이감독’의 대표주자다. 그런데 그의 첫 번째 장편 <후회하지 않아>는 조금 다를 것 같다. 11월16일 개봉을 앞두고 미리 관객을 만난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200석 규모의 상영관에서 3회에 걸쳐 상영되는 동안 평범한 관객이 이 영화를 관람했고, 열렬하게 애정을 표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졌다. 난감한 소재를 둘러싼 논쟁을 두려워하지 않는, 좋은 의미
문제적 퀴어영화 <후회하지 않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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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 스펙터클한 쇼로 부활하다!
런던으로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은 그곳에서 어떤 뮤지컬을 보면 괜찮은지 묻곤 한다. 대부분의 여행객들은 <맘마미아> <오페라의 유령> <레미제라블>처럼 안전한 뮤지컬을 추천받았지만, 몇년 전부터 런던과는 참으로 어울리지 않는 뮤지컬 <라이온킹>이 그 리스트에 첨가되었다. 디즈니가 제작한데다가 배우들이 진짜로 동물 가면을 뒤집어쓰고 연기한다기에 좀처럼 정이 가지 않았던 뮤지컬. 그러나 공연 사업을 전담하고 있는 디즈니 시어트리컬 프로덕션은 무대에서 진행되는 라이브 공연의 한계를 뛰어넘는 뮤지컬들을 만들어왔다. 제작비를 상상하고 싶지 않은 엄청난 무대장치와 의상, 이미 귀에 익었기에 안심할 수 있는 음악, 스무자로 요약할 수 있어 원하는 부분에만 정신을 집중해도 괜찮은 단순한 스토리. 디즈니는 <미녀와 야수> <노틀담의 꼽추> <라이온킹> <아이다> 등으로 드라마가
디즈니 시어트리컬 프로덕션 뮤지컬은 어떻게 대중을 사로잡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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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하나를 스크랩했다. 제목도 거창한 ‘현대인의 불안장애 종류와 증상별 대처법’이란 기사였다. 이상한 일이다. 죄 짓지 않고 착실하게 살면 알차고 소박한 미래가 보장된다고 믿었다. 그런데 TV를 켜면 노후를 위해 십억원대의 재산이 필요하다고, 죽음과 사고에 대비해 보험을 들라고, 쉬지 않고 몸매를 가꾸라고 모두 재잘거린다. 불안은 그렇게 시작된다. 죄없는 자의 불안, 그것은 치유되기 불가능한 병이다. <실물보다 큰>의 에드가 그랬다. 교사이면서 택시회사에서 아르바이트로 일하는 그에게 목 결림, 가슴 통증, 피곤이 엄습한다. <세이프>의 캐롤도 그렇다. 남부러울 것 없이 사는 주부가 숨막힘, 발작, 신경쇠약을 호소한다. 검증되지 않은 약물 치료를 받던 에드나 외딴 요양소로 밀려난 캐롤에게 완치의 희망은 요원해 보인다. <세이프>와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나의 일기>에서 난니 모레티는 반대의 경험담을 들려줬다. 일년 내내 수많은 의사를 거치
[해외 타이틀] 불안장애, 현대인의 불치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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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조르주 클루조의 <오르페브르가>의 리메이크인 줄 알았던 <오르페브르 36번가>는 전혀 새로운 범죄드라마다. 두 경찰의 비극과 복수의 드라마인 <오르페브르 36번가>는 오랫동안 범죄영화와 형사영화의 전성기를 구가했던 프랑스영화의 명예 회복을 의도한 작품이다. 그에 걸맞게 프랑스 내에서 흥행적으로나 비평적으로 성공을 거두었지만, 1950년대 이전 프랑스 범죄영화의 소박함은 물론 장 가뱅과 알랭 들롱과 리노 벤추라가 맹위를 떨치던 시절의 작품과도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정작 감독이 빚졌다고 인정하는 작품은 마이클 만의 <히트>이며, 콘크리트와 강철의 차갑고 현대적인 색깔이 영화의 스타일을 지배하고 있다. 반면 <오르페브르 36번가>만의 독특한 감성은 고전에서 힘을 얻은 결과다. 영화의 원형은 뒤마의 <몬테크리스토 백작>이니까 말이다. 미개봉 해외 신작을 소개하는 ‘KBS 프리미어 페스티벌’의 두 번째 프로젝트에 포함된
현대적 스타일을 입은 프랑스 범죄영화, <오르페브르 36번가: 특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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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여름> 이병헌, 수애의 <씨네 21> 표지 촬영 현장과 개봉을 앞둔 <그해 여름>에 관한 인터뷰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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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스토리] <그해 여름>의 이병헌, 수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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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5분, 공원에서 깡패에게 얻어맞은 남자가 의사로부터 사망선고를 받는 데는 5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그러나 남자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고 그 남자의 삶처럼 한편의 영화가 끝났을 자리에서 다른 한편의 영화가 시작한다. 그리고 과거를 잊은 게 아니라 과거가 없는 남자는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 속으로 들어간다. 아키 카우리스마키에게 한 사람의 이력과 한 사회의 기억과 역사는 인간의 꿈인 유토피아 건설을 억압하고 족쇄를 채우는 방해물이다. 그는 노동자와 농부가 사후에 도착할 천국이 아닌 가진 것 하나없는 자들이 바로 지금 삶을 꾸려나갈 지상의 풍요로운 땅을 원한다. 카우리스마키의 배우들은 그런 날이 올 때까지 결코 웃지 않을 것이며, 카우리스마키의 영화는 그런 날이 올 때까지 상심의 발라드를 절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영화 작가들이 영화 너머의 세계를 탐하는 시간, 땅 위에 단단히 자리잡고 있는 카우리스마키의 발과 영화는 소박한 인민의 연대를 따스하고 목멘 목소리로 노래
기억과 역사에 관한 상심의 발라드, <과거가 없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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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최고의 반전을 공언하며 각급 영화언론을 향해 ‘절대 핵심 반전을 누설치 말아주세요’라 읍소해 마지않는 <프레스티지>. 한데 필자는 이 대목에서 묵은 질문 하나를 또다시 떠올린다. 과연 스포일러란 무엇인가.
…라고 말씀드린다면 물론 ① “약탈자; 망치는 사람[또는 물건]”이라는 엣센스 영한사전적 의미나 ② “부르스가 유령이다!” 등의 기초 상거래 질서 교란 행위자라는 영화판적 의미를 언급하시겠으나, 그런 얘기를 다시 하자는 건 아니고, 오늘 필자가 논하고자 하는 것은 과연 어떤 것이 영화를 보는 재미를 진정 잡치는(spoil) 것인가 하는 것이다.
오씨某인지 슈퍼액某인지 뭔지는 기억이 나지 않으나 하여튼 필자는 최근 모 영화 전문 채널을 통해 <네고시에이터>를 또다시 관람하고야 말았다. 한데 다들 알다시피 이 <네고시에이터>에도 나름 결정타적 반전이라는 게 있다. 물론 그건 반전 중에서는 대단히 흔해터졌다 할 ‘아니, 네가 범인?’형 반전이
투덜군, <프레스티지>의 어설픈 반전 예고에 안타까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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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흘리지 말아야 할 것은 눈물만이 아닙니다.” 고속도로 휴게소의 남자화장실 소변기 앞에 붙은 한국관광공사와 한국화장실문화협의회가 제작한 홍보 문구다. 며칠 전 나는 평화박물관건립추진위원회(www.peacemuseum.or.kr) 소식지에서 김영만 열린사회희망연대 대표가 쓴 흥미로운 글을 읽었다. 글쓴이는 냄새와 불결의 주범인 “소변기 밖의 소변 방울”을 방지하자는 이 카피가, 섬뜩한 가위그림이나 “정조준”, “한발 앞으로” 같은 표현보다는 낫지만, 배뇨 자세 교정보다는 남성주의를 조장한다고 비판한다. 그는 “눈물은 가시나들이나 흘리는 것… 남자는 평생 세번 운다”는 식의 남성의 눈물을 금기하는 문화는 그들이 줄담배와 폭음, 폭력을 자기방어 기제로 삼게 했다고 말한다. 그는 평화로운 세상을 위해 남자의 눈물은 권장되어야 하며, “남자의 눈물은 평화의 바다를 만들지만, 지금 흘린 노란 물방울은 짜증나는 세상을 만듭니다”라고 대안을 제시한다.
주변의 여성들에게 물어보니, 파트너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눈물과 소변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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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be it’s me, maybe I bore you/ No, no, it’s my fault cause I can’t afford you/ Maybe Baby, Puffy or Jay-Z/ Would all be better for you/ Cause all I can do is love you.” 존 레전드가 지난해 발표한 데뷔앨범 <Get Lifted>에서 첫 번째로 싱글 커트되었던 <Used To Love U>의 가사 일부다. ‘당신한테는 베이비 페이스, 퍼프 대디, 제이-지의 음악이 더 잘 맞을 수도 있겠죠. 내가 능력이 없네요’라는 뜻인데 이 곡의 마지막 구절의 가사는 이렇다. “I bet you miss me now that I/ I don’t love you.”
카니예 웨스트가 전체 프로듀싱을 주관했던 <Get Lifted>는 2006년 그래미 8개 부문 노미네이트(그해 최다)와 3개 부문 수상(최우수 신인상, 최우수 남성 R&
물결처럼 흐르는 구수한 사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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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모리슨이 <파라다이스> 이후 5년 만에 쓴 <러브>는 시점과 시대를 자유롭게 오가며 노래처럼 써내려간 소설이다. 50년 가까운 세월을 아우르는 <러브>는 이미 죽은 요리사의 회상과 혼잣말로라도 진심을 발설하지 않는 여인들의 이야기와 트럭에 발가락에 뭉개지면서 마음도 함께 무너진 소녀의 사연을, 차가운 물에 잉크가 퍼지듯,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한 어조로 들려준다. 부유한 흑인으로 호텔을 소유하고 있던 빌 코지의 미망인 히드와 손녀 크리스틴은 저택에 은둔해 살면서 서로를 죽이고 싶도록 미워한다. 이제 노인이 된 그들은 같은 또래다. 유배지나 마찬가지인 이 집에 구인광고를 보고 흑인 소녀 주니어가 찾아온다. 어릴 적에 가출해 소년원을 전전했던 주니어는 영악하고 야성적이고 생존본능이 강한 아이다. 세 사람의 만남으로 시작된 <러브>는 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토막토막 들려주면서 마지막 순간에야 진실을 드러낸다.
<빌러비드>
증오로도 덮어지지 않는 ‘사랑’, <러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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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11월12일(일) 오후 2시20분
로렌스 캐스단의 <우연한 방문객>은 멜로드라마적 형식 속에서 한 남자의 상실 극복기를 다룬 영화다. 멜로물답게 두 여자와 한 남자의 삼각관계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영화가 주목하는 부분은 세 인물의 충돌이 아니라 각 인물의 캐릭터와 그들이 처한 상황이다. 그래서 이 영화에는 세 인물이 만나고 흩어지는 과정에서 오는 극적 긴장감 대신 잔잔한 일상의 이야기가 있다. 흥미로운 점은 <우연한 방문객>의 두 여자는 언제나 자신의 감정과 위치에 확신을 가지지만, 한 남자는 그녀들에 비해 더없이 불안정해 보인다는 것이다. 영화는 이 남자가 그녀들 사이를 오가다, 결국 진정한 자기 내면의 소리를 깨닫기 시작하는 지점에서 끝난다. 그 지점은 여행전문 기고가인 그가 파리에서의 여행을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가는 순간과 맞물린다. 영화는 여행에서의 우연한 발견이 불행한 영혼을 구해주듯, 사랑 역시 그렇게 삶 속으로 스며든다고 말하는 듯하다.
우연과 필연 사이를 오가는 여행기, <우연한 방문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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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보스에게 선물을 받았다. 그림이다. 40인치 텔레비전 정도 크기 될까. 기껏해야 그림이라곤 드문 외국 출장 때 미술관에서 사오는 아이 손바닥만한 명화 마그네틱이 전부였으니 호수가 뭔지도 모르고 그저 장님 코끼리 만지듯 그림을 부여잡고서는 ‘이건 무슨 뜻일까’, ‘저건 무슨 뜻일까’ 보고 있다. 벽에 못 하나 제대로 못 박으니 그냥 소파 위에 올렸다가 TV 뒤에 놓았다가. 그림의 운명은 기구하기도 하지.
카산드라 통신에 따르면 올해 우리 부부가 삼재수라고 한다. 아내는 돈 많은 근사한 남자가 유혹을 하는데 거기 넘어갈 거라고 했다. 또 소문통신에 따르면 보스의 매우 주관적이기 짝이 없는 다면평가에서 아내가 1위였다고 한다. 아내가 직장에서 질투든 유혹이든 둘 중 하나는 받을 것 같다. 어쨌거나 ‘둥지’라는 이 그림, 정확히 말하면 판화는 심신에 아주 큰 평화와 안정을 준다. 어제까지 아내와 나는 ‘둥지라는데 새는 어디 있는 거야’ 하면서 그림 속을 장님처럼 찾아 헤매고 있지
[오픈칼럼] 그림 감상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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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진짜다. 증거도 있다. 나의 노트북에는 ‘이창’에 쓸 만한 주제를 적어 두는 ‘이창 아이템’이라는 파일이 있는데, 거기에는 서너달 전부터 ‘누군가의 팬이 된다는 것’이라는 제목이 들어 있었다. 믿거나 말거나, 이번주엔 ‘팬이 된다는 것’을 써볼까 하면서 자리를 잡았다. 그러다 지난주 ‘이창’에 어떤 글이 실렸는지 확인은 해야지, 하면서 회사에 놓인 <씨네21>을 가지러 갔다. 믿어주면 고맙고, 돌아와 ‘편집장이 독자에게’를 펴자 ‘팬이 된다는 것’이라는 제목이 보였다. 아니, 그토록 찾던 솔메이트가 혹시 남동철 편집장!? 정신을 되찾고 다짐했다. 그냥, 쓰자. 하늘 아래 새로운 게 어딨니?
대신에 주제를 조금은 바꾸자. ‘무시하던 존재의 팬이 된다는 것’으로 주제를 살짝 바꾸자. 그리하여 시작이다. 지난 할로윈 데이에 이태원 클럽에서 그가 오기를 기다렸다. 오는 길에 그의 목소리도 들었다. “오늘을 기다렸어~. (짝짝) 이런 밤이 오기를~ (짝짝).” 정말로 오
[이창] 저도 팬질하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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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케인과 동년배라 해도, 숀 코너리나 알 파치노가 집사로 출연하는 모습을 떠올리기란 백조가 닭이 되는 것만큼이나 불가능한 상상이다. 주드 로가 40년 뒤에 집사로 출연하는 것은 또 어떤가. 단순히 역할의 경중을 떠나, 주인공 옆에서 묵묵히 그림자처럼 존재하면서도 없어서는 곤란한,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는 사람’의 분위기를, 숀 코너리나 알 파치노, 주드 로가 풍길 수 있을까. <프레스티지>에서 마술기술자로, <배트맨 리턴즈>에서 집사로, 이름보다는 인물의 역할로 기억되는 마이클 케인이지만, 그는 주드 로가 출연한 <알피>의 1966년 원작에서 알피로, 마크 월버그가 출연한 <이탈리안 잡>의 1969년 원작에서 찰리 크로커로 출연했던 배우다. 포효하는 연기 없이도, 나이를 숨기는 촬영술이 없이도 73살이라는 나이와 은근한 역할들로 다시 전성기를 맞은 마이클 케인의 비밀은 무엇일까.
“새벽 2시에 방영되는 TV영화에 출연했
바람둥이 알피부터 집사 역할까지, 마이클 케인의 연기인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