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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봐야 한다며 집을 나선 할머니를 찾아 삼거리극장까지 흘러든 소녀가 있다. 할머니 사진이 박힌 전단지를 돌리며 매표소에서 표도 팔던 그녀 소단이는 어느 밤 홀로 객석에 앉아 담배를 피우다가 요란하게 차려입은 유랑극단의 혼령들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쇼가 시작된다. 부천영화제 개막작으로 처음 관객을 만났고 11월24일에 개봉하는 <삼거리극장>은 쇼도 보고 노래도 듣고 무책임하게 황당한 이야기도 겪는 뮤지컬영화다. 삼거리극장 사장 우기남이 젊은 시절 만들었던 영화 <소머리 인간 미노수 대소동>, 그 영화에 출연했고 지금은 무슨 미련이 남았는지 극장에 붙어 있는 유령 배우들, 할머니를 찾아야만 하는 소단이. <삼거리극장>은 이러한 굵은 주춧돌 몇개를 놓아두고선 춤추듯 부유하듯 그 사이를 마구 오가는 영화다. 뮤지컬을 보는 것 같아도 틀림없는 영화이기도 하다. 뮤지컬영화의 역사가 거의 없는 한국에서 어떻게 이 느닷없는 영화가 튀어나왔을까. 이름도 범상치
주목할 만한 뮤지컬 <삼거리극장>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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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출간된 뒤 절판되었던 <핑퐁>은 최고로 손꼽을 수 있는 스포츠물 중 하나인 동시에 잊을 수 없는 성장물이다. 무대는 가타세 고교. 페코라고 불리는 호시노는 탁구에 재능이 있지만 노력을 하지 않고, 스마일이라고 불리는 츠키모토는 천재적 재능을 타고났지만 승부근성이 없다. 어려서부터 친구인 둘은 같이 탁구를 하지만, 스마일은 페코를 격려할 뿐 나서서 실력을 키울 생각이 없다. 스마일의 재능을 알아차린 탁구부 코이즈미 선생은 ‘언젠가 그 애는 괴물이 될 거야’라는 생각으로 스마일을 다그치고 다그쳐 연습을 시킨다. 전국 고등학교 체육대회가 다가오고, 둘은 나란히 출전한다. 스포츠는 이기는 게 전부인 세계다. 진 선수는 실력뿐 아니라 인격까지 부정당할 수도 있고, 결국 좌절로 이어진다. 절대 지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이기는 것뿐이니, 승부근성이야말로 재능만큼이나 중요할 수밖에 없다. 천재적 재능은 있지만 탁구에 목숨을 걸고 덤비겠다는 마음이 없는 스마일은 탁구에 대해 “
인생은 탁구 플레이처럼, <핑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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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생각하는 19세기 말은 기계문명의 기적과 눈앞에 다가온 20세기에 흥분한, 모두가 앞으로 달리고 있는 시대일 것이다. 그러나 제롬 K. 제롬과 그의 친구들은 사람들이 진정 바쁘게 살기 시작한 시대에 게으른 자로 남아 있는 이들이었다. 그들은 증기선을 미워하고, 성미 급한 갑문지기를 비판하고, 파인애플 통조림을 따기 위해서만 적극적으로 움직인다. <한 게으른 녀석에 대한 게으른 생각>으로 작가가 된 제롬 K. 제롬은 세 게으른 녀석과 게으른 개 한마리에 대한 이야기 <보트 위의 세 남자>로 많은 이들에게 마음껏 게을러져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여유를 주고 있다.
화자인 J는 폭스테리어 몽모렌시와 두 친구와 함께 휴식을 위한 2주간의 템스강 보트여행을 떠나기로 한다. 조지는 아침부터 오후까지 은행에서 잠을 자다가 오는 직업을 가지고 있고, 다시 말하면 은행원이고, 해리스는 어느 지방에 가도 괜찮은 위스키를 파는 모퉁이 술집을 찾아내는 능력을 지닌 남자다. 첫
게으르게, 어설프게 여행해보면 어때? <보트 위의 세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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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로 감성을 요리하라. 올해로 6회를 맞이한 서울뉴미디어페스티벌이 11월17일부터 25일까지 홍익대 앞에서 9일간의 축제를 연다. 류승완, 최진성 등의 감독을 비롯해 비디오아티스트 2세대로 주목받는 많은 작가들을 발굴했던 인디비디오페스티벌이 2년 전 지금의 이름으로 새롭게 탄생한 뒤 맞이하는 3번째 행사다. 축제의 전신이었던 인디비디오페스티벌이 수면 아래 존재하던 인디영화들을 좀더 많은 관객에게 알리기 위한 기획이었다면, 서울뉴미디어페스티벌은 한발 더 나아가 새로운 미디어를 통해 무엇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에 대한 화두를 적극적으로 고민하고자 하는 자리다. 비디오, 사운드, 넷을 자유롭게 이용해 기존의 대중매체가 양산해온 획일적인 문화를 탈피한 대안적 미디어를 생산하는 것이 축제의 지향점. 메인 상영관인 대안공간 루프를 중심으로 홍대 주변 갤러리 및 카페, 클럽 등에서 다채로운 작품을 상영·전시할 계획이다.
서울뉴미디어페스티벌을 대표하는 프로그램인 ‘네마 구애전’은 디지털
감성과 시각의 대안적 미디어 실험, 제6회 서울뉴미디어페스티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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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영화, 투쟁, 그것이 우리의 미래다!” 영화를 횃불 삼아 노동운동의 내일을 밝히려는 서울국제노동영화제가 올해로 열돌을 맞았다. 1997년 초겨울 서울국제노동미디어 행사의 부대행사로 출발한 서울국제노동영화제는 노동영화를 즐기려는 일반 관객은 물론 카메라를 통해 노동현장을 기록하는 미디어운동가를 위한 축제의 장으로 성장했다. 11월16일부터 19일까지 고려대학교 4·18기념관에서 열리는 이번 영화제는 11개국 노동자들의 피땀이 어린 28편의 작품을 선보일 예정. 영화제 홈페이지(www.lnp89.org/10th) 메뉴인 ‘이 동지가 궁금하다’의 운영에서도 알 수 있듯, 올해는 미디어운동가들의 활동에 주목하는 것이 특징이다. 5개 섹션으로 나뉜 전체 상영작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부분 역시 노동자영상패의 영상물로 꾸려진 제3섹션. KTX 여승무원을 비롯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세계를 담은 제3섹션은 우리나라 노동운동의 청사진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10주년을 기념해 제1
전세계 노동자들의 투쟁을 전달하라! 제10회 서울국제노동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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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영화와 디지털영화를 위한 축제의 장이 열린다. 올해 첫선을 보이는 안산국제넥스트영화제(ANeFF)가 11월16일부터 18일까지 CGV안산에서 개최된다. ‘넥스트’라는 이름은 새로운 시대에 맞는 작품을 지향한다는 영화제의 설립취지를 드러내는 것. 각종 영화제가 범람하고 있는 만큼 신생 영화제로서 고유한 색깔을 갖는 것이 필수라는 인식하에 안산국제넥스트영화제는 SF·디지털영화제를 표방하고 나섰다. 행사 규모를 키우는 것이 목적이 아님을 분명히 하는 한편, 비주류 영역을 핵심으로 내세워 다른 영화제와 차별화를 꾀하겠다는 의도다. 안산국제넥스트영화제의 또 다른 특이점은 영화제에 쇼케이스 개념을 도입했다는 것이다. 올해 진행되는 영화제가 바로 쇼케이스 형식의 작은 영화제. 상영작의 일부를 선보이고 관객의 반응을 모니터링 한 뒤 본격적인 1회 영화제는 2007년 6월경에 열릴 예정이다.
총 14편을 선보이는 올해 쇼케이스 개막작은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의 66년작 <화씨 451&g
숨은 SF 고전부터 디지털장편까지 한 눈에, 안산국제넥스트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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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 베케르에 대해서는 유포되는 어떤 이론도, 학문적인 분석도, 논문도 없다.” 프랑수아 트뤼포는 베케르의 <현금에 손대지 마라>에 대한 글의 서두를 이렇게 열었다. 사실 트뤼포가 쓴 그 문장에는 원래 어떤 개탄의 정조가 담겨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지금에 와서 그것은 베케르에 대한 시네필적인 정당한 자책의 사례로 인용될 만한 것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베케르라는 시네아스트는 트뤼포를 위시한 누벨바그 멤버들에게 열렬한 지지를 얻은 (장 르누아르, 장 콕토, 로베르 브레송 등을 포함해) 몇 안 되는 앞선 세대의 프랑스 감독들 중 하나였으나 지금까지 충분한 관심과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내러티브 구조의 복잡함과 스타일의 과시보다는 인물문제에 좀더 비중을 둔 베케르 영화는, 누벨바그 세대가 비난했던 동시대 다른 프랑스 영화감독들의 영화와 외견상으로 큰 구별점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트뤼포나 고다르에게 베케르의 그 모든 영화는 다른 ‘양질
베케르식 친밀한 리얼리즘 속으로, 자크 베케르 특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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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현장에서 마주친 이영훈과 이한은 그저 젊고 잘생긴 남자들이었다. 매니저도 없이 오토바이를 타고 현장에 나타난 이영훈은 (이송희일 감독이 장난으로 부르는 예명처럼) ‘양아치’ 같았고, 매니저를 대동하고 끊임없이 키득거리며 장난에 몰두하던 이한은 또 하나의 철없는 탤런트 같았다. 이송희일 감독에게 솔직하게 귓속말로 물었다. “수민과 재민. 잘 모르겠는데요.” 수다쟁이 이송희일 감독이 웃기만 했다. 현장에서 배우들에게 그토록 극성맞게 굴었다는 후문이 들리더니만 이상하게도 말을 아꼈다.
<후회하지 않아>의 자막이 올라가는 순간 이송희일 감독의 조용한 웃음이 떠올랐다. 현장에서 목도한 젊고 잘생긴 남자들은 스크린 속에 없었다. 대신 육체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도저히 쉽지 않았을 연기를 가슴을 바쳐서 해낸 젊은 배우들이 보였다. 무엇이 그들을 바꾸어놓았을까. 인터뷰를 위해 스튜디오로 들어선 두 남자는 조근조근 고백했다. <후회하지 않아>를 거치면서 많은 것이 변했노라
<후회하지 않아>의 배우 이영훈, 이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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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사슴 밤비를 닮은 큰 눈과 웃을 때면 활짝 벌어지는 시원한 입술이 앤 해서웨이의 매력임은 분명하지만, <프린세스 다이어리>에서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로 이어지는 성공에서 그녀의 ‘아름다움’이 절대적인 키워드는 아니었다. 평범한 소녀가 공주가 되고, 패션에 별 관심이 없던 사회 초년생이 샤넬을 몸에 두르고 파리 패션쇼에 등장하게 되는 이야기에서 중요한 것은 ‘전’과 ‘후’의 극렬한 대비에 있다. 신데렐라가 아름다웠지만 숯 검댕을 묻히고 있었던 것처럼, 앤 해서웨이는 그 두 영화에서 예쁘지만 다소 촌스러워야 했다. 그리고 가능하면, 평범한 소녀, 평범한 여자 같아야 했다. 영화를 보는 소녀나 여성들이 동일시할 수 있을 만큼의 평범함과 어리숙함이야말로 아름다움보다 강렬한 해서웨이의 매력인 셈이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편집장 미란다가 냉혹하게 진단한 것처럼 ‘뚱뚱한’이라는 형용사를 붙이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해서웨이는 할리우드 여배우들 중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앤 해서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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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질라와 함께 마쓰리~
부드러운 감성의 잔잔한 사랑 이야기가 아닌, 색다른 일본영화를 원한다면 주목할 만한 작품들이다. 일본의 대표적인 괴수영화 시리즈 중 한편인 <고질라 대 메카고질라>부터 일본 요괴에 대한 총정리가 가능한 <요괴대전쟁>까지. SF와 액션으로 변주된 꿈과 모험의 세계.
리터너 Returner
야마자키 다카시 | 가네시로 다케시, 스즈키 안 | 2002년 | 118분
<올웨이즈: 3초메의 석양>을 연출한 야마자키 다카시 감독의 2002년작. 2084년 우주생물 다그라의 침략으로 인류가 멸종의 위기에 처하자 밀리라는 소녀가 최초의 다그라를 말살하기 위해 2002년 과거로 돌아온다. 밀리는 우연히 미야모토라는 남자를 만나게 되고, 그에게 자신의 임무를 도와달라는 요청을 한다. 미야모토는 의뢰인으로부터 돈을 받고 암거래 시장에 잠입해 부정한 돈을 빼돌려주는 리터너다. 그는 어린 시절, 눈앞에서 친구가 암살당한 아픔을 갖고 있어 이를
제3회 메가박스일본영화제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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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과 판타지의 기묘한 변주
1회 일본영화제 개막작, 히로키 류이치 감독이 연출한 <바이브레이터>의 정서가 마음에 들었던 관객이라면 귀가 솔깃할 작품들. <매목> <부드러운 생활> <얼굴> <리얼리즘 여관> 등의 작품들은 고독, 방황, 자아, 삶 등의 주제를 단조롭지만 깊은 울림으로 전한다. 일상 속의 결핍과 상처를 바라보고 조용히 응시하며, 노래하고 치유할 줄 아는 영화들.
매목 埋もれ木
오구리 고헤이 | 히다리 도키, 아사노 다다노부, 오쿠보 다카, 카렌 | 2005년 | 93분
이야기의 우연과 묘한 조화. 재일동포 2세인 오구리 고헤이 감독이 1996년 안성기가 출연한 영화 <잠자는 남자> 이후 연출한 9년 만의 신작. 여고생 3명은 릴레이 형식으로 이야기를 이어가는 놀이를 하고 있다. 한 소녀의 이야기가 잠시 걸음을 멈춘 사이, 화면은 흑백으로 전환되고 한 마을의 ‘다른 이야기’가 얹혀진다. 이야기 안에
제3회 메가박스일본영화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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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간 펼쳐지는 꿈과 사랑의 세계. 11월15일부터 19일까지 서울 코엑스 메가박스에서 제3회 메가박스일본영화제(주체 일본영상산업진흥기구(VIPO)·공동주최 메가박스, 일본문화청)가 열린다. 한 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다양한 일본영화를 국내에 소개해왔던 메가박스일본영화제는 3회를 맞아 꿈과 사랑을 테마로 선정했다. ‘사랑과 청춘’이란 주제 아래, 한-일간 문화교류가 단절됐던 시기의 영화를 소개했던 1회, 시리즈물을 비롯한 일본의 다양한 장르영화를 상영했던 2회 등, 지난 영화제가 주로 과거 일본영화에 초점을 맞춰 이뤄졌던 것에 비하면, 이번 영화제는 무엇보다 동시대 일본영화를 소개하고 있어 주목할 만하다. 개·폐막작으로 선정된 <편지>와 <다만, 널 사랑하고 있어>는 모두 올해 10월과 11월에 일본에서 개봉한 영화들이며, 이 밖에도 상영작 18편이 모두 2000년 이후에 만들어진 작품들이다. 상영작 수는 지난해 45편에서 18편으로 크게 줄었지만, 일본영화의
제3회 메가박스일본영화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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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가 순위를 결정했다. <사랑따윈 필요없어>가 0.4%의 차이로 <열혈남아>를 제치고 박스오피스 정상을 차지했다. 관객 숫자로 따져도 5천명도 안되는 격차. 스포츠였다면 사진 판정이 필요했을 박빙의 승부였다. 더욱이 두 영화의 스크린 수를 살펴보면, 흥행의 여신은 아직 누구에게도 미소를 보내지 않았다. <사랑따윈 필요없어>는 서울 74개, 전국 341개 스크린을 확보했고 <열혈남아>는 서울 55개, 전국 295개 스크린을 확보했다. 배급사 집계에 의하면 <사랑따윈 필요없어>는 서울 10만 1448명, 전국 32만 7008명을 불러모았고 <열혈남아>는 서울 6만6335명, 전국 26만536명을 동원했다.
6만 5천명의 차이는 <사랑따윈 필요없어>를 배급한 쇼박스의 적극적인 서울 공략의 결과다. 서울 스크린과 좌석 수가 비슷한 수준이었다면 <열혈남아>가 1위로 등극했을 가능성도 크다. 손익분기
0.4%의 숨가쁜 승부, <사랑따윈…>의 판정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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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노동자의 ‘삶’의 토대가 마련됐다. 지난 6월27일부터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이하 영화노조)과 사단법인 한국영화제작가협회 교섭단(이하 교섭단)은 열흘 간격으로 열번의 단체교섭을 벌인 결과, 단체협상 체결을 거의 확정했다. 지난해 영화노조가 설립된 이후, 국내 최초로 가진 단체협상이 구체적인 결실을 맺는 순간이다. 국내 최초 단체협상 과정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한 교섭위원의 말처럼 “다른 업계의 일반적인 노사협상은 대개 당해년도에 임금을 몇 퍼센트 올려달라는 요구를 합의하는 과정으로 끝난다. 그런데 우리는 처음 시작하는 입장이라 하나씩 모든 걸 규정해야 하고, 직무에 따른 특수성이나 감독과 제작사의 관계 같은 변수들도 전부 고려해야 했다”고 어려움을 밝혔다. 영화노조와 교섭단에서 각각 7인의 교섭위원이 참여하고 영화노조 최진욱 위원장과 싸이더스FNH 차승재 교섭단 대표가 대표위원으로 나섰다. 여러 가지 난관에도 불구하고 양쪽은 넉달여 만에 단체협상을 마무리짓는 개가를 이뤄냈다. 최
영화노동자 1일 12시간, 주 66시간 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