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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관계든 그 안에 깊숙이 관여하지 않고 멀리 떨어져서 보면 실제를 능가한다. 엠티를 가서 무리를 지어 놀다보면 언제나 내가 속하지 않은 다른 무리들이 더 재미있는 것같이 보인다. 하지만 막상 그 무리로 슬쩍 자리를 옮기고 보면 그 무리 속 사람들은 이전에 내가 있었던 무리를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된다. 나의 귓가를 자극하던 웃음소리의 근원을 찾아 여기저기 무리를 전전하다보면 결국 웃음은 한번도 내 것이 되지 못한 채 귓가를 간질이고 사라져버린다. 그런 식으로 언제나 우리가 간절하게 욕망하는 대상은 한번도 우리 손에 잡히지 않고 아슬아슬하게 비켜나가거나, 원하는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변형되어 손에 들어온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지금의 관계를 다른 식으로 대체하기를 욕망하고 현재는 늘 미완의 시간으로 남는다. 원하는 것은 언제나 닿을 수 없는 어딘가에 있다. 페르잔 오즈페텍 영화 <창문을 마주보며>는 그런 바라봄을 통해 어떻게 욕망이 발현되고 작동하는
불륜도 세련되게, <창문을 마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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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아시아 유망주 3인의 독특한 상상력을 경합하게 만들었던 전주국제영화제의 간판 프로그램 디지털 삼인삼색이 일곱 번째를 맞이했다. 올해 로카르노영화제에서는 그간의 작품을 모은 회고전이 열렸고, <디지털 삼인삼색 2006>은 경쟁섹션인 ‘오늘의 시네아스트’ 부문에 공식 초청되기도 했다. 지아장커, 차이밍량, 스와 노부히로, 바흐만 고바디, 아핏차퐁 위라세타쿤 등이 거쳐간 삼인삼색의 2006년을 장식한 감독은 카자흐스탄의 다레잔 오미르바예프와 싱가포르의 에릭 쿠, 타이의 펜엑 라타나루앙이다. 한국 감독이 참여하지 않은 것은 2001년에 이어 두 번째이고, ‘여인들’이라는 부제로 최소한의 공통분모를 꾀한 것은 처음이다.
평론가로 영화계에 입문한 다레잔 오미르바예프는 1990년대 초반 카자흐스탄의 이른바 뉴웨이브를 이끌었던 주인공으로 알려져 있다. 데뷔작 <카이라트>를 비롯해서 부산영화제 초청작 <길> <킬러> 등이 매번 해외국제영화제에 초청
여전히 매력적인 삼인삼색 <디지털 삼인삼색2006: 여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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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천만 영화는 이제 그만
영화계 관계자들이 화낼 소리인지 몰라도 관객 1천만명을 넘는 영화는 안 나왔으면 좋겠다. 1천만 관객 시대는 영화계에 대한 환상을 키우는 데 일조했고 덕분에 적지 않은 돈이 충무로로 들어오게끔 만들었다. 그러나 천만 영화가 2편이나 나온 2006년, 수많은 영화사들이 빚더미에 올랐다. 터지면 왕창 벌지만 한편이 1천만명을 동원하는 동안 20여편이 적지 않은 손해를 보는 것이다. 영화계의 빈익빈 부익부는 대한민국 부의 양극화처럼 점점 뚜렷해지고 있다. 과연 이대로가 좋은 것일까. 한 영화가 1천만명을 동원하는 대신 5편이 200만명씩 동원하는 것이 부의 분배, 배급질서의 확립, 관객의 정신건강 등 모든 면에서도 나을 것이다.
2. 서울아트시네마의 재정안정
<씨네21>이 지난해부터 시네마테크 살리기 캠페인을 벌이고 있지만 서울아트시네마의 형편은 별로 나아지지 않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의 지원금이 있지만 그것만으로 유지하기 어렵다는 절박한 호
[편집장이 독자에게] 새해 영화계에 바라는 다섯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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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아나 존스가 드디어 돌아온다. 1981년 시리즈의 첫 편인 <레이더스>로 시작해, 1984년 <인디아나 존스 2: 마궁의 사원>, 1989년 <인디아나 존스 3: 최후의 성전> 이후 19년 만이다.
2006년의 마지막 금요일, 시리즈의 제작자와 감독 콤비, 조지 루카스와 스티븐 스필버그는 <인디아나 존스 4>가 2007년 촬영을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최근 스필버그 감독과 함께 <인디아나 존스 4>의 각본 작업을 마무리한 조지 루카스 감독은 "시리즈 중 가장 환상적이며, 최고가 될 것" 이라며 작품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1편 부터 3편에 이르기까지 인디아나 존스 역으로 출연한 해리슨 포드가 4편에서도 그대로 역할을 맡았다. 영화의 제작 발표에 대해 해리슨 포드는 "옛 친구들과 다시 작업하게 된 것이 기쁘다. 바지가 아직도 맞을지 모르지만 모자는 분명히 맞는다"라며 새 시리즈를 함께 하는 것에 대한 흥분을 감추지 않았
인디아나가 돌아온다: <인디아나 존스 4> 올해 촬영 돌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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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까지 오기민 마술피리 대표는 집에서 송년회를 했다. 열명이 채 되지 않는 회사 식구들을 모두 초대해서 자신이 만든 요리를 대접했다. 그런데 올해는 불가능하다. 아이필름 대표로 자리를 옮겨서다. 챙겨야 할 이들만 서른명이 넘는다. 바깥에서 회식을 하는 수밖에 없다. 직원만 늘어난 게 아니다. 라인업도 대폭 늘었다. 누군가는 2007년의 아이필름을 두고 제2의 싸이더스FNH라고 말하기까지 한다. 마술피리에서 개발하는 작품을 제한다고 해도 굴러가는 작품만 10여개다. 얼마 전엔 시네마서비스로부터 5편의 투자·배급 약속까지 받아냈다. 빡빡한 스케줄 때문에 굳이 크리스마스에 인터뷰하자고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여기서 여담 하나. 사진기자의 남편이 물었단다. “오늘 같은 날 누구 인터뷰해?” “영화사 대표.” “그 사람은 가정이 없어?” “없어.” 내년 이맘때도 그는 외로움을 태우는 대신 시나리오를 붙잡고 씨름하고 있지 않을까.
-성탄 전야엔 뭐 했나.
=종일 잠만 잤다. 그 전
아이필름·마술피리 대표 오기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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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시절이 있었다. 누워서 침 뱉거나 재갈 물고 침 흘리거나. 눈 질끈 감고 제 몸 불사르지 않는 한 누구나 그래야 했다. 그게 살아남은 자들의 ‘예의’였다. 정말이냐고. 1980년대, 한국이 그랬다. 그때는 ‘서정시를 쓰기 힘든’ 또 하나의 시대였다. “처녀들의 젖가슴은 예나 이제나 따스한데”, “왜 나는 자꾸 40대의 소작인 처가 허리를 꾸부리고 걸어가는 것만 이야기하는가”라는 물음조차 죄악이었다. 임상수 감독의 <오래된 정원>은 묻는다. 한 세대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죄의식 아니면 무용담으로 남아 있는 이분법의 80년대를 향해. 정말 사랑조차 그 시대엔 몹쓸 짓이었냐고.
황석영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오래된 정원>은 장기수였던 한 남자가 출소한 뒤 사랑했던 한 여자의 흔적을 되짚어가는 과정을 따른다. 군부독재에 반대하던 20대 사회주의자 현우(지진희)는 16년8개월 만에 세상을 활보할 자유를 얻는다. 그러나 어느새 하얗게 세어버린 머리카
서정시가 불가능한 시대의 연가, <오래된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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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거슬러 언니가 간다. 서른이 되도록 연애 한번 못 해본 나정주(고소영)는 모든 불행이 12년 전 고교 시절의 첫 남자인 록스타 조하늬(김정민)로부터 시작됐다 생각한다. 의욕상실의 나날을 보내던 정주는 심지어 자신을 쫓아다니던 모범생 오태훈(이범수)이 유망 IT기업의 CEO가 됐다는 사실마저 알게 된다. 논리적으로 따지면야 지금이라도 태훈을 꼬시는 게 말이 되겠지만, 정주는 갑자기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페기 수 결혼하다>와 로버트 저메키스의 <백 투 더 퓨쳐>의 세계로 빠져든다.
타임머신은 ‘인생극장’식 옵션을 제공하는 정주의 노트북. 용감한 정주는 망설임없이 12년 전 1994년으로 돌아간다. 계획은 열여덟살 고교생인 자신(조안)을 젊은 하늬(이중문)로부터 떼어내 젊은 오태훈(유건)과 엮어주려는 것. 문제는 열여덟 정주가 질풍노도의 로맨스 사춘기 소녀라는 사실이다. “이공계의 장래가 밝다”한들 고딩 소녀의 눈동자는 음유시인 로커의 머릿결로 향하고,
6·29 세대의 복고 판타지, <언니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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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HD영화 10편이 온다. 영화진흥위원회, 전라북도, KBS가 공동으로 지원하는 HD영화 제작지원사업의 대상작이 오늘 발표됐다. 이번 발표는 영진위가 2004년부터 KBS, 전라북도와 각각 시행해오던 ‘방송영화제작지원 사업’과 ‘저예산영화제작지원 사업’을 지난 11월 하나로 통합한 2006년 HD제작지원사업이 첫 발을 내딛는 것을 의미한다. 지원 편수는 모두 10편, 제작지원금액은 편당 5억원이다. 5억원의 지원금액은 영진위 2억 5천만원, 전라북도 1억 5천만원, 한국방송공사 1억원으로 구성된다.
12월 12일부터 18일까지 7일간의 심사를 통해 결정된 선정작 10편은 다음과 같다. 장률 감독의 신작 <이리>, 임성운 감독의 <달려라 자전거>, 박대영 감독의 <반짝반짝 작은 별>, 부지영 감독의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 오점균 감독의 <우리사랑 이대로>, 홍현기 감독의 <구창식이 사는 법>, 전용택 감독의
영진위, 전라북도, KBS가 지원하는 HD영화 라인업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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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배우 진혜림이 한국영화 <성난 황소>에 출연한다. <무간도>, <냉정과 열정 사이>의 여주인공 진혜림은 박희준 감독이 연출하는 <성난 황소>(제작 메가픽쳐스제이씨)에 출연을 결정하고, 지난 12월 15일 홍콩소속사를 통해 출연의향서를 보내왔다. <성난 황소>는 부산 텍사스촌에서 살아가는 쌍둥이 형제의 비애를 그리는 영화. 진혜림은 이란성 쌍둥이 두 남자에게 사랑을 받는 벙어리 여인 찬미 역을 맡을 예정이다. <성난 황소>를 연출하는 박희준 감독은 전작 <천사몽>에서도 홍콩 배우 여명을 기용한 경험이 있다. 2007년 하반기 개봉을 목표로 하는 <성난 황소>는 남자주인공을 캐스팅중이다.
진혜림, 한국영화 <성난 황소>에 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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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의 DVD는 흥행 여부와 상관없이 2장으로 만들어지는 게 공식이다. 그러다보니 이것저것 구겨넣어 볼썽없는 일부 DVD처럼 될까봐 우려했던 <천하장사 마돈나> DVD는 다행히 준수한 얼굴과 알찬 내용을 보여준다. 몇 가지 테마로 구성된 메이킹 필름이 70분을 훌쩍 넘기며, 두 감독은 같은 작가 출신 감독인 김대우와 대담(31분)까지 벌이고, 19개의 삭제장면(30분)이 편집 당시의 갈등을 대신 전하기도 한다. 그중, 영화의 에필로그 공연 앞에 위치할 예정이었으나 이런저런 사정으로 빠진 ‘트랜스젠더 김비의 이야기’(10:03)는 필견이다. 영화의 주제 중 하나인 ‘성적 소수자를 차별하지 않고 껴안기’에 대해 차분하게 말하는 실제 트렌스젠더이자 작가인 김비의 목소리가 각별하다. 7명의 배우가 집단으로 진행하는 음성해설은 숨겨진 에피소드를 듣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한다. 개그맨과 VJ 출신 배우가 위치한 만큼 시간이 지날수록 웃을 일이 많아진다. 하지만 영화에 충실하게 접근
[서플먼트] 두 신인감독의 노고를 알아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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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적인 그녀>의 곽재용 감독이 일본에서 만들 신작 <사이보그 그녀>의 실체가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영문 제목이 'cyborg she'인 이 영화는 곽재용 감독이 직접 시나리오를 쓰는 80억원(10억엔) 규모의 블록버스터급 영화다. 일본의 종합 엔터테인먼트 회사 아뮤즈가 메인 투자 및 제작에 뛰어 들었고, 한국 제작사 포도필름의 지영준 대표가 기획 프로듀서로 함께 일한다. 그 밖의 스탭과 배우는 일본인으로 구성할 예정이다. 영화의 대사도 일본어다. 현재, 곽재용 감독은 현지에 머무르며 시나리오 작업 중이다. 포도필름의 지명희 실장은 “1월 말에 촬영에 들어갈 예정이지만, 상황에 따라 늦춰질 수 있는 걸로 알고 있다. 제작사 포도필름이 아니라 지영준 대표 개인 차원에서 참여하는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영화의 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지영준 대표가 일본에서 돌아오는 1월 10일경 이후에나 공식적으로 말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한편, 신민아와 유건 등이
곽재용, 80억짜리 블록버스터 <사이보그 그녀>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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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에게 1930년대는 애증의 시대다. 부르주아 문화에 대한 매혹과 파시즘 유산의 청산과 심판 사이에서 그가 느끼는 현기증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단편을 기초로 한 <거미의 계략>에서 알베르토 모라비아의 소설을 각색한 <순응자>로 넘어온다. 동성애와 살인과 연결된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 인해 자신을 유별난 존재로 생각하는 마르첼로는 평범한 삶을 원하는 남자다. 그래서 중산층 여자와 결혼하고 파시스트 정권에 순응하지만, 신혼여행지인 파리에서 반파시스트 지도자인 옛 은사를 암살하라는 비밀경찰의 지령을 받는다. 주인공의 시점으로 과거와 현재 그리고 상상 사이를 오가는 <순응자>는 베르톨루치 영화의 반복되는 주제인 ‘정치·성·사회관습에 대한 저항·정체성의 탐구’를 집약해놓아 그가 칼 마르크스와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장 뤽 고다르의 아들임을 증명한 작품이다. 파시즘의 야만성과 저열함을 <순응자>의 후반부만큼 잘 보여준 영화는 아
[해외 타이틀] 파시즘을 통한 베르톨루치의 정치적·예술적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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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경비원과 성형미녀의 흥행 질주. <박물관이 살아있다!>와 <미녀는 괴로워>가 새해에도 2주째 1,2위를 지키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서울 77개, 전국 363개 스크린에서 상영된 벤 스틸러 주연의 <박물관이 살아있다!>는 서울 75만 1120명 전국 287만 1750명(이하 배급사 집계, 1월 1일까지)을 동원하며 박스오피스 정상을 고수했다. 개봉 12일째인 오늘 300만명을 돌파하는 <박물관이 살아있다!>는 2주차에도 거의 낙폭 없는 수치를 기록해 롱런을 점치게 하고 있다. <미녀는 괴로워>도 기세등등하긴 마찬가지. 서울 84개, 전국 401개 스크린을 확보한 <미녀는 괴로워>는 서울 103만 2031명, 전국 378만 4272명을 동원했다. 주말과 휴일 하루 평균 25만명대 전국 관객을 동원한 <미녀는 괴로워>는 내일쯤 400만명 돌파가 유력하다.
<미녀는 괴로워>와 함께 쇼박스가 배급하
박물관 경비원과 성형미녀, 극장가 점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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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서구에서 마스무라 야스조에 대한 이해가 가장 깊은 평론가일 조너선 로젠봄은 마스무라를 두고 “더 깊은 탐구가 필요한 대상”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 문구는 마스무라보다 조금 앞선 세대이면서 그와 어떤 관심사들을 공유했던 영화감독 이치가와 곤에게 적용해도 무방할 것 같다. <버마의 하프>(1956) 같은 영화들로 꽤 일찍 서구에 소개되긴 했어도 이치가와 역시 마스무라와 다르지 않게 그 튼실한 작품 세계에 비해 ‘적극적인’ 조명과 평가의 영역 내로 진입했다고 보긴 힘들기 때문이다. 1월4일부터 21일까지 부산 시네마테크에서 열리는 ‘이치가와 곤 & 마스무라 야스조 특별전’은 이 두 일본 영화감독의 잘 드러나지 않은 진가를 확인케 하는 자리이다.
“내게 단일한 주제 같은 것은 없다. 난 그저 내가 좋아하는 영화를 만들 뿐이다.” 이치가와 스스로 그렇게 말한 바 있듯이 그는 하나의 관심사에 얽매이지 않고 코미디, 시대극, 탐정물, 다큐멘터리 등 다양한 장르에 속
일본영화의 숨은 두 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