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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때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나서 타던 통학버스는 Y역 언저리를 지났다. 버스가 그 앞 신호등에 멈춰 설 때면 홍등가의 불빛과 정면으로 눈이 마주치곤 했다. 칸칸이 나누어진 작은 공간들을 기억한다. 불그죽죽한 정육점식 조명등 아래, 백화점 폐점시간 이후의 마네킹처럼 피곤한 표정을 한 여자들이 서 있었다. 나중엔, 정말 내 눈으로 목격한 건지 아니면 혹시 1980년대 드라마에서 본 장면과 착각하는 건 아닌지 의심스러워질 만큼 전형적인 풍경이었다.
그 뒤로 문학이나 영화에서 수없이 변주되는 ‘그녀들’의 이야기를 보아왔다. 나는 언제나 조금쯤 심드렁한 자세였던 것 같다. 그녀들은 그녀들대로의 삶을 살고 있었을 뿐, 내 삶의 크고 작고 번잡하고 우울하고 기쁘고 괴로운 일상들과는 아무 상관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 <허스>에는 세명의 ‘그녀들’이 나온다. 서로 같고 또 다른 세명의 그 여자들. 유사점이라면 직업이고, 다른 점이라면 나이다. 각각 20대, 30
[냉정과 열정사이] 그녀들의 은밀하고 외로운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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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8월 21일 화요일 오후 2시
장소 대한극장
이 영화
대졸 백수 구창(봉태규)은 학교에서 순진하고 귀여운 여자 후배 아니(정려원)를 보고 한 눈에 반한다. 옛 남자친구를 못 잊는 듯한 아니 곁에서 구창은 점점 그녀와 뭔가 잘 되어가는 듯 느끼지만, 알고 보니 아니는 다중인격자다. 술만 마시면 아니와 정반대로 괴팍하고 사나운 성격의 하니(정려원)가 튀어나와 구창을 못살게 군다. 구창은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두 여자를 모두 상대해야 하는 난감한 상황에 처한다.
말말말
“여배우들의 무대 인사를 보면서 나는 언제 할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그 꿈을 이룬 것 같다.”- 정려원
“<엽기적인 그녀>와 우리 영화는 분위기가 전혀 다르다. <엽기적인 그녀>는 후반부에 가서 남녀의 애틋한 감정이 나오지만 우리 영화는 처음부터 남녀 커플의 사랑을 이야기하는 영화다. 관객이 보고 나면 두 영화가 다르다는 걸 알게 될 거다.”- 봉태규
100자평
이 영화가
봉태규, 정려원 매력 발산하는 <두 얼굴의 여친>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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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8월20일 오후2시
장소 필름포럼
이 영화
엄마와 단 둘이 한국에서 건너온 에이미(김지선)의 하루하루는, 말하자면 경계의 날들이다. <방황의 날들>의 원제는 ’In Between Days’. 말이 통하지 않는 학교에서 에이미는 한국인도 미국인도 아닌 존재이며, 친구 하나 없는 그녀는 어른도 아이도 아닌 사춘기를 지나고 있는데, 그녀가 유일하게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은 친구도 애인도 아닌 한국 교포 소년 트란(강태구)이다. 지독하지만 흔한, 혹은 흔해서 지독한 소외의 나날이 계속되고, 트란을 향한 에이미의 서툰 구애는 한발짝 내딛기도 힘들어보인다. 한국과 별다를 것 없어 보이는 토론토 한인타운의 서늘한 겨울풍경 속을 헤매는 에이미. 이제는 새로운 세계를 향해, 새로운 관계를 향해 어떤 식으로든 나아가야 할 때다. 장편데뷔작인 <방황의 날들>이 선댄스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 베를린영화제 국제비평가협회상, 부에노스아이레스국제독립영화제 대상 등을 수상한 김
<방황의 날들> 기자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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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워>에 관한 말은 이미 넘칠 만큼 많이 쏟아졌다. 네티즌의 댓글은 홍수를 이루었다. <디 워>의 흥행 질주가 가시화됐고 그전에 이미 이른바 ‘심빠’라 불리는 추종자들이 생겨났으며 저널은 그 현상을 퍼나르고 분석하느라 부산하다. 그런데 <디 워> 현상을 일으킨 몇 가지 논점과 그에 반박하는 논리들을 보면서 거기서 정작 <디 워>의 실체가 빠져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디 워> 논란에 수정과 비판을 가하는 시도들을 접하면서 무언가 다른 해석법이 시급하다는 생각을 나는 점점 굳히게 됐다. <디 워> 현상을 말할 때 영화의 내용물만 말하는 건 순진하고 불가능한 접속이 되겠지만, 지금의 양상처럼 전적으로 영화 바깥의 현상에만 매달리는 건 더 이상한 일이다. 그러니까 이렇게 묻지 않을 수 없다. <디 워>는 어떤 영화인가? 그렇게 묻는 대신 ‘심형래’의 <디 워>는 우리에게 무엇인가라고 원론적으로 묻
[영화읽기] 블록버스터 괴물의 역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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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리 “<심슨가족, 더 무비>는 평균치 <심슨 가족> 에피소드를 4배로 늘려놓은 인상이에요”
이동진 “욕심 부리지 않고 가장 잘 할 수 있는 걸 해냈다는 느낌이에요”
내 이름은 김심순님(김혜리 vermeer@cine21.com)이 입장하셨습니다.
써머 탑님(이동진 lifeisntcool@naver.com)이 입장하셨습니다.
써머 탑님(이하 써머)의 말: 요즘 진짜 덥네요. 더위도 절정이고, 오늘 이야기할 영화 <관타나모로 가는 길>의 마이클 윈터보텀(winterbottom, 겨울의 밑바닥) 감독에 대한 오마주도 담아 대화명을 지었습니다. 아이돌 그룹 이름 같지 않수? ^^
내 이름은 김심순님(이하 심순)의 말: 네. 해설없이는 절대로 알아차릴 수 없다는 면에서…. -..- <심슨 가족, 더 무비> 이야기는 간단한 퀴즈로 시작할까요? 먼저 난이도 하. <심슨네 가족들> 속 인물들의 손가락 수는?
써머: 엥
[메신저토크] “전 세계 시트콤 작가의 교본이 될 법한 작품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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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분들, 이쪽으로 와주세요.” 세종사이버대학교 아트홀 혼에 마련된 <은하해방전선> 촬영장에 들어서자 예상치 못한 환대가 기다리고 있다. “기무라 레이가 걸어오면 자연스럽게 따라서 이동해주시면 됩니다.” 이유없는 환대는 없다고, 이날 기자들에겐 영화에 등장하는 일본의 아이돌 스타 기무라 레이(유형근)를 따라잡는 역할이 맡겨졌다. 우연이라고 하기엔 귀엽게 느껴지는 현장 공개 일정. 이날 촬영은 영화감독 영재(임지규)가 캐스팅하고 싶었으나 캐스팅하지 못한 배우 기무라 레이를 DIFF영화제 파티에서 보고 괴로워하는 장면이다. 물론 그 괴로움에는 잘 진행되지 않는 영화와 헤어진 여자친구에 대한 답답한 마음이 포함되어 있다.
단편영화 <나는 내가 의천검을 쥔 것처럼> <졸업영화> 등을 만들었던 윤성호 감독의 장편 데뷔작인 <은하해방전선>은 영화를 준비하던 감독 영재가 영화와 사랑에 대한 스트레스로 실어증에 걸린다는 설정에서 시작한다. 영재의 여
기자들도 엑스트라로, 알뜰한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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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영화를 가지고 노는 타란티노의 빛나는 재능에 대해서 누가 감히 뭐라고 얘기를 할 수 있겠는가. 그는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타고난 끼를 주체할 수가 없는 모양이다. 여전히 정신없는 입담과 예측불허의 전개, 허름한 동네 극장에서 영화를 보던 그 느낌을 고스란히 살려낸 영화적 마술, 그리고 박력 넘치는 카체이스와 엉뚱한 결말이 선사하는 쾌감에 정신이 혼미해진다. 단지 로드리게즈의 <플래닛 테러>와 동시상영으로 보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아아~ 타란티노에게 경배를!
김종철/ 익스트림무비(extmovie.com) 편집장
[전문가 100자평] <데쓰 프루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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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스>는 <링> <그루지> <다크 워터> 등 일본산 호러영화에 지속적으로 러브콜을 보내온 할리우드가 구로사와 기요시의 2001년작 <회로>를 모태로 탄생시킨 또 하나의 리메이크다. 최근 아시아영화 수입·배급전문 레이블 ‘드래곤 다이너스티’를 런칭하고 2600억 상당의 아시아영화 펀드를 조성하는 등 적극적으로 아시아 시장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웨인스타인 형제가 장르영화 제작사 디멘션 필름스를 통해 일찌감치 판권을 구매해놓은 작품이기도 하다. 본래 웨스 크레이븐 연출에 커스틴 던스트 주연으로 2002년 제작이 예정되어 있었으나, 마침 <링>의 리메이크가 개봉하면서 아류작의 혐의를 피하기 위해 제작이 취소됐고, 3년 뒤에야 재개의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그 사이 감독은 광고계 출신인 짐 손제로로 대체되었고, 주인공 자리는 TV시리즈 <베로니카 마스>와 <로스트>로 주목받기 시작한 신예 크리스틴 벨과
할리우드로 간 일본 호러 <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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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박물관에서 야간경비원으로 일하는 마르티노(조르지오 파소티)는 가족이나 친구 없이 오로지 영화를 벗삼아 혼자 지내는 남자다. 업무시간이 되면 그는 박물관을 닫고 자기가 좋아하는 버스터 키튼의 영화를 틀어놓은 채 밤을 지샌다. 마르티노가 일하는 박물관 근처에는 햄버거 가게가 있고, 여기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아만다(프란체스카 이나우디)는 상습 차량절도범인 엔젤(파비오 트로이아노)과 사귄다. 무성의한 남자친구에게 늘 서운한 마음이던 아만다는 우연한 계기에 마르티노와 인연이 닿게 된다. 엔젤과 달리 어리숙하지만 다정한 마르티노에게 아만다는 호감을 느끼고, 애인의 변심을 눈치챈 엔젤은 그때부터 여자친구의 마음을 돌려놓으려고 애쓴다. 선택의 문제가 엮인 골치 아픈 삼각관계를 테마로 삼은 <애프터 미드나잇>은 극중 스토리와 전혀 무관한 제3자의 내레이션으로 극을 이끌어간다. 이를 통해 상황의 심각성보다는 예측 불가능한 크고 작은 요소들이 어떻게 인생의 한 단락을 바꿀 수 있는지를
옛 영화들에 대한 러브레터 <애프터 미드나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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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료 공장에서 일하다 약지 끝 살점을 조금 잃는 사고를 당한 이리스(올가 큐리렌코)는 공장을 그만두고 조그마한 항구 도시로 향한다.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리듯 발길을 옮기던 그녀가 도착한 곳은 어느 숲속의 표본실. 그곳에는 쓰디쓰거나 애처러운 기억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사람들,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어떤 물건을 표본으로 만듦으로써 그와 얽힌 기억과 감정을 봉인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사연으로 가득하다. 버리기에는 너무도 소중하지만, 간직하기에는 고통스러운 기억에 시달려본 사람들이라면, 기억을 버리지 않으면서도 기억으로부터 해방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영원한 망각을 위한 이 표본실에서 단 한 사람, 이리스만은 누군가의 영원한 기억이 되기를 바란다. 표본실에서 사무원으로 일하게 된 이리스는 원장(마크 베르베)으로부터 빨간 구두를 선물받는다. 원장은 이리스에게 자신이 보지 않는 곳에서도 구두를 벗지 말 것을 요구하고, 이리스는 자신의 발이 구두에
중독된 관계, 혹은 영원한 사랑 <약지의 표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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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사육 2007>의 무대는 일본이 아닌 홍콩이다. 사진작가인 케니(토니 호)는 남편과의 첫 데이트를 회상하며 홍콩을 찾은 일본인 유미(사카가미 가오리)와 충동적인 하룻밤을 보낸다. 하지만 옷만 입고 나면 ‘도로남’이 될 거라 생각했던 케니와 달리 유미는 끈질기게 그에게 집착하고 급기야 그를 어느 저택으로 유인해 감금한다. 그녀의 완전한 사육은 가혹하다. 유미는 도망가려는 케니를 기절시키고 발가락을 자르다 못해, 그를 찾으러 온 애인 니키(보니 로이)까지 난도질하기에 이른다.
<완전한 사육 2007>은 <Love Education>이란 원제를 가진 이 영화의 ‘그럴싸한’ 한국 제목이다. 마쓰다 미치코의 실화 소설 <여자고교생유괴사육사건>을 영화화한 다른 <완전한 사육> 시리즈의 연장선상에서 보기보다는 <위험한 정사>나 <미져리> 등과 비교하는 것이 훨씬 수월할 것이다. 남자와의 하룻밤 이후 그를 파멸
충동적인 발기는 패가망신 <완전한 사육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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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얼 고든의 북한 관련 다큐멘터리들은 정치적 고려없이 연출되었지만, 교묘한 거리감각을 보여준다. 축구광 대니얼 고든은 1966년 영국월드컵 8강 신화를 보여주었던 북한 축구팀에 대한 애정어린 헌사인 <천리마 축구단>(2002)을 통해 서방인 최초로 북한에서 영화를 찍었고, 이어 북한의 매스게임을 소재로 한 <어떤 나라>(2004)를 연출했다. 월북 미군의 삶을 추적한 <푸른눈의 평양시민>(2006)은 대니얼 고든의 세 번째 북한 관련 작품이다. 그의 다큐멘터리가 영리하게 노린 바는 명확했다. 이념적, 정치적으로 무고해 보이지만, 오히려 그것이 수많은 경계들을 허물 수 있다는 것. 미치도록 흐뭇한 영화인 <천리마 축구단>과 집단적, 이념적 색채가 강렬한 매스게임을 그 소재로 한 <어떤 나라>에 등장한 북한은 지구상에 최후로 남아 있는 전체주의의 낯선 이미지들을 지닌 외계(外界)이자 이질적인 타자성의 국가였다. 그러나 너무도 빈번한
독특한 이력의 월북 군인의 삶 <푸른눈의 평양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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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상한 남자친구 현중(이기우)과 사랑을 나누는 가인(윤진서)은 유복한 가정의 행복한 여고생. 그러나 어느 날 작은고모가 큰고모를 병실에서 잔혹하게 살해하는 일을 목격한 뒤 기이한 일들이 꼬리를 물고 발생한다. 우등생인 급우가 양호실에서 죽이려 들고, 담임선생님도 급작스레 가인을 공격한다. 충격에 휩싸인 가인에게, 아버지를 죽였다는 소문이 있는 전학생 석민(박기웅)이 다가와 “아무도 믿지 않으면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수수께끼 같은 말을 남긴다.
강경옥의 원작 만화를 영화화한 오기환 감독의 <두사람이다>는 대단히 흥미롭고 풍부한 착점을 지녔다. 마음속 작은 살의와 의심이 만들어내는 비극을 공포영화적으로 다루려는 모티브는 가족과 연인이라는 가장 안온한 울타리 안에서 섬뜩한 실체를 드러내며 ‘관계의 지옥’을 그려내려 한다. 대부분의 공포영화들이 홀로 남겨진 자가 겪는 끔찍한 일들을 묘사하는 데 비해, 두 사람이 남게 되었을 때 발생하는 소름 끼치는 사건들을 다룬다는 점에
관계의 지옥 <두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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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전 외계인들에게 실험당하고 풀려난 세명의 남자가 외계인 하나를 생포한다. 함께 납치된 적이 있던 오스틴(애덤 코프먼)의 집에 일행이 들이닥치자, 오스틴과 함께 있던 여자친구(미스티 로자스)는 이에 항의한다. 해묵은 트라우마가 네명 사이에서 터져나오는 사이, 외계인은 사슬에서 풀려나 집 안 어딘가에 숨고, 외계인의 습격으로 한명씩 죽어간다.
<얼터드>는 ‘피해의식’에 빠진 사람들의 심리영화에 가깝다. 흥미를 끄는 것은 주인공들이 말없이 전제하는 규율인데, ‘첫째, 외계인의 눈을 보아서도 그를 만져서도 안 된다. 둘째, 그를 죽이는 것은 짐승이 인간에게 하는 짓처럼 무모하다. 셋째, 우리를 포위하고 있으므로 집 바깥을 나가야 소용없다’로 요약된다. 이 원칙들을 누가 어떻게 허물어뜨리는가에 주목하는 것은 재밌는 관람 포인트가 될 것이다.
<얼터드>는 에두아르도 산체스 감독의 화제작 <블레어 윗치>의 연장선상에 있다. 전작이 마녀 전설을 따라
공포를 즐기려고 ‘노력’하는 영화 <얼터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