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년이 웃는다. 입술을 옆으로 벌리며, 헤벌쭉. 뜯어먹다만 어린 옥수수처럼 듬성듬성 벌어진 앞니가 환히 드러난다. 유난히 넓은 미간이 도드라지고, 홑꺼풀 눈이 가느다란 실금으로 변한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인터넷에서 동구의 사진을 다운받았다. 그 얄따란 눈매 너머 까만 눈동자를 오래 들여다본다. 맑고 무욕하여 깊이를 알 수 없는.
착한 영화를 너무 착해서 싫다고 말하는 건 어렵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좋다’고 말하고 싶을 때 곤혹스러워진다. 선량하고 소박한 영화들이 종종 드러내는 상투적 세계관에 대한 힐난조차 구태의연하게 여겨지는 시절이며, 더구나 이 시절의 대세는 ‘무심한 듯 시크하게’이니 말이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내심 위선보다야 차라리 위악을 견디는 편이 덜 불편하다고 믿어왔다. 일찍이 희대의 화제작 <집으로…>를 보고 나서 감읍하여 통곡하기는커녕 싸가지 없는 애새끼에게 호통 한번 못 치도록 외할머니의 입과 귀를 꽁꽁 봉해놓은 행태에 치를 떨었다.
[냉정과 열정 사이] 날지 못하면 달리고, 달리지 못하면 걸어도 된단다
-
복수 3부작 DVD 출시를 앞두고 미국의 영화평론가 리처드 페냐로부터 이 시리즈에 대한 글을 받았다. 개봉 당시 개별 영화에 대한 비평은 많이 제출되었으나 이렇게 3부작을 다시 돌아볼 기회는 별로 없었기에 의미있는 자리가 될 것이라 기대한다. 편집자
지금까지 박찬욱 감독의 작품들이 적어도 서구에서 덜 인정받은 이유는, 모든 것을 자꾸만 범주화하려는 경향으로부터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놓은 비평적 덫과 상당 부분 관련이 있다. 심지어 박찬욱 감독의 진정한 예찬론자인 쿠엔틴 타란티노도 칸영화제에서 <올드보이>를 언급하면서 박찬욱 감독을 “위대한 장르 감독”이라고 표현해 이 같은 덫의 희생양이 되었다. 위대한 장르 감독이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가. 박찬욱이 작업하는 장르란 과연 무엇인가?
어떤 이들은 박찬욱의 장르를 설명하기 위해 야쿠자영화에서부터 현대 일본과 한국의 공포영화까지 모두 아우르는 ‘폭력 장르’라는 개념을 인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불분명한 범주화가 어
[영화읽기] 박찬욱 감독의 복수 3부작이 남긴 것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많이 있습니다.
일단 액션부터 시작해보자. <스파이더 맨> 시리즈를 보는 큰 이유는 역시 액션이다. 스파이더 맨의 액션은 거미줄을 이용한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거미줄을 이용하여 뉴욕의 고층빌딩 숲 사이를 날아다니고, 물체를 잡거나 집어던지고, 거미줄의 탄력을 이용하여 공격이나 방어를 한다. 슈퍼맨처럼 중력을 무시하고 자유자재로 움직이거나, 지상전 중심인 배트맨의 액션과는 많이 다르다. <스파이더 맨>에는 여타의 슈퍼히어로와는 확실하게 구분되는 독특한 ‘액션’이 존재한다. 이를테면 <스파이더 맨>의 가장 특징적인 움직임은 수직으로 뻗은 고층빌딩 사이를 횡으로 가로지르며 날아다니는 스파이더 맨이다. 위아래로 솟구쳤다가 떨어지기를 반복하며 빠르게 앞으로 나아가는 스파이더 맨의 모습은, 롤러코스터의 움직임을 보는 것 같은 상쾌한 느낌이 든다.
<스파이더맨 3>가 첫선을 보이는 액션은 뉴 고블린과의 싸움이다. 호버보
[영화읽기] 스파이더 맨은 아직도 철들지 않았다
-
상어녀: 이제 전주를 방문 중인 이리 멘젤 감독의 <가까이서 본 기차>를 이야기해볼까요? 독일군 점령 아래 체코의 한 청년이 역무원으로 취직한 뒤 겪는 경험을 그렸죠. 우선 저는 이 영화처럼 ‘희비극’이라는 규정이 정통으로 어울리는 영화는 처음인 것 같습니다. 적당히 웃기기도 하고 울리기도 한다는 정도가 아니라 희극으로서도 고전적인 재미가 있고 비극으로서도 허점이 없다고 봤어요. 그 희비극 바닥에 깔린 정서는 결국 분노라고 느꼈고요.
편집광: 그런 점이 있죠. 저는 <가까이서 본 기차>를 보며 로르카의 말을 떠올렸어요. “생각하는 자에겐 모든 것이 희극이고 느끼는 자에겐 모든 것이 비극이다, 라는 말이죠. 제가 좋아해서 자주 인용하는 말이에요. 어찌 보면 기름기를 뺀 에미르 쿠스투리차 영화 같기도 하고, 또 어찌 보면 삶을 좀더 부드럽게 받아들이는 아키 카우리스마키 영화 같은 느낌도 있더라고요. 이 영화가 훨씬 더 먼저 나온 작품이지만.
상어녀: 보도자료
[메신저토크] <내일의 기억>에는 특유의 향이 있어요 ②
-
-
스포일러 있음
상어를 부탁해님(김혜리 vermeer@cine21.com)이 입장하셨습니다.
가까이서 본 편집광님(이동진 lifeisntcool@naver.com)이 입장하셨습니다.
가까이서 본 편집광님의 말(이하 편집광): 요즈음은 아주 큰 영화 아니면, 작은 영화뿐이네요. 같은 시기에 상영되는 영화인데도 성격과 상영방식이 극에서 극이에요.
상어를 부탁해님의 말(이하 상어녀): 큰 영화로부터 범람한 관객이 흘러들어오길 기대하는 작은 영화도 있겠죠.
편집광: 큰 영화에서 아무리 흘러넘친다 해도 관객은 좋아하지 않는 성향의 영화를 귀신같이 알아채서 절대 실수하는 법이 없죠. 요즘 관객은 너무 취향에 자신만만해요. 가끔씩 속아주시는 느낌도 있어야 하는데. -.-
상어녀: 착각으로 들어간 극장에서 ‘내 인생의 영화’를 만나는 것 말이죠? 전 예전에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욕망의 낮과 밤>을 두명의 아저씨와 대낮에 본 적이 있어요. 영화를 오해하고 표를 산 어
[메신저토크] <내일의 기억>에는 특유의 향이 있어요 ①
-
<9월의 어느 날>이라니, 사뭇 목가적인 제목이다. 문제의 9월이, 2001년 9월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면 얘기가 달라진다. 뉴욕 무역센터가 테러로 무너지기 엿새 전 프랑스. 전직 첩보원 이렌느(줄리엣 비노쉬)는 시골에서 거위를 치는 소녀 올란도를 방문한다. 올란도는 10년 전 이렌느의 동료 엘리엇(닉 놀테)이 미국으로 소환될 때 방치한 딸. 미국에서 재혼해 의붓아들 데이빗도 얻은 엘리엇은, 뭔가에 쫓기는 투로, 아들과 딸을 은밀히 만나게 해달라고 이렌느에게 부탁했다. 그러나 상봉 장소는 예상보다 붐빈다. 잔인하고 정서 불안한 CIA 요원 파운드(존 터투로)가 들이닥치고 엘리엇이 지닌 ‘정보’에 목을 맨 국제적 투자사도 그를 찾느라 혈안이다. 급기야 재회 장소는 베니스로 바뀌고 여행길의 올란도와 데이빗은 남매 이상으로 친밀해진다.
각본가 출신 신인감독 산티아고 아미고레나는 “9·11을 예견하고 그 정보로 이윤을 취한 사람들이 있다”는 가설을 수용해 특이한 스릴러를 썼
긴장 속의 찰나적 평화 <9월의 어느날>
-
<마리이야기> <천년여우 여우비> 등으로 장편 개봉 애니메이션의 가능성을 점쳤던 이성강 감독의 첫 번째 장편실사영화. <살결>은 그러한 호명에 대해 절반의 긍정과 절반의 부정으로 대답한다. 갑작스런 사고로 한 여인이 세상을 떠나는 광경을 목격한 민우(김윤태)는 옛사랑 재희(김주령)와 우연히 재회한다. 아홉번의 섹스를 제안한 재희와 민우가 육체적 관계를 더해감에 따라 옛 감정 또한 되살아난다. 한편 새로 자취방을 구한 민우는 그 공간에서 알 수 없는 소녀의 영혼을 느끼고, 그 소녀는 민우 이전에 그 방에 살면서 옷을 만들었던 종이(최보영)였음이 밝혀진다. 종이 역시 그 방에서 특별한 사랑을 키웠고, 민우는 재희와 섹스하면서 종이를 느낀다.
한때 포르노로 오해받았을 만큼 많은 ‘살결’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이 영화에서, 미야자키 하야오를 연상시키던 이성강 감독의 전작 애니메이션을 떠올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영혼과 교감하며 마
이성강 감독이 만든 성인판 동화 <살결>
-
마블 코믹스의 원작을 스크린으로 모신 할리우드영화의 그 방식 그대로 <용호문>의 입구에 만화의 인장을 분명히 새긴다. 현란하게 채색된 만화의 순간 맛보기가 끝나면 이를 닮은 SF적 무협 세계가 펼쳐진다. 홍콩의 마천루를 응용한 인공적 공간의 강호는 악의 자장 안으로 슬슬 끌려들어가는 참이다. 전설의 무림고수가 창립한 용호문의 두 기둥 왕소룡(견자단)과 왕소호(사정봉)가 이별하게 된 사정이 위기를 재촉한다. 왕소룡이 용호문을 떠나 배신 아닌 배신의 길을 거듭하는 사이 거대한 범죄조직 나찰문의 보스 화운사신은 용호문의 제거를 시도한다. 왕소룡과 왕소호가 사랑다툼 벌이는 연인처럼 방황을 거듭할 때 용호문에 간신히 입문한 석흑룡(여문락)이 지원군으로 나서나 화운사신을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견자단과 사정봉의 육신은 <옹박> 같은 ‘리얼액션’을 만들어가기에는 너무 깔끔하다. 이건 그들의 부족함이라기보다 만화의 과장된 상상력을 특수효과로 최대한 옮기려는 욕심 사이에
SF적 무협 세계 <용호문>
-
고다르와 트뤼포의 유전자를 살짝 섞어 프로이트적으로 재배치한 듯한 영화라면 짐작이 수월할까. 나치 치하 체코의 작은 기차역에 앳된 수습 역무원이 출근한다. 이 주인공은 성적 해방(아니면 그저 성적 신세계의 입문)이 꼭 필요한 젊은이 밀로스다. 오죽했으면 조루에 대한 공포로 양 손목에 면도칼을 댔을까. 이 주인공에게 사부가 되어주는 이는 성적 해방을 정치적 해방으로 승화시킨 쿨한 역무원 선배다. 성적 해방이 레지스탕스로 화하는 에너지가 되기는 밀로스도 마찬가지인데 이들의 굳건한 동지는 구김없는 아름다움을 뽐내는 여성들이다. 밀로스만큼이나 앳된 그의 여자친구도, 밀로스에게 에로스의 언어를 처음 선사하는 레지스탕스 여전사도, 성스런 독일어 문장을 엉덩짝에 꽝꽝 찍어대 권위에 찌들린 남성들을 조롱하는 역무원 여자동료도 믿어 의심치 않은 이중의미의 성(性과 聖)스러움을 지녔다.
에로틱하고 정치적인 정신분석이 펼쳐지는 기차역 에피소드와 인물 풍경은 한편으론 쿤데라의 소설투 같다. 애증이 교
고다르와 트뤼포, 프로이트 <가까이서 본 기차>
-
영화진흥위원회가 지난 4월 발표한 2007년 영화진흥사업이 5월 부터 본격적으로 진행된다. 가장 먼저 국내 영화인들의 창작의욕 고취와 예술영화의 제작활성화를 위해 마련된 예술영화제작지원 사업이 시작될 예정. 순 제작비 20억원 이하의 장편 실사극영화와 30억원 이하의 장편애니메이션 영화제작을 위한 이 사업은 7편의 영화를 선정해 편당 4억원을 지원할 계획이다. 영화제작업자로서 사업자등록을 필한 자는 누구나 응모할 수 있으며 접수는 5월 7일부터 11일까지 진행된다. DVD제작배급지원 사업도 예술영화제작기반을 위한 지원사업 중 하나다. 독립 저예산예술영화의 완성도있는 DVD 제작,배급을 지원함으로써 일반인의 접근성을 높이고 DVD 부가판권시장의 활성화를 도모하기 위해 마련된 DVD제작배급지원사업은 다양성영화 DVD 1종(중 단편기획물포함) 이상에 대한 제작 유통기획안 제출 가능자 (개인, 제작업자, 단체, DVD 제작 유통업체 등)를 대상으로 하며 5월 28일 부터 6월 1일까지 접수
영진위, 예술영화와 남북 교류 지원
-
제목 그대로 바람난 여자들에 관한 영화다. 직장 상사와 바람난 방송국 아나운서, 남자친구의 아들과 바람난 여자, 무료한 부부생활 중에 있다가 섹시한 정원사를 보고 자위에 눈을 뜬 여자 등 일탈도 다양한 종류로 그려진다. 영화는 “칠레 기혼 여성의 63%가 불륜 중에 있다”라는 통계 결과를 놓고 대담 토론을 벌이는 TV프로그램을 설정하고 이를 통해 여성이 자신의 욕망을 배신하지 말고 좇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의아스럽게도 메인 스토리는 주제와 충돌한다. 인기 아나운서 세실리아는 상사와 불륜을 일으킨 대가를 톡톡히 치른 다음 우울한 현실로 돌아오는 것이다. 즐길 만한 대중영화의 모양새를 띠었고 고민하며 볼 필요는 없을 듯. 2004년작인 이 영화는 현지 개봉 당시 남미에서 내로라하는 톱 여배우들의 대거 출연으로 화제를 모은 바 있다.
바람난 여자들에 관한 영화 <바람난 여자>
-
악연으로 만나 사랑에 빠진 은호(유진)와 기백(하석진)은 결혼을 하고 싶지만 양가 부모의 허락을 못 받고 있다. 은호의 아버지 지만(임채무)은 보수적인 가부장이고, 기백의 엄마 심말년(김수미)은 남편 없이 억척스럽게 벌어서 자식을 키워온 강남의 땅부자. 두 집안의 경제 수준과 사고방식 차이가 충돌을 빚으면서 우스꽝스러운 상황들이 연출된다. 젊은이들의 사랑을 부모가 반대하고 나선다는 설정이 <미트 페어런츠>를 연상시키나 영화는 그보다 덜 웃기고 지루하다. 은호-기백의 멜로 라인은 식상하기 이전에 성의가 없다. 안연홍과 윤다훈의 조연 효과도 크지 않다. 이 영화의 진정한 주인공은 스크린 데뷔를 치른 유진이 아니라 김수미다. 이 영화는 ‘못 말리는 우리 엄마’의 이야기다. 캐릭터는 역시 상투적이나 김수미의 ‘진짜 연기’는 무의미한 클로즈업 숏들을 꽉 채우고 간다.
저렴한 한국식 코믹멜로물 <못 말리는 결혼>
-
4시11분, 8시23분, 17시13분. 지하철 기관사 만수(김강우)는 한치의 시간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근무 속에 산다. 그는 <샘터>라는 월간지가 새로 나오는 날이면 간식과 함께 그 책을 들고 플랫폼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이름 모를 여인의 존재에 조금씩 삶의 활력을 얻어간다. 독문과 강사인 한나(손태영)는 자신의 대학 선배였던 같은 과 교수와 불륜의 관계를 지속하고 있다. 한나의 생일 기념으로 둘은 밤을 함께 보내기로 한다. 그러나 기대를 품게 했던 새로운 인연과 생일선물은, 보란 듯이 물거품이 된다. 눈이 오는 날, 서로 남남인 만수와 한나는 경의선에 오른다. 두 사람은 예정에 없이 종착역인 임진강 역에 내리게 되고, 집으로 돌아갈 길이 끊긴 탓에 인근 모텔에서 함께 밤을 보내기로 한다.
<경의선>은 너무 무거워서 함부로 쏟을 수 없는 상처를 가슴 안에 채우고 사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영화다. 감독은 아주 느리고 깊고 세밀하게, 만수와 한나의 한달 전
김강우의 재발견 <경의선>
-
김동현 감독의 장편 데뷔작 <상어>는 판타지의 힘을 빌려 기적을 창조하고, 그 기적의 순간으로 누군가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기를 소망하는 작품이다. 영철(구성환)은 자신이 직접 잡은 백상어를 친구 준구(홍기준)에게 자랑하기 위해 대구로 향한다. 하지만 도박에 빠져 있는 준구는 영철의 전화가 귀찮기만 하다. 준구가 약속을 반복적으로 미루는 동안, 영철은 이제 막 감옥에서 출소한 유수(홍승일), 그리고 공원 주변을 하염없이 서성이는 미친 여자 은숙(김미야)과 조우하게 된다. 유수는 가족들이 기별도 없이 이사한 통에 정처없이 떠돌아야 하고, 은숙은 집단 강간을 당한 이후 정신을 놓아버린 상태다. 은숙은 영철이 친구를 위해 가져온 백상어가 썩어가면서 풍기는 악취를 자신이 사산한 아기의 냄새라고 착각하고, 영철와 유수의 뒤를 졸졸 따라다닌다. 은숙을 피해 대구의 골목길에서 숨바꼭질을 하던 영철은 그녀에게 썩은 백상어를 건네주고 또다시 준구를 찾아 길을 나선다. <상어>는
기적의 판타지 <상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