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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학년 학생들이 만든 통일기를 가지고 입장하는 통일친형제분께 큰 박수를 보내주십시오!” 난생처음 이런 행진을 해 본 적이 있을까. 난생처음 이런 환대를 받아본 적이 있을까. 보무당당한 우리학교 학생들의 발걸음에 이끌려 운동장에 들어선 한국 방문단 일행은 모두들 그런 생각이었을 것이다.
“홋카이도의 스타가 된” 김명준 감독과 박소현 조감독 외에도 “홋카이도 사투리를 감독 못지않게 구사하는” <우리학교> 팬카페 운영자 김선민씨와 김형동씨, “<우리학교> 5만명 돌파는 <왕의 남자>의 기록과 맞먹는다”고 주장하는 이글픽쳐스 대표 정진완씨 등 영화 보고 학교 찾은 18명의 통일친형제는 500여명의 동포들이 가슴으로 쳐주는 박수에 어쩔 줄 모르는 표정이다. 한국독립영화협회와 함께 <우리학교>를 배급한 진진의 김난숙 대표는 딸 봄이와 함께 ‘혹가이도’를 찾았는데, “평소 까칠하기로 소문난” 봄이도 동포들의 인사에 싱글벙글 입을 다물지 못한다. ‘
‘우리학교’ 운동회 열리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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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데스워터> 의문의 죽음들, 그 원인은?
[정훈이 만화] <데스워터> 의문의 죽음들, 그 원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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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가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 해도 달콤한 향기엔 변화가 없을 것을.” <로미오와 줄리엣>의 이 대사는 로미오와 줄리엣을 가로막는 장벽이 그들의 이름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같은 상황이 가네시로 가즈키의 소설을 영화화한 <고>에 등장한다. 스기하라가 자신이 재일동포임을 고백하자 방금 전까지 사랑에 눈이 멀었던 여자는 온몸이 얼어버린다. 스스로 아무 의미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 둘 사이에 건널 수 없는 심연을 만드는 순간, 여기서 장미의 이름은 ‘조선이라는 국적’이다. 숀 펜과 다코타 패닝 주연의 <아이 엠 샘>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아빠, 아빠는 왜 다른 아빠들이랑 달라요?” 장애인 아버지는 아버지이기 전에 장애인이라 구분짓는 사회의 편견이 둘의 사이를 가로막는다. 이 영화는 아버지와 딸을 떼어놓는 장미의 이름으로 ‘장애’라는 조건을 들이민다. 브라이언 유즈나 감독의 공포물 <리빙데드3> 역시 <로미오와 줄리엣>을 영리하게 각색
[편집장이 독자에게] 이야기의 원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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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그의 패션에디터인 잭스(브리트니 머피)의 사생활은 판타지 그 자체다. ‘간지’나는 직업과 적당한 매력을 지닌 섹스파트너, 다정다감한 게이 룸메이트에 시종일관 유쾌한 친구들이 그녀의 쿨한 삶을 채워준다. 그러나 사랑하는 남자하고는 절대 자지 않는 잭스의 고민은 아이러니하게도 진정한 사랑에 대한 욕구불만이다. 그런 잭스 앞에 어느 날 외모에서 성격까지 부족함이 없는 파올로(샌티에고 카브레라)가 나타난다. 하지만 그녀는 잘생기고 매너 좋고 속물도 아닌 이런 남자가 과연 이성애자일지 의심스럽다.
<러브&트러블>은 잭스의 어설픈 ‘게이다’가 빚어낸 소동극이다. 세계적인 패션지 보그의 패션에디터를 주인공으로 내세웠지만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처럼 남들은 모르는 세계에 현미경을 갖다대는 식의 접근은 없다. 오히려 <러브&트러블>의 매력은 패션지를 보는 독자들의 즐거움과 닮았다. 방귀 뀌는 스타일을 가지고 연애심리를 풀이하는 등의 재치있는 대사
좋은 수다거리, <러브 & 트러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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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 센터에서 일하는 사토시(수다 겐지)는 포르노영화를 수집하는 데 광적으로 열을 올리는 사내다. 고교생 아이바(아이바 루비)는 친구와 함께 성인용품 판매점을 구경하다가 사토시를 만나게 되고, 두 사람은 모호한 친구 사이가 된다. 센터를 찾은 사요리(시온 마치다)에게 첫눈에 반한 사토시는 스토킹을 결심하고, 아이바에게 사요리의 사생활을 캐줄 것을 부탁한다. <스토킹 그리고 섹스>는 세 주인공이 형성하는 기괴한 삼각관계를 통해 인간의 일그러진 욕망을 그린다. 감독은 훔쳐보기를 통해 뒤틀린 갈증을 채우는 인물들의 모습에 현대인의 소외와 단절, 유의 주제의식을 불어넣으려는 듯 종종 허물어진 폐차장 풍경, 어깨를 늘어뜨린 채 홀로 걸어가는 소녀 등 황량한 이미지를 삽입한다. 하지만 그러한 시도들은 맥락없이 난무하는 나체의 전시 속에서 어색한 겉치례로 느껴질 뿐이다. 억지스러운 상황극과 공감할 수 없는 캐릭터, 무엇보다 곳곳에서 황망하게 출몰하는 낯 뜨거운 장면들은 관음에 대해 이
인간의 일그러진 욕망, <스토킹 그리고 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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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죽었다. 긴 세월 무난하게 잘 살아왔다고 생각했건만, 남편의 장례식 날 걸려온 낯선 여자의 전화에 모범주부 도시코(후부키 준)의 일상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이상하리만큼 서럽게 오열하던 그녀는 불길한 예감대로 남편의 애인이었다. 게다가 그녀가 모르던 남편의 비밀은 비단 애인의 존재뿐만이 아니었는데…. 다 키운 줄 알았던 자식들은 어머니에게 한줌의 도움도 못 주고 각자의 사정만 칭얼칭얼 늘어놓는다. 심란한 마음에 도심의 캡슐호텔에서 외박을 감행한 도시코는 그곳의 수상쩍은 인간 군상에게서 세상을 배운다. 건망증과 고집센 성격으로 늘 티격태격하는 여고 동창들이 그녀의 동지로 옆에 서준다.
<다마모에>는 자기를 위해선 작은 물건 한번 사본 적 없는 한 여성의 변신 이야기다. ‘중년 여성의 자아 찾기’라는 쉬운 표현로 요약해버리기엔 그 결이 풍성하다. 남을 돌보고 배려하지 않으면 제 성에 안 차 괴로워하는 주부의 내면과 그녀가 부딪히는 뻔뻔한 세상이 흥미진진하고 구체적으로
중년 영화의 매력, <다마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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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대 젊은이들의 달빛과도 같은 은은한 열광을 받고 있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과 <메종 드 히미코>의 감독 이누도 잇신이 찾아온다. 덩달아 쌍수 들고 환영할 사람도 많으니, 인기 아이돌 ‘아라시’의 다섯 멤버가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언더그라운드적 존재이며 다수의 서정만화를 남겼던 나가시마 신지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일본 드라마 <황색눈물>을 골격으로 했다. 만화가, 소설가, 가수, 화가를 지망하는 네명의 청춘들과, 이들의 파이팅을 묵묵히 지원하는 노동청년. 이 예술구락부원들이 예술가적 자유를 꿈꾸며 에이스케(니노미야 가즈나리)의 좁은 자취방에 모여들며 영화가 전개된다. 주변부 삶에 애정을 보여왔던 이누도 잇신은 사실상 일본의 현재와 과거에도 관심이 많다. 일등과 금메달만을 기억하던 일본의 고도성장기인 1963년을 뒤돌아보며 감독은 조심스레 세대론을 전달한다. 전쟁 전 세대인 에이스케 어머니의 병과 죽음, 에이스케와 그의 예술을
이누도 잇신과 아라시가 찾아온다, <황색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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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시무시한 억압 속에서 영적 도약을 그려오던 라스 폰 트리에가 코미디를 만들었다! 10년간 덴마크의 컴퓨터 회사를 운영해온 회사의 실제 소유자 라운(피터 겐츨러)은 사장이 마치 미국에 사는 다른 사람인 것처럼 직원들을 속여왔다. 사장은 신비한 존재로 남는 대신, 소심한 자신은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직원들과 동료애를 나누자는 전략이다. 직원 전원 해고를 조건으로 회사를 매각하려는 상황에서 라운은 사장을 연기해줄 배우 크리스토퍼(젠스 알비누스)를 고용한다. 배우의 얼치기 연기보다 더욱 실소를 자아내는 것은 그에 대한 직원들의 반응이다. IT업계에 무지하며, 회의석상에서 사실상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사장’ 아래서 직원들이 사장의 권력을 그대로 인정하고 벌이는 일화야말로 코미디의 포인트들을 표현한다.
감독이 전작 <도그빌>에서 추구했던 연극과 영화의 결합이라는 형식은 그가 덴마크로 돌아와 만든 이 코미디에서도 ‘무대’와 ‘법정’이라는 아주 기발한 형태로 되살아났다. 연극배
라스 폰 트리에가 코미디를 만들었다, <오! 마이 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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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탕에 성공한 뒤 각자의 삶을 살고 있던 오션스 일당을 루벤(엘리엇 굴드)이 라스베이거스로 다시 불러모은다. 동업을 약속했던 윌리 뱅크(알 파치노)의 배신으로 몸져 누워 친구들의 걱정을 산 탓이다. 루벤을 위로하고자 한때 적이었던 테리 베네딕트(앤디 가르시아)까지 끌어들인 대니(조지 클루니), 러스티(브래드 피트), 라이너스(맷 데이먼)를 비롯한 오션스 일당은 복수를 다짐한다. 뱅크가 루벤의 땅에 건립할 호텔 카지노에서 엄청난 잭팟을 터뜨리는 동시에 꼭대기층에 보관된 고가의 다이아몬드를 훔치려는 것. 문제는 뱅크가 그리 만만한 인물이 아니라는 점이다. 최고의 호텔을 의미하는 ‘다이아몬드 5개 등급’ 호텔을 여럿 지닌 그는 작은 실수에도 “자네, 해고야!”를 외치는 도널드 트럼프처럼 편집광적인 완벽주의자다. 호텔의 개장을 지휘하는 개인비서 아비게일 스폰더(엘렌 바킨) 역시 남자에 약하다는 것을 빼면 약점을 찾을 수 없는 고약한 일중독자. 그들을 속이려면 더욱 철저한 작전이 필요하다.
꽤나 치밀하게 조율되는 사기 교향곡, <오션스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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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 너머의 얼굴이 <아홉살 인생> <여선생 vs 여제자>의 새침데기 이세영이라는 것을 처음엔 좀처럼 알아보기 힘들다. 이 배우는 미디어가 만든 깍쟁이 아역배우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자신의 나이와 실존에 딱 맞는 옷을 입은 듯 자연스러운 연기를 펼쳐주었다. 전교 일등이거나 불안에 온통 투신하는 완전 날라리가 아닌 이상, 어디에나 있지만 보이지 않는 투명인간 같은 존재감없는 소녀가 바로 수아다. 아버지의 죽음을 겪은 뒤, 이상하게도 수아는 슬픔보다는 환상을 키운다. 바로 유명 가수 윤설영이 자신의 진짜 엄마라는 것. 투명한 오르골 소리와 함께하는 마술도 있다. 환상과 마술은 소녀가 사는 무채색의 세계에 원색의 생생함을 부여한다. 그러나 이 환상적 세계 속에서의 수아의 웃음엔 소리가 없다. 처음에 환상은 수아가 자신을 부정하는 방식이었다. 그래서 수아는 현실을 떠나, 진짜 ‘엄마’를 찾아 기차를 타고 떠난다. 성장이란 그러나 아버지의 말이, 그리고 그로 인해 자라난
진짜 ‘엄마’를 찾아서, <열세살, 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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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감독은 평생 단 한편의 영화만 만든다. 지아장커야말로 그렇다. <소무>에서 <플랫폼>과 <임소요>를 거쳐 <세계>에 이를 때까지, 그는 늘 변하는 것을 찍으면서 변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지아장커가 만들어내는 단 한편의 영화는 <스틸 라이프>에서 마침내 정점에 올랐다. 이 영화는 완전하다. 그리고 여기엔 장이모와 첸카이거의 요즘 작품들에선 절대로 찾을 수 없는 현실의 중국이 있다.
지아장커는 서른살 무렵에 쓴 글에서 불안정한 자신의 생활을 떠올리며, 영화를 선택한다는 건 뿌리뽑힌 삶을 선택한다는 것이라고 한 적이 있다. 그는 늘 자신의 삶과 영화를 일치시키는 감독이다. <플랫폼>이 그랬고, <세계>가 그랬으며, 이제 <스틸 라이프>가 그렇다. 이 영화엔 무너진 돌들이 있고 뿌리 뽑힌 사람들이 있다.
산밍은 16년 전 자신을 버리고 딸과 함께 가출한 아내를 찾아 주소만 달랑
사라져가는 것들을 필사적으로 불러내는 초혼가, <스틸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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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노 마코토는 쾌활한 열일곱살 소녀다. 등굣길 산들바람은 단발머리를 희롱하고 턱걸이로 지각을 면해도 마음은 노래 부른다. 수업이 끝나면 두 친구 고스케와 치아키와의 즐거운 야구연습이 기다린다. 그러나 소녀는 지금 비탈을 달리는 중이다. 여름은 바야흐로 반환점을 돌고 있다.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아도 좋았던 그녀의 시간은, 이제 끝나려 한다. 선생님은 문과냐 이과냐 진로를 묻고 치아키와 고스케는 그들을 사모하는 여학생들의 고백을 받을 참이다. 7월13일. 일본어 발음으로 ‘나이스 데이’라 불리는 날 마코토는 늦잠부터 시작해 시시콜콜한 재앙을 연달아 겪는다. 그리고 방과 뒤 과학실 구석에서 호두처럼 생긴 괴상한 물체 위로 넘어져 신비한 비전을 본다. 자전거를 달려 귀가하던 철도 건널목에서 마코토는 기차와 부딪힌다. “설마 죽겠냐 했는데 죽는구나.” 다음 순간 마코토는 자기가 시간을 뛰어넘어(time leap) 살아 있음을 발견한다. 곧장 마코토는 복권을 산다, 고 생각하면 그녀를 잘 못
삶을 연장하는 편법, <시간을 달리는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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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연이 <밀양>으로 여우주연상을 받기 위해 칸의 무대에 오르자 언론계 동료들이 가장 많이 공통적으로 해온 질문이“저 배우 한국에서 빅스타야?”라는 것이었다.
대답은 쉬웠다. “아니, 저 배우의 이름만으로 영화가 팔릴 수 있을 정도로 그렇게 ‘빅스타’는 아니야. 그렇지만 자기 세대 중 한국에서는 의문의 여지없이 가장 훌륭한 배우지.” 두 번째 질문이 던져졌다. “그럼 이전 작품은 어떤 게 있어?”
이건 좀더 어려운 질문이었다. 영화 제목을 대는 게 문제가 아니라, 동료들이 봤을 만한 영화 제목을 대야 했기 때문이다. “뭐, 7년 전 칸 비평가 주간에서 상영됐던 <해피엔드>에서 대단했지.”(이 영화를 기억해내려 안간힘을 쓰는 표정들- ‘비평가 주간’의 영화를 보는 기자들은 몇 안 된다) “그리고 칸 마켓에서 상영됐던 <내 마음의 풍금>과 <피도 눈물도 없이>에서도 멋졌었지.”(멍한 얼굴들) “그래도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외신기자클럽] 전도연의 여우주연상 수상이 의미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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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리우드가 새로운 마살라(양념) 선택의 기로에 섰다. 보통 발리우드 마살라영화의 핵심은 눈물이 주룩주룩 흐르게 만드는 사랑과 복수, 그리고 갑작스레 나타나 눈물을 날려버리는 집단댄스 정도로 알려져왔다. 하지만 인도에 상륙한 지 10년이 넘은 <스타TV>를 비롯해 다양한 외국 영화매체들이 가공할 만한 공세를 해오고 있는 현재의 상황은 인도 영화계의 새로운 소재 개발을 불가피하게 만들고 있다. 관객의 입맛은 뷔페에 적응한 지 오랜데 영화계가 별미라고 내놓은 것이 대부분 불륜과 미혼모라는 구태의연한 양념이다보니 소재의 진부함에 대해 지적하는 목소리 또한 높아져왔다. 이런 상황에서 발리우드 영화제작자들이 새로 눈을 돌린 소재는 스포츠다. 그동안 스포츠가 발리우드의 소재로 사용된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난 20년 동안 스포츠를 소재로 한 발리우드영화는 손에 꼽을 정도고, 그중에서도 주목할 만한 영화로는 고작 서너편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이니 발리우드가 새롭게 개척하는
[델리] 발리우드, 스포츠 영화에 눈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