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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코앞이기는 한가보다. 에어컨 광고가 눈에 계속 들어오는 걸 보니. 때 이른 무더위에 광고 없이도 에어컨이 잘 팔리기는 하겠다만 그래도 이런 계절을 알리는 광고가 없으면 또 섭섭한 법. 근데 척 보기에도 시원해야 할 국내 에어컨 광고들, 특히 양대 산맥이라고 할 수 있는 휘센과 하우젠 에어컨 광고를 보고 있자면 나도 모르게 더위가 느껴진다. 분명 색감이나 화면이나 바람이 슝슝, 빙하가 둥둥, 파랗고 하얗고 시원하게 찍으려 노력한 것이 맞는데도 보는 이 몹시 민망하여 얼굴이 화끈거리고 부채를 찾게 되니 이를 어쩌란 말인가. 혹시 더운 날 더 덥게 만들어 에어컨을 하나라도 더 판매하려는 LG, 삼성 양사의 눈물겨운 공동 마케팅 전략인가!
늦은 아침 갓 눈을 떴는데도 누군가 메이크업을 해준 듯 완벽한 얼굴의 영애씨가 “늦은 아침엔 브런치”란다. 그래, 요즘 브런치가 유행이긴 하지. 그러더니 난데없이 “슈베르트가 좋다”네. 누가 물어봤냐고요. 아니 뭐, 그래도 여기까진 취향 참
[도마 위의 CF] 금칠한 바람, 덥다 더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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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6월16일(토) 밤 11시
말라르메의 장편시인 <목신의 오후>는 님프의 관능적인 육체에 매혹된 목신의 욕망과 몽상을 그린 작품이다. 드뷔시는 이 시에서 영감을 얻어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이라는 곡을 썼다. 그리고 체코의 여성감독 베라 히틸로바는 이 곡을 재해석하여 <목신의 매우 늦은 오후>라는 영화를 만들게 된다. 이 작품 역시 독신남 ‘판’의 반복되는 애정행각을 따라가며 한 남자의 겉잡을 수 없는 성욕과 판타지, 그 밑바닥에 자리잡은 생의 허무를 보여준다.
체코의 도전적인 페미니스트 감독이 이토록 남자의 욕망에 몰두하는 영화를 만들었다는 점이 의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한 남자와 그를 스쳐가는 싱싱한 여성의 몸들에 관한 그 수많은 영화들에 그녀가 굳이 동참할 필요가 있었을까? 그러나 특이하게도 <목신의 매우 늦은 오후>에서 여성의 육체 혹은 젊음은 남자의 시선 안에 포섭되어 완벽히 대상화하지 않는다. 감독은 늙은
늙은 독신남의 매우 깊은 허무, <목신의 매우 늦은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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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방극장에 노처녀, 아줌마 등 여성에 관한 담론이 ‘스테디 테마’로 범람하는 가운데 엄마와 딸, 시어머니와 며느리 등 수직적인 여성 대 여성의 관계가 흥미로운 소주제로 부상했다. SBS 월화극 <내 남자의 여자>, MBC 일일극 <나쁜 여자 착한 여자>, MBC 아침극 <내 곁에 있어> 등이 그것을 엿볼 수 있는 사례. 이들 드라마는 김희애, 배종옥, 최진실, 최명길 등 관록의 중견으로 거듭난 왕년의 꽃미녀 스타들이 극의 요직을 차지한 채 중장년 여성 시청자의 희로애락을 대변하고 있는 목록이기도 하다.
이들 중 배종옥과 최진실은 김수현 작가의 표현을 빌리면 나무랄 데 없이 쓸 만한 효부이자 현모양처의 상징이고, 김희애는 그 대척점에 선, 버러지만도 못한 지렁이급의 요망한 불륜녀다. 최명길은 좀 다른 경우로 핏덩이 같은 딸과 아들을 전남편한테 홀랑 맡기고 재혼해 행복하게 살다가 장성한 자식들과 재회해 번민하는 병원장 사모님이다. 각자 처한 상황은 다
메늘애기야, 니 뒤엔 시에미가 있잖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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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는 사람의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시퍼렇고 꺼멓게 썩어 있었다. 대퇴골이 다 드러난 살 끝이 풀어진 실밥처럼 너덜거렸다. 너덜거리는 살과 달리 뼈는 조형물처럼 단단해 보였다. 까맣게 썩어 있는 살 사이에서 대퇴골이 형광등처럼 빛났다.
_<시체들> 중에서
시체들이 출현한다. 쥐에 뜯긴 채 썩어버린 아이, 박제된 채 벽에 걸린 소녀, 짓뭉개지고 찢긴 살덩어리. 시취(屍臭)가 폐부 속까지 배어든 이곳에선 살아 있는 인간도 기실 시체와 다를 바 없다. 폐가에 방치되어 산 채로 썩어가는 아이들(<저수지>), 전염병이 창궐한 도시에 고립된 채 불신의 독을 내뿜는 주민들(<아오이 가든>), 철창 안에서 굶주린 개와 싸움을 벌이는 소년(<만국박람회>). 편혜영의 소설집 <아오이 가든>은 출구라고는 존재하지 않는 악몽의 극한을 펼쳐놓는다. 출발점도 종착점도 보이지 않는 이 지옥도에 그나마 끝이라는 것이 있다면, 바로 죽음이다. 자
[신진 여성작가 3인] <아오이 가든>의 편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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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가 아니었던 실재와, 실재가 아닌 실재와, …그런, 되짚어 돌아가고만 싶은, 지난 세기와, 여자들이 종아리까지 긴 양말을 신었던 시대를, 손바닥에 반쯤 타들어간 담배를 눌러 끄고, 끝없이 그물처럼 펼쳐진 어느 길을 따라서, 긴긴 밤을 지새우며, 세월에도 빛바래지 않은 누군가의 최초의 기억들을 찾아….
_<달로> 중에서
손가락 사이로 모래가 빠져나가듯, 언어가 미끄러진다. 허공을 맴도는 단어들, 의미에 정박되지 않는 문장들, 응집되지 못한 채 흩어지는 문단들. 한유주의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지극히 불편하며, 종종 난독증을 유발하기까지 하는 고통스러운 체험이다. 문장은 읽어내림과 동시에 기억에서 휘발되기 일쑤고, 문단과 문장, 단어를 거슬러 올라가 반복해 읽는 과정을 거듭해야 한다. 총 8편의 단편으로 구성된 소설집 <달로>는 각각의 작품이 사실상 뚜렷하게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잠언에 가까운 독백으로 이루어져 있다. “달로, 달로, 세계는 현재를 그대로 간
[신진 여성작가 3인] <달로>의 한유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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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왼쪽에 관한 모든 것을 싫어했다. 왼쪽으로 걷지도 않았고 왼쪽 이로는 밥을 씹지도 않았다. 아예 왼쪽 치아는 양치질도 안 한 지 오래되어 엉망이었고, 좌측통행하는 길 반대편 사람들과 부딪히기 일쑤였다.
_<왼손잡이 미스터 리> 중
빨갱이는 좌익, 좌익은 왼쪽이다? ‘빨갱이’를 극도로 증오한 나머지 왼쪽과 관련한 것이라면 일체 눈길도 주지 않는 할아버지. 바지춤을 가리키며 “요놈도 빤스 왼쪽에 넣고 다닌다”고 자랑스레 선언하는 아버지. 본래 왼손잡이였으되 오른손잡이로 “교정된” 아들. 권리의 두 번째 장편 <왼손잡이 미스터 리>는 왼쪽 혐오증에 사로잡힌 한 가정을 배경으로, 왼손잡이를 터부시하는 한국사회의 편협한 획일주의와 극단적 이념 대립으로 얼룩진 진보-보수 논쟁에 일침을 놓는 작품이다. 여기에 오른손이 잘려나간 탈북자 리우리가 등장하면서, 소설은 단순한 일상의 소묘를 넘어 분단의 현실을 응시하는 사회적 확대경을 제시한다. “왼손잡이라면 누구나 겪는
[신진 여성작가 3인] <왼손잡이 미스터 리>의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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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한국문학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은 젊은 작가들의 존재다. 새로운 상상력의 선두에서 주목받는 남성 작가들(김중혁, 박형서, 이기호_<씨네21> 600호 컬처잼 포커스)을 소개한 데 이어, 이번에는 각자가 독특한 색깔로 한국문학의 가능성을 시험하고 있는 세 사람의 여성작가를 만났다. 탈북자와 이념 대립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현실과 가상을 오가는 재치있는 문법으로 풀어낸 권리(<왼손잡이 미스터 리> <싸이코가 뜬다>), 읽는 것만으로도 악몽의 습격을 받을 것 같은 그로테스크한 괴담을 통해 문명의 이면을 비추어내는 편혜영(<아오이가든>), 이야기 자체가 부재한 공간에서 소설 언어의 또 다른 가능성을 치열하게 탐색 중인 한유주(<달로>). 세 소설가의 특별한 세계로 당신을 안내한다.
[신진 여성작가 3인] 왼손잡이의 상상력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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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VD 커버가 황홀하게 예뻐서 혹시 향수를 뿌렸나 싶어 코를 대봤다. 그러나 냄새가 날 리 만무하다. 마찬가지로 영화 <향수: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에서 향이 나올 까닭이 없지만, 이상하게도 영화를 보다 향을 맡은 듯한 착각에 빠졌다. 장 바티스트 그르누이가 만든 향수가 흡사 후신경을 건드린 것 같았다. <향수…>는 향에 영혼을 판 천재의 탄생, 성공과 실패 그리고 소멸에 관한 이야기다. 오래전 읽은 기억으론, 소설 <향수>는 분명 스릴러나 블랙코미디영화를 위한 소재였다. 그런데 영화로 다시 만난 <향수>는 사라진 천재의 시대를 아쉬워하는 연대기로 읽힌다. 18세 중엽 프랑스에서 전개되던 이야기는 프랑스혁명이 발발하기 전, 한 남자가 살점 하나 남김없이 뜯어 먹힌 흔적 위로 보통 사람들이 오가는 장면으로 끝난다. 평등과 복제와 산업이 지배자로 행세하는 시대엔 천부적인 재능과 순결한 영혼은 곧 고독과 외톨이를 의미한다. 하늘마저 시기한 그들은
꼼꼼하게 담은 정성과 노력, <향수: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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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여년도 더 된 이야기다. 초창기 <꽃잎>과 <접속>의 추상미를 보면서 나스타샤 킨스키를 떠올린 적이 있다. 광기어린 재능을 불태웠던 천재 배우의 딸이자 아버지의 유산을 이어가는 아름다운 여우의 이미지. 억지로라도 겹쳐서 생각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하지만 추상미라는 배우가 킨스키만큼이나 풍요로운 역할을 한국 영화계에서 선사받은 적이 있었던가. 글쎄. 그녀가 무대에서 뿜어내는 열정에 도취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사각 프레임을 답답해하는 추상미의 에너지에 아쉬워해본 경험 또한 있을 것이다. 게다가 추상미의 작은 인디영화 <미소>와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멀티플렉스의 논리에 의해 제대로 관객을 맞이할 기회조차 잡지 못했다.
2007년은 배우 추상미에게 새로운 출발점이다. 열세살 소녀의 억척스런 어미를 연기한 <열세살, 수아>와 거의 동물적인 매력으로 정자라는 캐릭터를 재발견한 <사랑과 야망>. 두편의 영
“나의 열세살, 수아와 똑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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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앤 트러블>의 크레딧에서 브리트니 머피가 아니라 감독의 이름을 먼저 짚어내는 관객이라면 마돈나의 열광적인 팬일 가능성이 크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와 워킹 타이틀 영화를 솜씨있게 엮은듯한 로맨틱코미디 <러브 앤 트러블>의 감독 알렉 커시시언은 90년대 초를 뒤흔든 마돈나 다큐멘터리 <진실 혹은 대담>의 감독. 이후 단 한편의 장편 영화를 내놓고 사라졌던 베이루트 태생의 커시시언은 어떻게 16년을 돌고돌아 스크린에 복귀했을까.
1988~93년 - MTV 성공시대
알렉 커시시언의 첫 연출작은 마돈나의 ‘금발의 야망 투어(Blond Ambition Tour)’를 기록한 다큐멘터리 <마돈나의 진실 혹은 대담>(Truth, or Dare)(1991)이다. 당시 26살이었던 커시시안은 가수 바비 브라운의 뮤직비디오 <My prerogative>를 연출하는 등 (데이비드 핀처와 함께) 당대 최고의 뮤직비디오 감독으
[알고 봅시다] <러브 & 트러블>로 돌아온 ‘마돈나의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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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뻤다. 하지만 솔직히 내 이름이 좀더 늦게 불렸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제60회 칸영화제 시네파운데이션 부문에서 공동 3등상을 수상한 홍성훈 감독은 더 높은 상에 대한 소망이 있었음을 솔직히 밝힌다. 학생영화나 졸업영화를 대상으로 하는 시네파운데이션 부문의 1등상은 상금도 1800만원가량 될 뿐더러, 그 감독의 첫 장편영화는 무조건 칸에 초청받게 돼 누구라도 욕심을 내볼 만한 상이다. 그러나 홍성훈 감독의 <만남>은 이 부문에 출품된 1200여편 중 초청작 16편 안에 든 것이고, 그 안에서 네 손가락 안에 꼽힌 것이니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영광이 아닐 수 없다.
<만남>은 실험정신이 엿보이는 20분짜리 단편영화다. 대사와 상황 설명을 최대한 절제하면서 간결하게 전개되는 <만남>의 이야기는 쉽사리 붙잡히지 않는다. 60년대나 70년대를 연상케 하는 분위기에서 모녀가 선글라스 낀 사내의 차를 타고 어디론가 향한다. 이들은 한가운데 테이블과 의자
거침없는 한국영화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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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프랜차이즈의 연이은 승리다. 지난 6월 6일 공개된 <슈렉3>가 개봉 첫 주말 동안 전국 관객 162만 명(배급사 집계)을 동원하며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스크린 수는 서울 120개, 전국 450개이며 관객 점유율은 50.6%를 기록했다. 전국 489개인 <황진이>보다는 스크린 수가 적지만 연소자 관람가인 점을 미루어 볼 때 가족관객들의 주말 극장나들이로 관객을 선점한 것으로 보인다. 2위인 <황진이>는 주말 양일동안 27만 5176명을 동원, 전국누적관객 71만5603명(배급사 집계)을 기록했다. 오랜만에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보다 많은 스크린을 차지한 <황진이>는 오는 13일 수요일을 기점으로 스크린 수가 줄어들 전망이다. 하지만 시네마서비스의 이원우 팀장은 "이번 주에는 <오션스 13>이 큰 경쟁작이지만 이 영화 또한 600개 이상의 스크린을 점유할 영화는 아니기 때문에 <황진이>의 스크린 수는 지금과
녹색괴물의 승리, <슈렉3> 박스오피스 1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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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미? <케세라세라>가 아니다. 실례인 줄 알지만 <황진이>의 정유미를 말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다른 정유미를 이야기해야 한다. 영화 <황진이>의 몸종 금이를 연기한 배우 정유미는 <케세라세라> <사랑니> <가족의 탄생>의 정유미가 아니라고. 2003년 영화 <싱글즈>를 시작으로 <실미도> <위대한 유산> <인형사> <댄서의 순정> 등 여섯편의 장편영화에 출연한 그녀는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에 재학 중인 학생. 연기와 인지도는 아직 신인이지만, 작품을 대하는 태도는 꽤 믿음직스럽다. “제목도 황진인데, 금이의 감정은 진이 아씨의 감정에 초점을 맞춰야죠.”
몸종 금이를 연기한 정유미의 말대로, 사실 <황진이>는 황진이 혹은 진이와 놈이의 이야기다. 몸종 금이는 말 그대로 황진이의 종. 신분뿐 아니라 사건, 감정의 맥락까지 황진이란 인물에서 시작된다.
신인배우의 은밀한 자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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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몇대나 맞은 줄 알아? 아마 백대는 될 거야.” 무식한 대가리 역할의 박상면이 투덜댄다. 6월4일 강남의 한 오피스텔 옥상에 마련된 <두사부일체3: 상사부일체> 촬영현장. 뜨거운 햇볕도 모자라 시커먼 양복을 입은 남자들이 열기를 돋운다. 이날 촬영은 대기업 거손에 낙하산 입사한 영동파 넘버2 계두식(이성재)이 노조를 와해하려는 거손기업과 싸우는 장면. 거손기업의 뒤에는 북어파가 연루되어 있다. 계두식의 오른팔인 김상두(김성민)와 왼팔인 대가리(박상면)가 나서서 형님을 돕지만, 3 대 40의 힘든 싸움은 점점 궁지에 몰린다. 이때 절에서 수행 중인 영동파의 큰형님 상중(손창민)과 젊은 스님들이 함께 나타나고, 이들은 ‘박력있는 자비’로 영동파를 구원한다.
시리즈가 계속될수록 조폭의 나와바리도 넓어지는 법일까? 학생으로, 교생으로 학교에 잠입했던 조폭 코미디 영화 <두사부일체> 시리즈가 대기업으로 발판을 넓힌 3편 <…상사부일체>는 ‘상사와 회
축! 계두식 대기업 취직, <두사부일체3: 상사부일체> 촬영현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