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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가 정 못 참겠으면 나가야지. 그건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의 권리다.” 꼭 엔딩 크레딧까지 보는 것만이 영화를 사랑하는 방법은 아니란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한국영화의 흐름’ 섹션 심사위원을 맡은 정찬의 주장이다. 덧붙여 심사위원이 되니 졸 수도 없어서 괴롭다고 목소리를 낮춘다. 그래도 심사를 맡은 한국영화만은 책임있게 보고 있으니 믿어달라고. 필모그래피가 길지 않은 배우인만큼 처음엔 ‘네가 무슨 자격으로 심사위원을?’이라는 못미더운 눈초리들에 부담이 없지 않았다. 제안을 받고 본인도 고개를 갸웃했지만, 저예산영화 <가능한 변화들>로 인연을 맺은 이래 매년 전주국제영화제를 찾아온 그에게 민병록 집행위원장과 관계자들은 “전주영화제 색깔 잘 알잖아”라고 응수했다. 처음의 부담감은 그냥 “생까기로” 했다. 초등학교 4학년부터 혼자 영화관을 다니며 시작된 영화광의 경험을 믿기로 한 것. 장르영화를 즐긴다는 그는 누아르와 좀비 영화와 주성치 영화를 먼저 꼽는다. 아직
영화제에서 자신과 영화를 해방시키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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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의선> The Railroad
박흥식/한국/2006년/110분/HD 영화 특별전
4시11분, 8시23분, 17시13분. 지하철 기관사 만수는 한 치의 시간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근무 속에 산다. 그는 <샘터>라는 월간지가 새로 나오는 날이면 간식과 함께 그 책을 들고 플랫폼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이름 모를 여인의 존재에 조금씩 삶의 활력을 얻어간다. 독문과 강사인 한나는 자신의 대학선배였던 같은 과 교수와 불륜의 관계를 지속하고 있다. 한나의 생일 기념으로 둘은 밤을 함께 보내기로 한다. 그러나 기대를 품게 했던 새로운 인연과 생일 선물은, 보란 듯이 물거품이 된다. 눈이 오는 날, 서로 남남인 만수와 한나는 경의선에 오른다. 두 사람은 예정에 없이 종착역인 임진강 역에 내리게 되고, 집으로 돌아갈 길이 끊긴 탓에 인근 모텔에서 함께 밤을 보내기로 한다.
<경의선>은 너무 무거워서 함부로 쏟을 수 없는 상처를 가슴 안에 채우고 사는 사람
상처입은 사람을 위로하는 영화 <경의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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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사일> exiled
두기봉/홍콩/2006년/109분/폐막작
조직 보스 암살에 실패하고 잠적한 아화(장가휘)는 조용히 가정을 꾸리고 산다. 그에게 네 명의 손님이 찾아온다. 조직원 화(황추생)와 페이(임설)는 보스의 명으로 아화를 죽이러 왔고, 형사 타이(오진우)와 마오(장요량)는 그 일을 막으러 왔다. 어릴 때부터 친한 다섯 사람은 의리의 법칙에 따라 아화와 그의 가족을 도주시키기로 하지만, 일은 하나도 계획대로 풀리지 않고, 네 친구는 아화를 잃은 채 마카오의 황량한 벌판을 헤매기에 이른다.
<익사일>은 무엇보다도 두기봉이 생전에 할 수 있는 홍콩식 누아르의 스타일을 집대성한 영화가 아닐까 싶다. 특히 좁고 복잡한 공간을 중심으로 10인 이상이 벌이는 주요 총격신들은 움직임의 구성, 카메라 워크, 편집, 하다못해 스모그의 흩날림까지도 아름다움을 향해 뜨겁게 불타오르는데, 단지 스타일이 비장한 것이 아니라 스타일의 비장함을 추구하는 태도 자체가 비장하
홍콩식 누아르 스타일을 집대성 <익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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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의 실제 모습이 영화 속 장면들에 섞여있어 더 현실감 있게 다가오는” 영화 <다른 반쪽>. 5월 3일 오후 1시 메가박스 10관, 영화 상영 후 이어진 관객과의 대화 시간은 잉량 감독, 펭샨 프로듀서와 함께 조지훈 프로그래머의 진행으로 이루어졌다. 샤오펀 역의 배우가 실제 법률회사에서 일하면서 들었던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감독의 “사회적인 책임감”이 원천이 되어 주었다. 중국의 벽지에서는 법률 처리가 잘 되지 않을거라는 오해를 풀어주고 싶기도 했다고. “하지만 법률적 해결책만으로 잘못된 현실에서 벗어나기는 어렵다. 처음 낙후된 지역에 공장들이 들어서기 시작했을 때, 지역주민들은 환영했다. 실업난과 경제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많은 사건과 사고들이 있었다. 물론 공장 폭발 같은 큰 사건은 아직 발생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사건이 언제 일어날지 모른다. 당장 내일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중국의 현실을
<다른 반쪽>의 감독 잉량·프로듀서 펭샨, 관객과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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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시선>은 희귀한 영화다. 디지털 시대에 8mm 카메라로 찍었다. 게다가 장편이다. 우에오카 요시하루 감독은 관음증에 사로잡힌 남자, 이국에서 몸을 팔아야 하는 베트남 여자, 그리고 굶어죽어 가는 아이들이 영영 아침이 오지 않을 것 같은 밤의 도시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기묘한 분위기의 흑백영화를 도쿄영화미학교 학생들과 함께 만들었다.
-왜 디지털로 찍지 않았나.
=필름으로 찍으면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프레임 안에 함께 존재한다. 그런데 디지털은 모든 것을 남김없이 표현해 버린다. 최소한의 빛만 있으면 다 드러나지 않나. 보이지 않는 것까지도 말이다. 디지털은 정보량이 지나치게 많다. 그래서 관객들의 상상이 끼어들 여지가 줄어들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듣고 보니, <사랑의 시선>은 디지털로 찍어선 절대 안되는 영화였을 것 같다. 어떤 인물이나 사건을 묘사하기 보다 결핍으로서의 밤의 정서를 포착하는데 주력하니까 말이다.
=맞다. 덧붙이자
<사랑의 시선> 감독 우에오카 요시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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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회 전주국제영화제가 합격점을 받았다. 예년부터 큰 인기를 끌어온 회고전, 특별전 등은 올해도 성황을 이뤘다. 여기에 인디비전 등도 큰 호응을 얻었다. 프로그램팀 관계자는 “거장들의 영화를 찾아보기 쉬운 환경이 되서 그럴 수도 있지만, 새로운 영화를 즐기고 싶어하는 관객들이 대폭 늘어난 것이 주요 원인”이라며 “이러한 관객들의 욕구와 관심이 과거 영화제 때보다 높은 예매율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올해부터 경쟁부문으로 전환한 ‘한국영화의 흐름’ 섹션을 중심으로 내년부터 한국영화에 대한 관심을 다양한 형태와 방식으로 점차 늘려갈 계획이다.
영화제는 서비스 면에서도 후한 평가를 받았다. 특히 영화의 거리에 각종 서비스 센터를 집약하면서, 관객 및 게스트들의 동선이 예년보다 줄고, 간편해졌다. 관객들의 숙소 편의를 위해 제공된 JIFF 사랑방 서비스의 경우도 작년 500여명 예약자에 비해 올해는 600여명으로 늘었으며, 관객 지프 라운지 운영 등의 휴식처 제공 서비스도 인기 만점이었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성과“합격점”…예매율, 서비스 등 좋은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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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간의 영화 대장정이 아쉬움을 뒤로 하고 막을 내린다. 5월4일 오후 7시 소리문화의 전당에서 열릴 폐막식이 37개국 185편이 상영된 이번 제8회 전주국제영화제의 마지막 날을 화려하게 장식할 예정이다. 영화배우 이동욱, 소이현의 사회로 진행되며 이번 영화제의 각종 수상작 발표 및 수상자 소감 등으로 약 1시간여 진행된다. JIFF 최고 인기상, 넷팩상, KT&G 상상마당상, CGV 한국장편영화 개봉 지원상, 관객 평론가상, JJ Star상, 우석상 등이 수여된다. 송하진 조직위원장의 폐막 선언과 폐막작 소개가 있은 뒤 홍콩 두기봉 감독의 <익사일>이 상영되면 전주는 다시 내년에 열릴 아홉 번째 축제를 기약하게 된다.
9 days of festivals ends
The 9 days of film festival is ending, leaving a feeling of wistfulness. The closing ceremony which will be he
막 내리는 9일간의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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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조미료의 강한 맛에 익숙해져버린 현대인들에게는 추천하지 않는다. <교동국수>는 천연재료만으로 맛을 내는 자연 그대로의 맛이기 때문이다. 메뉴는 물국수와 비빔국수 단 두 개. 곁다리 없이 국수만으로 손님들을 붙잡는다. 물국수는 멸치와 무, 양파 마늘 등 총 아홉가지의 다양한 재료를 진하게 우려낸 국물에 간장양념을 곁들여 깔끔하고 담백한 맛을 낸다. 그 맛이 심심하다 생각하는 분들은 고추장과 여러 과일을 넣어 만든 양념에 야채를 넣고 비비는 비빔국수를 먹어보는 게 좋겠다. 적당히 매콤하며 달콤한 맛과 푸짐한 소면의 양이 만족스러움을 선사할 것이다. 푸짐한 양과 푸짐한 인심이지만 가격만은 저렴하다. 물국수는 2,500원 비빔국수는 3,000원. 경기전과 정동성당 사이 길에 위치하고 있어 식사 후 산책하기에도 좋다. (063-288-1703)
입맛 잡는 아홉가지 천연재료 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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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프리뷰/<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일시 5월4일 오후2시
장소 스폰지하우스 종로
이 영화
대리운전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기수(김병석)와 그를 친형처럼 따르는 종대(유아인). 기수는 레드 제플린의 존 보냄처럼 몰디브에서 드럼을 치는 꿈을 꾸지만 팍팍한 현실 탓에 엄두를 내지 못하고, 지긋지긋한 일상로부터의 탈출을 열망하는 종대는 뒷골목을 배회하며 총을 구하고자 한다. 두 사람 곁에는 기성세대의 질서를 대표하는 인물인 김 사장이 있다. 잠자는 시간까지 줄여가며 일을 하던 기수에게는 어느날 형이 나타나 말없이 조카를 떠맡기고 사라진다. 총을 구하고자 기수로부터 돈을 빌렸던 종대는 사기 당해 돈을 몽땅 날리고, 결국 김 사장이 이끄는 조직폭력의 세계로 들어선다. 가뜩이나 허덕이는 생활에 형이 남기고 간 아이까지 돌보아야 할 상황에 처한 기수, 안마시술소에 취직해 점차 수렁에 빠져드는 종대. 현실의 무게 아래 신음하는 청춘들에게 내일은 찾아올 것인가.
100자평
'하류 청춘'의 초상,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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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3부작 주인공들의 <씨네21> 표지촬영 현장과 영화<복수는 나의 것,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에 관한 인터뷰 영상입니다.
영상 중간에 배우가 직접 내는 돌발퀴즈가 있습니다.
재미있는 퀴즈도 풀고 배우가 주는 선물도 받아가세요.
정답은 2007년 5월 13일까지 댓글로 달아주시면 됩니다.당첨자는 커뮤니티 '씨네21 소식'에서 확인해 주세요.
동영상을 보시려면<동영상 보기> 버튼을 눌러 주십시오.
[커버스토리]복수3부작의 주인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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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의 진짜 싸움 상대는 비평가도 아니고 자본가도 아니고 관객의 무관심이다. -프랑수아 트뤼포
작가라는 것 자체는 좋다. 하지만 도대체 무엇을 위한 작가인가. -앙드레 바쟁
감독과 평론가. 어쩌면 숙명적인 견원지간일 수도 있겠지만 결국 영화에 대한 사랑에서 출발했다는 점에서 한 고향 친구들인 셈이다. 때때로 서로가 헤게모니를 쥐려고 싸우기도 하지만 결국 영화는 감독의 것도, 평론가의 것도 아닌 영화 그 자체가 주인인 것이다. 영화는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 그 자신이 하나의 생명체이고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나간다. 그 탄생이 열광적인 박수 속의 축복이든, 만인의 손가락질과 저주이든 분명한 건 영화는 감독과 평론가가 사라진 다음에도 남아 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누군가는 계속 볼 것이고, 새롭게 발굴될 것이고, 되살아날 것이다.
턱없이 부족한 영화에 대한 식견으로, 평생을 영화 속에 파묻혀 살아왔고 또 앞으로도 그러할 전업 평론가들에게 과연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할지
[정윤철 감독, 평론가에게 묻다] 일일편집장을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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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미를 인터뷰 한다니까 몇몇 감독들이 내 등을 두드리며 오사마 빈 라덴 같은 표정으로 의미심장한 눈길을 보냈다. 테러하러가는 게 아니라니까... 게다가 그녀는 지금 임신 8개월째라구! 적지 않은 감독들에게 강호의 도를 떨어뜨리고 있는 요주의 인물로 찍힌 문제적 평론가를 만난다는 건 다소의 전운이 감도는 사건이었다. 게다가 그녀는 나의 영화 <좋지아니한가>를 보고 씨네21 100자평에서 (감독 입장에선) 오독과 편견의 여지가 다분한 평을 써갈겼기에 더더욱 벼르던 참이었다. 임신 막바지라 거동이 불편한 그녀의 사정으로 인터뷰는 얼떨결에 황진미 평론가의 집에서 하게 되었다.
정윤철: (결혼사진을 가리키며) 못 알아보겠다.(웃음)
황진미: 결혼 사진을 찍으러 갔는데 정말 이상하더라. 이미 스토리는 다 만들어진 채로 사람만 가져다 박은 거다.
정윤철: 저런게 드라마다.
황진미: 사진 찍으시는 분이 생각하는 가부장적이고 19세기적인 구도속에다 사람만 박아넣은 것 아닌가.
[정윤철 감독, 평론가에게 묻다] 황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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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난 지금으로부터 18년 전인, 1990년 초 잠시 만났던 적이 있다. 영화공간 1895라는 단체였는데 영화에 관심 있는 젊은이들이 모여 영화도 보고 세미나도 하고 라면도 끓여 먹고 그랬었다. 당시 대학 시험에 막 붙은 나는 어디서 신문광고 같은 걸 보고 그 단체에 불쑥 들어갔다. 어렴풋한 기억에, 영국 유학에서 막 돌아온 전양준(현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이 넘버1이었고 대학 졸업반 김영진은 넘버2나 3쯤 되었던 것 같다. 그는 가끔 나와서 목소리를 깔며 회원들 세미나를 시켜주곤 했었다. 경계심이 드는 인물이라 그 후로 연락은 안 했다. 얼마 후 그는 평론가가 되어 있었고, 내가 영화를 계속 하면서 가끔 보게 되었다.
인터뷰는 광화문 ‘미로스페이스’ 극장과 그 안에 있는 호화로운 바에서 이루어졌다. 동석한 정재혁 기자가 옆에서 실시간으로 타이핑한, 경어와 막말이 뒤섞인 현장의 기록이 왠지 생생한 것 같아 그 분위기 그대로 그냥 구술식으로 정리해 보았다. 김영진 평론가와 독
[정윤철 감독, 평론가에게 묻다]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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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철: 당신이 자주 인용하는 발터 벤야민의 말이 생각난다. 정치적인 것을 미학적으로 다루는 것은 파시즘이고 미학적인 것을 정치적으로 다루는 것은 자본주의라고.
정성일: 그 문장을 김우창 번역으로 스무살에 읽었다. 이후 모든 판단에서 하나의 좌표가 되었던 말 중의 하나다.
정윤철: 영화 자체의 미학과 영화가 갖는 정치성은 늘 대립할 수밖에 없는 문제인가.
정성일: 아니, 그 반대다. 동전의 양면이라고 생각한다. 똑같은 것을 누군가는 미학적으로 이해하고 누군가는 정치적으로 이해하는 거다. 나는 그것을 전적으로 미학의 입장에서 본다면 타락하고, 정치적으로만 본다면 프로파간다가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다루고 있는 것이 예술이라는 사실을 놓치면 안 된다. 우리는 어떤 대상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창조를 다루고 있다. 창조를 다룰 때는 미학과 정치, 혹은 삶과 사회, 혹은 과거와 미래 말하자면 지나간 시간과 도래해야하는 시간, 그 둘 사이의 중재의 문제라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러
[정윤철 감독, 평론가에게 묻다] 정성일 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