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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니 역시 ‘영신’(공효진)은 거짓말쟁이였다.
아무리 청정한 푸른도에서 나고 자랐어도 그렇지, 에이즈에 걸린 ‘쪼매난 메주 딸’(서신애)이랑 치매를 앓는 ‘미스터리 할아버지’(신구)랑 사는 가난한 싱글맘인 그가 팔자 타령 한번 입에 담지 않고 주변의 악의와 공격을 스펀지처럼 슥삭 빨아들이며 ‘고맙습니다’를 외친다는 것은 ‘현실성 빵점’에 가깝다. ‘어른들을 위한 동화’를 표방한 MBC 수목드라마 <고맙습니다>에서 누구보다 이 영신이라는 인물은 동화적이다. 똘똘한 딸내미에게 ‘뻥 까지 마’라며 의심을 사도, 도시에서 온 의사 출신의 고약한 사랑방 손님인 기서(장혁)에게 ‘빙신 같이…’라는 안타까움을 사도 싸다.
그런데 박해받는 예수를 잉태한 성모마리아 같던 영신이 마침내 정체를 고백했다(4월26일 방송). 자신이 무생물이란다. 사람도, 여자도 아니란다. 그냥 돌이고, 돌이라서 감정도 없으니까 불쌍해하지도 말고, 좋아해주지도 말고, 키스해주지도 말란다. 영신은 수줍
어른들을 위한 착한 동화, MBC 수목드라마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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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포레스트 지음 | 열림원 펴냄
‘옛날 옛적에…’라는 말에서 해피엔딩을 기대하는 버릇을 지닌 독자에게, <영원한 아이>는 가장 끔찍한 악몽이 될 수도 있고 또한 가장 아름다운 꿈이 될 수도 있다. <영원한 아이>는 사실 그 해피엔딩의 끝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다. 그들은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았고 예쁜 딸을 낳았다… 그리고 모든 것이 다시 시작된다. 세살 난 딸 폴린이 악몽에서 깨어나 눈물을 쏟는다. 설마설마했던 딸의 증상은 골수염이 되고, 마침내 골육종이라는 악성 종양으로 밝혀진다. 그곳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제 삶은 명료하고 잔인한 동화, 기괴한 채색삽화들이 들어 있는 전설이 된다.
불치병에 걸린 딸과의 마지막 나날을 그린 <영원한 아이>는 투병기가 아니다. 폴린은 흰 가운을 입은 아줌마가 ‘작은 사진들’을 찍고, 때로 기계가 없어서 다른 병원에 앰뷸런스를 타고 가 ‘소리를 내는 사진들’을 찍기도 하지만, 죽음이 삶을 좀먹는 매 순간의
그리하여 삶은 그 의미를 갖는다, <영원한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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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2(수)~15일(화) | 갤러리 아트싸이드 전관
현대인의 생활은 너무나 분주하며 그 바쁜 일상 속에서 허덕임의 연속이다. 하지만 ‘군중에 휩싸여 살아가면서도 도시인은 항상 외롭다’는 말처럼, 현대인의 초상은 소외된 외로움의 상징이다. 오원배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 역시 변방에서 밀려난 듯 측은지심의 개인이거나 군상이다. 짙푸른 청색조 배경과 어울린 인적 잃은 텅 빈 구조체들은 바라보는 시선을 더욱 무겁게 끌어내린다. 그래서 그의 인물은 외로움에 목마른 우리 자신의 자화상일지도 모른다.
2003년 금호미술관 전시 이후 간만에 선보이는 오원배 교수의 개인전. ‘상황의 실존주의적 변주’라는 전시부제처럼 그의 관심사는 ‘현실을 바라보는 직관’과 통한다. 현대인이 안고 있는 근원적인 소외감에 대한 문제를 작가 특유의 감성으로 조형화해내고 있다. 얼핏 오원배의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소외된 군상의 초상으로 비치지만, 결코 절망적이거나 불행하지 않다. 오히려 쉼없이 움직이고, 새로운
소외와 희망의 변주, 오원배 개인전 <상황의 실존주의적 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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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녀복장부터 소녀들의 안경까지 사적이고 은밀한 열광-‘모에’란 무엇인가로리콘을 이해할 수 있는가. 야오이를 이해할 수 있는가. 혹은 10대 소녀 아이돌 그룹이 춤을 추는 무대 앞에서 함께 율동을 따라하는 아저씨의 마음을 100%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는가. 문화는 그 범위가 매우 다양해서 가끔씩 다양성이란 이름으로 포장하기에 무리가 따른다. 다양해서 다양할 수 없는 모순. 최근 인터넷에서, 신문 기사에서 자주 언급되고 있는 모에 문화도 그렇다. 음란하고 변태적이지만 어찌됐던 화제고, 어찌됐던 즐기는 사람들이 있는 문화. 받아들일 순 없다 하더라도 알고 보면 새로운 게 눈에 들어오기도 한다. 어쩌면 이해란 본래 나를 버리고 상대방의 위치에 서는 역지사지의 자세가 아닐까.
‘권상우 모에모에’, ‘미즈호, 초(超)~모에’. 한국의 디시인사이드와 같은 일본의 인터넷 게시판 투채널(www.2ch.net)에는 ‘모에’(萌え)라는 표현이 들어간 게시글이 심심찮게 올라온다. 애니메이션이나 게임
[모에 문화] 당신은 무엇인가에 불타오른 적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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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로비츠를 위하여>에서 어린 경민(신의제)을 쫓다 광호(박용우)의 대걸레에 발이 걸려 엄정화가 세숫대야에 코를 박는 장면이다. 리허설을 수차례 했음에도 엄정화는 촬영 중에 크게 다칠 뻔했다. 모양새를 보면 예쁘게 큰절 하는 것 같기도 하고, 터미네이터가 지구에 떨어지는 모습 같기도 하다. 웃지 않을 수 없는 광경이다. 하지만 스탭으로선 침묵과 무표정이 최선의 반응. 이날 결국 (신)의제가 모니터를 보고 연기가 부자연스럽다고 해서 촬영장이 뒤집어졌지만 말이다.”
[숨은 스틸 찾기] <호로비츠를 위하여> 정화 언니의 큰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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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이란 두 사람, 아니 두 집안의 결합을 토대로 하는 의미있는 약속이다. 하지만 때론 물과 기름처럼 결코 섞일 수 없는 사람들이 한판 대결을 벌이는 계기가 되기도 하는 법. 사돈은커녕 친구가 되기도 힘들 정도로 심말년(조수미)과 박지만(임채무), 버니 퍼커(더스틴 호프먼)와 잭 번즈(로버트 드 니로)는 극과 극이다. 사랑에 빠진 청춘남녀는 한시라도 바삐 가정을 이루고픈 마음에 애가 타지만 부모 허락 없는 결혼이 어디 쉽던가. 이에 왕기백(하석진)과 박은호(유진), 그렉 퍼커(벤 스틸러)와 팸 번즈(테리 폴로)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용감무쌍한 이들 커플이 가족의 반대를 딛고 무사히 결혼식을 올릴 수 있을지. <못말리는 결혼>의 개봉을 맞아 현대판 로미오와 줄리엣을 소개한다.
불운한 커플
못말리는 결혼 가슴성형 전문의 왕기백은 압구정 클럽을 제집처럼 드나드는 부유층 자제. 바지에 오줌을 지린 주제에 정신 제대로 박힌 여자를 못생겼다, 촌스럽다 구박하는 이상한
[VS] 물과 기름의 양동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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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명 이사님과 일을 함께한 것은 딱 한번뿐이었지만,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배움이 되고, 힘이 되는 분이다. 나를 많이 예뻐해주셨는데, 그런 분의 추천을 받으니 영광이다. 게다가 올해는 월드비전 같은 곳을 통해 한달에 1만원씩이라도 아프리카의 어려운 어린이를 돕는 일을 아들과 함께 시작하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아직까지 실행에 옮기지 못했는데 이런 식으로 시작할 수 있어서 너무 좋다. 다음 주자는 김보경씨. 도로시 제작 영화 <기담>의 주인공이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 <여름이 가기 전에>에서 볼 수 있어서 굉장히 반가웠다. 만나보니 사람이 진짜 순진하고 아이 같아서 나이가 서른이라는 게 믿기지가 않더라. 이런 일이라면 눈물을 흘리면서 좋아할 거다. (웃음)
[만원릴레이 85] 도로시 대표 장소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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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은 이루어진다고, 사당동 그 좁은 문화학교 서울의 시사실로도 행복했었는데 필름 영사기가 있는 대극장이라니…. 그러나 예전이나 지금이나 영화상영의 어려움과 경제적 궁핍함은 여전하다. 그래도 치밀한 상상은 현실이 된다니 또 꿈꿔보자. 좀더 다양한 상영프로그램과 풍부한 영상자료와 다양한 주제의 교육프로그램이 공존하는 튼실한 재정구조의 영상문화공간을! 그래도 그 출발은 영화를 즐길 수 있는 마음의 여유에서부터. 여러분! 가끔은 충만한 상상력에 취하거나 현실보다 더 비릿한 영상에서 힘을 얻읍시다. 서울아트시네마는 활력충전소입니다, 우리 삶의….”
[시네마테크 후원릴레이 64] 미디액트 사무국장 이주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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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생긴 얼굴은 첫눈에 드러나게 마련이다. 모 항공사 CF에서 여행길에 만난 할아버지와 건실한 웃음으로 인사를 나누었던 하석진도 영화에서는 자신의 멋진 외모를 첫눈에 각인시켜야 했다. <방과후 옥상>의 카리스마 넘치는 싸움 짱 제구나 또래에 비해 많은 테스토스테론을 분출했던 <누가 그녀와 잤을까?>의 고교생 선수 태요, 모두 첫눈에 강렬한 인물이었다. 그런 하석진이 <못말리는 결혼>에서는 오히려 생머리를 걷고 얼굴을 드러내는 한 여자에게 첫눈에 반한다. 굳게 쥔 주먹을 풀고, 거만한 눈빛에 힘을 뺀 그는 이 영화에서 애교는 물론이고 투정까지 부리며 생애 첫 코믹연기에 도전했다. “교복입고 주먹질하는 배우로만 기억되는, 조금은 지겨웠던 차에 만난 작품이에요. 폼 잡을 필요도 없이 몸이 흐르는 대로 연기하는 모습이 제가 보기에도 편하던데요.”
영화에서는 교복CF 못지않은 태를 드러냈지만, 실제 하석진은 군복도 입어본 스물여섯살의 청년이다. 전투경찰로 보
달려라 청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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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태영은 까만 스키니진을 입고 있었다. <경의선> 기자시사회에서 짧은 미니원피스를 입어 화제를 불러왔던 그는 늘씬했지만 한편으로 수수해 보였다. 미스코리아 출신에 서구적이고 세련된 미인이라는 이미지, 데뷔 초부터 불거진 스캔들. 손태영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또 아무도 모르는 배우이기도 하다. 모두들 그의 사적인 관계에는 지극한 관심을 표했지만 배우인 그가 어떤 꿈을 꾸고 어떤 어려움을 겪었는지는 침묵했다는 점에서. “구설수에 먼저 올랐죠. 어린 나이라서 철이 없기도 했어요. 옆에서 조언을 해주는 사람도 없었고 방송에 대처하는 능력도 없었죠. 당시에는 솔직하게 얘기했는데 편집이 되더라고요. 아, 진짜 무섭구나. 사람 하나 바보 만드는 게 쉽구나. 그때가 큰 고비였어요.” 가십 기사 속 손태영을 떠올린다면 <경의선>은 확실히 의외의 영화다. 눈발이 흩날리는 임진각역, 우연히 만난 남녀가 상처를 반추하며 아픔을 치유하는 과정을 담은 이 작품은 <역전의 명수>
그녀를 보기만해서는 알 수 없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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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전 일본 대중문화가 한국에 알려지기 시작했을 때 톱으로 거론되던 이름은 기무라 타쿠야였다. 2007년 현재, 그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기무라 다쿠야는 한국에 가장 많이 알려진 일본의 아이돌이자, 일본에서도 부동의 아이돌 스타다. 출연하는 드라마가 속속 성공을 거두어 시청률 제조기라고 불린다. 역대 일본 드라마 시청률 톱10 중 1위 <히어로>(34.3%)와 2위 <뷰티풀 라이프>(32.3%)를 비롯해 무려 7개의 작품이 그의 출연작이다. 현재 상영 중인 영화 <무사의 체통>은 4월25일을 시점으로 수익이 40억엔을 넘긴 것으로 추정된다. 흥행제조기로서 기무라 다쿠야의 이름은 부동이다. 일본의 패션지 <앙앙>에서 뽑은 ‘좋아하는 남자’에 13년 연속 1위를 고수하고 있으며, 일본 CM종합연구소의 발표에 따르면 ‘CM 호감도’에서는 7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 캔커피, 자동차, 카메라, 컴퓨터 등 광고 출연도 많아, 광고만으로 ‘기무라
일본 대중문화 최고의 ‘히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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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평화>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을 난 아직 쓸 수 없다. 그것만은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절대로 쓸 수 없다. 마음만은 다다랐어도 그것을 계속 유지할 역량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슬프지 않다. 나는 오래 살 생각이다. 해볼 작정이다. 이 각오도 요즘 겨우 섰다. 나는 문학을 좋아한다. 이것은 대단한 일이다. 이것을 놀려서는 안 된다. 좋아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다자이 오사무가 <나의 소소한 일상>이라는 에세이 모음집에 쓴 글이다. 저 글을 쓸 때의 다자이 오사무는 갓 서른 이 된 나이로, 자살에 성공하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은 상태다. 자학적으로 보일 정도로 우울하게만 보였던 남자가 사실 저렇게 투지를 불태운 때도 있다는 사실은 놀랍기까지 하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을 읽은 사람이라면 반세기쯤 앞선 그의 ‘루저 근성’에 혀를 내둘렀을지도 모르겠다. 사소설을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다자이 특유의
[칼럼있수다] 쿨함에 반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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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염하고 기품있으며 시, 서, 화에 능했던 진정한 예술가. 그 재능과 그릇이 크고 넘쳤기에 16세기가 차마 다 품지 못했던 여인. 황진이는 성춘향, 장희빈과 더불어 한국의 웬만한 여배우들이 모두 욕심냈던 캐릭터다. 하지만 황진이는 역사에 기록된 것이 거의 없기에, 관점에 따라 요부도 될 수 있고, 뛰어난 예술인도 될 수 있을 정도로 해석의 여지가 다양하다. 그러니 각본가, 감독의 시선은 물론이고, 누가 연기하느냐에 따라 황진이란 인물의 색깔은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최근 송혜교 주연의 <황진이>(장윤현 감독)가 조금씩 공개되면서 관심이 증폭되고 있는데, 이참에 역대 황진이에 대해 간략하게 정리해볼까 한다.
초대 황진이는 조긍하 감독의 <황진이>(1957)로 데뷔한 도금봉이다. 도금봉 하면 풍만한 육체와 요염한 마스크가 먼저 떠오를 것이니, 이때의 황진이가 어떤 풍모를 띠었는지 쉽게 상상이 갈 것이다. 도금봉에 이어 강숙희가 1961년 <황진이의 일생&g
[배워봅시다] 황진이, 도금봉에서 송혜교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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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이 주룩주룩>
쓰마부키 사토시는 아마도 눈물을 가장 아름답게 흘릴 줄 아는 남자배우 중 한 사람일 것이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서, 그는 막무가내로 울음을 터뜨리는 연기를 가슴 저리게 소화해냈다. 제목부터 눈물을 예측하게 하는 <눈물이 주룩주룩>은 일본에서 지난해 9월 개봉해 30억엔 이상의 극장수익을 올린 순애보 영화. 피가 섞이지 않았지만 여동생으로 커온 여인과 사랑에 빠지는 비련의 주인공을, 쓰마부키 사토시가 눈물로 연기해낸다.
<봄의 눈>
<봄의 눈>이 처음 한국에 공개된 것은 2005년 부산국제영화제 때의 일이다. 쓰마부키 사토시는 순애보의 주인공을 소화한 이 영화로 부산을 방문, 한국 소녀팬들에게 뜨거운 환호를 받았다. 백작 가문의 사토코(다케우치 유코)는 소꿉친구인 후작 가문의 마츠가에 키요아키(쓰마부키 사토시)를 마음에 품고 있다. 사토코의 간절한 마음에도 아이처럼 잔인한 키요아키는 흥미
[VS] 순애보 속 쓰마부키 사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