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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리양 감독이 최근 폐막한 서울국제영화제에 맞춰 한국을 찾았다. 서울영화제에서 선보인 <맹산>은 인신매매범에게 속아 산골 마을에 신부로 팔려가 겁탈당한 뒤 갇혀 사는 한 여인이 자유를 향해 탈출을 벌이는 이야기를 그린다. 올해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서 상영돼 5분 이상의 기립박수 세례를 받았던 이 영화는 중국 광산에서 벌어지는 비인간적인 상황을 생생하게 묘사한 데뷔작 <맹정>(2003)의 연장선 위에 놓여 있다. 거듭되는 실패와 갖은 고초 속에서도 자유를 위해 산골을 탈출하고 또 탈출하려는 <맹산>의 여주인공은 마흔이 넘은 나이에 데뷔했지만 묵묵하게 “중국의 현실을 고발하고 최하층민들의 삶을 보여주는” 영화를 꾸준히 만들고 있는 리양 감독 자신인지도 모른다. 2003년 부산영화제와 올해 칸영화제에 이어 세 번째 만남을 갖게 된 것은 그런 궁금증을 시간의 여유를 가진 채 풀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칸영화제에서 만났을 당시 <맹
[리양] “순수했던 사람들의 인성이 변하는 모습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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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의 세계대전, 현대의 비합리성을 증명하는 대표적인 역사적 사례 나치즘, 분단과 통일과 그로 인한 후유증까지 이어지는 냉전과 탈냉전의 상처…. 이 정도면 서구사회가 걸어온 근현대의 모든 그늘이 독일에 집중되었다고 말해도 좋을 정도다. 10월10일부터 14일까지 필름포럼에서 열리는 ‘독일 다큐멘터리 특별전: 과거를 바라보며’의 의도는 그 이름만큼 명확하다. 지구 반대편의 동시대 관객으로서는 교과서와 신문에서 간간이 접했던 그들의 육성을 들어볼 수 있는 기회이며, 그들 못지않게 파란만장한 현대사를 살아온 우리로서는 영화가 역사와 시대를 이야기하는 방법의 다양성과 가능성에 대한 성찰의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주한독일문화원과 필름포럼 등이 공동 주최하는 이번 행사는 올해 야마가타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같은 제목으로 상영된 특별전을 고스란히 옮겨온 결과물. 대부분 2000년 이후 만들어진 총 10편의 영화가 세개의 섹션으로 나뉘어 관객을 만난다. 각각의 섹션을 연대별로 살피자면, 나
독일 근현대사의 그늘을 마주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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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단침입> Breaking and Entering
영국영화협회 회장인 앤서니 밍겔라가 정작 영국이 배경인 영화를 거의 찍지 않았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다. 밍겔라는 <무단침입>을 찍으면서 데뷔작 <유령과의 사랑> 이후 오랜만에 런던으로 돌아갔다. 게다가 직접 쓴 오리지널 각본으로 작업한 것 역시 데뷔작 이후 처음이었으니 여러모로 감회가 새로웠을 법하다. 이탈리아에서 이민 온 가족 출신인 밍겔라는 어렸을 때 힘들게 살았으나, 성공한 예술가의 삶을 사는 지금의 그에게 빈민가의 삶을 접할 기회는 드물다. 밍겔라는 다양한 언어와 민족과 계층이 혼재하는 바깥세상과는 상관없는 양 좁은 영역 안에 묻혀 사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뒤 고백하듯이 <무단침입>을 만들었다. 사람들은 살고 있는 곳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익숙한 행동반경 밖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한번 겪고 나면 그동안 무지했음을 깨닫게 된다.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한 <무단침입
네 이웃과의 소통을 두려워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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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있음
이프 유 원트님(이동진 lifeisntcool@naver.com)이 입장하셨습니다.
음악남녀님(김혜리 vermeer@cine21.com)이 입장하셨습니다.
음악남녀님의 말(이하 음악): 오늘은 음악영화 <원스>와 곽경택 감독의 <사랑>을 이야기하고 <인베이젼>에 관한 소감을 덧붙이겠습니다. <원스>를 보고 나서 자꾸 머리에 맴도는 노래가 있어요. 양희은씨의 <옛날에 옛날에>라는 곡인데요. “옛날에 옛날에 사랑을 했는데 그 사랑이 사랑일까 내가 몰라 물었더니 사랑이 아니란다.” 이런 노랫말이죠.
이프 유 원트님의 말(이하 이프): “옛날 한 옛날에 얼간이 살았는데…”로 시작하는 노래는 생생히 떠오릅니다만. 제 대화명도 <원스>에서 받은 감동을 그대로 무릎 꿇고 올리는 오마주입니다. 여주인공이 밤거리에서 부르던 노래의 제목이죠. 영화 속 노래들이 다 좋지만 특히 그 곡이 그리도 가슴에 꽂히더이
[메신저토크] “두 사람의 절절한 소통을 눈 앞에서 목격하는 느낌을 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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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V무비에서 메이저영화까지 가리지 않고 한해에 두세편의 영화를 만들어내는 미이케 다카시 감독의 <용이 간다>는 독특한 스타일의 영화다. 플레이스테이션2 성인용 게임 <용과 같이>( 龍が如く)를 영화화한 작품인데, 보통 게임에 기반을 둔 영화들이 매끄러운 스토리 전개로 게임의 단절적인 서사를 넘어서려는 태도를 보이는 반면에 미이케의 작품은 과장된 캐릭터와 개연성에는 크게 구애되지 않는 게임의 속성을 영화에 고스란히 끌고 들어왔다. ‘영화가 예술이 아니라 엔터테인먼트다’라며 감독의 자의식이 지나치게 드러난 영화는 ‘재미없다’고 거침없이 말하는 감독의 태도를 반영이라도 하듯이 이 영화는 재미를 위해 다소 황당무계한 에피소드들을 빠른 속도로 이어나간다.
스즈키 세이준의 <도쿄 유랑자>의 주인공이 다시 살아 돌아온 것 같은, 전설적인 야쿠자 키류 카즈마(기타무라 가즈키)가 10년간의 복역을 마치고 카무로쵸에 돌아오자마자 은행에 보관되어
‘싸나이’들의 액션 <용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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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마스크는 소품용으로 준비했던 게 아니다. 기념사진 한장 찍으려고 했더니 너무 밋밋하다며 봉태규씨가 <광식이 동생 광태>의 김현석 감독이 착용하고 있던 마스크에 먼저 입을 그려넣었다. 그렇게 주거니받거니. 감독은 배우의 입을, 배우는 감독의 입을 만드는 걸 보면서 감독은 카메라 뒤에서 배우의 입을 열게 하고, 또 배우는 스크린에서 감독 대신 입을 여는, 서로 공생의 관계임을 보여주는 것 같아 흥미로웠다. 물론 감독과 배우 이전에 인간적인 통함이 깔려 있다면 공생은 더욱 쉬울 것이다. 봉태규씨는 촬영이 없어도 현장에 나와서 감독님의 말벗은 물론 PS2를 함께하는 등 내조를 톡톡히 했다.”
[숨은 스틸 찾기] 현석이 동생 태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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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는 두개의 이야기로 직조된 공포 멜로다. 김민숙 감독이 맡은 첫 번째 부분에서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논개의 이야기가 재해석된다. 만약, 일본 장수를 껴안고 절벽에서 뛰어내렸던 논개의 시도가 실패로 끝났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영화는 일본군에 연인을 잃고 복수를 다짐하던 한 여인이 그마저 실패한 뒤, 혼령이 되어 지상을 떠돈다는 설정으로 시작한다. 그녀의 한은 핏물이 되어 일본 장수 기무라 주변을 맴돌고 그는 점차 광기로 치닫는다. 감독이 밝힌 대로 영화는 역사적인 관점을 취하는 대신, 사랑을 둘러싼 인간의 내면을 심리적 공포를 통해 재현하는 데 공을 들인다. 특히 나비를 모티브로 사랑, 죽음, 광기 등의 관념을 형상화하는 영화의 미학은 눈여겨볼 만하다. 상상력 역시 기발하지만, 짧은 시간에 방대한 이야기를 끌어안다보니 종종 비약적인 전개가 거슬린다. <편지> <산책> 등을 연출했던 이정국 감독이 만든 두 번째 이야기는 과거에서 현재의 시점으
욕망이 빚어낸 공포 멜로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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칙칙한 그림자가 온 지구면을 덮고 있는 요즘, 채털리 부인의 해피엔딩을 향해 데이비드 매킨지 감독의 <어사일럼>은 이렇게 묻는다. “욕망을 억압하는 신분사회로부터 ‘영원히’ 도망갈 수 있을까? 정신과 의사와 교도관들이 지배하는 ‘어사일럼’(정신병에 걸린 범죄자들의 수용소)의 ‘외부’라는 것이 있기나 한가?”
1950년대 영국 북부의 한 ‘어사일럼’. 정신과 의사인 남편(휴 보네빌)을 따라 아들 찰리와 함께 사택으로 이주해온 스텔라(나타샤 리처드슨)는 무료하기만 하다. 출세주의자에 질투심 가득한 남편은 일에만 몰두하고 다른 의사 부인들과의 친교는 의례적이기 때문이다. 어느 날 사택 정원을 가꾸던 에드가(마튼 크소카스)와 그녀의 눈이 마주치고, 둘은 걷잡을 수 없는 관계로 치닫는다. 줄거리의 앞부분은 감시의 눈길을 피해 둘이 벌이는 긴박감있는 옥외정사에 할애되고, 후반부는 연이은 두 남녀의 탈출과 탈출 이후의 여정에 할애된다.
고전이 된 <채털리 부인>의 도
채털리 부인의 해피엔딩 <어사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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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라드 장르로 편곡된 ‘영웅 판타지 칸타빌레’가 안방극장의 사극 메뉴를 감미롭게 물들이고 있다.
현재 MBC <태왕사신기>, MBC <이산> 등 제작진과 캐스팅의 솔깃한 크레딧으로 그 어느 때보다 배부른 사극의 풍년기를 장식하고 있는 주자들은 광개토대왕의 빛나는 정복사나 정조대왕의 개혁적인 리더십 같은 교과서식 밑줄긋기보다 일단은 영웅의 연인화(化)로 더 매혹의 광채를 반짝이고 있다.
<태왕사신기>의 배용준과 <이산>의 이서진은 도포자락으로 왕자 복근을 가리고 반갈래로 묶거나 단정하게 상투를 틀어올려 시점이 과거임을 증거하고 있지만, 그것만 털어내면 ‘타임머신’의 격차와 역사적인 실재성을 뛰어넘는다. 무엇보다 발성은 우렁차고 볼 일이라는 사극 남자주인공의 선 굵은 전형도 깼다.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와 젖은 눈빛으로 권위의 마초형 영웅이 고린내 나는 골동품임을 확인 사살한다. 태자, 혹은 세손 상태로 영웅의 병아리 시절을 관통 중인 이
말랑말랑 로맨스 대왕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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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10월13일(토) 밤 11시
서른으로 가는 길목, 스물아홉살의 여인들은 왜 그토록 불행한가? 아니, 스스로 기꺼이 불행을 껴안고 서른이 자신을 집어삼키는 순간을 상상하며 두려움에 떠는가? 일찍이 누군가는 서른에 이미 잔치가 끝났다고 선언했다. 누군가는 심장이 딱딱하게 굳어가는 것 같다고 고백했고, 또 누군가는 9회말 투아웃이라고 외쳤다. 그뿐인가. 요즘처럼 책 안 읽는 시대에도 불티나게 팔리는 ‘여성자기계발 백서’는 여자 나이 스물아홉에서 서른을 인생의 전환기, 무언가 대대적인 변혁을 실행해야만 하는 인생의 결정적인 순간이라고 재차 강조한다. 이러한 무서운 가르침 앞에서 언니들은 어이없게도 십대 소녀 시절을 향수하거나, 세상을 냉소하며 무력감에 빠지거나, 서른 이후에 모든 것을 걸며 미친 듯이 자기투자에 몰두한다. 아무튼 스물아홉 먹은 여인은 스물아홉 번째 해를 살지 않고 과거를 살거나 미래를 산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이 모든 건 상술이다. 텔레비전과 책과 글들은 스물아홉
스물아홉의 성장통, <파니 핑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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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편견> <센스, 센서빌리티> <설득> 등. 제인 오스틴의 여자들은 항상 돈과 사랑을 두고 겨룬다. 극성인 어머니와 예의와 이성에 따라 행동하려는 딸의 구도로 벌어지는 싸움이지만 이는 그 시대 여성들이 고민해야 하는 상반된 두 가지 요소를 반영한다. 가부장 중심적인 사회에서 좋은 가문과 결혼해 지극히 평범한 삶을 이어갈지, 자신의 감정과 사랑을 존중해 결혼의 상대자를 고를지. 간혹 ‘그래봤자 시집 잘 가기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냐’는 비판이 있기도 하지만 이는 동시에 제인 오스틴의 여자들이기에 제기할 수 있는 문제다. 현실을 고민한다는 건 현실을 불편하게 느낀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결혼할 나이가 됐지만 남자보다 글쓰기에 관심이 더 많은 여자 제인 오스틴(앤 해서웨이)은 런던에서 온 법학도 톰 리프로이(제임스 맥어보이)와 사랑에 빠진다. 처음엔 자신의 글을 비판했던 리프로이에게 반감이 컸지만 그가 건넨 H. 필딩의 소설 <톰 존스>
제인 오스틴 되기의 어려움 <비커밍 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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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닉 우먼>
국내 미 방영
미국 <NBC> 수요일 밤 9시(동부 기준 시각)
추석 연휴 기간에 갑자기 생긴 출장 때문에 찾은 뉴욕은 새로운 시즌의 시작을 알리는 각종 미국 드라마의 옥외 광고들로 가득 차 있었다. 기존 방영되던 시리즈 중에서는 도시가 도시인 만큼 <CSI: 뉴욕>의 광고물들과 함께 첫 번째 시즌에서 대박을 건진 <히어로스>와 <덱스터>의 옥외광고물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특히 <덱스터>는 타임스스퀘어 한복판에 ‘미국이 가장 사랑하는 연쇄살인범’이라는 커다란 부제와 함께 피묻은 얼굴을 한 채 씨익 웃고 있는 주인공의 모습을 내걸어 행인들의 시선을 잡아당기는 중이었다.
한편 새롭게 시즌을 시작하는 드라마의 광고들도 많았는데, 70년대 인기 시리즈인 <소머즈>(The Bionic Woman)의 리메이크로 기대를 한몸에 받은 <바이오닉 우먼>(Bionic Woman>)과
[이철민의 미드나잇] 소머즈는 부활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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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의 초고를 악보에 옮겨적는 과정을 뜻하는 제목의 영화 <카핑 베토벤>은 베토벤 교향곡 중 최고작이자 최후작인 <합창>이 만들어질 당시, 여류작곡가 지망생이 함께했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외모는 물론 거동 하나하나까지 베토벤의 환생인 듯한 에드 해리스, 베토벤과 교감하는 총명한 여인으로 눈을 반짝이는 다이앤 크루거의 연기는 물론 발군이지만, <카핑 베토벤>의 가장 큰 감동은 뭐니뭐니해도 <합창>의 초연장면을 커다란 스크린이며 풍부한 사운드로 감상하는 순간에 있다. 여성예술가의 존재 자체가 불가능했던 지난 예술사에 대해 재기어린 반문을 던지는 아그네츠카 홀랜드(<유로파 유로파> <비밀의 화원>)의 복화술 또한 의미심장하다.
베토벤에게 매료되다 <카핑 베토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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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라 멀비가 ‘시각적 쾌락과 내러티브 영화’라는 유명한 논문을 <스크린>이란 잡지에 발표한 것은 1975년의 일이었다. 이로부터 거의 30년이란 시간이 흘렀지만 사람들은 멀비라고 하면 우선 찬사와 비판을 동시에 받았고 현재에도 계속해서 읽히고 있는 그 논문부터 자동적으로 떠올린다. 비록 그동안 멀비가 그 논문으로 계속 돌아와 수정하고 확장하는 작업을 했지만 한편으론 이것 또한 부당한 일로 여겨진다. <1초에 24번의 죽음>이란 멀비의 최근 저서는 이런 생각부터 떠올리게 된다. 이 책에서 우리는 굳이 ‘남성적 응시’에 대한 가혹한 이론 안에만 갇혀져 있지 않은 멀비, 그러면서 도발의 목소리보다는 성찰의 목소리를 내는 멀비를 보게 된다.
<1초에 24번의 죽음>이란 책은 우선 그 흥미진진한 제목부터 눈길이 가게 한다. 이것은 시네필이라면 대략 짐작하겠지만 장 뤽 고다르의 영화에서 가져온 것이다. <작은 병정>(1960)에서 고다르는 ‘영화란
지금, 영화를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