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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장 공관에 설치된 1000호 크기 소나무 작품, 김대중 전 대통령이 유난히 아꼈던 화가라고 잘 알려진 강연균(65) 화백. 그는 45년째 수채화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물로 그리는 수채화야말로 친환경적이고 과학적인 예술”이라고 말하는 그의 수채화 사랑은 유별나다. 그래서일까, 그림으로 전하고 싶은 메시지 역시 “가장 착한 것은 물과 같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다투지 않고 뭇사람이 싫어하는 곳에 자리한다. 그러므로 도에 가깝다”라는 <노자도덕경>의 한 구절이라고 한다.
수채화는 미술을 처음 접하게 되는 첫 관문. 어릴 적 미술 수업을 통해 수채화를 그려보지 않은 사람은 한명도 없을 것이다. 그만큼 그림을 이해하고 친숙해지는 데 수채화만한 화법이 드물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구나 편하게 수채화를 다룬다고 해서 수채화가 다른 미술 기법에 비해 훨씬 수월하다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오히려 무궁무진한 응용기법을 가장 많이 지닌 것 또한 수채화일 것이다. 가령 수채화는 맑고
물빛으로 그린 가을의 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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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카 베인(조디 포스터)은, 세상에서 가장 안온하고 아름다운 도시 뉴욕을 예찬하는 라디오 DJ다. 또 그녀는 연인 데이비드(나빈 앤드루스)와 결혼을 앞둔 행복의 정점에 서 있다. <브레이브 원>의 첫 소절은 넘치게 감미로워, 참혹한 비극의 전조임을 대번 눈치챌 수 있다. 청첩장을 고르던 날, 에리카와 데이비드는 센트럴 파크로 산책을 나섰다가 불한당 패거리들에게 이유없이 습격당한다. 무자비한 구타는, 데이비드의 숨을 끊고 에리카의 육신을 짓이겨놓는다. 요즘 뉴욕의 치안 상태에서는 있을 법하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단지 기념하고 자랑하기 위해 범행을 비디오카메라로 촬영하는 불량배들의 행태는, 이 영화가 요즘 이야기임을 강변한다. 3주간의 혼수상태에서 에리카가 깨어나면, 영화는 곧장 그녀의 주관에 밀착한다. 겨우 회복한 에리카가 거리로 나서면 카메라는 휘우뚱 기울고 음향은 거슬리게 과장된다. 그녀의 눈에 이제 모든 행인은 잠재적 야수다.
닐 조던 감독의 관심사는 애인 죽인
범죄와의 개인적인 전쟁 <브레이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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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만화] <인베이젼> 외계인들, 사막에 운집하다
[정훈이만화] <인베이젼> 외계인들, 사막에 운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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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가 왔다. 전편 <박치기!>에서 60년대 교토를 활보하던 조선의 젊은 주먹이자 재일 한국인인 안성(이사카 슌야)은 이제 교복을 벗고 성인이 되었으며 어린 아들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도쿄로 이주한 뒤 동분서주하며 살아가고 있다. 아내는 이미 세상을 떠난 뒤다. 그 즈음 동생 경자(나카무라 유리)는 우연히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연예인의 길을 걷게 된다. 안성과 경자의 현재 이야기가 전개되는 사이, 그들의 회상을 통해 안성의 아버지 진성(송창의)이 어떻게 징병거부와 탈영을 거듭하다 고향땅 제주도를 떠나 일본에 정박하게 되었는지가 덧붙여진다.
<박치기! 러브&피스>는 전편과 많은 부분 다른 시도를 한다. 연출은 여전히 이즈쓰 가즈유키가 맡고 있지만 그 밖의 주요 역은 모두 다른 배우들로 교체되었다. 캐스팅의 여건을 제외하더라도 새로운 배역의 힘에서 다시 시작하고 싶어한 제작 의도가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전편에 비해 그리 성공
재일 한국인, 스스로의 이야기 <박치기! Love & Pe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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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미술’이란 용어는 영국의 미술 행정가 존 윌렛이 1967년 <도시 속의 미술>(Art in a City)이란 책에서 처음으로 사용했다. 이 시기에 건축계에서는 예술가로서의 건축가가 아닌 사용자 중심(Action Planning)의 설계방법이 등장했고, 의료계에서도 의사 중심의 의료체계에서 환자 중심의 의료체계(People-centered medicine)로, 건축이나 미술, 의료계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장르에서 ‘공공성’이란 개념을 정의하기 시작했다. 당시 유럽 지식인들 사이에서 공유되었던 공동체적 가치를 찾는 이러한 노력은 이후 유럽을 열정의 시대로 몰아넣었던 ‘68혁명’으로 표출된다.
당연히 존 윌렛의 ‘공공미술’은 전시장 안에 갇힌 미술품들을 바깥으로 끌어내려는 단순한 시도가 아니었다. 오히려 윌렛은 전시장 안의 미술과 전시장 밖의 미술을 철저하게 구분하며 ‘공공미술’이란 용어를 사용했다. 즉, 전시장 미술이 화상과 큐레이터, 컬렉터 등의 소수의 전문가들을 위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더 낮은 예술가, 더 넓은 공공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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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만한 사람들을 알테지만 <씨네21>에서 함께 발행하는 <넥스트 플러스>는 아트플러스 극장에서 개봉하는 영화들을 소개하는 잡지다. <씨네21> 기자 중 몇명이 이 잡지를 만드는 전담반으로 배치돼 맹활약(?)하는 중인데 올해 봄쯤이었나, 동기 기자에게 바통을 넘겨받은 내가 <넥스트 플러스>팀에 합류했다. 가장 큰 어려움은 1주에 한번씩 돌아오는 <씨네21> 마감에, 2주에 한번씩 돌아오는 <넥스트 플러스> 마감이 겹친다는 것. 게다가 ‘관객 IN 아트시네마’라는 작은 고정꼭지를 전담하고 있는 나로선 매번 극장가를 돌며 인터뷰이를 유치해야 하는 부담 역시 만만치 않다.
물론 이 꼭지의 취지 자체는 아주 훌륭하다. 씨네큐브, 미로스페이스, CQN명동, 스폰지하우스 중앙, 스폰지하우스 압구정 등. 각 극장들을 순회하면서 느끼는 것인데 작은 영화를 보려는 관객은 그리 많지 않다. 멀티플렉스와는 달리 상영관에 들어가려고 길게
[오픈칼럼] 관객 IN 아트시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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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만화의 5할을 영화에서 배웠다. 건담이 아니라 SF영화들을 보면서 SF만화를 생각했고 영화 연출책을 읽으며 만화의 연출을 연구했다. 결국 대학원도 영화쪽을 선택했고 짧은 시간이지만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다(학업은 일본에서 연재를 하면서 중단해야 했다). 영화는 내 만화의 5할이기 때문에 결국 내 인생의 5할이다.
그리고 그 영화에서 가장 많은 것을 중학 2학년 때 얻었다. 그해 초, 극장에서 <에이리언2>를 보고 돌아와선 그리던 만화를 폐기하고 처음부터 다시 그렸다. <영웅본색2> <프레데터> <로보캅> <다이하드>를 여름에서 겨울에 걸쳐 봤다. 그중 특히 <프레데터>가 나의 만화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전해에 소년들 사이에서 <영웅본색>의 캘린더(명함처럼 생긴)는 최고가를 달렸다. 그래서 나는 극장에 홀로 <영웅본색2>를 보러 갔다(데뷔하기 전까지 언제나 혼자 영화를
[내 인생의 영화] <프레데터> -만화가 박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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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락 안 받고 몰래 찍은 뒤 삼십육계 줄행랑치면 도둑촬영. 귀한 배우 스케줄 맞추느라 허겁지겁 오케이 부르면 날림촬영. 그렇다면 ‘조각보’ 촬영은 뭘까. 도대체 ‘조각보’가 무엇이기에, 지금으로부터 30여년 전 한국영화를 망치는 원흉이라고까지 지목됐을까. 1970년 11월3일에 열렸던 한국영화인협회 제7차 임시이사회. 긴급소집한 영화인들은 ‘이구동성으로’ 위장합작영화를 충무로에서 몰아내야 한다면서, “한·홍 합작영화치고 위장합작 아닌 영화는 한편도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당시 극장 상영 중이던 <아빠는 플레이보이>(명보극장 개봉, 관객 수 2만3969명) 등을 지목하며, 몰지각한 영화 제작자들이 ‘야바우적 방법론’을 동원해 홍콩제 영화를 한·홍 합작영화로 둔갑시켰다고 비판했다. 이른바 ‘조각보 촬영’은 ‘야바우적 방법론’의 최신 기술. <아빠는 플레이보이>와 비슷한 시기에 개봉했던 <2대 검왕>처럼 영화사에서 한국 배우(이자영)의 성을
[한국영화 후면비사] ‘짝퉁’ 영화 전성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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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다. 지난해 이맘때, 누군가는 영화가 연애를 걸어온다며 행복하게 하소연했지만, 나는 망설이고 있었다. 습한 무더위와 영화 한편이 불러일으킨 소란과 정치와 종교의 파노라마를 애써 견뎠을 뿐인데, 여름은 어느덧 가버렸다. 공포영화보다 끔찍하고 액션영화보다 자극적인 온갖 사건들 틈에서 이상하게도 눈은 점점 더 무뎌지고 있었다. 불길한 징조. 추석을 겨냥해서 극장에 걸린 영화들을 흘낏 지나치면서 그 영화들과 대면하는 순간을 어떻게든 미뤄야겠다고 중얼거렸다. 그러나 어쩌다보니, 결국, 추석을 겨냥한 거의 모든 (한국)영화들을 보고 말았다. 갑작스럽게 가을의 첫 번째 다짐을 철회하며 여섯편의 영화를 떠돈 뒤, 2007년 후반기, 아니, 정확히 말해 <디 워>와 <화려한 휴가> 이후 한국영화의 몇 가지 흐름을 발견했다. 그 흐름을 읽어내는 일은 흥미로웠지만, 스크린 앞에 쓸쓸하게 앉아 있던 나는 별로 행복하지 않았다. 말하자면 매번 예의 바르게 사양하고 싶었던 이 가을
[영화읽기] 한국영화, 불길한 징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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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1일, 베벌리힐스의 스크리닝 룸에서 칵테일 파티와 함께한 <브레이브 원>의 기자시사회. 시사가 시작되기 전 감독인 닐 조던과 프로듀서 조엘 실버가 들어섰다. 가죽 재킷을 입고 굳게 입을 다문 닐 조던과 캐주얼 남방셔츠를 걸쳐 입고 사람 좋은 미소를 짓고 있는 조엘 실버. 묘한 조화를 이루는 두 사람이었다. 먼저 무대에 오른 조엘 실버는 디지털 후반작업이 프로덕션보다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영화들과 달리 <브레이브 원>은 카메라가 보는 그대로 잡아낸 작품이지만 그 화면은 어떤 작품보다도 시적인 것 같아 무척 만족한다며 웃음 짓고는 감독을 소개했다. 무언가 생각이 많은 표정의 닐 조던은 이 시나리오를 선택한 것은 주인공이 처음 살인을 한 날, 집으로 돌아와 자신 안에 존재하는 또 다른 모습과 대면하는 장면 때문이었다며 간단하게 인사를 마쳤다. 조디 포스터와 테렌스 하워드가 호흡을 맞춘 <브레이브 원>은 결혼을 앞두고 단꿈에 젖어 있던 라디오 진행자
[현지보고] “나에게 정의란 결국 복수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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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좋아한 사람에게는 웬만한 과오나 실수도 용서하고 한번 찍힌 놈은 영원히 찍힌다는 아시아적 가치를 존중하는 나는 배우에 대한 평가를 하는 데 있어서도 이 가치를 적용하곤 한다. 브래드 피트인데 좀 후진 영화에 나오면 어떤가. 정킷에서 브래드 피트를 만난 사람이 “말투가 경박하고 유머감각도 유치하던데”라고 말하는 걸 들었지만 뭔 상관이란 말인가. 그럼 완벽한 외모의 소유자가 비트겐슈타인까지 인용해서 대화를 해야겠어? 그랬다가는 전세계 500명 이상의 암살자가 그의 목숨을 노리게 될걸?
브래드 피트의 반대 급부에 그와 절친한 동료 맷 데이먼이 있었다. 그 이유는 잘 아실 것이다. 가까이 가면 땀냄새와 발냄새가 진동할 거 같은 옆집 하숙생 오빠를 내가 7천원을 내고 봐야겠냐는 말이다. 사실 그보다 결정적인 이유가 있었다. 그를 유명 배우로, 또 작가로 알린 <굿 윌 헌팅>이었다. 하버드 출신이 이런 걸 쓰고 또 자신이 주연을 했다는 게 한심하고 유치해 보였기 때문이다.
[냉정과 열정사이] 급호감, 맷 데이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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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베이징 영화계 유일한 화제는 장원(姜文) 감독의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이다. 부산국제영화제(그 영화가 또한 상영될 곳이지만)에 오기 전에 ‘베이징 스크리닝’ 행사에 들르기 위해 중국 수도에서 잠깐 머물 동안 장원과 그의 최근 영화가 대화에 오른 횟수는 셀 수 없을 정도였다.
올해 칸영화제에서 거부당한 이후 <태양은…>은 베니스영화제에서 9월3일 월드 프리미어를 했고, 비평가들의 반응은 극도로 갈렸다. <태양은…>이 상을 받지 않았을 때 아무도 놀라지 않았다. 하지만 더 불리하게도 또 다른 중국어영화인 리안의 <색, 계>가 상을 탔다.
<태양은…>이 9월11일 공식적인 베이징 프리미어를 가지고 나서, 장원과 영화에 대한 비난의 칼들이 갈리고 있었고, 지역 배급사는 일반 개봉일자를 한주 앞당겨 9월14일로 잡았다. 270벌의 디지털판을 가세하여 대규모 릴리즈인 400벌의 프린트가 만들어졌고, 엄청난 홍보가 곁들여졌다.
[외신기자클럽] 중국 영화계, 대인이 필요한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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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19일부터 23일까지 베를린에선 아시아여성영화제가 열렸다. 재독한국여성모임이 주최한 이 행사는 황해도 축원굿에 이어 대만 감독 제로 추의 <스파이더 릴리>로 막을 열었다. 베를린영화제가 열리는 포츠다머광장에 위치한 아르제날영화관에서 진행된 이번 영화제에서는 현대사회, 여성, 이주, 노동, 세계화를 주제로 한 아시아 8개국의 영화 30여편이 상영됐다. 특히 서울여성영화제에 출품되었던 단편, 다큐멘터리영화들이 선별되어 소개됐다. 또한 <자유부인> 등 한국 근대화 속의 여성상을 보여주는 50, 60대 한국 고전영화 다섯편도 독일에선 처음으로 선보였다. 60, 70년대 독일에 온 간호사, 유학생 출신 여성들이 주축을 이루는 재독한국여성모임은 “이 영화제를 통해 지금까지 아시아 여성에 대한 유럽인의 고정관념을 깨고 현재의 다층적이고 모순적인 아시아 여성의 모습을 전달”하고자 한다고 취지를 밝혔다.
베를린 유학 당시 재독여성모임에서 활동했던 이혜경 서울여성영화
[베를린] 독일 은막에 비친 아시아 여성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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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스>를 뮤지컬이라 부르자니 망설여진다. 뮤지컬 하면 화려한 무대에 어우러진 춤과 노래를 떠올리게 되는데 <원스>는 우리가 익히 아는 뮤지컬과 거리가 멀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차이. <원스>에는 주인공의 심경을 담은 노래는 있지만 시선을 사로잡는 황홀한 무대도, 근사한 춤도 없다. 공연예술의 양식적 아름다움에 관심이 없는 이 영화는 뮤지컬의 특징 가운데 오직 노래의 힘을 빌려왔다. 그것도 기타 하나로 충분한 노래. 아마도 <원스>를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원칙은 꼭 악기가 많아야 좋은 음악은 아니라는 생각이 아닐까. 대부분 기타 하나로 충분하고, 피아노로 보완되는 정도면 충분한 영화 속 노래처럼 <원스>는 이것저것 한눈팔지 않고 자신이 잘 아는 것에 충실하다. 기타와 피아노가 있고 남자와 여자가 있으면 된다. 영화 속 배경은 더블린이 아니라 어디여도 상관없다는 듯 풍경에 무심하며 두 주인공을 둘러싼 인물들도 필요한 대목에만 그럴
[편집장이 독자에게] 강추! <원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