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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6월, 당시 나는 가스총을 허리에 차고 있던 은행 청원경찰이었다. 군 제대 뒤, 아르바이트를 찾던 차에 어머니 친구분의 권유로 하게 된 일이었다. 처음에는 편하게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뿐이었는데, 나는 점점 나름의 성취감을 얻기 시작했다. 아침에 인출기에 넣은 돈과 저녁때 빼낸 돈의 차액이 정확히 들어맞거나, 수표에 도장을 찍으면서 내 스스로 리드미컬한 움직임을 느낄 때. 또 전표 작성을 도와드린 할머니가 우유나 사먹으라며 꼬깃꼬깃 접은 1천원짜리를 내 양복 주머니에 몰래 넣고 갈 때나, 내 얼굴을 익힌 아이들이 은행문을 열자마자 인사할 때. 물론 매일 억대의 돈이 내 손을 거쳐간다는 사실도 재밌었다. 금고 안에서 전표 정리를 할 때면, 대리님과 나는 1억원씩 깔고 앉아 일했고,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는 물건을 꺼낼 때는 1천만원 다발 5개를 밟고 올라섰다. 당시 내게 돈은 돈이 아니었다.
청원경찰로 산 지 약 두달이 지났을까. 어느덧 현금인출기를 내 손으로 직접
[오픈칼럼] 쩐의 부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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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란 말을 입에 담는 것조차 어색하고 아직 영화가 뭔지도 모르는 스물두살 풋내기에게 ‘내 인생의 영화’라니, 거창하기 짝이 없다. 몇가지 영화를 나열해보고 이리저리 분류해 어떤 영화를 이야기 할까, 무엇이 유아인과 어울리는 영화일까 고민 끝에 결정한 영화란 것도 지독한 사랑영화인지라 글을 시작하기도 전에 어떤 코멘트로 아버지의 양복을 몰래 훔쳐 입은 어색함을 변명해야 할지도 한참을 걱정해야 했다. 어리석게 말이다.
<클로저>는 스무살이 되고 나선 처음으로 극장에서 본 ‘18세 관람가’ 영화였다. 하지만 허락된 나이가 된 그때에도 영화의 무게를 감당키는 어려웠고 열렬한 사랑을 하던 스물한살에 우연히 케이블TV의 영화 채널에서 다시 보았을 때도 그 막막함의 무게에 할 말을 잃었었고, 원고를 쓰려고 다시 본 오늘은 더 가까이 다가온 현실의 무게에 눈물을 떨구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어쩌면 이 영화는 섹스에 대한 노골적인 대사와 내털리 포트먼의 숨넘
[내 인생의 영화] <클로저> - 배우 유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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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6월6일. 세계에서 가장 길었던 날. 노르망디의 오마하 해변. 기관총탄이 쏟아진다. 수송선 안에 웅크린 몸들은 그 안에서 그대로 시체가 되고, 탄환은 바다 속까지 뚫고 들어가 허우적대는 유기체의 신체를 관통한다. 상륙을 해도 엄폐물 없는 해변에서 신체들은 유린의 대상일 뿐. 총탄이 철모의 외피를 관통하여 내피 속을 회전하고, 그것을 벗어드는 순간 또 다른 총탄이 병사의 머리를 관통한다. 가로 누운 시체들 틈에서 넋이 나간 몸뚱이 하나가 일어나 포격으로 떨어져나간 제 팔을 주워든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40여년 전에 제작된 다른 영화와 비교해보자. 똑같이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다루었어도 ‘세계에서 가장 길었던 날’을 기억하는 내용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지상 최대의 작전>은 그날을 유럽에서 전세를 역전시킨 ‘위대한 승리’의 날로 기억한다. 때문에 거기에는 승자의 영웅주의만 부각될 뿐이다. 반면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는 그날을 ‘
[진중권의 이매진] 신체의 현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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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보러 가고야 말았다. 한국 영화계의 앞날을 걱정하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참아보려고 노력했으나 정확히 3주 갔다. 작심3주. 그러고 싶지 않았는데 암전 속에서 코믹스 장면들에 어렴풋이 불이 들어올 때는 신음 소리마저 터져 나왔다. 차라리 진작 볼 걸. 꾹꾹 참는 동안 흥분만 더 커져서 거의 미친 개처럼 열광하면서 봤다. 모야! 너무 재밌잖아! 누가 재미없다고 했어! 7천원 내고 뭘 더 바라! 도둑놈 심보야!
미안하다. 오버했다. 다시 한국 영화계의 미래를 걱정하는 본연의 자세로 돌아와 생각해보건대 그래서 문제인 거다. 아무리 부천필하모닉의 수준이 높아도 베를린필과 부천필의 공연 관람료는 비교가 안 된다. 실력보다 규모가 문제인 거다. 당연히 대학로 소극장 공연과 <퀴담> 공연 가격도 차이가 난다. 그런데 3천억원짜리 영화도 30억원짜리 영화도 모두 7천원(하긴 요새는 9천원도 받는다더라)을 받으니 한국영화는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한국영화 경쟁력있으니 시장논리로 맞서
[냉정과 열정 사이] 7천원 내고 뭘 더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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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히어로>를 촬영중인 배우 안길강과 함께한 톡톡 튀는 인터뷰입니다.
관객의 재미있는 질문과, 배우의 톡톡튀는 답변! 씨네21에서만 볼 수 있는 2원 생중계!
<동영상 보기> 버튼을 눌러 주세요.
[talk talk talk] 안길강의 톡톡 튀는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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럼주 한병 추가님(김혜리 vermeer@cine21.com)이 입장하셨습니다.
자사모님(이동진 lifeisntcool@naver.com)이 입장하셨습니다.
자사모님의 말(이하 자사모): 오늘 제 대화명은 ‘자학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란 뜻입니다. -.-
럼주 한병 추가님의 말(이하 럼주병): <상성: 상처받은 도시>와 >팩토리 걸> 때문인가요? ^^
자사모: 전 <캐리비안의 해적: 세상의 끝에서>(이하 <캐리비안의 해적3>)에서 윌(올랜도 블룸)의 사랑도 자학적이고 피학적이라고 봅니다.
럼주병:<캐리비안의 해적3>는 기자시사가 없었고 오늘(5월23일) 개봉했죠. 오전에 보고 왔는데 2시간50분을 해적선에서 출렁거렸더니만 지금도 배멀미 중이에요. 바다에서 주로 전개되는 러닝타임 긴 영화는 귀밑에 멀미약 패치라도 붙이고 가야겠어요.
자사모: 블록버스터가 바다로만 가면 영화가 턱없이 길어진다는…. <타이타닉>은
[메신저토크] <캐리비안 해적> 머리도 좋고 운도 좋은 영화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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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션영화를 좋아하는 백수"신셩일"과 영화에 대한 지식이 꽉찬 용"용식이"
두 캐릭터가 매 회 한가지 주제로 그 주제에 맞는 5개의 영화를 소개하는
플래시 애니메이션 순위 프로그램 [용씨네]!!!
이번 회에서는 "한국영화 속 술주정 BEST 5"를 공개합니다.
<동영상보기> 버튼을 눌러주세요.
[용씨네] 한국영화 술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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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5월 28일 월요일 오후 2시
장소 용산CGV
이 영화
‘겁나먼 왕국’에서 평온한 나날을 보내는 슈렉과 피오나 부부. 두 사람은 이제 늪으로 돌아가 소박한 삶을 살고자 한다. 그런데 피오나의 아버지 해롤드 왕이 세상을 떠나면서 슈렉은 왕위를 물려받을 상황에 놓인다. 설상가상으로 피오나가 그에게 아이를 낳아 가족을 만들자고 한다. 슈렉은 아버지가 되는 것의 공포를 느끼면서, 또다른 후계자 아더 왕자를 찾으러 떠난다. 한편 ‘겁나먼 왕국’의 왕이 되는 데 실패한 프린스 차밍은 왕국에서 버림받고 비참하게 사는 악당 인물들을 규합해 ‘겁나먼 왕국’의 왕위를 무력으로 얻고자 한다.
100자평
미녀 공주와 미남 왕자의 해피 엔딩 스토리를 신선하게 패러디한 설정으로 흥행·비평 양면에서 성공을 거두었던 <슈렉>의 세번째 시리즈물. 이 시리즈의 ‘비딱하게 보기’ 시선에서 이제 더 이상은 전복과 역설의 쾌감을 찾을 수 없다. 인물들의 외모만 전통을 탈피했을 뿐, 선한 승자와
녹색괴물이 돌아왔다! <슈렉3> 언론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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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는 여행 중이다. 갑자기 사라졌던 연인 E를 찾으러 델리에서 히말라야를 거쳐 라다크로 향하고 있다. 그녀는 K에게 “가장 가까웠던 사람에게 가장 잔인했던 나를 용서하지 않길 바란다”는 엽서만을 보내왔다. 도대체 그녀는 어디로 떠난 것일까. 왜 떠난 것일까를 묻기 전에 K는 3년 전 그녀와 함께 찍었던 사진을 들고서 머나먼 천상고원을 찾는다.
지난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처음으로 소개된 <천상고원>은 <시간은 오래 지속된다> <욕망> <달려라 장미> 등을 만든 김응수 감독의 4번째 장편영화. ‘누군가를’ 만나서 ‘무엇인가’ 벌이는 흔한 로드무비를 기대했다가는, 히말라야 산맥의 광활한 풍광을 맘껏 즐기려고 맘먹었다가는, 금세 고산병에 시달리는 K처럼 말을 잃고 눈이 감기게 될 것이 분명하다. 픽션과 다큐멘터리를 뒤섞은 <천상고원>은 굳이 이름 붙이자면 심리적 로드무비가 적당할 것이다. 라다크로 가는 도중 K는 김태훈이라는 한 남자를
전염성 강한 로드무비 <천상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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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물이며, 왜 눈인가. 저주받은 물을 소재로 고독에 대한 공포를 이야기하는 영화 <데스워터>는 임팩트가 없다. 살인사건이 연쇄적으로 발생하고, 이를 추적하는 기자가 음침한 공간을 따라가지만 영화는 100분이 넘는 상영시간을 단 한번의 놀램도 없이 지루하게 끌고 간다. 물론 일본 공포영화의 리듬이 한국처럼 가파르지 않다는 점을 감안한다 해도 <데스워터>는 <주온>의 스산한 공포를 전해주지 못한다.
영화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은 감독이 소재를 충분히 고민하지 않았다는 것. 저주받은 물을 마신 사람에게 환각 증상이 나타난다는 점은 질병의 증상으로 이해한다 해도, 물에 대한 공포가 눈에 비치는 세상에 대한 공포로 변주되는 과정은 아무런 설득력이 없다. 특히 <데스워터>는 천천히 분위기를 조성한 뒤 공포적 요소를 등장시키는데, 그 타이밍이 꼭 한 박자씩 느리다. 그리고 그 장치가 그렇게 효과적이지 못하다. 그래서 사건을 따라가는 기자의 발걸음은
한 박자씩 느린 공포 <데스워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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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1960년대는 뜨겁기만 한 시대가 아니었다. 샌프란시스코에 오면 머리에 꽃을 꽂아주고(스코트 매킨지), 사랑할 누군가를 열정적으로 찾아 헤매는(제퍼슨 에어플레인) 사람들만 있는 게 아니었다. 뉴욕 그리니치 빌리지에 있는 클럽 ‘맥스 캔자스 시티’의 어두운 무대에서는 벨벳 언더그라운드가 무표정한 얼굴로 냉소적이고 전위적인 록음악 연주에 몰두했다.
반전과 평화를 목놓아 외치는 뜨거운 세계의 다른 한편에 차가운 아방가르드의 지하세계가 있었다. 실험적인 연극에서 미니멀리즘적인 팝아트까지, 60년대 뉴욕 맨해튼의 예술계는 언더그라운드의 천국이었다. 그리고 뉴욕 언더그라운드의 정점은 앤디 워홀이었다. ‘팩토리 걸’은 스스로 ‘공장’이라고 불렀던 자신의 창작 스튜디오 안에서 현대 예술의 혁명을 제조했던 앤디 워홀의 여자, 에디 세즈윅에 관한 영화다.
1965년, 앤디 워홀(가이 피어스)은 파티에 들렀다가 에디 세즈윅(시에나 밀러)을 보고 강렬한 인상을 받는다. 동료들과 함께 작업하
예술가 그룹의 내부 엿보기 <팩토리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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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영화 속 홍콩은 단순한 도시가 아니다. 아틀란티스나 희망봉처럼 특정한 정서의 기호다. 사연없고 치떨리는 기억 하나 없는 도시가 어디 있을까. 하지만 1997년 중국 반환과 21세기 들어 홍콩을 엄습한 전염병은, 홍콩을, 뿌리 뽑힌 자의 만성적 고독과 사춘기적 불안을 도맡아 상징하게 만들었다. 유위강, 맥조휘 감독은 그 이미지에 아예 ‘무간지옥’, ‘상처받은 도시’라는 이름을 붙여 영화 제목으로 앞세웠다. <상성: 상처받은 도시>의 영어 제목은 ‘고통의 고백’(Confession of Pain)이다. 고통받는 자들은 이번에도 두 남자다. 양조위와 금성무는 1995년 왕가위 감독의 <중경삼림>에서 만난 적이 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만나진 않고 따로따로 방황했다. <상성: 상처받은 도시>에서도 둘의 성격은 <중경삼림>의 캐릭터에서 그리 멀리 벗어나지 않는다. 12년 전 연인을 떠나보내고 한밤중 스낵 코너에 말없이 들러 요기를 하던 양조
고통받는 두 남자 <상성: 상처받은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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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비관적으로 생각하지 말게. 그렇게 끔찍하진 않아. 사람들이 말하듯, 이탈리아에선 보르지아 치하 30년간 전쟁, 테러, 살육, 학살을 겪었지만, 미켈란젤로, 다 빈치, 르네상스를 만들었어. 형제애를 가진 스위스에선 500년간 민주주의와 평화를 가졌지. 그런데 그들은 뭘 만들었나? 뻐꾸기 시계라네. 잘 가게.” 캐럴 리드의 영화 <제3의 사나이>에서 오슨 웰스가 내뱉은 말이다. 곧잘 명대사로 인용되는 문구인데 오래전 머릿속에 새겨진 이후로 스위스 하면 뻐꾸기 시계를 연상하는 버릇이 생겼다. 스위스의 역사에 정통한 사람이라면 반발할 만한 내용이겠으나 외부에서 본 스위스의 이미지가 그렇다는 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다. 스위스가 뻐꾸기 시계라면, 홍콩은 누아르와 무술영화다. 청소년기를 홍콩영화의 세례를 받으며 자란 세대에겐 보편적인 일이다. 홍콩영화의 전성기가 끝났다고 알려졌지만 <무간도>나 <묵공> 같은 영화를 볼 때면 “썩어도 준치라더니”하며 감탄하게
[편집장이 독자에게] 한국영화 하면 무슨 장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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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할 때보다 더 떨린다.” 스탭들과의 첫 시사를 끝내고 앉은 자리. 장윤현 감독은 지난 1년여의 시간이 끊임없이 고치고 또 고치느라 “몇편의 영화를 찍은 것 같다. 영화공부를 새로 할 수 있었던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는 소회부터 털어놓는다. 스탭들이 갈빗집으로 몰려가 회포를 푸는 사이, 촬영에만 7개월이 걸린 <황진이>를 보듬느라 속이 시커멓게 탄 감독의 말을 들었다.
-원작을 처음 읽은 게 언제인가.
=그때가 언제더라. (웃음) 1996년 아니, 2006년 아니, 2005년 가을쯤인가? 시네마서비스에서 투자 결정을 한 다음에 읽었다. 투자했다고 해서 읽어봤는데, 책이 아주 좋아서 일단 회사가 투자를 잘했구나 그랬다. 그런데 김인수 대표님이 연출할 생각이 없냐고 해서 ‘하면 좋죠’ 하긴 했는데, 쉽지 않을 것 같아서 일단 발을 좀 뺐다가 언제 이런 작품을 만나겠느냐, 이게 기회라면 기회다 싶어서 받아들인 거다. 이춘연 씨네2000 대표님한테 제가 연출할 수 있을까요
<황진이> 배우들에 집중해서 봐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