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시 7월31일(화)
장소 롯데시네마 애비뉴얼
말말말
“(임영성 감독이 인사말을 짧게 끝낸 것을 두고) 데뷔작이라 고생을 많이 했는데 말을 잘 못해요. 쑥스러워하고. 1년만에 무대인사를 하게 됐는데 이번엔 물 만난 선수입니다. 터프한 남자였으면 좋겠는데 쪼잔한 남자에요. 한국영화가 침체일로인데 이 영화가 활력소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김원희 씨가 전과 달리 섬세한 내면연기를 보여주길 원했으나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번 영화에서도 김원희 표 연기가 있습니다”(정준호)
“15살에 옥희를 나아 기르는 엄마 역할인데. 그렇다고 날라리는 아니고요. 그만 어린 나이에 깊은 사랑을 나누다 보니. 새로 들어온 선수와 사랑하랴 다 큰 딸과 티격태격 하랴. 준비기간까지 합해서 1년 정도 준비한 영화인데, 이렇게 디테일한 연기에 공들인 영화는 이번이 처음이에요”(김원희)
이 영화
15살 옥희(고은아)에게 이제 갓 서른이 된 엄마 혜주(김원희)는 골칫거리다. 혜주는 옥희가 공부 좀 하려고 들면
조숙한 딸과 미숙한 엄마의 코미디, <사랑방 선수와 어머니> 공개
-
8월 1일에 있었던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 기자간담회 현장 영상입니다.
"네 배우 중 배드씬이 가장 능숙한 배우는 누구?"
"엄정화, 한채영이 말하는 박용우, 이동건의 매력은?"
동영상을 보시려면 ‘동영상보기’ 버튼을 눌러주세요.
"<지금 사랑하는 사람…> 찾았으니 지키도록 노력해야죠."
-
<두사부일체>의 정준호와 <가문의 위기>의 김원희가 만났다!
그들은 반복되는 코미디 연기가 두렵지 않을까?
7월 31일에 있었던 <사랑방 선수와 어머니> 기자간담회 현장!
동영상을 보시려면 ‘동영상보기’ 버튼을 눌러주세요.
<사랑방 선수와 어머니>"코믹연기 많이 하는 것, 두렵지 않다."
-
두부 심부름이 싫었다.
빨간 바가지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가끔 그 빨간 플라스틱 바가지를 손에 쥐어주며 말했다. “두부 한모만 사오너라.” 창피했다. 식료품 가게를 오가는 길에 동네 여자아이들을 만날까봐 두려웠다. 열네댓살쯤 때의 일이다. 한사코 피하려 했지만, 결국 빨간 바가지에 담아오던 두부의 야들야들한 느낌은 아직도 정감어린 기억으로 남아 있다.
두부처럼, 이라고 했다. 1980년대의 대학 교정에서 <오월의 노래>를 들으며, 나는 빨간 바가지 속의 두부를 떠올렸다. “두부처럼 잘려나간 어여쁜 너의 젖가슴~.” 소름이 끼쳤다. 공수부대원이 어린 여학생의 가슴을 대검으로 난자했다고 했다. 80년 5월 광주 괴담이었다. 누가 언제 어떻게 당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실증적인 조사 결과나 증언이 나온 적도 없다. 풍문이 돌았을 뿐이다. 뻥이거나 부풀려졌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영화 <화려한 휴가>와 <므이>가 비슷한 시기에 개봉했다. 두 영화가 ‘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하이 므이
-
-
새삼스럽지만 기자의 재미는 발견이다. 추적을 통한 특종이든, 탐사를 통한 분석이든, 취재원 수위를 넘어 발전된 우정이든 애정이든…. 사회를 뒤집어놓는 건 물론 송사에 휘말리는 것조차 발견의 쾌감으로 적어두는 선배들을 본 적이 있다. 전염일까. 비의 해외 공연이 잇따라 취소, 연기되는 이면을 발굴한 <PD수첩>을 보면서 ‘저 PD 선수, 취재하면서 신났겠다’ 싶어 잠시 부러웠다. 고생했을 발품은 내 알 바 아니다.
영화기자가 누리는 발견의 재미는 섬뜩한 작품과 만났을 때가 당연히 일순위, 라고 말하고 싶지만, 사람 발견의 재미와 그 우열을 가릴 수 있을까. 편식이 심해서 그 발견 후보자 중에서 스스로 빼놓은 리스트가 있는데, 그중 첫째가 배우다. 인공적이든 아니든 스크린에서 맡는 향기가 더 좋기도 하거니와, 잠깐 만나보고 어떻게 사람을 알겠냐는 회의적 소극성 탓도 있다. 나에게 배우는 그냥 공주님이고 왕자님이면 된다. 그 기품과 위세가 작품에서 녹슬지 않으면 불만없다.
[오픈칼럼] 공주님 알현, 배우님 발견
-
여배우가 되려면 이렇게 하라! <영화잡지> 1964년 1월호 만평은 ‘여배우가 되는 열두 계단’을 소상히 적고 있다. 뭇 남성들의 탐욕과 뭇 여성들의 선망을 한몸에 받기 위한 자가(自家) 매니지먼트 공식 열두 가지. 일러준 대로 찬찬히 살펴보자. 학교는 반드시 중퇴한다→서투르게(라도) 유행을 따르고 이야기 끝마다 영화배우를 거론한다→무조건 정형수술을 해둔다→비록 촬영이 없더라도 ‘뷰우티 케이스’를 들고 충무로를 하루 종일 왕복한다→음성은 동시녹음을 할 수 없도록 쉬게 만든다→우선 배우의 가방모치로 들어간다→반드시 택시를 탄다. 하루에 두번 이상 옷을 갈아입는다. 또 돈이 없더라도 선글라스는 꼭 사고 언제든지 벗지 않는다→담배와 술과 댄스는 배워둔다→감독이 콘티를 짜는 호텔 옆방에 자리잡고 스탭들이 모일 때마다 미소를 잃지 않는다→개성을 인정받기 전까지는 무조건 노출증이라는 열병을 앓아야 한다→아낌없이 주련다라는 마음을 행동으로 암시해줄 수 있는 연기력이 필요하다→이렇게 해
[한국영화 후면비사] 감독님이 하사한 이름 달아야 뜬다?
-
“이것은 우주전쟁이다!!”
“우주에는 혼자서 못 가는 곳이 있다!!”
“대형화면을 뒤흔드는 굉음! 박진감 넘치는 입체음향! 이 영화에는 클라이맥스가 따로 없다!”
지금 보면 촌스럽기 그지없는 포스터 광고 문구. 1987년 2월의 쌀쌀한 겨울날, <에이리언2>는 그렇게 나에게 찾아왔다.
<에이리언2>와 처음 만난 20년 전의 나는 전라도 광주에서 중학교를 다니는 어린 소년이었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고, 그걸 조금이나마 풀어내는 길은 틈날 때마다 빠져드는 공상이었다. 아니면 사회과부도를 펴놓고 세계지도의 곳곳을 상상으로 유랑하던 시절, 틀에 박힌 학교생활은 언제나 답답함 그 자체였다. 꽉 막힌 생활의 유일한 탈출구가 영화일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영화는 박진감 넘치는 인생에 대한 대리만족과 갈 수 없는 드넓은 세상에 대한 판타지를 가져다 주었다.
당시 영화를 고르는 최선의 기준은 그저 포스터였다. 인터넷은 상상조차 할 수 없던 그때, 별다르게 영화정보를
[내 인생의 영화] <에이리언2> -김유곤 PD
-
<블레이드 러너>(1982)는 흥행에는 실패했다. 스필버그의 <E.T.>와 같은 시기에 개봉된 것이 이 사이버펑크 누아르 액션영화의 불운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굳이 <E.T.>가 아니었어도, 이 영화가 당시에 흥행에 성공했을 것 같지는 않다. 영화가 시대를 너무 앞섰기 때문이다. 외려 개봉 이후에 주로 비디오를 통해 알려졌다고 한다. 영화의 질에 대한 대중의 인정이 뒤늦게 나타난 게 아닐까?
<블레이드 러너>는 포스트모던하다. 내용이나 구성만이 아니라, 대중과 전문가를 모두 만족시키는 “이중코드”(찰스 젠크스) 역시 포스트모던한 전략이다. 대중은 대중대로 이 영화를 누아르 액션으로 즐길 것이고, 전문가는 전문가대로 영화의 바탕에 깔린 철학적 담론의 풍성함에 환호할 것이다. 열광은 인문학자들만의 것이 아니다. 얼마 전 영국의 과학자들 역시 이 영화를 20세기 최고의 SF로 꼽았다고 한다.
‘포스트모던’이라는 용어는 다의적이어서 크게 세
[진중권의 이매진] 너무 일찍 찾아온 포스트모던의 첨병
-
시간의 힘은 무섭다. 결코 잊혀질 수 없을 것 같은 상처들도 현재성을 상실하면 균질한 과거로 전환되기 때문이다. 경험한 이에게는 너무도 생생하게 남아 있는 고통과 실감의 순간들은 경험하지 않은 새로운 세대들의 감각 속에서 의미와 개념으로 전환되어버린다. 모든 현재는 과거가 될 운명을 거부할 수 없기에 조금이라도 앞서 태어난 이들은 자신이 경험한 어떤 것들이 사장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발버둥쳐야만 한다. 과거를 어떻게 현재로 소환할 것인가, 역사를 어떻게 지금-여기와 관련시킬 것인가의 문제는 기억을 갖고 있는 자들, 지울 수 없는 사건을 몸속에 각인하고 있는 이들의 소명이다. 기억을 어떤 방식으로 서술할 것인가는 지금 이 자리에 어떻게 서 있을 것인가와 긴밀하게 연관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꽃잎>이 광주 금남로에 피를 뿌렸던 원혼을 어린 소녀의 몸을 통해 은유적으로 살려내며 지식인적 사유와 죄의식을 이야기한 영화였다면, <화려한 휴가>는 좀더 직접적이고 대중적인
[영화읽기] 대중적 코드로 구성된 5.18의 영화적 재현 <화려한 휴가>
-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요새 두뇌훈련하는 닌텐도 DS 게임기가 유행이라는 데 게임기 살 돈이 없는 나 같은 사람들이 두뇌훈련하는 데 적합한 방법을 찾아냈다. <해부학교실>을 보면서 생각난 건데 공포영화, 특히 한국 공포영화들의 DVD를 빌려다가 쌓아놓고 보는 것이다. 추리영화도 아니고 왜 공포영화인가. 한국에는 추리영화라고 할 만한 장르가 별로 없는데다 공포영화들이 사실상 추리영화의 형식을 띠고 있다. 형식이라기보다는 관객이 영화를 보면서 왜? 어떻게? 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도록 추리활동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그렇다.
<해부학교실>을 보면서도 그랬다. 중간 이후로 넘어가면서 ‘왜 갑자기 저 사람을 죽이지?’, ‘왜 지금 저기를 들어가는 거야?’, ‘저 사건과 그 사건은 무슨 상관이 있는 거지?’ 끊임없이 질문을 하다보니 두 시간 동안 나오는 질문 개수가 초등학교 들어가서 대학 졸업할 때까지 학교에서 내가 했던 질문들을 합한 것보다 몇개 더 많
[냉정과 열정 사이] 이해불능, 공포불가!
-
이것은 세 여자에 대한 이야기다. 어쩌면 한 여자에 대한 이야기다. 그녀(들)의 이름은 ‘지나’다. 지나는 미국에서 몸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동양인 여자다. 20대의 지나는 갱단으로부터 도망쳐 로스앤젤레스를 유랑하고(첫 번째 에피소드), 30대의 지나는 꿈을 잃고 라스베이거스의 밤거리를 헤매며(두 번째 에피소드), 40대의 지나는 지친 몸을 이끌고 알래스카의 혹독하게 추운 벌판에 뛰어든다(세 번째 에피소드). 이처럼 세개의 에피소드는 동일한 이름과 동일한 일로 삶을 버티는 세 여자를 다루고 있지만, 각각의 에피소드는 겹치지 않는다. 이것은 낯선 땅에서 동양인 여자가 매매춘으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세대별 이야기일 수도 있고, 한 여자의 일생에 대한 내면적인 이야기일 수도 있다. <허스>는 그녀(들)의 삶을 성, 인종, 계급적으로 분석하는 대신, 그녀들을 관통하는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세 에피소드를 이어주는 끈은 이 여자들의 비루한 삶을 지탱해주는 동시에 그 삶에
세 여자에 대한 이야기 <허스>
-
여자 하나에 남자 둘이 벌이는 삼각관계라면 무엇이 상상될까? 당연히 두 남자 사이의 승강이가 연상되겠지만 한 남자가 게이라면 상황은 달라진다. 색다른 삼각형이 등장하는 <영원한 여름>은 퀴어영화이기도 하지만 성장영화이기도 하다. 초등학교, 고등학교, 대학교에 이르는 동안 우정과 사랑 사이를 고통스럽게 넘나드는 미묘한 관계가 세 남녀 사이에서 펼쳐진다.
감독은 전반부에서 대만의 권위주의적 정치 분위기를 연애 관계에 숨겨진 비극적 씨앗과 결부한다. 초등학교 시절, 담임선생은 반장인 캉쩡씽(장예가)에게 문제 학생인 위쇼우헝(장효전)의 ‘특별수호천사’가 되어 바른길로 인도하라고 제안한다. 두 남학생 사이의 관계는 “선생님이 정해준 것”이다. 고등학생 캉쩡싱과 여학생 훼이지아(양기)가 가까워지게 된 계기 또한 경직된 학교 처벌 문화이다.
줄거리는 캉쩡씽이 친구 위쇼우형에게 사랑을 고백하지 못하고, 아픔에 못 이겨 피폐해지는 과정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가 재수생의 처지로 입시
카메라에 함축된 ‘게이적 시선’ <영원한 여름>
-
심형래 감독의 7년 만의 신작 <디워>는 <용가리>(1999)로부터, 혹은 더 멀리 영구아트의 창립작이기도 한 <영구와 공룡 쮸쮸>(1993)로부터 이어지는 심형래식 한국형 SF의 현재형이다. 그것은 또한 <용가리> 이전과 이후로 구분할 수 있다. 심형래가 직접 ‘영구’로 출연한 이전 영화들은 특수효과와 더불어 그 특유의 개그가 반반씩 섞인 구조였다면, 말 그대로 ‘영구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용가리>와 <디워>는 할리우드의 뒤를 좇겠다는 야심찬 목표 아래 블록버스터급 특수효과 영화를 지향하고 있다.
LA에서 벌어진 대형 참사를 취재하던 이든(제이슨 베어)은 정체불명의 비늘을 보고 회상에 잠긴다. 어렸을 적 잭(로버트 포스터)에게 옛 한국의 전설을 들었던 그는 그것이 이무기의 것임을 직감한다. 이무기가 용으로 승천하기 위해서는 여의주를 지닌 처녀를 제물로 삼아야 하는데, 과거 승천에 실패했던 이무기가 다시 LA에
서늘한 구성상의 빈약함 <디 워>
-
과학, 종교, 예술 분야에서 새로움과 화려함이 난만했던 17세기를 뿌연 안개와 질척대는 진흙탕 속에 놓인 혼돈으로 보여주는 영화 <리버틴>은, 자유롭고 방탕했던 시인이자 극작가인 백작 존 윌모트(조니 뎁)의 영락을 따라간다. 도처에 존재하는 타락과 방탕을 둘러싼 먼지 같은 뿌연 기운들은, 결국 파멸에 이를 주인공들의 인생에 대한 암시가 된다. 존(재미있게도 그의 애칭은 배역을 맡은 배우의 이름과 같은 ‘조니’인데)은 셰익스피어가 될 수 있는 영광의 길을 등지고 가차없이 자유로운 난봉꾼(libertine)의 삶을 택한다. 예술가적인 마에스터가 재능있는 여제자를 가르치는 플롯, 그 여제자가 다시금 뮤즈가 되어 예술가의 상상력을 폭주시키는 플롯, 결국에는 여자가 권력 앞에서 사랑과 예술을 배신하는 플롯 등 익숙한 이야기 선들은 다소 식상하지만, 17세기 궁정과 런던의 뒷골목을 앤티크 스웨이드, 제이드그린빛의 희뿌연 푸름으로 연출한 영상 연출은 쉽게 잊혀지지 않을 질감의 인상적인
예술가 영화의 익숙한 클리셰 <리버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