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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사스 출신이지만 뉴욕에 살고 있는 스무살 청년 윌리엄(마크 웨버)은 어느 날 바에서 사라(카타리나 산디노 모레노)를 만난다. “수요일에 만나 토요일에 같이 살게 됐다”는 걸 보면 마법처럼 첫눈에 사랑에 빠진 것 같다. 둘은 서로 집 건너편에 살고 있다가 합쳤으며 윌리엄은 배우가 꿈이고 사라는 가수가 꿈이다. 그러니 말도 잘 통한다. 사라가 전 남자친구에게 받은 상처를 극복하고 윌리엄에게 마음을 열어가면서 그들의 일상은 귀여우면서도 격정적으로 변한다. “우리는 언제쯤 엉망이 될까? 언제 서로 꼴보기 싫어하게 될까?” “헤어질 때 우리는 서로 어떤 욕을 할까?”라며 그런 일은 결코 없을 것처럼 영화의 초반부에 이 커플은 상상하는데, 모든 커플이 그렇듯이 그들에게도 시련이 온다.
<죽은 시인의 사회>의 청량한 젊은이 혹은 <비포 선셋>의 낭만적인 유랑자로 많이 기억되고 있는 배우 에단 호크는 이미 오래전부터 소설가이며 감독이다. <이토록 뜨거운 순간>
‘스무살 젊은이들’의 ‘사랑’ 이야기 <이토록 뜨거운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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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기적이라는 말 외엔 설명할 수 없는 일이었다.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지 6개월이 채 되지 않은 1914년 12월24일, 가장 치열했던 전장인 서부전선에 이틀 동안의 평화가 찾아온 것이다. 사랑과 평화를 전하기 위해 예수가 세상에 내려온 크리스마스 이브를 맞아 독일군과 프랑스, 영국 병사들이 한데 어우러져 노래를 부르고 술을 마시며 선물을 교환했으며 심지어 축구 경기까지 벌였던 것이다. 세계 전쟁사에서 가장 특이한 사건 중 하나로 기록되는 사건 ‘크리스마스 휴전’(The Christmas Truce)을 소재로 삼은 <메리 크리스마스>는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어처구니없는 발명품인 전쟁 속에서 스스로의 존엄과 공동선을 지켜내기 위해 애썼던 병사들의 모습에 초점을 맞춘다.
이 영화의 한축에는 독일의 오페라 스타인 니콜라우스(벤노 퓌어만)와 안나(다이앤 크루거)가 있다. 전쟁이 발발해 니콜라우스가 징집되자 안나는 그를 만나겠다는 일념으로 전선에서의 공연을 계획한다. 독일
크리스마스의 기적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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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호에 실린 연말결산 대담을 한 뒤로 ‘서사의 위기’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맴돈다. 지금 한국영화가 처한 난처한 상황을 산업적 부실함이나 자본의 부족 또는 관객의 변화라고 말하는 대신 서사의 위기라고 부르는 게 옳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대중영화에서 무엇보다 이야기가 중요하다는 전제를 수용한다면 한국영화와 관객 사이의 간극은 재미있는 이야기가 부족한 데에서 기인할 가능성이 크다. 흥행을 예상치 않았던 <식객>이 300만 관객을 불러모은 데 비해 기본 이상을 의심치 않았던 <두 얼굴의 여친>이 실패한 원인은 무엇일까? 요리를 소재로 삼은 영화 가운데 과거 흥행작이 없었던 반면 <두 얼굴의 여친>이 <엽기적인 그녀>의 영향을 받은 작품이라는 사실은 뭔가 시사하는 바가 있지 않을까? 성공을 모방하는 영화가 실패하고 영화로 못 봤던 이야기가 성공하는 모습을 보면 관객은 분명 오리지널리티 혹은 참신한 기획에 목마른 것 같다.
돌이켜보면 한국
[편집장이 독자에게] 서사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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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좋아, 굉장해.” “제가 입에 좀 넣어도 될까요?” … “조철봉은 어느새 입 안에 고인 침을 삼켰다. 이렇게 대담하고 노골적이며 자극적인 상황은 처음인 것이다. 섹스를 하는 것이 아니라 계약서에 사인하는 분위기와 같다.”… “‘맛이 있어요.’ 혀로 입술을 핥으면서 장선옥이 조철봉에게 말했다. 눈웃음을 치는 얼굴을 보자 조철봉의 가슴이 미어지면서 목구멍이 찌르르 울렸다.”
조철봉은 살아 있다. 한때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가 “조철봉이 너무 안 하는 것 같다”며 섭섭해했다지만, 조철봉은 요즘 활발히 하고 있다. <문화일보> 연재소설 ‘강안남자’의 주인공인 그 조철봉 말이다. 인터넷판에는 칭찬인지 조롱인지 헷갈리는 독자 댓글이 달려 있었다. “이렇게 쓰니 얼마나 좋아. 독자들도 많아지고….”
조철봉은 ‘대북사업’에도 한창이다. 베이징에 본사를 둔 평화무역의 대표이사 사장으로 최근 취임한 그는 북한의 천리마무역 부대표인 장선옥과 ‘딜’을 하는 중이다. 빼돌린 비자금의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성인용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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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챔피언스리그의 계절이다. 물론 이제 막 토너먼트의 막이 오른 단계지만 가슴을 뛰게 하기에 충분하다. 역시 챔피언스리그의 맛은 겨울에 벌어진다는 데서 온다. 긴팔 옷을 입고 장갑을 낀 채 하얀 입김을 내뿜으며 언 땅을 누비는 축구선수의 모습이 어떨 때는 가학적인 쾌감을 준다. 게다가 계절 탓인지 승자의 환호성보다는 패자의 눈물이 더 크게 다가오는 대회여서(저 눈물이 마르면 금세 차가워져서 얼마나 괴로울까 하는) 묘한 비극적 무드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처럼 승패의 명암이 칼처럼 갈린다는 사실이 극단적이긴 하지만 이 바닥에서 글을 써서 먹고살아가는 사람으로서는 스포츠맨들이 가장 부럽다. 아니 정확하게는 스포츠평론가나 기자들이 부러울 때가 많다.
스포츠는 그냥 실력 그대로를 얘기하면 된다. 잘하면 칭찬하고 못할 때 욕하면 그만이다. 물론 그런 점에서 가장 정확하고 객관적인 분야는 오히려 변수가 많은 축구 같은 스포츠보다 육상이나 수영 같은 기록경기일 것이다. 그런데 이 바닥에서
[오픈칼럼] 정치적 오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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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레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김강우는 생계형 배우다. 먹고살고자 연기를 했다는 뜻이 아니다. 그가 연기한 남자들은 대부분 끈질기게 사는 법을 고민하곤 했다. 이름이라도 남겨 영원히 살기를 바라거나(<실미도>의 민호), 좌절이 두려워 숨이 차도록 뜀박질을 하거나(<나는 달린다>의 무철), 몸의 흉터를 훈장처럼 떠벌리면서도 다치지 않으려 야심을 버리거나(<태풍태양>의 모기). 그런가 하면 밤마다 악몽을 꾸면서도 다른 이의 삶을 위해 1분을 아꼈고(<경의선>의 만수), 최고보다는 영원한 장인으로 남으려 칼을 들었다(<식객>의 성찬). 아마 배우로서 김강우가 보낸 지난 7년도 그들 못지않은 생존투쟁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매일 아침 “살아남아야겠다는 의지로” 현장에 나갔고 어떤 감독이든 간에 “살아남기 위해서 그저 시키는 대로 움직였다”는 그도 한때는 <경의선>의 만수처럼 잠을 설치며 살았다. “그래도 가끔은 좋은 꿈을 꾸면서 잤
[김강우] 어느 성실한 청춘의 생존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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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겨울 다이앤 크루거가 <내셔널 트레져> 1편으로 제작자, 감독, 주연배우 니콜라스 케이지 등과 함께 한국을 찾았을 때 그와 인터뷰한 기자들은 내심 당황했다. 똑떨어지는 간결함과 무뚝뚝한 태도 때문이었다. 금발에 지적인 인상을 풍기는 다이앤 크루거에겐 쇼 비즈니스에서 요구되는 상냥한 제스처가 거의 없었다. 그는 질문을 듣고 바로 대답했고, 본론만 대답했다. 인터뷰에 응하는 다이앤 크루거의 답변 어조와 내용은 기자로 하여금 그 질문이 과거 수십 차례 반복되었을 것임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었다. 받아적고 나면 차후 정리해서 쳐낼 것이 별로 없었다.
사실 그해는 신인 다이앤 크루거에게 최고의 해였다. 미국을 비롯한 유럽 각지에서 계절이 바뀔 때마다 그의 주연작이 개봉했다. 5월에 <트로이>, 9월에 <당신이 사랑하는 동안에>(Wicker Park), 12월에 <내셔널 트레져>. 배우 데뷔 3년차, 당시 28살이었던 크루거는 “미하일
[다이앤 크루거] 과다복용해도 좋은 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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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보니 184cm라는 키가 더 크게 느껴졌다. 입을 꾹 다물고 사진 촬영을 하는 모습에선 <말죽거리 잔혹사>(2004)에서 발산했던 카리스마가 얼핏 전해지는 것도 같았다.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약육강식의 피라미드, 그 꼭대기를 장악한 선도부장 역으로 주목받은 이종혁에게도 의외의 면은 있었다. 다른 사람과 눈을 마주치는 것을 약간 쑥스러워한다든지, 농담을 건네면서 가끔 소리 죽여 키득키득 웃는다든지. 그러니까 한예슬 주연의 로맨틱코미디 <용의주도 미스신>에서 맡은 이른바 “실장 캐릭터” 역시 그의 성정에서 그리 먼 것만은 아니라는 뜻이다.
“일단은 뭐, 제가 로맨틱코미디 이런 건 별로 안 해봐서요. 약간 도전의 느낌도 있고요. 좀 편안한 연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무던하게 말을 이어가다가 영화를 이미 봤다는 이야기를 흘리자 갑자기 귀를 쫑긋 세우는 눈치다. “재미있어요? 전 아직 못 봤거든요. 별로 안 까칠하죠? 너무 딱 떨어지게는 안
[이종혁] 은근과 끈기의 카리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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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역’배우들은 이름이 없다. 그저 ‘누구 누구의 어린 시절’이라 불린다. 중학교 1학년인 심은경(14) 또한 마찬가지였다. 2004년부터 10여편의 드라마에 출연했으나 ‘리틀’ 명세빈(<결혼하고 싶은 여자>), ‘리틀’ 최강희(<단팥빵>), ‘리틀’ 하지원(<황진이>), ‘리틀’ 이지아(<태왕사신기>)로만 기억됐다. 그런 점에서 영화 <헨젤과 그레텔>은 심은경에게 특별한 데뷔작이다. 이번엔 누군가의 몇년을 잠깐 대신하는 게 아니다. 극중 영희는 은수(천정명)를 불길한 집으로 끌어들이고, 어떻게든 악몽의 덤불을 벗어나려는 은수의 발목을 붙잡는 인물. “뭔가 비밀을 품고 있는” 신비로운 아이라고 <헨젤과 그레텔>을 소개하는 아역‘배우’ 심은경을 만났다.
-치마 입는 거 어렸을 때부터 싫어한다고, 유치원 때는 인형놀이보다 칼싸움하는 거 좋아했다고 엄마가 그러던데요.
=흐흐… 그냥 치마 입는 거보다 바지 입는 게 좋아요.
[심은경] 신비로운 소녀의 야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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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 블루스>를 보고 나면 드는 생각. 이 감독 참 독하구나. 비좁은 택시 안에 카메라며 조명이며 녹음장치까지 달아놓고, 한손으로는 운전하고 한손으로는 카메라 스위치 조작하며, 머리와 입으로는 인터뷰하고, 눈으로는 관찰하고, 그 와중에 생계까지 챙겨야 했을 버거움이라니. 혹은 그 모든 걸 되새기며 뻔뻔하게 연기까지 해내다니. <택시 블루스>는 그런 집요함이 아니었더라면 완성되지 못했을 것이다. 택시기사로 일하던 최하동하 감독은 그가 만났던 승객을 찍은 실제 화면과 그들과 마주치며 겪은 경험에 살을 붙인 픽션을 뒤섞어 <택시 블루스>를 만들었다. 정작 본인은 “기록의 습관이 항상 피곤하다”고 말해도, 이 영화는 그 피곤한 습관의 집적물인 셈이다. 그는 요즘 뉴욕에 산다. 누군가는 이제 그럼 뉴욕의 택시운전사를 하러 갔느냐고 진부한 농을 걸지 모르겠지만, 그의 말에 의하면 특별히 목적을 두고 하는 일은 없는 것 같다. 다만 버리지 못하는 일은 있다. 요
[최하동하] “내 경우엔 편향되어야만 좋은 영화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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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과 가난한 자를 위한 정치개혁을 꿈꾸거나 말하기란 얼마나 쉬운가. 그러나 개혁가가 말과 꿈을 실현하는 건 어렵기만 하다. 그 이유는 꿈의 실행 자체가 어려운 게 아니라, 실현 과정에서 정치인 스스로 개혁의 대상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성취의 달콤한 향기에 취한 자는 권력에 집착하게 되고, 그는 대개 타락과 부패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정치소설의 고전을 영화로 만든 <올 더 킹즈 맨>은 한 정치인의 성공과 파멸에 대한 이야기다. <올 더 킹즈 맨>의 내용은 프랭크 카프라의 ‘디즈, 스미스, 도우 3부작’을 잇고 있음이 분명하지만, 음산하고 어두운 기운은 영화를 카프라식 스크루볼코미디보다 당대의 누아르에 더 가깝게 만든다. 또한 주인공 윌리 스탁의 캐릭터를 실제 인물인 휴이 롱에서 따온 덕분에 <올 더 킹즈 맨>의 현실 풍자적이고 정치적인 면모는 보통의 정치드라마를 쉬이 넘어선다. 롱은 대공황 시기에 주지사와 상원의원을 맡아 서민과 빈민층을 위한 정책을
유권자의 필독 영화, <올 더 킹즈 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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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는 비를 만끽하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 (설)경구 형이 옷을 적시고 있는 장면이다. 어떤 영화에서나 비맞는 장면을 찍을 때 배우들이 겪어야 하는 일이다. 타조농장에서 싸우는 장면을 3일 동안 찍었는데, 촬영 전에 항상 저렇게 옷을 적시곤 했다. 이 장면은 스탭들이며, 배우들이며 정말 고생을 많이 했다. 장비들이 감전될 위험도 있지만, 일단 비를 뿌리면 계절이 겨울이건 여름이건 춥게 마련이니까. 의상팀들도 배우들을 차마 말려줄 수는 없어서 뜨거운 물이나 수건만 덮어주곤 한다. 농장에 냄새도 심했는데, 배우들은 정말 즐겁게 연기하는 것처럼 보였다. 태희씨는 의외로 액션을 잘하더라. 빗자루를 휘두르는 액션이 있는데, <중천> 때 해봐서 그런지 정말 칼을 휘두르는 생생한 느낌이 있었다. 경구 형이랑 진흙탕에서 뒹구는 것도 거리낌없이 막 엉겨붙었다. 경구 형이야, 뭐… 원래 액션을 좋아하니까. 자기는 항상 다시는 액션영화 안 하겠다고 하지만, 틈나면 운동하고 촬영할 때는 정말
[숨은 스틸 찾기] <싸움> 독한 싸움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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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12월22일(토) 밤 11시
남부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하는 페트로니우스의 <사티리콘>은 1세기 중엽의 작품으로 불완전한 단편들로 남아 있다. 페데리코 펠리니는 이 작품을 로마 부르주아 사회의 타락을 풍자한 <달콤한 인생>의 1세기 버전처럼 구성하는 한편, 그 1세기 로마를 18세기 유럽에 대한 날카로운 비유로 형상화했다. 이 영화는 펠리니의 역사물이라고 칭해지지만, 사실, 영화 속 로마는 꿈과 판타지의 세계에 가깝게 그려진다. 물론 그 환상은 히로니뮈스 보시의 <쾌락의 정원>을 연상시킬 정도로 살냄새 가득한 욕망의 혼돈으로 채워져 있다. 아름다운 청년들의 탐욕적인 사랑이 폭력과 살육으로, 부유층의 교양이 천박한 속물스러움으로 뒤섞이는 과정을 파편적인 서사의 조각들로 여기저기 흩뜨린다. 인간의 육체는 고깃덩어리의 부분처럼 다루어지며 절단된 신체는 마치 하나의 생명체처럼 펄떡인다. 종교는 추문이 되고 사랑은 변태적인 욕망이 된다. 가장 끔찍한 방
쾌락과 혼돈의 로마, <펠리니의 사티리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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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보는 모든 것’을 좋아한다. 당연히 영화도 좋아한다. 정말로 좋아한다. 흔히들 드라마를 하게 되면서 영화를 보는 것조차 일로 전락하여 슬프다는 말들을 많이 하지만 나는 전혀 그렇지가 않다. 영화 보는 일은 여전히 나의 가장 훌륭한 취미이자 안식처다. 난 영화를 볼 때 분석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오로지 그 영화가 얘기해주는 감정을 느낄 뿐. 그럼 영화가 친구가 되는 것 같아 좋다. 그런 내 친구 ‘영화’ 중에서 내 인생의 영화를 하나만 뽑으라는 건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이런 일이 있을 때는 이 영화가 나를 위로해줬고, 이 영화는 이때 나를 지탱해줬고, 이건 나를 웃게 해서 좋고, 저건 나를 울려서 좋고, 요건 나랑 지적인 대화를 좀 나눠주는 놈이고, 조놈은 내 앞에서 까불어대서 좋은데….
그럼에도 내가 <허공에의 질주>를 꼽은 이유는 내 인생의 전환기마다 이 영화가 내 손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아버지 표현에 의하면 ‘멀쩡히 대학 나온 년’이 2년간 백수로 지내다
[내 인생의 영화] <허공에의 질주> -김영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