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쉐라드 안토니 산체스 감독의 <점성사와 빨치산>
쉐라드 안토니 산체스 감독의 <점성사와 빨치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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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 빙 감독의 <중국여인의 연대기>
왕 빙 감독의 <중국여인의 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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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들의 풍경> <감염된 언어> 고종석 지음/ 개마고원 펴냄
신문 이름 ‘한겨레’는 시대착오적이다. 발음하기 어렵고 제대로 쓰기 힘들며 글의 맵시까지 어정쩡하다. 영어로 번역하면 ‘one-nation’ 또는 ‘one-ehtnic’쯤 될 터인데, 파시스트 매체에나 어울릴 이름이다. 인간, 시민, 인류, 생명 따위가 아니라 ‘겨레’에 주목한 그 기의(記意)는 정치적으로도 올바르지 않다. 이 신문사에서 ‘씨네21’이라는 외국어 제호의 자매지가 탄생한 것은 그래서 기적에 가깝다. <한겨레>의 ‘궂긴 소식’(부음란)과 <씨네21>의 ‘컬처잼’(바로 이 지면)의 공존은 한겨레 사옥에서 일어나고 있는 ‘말들의 풍경’이다. 보수주의 언어와 대당하려는 <한겨레>의 말과 집단주의 언어와 긴장하려는 <씨네21>의 말은 어쩌면 서로 상극이다.
심지어 같은 신문사 안에서도 말과 말을 싸움 붙이고, 말을 말에서 해방시키며, 말로 말을 죽이
학자적 논객의 말, 문학적 언론인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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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거래> 7월12일~9월30일/ 대학로 쇼틱씨어터 1관/ 02-762-9190
인연이란 묘한 것이다. 오늘 거리에서 우연히 옷깃을 스친 사람이 미래의 배우자일 수 있고, 버스에서 말다툼 끝에 주먹 다짐까지 한 사람이 미래의 직장 상사가 될 수도 있다. 세상은 드넓은 듯하나 한편으로 무척이나 좁아서 오늘 만난 사람과 내일 어디서 어떻게 마주할지 짐작하기 힘들다. 지인 중 여섯 사람만 건너면 영화배우 케빈 베이컨과 연결된다는 ‘케빈 베이컨 게임’이 한때 미국에서 크게 유행한 것은 어쩌면 같은 이유이지 않았을까. 연극 <유쾌한 거래>가 내세운 것도 꼬이고 꼬인 관계들이다. 평범한 듯하던 등장인물들의 이면에는 이상한 어둠이 숨어 있고, 그들의 비밀이 폭로되면서 극은 갈수록 복잡해진다.
서민 가장 박민수는 아픈 아내 안정숙과 아들의 병원비를 감당치 못해 사채를 빌린다. 오랜만에 기운을 차린 정숙은 민수의 생일을 맞아 뜨거운 밤(?)을 준비하지만 알고 보니 그
인연의 타래로 비밀을 폭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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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은 이 칼럼을 시작할 무렵부터 얘기하고 싶던 CF가 하나 있었다. 그런데 계속 주저주저했던 이유는 ‘과연 CF에 윤리적 잣대를 가져다 써도 되는가’ 하는 고민 때문이었다. 윤리라는 것이 사람마다 그 기준선이 조금씩 다른 법이라 언제나 애매모호하잖은가. 그러나 광고 문법으로만 보자면 꽤나 잘 만든 CF인 대부업 광고들이- 온 국민이 따라 부르는 무이자송이라니 효과로만 보자면 거의 최고 수준이다- 지탄을 받고 있는 세상인 걸 보면 한번 짚고 넘어가도 괜찮지 않을까 한다. 하긴, 애초에 대한민국 광고는 일반 국민의 정서를 해치는지 아닌지 사전심의도 거치는 이 마당에.
길게 변명처럼 가져다 붙이며 도덕 선생적 잣대로 이야기하려는 CF는 ‘아X락’이라는 음료 CF다. 보통 한 시즌에 하나씩 채널 돌아가게 만드는 불편한 광고들이 튀어나오게 마련인데 개인적 자동 재핑 (Zapping : TV를 시청할 때 광고나 흥미없는 부분이 나오면 다른 채널 버튼을 눌러 흥미로운 부분만 연속해서 찾아가
[도마 위의 CF] 불편해서 못 봐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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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령들> EBS 8월11일 밤 11시
켄 러셀은 다양한 장르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기이한 취향과 도발적인 태도로 관습을 파괴해온 감독이다. 록 뮤지컬부터 문학을 영화화한 작품까지 그의 작업은 종잡을 수 없는 형식과 서사로 보는 이를 당황스럽게 만든다. 특히 그는 종교, 제도, 권력의 위선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조롱하고 비판하는데, 그 방식이 매우 극단적이고 염세적이어서 그의 작품들은 줄곧 논란의 대상이 되어왔다. 1971년작인 <악령들>은 그중에서도 유난히 충격적이다. 임신부와 비위가 약한 자들은 반드시 피해갈지어다.
17세기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악령들>은 수녀원을 중심으로 성직자들의 탐욕과 부패의 곪아터진 흔적을 끝까지 파헤치는 작품이다. 배경은 루이 13세 시대의 프랑스, 성직자들은 방탕한 생활에 빠지고 사람들은 빈곤과 고문, 병에 시달리며 도시는 퇴폐와 죽음의 공기로 가득 찬다. 리슐리외 추기경은 도시를 손아귀에 넣기 위해 호색한이자 도
피와 살로 멱을 감는 수녀원의 지옥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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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블채널 tvN <막돼먹은 영애씨>의 영애(김현숙)씨와 지상파 MBC 드라마 <9회말 2아웃>의 난희(수애)씨는 30살 동갑내기다. 스무살의 TTL이 아이와 어른의 경계에 선 모호한 신비소녀에 대해 설파했다면 서른살의 영애씨와 난희씨는 비혼과 기혼, 체념과 희망의 기로에서 심란해하는 여성의 콧노래를 연주하고 있다.
10년 주기의 세대구분이 대략의 일반화에 불과하다고 소리 높여 주장하고 싶어도 그 단락에 함축된 인생의 빛과 그림자는 ‘누구라도 그러하듯이’의 보편성은 띠고 있는 모양이다. 영애씨와 난희씨도 교집합을 제법 나타낸다. 작은 디자인 회사에 다니는 영애씨나 박봉의 출판사에 다니는 난희씨는 모두 대한민국 1%에 속하는 커리어우먼이 아니다.
또 둘 다 독신이다. 주변의 잔소리가 부유하는 이들의 지리멸렬한 일상에는 여태 결혼하지 않았음, 혹은 못했음도 한 이유로 작용한다. 노처녀라 불리는 여자들의 로망에서 빠질 수 없는 연하남도 두 여인은 한명씩 꿰차고
서른에 대처하는 그녀들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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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몽골과 중국을 오가며 찍었던 <천군>은 ‘앞으로 이렇게 힘든 촬영은 다시 없을 거다’ 할 정도로 고행이었다. 특히 22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했을 때의 고생은 좀처럼 잊기 힘들다. 좁은 버스에서 스탭들은 알코올과 잠을 번갈아 섭취하며 장시간의 지루함과 피곤을 견뎌야 했다. 중국 허베이성 이시엔에서의 촬영은 로케이션 막바지에 이뤄졌는데, 이 무렵엔 조금 있으면 한국에 돌아간다는 기대와 함께 스탭들의 향수병이 극에 달했다. 중국으로 떠나오기 전 몽골 주민들에게 각종 간식들을 약탈당하기까지 한 터라 스탭들은 정을 떠올리며 초코파이를 풍족하게 먹을 수도 없었다. 대기시간 동안 스탭들이 간식대 표지판을 만들고 그 위에 각종 과자 포장지를 붙였던 건 그런 연유에서다. 배우들도 마찬가지. 황정민씨는 소품 감자를 베어물며 뜨듯한 아랫목을 떠올리지 않았을까.”
[숨은 스틸 찾기] <천군> 타향에선 한국 과자가 그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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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달 전 이 난에 쓴 <경계 긋기의 어려움>에서, 나는 “삼성 제품을 기꺼이 사 쓰면서 조선일보를 지네 보듯 하는” 내 윤리가 논리적으로 가지런한지 물었다. 그 글이 나가고 얼마 뒤, 지면을 통해서만 알고 있는 칼럼니스트 한분이 메일을 보내주셨다. 글의 논지를 따지는 메일은 아니었다. 그이는 가볍게 조선일보 (기자들) 얘기를 했다.
바깥에서 보는 매체의 이미지와 사적으로 겪은 그 매체 기자들의 됨됨이는 다를 수 있다고 전제한 뒤, 그이는 자신이 가장 ‘나이스’하다고 느낀 기자들이 조선일보 기자들이라고 말했다. 이런저런 신문 잡지들에 글을 쓰며 기자들과 얽혀본 경험으로는, 조선일보 기자들이 필자들에게 가장 섬세히 마음을 써준다는 것이었다. 거드름을 안 떠는 기자들은 조선일보 기자들뿐이라고도 했다.
없는 일을 그이가 지어냈을 리는 없다. 좋고 싫음은 순전히 개인 차원의 문제라는 점을 떠나서도, 조선일보라 해서 어떻게 두루두루 ‘나이스’한 기자가 없겠는가? 나만 해도 ‘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다시, 경계 긋기의 어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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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나에게 늘 묻는 질문이 하나 있다. 스무살이 넘으면서부터 생긴 습관 중 하나인데, 그건 대부분 무언가 집중해야 할 일이 있을 때마다 생각해보는 ‘나는 지금 어디에? 나는 어디로?’라는 질문이다. 그걸 떠올리고 나면 그 순간 잠시 나는 정말로 나와 단둘이서 대화를 할 수 있게 된다. 여러 시점으로 나를 사방에서 내려다보면 간과함없이 정확한 그 순간의 나를 측정해볼 수 있는데 이 행위를 마치고 나면 좀 더 정신을 바로잡은 기분이랄까, 그리고 믿음으로 연결된 누군가에게 다시 한번 위로받고 구원받은 기분이 든다.
스무살이 되기 전에는 한번도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왜냐하면 난 그저 아침에 일어나서 학교에 갔다가 종례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일이 하루 일과의 전부였으니까. 뭐 학교 다녀와서 친구들과 놀러나간다든지가 피아노 학원에 가서 연습을 한다든가 하는 일들도 있었지만 내일은 예상 못할 놀라운 일이 벌어질지도 몰라! 라는 꿈을 꾸기엔 나는 그냥 그 다음날도 학교에 가야 한다는 짜
[내 인생의 영화] <위대한 유산> <패밀리 맨> <디 아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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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모니터 화면을 마주하고 앉을 때면 언제나 누군가가 원망스럽다. 화살의 끝은 일단 ‘나’를 향해 있다. ‘아, 난 왜 이것밖에 안 될까. 왜 별로 숱 많지도 않은 머리칼을 쥐어뜯고 또 뜯어야만 한줄 한줄 써나갈 수 있을까.’ 일어났다 앉았다 누웠다 물구나무섰다, 혼자 쇼를 하다보면 슬그머니 딴 생각이 든다. ‘이런 뻘짓 안 하고도 쫙쫙 쫘르르륵 명작을 완성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좋을까?’ 자학보다 강력한 건 질투다. ‘부럽다. 걔들은 뭔 복을 타고났기에?’ 질투보다 조금 더 힘이 센 건 체념이다. ‘그래. 어차피 이렇게 태어난 거 어쩌겠어? 글은 써서 뭐하고, 마감은 해서 또 어쩌겠어. 확 펑크내버린들 누가 아쉬워한다고.’
(바닥을 치는 절망감으로부터 한 작가를 구제하는 건, 편집자의 추상 같은 원고 독촉이다.)
천재는 정말 있을까? 천재는커녕 수재는커녕 둔재 소리 들을까봐 벌벌 떨고 사는 사람 입장에서 볼 때 참으로 께적지근한 질문이라 아니할 수 없다. 아무리 부정하려 애써
[냉정과 열정 사이] 99%의 천재, 1%의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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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군이 진입하던 그 새벽, 신애는 광주의 거리를 누비며 확성기로 시민에게 도움을 호소한다. 하지만 공포 앞에서는 분노도 힘을 잃는 걸까? 그 새벽에 도청에 고립된 시민군을 도와주러 올 사람들은 없어 보인다. 그리하여 죽음을 각오한 열사들은 영생을 찾아 시민들의 기억 속으로 들어가기로 한다. “광주 시민 여러분, 제발 우리를 기억해주세요.” 신애의 애절한 호소는 물론 스크린 바깥에 앉은 관객을 향한 것이다.
문화적 기억
다소 엉뚱하게 들리겠지만 <화려한 휴가>는 어떤 면에서 <메멘토>를 닮았다. 두 영화 모두 ‘기억’을 주제로 삼기 때문이다. <메멘토>가 레너드의 ‘개인적’ 기억을 다룬 반면, <화려한 휴가>는 한국사회의 ‘집단적’ 기억을 다룬다. 레너드는 개인적 기억의 단절을, 신애는 집단적 기억의 단절을 극복하려 한다. 이렇게 기억의 단절을 극복하려고 하는 것은, 그것이 개인이나 집단의 정체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전
[진중권의 이매진] 기억을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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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뷰티>의 캐빈 스페이시 제작으로 만들어져 유사한 제목의 마케팅으로 소개된 <캘리포니아 뷰티>의 원제목은 <미니의 첫 경험>(Mini’s First Time)이다. 무엇이든 새로운 경험이 주는 흥분에 삶을 기꺼이 던지는 18살 고등학생 미니의 아찔한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충만한 악의로 명랑하고 활기차다. 따가운 캘리포니아의 햇볕처럼, 어떠한 비도덕도 냉소적인 명랑함으로 뒤바꿔놓는 감독의 재기 역시 인상적. 외부의 전지적 시점으로서가 아니라 여자 악한(villain)인 미니의 시점과 내레이션으로 영화를 전개하고 있지만, 영화의 끝까지 이 악의가 어디까지 관객의 예상을 배신할지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서사는 앙큼하다. 도덕적으로 무감한 미국 중산층 부모의 삶을 장난기 어린 악의로 비판하고 TV쇼로 대변되는 미국 엔터테인산업에 대한 냉혹한 자기 반영적 반성까지 제공하면서, 끝까지 영화 속 인물과 관객의 머리 꼭대기에서
고등학생 미니의 아찔한 삶의 모습 <캘리포니아 뷰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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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몸을 던졌건만, 바로 그 희생의 행위로 말미암아 버림받을 위기에 처한다는 안타까운 이야기는 최루성 여성멜로드라마의 고전적 줄거리다. <이리나 팜>도 주인공 매기(마리안느 페이스풀)를 유서 깊은 곤경에 몰아넣는다. 매기의 어린 손자 울리(코리 버크)는 난치병 환자. 런던의 의사는 소년을 치료할 의술이 있는 호주로 가는 것만이 유일한 희망이라고 통고한다. 하지만 이미 집도 담보로 잡힌 매기와 아들 내외는 비용 마련할 길이 막막하다. 매기는 홀로 일자리를 찾아 헤매다 홍등가 클럽 ‘섹시월드’에 호스티스로 취직한다. 벽에 뚫린 구멍으로 들이미는 남자 손님들의 성기를 애무해 사정을 돕는 게 그녀의 업무. 수치심과 역겨움을 돈 모으는 보람으로 달래던 매기는 서서히 일에 적응한다. 그녀의 유달리 부드러운 손은 “죽여주는 오른손”으로 소문나 급기야 ‘이리나 팜’이란 예명이 수여된다. 사내들은 장사진을 이루고 매기의 오른팔은 이른바 ‘페니스 엘보’를 앓는다. 그러나
할머니의 인생 역전극 <이리나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