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뉴스에서 가장 엽기적이고 쇼킹한 사건은 무장세력 탈레반의 인질납치 사태다. 미디어로 접하는 사건이라 사실 같지가 않다. 살인이라는 단어도 간혹 나온다. 전쟁이든 살인이든 공포에 관한 모든 충격적인 요소들은 영화나 TV드라마, 뉴스, 다큐를 통해 간접적으로 보고 느낀 것이 전부다. 생명을 다루는 일만큼 소중한 것이 있을까? 힘없는 나라의 생명은 더이상 희생되어선 안된다. 도움 하나 되는 것 없는 지금의 나 자신이 답답하고 부끄럽기만 하다.
<시계태엽 오렌지>는 개봉 당시 큐브릭 감독에게 ‘영화를 개봉하면 가족을 죽여버리겠다’는 협박이 있었을 만큼 충격적인 영상과 내용을 담은 영화다. 그 협박이 미치광이 무장세력의 협박과 같았다면 심한 과장일까. 과장일지라도 탈레반의 무자비한 만행만큼이나 관객을, 우리를, 분노케 만든 문제의 영화다. 사이코적인 방종이 압도하여 관대한 이성으로도 도저히 볼 수 없는 영화. 만약 당신이 팝콘을 먹으면서 이 영화를 보려 한다면 소화불량을
[내 인생의 영화] <시계 태엽 오렌지> -배우 강리나
-
<리턴>은 결코 완벽한 스릴러영화가 아니다. 주제가 심오하다거나, 한계를 뛰어넘는 기발한 무엇인가를 선보였다고 생각하는 것도 아니다. <리턴>은 아주 재미있는 상업영화, 스릴러영화일 뿐이다. 나는 <리턴>을 즐겁게 보았고, 누군가에게 기꺼이 권할 생각도 있다. 하지만 이 영화를 가지고 논쟁할 생각은 없다. 당연하지 않은가. 이건 그저 스릴러 장르의 한 영화를 즐기는 취향일 뿐이다. 지금까지 한국의 스릴러영화가 최소한의 장르적 규칙마저도 무시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기본을 지키면서 나름의 미덕을 갖춘 <리턴>이 정말 반가웠던 것뿐이다. 그러니 이건 찬반 같은 것이 아니라, 단지 내가 <리턴>이 좋았던 몇 가지 이유일 뿐이다.
<리턴>에서 가장 중요한 소재는 수술 중 각성이다. 수술 중 마취에서 깨어나 고스란히 고통을 체험하는 것. 그 탓에 어린 나상우는 살인마가 되었고, 서희진은 죽음에 이르러야 했다. 수술 중 각성
[영화읽기] 서정적이고 슬픈 스릴러
-
<리턴>은 수술 중 각성이라는 희귀 현상을 다루고 있는 의학 소재 추리스릴러다. 그렇다면 이 영화를 평가하는 건 비교적 쉽다. 소재와 주제를 제대로 잘 살렸는지, 스릴러와 추리물의 형태를 온전하게 갖추었는지를 먼저 보고 그 다음에 이 기초를 넘어선 무언가를 가지고 있는지 보면 된다.
우선 영화가 수술 중 각성이라는 소재를 어떻게 다루었는지 보자. 수술 중 각성이란 환자가 수술 중 깨어 있어 그동안의 고통을 그대로 겪는 것을 말한다. 근사한 호러 소재지만 영화가 이를 다루는 방식은 소극적이기 짝이 없다. 이 영화에서는 수술 중 각성이 두번 나오는데, 하나는 연쇄살인마의 과거로 도입부에 나오고, 다른 하나는 반전 뒤에 숨겨진다. 다시 말해, 관객이 직접 감정이입하는 캐릭터의 눈을 통해 직접 경험되는 사건은 단 하나도 없다. 이걸 좋다, 나쁘다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이 때문에 소재가 품고 있던 힘이 시작부터 절반쯤 날아가버렸다는 건 그냥 사실이다.
그럼 추리스릴러 요소를
[영화읽기] 미숙한 설정과 트릭에 갇히다
-
이동진 “이 영화는 데이비드 핀처가 처음 만든 리얼리즘 영화일 거예요.”
김혜리 “’연쇄살인’에서 ’살인’보다 ’연쇄’에 방점을 찍은 이야기예요.”
그놈 글씨체님(김혜리 vermeer@cine21.com)이 입장하셨습니다.
홀린데이님(이동진 lifeisntcool@naver.com)이 입장하셨습니다.
그놈 글씨체님의 말(이하 그놈) : 메신저토크가 2주 동안 지면을 비웠습니다. 휴가도 있었지만 이동진 선배는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 저는 시네마 디지털 서울 영화제 심사에 참여하는 시간이 있었는데요. 결석계 삼아 잠깐 이야기할까요? ^_^
홀린데이님의 말(이하 홀린) : 25편의 중·단편을 심사를 위해 보았는데 학생들 작품이 기술적으로는 참 뛰어났어요. 그렇지만 그럴수록 결국 영화는 기술로 만드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더 강해지더군요. 대부분이 디지털영화들이었죠. 그쪽이야말로 디지털영화의 위력을 제대로 체험하셨을 듯. ^.~
그놈: 물론 일주일 동안 디지털 영상만 연
[메신저토크] “데이비드 핀처가 <살인의 추억>을 본 게 아닐까 싶어요”
-
-
<만남의 광장>은 남북전쟁의 상흔인 분단 상황을 다루는 영화다. <공동경비구역 JSA> <간큰가족> 등이 다소나마 그러했듯 심각한 외피에도 어김없이 코미디의 심장을 품고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영탄(임창정)은 교사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고지식한 성품의 섬마을 청년이다. 청운의 꿈을 좇아 부모의 가산까지 털어 상경한 그는 어수룩해 보인 탓인지 서울역에서 돈이 든 가방을 강탈당하고 만다. 애꿎은 행인을 넘어뜨려 도둑을 잡기는커녕 경찰서에 잡혀온 그는 ‘교육대’라는 단어에 솔깃한 나머지 삼청교육대에 자진(?)하는 지경에 이른다. 갖은 괴로움을 겪던 중 대열에서 이탈해 멱을 감는 선미(박진희)에게 첫눈에 반하고, 청솔리 마을에 도착해서는 새로 부임한 교사로 오인받아 얼결에 교단에 서게 된다.
평생의 소망을 이뤘을지언정 영탄의 앞길은 그리 순탄치 않다. 곧은 성격 때문에 마을 이장(임현식)이 처제인 선미를 덮쳤다고 집요하게 의심하고 이내 청솔리 마을의 비
심각한 외피에 코미디의 심장을 품은 영화 <만남의 광장>
-
<안녕, 쿠로>에는 이름처럼 온몸이 검은색인 개 ‘쿠로’의 생애가 담겨 있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1961년부터 10년 동안 일본의 시골 고등학교에서 생활한 쿠로와 학생들, 교사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10년 동안 쿠로 곁을 스쳐간 졸업생 수만도 4800명이라고 한다. 실제로 학교에서는 쿠로를 위해 장례식을 마련했고 수천명이 참석해 명복을 빌었다. 쿠로가 이토록 모든 이의 축복을 받을 수 있었던 까닭은 한결같은 태도로 학교와 마을 사람들 곁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강산이 바뀌고 인심이 변질되는 세월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쿠로에게서 변치 않는 순정을 느꼈을 것이다.
이 영화는 쿠로가 지켜본 수많은 학생들 중에서 료스케와 켄지의 사연을 중심으로 다룬다. 쿠로는 이사 가는 집주인이 버리고 떠나자 홀로 남겨진다. 떠돌던 쿠로는 가끔 음식물을 주는 료스케(쓰마부키 사토시)와 가까워지고 그를 쫓아 학교까지 들어온다. 마침 학교 축제의 가장 행렬을 준비하던 학생들은
검은색인 개 ‘쿠로’의 생애 <안녕, 쿠로>
-
빅토리아 여왕 시절, 런던에 사는 평범한 청년 트리스탄(찰리 콕스)은, 오랫동안 흠모해온 여인 빅토리아(시에나 밀러)에게 “너와 결혼할 수만 있다면 별이라도 따다주겠어”라고 무모한 맹세를 한다. 그리고는 정말로 그 별을 줍기 위해, 유성이 떨어진 곳으로 간다. 트리스탄은 마을 사람들이 결코 넘은 적 없는 담장을 넘어 마을을 벗어나는데 그렇게 그가 밟은 땅은 사실 마법의 영토 스톰홀드. 트리스탄은 그러나 그곳이 마법의 영토인 줄 모르고, 별 떨어진 곳에 누워 있는 아름다운 금발의 여인 이베인(클레어 데인즈)이 별 그 자체인 것을 알고 나서 그녀를 빅토리아에게 데리고 가려 한다. 간단할 줄 알았던 이 여정은 곧 험난한 모험이 되는데, 그 까닭은 마녀 라미아(미셸 파이퍼)와 스톰홀드 왕국의 세 왕자들 때문. 라미아를 비롯한 세명의 마녀 자매는 살아 있는 별의 심장을 먹어 불로장생하려 하고, 세 왕자는 스톰홀드 왕국의 주인을 규명할 루비를 이베인이 가진 걸 알고 이들을 쫓는다.
<
장르적 재미를 버무린 컬트적 감성 <스타더스트>
-
<부에노스 아이레스 1977>은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거의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사회고발극이다. 배경은 제목 그대로 1977년의 부에노스아이레스, 한 축구팀의 골키퍼로 있는 클라우디오(로드리고 드 라 세르나)가 영문도 모른 채 납치된다. 교외의 한 음산하고 거대한 저택 ‘아틸라’에 감금당한 그는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들로부터 모욕적인 심문과 구타에 시달린다. 그는 곧 자신을 납치한 사람들이 군부 정치 세력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아무리 결백을 호소해도 소용이 없다. 더불어 그는 자신처럼 끌려와 같은 방에서 고문당하고 있는 세 사람을 만나 친구가 된다. 감금된 지 4개월여가 지났을 때쯤, 클라우디오와 3명의 친구들은 목숨을 건 탈출을 시도한다. 폭풍우가 몰아치던 어느 날 밤, 그들은 창문을 열고 팬티만 걸친 채 심야의 거리를 질주하기 시작한다.
아르헨티나로부터 온 낯선 영화 <부에노스 아이레스 1977>에 대한 눈에 띄는 정보는 그리 많지 않다. 지
사회고발극 <부에노스 아이레스 1977>
-
이뤄지지 않은 사랑만큼 애절한 것이 또 있을까. 선뜻 손 내밀지 못해 엇비켜간 운명만큼 마음을 흔드는 것이 또 있을까. 비슷한 확신을 품고 시작한 여타 멜로영화처럼 <다만, 널 사랑하고 있어> 역시 꽃피기 직전 가장 아름답게 몽우리진 사랑을 그린다. 채 여물지 않아 소녀 같은 육체를 지닌 시즈루(미야자키 아오이)는 학교 앞 횡단보도에서 먼저 말을 걸어온 마코토(다마키 히로시)에게 단번에 반한다. 피부병을 앓아 약을 바르는 탓에 자신에게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굳게 믿는 마코토는 비염으로 냄새를 제대로 맡지 못하는 시즈루가 편하다. 물론 사랑은 따로 있다. 예쁜데다 성격까지 좋은 미유키(구로키 메이사)가 그의 열렬한 시선을 받는 여성. 머리를 헝클어뜨린 채 깡총깡총 뛰어다녀 ‘괴짜’라는 말을 듣는 시즈루는 사랑받고 싶어 마코토의 주변을 맴돌지만 미유키는 넘어서기에 너무 어려운 라이벌이다. 세 캐릭터가 이어가는 궤적은, 이 영화가 <지금, 만나러 갑니다>의 원작소설
그림 같은 풋사랑 <다만, 널 사랑하고 있어>
-
두쌍의 젊은 부부가 지인(최재원)이 개업한 바에서 인사를 나눈다. 패션 컨설턴트 유나(엄정화)와 호텔에서 일하는 민재(박용우) 커플은 화목해 보인다. 반면 건설업자 영준(이동건)과 조명 디자이너 소여(한채영) 부부는 노골적으로 냉담하다. 즉석에서 영준은 유나의 고객이 되고, 민재는 소여의 홍콩 출장 숙소를 잡아주기로 한다. 보름달이 기분을 들뜨게 하는 밤, 서울과 홍콩에서 파트너를 바꾼 연애가 동시에 시작된다. 두 로맨스의 진도와 온도는 차이가 난다. 그녀의 이름처럼 주어진 대로 살아가는 여자로 보였던 소여와 온건한 인상의 민재가 다짜고짜 격정에 휘말리는 반면, 불 같은 유나와 냉랭한 영준은 싸우면서 정이 든다.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는 스크린을 4등분한 도입부부터 대칭에 집착한다. 형식에서도 감정에서도 잉여물을 남기지 않으려고 부단히 애쓴다. 인물들을 ‘가해자’이자 ‘피해자’인 위치에 놓음으로써 죄의식이나 복수심을 배제한 사랑에 대한 현명한 판단을
모델처럼 보이는 영화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
-
얼음으로 둘러싸인 북극의 동굴 밖으로 아기곰 나누가 얼굴을 내민다. 나누가 보는 북극의 얼음땅은 “새하얀 솜이불”처럼 포근하다. 동굴에서 그리 멀지 않은 해안가에서도 새끼바다코끼리 실라가 수면 위로 얼굴을 내민다. <나누와 실라의 대모험>은 이 두 새끼동물의 북극 생존기를 그리는 다큐멘터리다. 그들은 어미에게 먹이를 잡는 법을 배우고, 수컷 북극곰의 습격을 피하며 약육강식의 진리를 깨닫는다. 하지만 이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가장 큰 어려움은 지구 온난화로 인해 점점 따뜻해지는 북극의 환경이다.
<나누와 실라의 대모험>은 미국의 해양자연주의자인 애덤 라베치와 사라 로버슨 부부가 15년간 북극 동물들과 동고동락하며 만든 다큐멘터리다. 끈질긴 노력의 결과는 단조롭지 않은 영상에서 드러난다. 두 감독은 육해공을 넘나들며 공중촬영과 클로즈업, 수중촬영을 가리지 않았다. 북극의 무법자인 수컷 곰이 바다코끼리 무리를 습격하는 장면은 내레이션의 긴박한 중계 없이도 극장에 앉
두 새끼동물의 북극 생존기 <나누와 실라의 대모험>
-
런던만큼 우아한 성당 앞, 낡은 미니 쿠퍼 한대가 주차를 시작한다. 뒤차가 부서지고, 행인이 다치는 따위의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는다. 이상하다. 차 문을 잠그기 위해 동원된 고전적인 자물쇠가 클로즈업 되는 순간, 그제야 미스터 빈의 등장이 확인된다. ‘빈 본색’ 자체가 드라마의 알파라면, 오메가는 ‘본색형국지세’다. 미스터 빈(로완 앳킨슨)이 펼치는 스펙터클은 예측불가해성과 철면피적 속성에서 미스터 본드의 그것을 뺨칠 만하다. 00시리즈 첩보원을 해치우고 그 자리를 차지한 <쟈니 잉글리쉬>에서 그 유사 활약성을 증명한 바 있다. 소시민 미스터 빈으로 돌아온 그가 어떤 형국지세를 만들려나. 성당 안은 프랑스 칸의 리비에라 해안으로 가는 여행권과 캠코더를 최고상으로 내놓은 경품 추천이 한창이다. 동전만한 눈으로 희색만면한 빈의 표정이 순식간에 일그러진다. 숫자가 적힌 표를 내던지고 돌아서려는 순간, 깨닫는다. 6과 9를 거꾸로 봤구나. 지체없이 떠난 그가 파리 북역에 도착했다
절대 판타지 빈 아저씨 <미스터 빈의 홀리데이>
-
연쇄살인범 조디악의 정체를 파고들던 평범한 시민 로버트가 형사 데이빗을 찾아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한다. “용의자 X와 첫 피살자 말린은 서로 아는 사이였습니다. 한때 X가 살았던 집에서 말린의 집까진 50야드도 되지 않습니다.” 데이빗이 반문한다. “그걸 어떻게 알았죠?” 그러자 로버트가 낮고 단단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제가 직접 두집 사이를 걸어봤거든요.”
<조디악>은 머리가 아니라 발을 믿는 영화다. 감독 데이비드 핀처는 다른 흔적엔 눈길도 주지 않고 오로지 발자국만을 따라간다. 조롱하듯 신출귀몰하는 범인의 두줄 발자국이 아니라, 범인의 발자국을 따라 도처를 헤매는 사람들이 남긴 어지러운 발자국들을. 그중 어떤 발자국은 도중에서 불현듯 끊기고, 어떤 발자국은 점차 희미하게 사라져가지만, 또 어떤 발자국은 방향을 잃지 않고서 끝끝내 이어진다.
1969년 8월. 샌프란시스코의 신문사들에 ‘조디악’이라 자칭하는 연쇄살인범의 편지가 배달된다. 자신이 저지른 살인을
발을 믿는 성실한 수사극 <조디악>
-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이 펼치는 말과, 그 말에 대한 말은 무섭다. 명분 앞세운 말이 스스로 그 명분을 죽이다 못해 그저 살고자 할 뿐인 생명까지 짓밟는 시간을 말로서 증언한다. 명분으로 말하고 행하는 자의 진심이 진심인 것이 공포스럽다. 말로 빌어먹고 사는 직업을 가진 덕에 행여 그런 누를 저지르지 않았나, 저지를까 공포가 일었다. 대의명분을 도약대 삼은 말들이 부쩍 의심스러워졌다.
‘<디 워> 현상’도 말의 전쟁이다. 그 기세가 공포스러운 건 위세를 부리는 말들이 요상한 명분으로 상대를 짓밟기 때문이다. 황우석 사태보다 고약한 건, 그때는 있다 없다를 가르는 기준점이 분명했지만 지금은 개인의 좋다 싫다를 놓고 심판할 절대기준이 없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한쪽에서 절대기준을 무자비하게 휘두르고 있으니, 공포스러워도 직업도의상 말로 끼어들지 않을 수 없는 형국이다.
이번호는 <디 워> 현상을 비판적으로 다룬 9쪽짜리 기획이 아니더라도 <디
[편집장이 독자에게] 말의 전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