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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상은 대개 자기 머릿속에서만 유효하다. 매일 타는 만원 지하철 안에서 마주치던 청년과 여고생이었던 누구의 로맨스 또한 그러했다. 아침마다 그녀는 그가 주는 첫 선물이 꽃일지 향수일지, 그와 가정을 꾸린 신접살림 인테리어의 메인 컬러는 핑크로 할지 화이트로 할지를 꿈꿨다. 그와 나눌 첫마디의 말부터 연인의 단계로 가기 위한 시나리오도 여러 편이었다. 또 어떤 날은, 청년이 지금 그녀를 보며 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핑계로 당시 여고생이 가진 지식의 범위에서 가장 새빨간 섹스신을 상상해내기도 했다. 그러나 그 많은 이야기들이 무색하게 그들 사이에는 아무 일도 없었고, 넘쳐나던 출근 인파 덕에 매일 몇분씩 그의 콧김을 쐰 것이 그녀에게는 유일하게 현실적인 추억으로 남았을 뿐이다. 아, 아련하여라.
이처럼 공상은 보통 공상에서 그치게 된다. 상상이라는 것이 강의시간표처럼 정연한 순서로 되지 않기 때문에 처음에는 현실성있게 느껴지던 치밀한 계획이라 할지라도 한 다리, 두 다리 건너다보면
[내 인생의 영화] <모두 하고 있습니까> -연리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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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의 여름은 암울했고, 흉흉했으며, 또 끔찍했다. “3개월된 갓난아이부터 70살 노인에 이르기까지” 잇따라 17명을 살해한 김대두 사건은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남산 위에서 내려다봐도 내 갈 곳은 아무 데도 없었다”는 스물여섯 청년은 세상을 향해 ‘재크나이프’를 마구 휘둘렀다. “한탕해서 멋지게 살고 싶었다”는 살인마 김대두는 전국을 돌며 피를 뿌렸고, 그 대가로 고작 “현금 2만6천원과 여자손목시계 1개, 고추 30근, 쌀 한말, 플래시 1개, 불루진 바지 1벌, 그리고 가짜 금반지 1개”를 손에 넣었다. “사흘마다 한번씩 살인을 저질렀으니” 사형을 언도받았어도 동정을 구할 수 없었다.
하지만 김대두 사건의 여파는 ‘한국판 돈환’ 박동명에 대한 세상의 비난보다는 작았다. 태광실업 대표 박동명은 시온그룹을 이끌던 거부 아버지를 둔 대표적인 재벌 2세. 애초 대검 특별수사가 문제삼았던 혐의는 위장 이민과 불법재산 해외 유출건이었다. 서민들조차 이민이 꿈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하
[한국영화 후면비사] 박동명 X파일 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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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수복을 입은 한 사내가 정육면체의 방에서 깨어난다. 아직도 영문을 모르는 듯, 여섯면에 달린 문들을 하나씩 열어보다가, 용기를 내어 그중 하나를 통해 옆방으로 들어간다. 그곳의 풍경도 그가 방금 떠난 공간과 하나도 다를 게 없다. 큐브의 가운데로 몇 걸음 옮기는 순간, 사내의 몸을 치고 지나가는 짧은 금속성 굉음이 들린다. 사내의 얼굴에 빨간 줄이 생기고, 그 줄에서 피가 흘러내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잠시 뒤 사내의 몸은 마치 3D 입체 모델처럼 작은 조각들로 잘린 채 바닥으로 무너져내린다.
경험과 이성
영화는 그곳이 뭐하는 곳인지 설명하지 않는다. 무슨 이유로 사람들이 거기에 갇히게 되었는지 밝히지도 않는다. 모두 죄수복을 입었으나 이렇다 하게 죄를 지은 적이 없다. 어떤 이는 잠을 자다 끌려왔고, 어떤 이는 냉장고 문을 열다가 이 공간으로 빨려 들어왔다. 어떤 이는 이게 정부의 음모라고 주장하고, 다른 이는 어떤 사이코의 짓이라고 생각한다. 외벽을 디자인했다는 건축가만이
[진중권의 이매진] 부조리가 합리주의를 이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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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니 토드 이야기’는 원래 19세기 중엽 런던 시민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풍문이었다. 이발사가 손님들의 목을 따고, 기계장치 의자에 의해 시체가 아래로 떨어지면 아래층의 제빵사가 시체를 가지고 고기파이를 만들어 판다는 등 스위니 토드를 둘러싼 풍문은 빅토리아 시대 런던 시민들의 공포심을 자극할 만한 다양한 요소를 갖추고 있었다. 이 이야기에서 주목할 점은 스위니 토드에 의해 죽어나가는 사람들이 그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익명의 손님들이라는 것이다. 어느 정도의 예외는 있지만, 그리스 비극에서부터 셰익스피어 비극에 이르기까지 모든 비극의 희생자들은 서로 연관성을 지니는 인물들이다. 어떤 비극에서도 아무런 이유없이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죽이지는 않는다. 가령 셰익스피어의 초기 비극 <티터스 안드로니커스>에는 스위니 토드 이야기와 비슷하게 살인과 육체훼손, 그리고 죽은 시체로 만든 고기파이가 등장하지만, 그 극의 어떤 인물도 아무런 의미없이 죽어가지는 않는다. 죽을 사람
[영화읽기] 사회 전체를 향해 면도칼을 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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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는 슈렉 일당의 짓궂은 몽둥이에 계속 얻어맞기만 하더니 오랜만에 느긋한 태도로 아직 죽지 않아, 하는 식으로 익숙한 코드와 발랄한 노래와 친근한 캐릭터들을 잔뜩 풀어놓은 <마법에 걸린 사랑>을 내놓았다. 물론 죽을 리가 없다. 디즈니가 팔아넘기는 상품들은 유구하다. 그중에서도 가장 잘 팔리며 금강석처럼 견고한 상품은 진정한 사랑의 키스(true love’s kiss)를 해줄 내 짝을 찾기만 한다면 그와 같이 영원히 행복하리라는 꿈이다. 주인공 지젤은 이혼남이며 또 이혼 전문 변호사인 차가운 로버트에게 당신이 사랑한다는 사실을 그녀가 어떻게 아느냐, 애인에게 노래를 불러줘서 알게 해주라지만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치는 남자의 노래 따위, 술 마시다 간 어두컴컴한 노래방에서 몰래 숨겨 가지고 들어온 맥주캔을 쥐고서 듣기 십상이고 게다가 거기서 ‘오빠’가 불러주는 윤도현의 <사랑2> 같은 느끼한 노래를 들으며 아, 오빠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겠어, That’s
[냉정과 열정 사이] 거짓말이어도 괜찮아, 기분 좋게 속아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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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랭크 다라본트와 스티븐 킹의 관계로 읽기
첫 번째 판본. 이게 가장 따분하다. 프랭크 다라본트와 스티븐 킹 사이의 관계를 중심으로 합의를 설명하는 것이다. 물론 스티븐 킹의 소설을 프랭크 다라본트는 마치 그의 소설의 집사라도 된 것처럼 충실하게 옮겼고, <쇼생크 탈출>은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다. 그런 다음 <그린 마일>은 (지루하지만)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당신이 스티븐 킹의 팬클럽이라면 이 판본은 충분히 따져볼 만한 게임이다. 우선 영화의 절반 정도를 따라갈 때까지 프랭크 다라본트는 매우 충실한 독자처럼 보인다. 그러나 카모디 부인이 점점 종교적 광신을 슈퍼마켓 안의 사람들에게 설교할 때부터 균형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그래도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핵심은 마지막에 있다. 둘 다 ‘그것’의 정체에 대해서는 함구무언한다. 스티븐 킹은 문자의 상태이기는 하지만 ‘희망’(hope)을 제시한다. 프랭크 다라본트는 할아버지-할머니-아버지-어머니-아들로 이루어
[전영객잔] 새롭게 사유하라!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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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만 있습니다. 그러므로 영화를 보실 분들은 자제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충분히 경고했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이건 프랭크 다라본트의 <미스트>가 아니라 지난 한해에 만들어진 할리우드영화를 한달 동안 몰아서 본 다음 중얼거린 질문이다. 제이슨 라이트먼의 ‘10대 소녀의 지옥을 웃기게 그린’ <주노>와 마이클 베이의 ‘10대 소년의 로망을 심각한 척 담은’ <트랜스포머>를 한해에 동시에 보게 되었을 때, 텍사스에 관한 두편의 ‘웨스턴 이후’의 영화라고 할 수밖에 없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비범한) 폴 토머스 앤더슨의 <데어 윌 비 블라드>와 조엘 코언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본 다음 뉴질랜드에서 온 앤드루 도미닉이 브래드 피트를 주연으로 연출한 ‘웨스턴’ <제시 제임스 암살>을 보게 될 때, 쿠엔틴 타란티노의 <데쓰 프루프>와 로버트 로드리게즈의 <플래닛 테러>
[전영객잔] 새롭게 사유하라!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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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2월12일 화요일 4시
장소 CGV 용산
이 영화
화가 성남(김영호)은 우연히 유학생들과 어울려 대마초를 핀 것이 문제가 되자 파리로 도피하여 그곳 한인 민박집에 머무르며 할 일 없이 시간을 보낸다. 아내(황수정)와는 매일 밤 1시에 통화를 하지만, 파리에서 그는 몇명의 여자를 만나게 된다.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10여 년 전 애인 민선을 만나고, 민박집 주인이 소개해 준 현주를 따라 미술관에 가기도 한다. 현주의 룸메이트인 유명 미술대학 유학생인 유정(박은혜)도 만난다. 성남은 점점 더 유정에게 끌리게 되고 구애하게 된다.
100자평
'화가 김성남의 34일간의 감정 기록'. 홍상수가 트리트먼트에 부제로 붙여 놓았다는 이 말보다 영화 '밤과 낮'을 더 잘 요약할 수 있는 말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방점은 '감정 기록'에 있으며, 물론 그 감정의 드라마의 중심에는 '연애감정'이 있다. 영화의 '일기체' 형식은 느슨해 보이지만, 단단한 구조의 다른 형식이기도 하다. 말
홍상수의 <밤과 낮> 첫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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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즈다이어리] <점퍼> ‘점퍼’가 되고 싶어요.
[헌즈다이어리] <점퍼> ‘점퍼’가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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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1일 <데스노트 L>의 홍보를 위해 한국을 찾은 배우 마츠야마 켄이치를 만났다. 2007년 7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일본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젊은 배우. 그와 가진 15분간의 인터뷰 전문을 공개한다.
-<데스노트 L>엔 어떻게 출연하게 됐나.
=<데스노트> 1편이 일본에서 개봉하고 스핀오프 작품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때부터 출연 이야기도 오갔다. 그때는 그냥 아무런 생각이 없었는데 연출이 나카다 히데오 감독님으로 정해지고, 대본도 구체적으로 나오면서 조금씩 긴장되고, 부담도 느꼈다. 그러데 대본을 보니 이전과는 전혀 다른 L이 있더라. 지금까지 L은 계속 방에 틀어박혀서 냉정하게 게임을 플레이하듯 일을 했는데 이제는 밖에 나가고, 스스로 움직이더라. 내가 생각하고 있던 L과 너무 다른 이미지여서, 나도 새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처음엔 시나리오에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았다고 들었다.
=납득이 안됐다기 보다는 모르겠더라. 어떻
"모든 만남이 공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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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마 서먼
우마 서먼의 내니 다이어리? 최근 <더 엑시덴탈 허즈밴드>의 촬영을 끝낸 우마 서먼은 아동소설 시리즈를 원작으로 한 <파리의 엘리제>에서 조숙증에 걸려 죽음에 가까워지고 있는 아이를 돌보는 보모를 연기할 예정이다. 영화는 오는 6월 런던과 뉴욕, 파리에서 촬영을 시작하며 제작사인 핸드메이드사는 이 영화를 시리즈로 제작하기로 했다. 다음 작품은 <엘리제, 할리우드로 가다>이다.
와타나베 겐
존 쿠색과 공리가 출연하는 <상하이>에 와타나베 겐이 합류한다. <1408>에서 존 쿠색과 함께했던 미카엘 하프스트롬이 연출하는 <상하이>는 일본의 진주만 공습이 있기 4개월 전, 친구의 죽음에 의문을 품은 미국인이 상하이에서 정부의 거대 음모를 추적하는 이야기다. 존 쿠색과 공리는 사건을 파헤치다가 사랑에 빠질 예정이며 와타나베 겐의 역할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김옥빈
김옥빈이 박찬욱 감독의 부름을 받았다. <
[캐스팅] 우마 서먼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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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할리우드 주연입니다! 비가 워너브러더스의 신작 <닌자 암살자>(Ninja Assasssin)의 주인공으로 출연하게 됐다. 2월13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비는 러셀 크로, 스칼렛 요한슨, 에미넴 등의 소속사이자 미국 최대 규모의 에이전시인 WMA(William Morris Agency)와 전략적 제휴를 체결했음을 밝히고, 더불어 향후 미국에서의 활동 계획을 발표했다. 그의 차기작이 될 <닌자 암살자>는 조엘 실버와 워쇼스키 남매가 제작하는 작품으로, 올해 3월 독일 베를린에서 촬영에 들어갈 예정이다. 비는 “<스피드 레이서> 때 열심히 해서 워쇼스키 감독의 믿음을 산 것 같다. 너무 큰 기회라 정말 꿈만 같고, 지금 다른 것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내 몸을 전부 바치고 싶다”고 한껏 격앙된 소감을 밝혔다. 그는 또 “아직 시나리오 작업 중이라 영화의 내용은 공개할 수 없지만, <매트릭스> 이상의 액션이 나오기
비, 할리우드에서 스피드를 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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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세/ 영화감독
2000년 봄부터 2004년 봄, 뉴욕에서 나는 ‘필름 포 룸’에 등교하는 학생이었습니다. 거기서 나는 수많은 감정들을 생각하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태어나기 전의 영화들이 현재 내가 만든 영화보다 낫다는 사실에. 더 나은 영화를 만들겠다고 다짐했죠. 4년 뒤 나는 한국에서 <형사 Duelist>를 논문으로 영화학교를 한번 더 졸업했습니다. 시네마테크는 우리 삶을 간직하는 박물관이자 다음 세대와 공유하는 장소입니다. 그곳이 이제는 뉴욕에 가지 않아도 바로 곁에 있습니다. 여러분, 그 시네마테크를 아십니까?
[시네마테크 후원 릴레이 103] 영화감독 이명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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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환/ 영화감독
“2008년 서울아트시네마의 슬로건이 ‘시네마테크, 새로운 영년’이라고한다. 그만큼 시네마테크로서의 새로운 기준 혹은 과거 어렵게 필름을 구해보던 시절의 즐거움과 교감으로 돌아가자는 의미가 아닌가 싶다. 영화를 그저 한편의 영화로서가 아니라 사람들과 함께 나눌 수 있고, 서로 소중히 생각할 수 있는 것으로 인식했던 즐거웠던 시절로 돌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무엇보다도 영화를 사랑하고, 아끼고, 즐겨보는 것이 시작이 아닐까 한다. 많이 와서 봐주시라.”
[시네마테크 후원 릴레이 102] 영화감독 장준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