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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 남았어요!” 숨통을 턱 조이는 한마디. 답지를 미처 채우지 못한 학생이라면 조바심에 가슴을 졸일 것이요, 출근을 서두르는 직장인이라면 황급히 준비를 마치느라 혼을 뺄 것이다. 한데 이곳은 동화의 세계일까. 그림책처럼 알록달록 꾸며진 방에서 단잠에 빠져 있는 커플의 모습이 세속의 분주함과는 무관한 듯 보인다. 하지만 이곳에도 ‘5분’의 압박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시계 소리에 벌떡 일어난 여자가 남자를 보채기 시작하고, 3분, 2분, 1분, 카운트다운이 심박수를 높인다. 그런데 커플이 문 밖으로 나서는 순간, 깜찍한 반전이 이루어진다. 이들의 핑크빛 보금자리는 알고보니 시계 속의 세계. 문 밖으로 나선 남녀는 이제 또 다른 커플의 단잠에 찬물을 끼얹는 존재가 된다.
“5분 남았어요, 라는 말 자체가 가져다주는 스트레스는 누구나 느끼는 것 아닌가. 사실 내 자신이 게으른 성격이라 그런 상황을 많이 겪기도 했고. (웃음) 그 말 한줄에 착상해 영화가 시작됐다.” <5분전&
[이달의 단편 16] 채민기 감독의 <5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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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훈 감독과 작업한 <방과후 옥상> 때 아쉬움이 많이 남아서 이번 영화는 시나리오도 보지 않고 결정했다고 했다. 위험부담이 따르는 일인데.
=찍을 땐 그런 거 생각 안 한다. 개봉할 때 생각하지. (웃음) <방과후 옥상> 때는 저예산에 배급도 어려웠고, 완벽한 세팅이 아니었다. 완벽한 세팅에서 하게 되면 어떤 영화가 나올까 궁금했다. 이 감독님의 단편을 보면 짠한 게 있다. 그런 걸 이번에 해보고 싶었고 <방과후 옥상> 때보다 업그레이드될 거란 확신이 있었다.
-막상 해보니까 어떤가. 잘 맞는지.
=아닌 것 같다. (웃음) 유머의 코드는 비슷한데 멜로 코드는 좀 다르다. 나는 누르는 걸 좋아하는데 감독님은 많이 분출하는 걸 좋아하시더라. 사실, <애정결핍이 두 남자에게 미치는 영향> 이후에 반성을 많이 했다. 내 재주에 내가 넘어갔구나…. 그 표현이 딱 맞을 것 같다. 내가 너무 나를 과신했구나, 하던 찰나에 이런 (진지함이 있는)
[봉태규] 멜로연기는 이제 시작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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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출연을 거절했다고 들었다.
=시나리오를 받았을 당시엔 내 역할이 너무 크게 느껴졌다. 게다가 두 캐릭터를 연기해야 하는 것이니 더욱 자신없었다. 여러 시나리오들을 놓고 고민하다가 내가 지금 하지 않으면 후회할 작품이 뭔지를 추려내다보니 이게 딱 나왔다.
-아니/하니 캐릭터는 애초부터 정려원이라는 배우를 염두에 두고 쓰여졌다고 하던데.
=황인호 작가님은 내가 하면 딱 좋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하더라. 내 안에 엉뚱한 느낌이나 여러 가지 이미지가 있다고 생각해주신 것이니 감사한 마음이었다.
-하여간 첫 주연이니 부담감이 있었겠다.
=너무 많았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했다. 안주하려다 보면 발전이 없을 수도 있다고. 사실 이 영화는 개인적으로는 스스로에 대한 도전이라는 의미가 크다. 왜 집 살 때 보면 약간 무리를 해서 사잖나. 그렇게 하지 않으면 더 큰 집으로 이사를 못 가게 되니까.
-처음 내 집을 마련한 느낌과 같은가.
=그렇다. 많이 뿌듯하다.
[정려원] 나에 대한 도전, 많이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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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태규가 말했다. “나는 예쁜 사람이랑 해야 해요. 개성있게 예쁜 사람이 아니라, 정말 그냥 예쁜 사람 있잖아요.” 이번 영화에서 정려원을 설득한 일 외에도 <가족의 탄생> 때 그는 정유미를 김태용 감독에게 추천했다. 이유를 물으니 그가 돌려준 대답이었다. 감독이 채현 역에 어울릴 배우를 물어왔고 마침 봉태규는 단편 <폴라로이드 작동법>을 봤다. “감독님이 ‘너무 어려 보이지 않느냐’고 그러시기에 제가 계속, 괜찮다고 해서 끌고 왔죠.” 봉태규는 2∼3년 전부터, 민동현, 김태용 등 자신이 ‘형’이라 부르는 감독들에게 단편영화들을 추천받아 챙겨보곤 한다. “좋은 작품도 많고 좋은 배우들도 많아요. 유명해지기 전에 꼬드겨서… 저랑 영화 한편 같이 하자고 해야지. (웃음)” 봉태규는 ‘스타일링’에 욕심이 많고, 그걸 또 잘하는 사람이다. 호흡이 잘 맞을 것 같은 감독들, 자기와 잘 어울릴 것 같은 배우들을 염두에 두었다가 작업의 파트너로 만든다. <두 얼굴의
[봉태규, 정려원] 자기 스타일을 아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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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타(안나 짐스카야)와 다리오(맥스 파로디)는 동상이몽의 부부다. 침대 위에서는 자기밖에 모르는 다리오 대신 마르타를 황홀하게 만드는 건 열정 가득했던 과거를 복기해주는 꿈이다. 어느 날 미술관을 찾은 마르타는 그곳에서 화가인 레온(리카르도 마리노)을 만나 잠깐 동안의 짜릿한 시간을 갖는다. 누가 봐도 명백한 불륜인 탓에 마르타는 고민하지만, “질투는 가장 강력한 최음제”라는 친구의 충고에 따라 마르타는 자신의 불륜 행각을 과장하며 다리오를 자극한다. 하지만 성폭행을 당했다는 그녀의 말에 다리오는 “카드한도를 초과시킨 게 아니냐”며 웃을 뿐이다.
틴토 브라스의 영화에서는 모든 여자가 그 짓을 한다.(All ladies do it!) 그것은 섹스일 수도 있고, 불륜일 수도 있다. 또한 <올 레이디 두잇>의 다이애나와 <모넬라>의 모넬라가 섹스 앞에서 점잖은 척하는 남자의 성기를 깨운 것처럼, 그것은 짜릿한 과거를 돌이키고자 하는 노력일 수도 있다. <틴
한번의 섹스가 만인을 기쁘게 <틴토 브라스의 아모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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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펄스> 난 유비쿼터스 시대의 네트워크 귀신이 될거야!
[정훈이 만화] <펄스> 난 유비쿼터스 시대의 네트워크 귀신이 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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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방에 들어선 다마키 히로시는 재킷을 벗었다. 셔츠의 단추도 하나 풀었다. “더워요. 겨울에도 더위를 타거든요.” 180cm의 키에 수영으로 다져진 어깨, 짙은 검은 머리가 풍기는 차가운 도시의 느낌과 달리 그의 말과 행동은 좀 의외였다. “폼을 잡고 찍은” 남성 패션잡지 <멘스 논노> 사진의 고독한 느낌을 생각하면 오해다. 일본의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 출연한 그의 모습은 나고야 남자답게 다혈질이고 엉뚱하다. CF에서도 그는 멋진 캐릭터보다 웃긴 캐릭터를 더 많이 연기한다. 땀을 흘리며 라면을 먹거나(나가타니엔), 녹차 색의 유카타를 입고 입에 도넛을 물며(미스터 도넛), 수영복 차림에 기타를 치고 노래를 한다(마루이). <캐리비안의 해적: 망자의 함> DVD의 일본 발매 기념 행사에선 2시간에 걸친 메이크업으로 잭 스패로우의 코스프레를 하고 나타났다. 전교생이 동경하는 완벽한 남자 치아키 선배(드라마 <노다메 칸타빌레>)는 그의 말 그대로 “닮
[다마키 히로시] 치아키 선배의 엉뚱한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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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력을 발휘해야 할 때다. 창백하고 네모난 얼굴, 냉담하며 완고한 눈동자, 신경질적으로 가느다란 입술. 불편함과 친숙함을 동시에 유발하는 낯의 그는 비밀 요원이나 군인, 폭압적인 아버지로 꽤 오랫동안 스크린을 방문해왔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명백한 진실 하나. 몸에 딱 붙는 옷을 입듯 일말의 위화감없이 인물을 소화하는 ‘캐릭터 액터’를 보며 사람들은 ‘캐릭터’를 기억하고 ‘액터’를 잊어버린다. 그 자리에 너무도 합당하기에 오히려 망각되는 얼굴들, 크리스 쿠퍼는 바로 그런 배우였다. 머리색을 바꾸고 시상식에 등장했을 때 함께 작업했던 촬영감독이 “대체 크리스 쿠퍼는 어디 간 거야?” 하고 고개를 갸우뚱했다는 웃지 못할 일화는 그가 각인되어온 방식이 관객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니었음을 짐작게 한다. “한동안 그런 식이었다. 영화에서 보안관을 연기하면 한 반년 동안 보안관 역할만 들어오고, 엄한 아버지를 연기하면 엄한 아버지 역만 쏟아지고. 배우라기보다는 그저 기능적인 캐릭터로 존재하듯이
[크리스 쿠퍼] 그를 안다고 말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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틴토 브라스는 영화 역사상 가장 ‘주책 맞은 늙은이’일 것이다. 올해 나이 75살. 고희를 지나 팔순잔치를 앞두고 있는 나이에도 그는 여전히 여성의 치맛자락을 들춰내며 해맑게 웃는다. 틴토 브라스의 2005년작 <틴토 브라스의 아모르>(이하 <아모르>)는 제목에서부터 그의 모든 영화를 집약하는 작품이다. 원제인 ‘monamour’는 ‘여자의 성기’를 지칭하는 ‘mona’와 ‘정사’를 뜻하는 ‘amour’가 결합된 단어다. 틴토 브라스의 관심사가 그것 말고 다른 게 있었던가. 뻔뻔하고 음탕한 감독, 그럼에도 언제나 궁금했던 틴토 브라스의 속내를 들춰본다.
1. 난 그냥 포르노 감독이 아니라니깐
페데리코 펠리니, 로베르토 로셀리니 등 이탈리아의 거장과 함께 영화계에 입문한 틴토 브라스는 1976년작 <살롱 키티>를 통해 처음으로 자신의 장기(?)를 드러냈다. 독일 나치시대, 창녀로 일하면서 정보를 캐내는 여성당원들의 이야기를 담은 이 영화는 적나라한
[알고 봅시다] 밝힘증 할아버지에겐 뭔가 특별한 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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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임원희는 ‘내일의 주연배우’로 불렸다. ‘장진 사단’의 일원으로 영화계에 들어와서 주목을 받았던 그는 인터넷영화 <다찌마와 리>에서 다찌마와 리로 등장해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 그 뒤에 출연한 <이것이 법이다>와 <재밌는 영화>에서 그의 자리는 한 단계 격상됐다. 조연급 배우에서 일약 주연이 된 그의 미래는 탁 트인 고속도로처럼 보였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그의 ‘주연시대’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그는 코믹한 캐릭터의 주연 제의를 거절하면서 <실미도> <쓰리, 몬스터> <주먹이 운다>에서 다시 조연으로 출연했고, 언젠가부터는 아예 스크린에 등장하지 않았다. 그리고 2년 반이 흐른 지금, 임원희는 <죽어도 해피엔딩>과 <식객>, 2편의 영화에서 자신의 존재를 다시금 드러내고 있다. <죽어도 해피엔딩>에서 그가 맡은 두찬이라는 캐릭터는 공주병 심한 여배우 지원(예지원)을 10년 동
[임원희] 욕심을 버려야 나도 살고 영화도 산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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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영화제(MWFF)는 손님인 이주노동자들이 주인인 한국인들을 초대하는, 조금 특별한 잔치다. 억압, 차별, 동정의 대상이었던 이주노동자들이 당당히 문화 생산의 주체로 나선 것이다. 올해 두 번째인 이주노동자영화제의 슬로건은 ‘무적활극’(無籍活劇)이다. 비록 ‘적’(籍)을 잃고 ‘죽거나 떠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여 있지만, ‘즐겁고 생동감있는 삶의 모습’을 만들어 나누고자 하는 ‘그들의’ 다짐과 희망을 담았다.
잔치는,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리는 개막전(8월31일~9월2일)과 10월 말까지 전국의 9곳(안산, 제주, 대구, 의정부, 용인, 인천, 마석, 여수, 김해)을 순회하는 지역상영전으로 나누어 전국적으로 치러진다.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리는 개막전에서는 13개 섹션으로 나누어 30여편의 작품이 상영되며, 다양한 부대행사들이 펼쳐진다. 개막작은 세르지오 아라우 감독의 <멕시코인이 사라진 날>이다. 만약 캘리포니아에 사는 남미인들이 하룻밤 만에 사라진다면, 이라
우리의 편견을 파헤치는 뼈아픈 문제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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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사서인 유코(가와이 아오바)의 알람시계는 코시노(엔도 마사시)의 일상에 맞춰져 있다. 그의 출근을 배웅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그녀는 그가 씻을 때 씻고, 그가 먹을 때 먹고, 그가 잠들 때 잔다. 하지만 둘은 부부도 아니고 연인도 아닌, 위층 남자와 아래층 여자의 관계다. 유코는 천장 너머로 그의 숨소리를 듣고 그의 움직임을 상상하며 미소 짓지만, 코시노의 눈은 또 다른 여자를 쫓고 있다.
<스토킹 그리고 섹스2>에서 섹스는 별로 중요치 않은 부분이다. 스토킹과 섹스가 이야기를 끌고가는 소재이긴 하지만, 영화는 느릿한 연출로 지독히 외로운 두 남녀의 무력한 표정을 담는 데 더 많은 공을 들인다. 하릴없이 천장을 바라보는 유코나 아무런 감흥없이 직장과 집을 오가는 코시노는 모두 자신을 외부와 단절시킨 도시남녀다. 유코는 코시노의 집에 숨어들어가 그의 화장실을 사용하고, 그의 칫솔에 머리카락을 감아놓는 등의 스토킹을 하지만 코시노에게 해를 가하는 법은 없다.
지독히 외로운 두 남녀의 무력한 표정 <스토킹 그리고 섹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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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 홍콩 촬영 때의 일이다. 정확한 지명은 모르겠다. 인사동 같은 분위기의 골목에서 야간 촬영을 하고 있는데 10명 정도 되는 파파라치들이 몰려왔다. 처음에는 한명밖에 없어서 의식을 별로 안 했는데 그 사람이 전화를 하니까 여기저기서 튀어오더라. 제작부쪽에서 사진 촬영을 못하게 했는데 파파라치들이 그 정도에 물러나겠나. ‘우리가 못 찍으면 너희도 못 찍는다’라는 식으로 계속 플래시를 터트려서 촬영을 방해했다. 같이 카메라를 든 입장이다 보니 더 열이 받더라. 어떤 상황이라도 피사체의 감정을 무시하고 사진을 찍어선 곤란하다. ‘너네도 한번 당해봐라’ 하는 식으로 파파라치 무리를 향해 플래시를 몇번 터트렸는데, 우리 스탭들이 내버려두는 게 상책이라고 하더라. 그런데 정작 배우들은 파파라치들이 오면서 더 열을 냈던 것 같다. 한국 관광객 말고는 알아보는 이가 별로 없었는데 예상치 못했던 구경꾼들이 나타나는 바람에 더 긴장하고 몰입했던 것이
[숨은 스틸 찾기] <지금사랑> 지금 방해꾼들과 촬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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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구름(黃雲)이 지나가면 흑백화면이 컬러로 바뀐다. 흑백화면은 참전한 모두를 평등한 군인인 척 위장하지만, 컬러화면이 그들의 피부색까지 감출 순 없다. 유럽 연합군들은 승리의 샴페인을 백인을 위해서만 터뜨렸을 뿐, 영광은 결코 유색 군인들의 이름을 호명해주지 않았다. 프랑스 전쟁영화 <영광의 날들>은 제2차 세계대전 때 아프리카 북부와 이탈리아, 프랑스 등지에서 싸운 아랍 자원군들의 서글픈 참전기를 다뤘다. 갈색 피부의 프랑스 군인들은 사실상 피와 전쟁의 노래인 <라 마르세예즈>와, “아름다운 프랑스 국기를 지키기 위해, 식민지 땅에서 조국을 구하러 왔다”는 군가를 부른다. 영화는 자연스럽게도 전쟁영화의 익숙한 수사인 반어를 취해 제국들의 전쟁이던 제2차 세계대전을 ‘영광의 날들’이라고 명명한다. 영광은 백인들의 것으로 독점됐지만, 죽음은 피부색을 차별하지 않았다. 제국들의 전쟁에 끼어든 아랍의 군인들은 단지 ‘자원군’이라는 초라한 위로로 무덤의 십자가 아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자존과 실존 <영광의 날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