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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의사가 꿈이었던 동네 치과의사 더그(팀 앨런), 파산을 눈앞에 둔 모델 매니저 우디(존 트래볼타), 가장다운 권위가 없는 배관공 바비(마틴 로렌스), 덤벙대고 실없는 노총각 더들리(윌리엄 H. 메이시). 이 네명의 불알친구들은 일상에 얽매인 중년의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다. <거친 녀석들>은 이들이 충동적으로 의기투합해 일주일간 일탈의 여행을 떠난다는 설정의 코미디물이다. 여행에 필요한 건 새끈한 오토바이와 선글라스, 가죽 재킷. 서쪽 해변에 도달하는 목표를 이루지 못해도 상관없다. 이렇게 무계획적인 여행처럼 <거친 녀석들>의 줄거리도 별것은 없다. 70년대 로큰롤 뮤지션 스티브 윈우드의 히트곡 <Gimme Some Lovin’>으로 시작하는 이 영화는 네대의 오토바이가 자연을 가르고 시원하게 뻗은 도로를 죽죽 달리는 풍경을 보여주는 것에 가장 충실하다. 게이 경찰관을 만난다든지, 폭주족 일당에게 강탈당한다든지 하는 사건들이 벌어지긴 하지만 여행
일주일간 일탈 여행 <거친 녀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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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앙투아네트> Marie Antoinette
태어나자마자 아버지의 영화 <대부>에 출연했던 소피아 코폴라는 <대부3>에서 콜레오네가의 마지막 아이로 다시 등장했다. 한동안 나는 코폴라의 표정 연기를 멍청한 것으로 생각해왔다. 그때는 몰랐다. 코폴라는 총에 맞아 죽는 소녀를 연기하면서 ‘나는 열아홉에서 멈출 거야. 나는 결코 어른이 되지 않을 거야’라고 결심했던 것 같다. 그녀는 십대 소녀의 영역을 울타리 삼아 폭력적이고 야만적인 바깥세상을 경계하는 감독으로 자랐다. <처녀 자살 소동>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마리 앙투아네트>의 주인공은 각각 10대, 20대, 30대 여성이지만, 세 영화는 모두 성숙하기를 거부한 여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1970년대 미국 중서부의 한적한 마을이 되었건, 21세기 일본 도쿄의 북적대는 도심이 되었건, 18세기 프랑스 베르사유의 호화찬란한 궁정이 되었건, 코폴라의 영화를 지배하
스크린 속 핑크빛 향락을 고스란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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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정상인의 외양 이면에 무시무시한 일탈의 욕망을 가진 남자의 이중생활을 그린 드라마. 얼 브룩스(케빈 코스트너)는 신앙심 깊고 사업적으로 성공했고 아름답고 헌신적인 아내와 예쁜 딸을 둔 중년의 남자다. ‘충동이 그를 다시 찾아왔다. 그를 떠난 적도 없다’는 구절로 시작하는 <미스터 브룩스>는 이야기를 지연시킬 것도 없이 막바로 그의 흠없는 삶과 공존해 있는 살인자로서의 내면을 마셜(윌리엄 허트)이라는 인격체를 통해 보여준다. 마셜의 부추김으로 얼은 2년 전에 멈춘 연쇄살인을 다시 시작하고, 담당형사였던 트레이시 앳우드(데미 무어)는 다시 수사에 뛰어들었다가 이상한 누명을 쓴다. 사건의 목격자는 사건의 동참자가 되며 살인자 얼은 어두운 등잔 밑에서 생명의 위협을 받는다.
<미스터 브룩스>는 인간의 무서운 양면적 얼굴들을 다양하게 보여주려는 영화다. 카드를 여러 장 늘어놓고 두세장씩 계속 뒤집기하는 느낌인데, 스토리텔링의 방식은 얼/마셜의 두 캐릭터 설정에
인간의 무서운 양면적 얼굴 <미스터 브룩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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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8월24일 오후 2시
장소 대한극장
이영화
여고생 지혜(박하선)는 시험을 치르던 도중 첫사랑을 만나러 갔다는 남자친구의 문자메시지를 받는다. 지혜의 남자친구는 다름아닌 할아버지 최호(하명중). 자신을 친구처럼 대할 정도로 각별한 정을 쏟는 할아버지에게 축하 문자를 보낸 지혜는, 얼마 후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게 된다. 뉴타운 개발로 인해 한시간 후면 폭파될 구파발 지역에 자신의 할아버지가 무단으로 들어간 것이다. 노년의 작가 최호는 무슨 일로 세상에서 곧 자취를 감출 동네에 찾아든 것일까. 그가 품에 꼭 안은 작은 보따리에는 무엇이 든 것일까. 뉴스를 들은 뒤 구파발로 달려가는 손녀의 다급한 발걸음과 아무도 없는 곳에서 누군가의 자취를 어루만지는 할아버지의 손길이 겹치면서 영화는 자식 셋을 키웠지만 홀로 남은 여인 이영희(한혜숙)의 잊혀진 삶을 불러들인다.
100자평
연기와 연출을 겸하며 1970, 80년대 활발한 활동을 펼쳤던 하명중 감독이 <혼자도는 바람개비&g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 첫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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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9월2일 오후 2시20분
간혹 ‘술과 담배 중 어느 것이 더 해로운가?’처럼 ‘커피와 담배 중 어느 것이 더 해로운가?’를 질문하는 사람들이 있다. 둘 다 끊을 용기는 없으니 그나마 ‘덜’ 해로운 것을 선택해보겠다며 머리를 굴리는 건데, ‘둘 다 끊지 않으면 그게 그거야’라고 가상한 결단에 찬물을 퍼붓고 싶어진다. 그러나 현실은 부드러운 웰빙의 미소에 매혹당해버린 지 오래다. ‘커피 한잔의 여유’ 따위의 문구를 내걸고 흡연을 금지하는 커피집들이 늘어가는 작금의 상황은 건강에 유해한 취향의 소유자들에게는 불길하고 불만족스러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짐 자무시의 <커피와 담배>는 순간을 만끽하기 위해 기꺼이 건강을 바치는 이들의 영원한 로망이자 이들에게 위안이 될 만한 영화다. 특히 이 영화는 담배 연기와 커피 향기 외에도 짐 자무시의 괴팍한 친구들의 엉뚱한 독설이 가득한 보물 상자다.
1986년부터 틈틈이 ‘커피와 담배’를 주제로 단편을 만들어오던 짐 자무시는
유해한 낭만, <커피와 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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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은 정말 좋아.’
SBS 특별기획 <칼잡이 오수정>의 오수정(엄정화)은 이 여섯 글자를 가감없는 진심으로 꼭꼭 씹어 내뱉을 줄 아는, 드라마나라의 흔치 않은 ‘금성녀’다. 착하고 꿋꿋하게만 살면 왕자의 백마 뒷자리에 동승할 수 있음을 증명해온 숱한 신데렐라들이 본다면, 돈 많은 남자와 결혼하고 싶은 욕망을 주저없이 표현하고 안달 떠는 그가 미련하게 여겨질 수도 있을 것이다. 또 <환상의 커플>의 태생부터 유아독존 공주인 ‘조안나’(한예슬)도 아니면서 ‘됐거든’ 하며 콧대 높은 말투를 일삼는 모습은 주제 파악 못하는 34살 노처녀의 철없음을 보여준다. 사법고시에 떨어졌다는 이유로 정혼자를 결혼식 당일 ‘뻥’ 차버렸음에도 그가 짱짱한 킹카가 돼 돌아오자 다시 눈에 ‘하트 광선’을 켜는 뻔뻔함은 드라마 사상 가장 밉상인 여주인공이 탄생했다고 선언하고도 싶어진다. 한편, 그의 배신이 없었다면 뚱뚱한 ‘고만수’가 몸짱 ‘칼 고’(오지호)로 변신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드라마 사상 가장 노골적인 속물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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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두살 미혼 동갑인 주연(염정아)과 성태(탁재훈)는 10년지기 친구다. 대학 때 우정과 사랑 사이의 각별한 관계이기도 했던 두 사람은 동기들과 모인 술자리에서 과하게 취해, 실수로 동침을 한다. 이 실수가 두번 반복되고 둘은 결혼한다. 결혼식을 올리고 이튿날, 주연과 성태는 각각의 직장에서 완벽한 이상형의 이성들을 만난다. 외모에서 능력까지 부족할 게 없는 이 이상형들은 주연과 성태에게 호감을 보이고, 주연과 성태는 갈등하기 시작한다.
왠지 해야 할 것만 같은 결혼을 한 뒤에 내 이상형을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하나? <내 생애 최악의 남자>가 던지는 질문은 굉장히 흥미롭다. 영화 속 염정아의 내레이션처럼 “선을 봐서 했건, 아이가 생겨서 했건, 우정을 믿고 했건” 어쨌든 결합을 한 이 관계가, 맺어지자마자 깨어질 위기에 처한 상황을 적극적으로 그리는 <내 생애 최악의 남자>는 그러나 막상 질문만큼 흥미로운 과정과 답을 제시하지 못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주연
웃음 유발을 위한 자극적인 코미디 <내 생애 최악의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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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TV드라마 시리즈 남우주연상 부문은 그야말로 별들의 전쟁이었다. 2006년에 이미 수상한 바 있는 <하우스>의 휴 로리는 물론이거니와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한 <그레이 아나토미>의 패트릭 뎀시, 영화 <트위스터>로 더 잘 알려진 <빅 러브>의 빌 팩스톤 그리고 2002년 이미 같은 상을 받았던 미드계의 최고 스타 <24>의 키퍼 서덜런드가 후보에 올라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들과 함께 후보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 낯선 배우가 있었으니 바로 마이클 C. 홀이었다.
10편이 넘는 오프 브로드웨이 작품에 출연한 베테랑 배우지만, 그가 본격적으로 대중에게 알려진 것은 우리 나이로 31살이던 2001년이었다. 2005년까지 방영된 <식스 핏 언더>라는 장의사 집안 이야기를 다룬 미드에 주연으로 출연해 호연을 펼치면서였다.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장의사업을 떠맡은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이 드라
[이철민의 미드나잇] 그 남자 경쾌하고 흉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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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레이 감독의 <브리치>는 등장인물 대다수가 FBI 요원인데도, 첩보스릴러보다 ‘직업의 세계’나 ‘인간극장’에 가까운 야릇한 영화다. 영화는 이중간첩 행위로 미국 국가안보에 막대한 피해를 입히고 미국 스파이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FBI 간부 로버트 한센(크리스 쿠퍼)의 체포 직전 마지막 나날을 그린다. 25년 재직기간 중 무려 22년을 이중간첩으로 암약한 한센의 진짜 동기는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다. 쉬운 짐작은 물론 돈이다. 가톨릭 신자인 그에겐 여섯명이나 되는 자녀가 있었다. 그러나 그가 KGB로부터 받은 140만달러의 상당액은 인출 불가능한 계좌로 입금됐다는 기록도 전해진다. 그게 아니라면, 혹시 미 제국주의 및 자본주의를 교란하려는 공산주의자의 신념? 이건 본인이 노발대발할 추측이다. 한센은 바지 입은 여자를 미워하고 성적 소수자를 혐오하는 골수 보수주의자였다.
(<다빈치 코드>에 나오는 바로 그) ‘오푸스 데이’의 단원이었던 한센은 사무실을 가족
어느 FBI 이중간첩의 초상 <브리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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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미-‘개미요정 두 번째 이야기’전 8월29일~9월4일/ 갤러리 우림
이보다 재밌을 수 있을까. 나들이에 나선 개미요정과 고양이가 한바탕 신경전을 펼치고 있다. 스릴 넘치는 탐색전은 톰과 제리를 닮았다. 신선미의 작품이 유독 보는 이를 매혹시키는 특별한 이유, 첫 번째는 바로 ‘유쾌한 긴장감’이다. 전혀 부담스럽거나 무겁지 않다. 간결하면서도 산뜻한 이야기 구조가 보는 맛을 더한다. 겉으로는 단순히 잊혀져가는 전통 채색기법을 현대적으로 재현했다고만 보일 수 있지만, 결국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이룬 감칠맛 넘치는 이야기 그리고 무릎을 치게 하는 해학미’ 등이 신선미 작품만이 가진 결정적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신선미 작가의 이름은 낯설다. 하지만 그녀의 그림은 이미 유명하다. 소설가 황석영의 신작 장편소설 <바리데기>. 최근 김훈의 <남한산성>에 이어 가장 큰 화제를 뿌리고 있는 베스트셀러 중 하나다. 특히 유수의 많은 일간지 전면에 지면광고까지 실리는
개미요정과 고양이의 유쾌한 신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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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터비아>를 성공적인 대중영화로 만든 것은 스릴러적 완성도가 아니다. 그 흔한 반전 하나없이 직선주로를 달리는 플롯은 스릴러로서 큰 매력이 없다. 보는 자와 보이는 자를 엮어가며 서스펜스를 직조하는 솜씨도 그리 훌륭하다고 볼 수 없다. 범인과 일전을 벌이는 장면은 구성상 클라이맥스에 해당하는데도 긴장감이 떨어진다. 마지막 1대1 대결은 주인공 못지않게 악당의 동선을 적절히 스케치해야 장르적 재미가 생기는데, 이 영화는 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10여년 전, 만듦새가 결코 좋지 않았는데도 크게 히트하며 숱한 아류작을 낳았던 공포영화 <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가 성공했던 이유. <디스터비아>를 흥미롭게 만드는 것은 스릴러에 수혈된 청춘영화적 에너지다.
교통사고로 아버지를 잃고 충격을 받은 고교생 케일(샤이어 라버프)은 교사를 폭행해 90일간 가택 연금된다. 전자 발찌가 채워져 30m 밖으론 나갈 수 없게 된 신
스릴러에 수혈된 청춘영화적 에너지 <디스터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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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 하진 지음 | 시공사 펴냄
만약 사랑과 마음의 평화 중 하나를 택하라고 하면 당신은 무엇을 택할 것인가? 하진의 <기다림>은 20년 가까이 선택을 피하고 기다림을 택했던 남자 쿵린과 그의 두 여자들 이야기다.
1983년 중국. 육군병원에서 내과의로 일하는 쿵린은 해마다 여름이면 이혼 청원서를 들고 고향으로 내려간다. 딸을 낳은 뒤 17년간 사실상 별거하고 있는 아내 수위와 이혼하기 위해서다. 병상에 누운 어머니의 간곡한 부탁으로 떠밀리듯 한 결혼이었는데, 수위는 시대에 맞지 않게 전족을 한 박색이었다. 린이 이혼을 원한 이유는 그게 다가 아니었다. 린은 병원에서 함께 일하는 간호사 만나와 오랫동안 정신적인 사랑을 나누고 있었다. 20대 중반이던 만나는 린의 이혼을 기다리다 40대가 되었다. 그래서 린은 여름이면 고향으로 가 아내에게 이혼을 청한다. 수위는 이혼에 동의하지만 법정에서 눈물을 보이고 마음을 돌린다. 린은 어머니와 아버지의 병수발을 끔
기다림에 대한 간결하지만 아름다운 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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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학교에서 가정환경조사라는 것을 했던 기억이 있다. 집에 자가용이 있는지, 월소득이 얼마인지, 부모님 직업은 무엇인지 등을 적어내는 것인데 공란으로 적어내면 다시 써오라는 꾸지람을 듣곤 했다. 가정환경조사를 하면 늘 마음에 걸리는 게 하나 있었다. 부모님의 학력을 묻는 난이었는데 고졸, 중졸인 당신들은 항상 대졸, 고졸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학력을 기재하곤 하셨다. 그렇지 않다는 걸 뻔히 아는데 왜 꼭 거짓으로 학력을 높였을까 궁금했지만 차마 물어보진 못했다. 아마 궁색한 대답에 오히려 상처를 받지 않을까 싶었던 게 아닐지. 그러면서 자연스레 몸에 밴 것이 있다. 학력이 낮은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는 생각. 그게 부끄러운 일이 아니란 것을 깨닫기까지는 시간이 많이 걸렸던 것 같다. 대학에 다닐 때, 오랜만에 만난 고등학교 친구들의 대화에서 아무개는 대입 시험 성적과 무관하게 어느 대학을 갔다는 얘기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운좋게(혹은 부정한 방법으로) 특기생으로 입학한
[편집장이 독자에게] 학력 검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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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은 ‘누벨바그’ 50년을 축하하는 해이다. 한편 그 당시 ‘급진적 젊은이’라고 불렸던 그들은 이제는 할아버지들이 됐다. 영화의 이 할아버지들은 2007년 최고 프랑스영화 중 몇편을 우리에게 주었다.
한국인들은 알랭 레네 감독의 <마음>의 애잔한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다. 85살의 레네는 허우샤오시엔이나 데이비드 린치가 그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고백하면서 여전히 현대영화에 닻을 내리고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가 장면 분할을 높이 평가하는 (<소프라노스>, <24> 등과 같은) 미국 드라마에서 영감을 얻는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마음>의 음악은 <X파일>의 크레딧 작곡가인 마크 스노가 맡았다.
레네 감독이 천천히 끈기를 가지고 작품을 조각하듯이 가다듬으며 작업을 한다면, 77살의 클로드 샤브롤 감독은 매년 한편의 장편을 뽑아낸다. 그의 최근 작품은 <둘로 잘린 소녀>인데 지금도 상영 중이다
[외신기자클럽] 할아버지가 만드는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