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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청도군 청도읍의 조용한 주택가, 남녀노소 주민들이 목을 길게 뺀 채 어딘가를 기웃거리고 있다. 그들의 애타는 시선이 가리키는 곳을 따라가보면 아담한 2층집이 보인다. 분주히 들락거리는 스탭들, 집 안으로 연결된 케이블선들, 그리고 무엇보다 담 밖으로 흘러나오는 중저음의 목소리는 이곳이 김대승 감독의 신작 <연인>의 촬영장임을 알 수 있게 한다. “아니 김 감독….” 모니터를 보며 점잖게 말을 꺼내던 백윤식이 눈길을 돌린다. “그럼 이번 신은 끝난 건가?” 귀에 익은 이 낭랑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그 곁에 앉아 있던 김미숙이다. 20년은 족히 됐을 이 단독주택에 깃든 <연인>의 두 주인공 백윤식과 김미숙은 실제로 집주인인 양 보였다.
10월3일 촬영을 시작한 <연인>은 10월19일 10회차를 맞고 있었다. 그 사이 몇 차례 비가 내렸고 영화산업노조와의 합의에 따라 1주일에 하루씩 쉬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비교적 빠른 속도다. 오후 2시부터 시작된
[촬영현장 습격] 김대승 감독의 신작 <연인> 청도 촬영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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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는 ‘단군 이래 최악’이라고 하고, 누구는 ‘이러다간 미래가 없다’고 합니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로 주춤거리던 한국 영화계가 올해 들어선 휘청거리는 상태까지 온 것을 두고 많은 이들이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흥행이 전반적으로 극도의 부진 속에 빠져 있고, 어렵사리 만들어진 영화들은 개봉날짜를 못 잡고 있으며, 투자자본들도 눈치를 보고 있는 지금은 분명 한국 영화산업의 위기임에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상황이 안 좋아도 영화 현장은 돌아가고 있습니다. 위기를 기회로 바꿔내려는 의지는 아직도 존재하고, 한국영화에 대한 관객의 불신을 떨쳐내려는 노력도 꾸준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다만 상황이 불안해서인지 마케팅 기법이 바뀌어서 그런지 촬영 현장 공개가 예전처럼 활발하지 못한 탓에 영화 제작이 부진한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씨네21>은 그동안 한번도 현장의 문을 열지 않았던 5편의 영화 촬영장을 찾아 한국영화의 새 희망을 발견하려 했습니다. 이들 작품 모두가 걸작 혹은
[촬영현장 습격] 그래도 카메라는 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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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10월29일(월) 오후 4시30분
장소 미로스페이스
이 영화
박수영, 조창호, 김성호 감독이 만든 옴니버스 영화. 첫 번째 이야기 <암흑속에 세 사람>(연출 박수영). 한 여학생(한여름)이 잠을 자다 시험시간을 놓친 뒤 실망감에 자살을 시도한다. 여학생의 주변에 모여드는 양호선생(김가연), 학생주임(박휘순), 기묘한 남학생(타블로)의 관계가 서로 얽히며 환상여행이 펼쳐진다. 두 번째 이야기 <날아라 닭>(연출 조창호). 경찰관으로 보이는 한 남자(김남진)가 자살을 위해 총을 들고 외딴 바닷가에 도착한다. 그러나 남자는 우연히 괴한들의 범죄 현장을 목격하고 자살은 잠시 미뤄진다. 세 번째 이야기 <해피버스데이>(연출 김성호). 생일을 맞은 한 노년의 게이 신사(정재진)가 자신의 생일을 잊은 친구들에게 화가 나 무작정 여행을 떠나고, 그 여행길에서 괴한들에게 쫓기는 청년(강인형)을 만난다. 노인은 청년을 대신해 자신이 대신 죽겠다고 결심한다.
<판타스틱 자살소동> 첫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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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역사의 아르데코풍 수영장, 이르욘카투
이 영화에서 몇번이나 시도되는 가장 기이한 인서트는 바로 사치에의 수영장신이다. 수영장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장엄한, 아르데코풍으로 꾸며진 이 독특한 곳은 바로 헬싱키의 명소 ‘이르욘카투’ (Yrjonkatu). 1928년에 오픈한 이래 8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이곳은 특이하게도 여자와 남자가 수영할 수 있는 요일이 분리되어 있다. 그래서 일주일의 며칠은 마치 카모메 식당이 그랬던 것처럼 온전히 여자들만의 공간이 된다. 영화 초반에는 사람들로 가득하던 그 수영장은 후반부로 가면서 점점 빈 공간으로 변한다. 비어 있던 식당이 점점 사람들로 넘쳐나는 풍경과는 정반대인 셈이다. 어쩌면 그 뜬금없는 수영장이라는 공간은 씩씩함과 친절함 속에 고이 숨겨둔 사치에의 외로움이 모여 유영하던 곳인지도 모르겠다.
공항에서 거짓말처럼 사라져버린 마사코의 짐은 몇주가 흘러도 도착하지 않고 그 유예된 시간은 마사코의 인생 그리고 혹은 또 다른 여자들의 인생
일본 인디영화 <카모메 식당>의 촬영지를 찾아 핀란드로 가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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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이건 ‘핀란드의 부엌을 향한 여행’이라는 부제를 붙여도 무방한 글일 것이다. <카모메 식당>을 보고 극장 문을 나왔을 때 들었던 처음 생각이, 나도 저런 부엌을 가지고 싶다, 였으니까. 용도도 크기도 다른 냉정한 냄비들과 스칸디나비아 특유의 생생한 컬러를 머금은 주전자와 커피잔들이 사이좋게 정렬된 선반, 어떤 재료든 마음껏 펼쳐놓고 자르고 손질하고 다듬을 수 있을 크고 튼튼한 조리대. 단순함의 미덕을 공간 속에 최대한 표현한 그 부엌은 다분히 실용적이면서도 그 자체로 참 아름다웠다.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아도 좋을, 혹 무슨 일이든 일어나도 괜찮을 그런 삶이 저곳에만 가면 펼쳐질 것 같은 막연한 상상. 집으로 돌아오는 길, 이어지는 두 번째 생각은 뻔했다. 아, 저런 부엌이 있는 그곳에 가고 싶다.
항구시장 카우파토리와 갈매기, 그리고 ‘갈매기 식당’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 이름만으로도 아득한 이 미지의 도시에서 일본 여자 사치에는 간 큰 결심을 한다. 흔히 일
일본 인디영화 <카모메 식당>의 촬영지를 찾아 핀란드로 가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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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처음부터 이 식당이 붐볐던 건 아니다. 핀란드에서 주먹밥집을 운영하는 일본 여자 3명의 심심한 이야기라니. 하지만 막상 문을 열고 나니 달랐다. 2006년 일본, 단 2개관을 시작으로 100여개관으로 확장 개봉된 <카모메 식당>은 그해 일본 인디영화계의 최고 히트상품이 되었다. 중년의 일본 여인들은 앞 다투어 핀란드행 비행기표를 예매했고, 그 덕에 헬싱키는 그 어느 때보다 늘어난 일본인 관광객을 맞이해야 했으며, 영화가 촬영되었던 식당에서 “스고이!” 같은 일본어 감탄사를 듣는 것은 어색하지 않은 일이 되어버렸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일본인디필름페스티벌’을 통해 처음 국내에 소개된 이후 올해 8월2일 정식 개봉되기까지 <카모메 식당>에 대한 감상평은 여기저기 블로그로 퍼져나갔고 훈훈한 입소문은 불법 다운로드의 어두운 구렁텅이로 호기심 많은 영화 팬들을 밀어넣었다. 여성감독 오기가미 나오코가 차려낸 심심한 듯 중독성 강한 <카모메 식당>의
세계의 끝 또는 원더랜드의 부엌, <카모메 식당>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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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소설은 왜 쓸까? 진실로, 왜! 우리는 계속 살아가야 한다.” 도리스 레싱은 <황금 노트북>이 최초 출간된 지 약 십년 뒤인 1971년에 서문을 추가한 <황금 노트북> 판본에서 그렇게 말했다. 자신의 소설에 쏟아진 수많은 말에 대한 답변인 그 글에서 레싱은 사회가 겪고 있는 대변동 속에서 여성 해방이 얼마나 달성하기 힘든 목표인가에 대해 말한다. 안나 울프라는 한 여성에 관한 이야기이자 안나가 쓰는 이야기를 담은 <황금 노트북>은 안나와 안나를 둘러싼 세상의 균열을 의식적으로 드러내 보여준다.
<황금 노트북>의 줄거리를 요약하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어떤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게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바라보는, 그리고 기록하는 한 여자의 의식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안나는 꽤 성공한 작가다. 혼자 아이를 키우며 살고 있는 그녀가 친구 몰리와 한 방에 있는 장면에서 이야기는 시작하는데, “모든 게 무너지고 있다”
여자로 살아가는 것, <황금 노트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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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은의 음악적 일대기는 드라마틱하다. 내가 기억하는 한, 한국에서 이상은 같은 방법으로 시작해서 이상은 같은 과정을 거쳐 이상은 같은 위치에 오른 이는 아무도 없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기억하고 있는 데뷔 당시의 이상은은 ‘그저’ 인기 가수였다. 크리스마스 캐럴 음반까지 냈던 인기 가수. 인기는 사그라들었고, 그 사이 대중의 인정과 자기의 욕심 사이에서 방황했던 준작과 실패작들이 나왔다.
상황이 바뀐 것은 1993년 즈음부터다. 그녀는 <언젠가는> 같은 곡을 만들고 부르면서 ‘인기 가수’가 아니라 ‘싱어 송 라이터’로서의 이상은이라는 존재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연이어 나온 두장의 음반, <공무도하가>(1995)와 <외롭고 웃긴 가게>(1997)를 통해 이상은은 ‘작가주의 뮤지션’이 됐다. 명료하고 날카로운 음악적 감각과 보편적이고 추상적인 감성에 호소하는 낭만적인 언어로 이루어진 음악. 넓고 얕은 인기 대신 충성스런 일군의 숭배자를 얻은
꿈이 일렁이는 초록 들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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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하나 딱히 꼬집어 얘기하긴 좀 그렇지만 보면 볼수록 묘하게 은근한 열등감을 자극하여 보면 볼수록 울컥하는 CF들이 있다. 이건 순전히 내가 평범한 외모의 소유자이며, 가끔 방구석에서 쥐며느리가 튀어나오는 집에서 살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오늘은 나와 비슷한 사람들의 마음으로 쓰련다. 그러니 개인적 감정이 글에 섞여 들어가는 것을 이해해주시길.
우선 한편의 자동차 광고에 대해 얘기하면 이렇다. 이효리와 이동건의 CF를 가장한 뮤직비디오로 약간의(?) 논란을 일으켰던 투싼이 요즘에는 이효리의 솔직담백 토크를 내세운 CF를 내보내고 있다. 뭐 처음엔 차랑 모델이랑 잘 어울리는데다가 SUV에 여성 모델을 기용한 것도 신선했고, 화면 때깔도 좋고, 무엇보다 발랄한 매력이 넘치는 효리양이 모델이니 보시기에 좋았더라 말이다. 근데 이 CF 자꾸자꾸 보니 괜히 울컥한다. 문제는 그 효리양의 고백 되시겠다. 사라져라 사라져라 나보다 어리고 예쁜 것들아. 아 그러니까 말입니다. 누구나 다
[도마 위의 CF] 좋은 집 살아서 좋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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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11월3일(토) 밤 11시
서인도제도의 아이티 섬. 백인 여자들이 모여든다. 고국에서는 사랑에 지치고 일상에 지친 보잘것없는 여자들이 돈만 들인다면 왕비 대접을 받는 곳. 그녀들은 이곳을 파라다이스라고 부른다. 근육질의 매끈하고 젊은 원주민 청년들의 충성어린 사랑을 받을 수 있고 하루 종일 해변에서 피부를 그을리고 밤이면 만찬을 즐길 수 있는 이곳을 그녀들은 잊지 못하고 다시 찾아온다. 영화는 세명의 백인 여자들의 고백과 해변의 식당에서 일하는 흑인 남자의 독백으로 나뉘어져 있다. 여자들은 카메라를 정면으로 쳐다보며 자신의 은밀한 구석을 고백하는데 이것은 그녀들이 왜 이곳까지 올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일종의 절실한 변명이다. 하지만 이 천국 같은 곳에 섹스를 넘어서는 사랑이 개입하면서 그녀들의 이상한 공동체에는 균열이 생긴다.
이 중년 여자들의 허기진 욕망이 얼마나 절절한지의 문제와는 상관없이 그녀들은 사실 그 땅의 어린 청년들을, 나아가 그 땅을 착취한다. 영화는 해
고상한 위선, <남쪽을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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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드라마 <옥션하우스>는 토요일도 아닌 일요일 밤 11시40분이라는, ‘안습’의 시간대에 전파를 타고 있지만 사각지대에서 제법 의미있는 삽질을 시작한 패기의 작품이다. MBC의 신진급 PD 네명이 매주 돌아가며 정성껏 일군 에피소드의 열매를 맛보라고 내밀고 있는 이 드라마는 시즌제, 회마다 에피소드가 일단락되는 방식, 전문직 세계를 전문적으로 조명하기 등 여전히 한국 드라마에서는 도전과제로 존재하는 영역을 ‘우리도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 아래 모두 잘근잘근 소화하겠다는 의욕을 드러내고 있다.
한국의 소더비라는 ‘윌옥션’의 미술경매 스페셜리스트들이 주인공이며, 도난사건, 위작사건 등 그림을 둘러싼 우여곡절 파란만장의 에피소드가 매주 그들의 동선을 바쁘게 만들고 있다. 실제 그림 관련 전문가들의 ‘훈수’를 쫀쫀하게 받고 있다는 <옥션하우스>는 정말로 행방불명 상태라는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도 그럴듯하게 소재로 차용하는 등 호기심은 동하되 수십억원 낙찰이
한국형 전문직 드라마의 강박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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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연씨와는 이전에 한번도 일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약간 걱정이 됐는데 처음 만날 때 부터 카메라에 대단히 호의적이어서 안심이었다. 이 사진은 <어깨너머의 연인>의 주인공 정완이 다리를 다쳐서 깁스를 하고 있는 장면이다. 가짜 깁스이긴 하지만 움직이기 불편한 탓에 이미연씨는 촬영 중간 중간 소파에 기대 누워서 책을 읽곤 했다. 놓칠세라 카메라를 들이대자 발가락으로 개인기를 보여준다며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발가락이 그렇게 쫙쫙 펴지는 것도 재미있었지만 촬영 초반부터 스틸 카메라에 스스럼없이 대하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하여간 현장에서 책임감도 엄청나게 센 사람이다. 촬영에 단 한번도 늦은 적이 없어서 깜짝 놀랐다. 원래 그걸로 유명하다더라고. 강철체력.”
[숨은 스틸 찾기] <어깨너머의 연인> 이미연의 숨은 개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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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제플린이 불러서 유명해진 옛 블루스 <제방이 무너지면>은 1927년의 미시시피 대홍수를 읊은 노래다. 노래의 한 구절은 이렇다. ‘비가 쏟아져 제방이 무너지면 난 머물 곳이 없네. 만약 제방이 무너지면, 어머니, 피난해야 돼요.’ 100년도 지나지 않아 같은 일이 같은 장소에서 다시 벌어졌다. 2005년 8월29일,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빠져나가기가 무섭게 제방이 터지는 바람에 뉴올리언스의 80%는 물에 잠기게 된다. <제방이 무너지면>에서 제목을 딴 <제방이 무너졌을 때>는 폭풍과 홍수로 생명과 삶의 터전을 잃은 뉴올리언스 시민의 비극을 그린 다큐멘터리로, 대부분 사람들이 자연재해로 기억하고 있는 카트리나의 참상이 기실 사악한 인간들에 의해 저질러진 죄악임을 밝히고자 한다. 스파이크 리는 자기 목소리를 뒤로 접은 채, 170여명의 분노와 슬픔으로 가득 찬 증언을 빌려 책임을 회피하는 권력자를 관객이 심판하는 법정으로 불러내는 작업을 펼친다. 19
허리케인이 드러낸 미국의 비극, <제방이 무너졌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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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끈따끈한 국내 미공개 해외 신작들이 한꺼번에 관객을 찾는다. 올해 3회째를 맞는 KBS프리미어페스티벌이 11월4일부터 29일까지 하이퍼텍 나다에서 열린다. ‘동시다발&오감만족! 특별한 시네마열전’이라는 슬로건을 내건 이 영화제는 이름 그대로 국내에 아직까지 한번도 공개된 적 없는 세계 각국의 주목할 만한 신작들을 극장 및 TV를 통해 프리미어로 상영하는 자리. 올해부터는 온라인과 모바일을 통해서도 볼 수 있다고 하니 새로운 영화에 목마른 관객은 좀더 쉽게 이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전체 상영작 규모도 대폭 커졌다. 1회 때 6편, 2회 때 4편만 선보이던 예년들에 비해 올해는 무려 16편이 상영될 예정이다. 제작국가도 중국, 일본, 미국, 캐나다, 프랑스, 네덜란드, 헝가리,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국적의 다채로운 안배가 눈에 띈다.
<부모님이 휴가를 떠난 해>는 올해 베를린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돼 매우 좋은 평가를 받았던 작품. 1970년 멕시코월드컵의 열기
국내 미공개 화제작, 따끈따끈할 때 만나자, KBS프리미어페스티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