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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일 관객 수가 좀체 떨어질 줄 모르는 <추격자>의 흥행기세로, 제작자인 김수진 영화사 비단길 대표는 축하전화를 받기 바쁘다. 지금까지 자신의 이름을 제작자로 걸고 만든 영화는 최근 <음란서생>(2006)과 <추격자> 두편이지만, 그에게 축하전화를 해오는 사람들 대부분은 김수진 대표가 지난 20년간 영화계에 몸담고 지내면서 알아온 지인들이거나 사업 파트너들이다. 이화여대를 졸업하고 1989년부터 영화일을 시작한 김수진 대표는 당시 하명중영화제작소, 신도필름 등을 거쳐 20대 초반에 영화기획정보센터라는 회사를 꾸릴 만큼 이미 당찬 사업가였다. 그는 <꽃잎> <나쁜 영화> 등 한국영화 기획에 참여했고 <레옹> <퐁네프의 연인들>과 같은 영화를 수입해 흥행시켜서, 한국에 짧게 프랑스 예술영화 수입 바람이 일기도 했다. 올해로 영화일을 한 지 꼭 20년이 된 그는 그래서 어떤 사람들에겐 “충무로 원로”라는 별명 아닌
[김수진] “시나리오 보고 모두가 반대한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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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니 크라비츠의 대표곡은 둘이다. 하나는 <It Ain’t Over ‘Til It’s Over>이고 다른 하나는 <Are You Gonna Go My Way>다. 이 두곡은 올해 마흔셋이 된 이 베테랑 뮤지션의 두 가지 측면을 대표한다. 전자가 커티스 메이필드와 마빈 게이의 전통에 속해 있는 세련된 솔-훵크 음악이라면 후자는 지미 헨드릭스와 레드 제플린 등의 ‘기타 마스터’들이 창조하고 발전시킨 강력한 하드록의 자장에서 움직이는 곡이다.
이 두 전통이 교차하는 지점에 서 있는 뮤지션이라면? 프린스다. 따라서 레니 크라비츠가 1989년 데뷔했을 때 사람들이 크라비츠를 프린스의 후계자(혹은 아류)로 지목한 것은 당연했다. 그는 프린스처럼 솔-훵크와 로큰롤 모두에 능했고, 그 둘을 구김살없이 융화할 줄 알았다. 또한 그는 음반의 전곡을 작사·작곡했으며 음반에 사용된 거의 모든 악기를 연주했다.
그러나 크라비츠는 프린스와 달리 ‘예술가’(artist)보다는 ‘
고전적 록 스타로서의 회귀, 레니 크라비츠의 신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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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마지막 의식>은 이언 매큐언의 데뷔 초기를 가늠할 수 있는 단편집이다. <암스테르담> <속죄>와 같은 그의 대표적인 장편소설들이 이미 소개된 상태에서 새로 읽는 그의 이 소설집은 거칠고 끈적거리지만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혐오로 가득하다. 성인이 되고도 소년 시절의 철없음을 루저 정서에 맞물려 웃음을 끌어내는 닉 혼비와는 정반대의 지점에서, 이언 매큐언은 꿈꾸지 않는 청춘 군상을 부려낸다. <첫사랑, 마지막 의식>의 주인공들은 곧게 응시하기보다 고개를 돌려버리게 만드는 일그러진 내면으로 침잠해 들어가는데, 그 과정은 주인공들에게도 소설을 읽는 독자에게도 결코 녹록지 않다.
<나비>의 화자는 난생처음 시체를 봤다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는 운하 위를 따라 뛰는 소녀를 봤다. 어린 제인이 익사한 모습을 마지막으로 목격한 그는 ‘용의자로 찍힐 만한 인상’의 소유자다. 제인의 사건을 담당한 형사도 의미심장한 말을 건넨다.
폐수 거품처럼 끈적이는 인간의 불쾌한 욕망 <첫사랑, 마지막 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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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어디선가 들은 얘기인데, 이제 애들도 어느 정도 다 자라버린 불혹의 나이를 넘긴 주부들을 모아놓고 자아찾기에 관한 강연을 했더란다. 거기서 자신의 이름을 자기가 원하는 대로 다시 한번 짓는다면 어떤 이름으로 할 것인지에 관한 과제를 내주었다든가. 그리고 한 아주머니가 ‘김왕비’라는 이름을 들고 왔다고 한다. 남편과 아이들 뒷바라지에 지친 자신의 처지가 꼭 궁중의 무수리 같은 기분이 들어 다음에 태어나면 중전마마처럼 대접받고 살고 싶은 바람을 담은 이름이었다고.
그래, 여자라면 누구나가 왕비나 공주처럼 자신을 떠받들어주는 꿈을 꾸지. 그리고 여기, 왕비도 아니고 무려 왕후를 들고 나온 두편의 CF가 있다. 그리고 그것 모두가 다름 아닌 화장품 CF라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도도함과 화려함과 기품으로 대변되는 왕후의 자리. 고개 숙여 자신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사람들 사이를 고개를 치켜든 채 유유히 걷는 우아한 왕후는 ‘피부는 권력’이라 말한다. 얼굴에 잡티있는 것들이 어
[도마 위의 CF] 미모는 권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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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1 3월9일(일) 밤 12시50분
<마이클 클레이튼>의 주인공은 마이클 클레이튼이지만, 영화의 시작과 함께 드러난 그는 불의의 중심에 있거나 정의의 중심에 있는 대신 그 사이에서 최대한 존재감없이 존재하는 자이다. 그는 대형 로펌의 변호사이지만, 소송팀에 속하지 못하고 회사와 관련된 음지의 일들을 은폐하고 처리해주는 일을 도맡고 있다. 게다가 그는 빚더미에 앉은 이혼남으로 사생활 역시 피폐하다. 그러던 어느 날, 진실을 폭로하려던 절친한 동료 변호사가 괴로워하던 끝에 의문의 죽임을 맞이하자, 마이클은 더이상 썩어가는 우물처럼 살 수 없음을 깨닫는다. 영화는 뒤이은 마이클의 행동을 진실에 맞서는 정의감으로, 보잘것없는 남자의 영웅으로의 환골탈태로 포장하지는 않는다. 그는 다만 더이상 뒤로 물러설 곳이 없는 벼랑 끝에서 이제는 적어도 (사람처럼) 살기 위하여 현실과 대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본 시리즈의 각본가로 유명한 토니 길로이가 각본을 쓰고 연출한 <마
진실을 목도한 인간의 가장 정직한 표정, <마이클 클레이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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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사와 시청자가 공유하는 ‘완전 소중한’ 캐릭터 군단에 애완의 대상도 세부 장르로 침투했다.
드라마와 예능프로그램을 막론하고 만만하게 부를 애칭 하나 획득하지 못하면 마치 낙오자처럼 여겨지는 게 요즘 방송가의 풍경. 하찮든지 허당이든지 유치하든지 뚜렷한 캐릭터를 가져야 시청자의 적극적인 관심권 아래 머물 수 있다. MBC <무한도전>의 수선스럽고 빈틈 많은 남성들이 국민의 프렌즈로 자리 잡은 데 이어 요즘 KBS2 <해피선데이>의 ‘1박2일’ 사람들도 먹고 자는 문제에 티격태격하는 유아적인 속성으로 시청자의 눈높이를 올리고 있다. 숭배의 대상보다 같이 놀거나 잔소리를 건네고 싶은 존재를 발견해 우월한 시선을 맛보는 게 TV라는 가상의 세계를 유쾌하게 즐기는 한 자세다.
그런데 한술 더 떠 ‘1박2일’ 멤버들 곁을 맴도는 복슬복슬한 수컷견 ‘상근이’마저 그 사례에 곁들여지고 있는 것은 갈수록 전지전능해지는 시청자의 눈을 반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MBC
상근이와 경수씨의 공통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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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시작은 시커먼 땅속이다. 은을 찾아 땅속으로 내려갔다 올라오길 반복하는 남자 다니엘 플레인뷰(대니얼 데이 루이스)는 갑작스런 사고로 다리를 다친다. 이후 그는 또 다른 사고로 목숨을 잃은 동료의 아들 H. W.(딜런 프리지어)와 함께 산다. 석유가 있는 곳을 찾아 미국의 서부를 오가는 그는 리틀 보스턴에 석유가 있다는 엘라이(폴 다노)의 제보에 아들과 함께 리틀 보스턴으로 향한다. 리틀 보스턴은 목사 엘라이를 중심으로 한 광신도적 교인들이 주민의 대부분이다. 다니엘은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히며 땅을 사고, 유정탑을 쌓으며, 배송관을 만들어 석유 발굴에 나선다. 사랑, 공동체 의식, 자연, 신앙, 가족 등 인간의 덕목이라 여겨지는 가치들은 석유와 돈을 향한 다니엘의 욕망 속에 자리를 감춘다.
땅속에서 유를 창출하고 좀더 효율적인 방식으로 부를 불리는 다니엘은 미국 자본주의의 상징이다. 선과 악의 이분법적 사고 속에서 세를 불리기 위해 믿음을 전도하는 엘라이의 설교는 자본주의
성공을 꿈꾼 미국의 한 역사 <데어 윌 비 블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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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정말 이해가 안 가는데 박은혜씨가 자기 몸 중에서 불만이 코라고 하더라. 우리가 보기에는 정말 예쁜데…. 우연히 그런 이야기를 하다가 카메라를 향해 돼지코를 해보인 거고, 나머지 두 사람도 따라서 흉내내본 거다. 분위기가 좋았다. 촬영 때문이지만 와인도 한잔씩 하고, 자세히 말할 수는 없지만 개인 얘기들도 좀 하고, 김영호 선배님은 팝송까지 한곡 불러주셨다. 잘 부르시더라. 파리 촬영 내내 민박집에 같이 묵어서인지 현주 역의 서민정(맨 오른쪽)씨를 포함해서 다들 친해져서 이런 게 나올 수 있었겠지. 아, 근데 왜 돼지코냐고? 그냥. 영화에 나오는 돼지 머리하고는 전혀 상관없다…. 음 선견지명이라고나 할까.”
[숨은 스틸 찾기] <밤과 낮> 여탕 훔쳐본 돼지코가 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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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준(조한선)이 경찰대학을 나와 내사과에 들어가게 된 데는 아버지의 영향이 지대했다. 영준은 늘 뇌물을 받아먹고 불륜까지 저지르는 아버지 강민호(안성기)를 보면서 비리 경찰을 붙잡는 경찰이 되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그는 마약 조직과 관련을 맺고 있는 한 형사를 추적하던 중 부산의 마약 밀매조직이 그 배후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수사를 위해 부산의 한 경찰서로 파견나간 그는 그곳에서 풍속반장으로 일하고 있는 민호와 8년 만에 재회하게 된다. 그는 내키지 않지만 수사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아버지와 파트너를 이뤄 좌충우돌하면서 거대한 범죄의 세계와 맞닥뜨리게 된다.
<마이 뉴 파트너>는 거의 용도폐기되고 있던 형사 버디무비의 맥을 따르는 영화다. 이 영화가 참신할 수 있는 지점은 ‘투캅스’를 아버지와 아들로 내세웠다는 점이다. 아들과 아버지라는 위치의 차이만큼이나 이 파트너십에서 두 사람의 목적은 다르다. 아들은 자신이 쫓는 범인을 빨리 붙잡아 증오해 마지않는 아버지
버디무비와 부자의 재회극 <마이 뉴 파트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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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체를 확인하지 못해 우리에게 전설로 남은 영화가 있다. 가장 영향력있는 무성영화이자 공포영화인 <유령마차>도 그런 영화 중 한편으로, 잉마르 베리만이 “15살 때 처음 접한 뒤 여름마다 보았으며, 내 영화의 세세한 부분까지 영향을 끼쳤다”고 말한 작품이다. 얼마 전 출시된 <유령마차>의 DVD로 그간 <산딸기>의 배우로 더 잘 알려진 빅토르 시외스트룀의 작품세계를 드디어 확인할 수 있게 됐다. <유령마차>는 스외스트룀의 열렬한 팬이었던 노벨 문학상 수상자 셀마 라게를뢰프와 감독이 네 번째로 만난 결과물이다. 시외스트룀은 <잉게보리 홀름>(1913)부터 <바람>(1928)에 이르는 걸작시대의 가운데 위치한 <유령마차>에서 그의 영화를 특징짓는 사실주의 멜로드라마와 초자연적인 이야기를 결합시켰다. 12월31일 밤, 다비드는 옆의 주정뱅이들에게 전설을 들려준다. 전설인즉 그해의 마지막 날에 마지막으로 죽은 자가
[해외 타이틀] 90년 전 공포영화를 만나는 기쁨, <유령마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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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혹스럽다. 1986년 4월28일 서울 신림사거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른다면 당혹스럽다. 인터뷰를 행하는 감독의 목소리가 흡사 죽은 자를 대신한 심문처럼 들려서 불편하고 또 당혹스럽다. 20여년 전에 대학생이었던 인물들이 급작스럽게 울음을 터트리는 대목 또한 당혹스럽다. 그럼에도 낱낱이 듣고 싶어하는 카메라의 집요함 또한 당혹스럽다. 김응수 감독의 <과거는 낯선 나라다>는 당혹스러운 다큐멘터리다.
“양키의 용병교육 전방입소 결사반대!”, “민족생존 위협하는 핵무기를 철수하라!”를 외치며 분신한 이재호, 김세진 두 열사의 죽음을 추모하기 위한 다큐멘터리이지만, <과거는 낯선 나라다>는 1980년대를 다루는 후일담의 통념과는 거리가 멀다. “노무현을 이야기해도, 이한열 열사를 말할 때도, 광주를 떠올릴 때도 똑같은 풍경들이 나온다. 뒤따라 항상 같은 음악들이 붙는다. 지겹다. 모든 과거를 신화로 그리는 건 싫다.” 김응수 감독은 사건에 대해서도, 정황에
1980년대와 마주하기 <과거는 낯선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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쾅! 한발의 대포소리가 그의 고막을 때렸다. 중국 공산당 제2야전군 139연대 9중대장인 구지디(장한위)는 그 때문에 퇴각 명령을 알리는 집결호의 소리를 듣지 못한다. 아니, 집결호는 울리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구지디는 울렸는데 듣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퇴각 명령이 없었기 때문에 자신이 품고 있던 47명의 중대원들을 계속 사지로 몰아넣을 수밖에 없었고, 결국 중대원들은 모두 전사하고 말았다고 자책한다. 혼자 살아남은 구지디는 이후 한국전쟁을 거쳐 다시 중국으로 돌아온 뒤에도 ‘형제’들의 죽음을 괴로워한다. 하지만 자신이 직접 시체들을 옮겨다놓았던 광산의 토굴은 전쟁 뒤에도 발견되지 않고, 결국 용감히 싸우다 죽은 구지디의 부하들은 비석도 없는 무명용사가 되고 만다.
<집결호>는 전쟁에서 혼자 살아남은 자의 비극이다. 온갖 후회와 자책으로 자신을 몰아넣는 구지디가 전쟁을 마다하지 않고 몸을 던지는 모습은 분명 죄를 용서받기 위한 몸부림일 것이다. 영화는 두 부분으
순국선열을 향한 묵념 <집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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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 채플린은 뛰어난 영화감독이자 각본가이자 제작자이자 배우이면서 동시에 영화음악가이기도 했다. 할리우드 무성영화 시대의 천재영화인 찰리 채플린은 75편의 연출작 가운데 17편의 영화음악을 직접 작곡했다. 즉 오케스트라를 직접 다뤘고, 때론 로맨틱하고(<시티 라이트>) 때로는 괴이한 듯 경쾌하며(<황금광 시대>) 때론 섬뜩한 오프닝을 선사하기도 했던(<모던 타임즈>) 선율의 관현악 악보를 직접 썼다는 얘기다. 그중에서도 <황금광 시대>(1925), <서커스>(1928), <시티 라이트>(1931), <모던 타임즈>(1936), <위대한 독재자>(1940), <살인광 시대>(1947), <라임 라이트>(1952) 등 우리에게 잘 알려진 그의 걸작 장편들의 오리지널 스코어가 모두 채플린에 의해 쓰여진 것들이다. 미국의 아카데미 시상식이 권위나 영향력에 있어 요즘 시대만큼의 척도가
채플린의 영화와 음악을 라이브로 감상할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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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그녀의 꿈이자 희망이요, 인생의 전부다. 택시 뒷좌석에서 옷을 갈아입으며 하루에 두탕의 결혼식을 뛸 만큼 제인(캐서린 헤이글)은 결혼 그 자체와 황홀한 사랑에 빠져 있다. 청첩장, 웨딩케이크, 드레스 준비에 이르기까지 웨딩 플래너를 자처해 친구들의 결혼식을 부랴부랴 뒷바라지하는 그녀는 그러나, 정작 자신의 연애에서만큼은 소심하기 짝이 없다. 직장 상사 조지(에드워드 번즈)를 열렬히 짝사랑하던 중 간신히 용기를 내어 고백하려 하지만, 미모의 모델인 동생 테스(말린 애커먼)가 눈앞에서 그를 채가버린다. 한편 결혼식 칼럼을 쓰는 기자 케빈(제임스 마스덴)은 들러리 역할에 열을 올리는 제인을 흥미로운 소잿거리로 생각해 그녀에게 접근하고, 제인은 애타는 마음을 감춘 채 조지와 테스의 결혼식을 준비하기 시작한다.
유능한 커리어우먼이지만 연애만큼은 영 불운한 그녀와 금발의 미모로 손쉽게 남자의 심장을 사로잡아버리는 그녀. <27번의 결혼 리허설>은 <내 남자친구의 결혼
결혼이 인생의 전부? <27번의 결혼 리허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