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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은 아니다. 아직은 언니들처럼 유명하지도 않고 그들보다 더 잘한다고 말하기도 힘들다. 하지만 독특한 제 멋을 결코 숨기지 못한다. “옆모습이 김희선을 닮았어요”(사진기자)라는 말을 듣자마자 허리를 90도로 꺾어 웃으며 “제가 가끔 옆으로 보면 다른 사람처럼 보여요”라며 반은 어이없다는 듯 반은 너무 고맙다는 듯 웃을 때 보면 여배우치고 소탈하다. 유연한 농담 실력은 물론 수준급이지만 인터뷰 도중 들락거리는 누군가에게 신경 쓰이니 방해하지 말아줬으면 좋겠다는 눈빛으로 “이거 제가 알아서 할게요” 말할 때 보면 서늘한 강단도 있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에서 조은지가 맡은 역할은 국가대표 핸드볼 골키퍼 수희다. 위로는 아줌마 언니들을 두고 밑으로는 새카만 후배를 둔, 실력은 좀 떨어져도 희소성 때문에 겨우 버티는, 실력보다 국가대표급 깡다구로 살아가는 선수다. “공 던지다가 손 접질린 소리 언니도 있는데”라며 끝끝내 아니라고는 하지만, 골키퍼였던 탓에 <우리
[조은지] “정말 간절히 슛을 막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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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방비도시>를 봤다면 다들 손예진씨 등에 새겨진 천수보살 문신을 어떻게 새겼는지 궁금해할 것이다. 실제 촬영장면을 사진으로 보고 싶은 마음도 있을 것이고. 하지만 나 또한 둘 다 직접 보지 못했다. 문신이 엉덩이 바로 위 꼬리뼈 부분에까지 그려진 것이라 배우 입장에서도 적잖이 신경 쓰이는 장면이었을 것이다. 스틸은 물론 메이킹도 출입 금지. 결국 메인 카메라만 촬영 허락이 떨어졌다. 그러니까 그 장면은 영화로만 확인할 수 있다. 위 사진은 전직 소매치기이자 타투이스트인 백장미(손예진)가 야쿠자의 등에 문신을 새기는 장면인데, 실제 타투이스트가 자리해 몇 차례 조언을 하긴 했어도 예진씨가 사전에 연습을 철저히 한 때문인지 별 무리없이 촬영이 끝났다.”
[숨은 스틸 찾기] <무방비도시> 백장미 거기의 문신이 궁금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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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홍대 앞 상상마당에서 열린 ‘음악, 영화를 연주하다’ 테마 상영을 통해 아이슬란드 그룹 시규어 로스의 <Heima>를 스크린으로 마주한 감흥은 다행히도 혹은 놀랍게도 생각했던 것만큼 좋았다. 원래 DVD로 갓 출시된 것이었고 예정대로 그냥 출시만 해버렸어도 그걸로 족했을 테지만, 그 내용을 누구라도 접해본 사람이라면 이 장면들을 스크린 위로 유령처럼 불러내 그 잔상 아래서 허덕이고 싶다는 마조히즘적 망상을 해볼 정도로 스케일은 거대하고 디테일은 섬세한 필름이었기에 그 같은 반응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시규어 로스에게 아이슬란드 출신이라는 꼬리표가 항상 따라다니는 것이 서구의 록이나 팝 지형도에서조차 궁벽하기 이를 데 없는 제3세계 취급이란 뜻에 다름 아니어도, 설마 그것이 그대로 이처럼 초강점이 될 줄은 몰랐다.
아니, 실은 이들의 음악이 온전히 그 환경의 산물이라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이 그동안 너무 의외로 다가왔던 데 대한 일종의 뒤늦은 각성
내셔널 지오그래픽과 같은 사운드, 시규어 로스의 DVD 와 새 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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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남에게 밝힐 수 없는 부끄러운 욕망이 들 때가 있다. 이를테면 만원인 엘리베이터에서 방귀를 뀌고 후다닥 뛰쳐나가고 싶다든지 좋아하는 이성이 앉았던 의자에 코를 박고 냄새를 맡고 싶다든지 막 페인트를 칠한 벽에 손도장 쿡쿡 찍고 도망가고 싶다든지… 뭐 이런 욕망 말이다. 물론 입 밖으로 냈다간 ‘천하에 유치한 변태’ 취급을 받을 게 뻔하기 때문에 이런 생각은 스스로 자기검열을 거치게 마련이다.
혹시 이런 욕망들을 표출하지 못해 답답했던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레제르>는 생면부지의 외국에서 한국 사람을 만난 것처럼 반가울 작품이다. <레제르>는 프랑스의 풍자 만화가 장 마르크 레제르의 모든 만화를 총망라한 작품집으로 이번에 A4의 큼직한 판형으로 2권이 새로 출간되었다. 짐작했겠지만 이 작품집에는 앞서 이야기한 그런 욕망의 표출이 그득하다. 소개하자면 이런 식이다. 작품 중 <지저분한 뚱땡이>의 주인공은 냄새나고 뚱뚱한 백수인데 남들에게 무
착한 척하는 세상에 어퍼컷을 날리다, <레제르> 1, 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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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시즌 CF들이란 게 있다. 새 학년 시작하기 직전의 겨울방학이라면 교복 CF가 쏟아져나오고, 노트북 광고들도 늘어나며, 참고서와 학습지 광고들도 늘어난다. 교복들은 어찌나 몸매를 강조하는지 저 교복 입으면 다들 다리도 길어지는 동시에 쭉쭉빵빵 몸매가 될 것 같고 학습지 광고들은 어찌나 번드르르한지 저것만 시작하면 다들 영재가 될 것 같다. 교복 브랜드가 달라진다고 후진 디자인의 칙칙한 교복이 만화 속 교복으로 탈바꿈하는 것도, 책상머리에 앉아 공부하느라 무거워진 몸이 갑자기 가벼워지는 것도 아닌 걸 알지만 ‘그래도 새 학년’이라는 기대감을 가진 학생과 엄마들은 이런 유혹에 잘 넘어가곤 한다.
아무튼 이런 방학 성수기 광고들 중 유독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빨간펜. 원더걸스랑 연인이 되려면 빨간펜으로 공부해서 경시대회에 나가서 신문에 나면 된다는 꿈을 꾸는 소년편과 성시경이랑 결혼을 하려면 빨간펜으로 공부해서 경시대회 나가서 신문에 나면 된다는
[도마 위의 CF] 공부해서 예쁜 여자, 잘난 남자 낚아보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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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 1월27일(일) 오후 2시20분
‘폭스’라고 불리는 사기꾼 바누치는 특유의 재치로 탈옥에 성공한 뒤, 품행이 단정하지 않은 여동생을 감시하겠다는 목적으로 고향에 돌아온다. 그는 경찰에 쫓기면서도 새로운 사기를 계획하는데, 카이로에서 이탈리아로 황금을 밀반입하려는 일당이 그에게 달콤한 제안을 한다. 때마침 우연히 영화 촬영현장을 목격하게 된 그에게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으니, 감독 행세를 하며 가짜 촬영현장을 만들어서 범행에 이용하자는 것. 바누치는 자신의 여동생과 당대의 유명배우 토니를 기용하고 작은 도시 셀바리오에서 가짜 영화를 찍기 시작한다. 마을 주민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과 참여 덕분에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마침내 황금 무더기가 손에 들어오는데….
<폭스를 잡아라>는 <자전거 도둑>으로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의 기수로 등장한 비토리오 데 시카가 감독하고 닐 사이먼과 세자르 자바티니(자바티니는 데 시카와 <아이들이 우리를 보고 있다&g
황금을 낳는 영화 만들기, <폭스를 잡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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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삼각형을 또렷하게 그리기는 했다.
건실한 서민형 여성(진달래/이다해)의 주변을 두 남자가 알짱알짱 어슬렁거리고 있다. 한명은 종국에 그녀와 하트무늬 쌍방향 화살을 공유할 것 같은 외악(惡)내선(善)의 남성(권오준/장혁)이고, 또 한명은 드라마식 통칭인 ‘재벌 2세’군에 속할 법한 부잣집 능력남(김진구/김정태)이다. SBS 수목드라마 <불한당>은 숱하게 봐왔음직한 관계도와 인물 프로필을 들고 사랑의 위대한 힘을 찾아나서겠다고 출발했다.
그런데 극중 여자 하나, 남자 둘은 그 뻔한 그림을 완성하면서 자꾸 다른 몸부림을 치려 든다. 황당하고, 막돼먹었으며, 딱딱한 유리가면을 쓴 채 ‘코믹 블루스’를 추고 있다. 시어머니를 엄마로 부르는 싱글맘 달래씨는 사리 분별이 분명한 것 같으면서도 눈치는 좀 없어 보이는 형이다. 싫은 남자를 잘라낼 때 한번에 ‘쌩’치지 않고, ‘나 과부여, 애도 한명 있어’하며 주절주절 개인 현황을 꺼내는 미필적 의존병을 직장 동료에게 가차없이
삼각관계지만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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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영화를 소개하는 작은 영화제에서 소규모 관객과 뒤늦게 만났던 <올웨이즈 3번가의 석양>이 DVD로 나왔다. 일본 아카데미에서 12개의 상을 거머쥔 작품치곤 소박한 한국 방문인 셈이다. <올웨이즈 3번가의 석양>은 일본의 영화지 <키네마준보>가 선정한 ‘2005년의 일본영화 베스트 10’ 중 2위에 오른 작품이기도 한데, 이듬해에 1위로 꼽혔으며 마찬가지로 일본 아카데미를 휩쓴 <훌라걸스>와 여러모로 비슷한 정서를 공유하고 있다. 두 영화는 근대화의 시기를 통과하는 서민, 가난한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해 그들이 나누는 따뜻한 정과 미래의 낙관을 주제로 들려줬다. 그리고 많은 수의 일본 관객은 ‘맞아, 저런 시대가 있었지’라고 생각하며 사라진 아름다운 것들에 대한 향수에 젖었고, 훈훈한 이야기에 자극돼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그것은 좋게 보자면 지나간 시간을 되돌아볼 기회라지만 한편으로는 근시대의 영악한 상품화를 우려해야 할는지도 모른다. 하
정과 희망이 넘치는 그시절로 돌아갈래, <올웨이즈 3번가의 석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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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J. 에이브럼스의 극비 프로젝트 <클로버필드>가 개봉과 함께 정상을 차지했다. 2500만달러라는 제작비로 거대 괴수의 침공을 받고 카오스에 빠지는 맨하탄을 민첩하게 포착한 <클로버필드>는 첫주 수입 4100만달러를 벌어들여, 2008년 첫 괴수영화로의 영광과 함께 전미 1월 최고 개봉성적도 수립했다. 이전까지 1월 최고 개봉성적은 1997년 개봉한 <스타워즈> 스페셜 에디션의 3590만달러였다. 출연진이 대부분 신인인 까닭에 영화에 대한 정보 캐내기가 더욱 어려웠던 <클로버필드>는, 일본으로 떠나는 뉴요커 롭의 환송파티에서 시작한다. 파티를 영상으로 녹화하던 카메라가 갑자기 나타난 괴물로부터 도망치면서 계속해서 기록하는 것이 내용의 전부지만, 중간중간 주인공들이 과거에 기록한 영상이 이어져 기록물의 형식을 한 괴수영화인 동시에 러브스토리이기도 하다.
2위는 2240만달러를 벌어들인 <27번의 결혼리허설>이다. 영양가 없
유튜브 시대의 재난영화 <클로버필드>, 1월 극장가 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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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지난날이 모두 꿈같이 느껴져.” 프랑수아 오종의 첫 번째 영어영화 <엔젤>은 자신의 여주인공과 같은 대사를 남기고 세상을 떠난 여류소설가 엔젤 데브렐의 일생을 그린다. 자신의 소설과 정확히 같은 운명을 겪었던 엔젤과 영화 <엔젤> 역시 상당한 공통점을 지닌다. 죽는 날까지 ‘파라다이스’를 떠나지 않았던 ‘엔젤’의 이야기에 감춰진 시대, 그리고 오종의 인장을 살펴본다.
1. ‘천사’의 모델은?
현실과 허구의 경계가 모호했던 엔젤의 인생처럼, 동명소설(<엔젤 데브렐의 일생>)을 원작으로 삼는 <엔젤> 역시 현실과 허구가 겹겹으로 서로를 감싼다. 엘리자베스 테일러라는, 의미심장한 이름의 작가가 1957년에 완성한 <엔젤>은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대중소설로 이름을 알린 영국의 여류소설가 몇명을 모델로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국이 브론테 자매를 비롯하여 제인 오스틴을 거쳐 애거사 크리스티까지, 대중에게 사랑받은 위대
[알고 봅시다] 파라다이스에 갇힌 세속적 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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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하 <우생순>)에서 가장 놀라운 순간은 프랑스와의 준결승전에서 등장한다. 미숙이 수비를 피해 공을 패스하면 공을 받은 혜경이 몸을 날려 슛을 던진다. 동작의 화려함에 탄성을 지르고 나면, 과연 배우들에게 어떤 특훈이 있었기에 하는 의구심이 샘솟는다. 촬영 전부터 배우들의 몸을 핸드볼 선수로 다진 이는 현재 인천에서 ‘경희체대입시 전문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이대진 코치. 그는 배우들의 훈련뿐만 아니라 영화 속의 모든 세트플레이를 연출했으며, 시나리오 수정작업에도 참여했다. “혹시 선배들한테 욕먹지 않을까 싶었는데, 다행히 다들 수고했다고 해주어서 한시름 놓고 있다”는 그는 그럼에도 “촉박했던 훈련일정이 여전히 아쉽게만 느껴진다”고 말했다.
-<우생순>에는 어떻게 참여하게 된 건가.
=핸드볼협회에 모집공고가 났었다. 내가 학원을 운영하고 있는데, 과목 중에 핸드볼 전공실기가 있어서 평소 여고생들을 많이 가르치곤 했다. 또
[스폿 인터뷰] “경기 장면에 내 의견이 많이 반영돼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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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써티데이즈 오브 나이트> 왜 방학 때는 항상 12시간씩 잘까요?
[정훈이 만화] <써티데이즈 오브 나이트> 왜 방학 때는 항상 12시간씩 잘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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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네요. 음… 너무 좋고요. 20년 전쯤에 처음 봤는데요, 그때는 그냥 봤고요, 항상 기억에 나는 영화 중 하나였고, 오늘은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해서 이유를 굳이 찾아보려고 하면서 봤는데 특별한 건 없는 것 같고, 음… 감독이 장면 선택하는 동기에서 나오는 힘이 있는 것 같아요. 제가 메모를 좀 했는데 잠깐… 어….”
1월10일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린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 첫 번째 감독 친구로 참석한 홍상수 감독의 첫 번째 멘트다. 홍 감독은 이날 장 비고의 프랑스 고전영화 <라탈랑트>를 추천하고 관객과 함께 본 뒤 시네토크를 가졌다. <라탈랑트>라는 영화가 궁금해서 온 관객도 있었겠지만 꽉 찬 객석의 진짜 이유는 “홍상수 감독이 이 영화에 대해서 뭐라고 말하는지 궁금해서 왔다”는 것. 시네토크 시간에는 열띤 질문과 느린 답변이 오고 갔다. 떨리는 목소리로 “<오! 수정> 쫑파티 때 이은주씨가 차마 다 못한 그 말을 알려달라”는 다소 엉
질문은 뜨겁게, 답변은 느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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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사적으로 보면 하나의 정신이 사라진 것 아닌가 싶다.” 10년 전 유영길 촬영감독의 영면을 두고 이명세 감독이 했던 말은 절반만 맞았다. 그가 떠난 자리는 여전히 메워지지 않았지만, 유영길 감독의 정신은 후배 감독과 촬영감독들의 마음속에 여전히 살아 있기 때문이다. 유영길 감독의 10주기 하루 전인 1월15일 제자들이 빈소를 찾은 것도 그가 남긴 정신을 되새기기 위한 것이었으리라. 이날 경기도 포천의 혜화동성당 묘원에 모인 제자 9명은 “선생님에게서 배운 것은 단순한 촬영기술이 아니라 영화 안에 사람을 담아내는 궁극의 작업이었다”고 입을 모은다. 영화아카데미 시절 유영길 감독을 스승으로 모셨던 박현철 촬영감독은 묘석에 술 한잔을 올린 뒤 “어려운 상황을 만날 때마다 선생님이었으면 어떻게 했을까 하고 고민을 하는데 늘 힘을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했고, 초빙교수로서 그를 만났던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1, 2기 출신 감독과 촬영감독(구혁탄, 김병서, 김유진, 김철주, 문철배,
당신의 정신을 기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