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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현우(이준)는 새로 온 미술선생 선아(서린)를 친근하게 느낀다. 이미 중학교에서 한차례 학생과 교생으로 만났던 둘은 옛 기억을 되살리며 점점 친해진다. 미술실에서 편안하게 담배도 피우고 밖에선 함께 피자도 사먹으며 사제 관계 이상으로 가까워진다. 하지만 여기 현우의 사촌형이자 선아의 남자친구인 인준(강신철)이 등장한다. 어릴 때 부모를 잃어 큰집에서 자란 현우는 사촌형 인준을 그 누구보다 소중하게 생각한다. <나의 스캔들>은 사제 관계에 형제간 사랑다툼을 끼워넣으며 파국으로 이를 수밖에 없는 삼각관계를 그린다.
<나의 스캔들>은 신상옥 감독의 아들이자 <삼양동 정육점> <스무살> 등을 연출했던 신정균 감독의 신작이다. 신정균 감독은 전작에서 그러했듯 <나의 스캔들>에서도 꼬이는 인간관계 속에 비극으로 끝나는 사랑의 마지막 모습을 처연하게 그린다. <삼양동 정육점>에서 감방 생활을 마치고 나온 남자가 전 담당
비극으로 끝나는 사랑의 마지막 모습 <나의 스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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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를 사랑하는 소녀가 주위의 편견을 이겨내고 축구팀에 들어가 그라운드를 마음껏 누빈다. <그레이시 스토리>와 축구선수를 꿈꾸는 소녀를 소재로 삼은 비슷한 유의 스포츠영화 <슈팅 라이크 베컴>의 교집합은 거기까지다. 극의 초반 그레이시에겐 <슈팅 라이크 베컴>의 주인공 제스를 독려하던, 같은 목표를 향해 어깨를 나란히 할 여성 동료나 가슴 두근거리는 젊은 남자 코치 같은 조력자가 없다. 게다가 그레이시의 장애물은, 인도계라는 장벽에도 축구를 못 견디게 하고 싶어하던 제스의 것과는 사뭇 다른 차원에 속한다. 그녀가 원하는 건 단순히 축구선수가 되는 게 아니라 죽은 오빠가 뛰었던 남자 축구팀에 입단해 그가 실축한 프리킥을 대신할 승리를 거머쥐는 것이므로. 그리하여 무릎을 다치기 전까지 잘나가는 축구선수였고 조니의 열정적인 축구 스승이기도 했던 아버지 브라이언 앞에서 자신의 능력을 입증하는 것이므로.
논쟁적인 이슈일 남녀간 성대결을 가족 내 문제로 치환
진정한 축구선수로 거듭나기까지 <그레이시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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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웨이 프롬 허>는 캐나다 작가 앨리스 먼로의 단편소설인 <곰이 산을 넘어오다>를 원작으로 한다.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아내 피오나(줄리 크리스티)와 그녀를 떠나지 못하는 남편 그랜트(고든 핀센트)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는 79년생 배우 출신의 감독, 사라 폴리의 장편 데뷔작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성숙하고 사색적이며 여유롭다. 자신의 남은 삶이 점차 망각으로 뒤덮이게 될 것을 느끼며 남편을 떠나려는 아내와 그런 아내의 기억 속에 영원히 남고자 하는 남편의 시간은 아내가 요양원에 들어간 뒤 서로 다른 방향으로 엇갈린다. 면회가 금지된 첫 한달 동안 피오나는 남편 대신 자신과 거의 같은 처지인 다른 남자, 오브리를 자신의 삶에 들여놓는다. 아내의 남겨진 시간에 자신의 자리가 없음을 깨달은 남편은 오브리의 아내를 찾아간다. 영화는 그랜트와 오브리의 아내가 대면하는 현재와 요양원에 들어간 아내가 다른 남자를 사랑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그랜트의 장면들을 오가며 진
잊혀진다는 것 혹은 잊는다는 것 <어웨이 프롬 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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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신문에 가정 상담 칼럼을 기고하는 댄(스티브 카렐)은 4년 전 아내와 사별한 뒤 홀로 세딸을 뒷바라지하고 있다. 연례행사처럼 열리는 가족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딸들과 부모 집을 찾은 댄은 동네 서점에서 마리(줄리엣 비노쉬)를 만난다. 우연찮게 말을 섞게 된 두 사람은 서로에게 끌리는 감정을 느끼고, 마리는 댄에게 연락처를 남긴 채 차를 타고 어딘가로 떠난다. 한껏 들떠서 돌아온 댄은 가족에게 서점에서 만난 마리에 대한 이야기를 자랑스레 꺼내놓지만, 이내 동생 미치(데인 쿡)가 데려온 여자친구가 마리라는 사실을 발견하고 말을 잇지 못한다. 댄과 마리는 잠깐 동안의 설렘을 없었던 일로 하자고 약속하지만, 비밀을 간직한 채 함께 지내는 시간은 오히려 사랑의 감정을 부추겨놓는다.
한 여자와 사랑에 빠진 형제. <댄 인 러브>의 설정은 쉽게 호감을 갖기 힘들 만큼 상투적인 삼각관계다. 하지만 영화가 익숙한 재료를 요리하는 레시피는 결코 따분하지 않다. <길버트 그레이
미소를 안기는 사랑스러운 영화 <댄 인 러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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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거, 동락>엔 멀쩡한 가정이 없다. 23살 유진(조윤희)은 아버지의 ‘커밍아웃’으로 엄마 정임(김청)과 단둘이 살고, 유진의 동갑내기 애인 병석(김동욱) 역시 부모의 별거로 엄마와 살고 있다. 그나마 유진과 유진 모의 관계는 친밀하지만 병석과 병석 모 경미(길해연)의 관계는 견원지간 같다. 이렇듯 관계들이 뒤틀어진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정임과 경미 그리고 이 둘 사이에 존재했던 한 남자 때문이다. <동거, 동락>을 한줄로 요약한다면 ‘오래전 엇갈린 사랑을 바로잡으려는 중년들의 러브스토리’라고 할 법하다. 정임과 경미, 경미의 남편 승록(정승호) 사이의 해결되지 않은 사랑문제가 그들의 자식인 유진과 병석의 관계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엄마에게 딜도를 선물하는 딸, 딸과 딸의 남자친구의 섹스 관계를 인정하는 엄마, 호스트바에 아르바이트를 나가곤 하는 병석, 아들이 일하는 호스트바의 단골 손님인 엄마. 이렇듯 자기 욕망에 솔직하고 자유분방하기도 한 인물들
상식적인 가족 형태를 넘어선 공동체를 꾸리기 <동거, 동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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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호에 정재혁 기자가 쓴 글을 보다 눈물이 날 뻔했다. 황윤 감독의 다큐멘터리 <작별>과 <어느 날 그 길에서>를 소개한 그의 기사는 지금 이 땅에서 야생동물들이 처한 위험천만한 상황을 생생히 전하고 있다. 황윤의 다큐를 꼭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한편으론 과연 보는 게 좋을지 걱정도 됐다. 야생동물들이 길을 건너다 차에 치여 죽는 로드킬의 참상을 전하며 “목장갑이나 대걸레 조각이 야생동물 시체로 착각하기에 가장 쉬울 정도로 야생동물들은 흔적조차 남기지 못하고 세상에서 사라진다”고 쓴 문장을 보니 비록 동물에 대한 각별한 관심이 없는 사람이지만 과연 화면으로 그걸 확인할 용기가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동물원의 실상을 전하는 <작별>의 경우는 조금 다른 측면에서 꺼림칙했다. 영화를 보고나면 동물원에서 맘 놓고 누리던 즐거움을 영영 잃어버리지 않을까 싶어서다. 분명한 것은 내가 피한다고 현실이 나아지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두편의 다큐가 일깨우는 불편한
[편집장이 독자에게] 황윤 다큐의 불편한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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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일을 한 십년 넘게 해오면서 느끼는 참, 이상한 일이 한 가지 있다. 건축설계 일이라는 게 크게 나누면 두 가지다. 하나는 주택 일이고 다른 하나는 주택 일이 아닌 것. 그중에 주택 일이 아닌 것에는 크고 작은 빌딩에서부터 시작해서 문화회관이나 구청신축과 같은 관과 연결된 일도 포함되어 있다. 그런 일들은 주택 일보다 더 복잡한 프로그램을 갖고 있지만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오히려 (사실은 오류인지도 모르는) 일반해를 바탕으로 작업이 시작된다. 그런 일들의 해법은 대부분 도시라는 거대한 문맥 속에서 찾아지며 사용자에 대한 예측은 수치적으로 분석된다. 그러다 보니 불특정 다수에 대한 평균치가 생기고 그것이 계획 단계에서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한다. 기준이 분명하다는 얘기이고, 그런 일은 하면 할수록 이른바 데이터라는 것이 쌓이게 된다. 그래서 다음에 또 그와 비슷한 일이 들어오면 전에 했던 작업의 데이터가 새로운 일에 적용되어 처음 접했을 때보다 훨씬 수월하게 된다.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어떤 집에서 살고 싶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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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을 읽고 있는 독자를 만날 때면 곁눈질로 그가 읽고 있는 페이지를 살피게 된다.
지난주 <씨네21>을 읽고 있는 경우도 많은데, 그럴 때면 가방 속 이번호 <씨네21>을 살며시 건네주고 싶은 마음이 앞서지만, <아멜리에>의 아버지가 봤다면 심각한 심장병이라 진단내릴 만큼 가슴이 쿵쾅 쿵쾅거려 생각은 행동으로 이어지지 못하곤 한다.
매주 금요일, 여전히 인쇄소의 온기가 남아 있는 <씨네21>을 볼 때면 가장 먼저 커버스토리 면을 찾아 배우가 사인한 수첩사진을 확인하고 더 많은 독자들이 씨네21 홈페이지에 있는 ‘돌발퀴즈’에 응모해주길 바란다. 촬영현장에서 배우는 ‘돌발퀴즈’를 낼 때 놀랄 정도로 성심을 다한다. 현장에서 돌발적으로 생기는 수많은 장애물도 독자들을 위한 깜짝 선물이 준비되는 시간에는 뒤로 한 걸음 물러나는 것 같다. 가끔은 지금까지 다른 배우들이 했기 때문에 하겠다고 하는 경우와 이해관계에 의해 인터뷰
[오픈칼럼] 돌발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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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 훗날 양로원에서 돌아볼 인생의 편린에 굳이 스크린에 걸렸던 한 장면을 끼워넣자면 내 목에 칼끝을 겨누었던 <나쁜 피>를 꼽아 레오스 카락스와 줄리엣 비노쉬 언니에게 경의를 표했을 것이다. 또는 늦게 찾아온 사춘기에 피를 끓게 했던 <그녀에게> 정도? 하나 추상보다 강한 것이 일상일까? 철들고 처음으로 나를 엉엉 울게 했던 영화는 사건으로 만났던 영화 <그때 그사람들>이다.
조광희 선배는 M&A와 기업금융 일에 재미를 느끼던 3년차 변호사를 뜬금없이 영화인들 모임으로 이끌었고 약간은 무책임하게 미국 유학을 떠났다. 내 인생 최고의 영광이었던 감독님들과 제작자들과의 술자리와 업무 속에 들떠 있던 나에게 <그때 그사람들>은 시작부터 내 인생의 영화였다. “변호사는 의뢰인에게 동질감을 느끼면 안 된다.” 그건 당연하다. 객관적 시각에서 벗어나는 순간 실수의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예외없는 인생이 어디 있겠는가? 다시는 예외를 만
[내 인생의 영화] <그때 그사람들> -이동직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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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ery night in my dreams I see you, I feel you….”
셀린 디온의 감미로운 노래가 흘러나온다. 로즈가 뱃머리에 서서 두팔을 벌리고, 잭이 두팔로 그녀의 허리를 감싼다. 그리스의 나이키 조각상처럼 지그시 두눈을 감고 온몸으로 바람을 받던 로즈, 깜짝 놀라서 환성을 지른다. “내가 날아가고 있어!” 순간, 화면이 멈춘다. 그리고 스크린 위에 윈도 창문과 더불어 이런 자막이 나타난다. ‘자, 선택하시오. 1. 잭이 죽는다. 2. 로즈가 죽는다. 3. 잭과 로즈가 모두 죽는다. 4. 잭과 로즈가 모두 산다.’ 과연 이런 영화를 보고 싶어할 사람이 있을까?
최근 미술에 이어 영화에도 인터랙션을 도입하려는 실험이 활발히 일어나고 있다. 이게 못마땅했던 걸까? 어디선가 어느 감독이 인터랙션 시네마에 대해 논평했던 대목을 읽고, 유쾌하게 뒤집어졌다. 관객이 매번 영화를 중단시켜 놓고 버튼을 눌러 플롯을 진행시켜야 한다면, 관객은 영화 속으로 몰입하는 데에
[진중권의 이매진] 비디오 게임 혹은 인터액티브 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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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영화를 보는 느낌이 났다. 혹은 오래된 이야기를 듣는 기분이랄까. 어릴 때, TV에서 틀어주던 외화, 그중에서도 줄거리가 잘 기억나지 않는 명화 같은 느낌이. 그때 본 영화들의 인상은 지금도 흐릿하다. 시간에 바래서가 아니라 영화 자체의 때깔이 지금과 달랐기 때문이다. ‘주말의 명화’ 중 끝까지 본 영화는 별로 없다. 영화나 책을 보는 데도 얼마간 훈련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모르기도 했지만. 남한의 어린이로서 겪는 삶의 리얼리티와 <벤허>나 <콰이강의 다리> 속 리얼리티를 전혀 연결시키지 못했던 탓이다. 그때는 ‘명화’가 무슨 말인지도 몰랐다. <데어 윌 비 블러드>를 보며 왜 옛날 영화가 연상됐는지 모르겠다. 옛날 영화가 어땠기에. 뭔가 기억해보려 애써도 마땅한 이유가 떠오르지 않았다. 다만 ‘서머랜드’의 황무지처럼 햇빛에 하얗게 탈색된 장면들만 간간이 스쳐갈 뿐이었다. 환하고 아스라한 옛 필름들. 그래서였을까. ‘주말의 명화’를 추억하자니, 제
[냉정과 열정 사이] 서머랜드의 유정탑과 한국 방송사의 송출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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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을 쫓는 아이>는 미국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한 아프가니스탄 배경의 할리우드영화이다. 영화는 전미비평가협회 선정 2007년 최고의 영화 톱10에 들고, 2008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 후보와 2008년 아카데미 작곡상 후보에 오를 만큼 좋은 평가를 받았다. 좀처럼 접하기 힘든 아프가니스탄 배경에 원작이 베스트셀러였고 거기에 음악까지 좋다니 감동은 따놓은 당상일 터! 하지만 영화를 보고나니 감동은커녕 분노만 치민다.
<연을 쫓는 아이>가 아프간 현대사에 소년의 성장을 담았다는 이유로, 걸작 <천상의 소녀>를 떠올리진 말기 바란다. 이 영화와 비견될 만한 텍스트는 따로 있다. 거시적 관점의 서사의 보자면 ‘전쟁이 나자 동네에서 가장 나쁜 놈이었던 자가 붉은 완장 차고 설치더라’ 하는 6·25 특집드라마가 떠오르고, 미시적 관점의 서사를 보자면, ‘출생의 비밀’을 키워드로 삼아 혈연적 봉합을 추구하는 홈드라마가 연상된다. 서사의 저급함은 일
[영화읽기] ‘감동선사’보다는 ‘분노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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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도 아닌 허문영이 홍상수의 <밤과 낮>에 관해 썼는데 누군가가 또 써야 하는가. 나도 당신처럼 똑같이 물었다. 혹은 이리저리 여러 차례 환기된 쿠르베의 <돌깨는 사람들>과 <세상의 근원>에 대한 일화를 또 꺼내야 하는가. 그러니까 홍상수도 성남도 <돌깨는 사람들>을 보기를 염원하였으나 결국은 그것이 그 자리에 없는 이유로 <세상의 근원>을 보게 된 사연을 또다시 말해야 하는 것인가. 하지만 나는 “<밤과 낮>을 보는 유일한 방법은 이해가 아니라 동행이다. 동행하며 불현듯 등장했다 사라지고 비슷하지만 다른 형상으로 되돌아오는 것을 응시하는 것이다. 여기서 말해지는 건 그들의 일부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한 허문영의 생각을 따라 만약 이 동행하는 여행 속에서 노동과 성애라는 것 외에도 되돌아오는 것들이 무엇인지 첨언해보고 싶어졌다. 그런데 그러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돌깨는 사람들>이 가난한 두 노
[전영객잔] 삶이라는 영원한 미궁으로의 초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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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전 이 영화의 라스트신이 참 좋더라고요. 제목의 난사는 언제 나오나 했는데….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렇게 총을 다섯발 쏘고나서 마무리로 선배 경찰에게 “죄송합니다”라고 깍듯이 사과하는 것이었어요. 저는 그 말 속에 이 영화의 어떤 핵심이 담겨 있다는 생각도 했죠. 이인성씨 소설에 <미쳐버리고 싶은, 미쳐지지 않는>이란 소설이 있잖아요? 주인공의 상태가 딱 그거라는 거죠. 왜냐하면 그런 폭발적인 감정이 궁극적으로 겨냥하는 지점이, 자신과 세계와의 관계에 놓여 있으니까요. 다음 영화로 넘어갈까요? 이스라엘영화 <밴드 비지트: 어느 조용한 악단의 방문>은 내용이나 형식 모두에서 소품인 영화죠? 러닝타임도 85분밖에 안 되고 극중 일어나는 사건도 거의 없고.
낮은: “이집트 경찰악단이 이스라엘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아주 사소한 일이었기에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라는 자막으로 시작하는데요. 그 도입부 자체가 영화의 성격을 잘 설명하는 것 같아요. 작아
[메신저토크] <밴드 비지트: 어느 악단의 조용한 방문>,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