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점퍼>가 설날 개봉작들을 훌쩍 뛰어넘었다. 지난 2월 14일 발렌타인 시즌을 겨냥해 개봉한 <점퍼>는 개봉 첫 주 76만8390명(배급사 집계)을 동원하며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지난 1월 10일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하 <우생순>)이 개봉한 후로 간만에 외화가 정상에 오른 것. 한국영화의 기세를 이어갈 것으로 기대한 <추격자>는 <점퍼>와 근소한 차이로 2위를 기록했다. <점퍼>와 같은 날 개봉한 <추격자>는 68만1290명(배급사 집계)을 동원했다.
새로운 개봉작들의 선전으로 설날연휴에 개봉돼 관객몰이를 했던 영화들의 순위는 대거 하락했다. 지난 주 박스오피스 1위를 했던 <원스어폰타임>은 주말동안 약 10만여명의 관객을 모으는 데 그쳐 4위로 내려앉았다. 전국 400만명을 돌파한 <우생순>도 지난 한 달간의 영광을 서서히 마무리하는 중이다. 이밖에도 지난
<점퍼> <추격자>, 박스오피스 1, 2위 다툼
-
주연 배우의 사망으로 주춤했던 테리 길리엄 감독의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극장>이 새로운 배우들의 합류로 촬영이 재개될 전망이다. <버라이어티>는 지난 1월 히스 레저가 약물과용으로 사망할 당시 미처 촬영을 마치지 못해 제작에 차질을 빚는 것이 아닌가 했던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극장>에 조니 뎁, 주드 로, 콜린 패럴 등 할리우드의 미남 배우들이 히스 레저가 연기하던 ’토니’ 역에 각각 캐스팅됐다고 보도했다. 유랑극단을 따라 꿈과 환상을 음울한 분위기로 탐험하는 판타지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극장>에서 토니는 3개의 다른 거울을 통해 새로운 차원의 세계로 이동하는데, 그 3개의 세상으로 들어간 토니를 조니 뎁, 주드 로, 콜린 패럴이 연기하게 된 것. 촬영이 재개되는 시점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극장>은 2009년 개봉과 같은 해 AFM출품을 목표로 하고 있다.
故 히스 레저 역할 조니 뎁, 주드 로, 콜린 패럴이 연기
-
더이상 데스노트는 없다. 노트에 이름이 쓰여지면 죽게 된다는 설정으로 시작된 <데스노트> 1, 2편과 달리 스핀오프 작품인 <데스노트 L>엔 데스노트가 없다. 주인공 L은 데스노트를 태워버린다. <링>으로 유명한 나카다 히데오 감독이 연출을 맡은 <데스노트 L>은 2편에서 데스노트에 자신의 이름을 직접 썼던 L이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23일간을 엿보는 이야기다. 전편에서 대립을 이뤘던 라이토와의 대결은 없으며 L(마쓰야마 겐이치)의 23일을 구성하는 건 새로운 사신 마토바(다카시마 마사노부) 일당과의 대결이다. 마토바 일당의 목적은 전편 라이토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썩어가는 인간세상을 구제하기 위해 인간을 말살해야 한다는 것. 범죄자를 택해 살인을 저질렀던 라이토와 달리 바이러스로 인류 전체를 말살하려 한다는 점은 <데스노트 L>의 규모가 전편보다 확장됐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렇게 확장된 영화의 세계관은 너무나 단순해 허황스
더이상 데스노트는 없다 <데스노트 L>
-
태초에 돈가방과 시체가 있었다. 아마도 잘못된 마약거래의 결과물인 듯한 현장을 지나가던 사냥꾼 모스(조시 브롤린)가 돈가방만 챙겨 건조하고 치밀한 도망을 계획하자, 세상에서 가장 치명적인 산소통을 들고 다니는 살인마 쉬거(하비에르 바르뎀)는 무표정한 걸음으로 그의 뒤를 쫓는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이어 25살부터 보안관이었고 은퇴를 앞둔 벨(토미 리 존스)은 쉬거보다 앞서 모스를 만나 그를 구하려들지만, 점점 나빠지는 세상이 점점 피로해지는 그의 통제를 벗어난 지 이미 오래다. <파고>의 하얀 눈밭을 떠올리게 하는 텍사스의 황량함을 배경으로, 익히 본 적이 없는 유머를 무표정하게 구사하는 인물들이 뚜벅뚜벅 폭력과 공포의 심장으로 향하는 영화의 곳곳에는 코언 형제의 인장이 선연하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 영화는 형제 최초의, 그것도 아주 성실한 각색작이다. 예이츠의 시 <비잔티움을 향한 항해>의 한 구절을 제목 삼은, 노년의 보안관의 내레이션이 불쑥불쑥 등장하는 코
기이하고 폭력적인 모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
-
<보딩 게이트>는 <카이에 뒤 시네마> 평론가 출신 영화감독의 계보를 잇는 감독 중 하나인 올리비에 아사야스의 작품이다. <아마베프> <데몬 러버> <클린> 등을 통해 다국적 배우와 작업하기를 즐겨왔던 아사야스는 <보딩 게이트> 역시 여러 국적의 배우를 기용하여 유럽과 중국을 오가는 사랑과 음모, 배신의 이야기를 펼쳐 보인다. 산드라(아시아 아리젠토)는 큰손으로 통하는 증권업자인 마일즈(마이클 매드슨)를 위해서 성 상납까지 마다하지 않을 만큼 그를 사랑했지만, 그 헌신의 대가는 이별이다. 이후 마일즈는 이혼과 사업 실패 등으로 곤경에 처하게 되는데, 그런 마일즈 앞에 산드라가 다시 찾아온다. 마일즈는 산드라에게 관계의 복원을 청하지만, 산드라는 그의 머리에 총알을 박는 걸로 그 요청에 화답한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산드라의 이러한 행동 뒤에는 또 다른 연인인 레스터(오가룡)가 있고, 그의 뒤에는 마일즈의 살인
인간관계의 복잡한 그물망 <보딩 게이트>
-
13살난 브라이오니 탤리스(시얼샤 로넌)가 생애 최초로 쓴 희곡은 결국 연극이 되지 못한다. 세계를 창조한다는 것의 희열을 깨달은 소녀는 대신, 핑크빛 꿈을 꾸기 시작한 젊은 연인의 인생을 뒤바꿔버린다. 1930년대 영국 상류층의 매너를 답답해하던 언니 세실리아(키라 나이틀리)와 가정부의 아들로 명문대를 졸업한 로비(제임스 맥어보이)의 사랑싸움과 잘못 전달된 편지, 첫 정사를 목격한 브라이오니는 연정과 오만에 휩싸인 채 의심없이 거짓을 증언한다. 탤리스가에 놀러온 사촌을 겁탈한 것이 로비라고. 연인은 헤어지고, 세계대전이 유럽을 집어삼킨다.
데뷔작 <오만과 편견>을 통해 원작자의 숨겨진 의도와 이를 가능하게 했던 시대의 공기까지 포착한 바 있는 조 라이트는 객기를 모르는 현명한 연출가다. 로맨틱코미디의 명가 워킹 타이틀에서, 로맨틱코미디의 대모 오스틴의 최고작을 영화화하는 프로젝트에 겁없이 뛰어들었던 그는, 인간의 어두운 본성을 팽팽한 서스펜스에 담는 베스트셀러 작가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을 향한 통절한 회한 <어톤먼트>
-
고등학교에 다니는 여자아이가 아이를 뱄다는 <주노>의 기본설정은 일단 가혹하게 느껴진다. 미국영화 <리치몬드 연애소동>에서부터 한국영화 <제니, 주노>에 이르기까지 그동안 이런 이야기를 담은 영화가 취한 노선 또한 그 첫 느낌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여전히 누군가에 의해 키워져야 할 아이가 또 다른 아이를 낳아 키운다는 것은 말도 안 되게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야기는 아이를 낳을 것이냐 말 것이냐의 문제 또는 청소년 출산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생명의 존엄을 위한 투쟁쪽으로 기울게 마련이다.
하지만 <주노>가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은 상당히 다르다. 16살짜리 고등학생 주노 맥거프(엘렌 페이지)는 평소 점찍어뒀던 상대인 폴리 블리커(마이클 세라)와 하룻밤을 나눈 뒤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이를 마크(제이슨 베이트먼)와 바네사(제니퍼 가너)라는 불임부부에게 주기로 한 주노는 마크가 한때 록밴드를 했으며 여러 면에서
아이가 가르쳐주는 사랑의 진실 <주노>
-
설연휴가 끝나고 1주일간 숭례문 때문에 난리가 났다. 어딜 가나 숭례문 화재가 화제가 됐고 입 달린 자는 모두 한마디씩 했다. 온 나라가 초상집 분위기인데 한국의 상가 어디서나 그러하듯 술 취한 친척들의 고함소리도 여기저기 터져나온다. “이게 다 놈현 때문”이라는 관용구가 있는가 하면 “이명박이 시장 하면서 개방한 거 아니냐”는 성토성 발언이 나오고, “대체 문화재 관리를 어떻게 하는 거냐”는 짜증 섞인 목소리가 있는가 하면 “이 나라가 어떻게 되려고…”라는 한탄도 들려온다. 정치권에선 “국민 성금을 걷자”는 말을 했다 거센 반발에 휘말리는가 하면 인수위 정부조직개편안에 노 대통령 퇴임축하연까지 별 관계도 없는 일들이 일제히 숭례문 화재와 연관된 것처럼 들먹여지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숭례문 화재는 비극에서 희극으로 장르를 옮겨가는 느낌이다.
온 국민이 숭례문에 이토록 진한 애정을 갖고 있었는지 예전에 미처 몰랐다. 내가 어느 정도 냉소주의자여서 그런지 모르지만 숭례문 화재에
[편집장이 독자에게] 숭례문
-
좋은 소설이나 충격적인 시를 읽으면 가슴이 멍해진다. 그 멍해진 감동을 추스르고 나면 마음속에는 단단한 무엇이 자리잡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우리가 이 이미지의 시대에 문학을 놓지 않고 있는 것도 아마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그리고 좋은 사람들과 만나 내가 읽었던 소설이나 시에 대해 이야기하며 그 감동을 나누고 싶어진다. 상대방이 그 글을 읽지 않았다 하더라도 이미 나는 내 마음속에 자리잡은 단단한 것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어 있으므로 아무 상관없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너와 나는 이미 그 소설을 떠나 하나의 담론을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시나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담론의 창조자가 되는 것이다. 어떤 때는 논쟁이 되기도 한다. 서로 다른 가치관과 세계관이 충돌하여 이야기를 격하게 만들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지에 대한 얘기를 할 때면 양상은 조금 달라진다. ‘너 그 영화 봤어?’라고 물었을 때 상대방의 대답이, ‘아니’라면 ‘꼭 봐.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봤어? 해봤어? 가봤어?
-
<명장>을 보면서 오만 가지 생각이 들었다. <명장>의 오리지널 작품인 장철 감독의 <자마>(1973)는 그의 영화 가운데서도 유독 특이한 작품 중 하나다. ‘장철의 아이들’이라 할 수 있는 적룡과 강대위는 <복수> <신독비도> <권격> <보표> <무명영웅> <십삼태보> 등에서 언제나 형제 혹은 친구로 등장해 남성적 의리의 세계를 보여줬는데, <자마>에서는 처음부터 그 둘이 남남으로 등장해 결국은 대립 끝에 죽기 살기로 싸운다. 당시 그 팬들 사이에서는 꽤나 충격적인 일이었다. <자마>의 조감독이 바로 오우삼이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기로 오우삼이 장철에게 영향받은 점이 바로 그 무한 우정과 의리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 반대였던 것이다. 오우삼 스스로 자신의 필생의 역작이라 늘 말해왔던 <첩혈가두>(1990)가 바로 그 의리의 부서짐을 그렸던 <
[오픈칼럼] <명장>을 보고 단상에 잠기다
-
발렌타인데이로 목요일부터 시작된 북미 극장가는, SF액션 블록버스터 <점퍼>가 사로잡았다. 전세계 어디든 원하는 장소로 공간이동을 할 수 있는 남자의 이야기 <점퍼>는, 스티븐 굴드의 동명소설을 <본 아이덴티티>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의 더그 라이먼 감독이 영화로 만들어 첫주 수입 3385만달러를 벌어들였다. 헤이든 크리스텐슨, 레이첼 빌슨, 새뮤얼 L. 잭슨 등이 출연한다.
<점퍼>를 포함해 지난 주말 새로 개봉한 영화는 모두 4편이다. 채팅 테이텀이 화려한 몸놀림을 보여줬던 <스텝업>의 프랜차이즈로, 주연배우와 감독이 모두 바뀐 <스텝업2 - 더 스트리트>(이하 <스텝업2>)와, 프레디 하이모어가 출연한 판타지 <스파이더위크가의 비밀>, 라이언 레이놀즈가 출연하는 <나의 특별한 사랑이야기>가 모두 개봉과 함께 5위 안으로 진입했다. 특히, <스텝업2
<점퍼> 개봉 첫주 박스오피스 1위로 점프!
-
공상은 대개 자기 머릿속에서만 유효하다. 매일 타는 만원 지하철 안에서 마주치던 청년과 여고생이었던 누구의 로맨스 또한 그러했다. 아침마다 그녀는 그가 주는 첫 선물이 꽃일지 향수일지, 그와 가정을 꾸린 신접살림 인테리어의 메인 컬러는 핑크로 할지 화이트로 할지를 꿈꿨다. 그와 나눌 첫마디의 말부터 연인의 단계로 가기 위한 시나리오도 여러 편이었다. 또 어떤 날은, 청년이 지금 그녀를 보며 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핑계로 당시 여고생이 가진 지식의 범위에서 가장 새빨간 섹스신을 상상해내기도 했다. 그러나 그 많은 이야기들이 무색하게 그들 사이에는 아무 일도 없었고, 넘쳐나던 출근 인파 덕에 매일 몇분씩 그의 콧김을 쐰 것이 그녀에게는 유일하게 현실적인 추억으로 남았을 뿐이다. 아, 아련하여라.
이처럼 공상은 보통 공상에서 그치게 된다. 상상이라는 것이 강의시간표처럼 정연한 순서로 되지 않기 때문에 처음에는 현실성있게 느껴지던 치밀한 계획이라 할지라도 한 다리, 두 다리 건너다보면
[내 인생의 영화] <모두 하고 있습니까> -연리목
-
1975년의 여름은 암울했고, 흉흉했으며, 또 끔찍했다. “3개월된 갓난아이부터 70살 노인에 이르기까지” 잇따라 17명을 살해한 김대두 사건은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남산 위에서 내려다봐도 내 갈 곳은 아무 데도 없었다”는 스물여섯 청년은 세상을 향해 ‘재크나이프’를 마구 휘둘렀다. “한탕해서 멋지게 살고 싶었다”는 살인마 김대두는 전국을 돌며 피를 뿌렸고, 그 대가로 고작 “현금 2만6천원과 여자손목시계 1개, 고추 30근, 쌀 한말, 플래시 1개, 불루진 바지 1벌, 그리고 가짜 금반지 1개”를 손에 넣었다. “사흘마다 한번씩 살인을 저질렀으니” 사형을 언도받았어도 동정을 구할 수 없었다.
하지만 김대두 사건의 여파는 ‘한국판 돈환’ 박동명에 대한 세상의 비난보다는 작았다. 태광실업 대표 박동명은 시온그룹을 이끌던 거부 아버지를 둔 대표적인 재벌 2세. 애초 대검 특별수사가 문제삼았던 혐의는 위장 이민과 불법재산 해외 유출건이었다. 서민들조차 이민이 꿈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하
[한국영화 후면비사] 박동명 X파일 파문
-
죄수복을 입은 한 사내가 정육면체의 방에서 깨어난다. 아직도 영문을 모르는 듯, 여섯면에 달린 문들을 하나씩 열어보다가, 용기를 내어 그중 하나를 통해 옆방으로 들어간다. 그곳의 풍경도 그가 방금 떠난 공간과 하나도 다를 게 없다. 큐브의 가운데로 몇 걸음 옮기는 순간, 사내의 몸을 치고 지나가는 짧은 금속성 굉음이 들린다. 사내의 얼굴에 빨간 줄이 생기고, 그 줄에서 피가 흘러내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잠시 뒤 사내의 몸은 마치 3D 입체 모델처럼 작은 조각들로 잘린 채 바닥으로 무너져내린다.
경험과 이성
영화는 그곳이 뭐하는 곳인지 설명하지 않는다. 무슨 이유로 사람들이 거기에 갇히게 되었는지 밝히지도 않는다. 모두 죄수복을 입었으나 이렇다 하게 죄를 지은 적이 없다. 어떤 이는 잠을 자다 끌려왔고, 어떤 이는 냉장고 문을 열다가 이 공간으로 빨려 들어왔다. 어떤 이는 이게 정부의 음모라고 주장하고, 다른 이는 어떤 사이코의 짓이라고 생각한다. 외벽을 디자인했다는 건축가만이
[진중권의 이매진] 부조리가 합리주의를 이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