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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서(이천희)와 미연(한지혜)은 2000일 기념일을 앞둔 연인이다. 꽃다발 이벤트는 100일 기념일에 했고 커플반지는 500일 기념일에 주고받았으며, 1000일 기념일에 풍선까지 깔아본 이들은 오래된 연인이 그렇듯 감정의 균형을 잃어가고 있다. 미연은 공부만 하는 남자친구의 건강이 걱정돼 암벽등반 등의 세계로 그를 이끌지만, 그런 여자친구가 준서에게는 “특이하고 위험한 것만 있으면 꼭 같이하려고 드는” 것처럼 보여 부담스럽다. 기어이 준서는 미연과 잠시 떨어져 있을 요량으로 남극기지연구팀에 파견을 신청하고, 조금씩 이별을 준비한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만나기로 한 준서가 오지 않자 미연은 그에게 줄 선물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빗속을 달리다 교통사고를 당한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잠에 빠진 준서에게 미연은 여전한 모습으로 찾아와 2000일 기념일이 언제인지 알려준다. 하지만 곧 그녀의 사고소식을 접한 준서는 아침에 만난 미연의 모습을 떠올리며 그녀의 흔적을 찾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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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사랑한다고 말하세요 <허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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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카불. 12살 동갑내기 아미르와 하산은 꼭 같이 붙어다니는 단짝친구다. 유약하다고 핀잔을 듣기 일쑤인 아미르에게 하산의 존재는 특히 절대적이다. 골목에서 덩치들에게 시달릴 때에도 하산은 아미르를 위해 겁도 없이 새총을 겨눈다. 그들의 아비가 그러하듯이 그들 또한 도련님과 하인으로 묶여 있지만, 들판에서 연을 날리는 두 소년은 친형제처럼 서로를 위하고 챙긴다. 모든 것을 함께 나눌 것만 같던 시간은 그러나 오래지 않았다. 얼마 뒤 열린 연날리기 대회에서 아미르는 하산의 도움으로 우승을 차지하지만, 연을 찾으러 골목길에 들어갔다가 꼼짝없이 성폭행을 당하는 하산의 고통을 못 본 척한다. 죄책감에 시달리던 끝에 아미르는 하산을 모함하고 결국 그 일로 인해 하산과 그의 아버지는 집을 떠난다. 이후 30년이 흘러 미국에서 소설가로 성공한 아미르. 난민이라는 거추장스러운 딱지를 떼고서 이국에서의 생활을 만끽할 무렵 과거의 죄책감을 상기시키는 한통의 전화를 받는다.
공감할 만한 성장
‘네버랜드’를 찾아서 <연을 쫓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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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 정면에 멈춰 있던 버스가 지나가면 그 자리에 똑같은 제복을 입은 남자들이 정지된 풍경처럼 일렬로 서 있다. 이스라엘 어느 지방 도시의 초청으로 방문했건만, 이들을 기다리는 건 황량하고 고요한 벌판뿐이다. 환대받지 못한 자들의 어색하고 불안해진 눈빛과 자세가 처량하다. 직접 목적지로 찾아가기로 결심한 남자들은 버스에 오른다.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경찰 관현악단의 이스라엘 방문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원래의 목적지는 ‘페타 티크바’지만, 영어 발음을 잘못 알아들은 탓에 ‘벳 하티크바’라는 사막 같은 마을에 내린다. 다시 돌아갈 버스는 끊기고 모텔도 없는 이곳에서 이들 눈앞에 구세주처럼 나타난 식당. 다행스럽게도 집시 분위기를 풍기는 여주인 디나와 조금은 멍해 보이는 두 남자의 배려 덕에 밴드 멤버들은 세 그룹으로 나뉘어 하룻밤을 보낼 수 있게 된다. 낯선 이들과의 우연한 하룻밤에 펼쳐지는 잔잔한 추억거리들이 영화의 중심이다.
이집트와 이스라엘의 만남. 정치적인 영화를 떠올릴 수밖에
평화롭고 쓸쓸한 하룻밤 <밴드 비지트: 어느 조용한 악단의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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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정착의 뿌리에서 잘려나간 상처받은 인물들이 기억에서 치유되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아오야마 신지가 만든 이 무기력한 매혹의 공간엔 희망이 없고 절망도 없다. 자잘하게 지속되는 현실이 그저 있을 뿐 있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전망없이 떠돌던 아오야마 신지의 인물들이 일종의 정박지를 마련하고 있다는 징후가 <새드 배케이션>에 드러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밀항에 관계하던 켄지(아사노 다다노부)는 부모를 잃은 중국 소년 아춘을 데리고 도망쳐 그를 보살핀다. 켄지는 어린 시절 도망간 어머니와 자살한 아버지로 인한 상처를 안고 있고, 게다가 그가 돌보는 유리(쓰지 가오리)는 10년 전 6명을 살인하고 자살한 친구 야스오의 정신병을 앓는 여동생으로 아직 오빠가 살아 있다고 믿고 있다. 대리운전을 하며 아춘을 돌보던 켄지는 우연히 마미야 운송회사라는 작은 회사의 사장을 태우고 가다 그 사장의 아내가 된 어머니를 발견한다. 이곳저곳 뜨내기로 사는 부초 같은 사람들의 삶을
이제는 집으로 돌아갈 시간 <새드 배케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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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전영객잔’ 코너에서 허문영 평론가는 <밤과 낮>에 관해 “나는 이 라스트신에서 밝고 귀여운 면을 더 많이 보는 견해에 동의할 수 없다”고 썼다. 홍상수가 더 밝아졌고 가벼워졌다는 평이 많았던 터라 그의 지적은 간지러운 곳을 긁어주는 말이었다. 나 역시 홍상수가 이번 영화에서 밝아졌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아니, 홍상수의 어떤 영화보다 어둡고 우울하다고 생각한다. 약간의 과장을 보탠다면 푸른 하늘에 흰 구름이 떠 있는 라스트신의 그림을 보면서 생지옥에 갇힌 것 같은 답답함을 느꼈다. 어디로 갈지 알 수 없는 길 위에서 끝을 맺은 전작들과 달리 안온한 가정으로 복귀했을 때 맞이하는 폐쇄공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밤과 낮>을 보고 시간이 흐른 뒤에도 납덩이처럼 마음 깊은 곳에 가라앉는 질문이다.
<밤과 낮>이 무슨 얘기를 하는 영화인지 정리하는 건 불가능하다, 고 한다. 지금까지 홍상수 영화가 그래왔기 때문에 <밤과 낮>의
[편집장이 독자에게] <밤과 낮>의 운명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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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TV시트콤 <LA아리랑>과 영화 <짱>으로 연기 데뷔해 <찍히면 죽는다> <천사몽> <키다리 아저씨> <어느날 갑자기 첫번째 이야기-2월29일> 등의 영화와 <사랑밖에 난 몰라> <작은 아씨들> <매일 그대와> <대장금> <이산> 등의 드라마에 출연한 올해 31살의 13년 연기 경력을 가지고 있는 배우 박은혜!! 하지만 <대장금>의 '연생이'와 <이산>의 '효의왕후' 두 사극 속 '단아하고 고운' 이미지가 강하여 여타 다른 케릭터들의 이미지는 묻혀버리고 말았다. 이번 홍상수 감독의 영화<밤과낮>의 미술을 전공한 '유정'이란 캐릭터로 새롭게 연기 변신의 기회가 찾아온 그녀!! 배우 '박은혜'와 함께한 스포트라이트 인터뷰!!
단아하고 예쁜이미지를 벗기위해 전환점이 필요했던 그녀가 이번 <밤과낮>에선 '유정'역을 맡
[박은혜] “꾸준히 노력하는 배우로 남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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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텝업2-더 스트리트
더 강하고 한층 업그레이드 된 <스텝업2-더 스트리트>
최고의 춤꾼들이 모여 역동적이고 살아있는 댄스를 선보이며
꿈,사랑,열정을 향한 젊은이들의 춤의 향연이 시작된다.
자유와 열정을 재연하는 <스텝업2>는 오는 3월 13일날 개봉할 예정이다
동영상을 보시려면 '동영상 보기 버튼'을 클릭해 주세요
[개봉작NEW] <스텝업2 - 더 스트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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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몰입교육 논란으로 온 나라가 시끄러울 때, 빅뉴스의 변희재는 “<디 워> 매출 1억달러, 낡은 지식인에 파산 선고”라는 글을 썼다. 그는 지식인들이 <디 워> 팬카페만 드나들었어도 제대로 된 팩트를 알 수 있었을 거라고 말하지만, 그 팩트는 영화매체 종사자가 아니라 서핑이나 조금 즐기는 사람들도 반박할 수 있을 만큼 허술했다.
먼저 그는 <디 워>의 제작비를 3천만달러로 잡고, 총매출을 1억달러로 산정한 뒤 엄청난 이득을 얻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디 워>의 제작비가 얼마인지에 대해선 300억원설과 700억원설이 대립하고 있는데 일단 아무 설명없이 전자를 채택하고 있는 셈. 제작비와 총매출을 대비시키는 것도 어처구니없이 한심하다. 변희재는 극장과 쇼박스가 가져갔을 돈은 애써 머리에서 지우고 총매출이 영구아트무비의 순이익인 양 취급한다. 또한 <디 워>의 흥행이 엄청난 수의 스크린 독점을 통해 이루어진 만큼 그런 식의 흥행전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디 워>의 꿈 vs 영어몰입교육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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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참았던 이베이질을 재개했다. 유명 피겨 제작사인 맥팔레인(McFarlane)에서 만든 <괴물들이 사는 나라> 피겨 세트를 구입하기 위해서다. 모리스 센닥의 그림책에 나오는 캐릭터들을 정교하게 재현한 이 피겨 세트는 지난 2000년에 리미티드 에디션으로 잠시 판매된 희귀 아이템이다. 만 하루를 남겨놓은 현재가격 157달러. 아마도 자정을 기점으로 200달러가 넘게 치솟겠지. 하지만 원작을 본 순간부터 간절히 바랐던 피겨 세트다. 이성이 돌아왔을 때 즈음에는 이미 국제배송을 기다리는 신세가 될 것이 틀림없다. 뭐 어쩌겠는가. 별스런 취향과 덜 자란 좌뇌가 결탁해 쌈짓돈을 공략한 사례가 이번이 처음도 아니고.
<괴물들이 사는 나라>는 모리스 센닥이 지난 1963년에 출간한 작품이다. 몇 페이지 안 되는 아동용 그림책이니 내용도 간단하다. 말썽꾸러기 소년 맥스가 늑대 옷을 입고 엄마에게 장난을 치다가 벌로 방에 갇히고 만다. 깜깜한 방은 맥스의 상상력이 빚어
[오픈칼럼] 1989년의 교훈을 되돌아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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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아니 어쩌면 1997년. 나는 건축과 학생이었다. 학교에는 충실하지 못했지만, 여하튼 주요 관심사는 건축 혹은 도시와 연관되어 있는 모든 것들이었다. 많이 어설펐어도 열정은 있었던 것 같다(하긴 지금도 어설픈 것은 마찬가지다).
그때 이 영화 <잃어버린 아이들의 도시>(La Cite Des Enfants Perdus)를 봤다. 이유는 단순했다. 제목에 ‘도시’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영화에 대한 아무런 정보없이도 선택을 주저하지 않았다. 게다가 영화의 포스터에는 배낭여행을 떠났다가 우연히 찾아갔던 물 위에 떠 있는 도시, 몽생미셸(Mont Saint Michel: 프랑스 바스노르망디주 망슈현에 있는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편집자)의 이미지를 한껏 발산하고 있는 철제 섬이 몽환적으로 그려져 있었다.
십년이 넘게 흐른 지금, 이제는 장 피에르 주네 감독의 이전 영화였던 <델리카트슨 사람들>을 비롯한 여러 영화들을 본
[내 인생의 영화] <잃어버린 아이들의 도시> -오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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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아직 아이였을 때, 팔을 흔들고 다니며, 시내가 강이 되고, 강이 되어 바다가 되었으면 했지. 아이가 아직 아이였을 때, 아이는 자기가 아이인지 몰랐고, 그에게 모든 것은 영혼이 있었고, 모든 영혼들은 하나였지. 아이가 아직 아이였을 때, 그는 아직 어느 것에도 견해를 갖지 않았고, 습관도 없었고, 책상다리로 앉았다가 뛰어다니기도 했고, 헝클어진 머리에 사진을 찍을 때 억지로 표정을 짓지도 않았지.” 영화는 페터 한트케의 시 <유년기의 노래>로 시작한다.
집단적 기억
천사는 어린이의 눈에만 보이기에, 베를린 쿠담의 번화한 거리에서 그를 보는 것은 오직 길을 건너던 사내아이, 그리고 버스를 타고 지나가는 쌍둥이 소녀뿐이다. 천사가 서 있는 빌헬름 프리드리히 기념교회는 2차대전 때 폭격으로 파괴된 뒤, 전쟁의 참상을 증언하기 위해 복구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다. 파괴된 교회의 현재를 통해 과거는 미래로 메시지를 던진다. 그로써 두번의 전쟁을 일으킨 민족의 집단적
[진중권의 이매진] 영화는 역사를 만드는 현대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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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볼을 선물받은 적이 있다. 절벽 사이에 소나무 한 그루가 심어져 있는 유리구였다. 돔의 이름은 ‘종을 떠난 종소리’. 쥐고 흔들면 하얗게 흩날리는 눈꽃이 천천히 낙하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동그랗게 밀봉된 고요. 유리구 안에는 절도 없고 종도 없었지만 종소리가 있었다. 그 소리는 떠나온 소리였고, 그래서 울림의 시원(始原)을 떠올리게 만드는 ‘소리없는 소리’였다. 오래전, 먼 곳에서 출발해 비로소 나에게 도착하는 소리. 그 자장의 끝, 가장 나중에 그려지는 동심원 바깥에 내가 서 있는 기분. 눈송이가 전부 가라앉으면 그걸 다시 흔든 뒤 잠자코 바라보기를 반복했다. 그러면 정작 종을 떠나온 것은 종소리가 아니라 나 자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잃어버린 것과 잃어버릴 것들이 떠올랐다. 믿기지 않을수록 되풀이하여 말하는 게 좋다고 했던가. 사람들이 스노볼 뒤집는 모습을 볼 때면, 그들 모두가 의외로 시시한 눈(雪)의 속도에 집중하고 있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는 우리
[냉정과 열정 사이] 내 속에 공명하던, 그 소리없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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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월, 3주… 그리고 2일>과 <주노>는 동시대에 도착한 영화지만, 동시대로부터 날아온 편지는 아니다. <4개월…>의 시대적 배경이 1987년 루마니아의 차우셰스쿠 정권이라면, <주노>의 배경은 명시되어 있지는 않지만 현재의 미국이다. 결혼하지 않은 어린 여자에게 어느 날 닥친 임신과 이에 대처하는 방식 혹은 태도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둘은 유사하다. 하지만 전혀 다른 영화다. 우연하게도 두 영화를 연달아 본 뒤 동일한 소재를 두고 고통과 유쾌함을 분열적으로 오갔다. 그 감정의 간극은 잊혀지지 않으면서 사람을 무척 피곤하게 만드는 것이었는데, 결론은 <4개월…>과 <주노>는 함께 읽어야 하는 영화라는 것이다. 시대적, 문화적 차이로 두 영화의 차이를 설명하는 건 가장 게으른 방식이다. 더욱이 <4개월…>은 1987년 루마니아 독재정권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도 보이지 않는 어딘가에서 여전히 벌
[영화읽기] 그래도… 삶은 계속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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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과 낮>에 등장하며 포스터에도 사용된 쿠르베의 <세계의 근원>(1866)에는 벌거벗은 여인의 벌어진 사타구니가 그려져 있다. 외음부의 형상, 체모의 결까지 세밀하게 묘사된 이 그림은 포르노의 시대인 오늘의 눈으로 봐도 뻔뻔스러울 만큼 직접적이고 자극적이다. 하지만 그 감각적인 직접성은 동시에 당대에 대한 대담한 논평이다. 그 논평은 신과 영웅을 그린 ‘고결한’ 회화들의 위장된 외설성을 겨냥한다. 예컨대 역시 오르세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카바넬의 <비너스의 탄생>(1863). 여신은 마치 성애의 절정에 이른 여인처럼 발그레한 얼굴로 고개를 돌리고 온몸을 교태스럽게 비틀고 있다. 다만 그 모든 것이 비롯되고 귀결될 부위는 교묘하게 가려져 있다.
쿠르베는 위장이 불가능한 앵글을 택하고 심지어 모델의 두 다리를 벌려 그 많은 ‘고결한’ 그림들이 그토록 다양한 방식으로 가렸던 질과 체모를 화폭의 한가운데 놓는다. 게다가 얼굴은 시트로 가려져 있다. 그
[전영객잔] 목적지 없는 여행의 두려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