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우외모발산지수 ★
실제액션비트지수 ★★
벤치마킹&봉합지수 ★★★☆
재기는 인정받았으나 감독이 아직 지명도가 약하다. 배우, 아직 내세울 만한 급은 아니다. 소재 또한 귀 쫑긋해질 ‘하이 컨셉’이라고 하기엔 모자란다. 당신이 제작자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썩 좋은 조건이 아닌데도 어떻게든 관객의 호주머니를 털어야 한다면? 모든 관객을 단박에 만족시킬 수 없다면 방법은 한 가지다. 여러 취향을 가진 관객의 관심을 조금씩 모으는 식이다. 삼각관계 틴에이저물은 시시하다. 신종 스포츠로 자리잡은 MMA(Mixed Martial Arts, 종합격투기)로 자극을 더한다. 머리없는 발차기영화라고 오인되면 불안하니 여기에 가족, 성장영화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설정과 인물을 덧붙인다. 종합격투기에서 경기 시작을 의미하는 영화제목 ‘겟썸’은 뭔가를(some) 더 얻기(get) 위해 다종장르 혼용을 택한 영화의 욕구처럼 들리기도 한다.
올랜도의 고등학교로 전학 간 제이크(숀 패리스)는 이전
다종장르의 적절한 혼용 <겟썸>
-
컬러풀한 패션 지수 ★
수평 트래킹과 패닝 감동지수 ★★★★
‘아티스트 3부작’ 마지막 작품 기대지수 ★★★★
자본주의에서 상품이 아닌 모든 것은 ‘무용’(無用)하다(고 믿어진다). 이때 자본 밖에서 존재할 수 있다는 이상을 꿈꾸는 대신 자본 안에서 자본을 거스르려는 움직임을 포기하지 않는 것, 무용한 것의 정치성을 끝끝내 붙잡는 것이 예술이다. 그렇다면 자본주의를 사는 예술가와 그 세상을 사는 노동자의 삶은 얼마나 혹은 어떻게 겹쳐지는가. 지아장커의 ‘아티스트 3부작’은 그걸 사유하는 작업이다. 화가 리샤우동을 주인공으로 싼샤의 노동자들을 찍었던 <동>이 그 첫 번째 작업이었다면, <무용>은 <동>에서 그 사유를 좀더 진척시킨 다큐멘터리다. 여기서 지아장커의 관심은 중국의 의류산업이다. 좀더 정확히 말해 점점 더 물질적으로 변모해가는 중국의 현실에서 옷을 둘러싼 삶의 이야기를 보는 것이다. 이를 위해 그는 세개의 지역에서 옷과 관련된 세개의 초상
‘아티스트 3부작’ 중 두번째 작품 <무용>
-
<아이언맨>이 승승장구하고 있다. 개봉 2주 만에 한국에서 전국 300만 관객을 넘었고 미국에선 1억7천만달러 이상을 벌어들였다. 평단의 반응도 좋은 편이다. 스타라 말하기 어색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를 캐스팅한 것이 대성공으로 판명받았고 만화적 감성과 코미디 감각이 조화를 이룬다는 평이 많다. 대단한 감흥을 얻은 건 아니지만 나 역시 즐겁게 봤다. 특히 흥미로운 대목은 주인공 토니 스타크가 아이언맨 아머 슈트를 개발하고 시험하는 장면들이었다. 아이언맨으로 싸우는 액션시퀀스가 많지 않은 대신 <아이언맨>은 발명과 실험의 과정을 코미디 리듬에 실어 비중있게 그린다. 그 과정이 엉터리임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나 영화적으로는 신선하고 재미있다. 관객에게 지금 보고 있는 것이 그럴듯하다는 실감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디지털 특수효과로 도배되는 슈퍼히어로물에서 이런 세심한 묘사는 관객의 몰입을 유도하는 리얼리티를 만들어낸다. <스파이더 맨>
[편집장이 독자에게] <아이언맨>과 청문회
-
1.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영화 <청춘의 십자로>
‘가장 귀여운 노력의 결정.’ 1934년 박승걸이 <조선중앙일보>에 <청춘의 십자로>를 보고 평한 것이다. “조선 영화는 얼마나 잘된 것을 보러가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못된 것을 보러간다”는 말이 널리 퍼져 있을 때 나온 안종화 감독의 <청춘의 십자로>는 당시 평단의 주목을 끌었다. 금강 키네마사 제1회 작품이다.
“안종화씨 감독, 이명우씨 촬영으로 제작된 금강 키네마의 <청춘의 십자로>가 21일부터 조극(朝劇)에서 상영하게 되었는데 스토리는 굴곡이 적으나 출연자들의 연기와 촬영수업이 제 길을 들어선 셈이다. 물론 부분적으로 따져보면 쳐들 말이 많지만, 이 영화에서 영화배우다운 몇 사람을 찾아낼 수 있음이 기쁜 일이다. 김연실양은 이제야 영화라는 것을 안 것 같고 초출연의 박연씨의 역은 그를 출세시킬 기틀을 만들었고 후편에 있어서 이원용씨는 열연이었고 안종화씨의 감독 수법
[전영객잔] <청춘의 십자로>와 근대의 원초경
-
-
“광우병에 걸려 있다 하더라도 광우병에 걸린 소로 등심스테이크를 만들어 먹어도 절대 안전합니다. 한국인들이 잘 해먹는 우족탕, 꼬리곰탕 이런 것들도 역시 모두 안전하다는 이야기입니다.”
한나라당 심재철 의원의 말이다. 한국에서 광우병은 어느새 감기보다 못한 병이 되었다. 이게 다 정부와 보수언론이 무지몽매한 국민을 대상으로 열심히 펼친 계몽활동 덕분이다. 광우병 괴담을 물리친 한국은 광우병 공포에서 해방되어 이제 세계에서 가장 개명한 나라가 되었다. 이제는 나아가 한국이 세계를 계몽할 때다.
일차 대상국은 독일. “독일 식품위험평가원은 지난 2004년 미국 축산업시장에 대한 보고서에서 미국의 축산업이 유럽의 안전기준에 현저히 못 미친다고 지적했다. 이 보고서는 미국의 광우병 대책에 대해 광우병 감염 차단 노력과 감염 이후의 통제가 충분하지 않다고 밝혔다. 또한 소를 사육하고 도살하는 과정에서 유럽의 관리 기준에 못 미치고 있다고 지적하고 축산물 관리체계를 개선할 것을 권고했다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광우병 계몽
-
미국 쇠고기 수입협상에 항의하는 촛불집회에 참석한 청소년들을 조종하는 ‘배후세력’이 있단다. 맞다. 입시에 쫓겨 집에선 웬만해서 얼굴 보기도 힘든 청소년들이 버스 타고 지하철 타고 한자리에 모여 한목소리를 내는데 배후세력이 없을 리 있나. 십수년 전 고교 시절 이웃 학교 친구들과 거리에서 시위를 벌였을 때도 우리에겐 분명 배후세력이 있었다.
혹시 전교조 선생님들이었느냐고? 천만의 말씀이다. 당시는 교단을 떠나는 전교조 선생님들을 향해 “제발 가지 마세요∼”라며 눈물바람을 하던 시절이었지만 시위 지도부는 전교조 사무실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순수한 우리의 뜻이 훼손될 우려가 있어서”다. 그 순수한 뜻이 무엇인고 하니, 0교시와 보충수업, 야간자율학습, 주초고사까지는 어찌어찌 견뎠지만 고교 경쟁입시를 도입하는 것만은 정말 못 참겠다는 것이었다. 돌이켜보면 학교가 입시 지옥이 되는 현실을 바꾸려고 모든 것을 걸었던 전교조 선생님들이야말로 우리의 순수한 뜻을 가장 잘 이해할 터였는데,
[오픈칼럼] 현실이 된 괴담
-
가수가 배우로도 성공하기는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엘비스가 수많은 영화에 나왔지만, 대부분이 그의 팬들을 위한 수준 낮은 ‘전략 상품들’(exploitation film)이었던 점에서도 알 수 있다. 프랭크 시내트라(1915~98)도 배우 이전에 유명 가수였다. 그의 나이 30대인 1940년대에 그는 그야말로 스타였다. 영화에도 자주 출연했는데 아쉽게도 기억에 남는 작품은 드물다. 무엇보다 가수로서의 바쁜 일정 때문이었다. 나이도 들고, 가수의 생명에 위기가 왔을 때 시내트라는 배우로 거듭난다. 그 첫 신호탄이 조연으로 나온 <지상에서 영원으로>(1953)이고, 주연으로 출연한 <황금팔을 가진 사나이>(1955)로 그는 드디어 자신의 명성에 걸맞은 배우가 된다.
오토 프레밍거, 검열제도 헤이스 코드 폐지 이끌어
오토 프레밍거는 ‘검열의 역사’를 말할 때 제일 먼저 거론되는 감독이다. 오스트리아 출신 유대인으로,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했다. 정치적으로
[걸작 오디세이] 검열과의 싸움이 시작되다
-
서부영화가 그리스 비극과 만난다면 어떤 모습을 할 수 있을까? 폭력이 찬양되는 액션물에 부모를 죽인 죄책감으로 고통받는 오레스테스나 오이디푸스를 섞을 수 있을까? 너무나 먼 것 같은 두 공간, 곧 신세계의 서부와 고대의 그리스를 연결하는 대담한 계획을 실천에 옮긴 감독이 바로 앤서니 만(1906~67)이다. 이른바 ‘심리 웨스턴’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배우가 수익분담금을 요구하는 계약 퍼뜨려
뺏고 싸우고 죽이고 하는 활극(Horse Opera)이 그나마 픽션의 얼개를 갖추는 데는 존 포드의 <역마차>(1939)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웨스턴도 격식을 갖춘 영화로 인식되기 시작했고, 바야흐로 존 웨인의 시대가 열렸다. 물러설 줄 모르는 강인한 남자 존 웨인이 웨스턴의 표상으로 각인돼 있을 때, 로맨틱코미디의 순진한 청년 제임스 스튜어트가 ‘뜻밖에도’ 웨스턴에 등장했다. 감독도 웨스턴과는 인연이 멀고, 주로 누아르 필름을 찍던 앤서니 만이다. 뭘 만들 수 있을까?
[걸작 오디세이] 황야에 펼쳐지는 그리스 비극의 죄의식
-
험프리 보가트(1899~1957)는 존 휴스턴의 술친구다. 1930년대에 보가트는 갱스터영화의 조연으로 나오는 흔한 배우 중 한명이었다. 반면 휴스턴은 미래가 약속된 시나리오작가였다. 별 볼일 없는 갱스터의 조연이나 하다 연기인생을 끝낼 보가트가 삶의 전환점을 맞이하는 게 바로 젊은 휴스턴과의 만남이다. 보가트는 휴스턴의 감독 데뷔작 <말타의 매>(1941)에서 주연으로 등장하며 바야흐로 누아르영화의 상징이 된다. 그의 나이 42살 때다. 별 볼일 없을 것 같은 배우가 마흔을 넘겨 전설이 되는 흔치 않은 사례를 남긴 것이다. 누아르영화를 잉태하고 발전시킨 전쟁이라는 비이성의 폭력 속에선 반듯한 미남보다는 보가트 같은 ‘못생긴’ 아웃사이더가 더욱 매력적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20여분 지속되는 1인칭 시점 카메라
델머 데이브스의 <다크 패시지>(Dark Passage, 1947)는 보가트의 인기가 절정에 있을 때 발표된 누아르다. 1945년 보가트가 자기보다
[걸작 오디세이] 험프리 보가트, 누아르의 전설이 되다
-
조앤 크로퍼드(1906∼77)는 1930년대의 스타다. 메트로-골드윈-메이어, 곧 MGM의 사주인 루이스 메이어의 전폭적인 지지로 스타덤에 올랐다. 라틴 계열의 피가 섞인 그녀가 글로리아 스완슨, 그레타 가르보 같은 순백의 배우들과 경쟁하는 것은 사실 승산없는 싸움처럼 보였다. 그런데도 크로퍼드는 30년대 들어 그레타 가르보와 더불어 MGM의 최고의 별로 떠올랐다. 루이스 메이어의 지지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30년대 그레타 가르보의 라이벌
크로퍼드는 메이어의 지지를 얻기 위해 우리의 상상을 자극하는 섹스에 관한 수많은 일화를 남겼다. 메이어는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여 스타들과 별의별 염문을 다 뿌린 할리우드의 플레이보이였다. 크로퍼드는 보기에 따라서는 그의 성적인 노리개이기도 했지만, 대신 대중의 스타로 군림할 수 있는 기회를 전폭적으로 제공받았다. 메이어와 크로퍼드 사이의 섹스 스캔들은 클린턴과 르윈스키 사이에 일어났던 ‘부적절한 행위’, 그 이상이었다.
아버지의 얼
[걸작 오디세이] 40살에 핀 조앤 크로퍼드의 화양연화
-
지금 한국영상자료원에서 개관영화제가 한창 열리고 있다. 그런데 한국영화에는 미안한 일이지만 사실 상영작 중 내 관심은 왕조현이 나오는 <천녀유혼> 3부작이다. 지난 2번의 연휴를 서울 아닌 곳에서 놀았으니 꼭 가볼 생각이다. 1967년 대만 출신의 왕조현은 짙은 숯검댕 눈썹의 우아한 얼굴, 뽀얀 피부의 롱다리가 돋보이는 청순미의 대명사였다. 게다가 170cm가 넘는 농구선수 출신의 왕조현은 이른바 ‘롱다리’ 여배우의 원조였다. 막연하게 떠올리는 ‘선녀’ 이미지에 딱 들어맞는 배우가 바로 왕조현이었다. 1985년 홍콩으로 건너와 <위슬리전기>(1985)와 <타공황제>(1985)에서 당시 <최가박당> 시리즈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허관걸의 애인으로 등장한 그녀는 <천녀유혼>(1987)으로 빅 히트를 기록하게 된다. 국내에서도 영채신(장국영)과 이루지 못할 사랑에 괴로워하던 ‘요괴’ 섭소천(왕조현)의 우수에 젖은 눈빛은 수십만 학생들의
[울트라 마니아] 영원한 몽중인, 왕조현
-
<포비든 킹덤: 전설의 마스터를 찾아서>(이하 <포비든 킹덤>)에서 저에게 가장 당황스러웠던 건 마이클 안가라노의 가슴에 난 거무스름한 털이었습니다. 뭐야, 왜 저런 게 쟤 가슴에 난 거지? 하지만 검색해보니 얘도 벌써 스물을 넘겼어요. 어른이에요. 하긴 얼굴을 보니 <스카이 하이> 때보다 나이 들어 보이기도 하더군요. 제가 방심한 동안 세월이 또 그렇게 지난 겁니다. 마이클 안가라노의 커리어를 주목하기엔 할 일이 너무 많기는 하지만. 흘러가는 세월이 이 친구에서 특별히 아쉬운 것도 아니겠죠. 아역배우 출신이지만 처음부터 어린아이다운 미모를 뽐내는 타입은 아니니까. 다 자란 지금도 대단한 미모나 카리스마의 소유자는 아니지만요.
마이클 안가라노에겐 잘하는 역할이 하나 있죠. 별것 아닌 남자애 역요. 그 별것 아닌 남자애가 특별한 상황에 걸려 넘어지면 이 친구의 고정된 이미지가 완성됩니다. 이런 이미지를 저에게 박아놓은 작품은 셋이죠. 우선 <윌
[듀나의 배우스케치] 마이클 안가라노
-
미국 서부개척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또 모를까, 제시 제임스는 한국인에게 낯선 이름이다. 하지만 서구에서 그의 유명세는 대단한 것이어서 ‘19세기 말에 유럽인이 아는 미국인이라곤 마크 트웨인과 제시 제임스뿐이었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리더스 다이제스트가 발간한 <카우보이>에 따르면 “서부 역사상 어떤 무법자도 ‘제임스 갱단’만큼의 성공과 명성을 얻진 못했다”고 한다. 유명한 무법자인 돌튼 형제, 부치 캐시디, 선댄스 키드, 존 웨슬리 하딘, 빌리 더 키드는 모두 제임스 갱단 아래 위치한다는 이야기다. 제시와 프랭크 제임스와 10여명의 주변인들로 결성된 ‘제임스 갱단’은 1866년 2월, 미주리주에 소재한 은행을 털면서 시작을 알린 뒤, 장장 15년 동안 7개주에 걸쳐 12건의 은행털이, 7건의 열차 강도, 5건의 역마차 습격에 성공하며 이름을 날렸다.
빈틈없이 사전조사를 하고 과감하게 실행한 다음엔 흩어져서 은신처에 숨는 방식으로 법망을 피했던 그들은
5편의 DVD로 만나는 제시 제임스 연대기
-
“<즐거운 인생>의 중고차 매매시장 장면이다. 멤버들이 모여서 설움과 슬픔을 나누는. 내가 사진을 찍은 건 아니니 단정할 수 없지만 이날 촬영 때 (이준익) 감독님이 유난히 고민이 많으셨다. 혁수 역의 김상호씨가 우는 장면을 찍어야 했는데, 감독 입장에선 배우의 감정을 어디까지 끌어올려야 하느냐 재차 숙고하셨다. 오열이냐 아니면 흐느낌으로 갈 거냐. 이 경우에 다른 인물들의 감정은 또 어느 정도 수위여야 하는가. 현장에 누구보다 일찍 나오시는 터라 별로 고민하시는 모습을 많이 뵌 적은 없지만, 이날만큼은 세팅하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인물들의 감정을 저울질하셨던 것 아닌가 싶다.”
[숨은 스틸 찾기] <즐거운 인생> 괴로운 현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