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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가 현직에 있을 때 그의 정책들은 마음에 안 들어도 그가 누구처럼 밉상이라는 생각까지는 들지 않았다. 때로는 좀 친근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는데 그에게 투표할 일은 없겠지만 옆집에 산다면 실없는 농담도 던지며 편하게 지내는 이웃이 될 것 같은 느낌이랄까.
유머감각 때문이었다. 이라크 기자의 신발이 얼굴에 날아오는 폭력을 당하고도 신발 사이즈 운운하는 농담이라니, 이 사건을 보고 많은 이들이 통쾌해했지만 솔직히 난 부시가 쪼끔 멋있어 보였다. 부시만의 재기라기보다 서구 정치인들의 그 여유가, 있어 보여서 부러웠다.
노 전 대통령 서거 며칠 뒤 후배와 메신저를 하다가 물었다. ‘대통령일 때 욕만 했는데 왜 이렇게 눈물이 나오는 거지?’ ‘유머가 뭔지 아는 사람이었잖아. 노무현의 최고 매력은 유머감각이었지.’ 맞다. 그 순간 내가 느끼는 상실감의 정체를 간파했다. 여러 번 설파했던 바, 내가 어른의 가장 큰 덕목으로 꼽는 건 바로 유머감각이다. 아무리 바른 소리만 열심히 쏟아내더라도
[김은형의 아저씨의 맛] 별이 졌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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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가는 아니지만 음식 종류에 대한 호불호는 분명한 편이다. 샤브샤브보다는 구워먹는 고기를 택하고, 칼국수보다는 김치찌개를 택하며, 해물찜보다는 생선회를 택한다. 다만 굳이 서울 시내에서 가장 맛있는 고깃집을 찾아 나선다든지, 생선회는 꼭 바닷가에서만 먹자든지 할 생각은 별로 없다. 식탁에 앉기 전까지는 별로 까다롭지 않다는 말이다. 그러다가도 눈앞에 음식이 나타나면 얘기가 좀 달라진다. 그때부터의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주어진 조합을 이용해 최대한 맛있는 식사를 하느냐다.
된장찌개백반을 주문했다고 가정해보자. 일단 아무것도 맛보지 않은 상태에서 무엇을 첫 번째로 입에 넣을 것인지가 문제다. 김이 나는 흰 쌀밥을, 또는 먹음직한 잡곡밥을 기분 좋게 퍼서 덥석 물 수도 있다. 이때 숟가락으로 좀 심하다 싶을 정도의 양을 뜬다면 머슴이 실컷 일을 한 뒤에 게걸스럽게 밥을 먹어치우는 느낌으로 밥맛 좋게 식사를 시작할 지도 모른다. 젓가락으로 소담스럽게 먹는다면 양갓집 마나님이 그러하듯
[나의 길티플레저] 밥 먼저? 찌개 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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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영화제가 시작되면 많은 사람들이 지중해의 부촌으로 몰려든다. 꼭 영화를 보기 위해서는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기자와 영화관계자들이 목에 거는 상영관 입장 카드가 없다. 그래도 그들은 별로 개의치 않는다. 영화광들이야 몇달만 더 기다리면 된다. 대부분의 경쟁부문 상영작은 영화제가 끝나는 순간부터 프랑스 전역의 극장에 걸린다. 영화광이 아닌 현지 사람들은 어차피 영화 따위 그리 중요한 건 아니라는 눈치다. 축제는 축제고, 영화는 영화고, 인생은 인생이니까. C’est La Vie!
<리베라시옹> 5월14일자에는 클레르라는 여자의 이야기가 실렸다. 클레르는 45살의 실업수당 수혜자다. 그녀는 영화제 메인 건물인 팔레의 기념품 매장 주변 화단에서 잠을 잔다. 식사는 교회에서 나눠주는 무료 급식으로 해결한다. 몸은 공중 화장실과 시립 목욕탕에서 씻는다. 그녀는 열렬한 영화광이지만 칸에서 영화를 보는 건 불가능하다. 그래서 매일 배포되는 데일리 매거진에 실린 영화의 스틸
[오픈칼럼] 그것은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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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나먼 쏭바강>을 끝내고 완전히 녹초가 된 박중훈은 장차 처갓집이 될 도쿄의 와이프 집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정말 머릿속은 텅 비어 있었다. 그러다 강우석 형에게서 한번 만나자고 연락이 왔다. <투캅스>라는 형사 버디무비를 한번 해보고 싶다는 거였다. <투캅스>는 그전부터 알고 있었다. <머나먼 쏭바강> 촬영 중 잠시 한국으로 나와서 대종상 시상식에 참석한 적이 있는데, 그때 안성기 선배가 <투캅스>라는 코미디영화를 한다고 하기에 지나가는 말로 “그거 저랑 하면 어울리겠네요”라고 말한 적이 있기 때문. 그러자 성기 형이 “그래? 너 언제 오는데?” 그랬다. 그래서 촬영 때문에 한참 뒤에 올 거라고 하니까 “그럼 안될 거야. 그때쯤이면 이미 촬영도 다 끝났을 거야”, 그렇게 얘기하면서 아쉬움을 남기고 헤어진 작품이었다. 그러면서 <투캅스>에는 최민수가 캐스팅됐고 박중훈은 다시 <머나먼 쏭바강>에 매진했다
[박중훈 스토리 11] 미치도록 쉬려다가, 미치도록 웃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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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이 달린다>에서 조필성(김윤석)이 등을 돌려 저 멀리 걸어나가던 그때였다. 머리끝까지 화가 난 그가 어정쩡한 팔자걸음으로 터벅터벅 뛰는지 걷는지 모를 속도로 후경으로 전진할 때 그가 연루된 어떤 사건과 말들을 넘어 비로소 저 인물의 속성을 들여다본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때의 팔자걸음이 인간 김윤석의 것이기보다 인물 조필성과 베우 김윤석이 만났을 때 생성된 창조력이라고 믿고 싶다. 그러고 나서 영화 속 남자들의 몇 가지 걸음을 쉼없이 나열하고 싶어졌다. 찰리 채플린이 지팡이를 짚고 또각또각 걸어다닐 때 그는 모던함 속 고아라는 느낌을 심어주었다. 그의 상대자 버스터 키튼이 굴러오는 돌에 어쩔 줄 몰라 하며 헤맬 때 위대한 무표정(버스터 키튼의 유명한 별명)의 표정은 그 걸음에서 온다. 도시로 미후네가 적장과 결전을 벌인 뒤 양 소매에 팔짱을 낀 다음 어깨를 씰룩이며 걸어갈 때 그의 걸음은 세상을 등지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걸음걸이는 원래 그의
[정한석의 블랙박스] 그 몸짓의 황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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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많습니다.
<찢겨진 커튼>에서 그로멕을 살해하는 장면은 아주 긴 시퀀스인데, 이에 대해 히치콕은 한 인간을 죽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우며 또 고통스러운지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플롯의 측면에서 죽음이 가지는 의미는 대개 ‘전개의 모티브’가 되는 경우가 많은데, 히치콕의 경우 죽음은 손쉽게 발견되는 반면(과정이 다를 뿐 무게는 동일하다), 홍상수처럼 좀처럼 죽음이 등장할 것 같지 않은 (데뷔작 혹은 꿈-시퀀스 제외) 영화도 존재한다. 감독의 입장에서 ‘죽음’이란 꾸준히 변치 않는 자신만의 색을 가진 독특한 영역이다. 그러니 우리가 어떤 작가를 떠올려 그가 죽음을 다루는 방식을 생각한다면, 이는 의외로 작품해석에 큰 도움이 될지 모른다. 봉준호의 필모그래피에서 죽음은 대개 플롯을 위해 이용당한 경향이 있다. <플란다스의 개>에서의 개의 죽음, <살인의 추억>의 일련의 죽음, 그리고 <괴물> 속 현서의 죽음까지. 그런데 <마더
[영화읽기] 봉준호에 히치콕이 겹쳐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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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코 켜놓은 TV에서 신경을 긁는 뉴스 두 가지가 흘러나왔다. 하나는 스포츠 뉴스에서 야구 경기 결과를 전하며 ‘용병 000’이 어쩌고저쩌고 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외국인의 ‘극악한’ 범죄가 ‘엄청나게’ 증가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이는 아주 일상적이고 전형적인 우리 사회의 제노포비아(xenophobia)를 보여준다. 전자는 외국인은 무조건 라벨링해두어야 한다는 강박증이고 후자는 인구 증가로 범죄율이 증가하는 것만큼 너무 당연한 사실을 그들에게만 과장 적용하는 공포증이다. 국내 외국인 수가 증가할수록 그 층위는 다양해지는데 그중 낮은 곳에 자리잡은 이들 중 하나가 동남아시아에서 온 ‘이주 노동자’들이다. 그들이 우리 사회에 들어온 이후 ‘외국인’이라는 기표는 백인 관광객에게로 더 찰싹 달라붙고 그들의 짙은 살색 위로는 ‘노동자’라는 그림자만이 더 짙게 드리워진 느낌이다. 영화 <로니를 찾아서>는 모르는 척하기에는 우리의 일상으로 너무 많이 들어온 ‘그들’과 ‘우리’가
[영화읽기] 동정하지 말 것, 존중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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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를 봤다. 워낙 스토리텔링이 좋은 감독이 만든 영화라 아무런 생각없이 재미있는 이야기나 즐길 생각으로 극장에 들어갔는데, 머리만 더 복잡해져서 나왔다. 봉준호 감독은 왜 이런 영화를 만들었을까나. 좀 원망스러웠다고나 할까. 영화 속에서 엄마는 마구 달린다. 골목과 골목을, 도로 위를, 벌판을. 그걸 보는데 한 이십년 전쯤이 떠올랐다. 요새 그 시절이 자주 떠오른다. 늙어가는 모양이다. 1988년 무렵이랄까, 팔팔올림픽의 열기로 타오르던 시절이랄까. 그해 늦가을,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나는 자습시간에 몰래 빠져나와 일제시대 때 지은 낡은 학교 건물의, 더이상 사용하지 않는 교실에서 친구와 둘이 라디오를 켜놓고 백담사로 떠나는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한 뉴스를 듣고 있었다. 내 청춘이 언제 시작됐느냐고 묻는다면, 그 뉴스를 들을 때부터라고 대답할 수 있겠다.
전두환 전 대통령에 관한 뉴스를 듣고 난 그 다음해에 나는 대학에 들어갔다. 그러니까 89학번이다. 70년대생
[나의 친구 그의 영화] 엄마, 왜 그렇게 잘 달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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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르시스 지수 ★★★★☆
오리지널리티 지수 ★★★★★
황보령은 15살에 미국으로 떠났다. 1985년이었다. 대학에서는 미술을 전공했다. 1990년의 일이다. 이상은의 <언젠가는>에서 코러스를, <여름밤>을 작사·작곡한 건 1993년이었다. 1집 <<귀가 세 개 달린 곤양이>>를 발표한 건 1998년, 밴드 스맥소프트를 결성하고 2집 <<태양륜>>을 발표한 건 2001년이다. 3집 <<Shines In The Dark>>는 2009년, 두달 전에 나왔다. 그 사이 미술과 음악, 한국과 미국을 내키는 대로 오갔다. 황보령에 대한 단서들이다. 키워드는 알아서 생각하자.
나는 주저없이 이 앨범을 올해의 베스트로 꼽을 생각이다. 이런 이유 때문이다. 사운드의 밀도와 가사의 이미지, 포괄적인 정서와 그걸 받치는 구성이 탄탄하다. 독창적이다. 징그럽게 넘쳐나는 록의 하위 장르들이나 모던 록, 한국 록
[음반] 빡세게 충돌하고 콱 터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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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들이라면 화를 벌컥 내겠지만 플라시보가 지난 20여년간 뭐 대단한 걸 보여줬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2006년 ≪Meds≫는 종종 밴드의 재기작으로 평가받지만 사실상 이 중견 밴드의 뇌사 선고이기도 했다. 진정한 재기를 위해서는 진짜로 강력한 한방이 있어야 했다. 드러머의 교체에 관한 리더 브라이언 몰코의 말마따나 “지루함에서 빠져나와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게 할 누군가가 필요”했다.
새 앨범의 제목은 의미심장하게도 ≪Battle For The Sun≫. 지루한 어둠에서 벗어나자는 소리다. 플라시보는 성공했다. 브라이언 몰코는 어느 때보다도 초기작을 연상시키는, 아니 초기작들보다 더 절묘한 훅으로 가득한 앨범을 만들어냈다. 기본적으로는 언제나 그들이 추구하던 얼터너티브적인 글램록이지만 음산하고 영묘한 기운만 내보이는 게 아니라 귀에 쏙쏙 들어오는 팝의 흥쾌함이 살아넘친다. 플라시보는 오는 8월5일 올림픽홀에서 첫 번째 단독 내한 공연을 갖는다. 괜찮은 앨범을 들고 귀환한 중견의
[음반] 초심으로의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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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은 화염으로 발전한다. 조월의 ≪네가 이곳에서 보게 될 것들≫은 그 화염이 어디로 어떻게 퍼져나가는지 지켜보는 과정 같다. 별의 멤버이자 ‘우리는속옷도생기고여자도늘었다네’(속옷밴드)의 멤버였던 조월의 음악 활동은 1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9년 밴드 진공악단으로부터 시작되는 이 과정은 리버브로 사운드를 강제 확장시킨 뒤 거기서 생긴 공간감을 극대화하는 스타일로 발전했다. 장르 논쟁은 무의미하다. 중요한 건 방법론이 아니라 무드와 그게 환기하는 이미지들이다.
이 앨범은 불편하고 껄끄럽다. 익숙한 멜로디는 금방 분해되고 조각들은 어지럽게 헤매다가 다른 음으로 도약한다. <this is the night> <온도시가불타는꿈> <불꽃놀이>에 이르기까지 방황하는 음표들로 가득하다. 거대한 낙서의 조각을 잘라놓은 부클릿의 이미지도 그렇다. 표지는 뭔가 거대하고 무서운 것의 붉은 눈동자다. 우리가 여기서 본 것은 무엇인가. 어쩌면 우리는 화염
[음반] 방황하는 음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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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는 호숫가에 우두커니 서 있고, 꽃을 든 여인은 사색에 잠긴다. 그 풍경의 유일한 장식물인 무채색 나무들은 가늘고 섬세하다. 재독작가 샌정(senchung)의 그림은 서정이란 단어의 다른 표현이다. 꽃과 여인, 말과 새 등의 유순한 동물들이 종종 등장하는 그의 작품은 분위기만으로 관객을 압도한다. 그 독특한 분위기의 비결은 가볍고 옅은 색깔을 즐겨 사용하는 것인데, 거의 모든 캔버스에서 엿볼 수 있는 연회색과 도화색, 에메랄드색 등의 파스텔 컬러는 샌정 특유의 달콤하고도 몽환적인 그림을 성공적으로 완성시켜준다. 모든 작품이 유화임에도 그보다 무게감이 덜한 수채화를 보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 또한 옅은 컬러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샌정의 국내 여섯 번째 개인전 <wildwood air>는 더욱 깊어진 서정성과 공간에 대한 관심이 인상적인 전시다. ‘미지의 영역’과 ‘친숙하지만 어느 순간 낯설게 다가오는 영역’을 그림에 담아내고 싶었다는 작가는 적어도 ‘낯설게 보이기’에
[전시] 친숙하고도 낯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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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철마다 ‘스페인병’을 앓는다. 이 병은 유럽여행 중이던 2004년 여름 처음으로 발발했다. ‘스페인 강도는 비닐봉지를 머리에 덮어씌우고 목을 졸라 기절시킨 다음 돈을 뺏는다더라’라는, 지금 생각하면 황당무계하기 짝이 없는 여행객의 말 한마디에 스페인행 열차를 덜컥 취소해버렸더랬다. 한국에 돌아오니 스페인 관련 서적은 왜 그렇게 자주 눈에 띄며, 집시풍의 음악은 또 왜 그렇게 감미로운지. 결정타는 바르셀로나가 배경인 영화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였는데, 후안과 비키가 깊은 밤 근사한 야외정원에서 거리 악단의 연주를 듣는 장면에서는 차라리 눈을 질끈 감아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다시 2004년으로 돌아간다 해도 바르셀로나행 기차표를 취소하지 않을지는 미지수다. 변명을 덧붙이자면 그땐 40도에 육박하는 로마의 폭염에 지쳐 있었고, 그보다 더 뜨겁고 건조하다는 스페인으로 떠날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어딘가로 떠나고 싶거나 하지 않은 선택을 돌이킬 때마다 스페인을
[아트&피플] 이국의 형형색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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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의 여행사 ‘소셜투어’는 트레킹 상품을 판매한다. 소셜투어는 포터 자신의 짐을 포함해 20kg이 넘는 짐은 맡기지 않았고,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보험을 들어준다. 일당 500루피는 다른 누구의 손도 거치지 않고 포터에게 직접 전한다. 그리고 여행자들에게 포터들의 인권에 대해 교육한다. 관광객을 위해 현지인들이 저임금에 혹사당하는 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사회적 책임지기의 일환이다. 인권뿐 아니라 환경도 보호 대상이다. 여행자들은 비닐봉지나 1회용 플라스틱 물병 대신 가방과 물통을 가져가야 한다. 불편함을 감수하고 관광객이 얻는 것은 자연을 파괴하고 돌아가는 이방인이 되는 대신 지속 가능한 개발에 일조했다는 만족감이다.
<희망을 여행하라>는 ‘공정여행’에 대한 책이다. 이 책에서는 공정여행을 ‘여행에서 만나는 이들의 삶과 문화를 존중하고 내가 여행에서 쓴 돈이 그들의 삶에 보탬이 되고, 그곳의 자연을 지켜주는 여행’으로 정의한다. 스페인에서 쿠바, 아프가니스탄에 이르기까
[도서] 함께 행복해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