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석할 수 없는 두 집단이 만났다.”
지난 1월15일, ‘영화 저작권 침해 방지와 온라인 부가시장 확립을 위한 기자회견’에서 이준동 제작가협회 부회장이 한 말이다. 이날 기자회견은 영화제작가협회(이하 제협)와 웹하드 업체의 연합체인 디지털콘텐츠네트워크협회(DCNA)가 “이제부터 공생의 길을 가기 위한 초석을 마련하겠다”고 만든 자리였다.
영화인들은 그동안 한국영화의 수익률을 논하는 자리면 언제나 “지금 영화수익의 80%가 극장수입에 의존하고 있다”는 설명을 붙였고, 그때마다 부가판권시장이 죽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고 영화인들은 부가판권시장을 죽인 범인이 온갖 불법복제파일을 빨아들인 뒤 돈을 받고 내뱉는 웹하드라고 했으니 이준동 부회장의 말이 과장은 아닐 것이다. 물론 웹하드가 영화계와 공생의 길을 찾게 된 배경에는 분명 더이상 불법파일을 방치해서는 잘살아갈 수 없을 것이란 두려움이 있다. 사정이야 어찌됐건, 두 집단이 동석한 것은 영화계나 IT업계로서나 긍정적인 미래를 기대
[강병진의 영화판.판.판] 웹하드보다 더 먼 CJ
-
스타는 잊어라! 지난 1월11일 미국 LA 베버리 힐튼 호텔에서 열린 66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은 작정이나 한 듯 예상치 못한 결과를 한꺼번에 쏟아냈습니다.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음악상 4개 부문을 수상하며 <슬럼독 밀리어네어>가 잊혀진 대니 보일을 불러내더니, 그동안 시상식과는 인연이 없었던 배우 케이트 윈슬럿에게 여우주연상(<레볼루셔너리 로드>)을 안겨주더군요. 이번이 그녀에겐 벌써 6번째 도전이었죠. 앞서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로 여우조연상을 수상하면서 ‘이번에도 상복이 없군’ 하고 체념했던 그녀가 유력 후보로 지목된 안젤리나 졸리의 담담한 표정이 잡히는 가운데 주연상을 거머쥐는 모습은 영화의 한 장면 같았습니다. 미키 루크의 남우주연상(<레슬러>) 역시 휴먼드라마로 만들어도 손색없을 광경이었죠. 알코올중독과 성형 구설수에 오른 루크 자신의 재기는 퇴물 취급을 받는 왕년의 레슬러를 그린 영화의 감동과 겹치면서 환호를 자아냈
[월드액션] 스타들 물 잔뜩 먹인 골든글로브
-
성룡이 가라테 전도사로 나선다. 성룡은 동명의 1984년 영화를 리메이크하는 작품 <가라테 키드>에 출연한다. 그가 맡을 역할은 가라테 스승 미야기씨. <가라테 키드>는 가라테 스승과 제자 사이의 관계를 다룬 이야기로 1984년 1편이 만들어지기 시작해 1988년 3편까지 나온 인기 시리즈물이다. 성룡의 제자로는 윌 스미스의 아들 제이든 스미스가 출연하며 영화는 중국과 미국을 오가면서 촬영할 예정이다. 그리스 머피가 각본을 맡았다.
중국의 국민스타 성룡이 가라테에 몸을 맡겼다면 한국의 대표배우 한석규는 살인사건에 매달린다. 한석규는 손예진과 고수의 캐스팅이 이미 확정된 영화 <백야행: 하얀 어둠 속을 걷다>에서 형사로 출연한다. <백야행…>는 어린 시절 어쩔 수 없이 살인을 저지른 두 남녀가 어둠과 절망 속에서 15년간을 살아가는 이야기. 한석규는 이 두 남녀를 15년간 뒤쫓는 형사 한동수를 연기한다. 2월 촬영을 시작할 예정이다.
[캐스팅] 한석규 外
-
<추격자> 열풍 때문일까요. 영화진흥위원회의 ‘2008년 영화 소비자 조사’에 따르면, 범죄, 수사, 추리, 스릴러 장르에 대한 관객 선호도는 2007년에 비해 3% 증가했습니다. 매년 수위를 유지했던 액션 장르에 대한 선호도 또한 2.9% 늘어났습니다. 반면 코미디, 멜로 장르에 대한 관객의 선호도는 전년에 비해 소폭 하락했네요. 남성의 경우 24살에서 29살의 관객이 극장을 방문한 횟수가 가장 많았으며, 여성은 19살에서 23살의 관객이 흥행의 주력 부대임을 증명했습니다. 예년의 극장 영화 관람률과 비교할 때 연령대별 선호도는 그닥 큰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다만, 취업의 높은 문턱 앞에서도 24∼29살의 남성 관객은 꾸준히 극장을 찾는군요. 영화 관람이 그나마 주머니 부담이 덜해서일까요. 한편 관람 영화 선정시 관객은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얻는다고 답했습니다. 2007년에 비해 무려 11.1%가 증가했습니다. 반면, 입소문은 9.7% 감소했습니다. 아마도 인터넷이 입
[에누리 & 자투리] 100년 넘은 단성사가 돌아왔어요
-
-
영화명: <볼륨을 높여라>(1990)
관람자: 미네르바
“가난한 사람은 가난하게, 부자들은 부유한 채/ 그렇게 흘러가는 법이지/ 모두가 알고 있어/ 보트가 새고 있다는 걸 모두 알아/ 선장이 거짓말한다는 것도 알아.”
매일 밤 10시, 레오나드 코헨의 <Everybody Knows>가 흘러나오면 DJ 해리의 해적방송이 시작되고, 애리조나주 작은 마을의 10대들은 심장을 조이는 듯한 흥분에 사로잡힌다. 학교와 부모와 사회와 불화하는 청춘들의 심정을 대변하던 해리의 해적 방송은 학교당국과 경찰의 분노를 사게 되고, 결국 해리는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체포된다. 그의 마지막 말. “Talk Hard!”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해리의 뒤를 따라 다른 아이들도 개인 방송을 시작한다. 애리조나주 전체에 “거기 누구 있나요? 나와 얘기해요”라는 목소리들이 울려퍼진다.
미네르바씨, “나는 일개 블로거일 뿐”이라고 억지로 겸손해질 것 없다. 정부조차 쉬쉬하며 감
[시사 티켓] 겸손해지지 마
-
최지은씨는 최근 <한겨레21> 칼럼에서 막장드라마에 명품드라마라는 역설적 애칭이 붙은 이유를 설명하면서 “이젠 화낼 기운조차 없고 아무리 화내고 욕해도 달라지는 게 없는 현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려)는 태도”라고 분석했다. 거 참, 마음에 든다. 그러니까 우리 육체적, 정신적 서바이벌을 위해 (먹고사는) 애로는 에로로, (권력 주변의) 노망은 로망으로 봐주자고. 하하하 하하하 근데 왜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나냐.
화내고 욕하고 체념하고 비꼬고 급기야 즐기는 것도 사실 살아남았을 때 하는 짓이다. 난 인간은 대체로 선하다고 여기지만, 드라마건 현실이건 정말 악마 혹은 악마적 아우라가 넘치는 인간(집단)도 있는 것 같다. <꽃보다 남자>의 부잣집 애들, 가자지구를 초토화한 이스라엘 군정 같은.
내 세대는 어릴 때부터 친이스라엘 교육을 받았다. 애들 교육을 어떻게 시켜서 천재가 많다느니, 생산 공동체가 얼마나 획기적이라느니, 전쟁이 나면 각지에 흩어져 살던
[오마이이슈] 악마의 혀
-
날 좋아하는 것도 아닌 남자가 일종의 ‘패키지’ 술자리를 집요하게 제안하는 일이 있다. “출장 같이 갔던 사람들끼리 한번 볼까요?” “여행가서 만난 사람들끼리 뒤풀이 어때요?” 십중팔구 그 일행 중 누구에게 꽂혀서 그런다. 대놓고 둘이 만나자고 하면 너무 속들여다보이는 것 같아 저어되니 일단 분위기 파악 좀 해보겠다는 심산이다. 그런 자리를 성사시키는 재능이 있는 건 언제나 긴장감없는 몸매에 적당히 웃기는 재주가 있는 나(어느 모임에서나 이런 역할을 누군가는 하게 된다). 나에게 관심이 없다 해도 내 주변의 누군가에게 접근하기 위해서는 나에게 연락을 하고 친절하게 대하는 게 나름 효과적인 전략이라는 말이다. 그 과정에서 가끔 내 눈이 돌아서 그 남자에게 빠져버린다는 사실은 논외로 하고.
그래서 머리 좀 쓴다 하는 남자들은 쿨한 척 매너 좋은 척 마음에 둔 여자 주변 사람들에게 고르게 예의를 차리곤 한다. 아주 기본적인 작업 방식이다. 토머스 하디의 <테스>에 보면 클레
[이다혜의 작업의순간] 꽃을 따려면 꽃밭에 물을 줘라
-
약속시간 2시를 어느덧 20분이나 넘기고 있었다. 급한 마음에 평소에 타지도 않던 택시를 타고 논현동 어귀에 내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벌겋고 노랗게 쓰인 현란한 각종 선녀보살 간판들이 즐비했다. 내가 찾은 곳은 그중 허름한 원룸이 켜켜이 들어앉은 한 건물의 이층 입구 집이었다. 띠리띠리 띠리띠리디~ 단음의 <엘리제를 위하여> 초인종과 함께 이십대 초반의 앳된 얼굴이 나를 맞았다. 화려한 무복을 입고 있을 것이란 예상과 달리 분홍색이 섞인 쥐색 트레이닝복 차림이었다. 늦어서 죄송하다는 나의 다소 격앙된 사과와 달리 엘리제는 무표정의 차분한 어투로 불상이 모셔진 방으로 나를 안내했다.
“어디서 오셨소?” 나는 어디서 소개받고 왔느냐고 묻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녀의 시선은 내 옆을 향하고 있었다. “친가에서 오셨소?” “네?” 내가 되물었지만 마치 뒤에서 누군가 그녀의 뒷머리를 잡아당기듯 머리가 뒤로 젖혀지며 연방 눈을 깜빡거리기 시작했다. ‘아 저런 거구나. 귀신 들릴
[나의 길티플레저] 작부귀신은 배우가 되고 싶었던 거야
-
술자리에서 농담 삼아 말한 적이 있는 얘기다. 깊은 밤 심심할 때면 개인 블로그의 유입 키워드 통계를 보곤 하는데, 뜬금없게도 ‘외숙모 & 섹스’라는 키워드를 접했다. 외숙모에 대한 이야기를 쓴 포스트와 다른 글에서의 ‘섹스’라는 키워드가 동시에 검색 결과로 추출된 모양이다. 그러고보니 민망한 검색어로 호기심을 채우는 동지들이 세상에 여럿 있다는 생각에 외롭지 않은 기분도 든다. 그런데 나를 가장 낯뜨겁게 한 검색어는 ‘씨네21 안현진’이었다. 도대체 누가 내 이름을 ‘씨네21’과 함께 넣고 검색을 했을까, 나 말고.
‘Googling Myself’라는 영어표현이 있을 정도로, 검색창에 제 이름을 넣는 것은 흔한 일이다. 과거에 C선배가 자기소개 대신 “구글에 내 이름 넣어봐”라고 했을 때 뜨악했던 기분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지만, 나도 종종 내 이름을 넣곤 한다. 하지만 다른 이가 내 이름으로 검색을 하는 일은 유명인이 아니고서야 흔치 않은 일. 신기한 마음에 그 링크를
[오픈칼럼] 검색 기사 추가요
-
가파르게 다가서는 벽은 숨통을 죈다. 모퉁이 없이 사방이 툭 터진 공간에 나서면 불안하다. 우리는 적당히 숨고 이따금 드러나기를 원한다. 활개치기를 열망하다가도 이내 기댈 곳을 찾는다. 벽은 우리를 보호하는 동시에 막아선다. 상반된 두 욕망의 긴장을 잘 해결한 건축만큼 아름다운 구조물도 없다. 폐소공포증과 광장공포증 사이에서 뒤척이는 우리의 일생은, 각자에게 맞춤하게 반투명한 벽을 찾아 헤매는 여정이 아닐까? 에두아르 뷔야르(1868~1940)는 네벽으로 둘러싸인 실내에서 가장 행복한 화가였다. 평생 독신인 채 어머니와 살았는데 드레스 짓는 어머니의 일 덕택에 집 안에는 옷감과 레이스가 흐드러졌다. 과연 뷔야르가 묘사하는 벽지와 식탁보의 무늬는 인물을 삼킬 듯 강렬하다. 그는 아마 양탄자와 커튼의 사방무늬를 헤아리며 자신을 포위한 세계를 더듬기 시작한 소년이었을 것이다. 정적이고 내성적인 삶이었지만 뷔야르가 고독한 인간이었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그는 친밀한 소수의 친구와 가족으로
[김혜리의 그림과 그림자] 고립과 대결하는 전술
-
의자가 내게 말을 건 뒤로, 내가 맨 처음 행동에 옮긴 것은 보험을 해약하는 일이었다. “살아야 할 오늘은 있어도 대비할 미래란 없다”는 사실도 사람 아닌 어떤 존재와의 대화를 통해서 깨달았기 때문이다. 적지 않은 보험금을 찾아서 어떻게 했느냐 하면, 쇼핑백에 현찰로 담은 다음, 피시방에 가서 원없이 게임을 하고, 낮에는 순두부와 자장면, 볶음밥, 라면, 김밥 등등 분식집 메뉴판에 적힌 모든 메뉴를 번갈아가며, 밤에는 치킨과 생맥주를 시켜먹으면서 한푼도 안 남기고 다 썼다.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돈이란, 현대의 주술사들이 특별한 주문을 걸어놓은 종이에 불과한 것으로, 그것의 본질이 나무임을 아는 순간, 그 주술의 힘은 사라지는 것이었으므로.
빚진 것은 다 떼어먹었다. 내가 무언가를 빚내는 그 순간, 그래서 빚진 사람이 되는 그 순간, 사실은 빚을 다 갚은 셈이라는 우주의 수학도 깨우쳤기 때문이다. 이건 그저 숫자놀음에 불과한 자본주의 수학이나 경제학에서는 절대로 가르쳐주지 않는
[최보은의 돈워리 비해피] 나는 게임상의 캐릭터였다
-
소문과 달리, 제목과는 더더욱 달리 <쌍화점>에는 불타오르는 것이 별로 없다. 원래 고려가요에 등장하는 쌍화점도 만두 파는 가게이니…(‘만둣집- 쌍화점- 에 만두 사러 갔더니만 회회 아비 내 손목을 쥐더이다). 고려시대를 재현한 듯한 의상과 세트는 인도의 어느 대도시, 예컨대 뭄바이 등에 들어선 중국 식당처럼 키치하고, 여배우는 일부러 그렇게 캐스팅했는지 특별히 나쁘지는 않은데 모든 면에서 밋밋하다. 액션 안무는 괜찮은데, 정사신 액션 안무는 동성간일 때는 키스에 집중하고(하품 유발!), 이성애간 장면에서는 구태의연하고 억지스럽다. <색, 계>의 기기묘묘한 정사신에 대한 액션적 안무 이후 유사한 장면들은 사실 그 영화와 불가피하게 대조, 대비된다. 그러니 역부족이다.
본격적 게이 섹스는 없었다
<쌍화점>에서 내 시선을 잡은 것은 주진모(고려 왕)가 소년 때부터 조련한 친위부대 건룡위의 호위 수장 무사 조인성(홍림)과의 어딘지 퀴어하다기보다 강압적,
[전영객잔] 야오이로선 함량미달, 폭력은 과잉
-
<쌍화점>의 오프닝 시퀀스를 기억하는가. 영화는 충에 대해 묻는 어린 시절의 왕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몇몇 소년이 이에 대해 답한 이후, 똘망똘망한 눈빛의 소년이 충이란 왕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이라 답한다. 그리고 왕은 늦은 밤 건륭위 숙소에 들러 이불 바깥으로 나온 그 소년의 ‘가녀린 발목’을 덮어준다. 그것도 에로틱하게. <쌍화점>이 ‘충’에 대한 질문과 답으로 시작해 ‘애정’에 대한 질문과 답으로 끝맺는 영화라는 점을 고려할 때, 이 오프닝 시퀀스는 무척 섬세하게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내게 이 오프닝 시퀀스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 구성 방식이 아니라 이를 종결하는 미닫이문의 닫힘이다.
욕망을 포착하는 미닫이문의 움직임
표면적으로 보자면, 미닫이문의 닫힘은 시간의 비약을 위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난 문이 닫히는 그 순간이 무척 관능적이라고 느꼈다. 이는 미닫이문이 닫힌 이후 생략된 시간에 어떠한 사건이 감춰져 있는지 유추할 수 있도록 시
[영화읽기] 섹스에 압도당한 역사의 관능
-
한달쯤 전인가, 모 영화인이 영화진흥위원회의 지원책에 대해 던진 코멘트를 봤다. ‘말기 암환자에게 항암제가 아니라 진통제를 투여하’고 있다고. 근원적인 해결책이 아니라 미봉책만 선사하고 있다는 말이었지만, 나는 그 말에서 뭔가 묘한 생각이 들었다. 말기 암환자라면 항암제보다 호스피스가 필요한 것은 아닐까, 라고. 한국영화가 그냥 팍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아니다. 엉뚱한 항암제를 맞고 부작용에 시달리느니 평화로운 죽음이 낫지 않을까 하는 정도다. 한국영화가 암에 걸렸다면서, 정작 어떤 암인지는 잘 모르는 것 같아서. 이미 2007년 초부터 위기라고 떠들어댔는데 그동안 영화계에서는 어떤 대응을 한 것일까? 이유도 정확히 모르고, 해결책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그냥 돈만 퍼부으면 과연 한국영화산업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아니 그보다 영화산업에 공공의 돈을 투자하는 것은 과연 바람직한 일일까?
상업영화에 대한 공공지원을 반대함
1997년 금융위기 때 국가에서 은행이나 기업
[김봉석의 독설] 한국영화의 위기는 영화인 책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