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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모메식당, 정말 고마웠습니다.”
지난주, 회사로 온 편지 한통을 받고 어리둥절했다. 한겨레교육문화센터에서 강의를 하며 알게 된 20대 중반의 여자후배였다. 서울에서 출판사를 다니는 줄 알았는데 편지의 발신지는 남쪽 지방의 도시였다. 함께 동봉한 책에는 올해 신춘문예에 입상한 자신의 희곡 작품도 실려 있었다. 한데 카모메식당이라니…. 편지를 읽으며 과거를 더듬자 새까맣게 잊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맞다. 내가 그 영화를 보라 했었지.
그녀를 마지막으로 본 건 2007년 12월의 어느 토요일, 한 대형서점에서였다. 책을 사러 갔다가 우연히 마주쳤다. “커피나 한잔 하자”고 해서 30여분간 이야기를 나눴다. 그녀는 뭔가 서성이는 느낌이었다. 낮 12시경이었는데, 오후에 뭐할 거냐고 묻자 머뭇거렸다. 뚜렷한 스케줄이 없다고 했다. 나는 “혼자 처량하겠지만, 심심하면 극장에 가서 영화나 보라”고 반농담식으로 말했다. 그러면서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카모메식당>이 재미있다고
[에디토리얼] 예측불허의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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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 추기경은 ‘히어로’처럼 보인다.
따뜻한 손길로 20세기 한국 현대사와 종교계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해왔고 그만큼 대중으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김 추기경의 선종 3일째인 2월18일, 빈소가 마련된 명동성당 일대는 조문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2월19일까지 그 수가 10만명에 이르렀다. 이 구름 같은 추모인파는 무엇을 말해주는 것일까.
이명박 대통령 취임 이후 사회적 약자는 무자비한 대접을 받고 있다. 정부의 손길은 따뜻하기는커녕 잔인하다. 용산 참사는 그 상징적 사건이다. 함께 사는 세상을 향한 희망은 희미해져만 간다. 야당도 불신의 도마에 오르기는 마찬가지다. 그래서 더더욱 간절하게 추기경이 그리운지도 모른다.
[shoot] 그가 그리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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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때 일이다. 친구 하나가 이상한 일이 있었다고 했다. 아빠 친구가 인형을 준다고 해서 아저씨 집으로 따라갔는데, 집에 들어가자마자 엄마가 어떻게 알았는지 문을 쾅쾅 두드리고 소리를 지르더니 자기를 끌고 나왔다는 거다. ‘나쁜 짓’을 하는 ‘나쁜 아저씨’라고 엄마가 설명했다는데, 나쁜 짓이 뭐냐고 물었더니 “나쁜 짓이라면 나쁜 짓인 줄 알아!”라고 윽박지르더라며 투덜거렸다. 우리는 놓친 인형을 아까워했다. 그 사건의 의미를 깨달은 건 고등학교에 가서였다.
이혜진, 우예슬양 사건의 범인은 검거된 직후, 귀엽다고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는데 아이들이 반항해 죽였다고 했다. 범인의 집은 높은 언덕에 있는 데다가 계단도 가팔라 아이를 둘이나 ‘강제로’ 끌고 올라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검찰의 수사 결과 범인이 “강아지가 아픈데 돌봐주겠니?”라고 아이들을 유인했다고 실토했다. 강아지를 핑계로 아이들을 유인하는 건 유괴범과 아동 성범죄자들의 공통된 특징이라고 한다. 아이가 무엇을
[이다혜의 작업의 순간] 나쁜 아저씨에 대항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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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주의 시작인 월요일 밤부터 난 남몰래 갈등한다. 내가 좋아하는 유재석과 멋진 여자 김원희의 <유재석 김원희의 놀러와>를 볼 것이냐, 강호동과 그의 친구들은 물론 완전 소중한 아저씨 최양락의 합류로 시작된 <야심만만2>를 볼 것이냐. 뭔 같지도 않은 고민이라고들 비웃겠지만 난 그렇다.
그뿐이 아니다. 좀 시들해지긴 했으나 화요일엔 <상상플러스>를 수요일엔 알토란 같은 재미의 <황금어장>을 목요일엔 편하고 사랑스러운 <해피투게더>를 꼭꼭 챙겨본다. 웃겨주는 프로그램 보기가 취미이며 그것들을 되도록이면 실시간으로 봐야만 찜찜하지 않을 정도의 마니아다. 얼마 전까지도 좋아하는 프로그램 본방 사수를 위해 주말엔 외출을 삼갔을 정도니 어디 가서 자랑 삼긴 참 부끄러운 취미를 가진 셈이다. 아침잠을 포기하더라도 일요일 오전 9시에 성당을 다녀오는 이유는 3개 방송사의 저녁 오락 프로들을 봐야 하기 때문이다. 아줌마들의 거침없는 수다판 &
[나의 길티플레저] ‘텔레걸’은 곗돈을 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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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람쥐 쳇바퀴 같은 업무가 주를 이루는 온라인팀에 최근 신나는 일이 생겼다. Cine21 Japan 사이트를 만들기로 한 것이다. cine21.co.jp라는 도메인으로 오는 4월1일 오픈을 앞둔 cine21 Japan은, 영화를 중심으로 드라마·쇼·오락 프로그램 등 다양한 한국 대중문화를 일본어로 번역해 소개할 예정이다. 1년여 넘게 준비기간을 가져오던 이 프로젝트가 전격적으로 성사되면서 온라인팀은 무척 들떠 있다. 왜일까?
첫째, 우리는 사이트 만들기를 좋아한다
영화 좋아하고 <씨네21> 좋아해서 모인 온라인팀이지만, 우리의 업무 수행 DNA를 반분하는 특성은 인터넷, 그리고 웹사이트다. 돈과 시간이 허락한다면 사이트를 끝없이 만들고 바꾸고 개선하려는 본능을 갖고 있다. 그런 우리에게 cine21 Japan 사이트는 다른 걸 다 떠나서 본능 충족의 호재다.
둘째, 돈을 벌고 싶다
플래시 동영상 사이트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엠앤캐스트(mncast.com)가
[오픈칼럼] 야호! Cine21 Ja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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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기 위해 마시고, 기념하기 위해 마신다. 스스로를 치하하려 마시고, 벌하려고 마신다. 타인과 어울리기 위해 마시고, 철저히 혼자가 되고 싶어서 마신다. 우리는 수천의 핑계를 싸들고 술에 투항한다. 그림 속 남자는 혼자다. 어쩌면 친구들과 어울린 거나한 술자리를 파한 뒤 집으로 돌아와 마지막 한병의 마개를 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독대했던 술병마저 붉은 피를 흘리며 쓰러져, 남자는 마침내 완벽히 혼자가 되었다. 알코올은 육신을 마비시키고 의식을 펌프질한다는 속설을 확인하듯, 사내는 몸뚱이가 없고 머리만 있다. 주름이 고랑을 판 이마, 수염 그루터기가 까칠한 턱, 그의 얼굴에는 입이 없다. 커다랗게 열린 외눈만이 징그럽도록 부릅뜬 의식을 증명한다. 남자는, 화가다. 갓도 없이 늘어진 백열전구가 초라한 붓 한 자루와 그보다 더 미력해 보이는 책에 빛을 떨구고 있다. 필립 거스톤의 <머리와 술병>은, 그가 사랑했다는 화가 조르지오 데 키리코의 작품과 더불어, 내가 아는
[김혜리의 그림과 그림자] 외설적인 고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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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제의 부품으로서의 내가 모범생이 아니었던 탓에 치욕과 모멸을 수시로 감당해야 했었다면, 그 강고해 보이던 체제가 알고 보니 워쇼스키 형제가 마치 우주의 계시를 받기라도 한 것처럼 적확히 묘사한 가상현실, 매트릭스에 다름 아닌 것을 깨달은 것도, 모범생이 아니었던 덕분이었다. 우리 대부분은 우리가 사는 세상이 부조리하고 비이성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고 생각한다. 또는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웬만큼 모범생이면 부조리한 와중에서도 대충은 꿰어맞추면서 살아갈 수 있다. 내게는 그 능력이 없었다. 나는 늘 돌출했고, 손가락질당했으며, 그럼으로써 체제와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남들을 불편하게 했다. 그 대가로 나는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칭찬이라는 영양소를 거의 섭취하지 못한 채 나날이 존재의 낭떠러지로 몰려갔다. 그러니까 네오의 몸속에 내장된 칩은 트리니티가 꺼내주었지만, 내 몸속의 칩은 내 살이 토해낸 것이나 마찬가지였을라나.
어쨌
[최보은의 돈워리 비해피] 가짜인데 맛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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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에 세워져 50여년을 이어져왔으나 지금은 허물어지는 군수공장 팩토리 420의 마지막 시간. 그러나 그것을 허물고 들어설 현대식 주거지 24시티가 아직 완전하게 들어서기 이전의 시간. 그 흔한 말처럼 과거의 것이 사라졌지만 아직 새것은 오지 않은 불확정적인 이행의 시간. 지아장커의 <24시티>는 강제로 생겨난 그 이행의 시공간과 그곳의 사람들에게 카메라를 댄다.
이 영화 <24시티>에 관해서는 허문영이 <씨네21> 689호 전영객잔을 통해 이미 한 차례 썼다. 그가 해낸 풍요로운 서술 이상으로 내가 이 영화에 더 할 일은 없을 것이다. 한 가지 바람이라면 그가 말한 이 영화의 위대함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일종의 첨언을 해보는 것이다. 그게 이 영화를 볼 때 느껴지는 모호함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태도일 거라 짐작하며 <24시티>는 그런 식의 대화가 멈추어서는 안된다는 걸 실로 요구하는 영화인 것 같다.
안과 밖으로 이어지는 상호작
[전영객잔] ‘인민의 초상’ 넘어선 ‘인민의 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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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술>을 지지하는 자들은 대개 두 가지 견해를 나눈다. 하나는 서사적 흡입력이 영화적 결함을 충분히 보상하고도 남을 만큼 뛰어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 영화가 초저예산으로 만들어졌음에도 ‘독립영화 같지 않다’는 것이다. 감독 혼자서 각본, 연출, 편집, 음악, 미술을 다 해냈으며, 조명이 없어서 낮에만 촬영을 했고 심지어 기술적 미숙함으로 포커스조차 맞추지 못했다는 고백은 <낮술>의 영화적 취약성에 대한 비평으로 이어지는 대신, 호기로운 감독의 호기로운 서사를 강조하는 데 오히려 효과적인 요소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아무튼 위의 두 논지가 흥미로운 건 이들이 최근 한국영화의 경향에 대한 전반적인 불신의 지점을 거꾸로 지시하기 때문인데, <낮술>에 대한 관심의 급증은 이 영화가 그 양쪽의 불만을 적절한 수준에서 충족시켜주는 데서 기인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를테면 전자의 견해는 자본으로 무장하고 기술력으로 승부하는 일련의 상업영화들이 서사적으로 실
[영화읽기] 중산층 피터팬을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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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개봉영화 흥행 1위가 685만명을 동원한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에서 <과속스캔들>로 넘어갔다. <과속스캔들>은 800만명을 넘어 한국영화 흥행기록 7위에도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사실 <과속스캔들>이 흥행가도를 달리기 전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 2008년 관객동원 1위라는 뉴스를 들으면서 기분이 묘했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에 대한 영화적 평가는 아니다. 다만 제작사에 거의 수익을 남겨주지 못한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 한해의 흥행 1위를 차지했다는 것은, 한국의 영화산업 시스템에 어딘가 결함이 있다는 생각을 들게 했다. 한국의 영화산업, 시장이 뭔가 뒤틀려 있는 것은 아닐까….
한국영화시장이 좁다는 이야기는 예전부터 있었다. 그래서 100억원 이상의 제작비를 들이는 블록버스터를 만들려면 필연적으로 해외시장을 겨냥해야만 하고, 해외 합작도 적
[김봉석의 독설] 작가주의 좀 그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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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 올라탄 비행기에서 J(이 호칭이 좀 낫네)는 젊은 시절 밤새 동시상영관에서 세편의 영화를 보고 나와 토스트(씩이나!)를 먹으며 출근길의 직장인들에게 부끄러움을 느낀 일을 애잔하게 떠올렸던 모양이다. <상실의 시대>의, 중년이 된 와타나베처럼. 우리도 벌써 중년이로구나. 이제 텅 빈 버스(아무래도 출근길의 반대 방향이니까)를 타고 쓸쓸히 돌아가는 일 따위는 할 수 없게 됐구나. 이럴 때, 나는 상실을 느낀다. 상실이라고 말하니, 내게도 출근길에 얽힌 추억이 떠오른다. 무려 나오코와 미도리 사이에서 청춘을 잃어버리고 방황하던 일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공짜술 잘 마셨는데 내 책은 어디로…
그 시절, 그러니까 1995년 무렵에는 너나 할 것 없이 할 일이 없었다. 할 일이 없으니, 또 너나 할 것 없이 비평가였다. 책이면 책, 영화면 영화, 인간이면 인간, 걸리는 족족 서슴없이 “쓰레기”라는 평가가 나왔다. 청년실업이란 이처럼 무서운 것이다. 친구들이 술 마시러
[나의 친구 그의 영화] 아침에 맥주 들고 버스 타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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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이번에 떴다고 맘 변하면 큰일 난다.”
요즘 박재웅은 친구들에게 이런 당부를 듣느라 바쁘다. 큰 기대 안 하고 하던 대로 했던 <작전>이 입소문을 타고, 또 박재웅이 맡은 독가스파의 막내 ‘덕상’이 관객의 호응을 얻으면서 그 역시 화제의 급물살에 끼어들었기 때문이다. 박용하, 박희순, 김민정 등 탄탄한 주연들 사이에서 박재웅은 연방 ‘귀엽다’는 관객의 탄성을 자아내며 제 몫을 톡톡히 챙기고 있다. 기존의 조폭 부하처럼 보스에게 아부하는 일은 금물, 무표정 무반응으로 일관하는 순진한 시골청년 부하는 생전 보지 못한 조폭 부하의 새로운 상임에 틀림없다.
핑크 셔츠에 깜찍한 보타이 차림으로 스튜디오에 들어서며 “너무 많이 좋아해주셔서 얼떨떨해요”라며 수줍게 웃는 박재웅의 모습만 보면, 이 남자가 키 178.8㎝, 110㎏의 거구임이 선뜻 와닿지 않는다. 지금은 덕상이를 위해 10㎏의 체중 보태기를 한 상태. 몸무게는 그에게 연기생활의 희비를 맛보게 한 징검다리다.
[박재웅] 하루아침 꿈이 아니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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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브롱크스의 성 니콜라스 교구학교에는 모든 면에서 완전히 상반된 두 사람이 있다. ‘걸레는 빨아도 걸레’라는 신념으로 사는 알로이시스 교장 수녀(메릴 스트립)와 ‘사랑으로 모든 걸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의 플린 신부(필립 세이무어 호프먼). 영화 <다우트>는 두 사람이 등장하는 장면의 극적 대비를 통해 도저히 화해할 수 없는 둘 사이의 간극을 보여준다. 와인과 음악, 농담이 넘치는 신부의 저녁 테이블과 우유와 냉기, 침묵뿐인 수녀의 테이블은 같은 시간에 배치되어 있다. 차에 설탕 세개를 넣는 신부와 그게 못마땅한 수녀의 불평 역시 한 공간에 놓여 있다. 신부와 수녀라는 특별한 상황 때문에 둘의 캐릭터를 옷이나 장신구로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은 요원하다. 그래서 작가가 택한 건 안경과 손톱이다.
플린 신부는 사제복 소매 아래로 손톱을 기르고 알로이시스 수녀는 머리카락 한올 보이지 않게 꽁꽁 싸맨 수도복 사이로 안경만 반짝 빛난다. 보수와 진보, 공격과 방어, 이상
[그 액세서리] 안경 너머 무시무시한 강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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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기다리는 이들이 얄미워서일까. 겨울이 발악이라도 하듯 매서운 기운을 쏟아내니, 며칠 따뜻한 날씨에 적응했던 약삭빠른 몸이 벌벌 떤다. 예전보다 그리 춥지 않은 겨울이지만, 그래도 겨울 추위는 지겹다. 야외촬영장에서 밤을 꼬박 새워야 하는 내 처지에선 특히 더 그렇다. 남보다 더 빨리 봄을 보고 싶은 마음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그 길로 차를 몰았다. 남쪽으로 달리고 또 달려 반도의 끝자락 강진 땅을 찾아갔다. 해남 땅끝 마을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강진은 보성이나 완도만큼이나 아름다운 곳이다.
남해를 품은 고깔 모양의 강진만 앞바다에는 여러 개의 작은 섬들이 그림처럼 수놓아져 있다. 남해와 맞닿은 매끈한 개펄을 미끄러져 들어가면 작은 섬들에 금방이라도 닿을 것 같고, 그 섬 너머로 다시 육지가 보인다. 외지인들에게 바다에 떠 있는 것이 섬인지 육지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선경을 만들어 보이기도 한다.
영화 속의 그곳은 양어장으로 변신
강진의 벌판에는 유난히 청보리가 많
[기어코 찾아낸 풍경] ‘치유의 바람소리’가 들릴 듯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