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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발튀스(1908~2001)는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이 그랬듯 자신의 그림 속으로 슬쩍 잠입해 들어가는 습관이 있었다. 작품 속을 미행(微行)할 때 발튀스는 관람자를 향해 등을 돌린 포즈를 즐겨 취했다. 둥근 뒤통수와 작대기 같은 몸매를 한 화면 속 화가는 최대한 개성을 삭제한 ‘행인1’에 가까웠다. 드물게도, 발튀스의 얼굴이 정면을 드러낸 채 다른 인물들과 섞여 있는 작품이 있으니 <캐시의 몸단장>이다. 발튀스는 여기서 에밀리 브론테가 낳은 불덩이 같은 로맨스 <폭풍의 언덕> 제8장의 한 장면을 그린다. 진줏빛을 발하는 나신에 가운을 걸친 금발의 여인은 캐서린 언쇼, 다리를 꼬고 앉은 어두운 안색의 사내는 히스클리프이며 캐시의 머리를 빗겨주는 여성은 소설의 화자 역을 맡은 하녀 넬리 딘이 분명하다. 화가 본인은 의식적 선택이 아니었다고 부인한 바 있으나 <캐시의 몸단장> 속 히스클리프의 얼굴은 날카로운 눈매와 짙은 피부색, 옷 입은 취향까지 발튀스
[김혜리의 그림과 그림자] 이별하지 않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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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팝툰>의 이 편집장이 TV에 나온 자신을 잘 나왔다고 자랑하기에 ‘다시보기’로 찾아봤다. 시간 있고 관심 있으신 분 찾아보시라. <30분 다큐: 결혼 안하는 남자>. 다시보기까지 돌리는 성의를 보인 건 요새 <결혼 못하는 남자>에 빠져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노산 운운’하며 싹퉁바가지스런 대사를 툭툭 날리는 우리의 주인공 조재희(지진희)에게 원펀치 스리 강냉이를 날리고 싶을 때도 있지만 극상의 이기녀 입장에서 극상의 이기남을 관상하는 건 나름 흥미진진하다. 닿을 듯 닿을 듯하다가 튕겨져 나가는 남자의 매력도 제법 후끈하다고나 할까.
하지만 조 소장과 장 선생의 늙수그레한(호칭부터 봐라) 연애담이 궁금하기는 해도 ‘결못남’의 엔딩이 ‘결남’이 되지 않았으면 하는 염원이다. 세상에는 더 많은 ‘결못남’ 아니 ‘결안남’들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책임감의 역설’이라는 게 있다(몇달 전 이 지면에 등장했던 아저씨 전문가 후배의 분석이
[김은형의 아저씨의 맛] 결못人이여, 이기적이 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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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군 훈련을 마치고 돌아가던 중(그렇다. 나는 썩 그리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육군 예비역 병장이다). <씨네21>의 김혜리 기자님으로부터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길티 플레저라…. 그래도 나름 아나운서인데 이 얼마나 부담스러운 주제인가. 부랴부랴 앞서 이 칼럼을 쓴 다른 분들의 글을 찾아 읽어보고는 완전 좌절 모드에 빠졌다(제길슨, 다들 너무 글발이 좋잖아!). 결국 고민만 하다 약속한 날 아침, 이렇게 컴퓨터 앞에 앉다(털썩).
매년 공채 시험마다 2천명이 넘게 지원자가 몰린다는 아나운서는 인기(?) 직업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늘 올바른 표준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압박감과 그로 인한 언어 스트레스는 상당하다. 술자리에서조차 정확한 발음으로 욕을 해야 한다는 씁쓸한 농담을 할 정도니까 어느 정도 이해하리라 믿는다. 늘 과잉교정인간은 되지 말자며 서로에게 다짐을 해보지만, 노래를 들으며 차를 타고 가다가도 매시 정각이 되면 라디오 뉴스 채널로 주파수를 돌리는 현실은 뭐
[길티플레저] 아나운서 맞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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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 아직 학생이었던 나의 밤은 자기소개서를 쓰는 엄숙하고 지루한 작업으로 바빴다. 지금이라면 원고가 막힐 땐 맥주캔을 땄겠지만, 그땐 커피 한잔도 마시면 안될 것 같았다. 자기소개서 쓰기는 그렇게 고된 일이었다. 졸업을 앞둔 10월, 과에서 가장 친했던 친구가 유유히 첫 면접에 합격하며 내 곁을 떠났다. 악순환은 되풀이됐다. 친구들은 순서라도 나눠가진 것처럼 떠나갔고, 남겨진 나는 매일 밤 울면서 자기소개서에 매진했다. 누구든 진심을 알아주길 바라면서. <씨네21>은 두 번째 직장이었다. 첫 직장에 신물을 느끼던 나는 때마침 연락이 온 <씨네21>에 입사를 결정했고, 그뒤 3년3개월 동안 160번의 마감을 했다. 이제 와 되돌아본다. 나의 초심은 그대로인가.
2년 전, 자료실 정리를 하다가 우연히 ‘희귀문서’를 발견했다. <씨네21>의 기자들이 입사 지원할 때 제출했던 자기소개서 뭉치를 찾아낸 것이다. K, L, P 등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오픈칼럼] 마지막 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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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초 사건으로 인한 고통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그의 집으로 가끔 지인들이 찾아오긴 했지만 거의 ‘면회’하는 듯한 기분과 다를 게 없었다. 모든 방송 활동이 제재를 당한 상태니 TV도 나가고 여전히 활발하게 일하는 선후배들을 보면 너무 부럽기만 했다. 그렇게 한참 시간을 보내는데 김의석 감독이 연락해 <총잡이>라는 영화를 하자고 했다. ‘박대서’라는 남자가 우연히 손에 들어온 한 자루의 권총으로 혼란스러운 감정과 더불어 묘한 자신감을 얻게 된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이어서 시각장애인 역할의 <꼬리치는 남자>를 했다. 두 작품 모두 흥행 성적이 만족스럽지 못했지만 그에게 다시 충무로의 살가운 바람을 쐬게 해준 영화들임은 분명했다. 그리고 재기작 <돈을 갖고 튀어라>와 마주했다. 이제 그의 얼굴에는 <투캅스>의 함박웃음이 돌아왔고 백상예술대상 인기상까지 받았다. 탄력을 받은 그는 <은행나무 침대>도 마다한 채 다시 <투캅스2&
[박중훈 스토리 14] 시나리오 거절의 고통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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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블록버스터의 계절이다. <트랜스포머: 패자의 역습> <해리 포터와 혼혈왕자>, 그리고 한국영화 <차우> 등이 극장에 걸렸다. CG가 보여주는 조정, 교정, 수정, 변경 가능한 재앙의 세계. 파국을 막아내는 영웅들, 블록버스터의 파국과 재앙은 더 많은 자본과 기술의 구성, 축적을 위한 것이다. 동시에 그러한 구성과 축적은 블록버스터급 파국과 재앙을 필요로 한다. 4대강 삽질이 그에 해당할 것이다.
블록버스터와는 달리 컴퓨터그래픽 기술이나 자본의 마술적 원조를 받지 못하는 주변인, 비정규직, 소수자의 삶은 점점 더 벼랑으로 몰린다. <반두비>는 이 조건 안에서 우정과 관용 그리고 환대의 문제를 이야기한다. 영화 제목 반두비가 방글라어로 우정을 뜻하니 우정의 문제는 자명하게 드러나는 편이고, 관용(불관용), 환대의 문제는 논의를 필요로 한다.
인종과 성, 젠더가 부딪히다
이 영화의 짜임새는 두 재현 방식들이 맞물려 이루어진다. 한
[전영객잔] 그렇게 그녀는 이방인을 ‘체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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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등장인물들에게는 더없는 공포의 상황이 관객에게는 코미디로 전환되는 순간을 마주할 때가 있다. 공포에 이미 코미디가 잠재된 경우, 다시 말해 영화가 공포 속에 코미디를 의도하는 경우가 있고, 영화의 심오한 목적과는 달리 코미디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있다. 그걸 괴수영화로 한정짓고 말해보자면 <괴물>은 전자에 속한다. 이 영화가 현실의 비현실성이 불러오는 공포를 드러낼 때, 그 부조리함이 동시에 코미디를 유발한다. 관객의 웃음은 말초적 반응으로서의 공포보다 더 공포적인 체념의 반응이며, 공포의 성공적인 확장이다. 반면 <디 워>는 후자에 속한다. 수많은 괴수영화들이 조악한 CG 때문에 웃음거리가 되어왔다면 이 영화는 오히려 뛰어난 괴수-기술의 전시에만 승부를 걸어 코미디가 되는 불운을 겪었다. 이때 영화가 의도하는 공포와 스크린 밖의 웃음 사이에는 단절이 있으며, 웃음은 공포의 전락, 혹은 실패를 의미한다. 물론 코미디와 웃음을 동일시하고, 장르로서의 코미
[영화읽기] 발랄한 실험인가 부주의한 실패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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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알고 지낸 지가 햇수로…, 그게 그러니까 몇년이더라? 아무튼 까마득한 사이인데 내가 왜 몰랐겠는가? 내가 6학년4반이고, 중혁이가 6반이었던 시절부터 나는 그가 좀 예술가 스타일이라는 사실을 눈치챘다. 특히 심각한 질문을 던질 때마다 6반 친구는 예술가적인 답변을 내게 들려준다. 예술가적인 답변이 어떤 것이냐면, 음, 그러니까 우리 정겨운 ‘시오이엔’ 코언 형제를 예로 들면 좋겠다. 다음은 <위대한 레보스키>를 찍고 난 뒤에 가진 인터뷰.
Q: 뉴요커를 주인공으로 마리화나 상용자 영화를 만들 순 없으셨나요?
A: 아마 다른 영화가 나오겠죠…. 네, 아주 다를 거예요. 아마도 좀더 폭력적인…. 아니, 그렇지 않을 수도 있고요!
Q: 버니 레보스키와 독일 갱들 사이의 관계는 정확히 무엇인가요?
A: 그저 포르노영화를 함께 만들었다는 것뿐이죠…. 네, 그저 포르노영화.
Q: 그럼 그들은 납치를 공모한 게 아니죠?
A: 음, 한 건가? … 음, 아니,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
[나의 친구 그의 영화] 아주 드물기는 하지만…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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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영화평론가 정성일 씨의 감독 데뷔작 '카페 느와르'와 미국 국적의 한국인 감독 김진아 씨의 '서울의 얼굴'(Faces of Seoul)이 올해 베니스 영화제에 진출했다.30일 베니스영화제 사무국이 발표한 올해 영화제 초청작 리스트에 따르면 '비평가 주간'에 정성일 감독의 '카페 느와르'가 초청됐다. '비평가 주간'은 신인감독 작품 7편을 초청해 상영하는 섹션이다.또 새로운 경향의 영화가 초청되는 '오리종티'(Orizzonti)'에 김진아 감독의 '서울의 얼굴'(Faces of Seoul)을 비롯, 29편이 초청작에 올랐다.김 감독은 미국 국적이어서 '서울의 얼굴'은 미국 작품으로 분류됐다.주요 경쟁부문과 비경쟁 부문에서 한국작품은 제외됐다. 이에 따라 올해 베니스 영화제에 한국 작품으로는 유일하게 '카페 느와르'가 진출하게 됐다.주요 경쟁부문인 '베네치아66-경쟁부문'(Venezia 66-In Competition)에는 베르너 헤어초크의 '나쁜 중위
카페 느와르-서울의 얼굴, 베니스영화제 진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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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연기자 겸 가수 박지윤(27)이 처음 스크린에 도전한다.박지윤은 감독 5명이 서울, 제주, 부산 등 5개 도시를 배경으로 촬영할 단편영화를 모은 옴니버스물 중 '서울'(가제) 편에 출연한다.'소년, 천국에 가다'의 윤태용 감독이 연출할 '서울'에서 박지윤은 영화배우로 등장한다. 이 배우가 한 남자를 만나 하루동안 벌어지는 일을 담게 되며, 후반부에는 반전도 있다.1997년 가수로 데뷔한 박지윤은 2003년 6집 이후 드라마 '신인간시장', '비천무' 등에 출연하며 연기자로 활동했다. 최근 6년간의 공백을 깨고 싱어송라이터로 변신해 7집을 발표해 사랑받았다.박지윤 측 관계자는 "8월11일 촬영을 시작하는데 박지윤씨가 시나리오와 배역을 마음에 들어 한다. 새로운 작업이어서 흥미와 설렘을 동시에 갖고 있다"고 말했다.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출품할 계획인 이 작품은 아리랑TV를 통해 해외에도 소개될 예정이다.mimi@yna.co.kr(끝)
박지윤, 단편영화 통해 스크린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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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여성그룹 소녀시대 음반이 3장 연속 각 10만장 판매를 돌파했다고 소속사인 SM엔터테인먼트가 30일 밝혔다.
소속사는 6월29일 발표한 미니음반 2집 '소원을 말해봐'가 28일 기준으로 총 10만497장 팔려나갔다고 발표하며 앞서 발매한 정규 1집 '소녀시대'와 미니음반 1집 '지(Gee)'에 이어 3연속 10만여 장 판매를 기록했다고 말했다.
또 소녀시대는 데뷔곡 '다시 만난 세계'부터 '소녀시대', '키싱 유(Kissing You)', '베이비 베이비(Baby Baby)', '지', '소원을 말해봐'까지 발표하는 곡마다 가요 프로그램 1위를 차지해 6연속 히트 행진을 이어갔다고 덧붙였다.
mim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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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 "소녀시대 음반 3연속 10만장 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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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권영전 기자 = "때리는 연기를 할 때 장동민 씨는 정말 세게 때려요. '할매가 뿔났다'에서도 요즘은 자기가 재미있으려고 제 명치를 때리더라고요. 제가 원래 얻어맞을 때 별로 아파 보이지 않고 맛깔 나게 잘 맞거든요."개그맨 유상무는 요즘 무척 바쁘다. KBS 2TV의 간판 개그 프로그램인 '개그콘서트'에서만 '할매가 뿔났다', '씁쓸한 인생', '성공시대' 등 무려 세 개의 코너를 소화한다.그런 탓인지 지난 30일 KBS 인근 커피숍에서 만난 그의 얼굴은 좀 지쳐 보였다. 하지만, 인터뷰가 시작되자 그는 금세 힘을 되찾았는지 개그맨으로 일하는 게 얼마나 재미있는지 신이 나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맞는 연기를 할 때도 개그를 할 수 있어서 재미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방송에서는 배를 맞는 장면 하나밖에 안 나오지만, 녹화 현장에서는 코너가 끝나고 출연자들끼리 서로 치고받으며 장난을 치기도 해요. 관객들에게 재미를 주려는 의도도 있지만, 사
'상무상무' 유상무 "저 잘 맞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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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 "우리가 조연으로 보이나요?"주인공을 위협하는 묵직한 조연들이 드라마와 영화에서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이들 '주인공 같은 조연'의 특징은 극 중 캐릭터의 비중이 큰 데다, 실제로 다른 작품에서는 주인공을 맡아온 배우들이 연기를 한다는 데 있다.주인공을 돋보이게 하면서 독자적인 존재감도 강한 이들의 활약은 작품을 더욱 알차게 만드는 동시에, 높은 시청률과 흥행으로도 연결되고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주인공 부럽지 않은 조연MBC TV '선덕여왕'의 주인공은 선덕여왕 역의 이요원이다. 그러나 선덕여왕을 위협하는 조연이 있으니 바로 미실 역의 고현정이다.지난 7일 시청률 30%를 돌파하며 인기몰이 중인 '선덕여왕'은 고현정의 서슬 퍼런 연기가 연일 화제를 모으고 있다. 캐릭터 자체가 덕만(선덕여왕의 즉위 전 이름)을 위협하는 존재인 데다, 고현정의 농익은 연기가 합쳐지면서 미실은 드라마 전체를 장악하는 인물이 됐다.고현정은 이 드라마의
<주인공 위협하는 묵직한 조연 전성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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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 이정재와 민효린이 주연을 맡은 MBC TV 드라마 '트리플'이 5.7%의 저조한 시청률로 30일 막을 내렸다.31일 시청률조사기관 TNS미디어코리아에 따르면 '트리플'은 전국 시청률 5.7%, 수도권 시청률 6.4%를 각각 기록했다.'트리플'은 2007년 화제작 '커피프린스 1호점'의 이윤정 PD가 연출을 맡아 관심을 모았지만, 지난 6월11일 4.6%로 출발한 이래 방영 내내 5~6%의 낮은 시청률을 보였다.드라마는 피겨 스케이트 선수의 세계를 그리며 소재의 신선함을 안겨주기도 했지만, 구심력이 없는 이야기와 인물간 관계의 모호함 등을 지적받으며 KBS 2TV '파트너', SBS TV '태양을 삼켜라'와의 경쟁에서 뒤처졌다.'파트너'와 '태양을 삼켜라'의 30일 시청률은 각각 11.3%와 18.7%였다.후속으로는 이서진 주연의 공포드라마 '혼'이 방송된다.pretty@yna.co.kr(끝)<연합뉴스 긴급속보를 SMS로! SKT 사용자는 무료
이정재ㆍ민효린 '트리플' 시청률 5.7%로 종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