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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은 낙타의 속도로 움직인다.’ 알랭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읽은 독자라면, 열에 아홉은 이 문장을 기억할 것이다. 아라비아의 이 아름다운 속담을 통해 보통은 미래로만 전진하는 인간과 추억을 짊어지고 뒤늦게 인간을 따르는 영혼을 얘기했다. 인간의 속도와 영혼의 속도가 다르다면, 어느 쪽이 진짜일까. 정답은 ‘둘 다 진실’이겠지만, 모든 것이 빠르게 진행되는 21세기엔 인간의 속도가 진리다. 슬프게도 영혼은, 자주 잊혀지고 무시당한다.
같은 제목의 전시가 열린다. 사진, 일러스트레이션, 수채화, 드로잉 등을 다양하게 전공한 여덟 작가의 그룹전이다. 인간의 시간으로 작품 활동을 해온 이들은 작업 중에 영혼의 시간을 잊지 않는다. 노준구 작가의 <Barbershop Kami>에는 현대인의 번지르르한 외양과 메마른 내면이 공존한다. 김지현 작가는 <Saturday Night>에서 변화된 현실과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영혼을 표현하며
[전시] 잊혀진 낙타를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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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경험이었다. 흥분보다는 긴장이 앞서더라. 태어나서 처음 본 발레 공연 <호두까기 인형> 이야기다. 부끄럽지만 나는 남들 다 봤다는 스티븐 달드리 감독의 <빌리 엘리어트>도 끝까지 못 본, 순수한 의미의 발레 첫 경험자다. 그래서 다 아는 이야기인데다 어린이 관객의 호응도가 높은 발레 공연이라는 걸 알면서도 공연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겁기만 했다. 하지만 33년 동안 러시아 볼쇼이발레단을 이끈 솜씨답게, 안무가 유리 그리가로비치는 나의 발레 공포증을 눈 녹이듯 누그러뜨렸다. 그는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친근한 안무를 앞세워 관객을 크리스마스 파티가 열리는 마리네 집으로 친절하게 안내했다.
휙휙 돌고 팔짝 뛰고 공중으로 솟아오르는 동작들이 무대 위에 내리는 눈과 함께 화려하게 펼쳐진다. 줄거리와 상관없는 2막의 ‘디베르티스망’에서 과자요정들이 선보이는 각종 춤은 <개그콘서트>의 봉숭아학당이 떠오를 정도로 다양하고, 왕자와 마리의 2인
[공연이 끝난 뒤] 인생을 압축한 그 안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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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 라이브 섹션 추천 지수 ★★★★
애상 지수 ★★★★★
너무 잘 알려진 사람의 단점은 쉽게 진부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마이클 잭슨이나 마릴린 먼로, 안젤리나 졸리 같은 사람들. 그들이 진부하다는 것이 아니라 대명사화된 그들의 이름이 진부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앤디 워홀도 그런 사람 중 하나다. 현대미술을 말할 때마다 툭하면 언급되는 그의 이름도,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캠벨 수프나 실크 스크린 기법도 이제는 다소 진부하다. 재미있는 점은 그럼에도 어디선가 워홀의 이름이 들리면 귀를 쫑긋 세울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볼 만큼 봤다고 생각해도 막상 전시회가 열린다면 주목하게 되고 기어이 찾아가서 보게 된다. 이게 바로 셀레브리티의 힘인가?
앤디 워홀의 작품을 소개하는 전시회가 열린다. <앤디 워홀의 위대한 세계전>(이하 <위대한 세계전>)으로, 워홀의 사망 20주기를 기념해 리움에서 열었던 회고전 이후 2년 만의 대규모 전시다. 앞선
[전시] 20세기의 거대한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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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버 색스는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에서 이렇게 말한다. 만일 누군가에 대해 알고 싶다면, 그의 내면에 자리잡은 진실한 인생 이야기를 알아야 한다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의 전기(傳記)이자 이야기라고. 그런데 자기 인생 이야기가 마음에 안 들면 어쩌나. 사실 자기 인생이 자랑스러운 사람보다는 과거를 바꾸고픈 욕망과 진실이 선사하는 압박감 사이에서 위태롭게 사는 사람 이야기가 더 재미있다. <오즈의 닥터>는 억지로 상담을 받게 된 세계사 선생님 김종수의 이야기에서 시작된다. 소설 초반부는 다소 의아한데, 요란하되 익숙한 이미지로 도배되어 있다시피 하다. 상담의사인 닥터 팽은 검은색 홈드레스를 입고서 치맛자락을 들어 털난 종아리를 과시하는가 하면, 파이프 담배를 물고 프로이트 흉내도 내는 괴짜 중년남. 닥터 팽이 해외 게이 퍼레이드에 나올 법한 이미지로 뭉쳐진 캐릭터라면 주인공 김종수는 한국 사람들에게 익숙한, 고생 많이 한 주인공이다. 그는 폭력을
[한국 소설 품는 밤] 닥터, 내 인생을 말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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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한 사람의 삶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역사를 알 수 있다. 페기 구겐하임이 그렇다. 그녀의 삶이 곧 현대미술의 기록이다. 20세기 최고의 미술 후원자, 갑부 컬렉터, 베네치아 구겐하임 미술관의 설립자인 페기 구겐하임로서의 페기 구겐하임. 그 영향력은 참으로 충만하고 전설적이었다. <페기 구겐하임 자서전-어느 미술 중독자의 고백>은 이렇게 겉으로 포장된 페기의 삶을 한 꺼풀 벗겨내는 작업이다. 사망 30주년을 맞아 발행된 이 책은 1960년 페기 구겐하임의 회고록이다. 페기 구겐하임은 책을 통해 미술에 문외한이었던 자신이 어떻게 현대미술에 중독되었으며 작가가 아님에도 20세기 미술사에 기록될 전설 속의 인물이 되었는지 거침없이 설명한다. 또 브랑쿠시, 콜더, 폴록, 에른스트, 탕기 등 거장들과의 기행과 열정, 사생활까지 공개되지 않았던 비밀스러운 에피소드를 망라한다. 책장을 넘기다보면 결국 페기의 내밀한 고백은 결국 곧 현대 미술사의 중요한 축대로 환원되고 만다. ‘알코
현대미술의 큰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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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미래를 논하지 않는다. 2010년의 한국에서는 무엇이 유행할까를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2010 트렌드 웨이브-MBC 컬처리포트>는 현재의 한국을 읽는 다양한 키워드를 제공한다. 각종 뉴스와 게시판을 통해 파편적으로 접해온 지식을 한큐에 꿸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취직 때문에 고민하며 하루종일 고양이와 놀고 스마트폰으로 걸그룹의 뮤직비디오를 본다든지 카메라를 들고 동네 골목길 탐험에 나서거나 걷기 여행을 떠난다거나. 언젠가부터 조금씩 달라진 사람들의 일상이나 탈일상의 유행을 짚어준다.
예컨대 90년대 들어 사라진 농심 과자 ‘비29’가 2009년 부활했다. 다시 먹고 싶다는 사람들이 인터넷 카페를 통해 모였고, 그 ‘크라우드 소싱’의 힘이 결국 비29의 부활로 이어진 것이다. 몸매 가꾸는 아저씨와 남자 심리학 책의 유행, 걸그룹을 소리내 응원하는 삼촌 팬들의 범람, 남성 화장품 커뮤니티가 모두 ‘꽃중년’의 카테고리 아래 묶인다. 내년에 ‘뜰’ 아이템을 궁리하
내년의 유행을 알려주마~ 팍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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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과 사랑에 빠진다 지수 ★★★☆
영화판을 보고 싶다 지수 ★★★★
놀랍게도, <자학의 시>는 은유적인 제목이 아니다. 여주인공 유키에에게 인생은 그 자체가 자학. 백수건달에 마작과 경마, 파친코에만 열을 올리고, 술에 취해 상을 뒤집어엎는 것 외에는 할 줄 아는 게 없는 남자 이사오와 함께 사는 삶 자체가 유키에 자신을 괴롭히는 일이다. 1985년부터 1990년까지 일본에서 잡지 <주간 보석>에 고다 요시이에가 연재한 4컷만화 중 유키에와 이사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펴낸 책이 바로 <자학의 시>.
백수건달에 폭력적인(여자는 때리지 않지만 매일같이 상을 뒤엎는다) 남자와 그럼에도 그가 좋아 죽겠다는 여자의 이야기. 초반에는, 이 만화를 보며 대체 웃어야 하는지, 싸우자는 건지 분간하기 힘들다. 유키에와 이사오는 동거 중. 결혼을 하려고 해도 어쩐지 운이 닿지 않아(이사오의 마음이 내켜 구청에 가면 공휴일) 마냥 같이 사는 두 사람인데, 이
인생에는 분명 의미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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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치는 사랑이다. 일주일 전, 아이폰을 만져보고는 그 아이를 사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버렸다. 그 이후 사고 싶어서 잠을 설치고 있다(지금 쓰는 휴대폰의 노예계약이 꽤 남아 있다). 복잡한 기계는 딱 질색이고, 심지어 게임조차 어려워서 하지 않는 인간인데, 이건 달랐다. 글로 읽고 사진과 동영상으로 봤을 때와는 차원이 달랐다. 이걸 만져보지 않고 안다고 하는 자들이여, 물렀거라. 단점이 많은 기계인 걸 몰라서는 아니다. 배터리 교체 불가라는 말의 무서움도 알고 있다. 여기저기 만지고 주물럭대면 ‘조루’소리 듣는 배터리가 훨씬 빨리 닳는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그런데 어쩌라고. 만지는 순간 사랑에 빠졌는데.
만져보면 알 수 있다. 좋아하는지 안 좋아하는지. 인간관계가 특히 그렇다. 싫으면 만지기는커녕 마주하기조차 싫다. 쩝쩝거리고 소리내 밥 먹는 것만 봐도 토할 지경이다. 한 인간의 존재 자체가 견딜 수 없는 노이즈로 다가온다. 성추행과 작업의 차이도, 너무 미묘해서 유감스럽지만,
[이다혜의 작업의 순간] 만져봤수? -최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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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정음씨. <씨네21> 입사 이후 가장 긴 휴가였던 지난 2주 동안, IPTV가 있는 친구 집에 빌붙어 <지붕 뚫고 하이킥!>을 몰아봤어요. 덕분에 제가 나온 학교를 일컫는 새로운 명칭을 알게 됐답니다. 맞아요. 저도 지방대를 나왔어요. 보아하니 정음씨는 그래도 서울에서 셔틀버스를 타면 1시간 정도에 갈 수 있는 수도권 소재 대학인 것 같은데, 저는 수도권도 아니었어요. 아무튼 제가 다닌 학교도 서운대였답니다.
서운대 학생이라는 것 때문에 그동안 겪었던 수많은 고충을 목격했습니다. 세경이에게는 누나라고 부르는 준혁이가 정음씨에게는 ‘야자’를 틀 때도 신경질 이상의 화를 내지 못했던 건 서운대 출신이 가진 자격지심 때문이었을 거예요. 마음고생만이 아니라 몸고생도 상당했어요. 학생증 때문에 2층 계단에서 몸을 날릴 때는, 가슴 한쪽이 저렸습니다. 최근에는 긴급한 장트러블이 셔틀버스 통학을 해야 하는 지방대 학생에게 얼마나 큰 재난인지를 보여주셨죠. 만
[오픈칼럼] 서운대 4학년 황정음씨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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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의 장편 데뷔작 <사람을 찾습니다>는 이전에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상영된 적이 있다고 하지만 내가 이 영화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전주국제영화제에서였다. 전주영화제 한국장편경쟁부문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던 장률 감독이 내게 이 영화를 유심히 보라며 적극 추천했기 때문이다. <사람을 찾습니다>는 한국장편경쟁부문 최우수상을 받았으나 막상 직접 본 이 영화는 그 표현의 직접적 강도에 비해 다소 상투적으로 보였다. 이 영화에는 어느 정도 먹고살 만한 것으로 보이는 부동산 중개업자 원영과 그가 거의 사육한다고 말해도 좋을 지적 장애인 규남이 나오는데 주인과 노예의 관계를 넘어서서 원영이 규남을 거의 짐승 수준으로 학대하고 착취하는 장면들이 꽤 있다. 특히 규남 역을 연기하는 배우가 스크린에 물리적으로 현존한다는 느낌은 언어가 당도할 수 없는 굉장한 압도감을 주었다.
도식처럼 보였던 인물의 폭력 관계
그런데도 이 영화가 상투적이라고 느낀 것은 폭력 관계의 도식성 때
[김영진의 점프 컷] 희미하게 열린 탐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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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어서인지 영화를 보다보면 아는 사람들이 자꾸 나온다. 그게 나이랑 무슨 상관이냐고? 글쎄, 이십대에는 그런 일이 한번도 일어나지 않았으니까. 군 복무를 마치고 복학한 뒤에 성균관대학교 문과대 석조건물 언저리에서 장준환과 뭔가 얘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엉거주춤하게 서서 우리는 각자 영화를 만들고 소설을 쓰자고 다짐했다. 그때 내가 아는 사람들은 다 다짐만 하고 있었다. 몇년이 지나 준환이는 단편영화를 하나 만들었고 나는 장편소설을 한권 펴냈다. 하지만 비디오 가게에서 준환이의 단편영화가 실린 테이프를 빌려서 본 사람이나 내 장편소설을 다 읽은 사람은 너무나 드물었다. 모르긴 해도 그 두개를 모두 보고 읽은 사람은 대한민국에서 나 혼자뿐일 것이라는 확신마저 들더라.
책을 펴낸 뒤, 제일 먼저 한국 출판계에, 그 다음으로 나 자신에게, 그리고 무엇보다도 뭔가를 열심히 해도 아무런 변화가 없는 이십대라는 나이에 실망하게 된 나는 미련없이 절필을 선언하고(그러거나 말거나 누구도
[나의 친구 그의 영화] 영화와 실제 사이, 그 아슬아슬함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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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한류스타 권상우가 내년초 일본에서 대규모 팬미팅을 갖는다.
권상우의 에이전트사인 스타파크엔터테인먼트는 "내년 2월께 일본 도쿄와 오사카에서 2만여명이 참가하는 대규모 팬미팅을 가질 예정"이라고 29일 밝혔다.
스타파크엔터테인먼트는 "팬미팅자리에서 권상우는 일본 작사가가 쓰고, 일본 작곡가가 만든 노래를 일본어로 부를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권상우는 현재 이재한 감독이 메가폰을 든 전쟁영화 '포화속으로'를 촬영 중이다. '포화속으로'는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100여억원짜리 블록버스터 영화로, 한국 전쟁 중 낙동강 전투 막바지에 71명의 학도병과 인민군이 벌인 12시간의 전투를 다룬다.
buff2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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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우 내년 일본서 대규모 팬미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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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권영전 기자 = "찍었던 영화 가운데 최고가 무엇인지 묻는다면 흥행과 관계없이 '울학교 이티'라고 말할 겁니다. 고교 시절이나 대학 시절 선생님께 무척 많은 걸 배웠기 때문이죠."KBS의 새 월화극 '공부의 신'에서 추진력과 카리스마를 갖춘 선생님 강석호 역을 맡은 김수로(39)는 '울학교 이티'와 '공부의 신'에 이어 앞으로도 좋은 선생님 역할을 많이 맡고 싶다고 밝혔다.그는 29일 오후 서울 서초구 반포동 서울팔래스호텔에서 열린 드라마 제작 발표회에서 "대본에서 '룰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는 대사를 접하고 2-3일 동안 공황 상태에 빠질 만큼 충격을 받았다"며 "그런 말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은 학창 시절의 선생님일 것"이라고 말했다.실제로도 연극과를 꼭 가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5수를 할 만큼 선생님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그는 "작품 속에 '선생님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나를 선생님이라 부르지 말
김수로 "학생 학부모 선생님들 드라마 꼭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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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권영전 기자 = '국민남동생' 유승호(16)가 이번에는 불량 학생으로 변신한다.그는 내달 4일부터 방송하는 KBS 새 월화극 '공부의 신'에서 명문 국립 천하대 입시에 도전하는 '꼴찌' 불량학생 황백현 역을 맡았다. 처음 시도하는 무뚝뚝하고 거친 불량 연기다.그는 "학교에서 껄렁껄렁하고 반항을 많이 하는 친구들의 모습을 참고해 말투도 툭툭 내뱉고 인상을 쓰고서 의자에 삐딱하게 앉아있는 모습을 연기했다"고 말했다.'국민남동생'이 나오니 이번 드라마의 시청률 걱정은 안 해도 되겠다는 질문에 그는 "사실 '선덕여왕'에서도 내가 나오면 50% 찍는다고 했지만 결국은 다들 실망하게 되더라"며 "다들 열심히 해서 재미있는 드라마라는 입소문을 타 시청률이 올랐으면 좋겠다"고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그는 아역 배우로 오랫동안 슬럼프 없이 활동하는 비결을 묻자 "배우이기 전에 학생이기 때문에 학교에서 학업에 최대한 참여했
유승호 "불량한 모습 보이려고 노력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