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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26일, 서울 광진구의 어느 멀티플렉스를 찾았다. 꽤 오랜만에 북적거리는 극장을 볼 수 있었다. 매진을 알리는 표시가 매표소 전광판에 가득 차 있었다. 대기번호 출력기 버튼을 누르니, 대기인 수 27명이라고 찍혀 나왔다. 무려 3일이나 되는 연휴였고, 심지어 크리스마스였다. 하루는 술 마시고, 하루는 집에서 쉬더라도 남은 하루는 나가야만 했을 것이다. 동네 멀티플렉스를 찾는 발길이 많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셈이다.
연휴의 효과는 데이터로도 드러났다.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한 <아바타>가 연휴 동안 불러모은 관객은 약 160만명, 2위인 <전우치>는 130만명을 기록했다. 두편의 영화만으로 약 300만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이번 결과를 두고 맥스무비의 김형호 실장은 “2003년 연말을 보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때는 <반지의 제왕3: 왕의 귀환>(이하 <반지의 제왕3>)과 <실미도>와 <색즉시공>
[강병진의 영화 판.판.판] 3D 시장성을 확인한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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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할리우드 한해 티켓 판매가 100억달러를 넘었습니다. 이는 할리우드 역사상 처음 수립된 기록입니다. 연휴 때문이다, 티켓 판매 가격 상승 때문이다, 라고 아무리 돌려보아도 확실히 놀라운 수치입니다. 박스오피스모조닷컴이 발표한 흥행영화10은 다음과 같습니다. 1위는 <트랜스포머: 패자의 역습>. 4억211만달러의 수입을 올려 올 한해 개봉한 500여편 작품 가운데 북미 개봉작 중 최고수익을 기록했습니다. 2위는 시리즈물의 최강자 <해리 포터와 혼혈왕자>입니다. 애니메이션이 두각을 나타낸 한해인 만큼 3위는 디즈니의 3D애니메이션 <업>이 차지했습니다. 4위에는 신드롬으로 번진 하이틴 뱀파이어 시리즈 <뉴문>이 올랐군요. 개봉 첫날만 7270만달러를 차지해 역대 오프닝 스코어 최고 기록도 세운 작품입니다. 5위는 코믹영화 <행오버>로 국내에선 개봉하지 않고 DVD로 직행한 작품입니다. 6위부터 10위까지는 <스타트렉:
[월드액션] 최고 흥행의 해, 그 제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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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수 감독의 리메이크 프로젝트 <하녀>가 거의 매주 캐스팅 소식을 내놓고 있다. 이번이 완결이다. 하녀 역에 전도연, 안주인 해라 역에 서우를 캐스팅한 것에 이어 바깥양반 훈 역을 이정재가 맡기로 했다. 또한 집안일을 총괄하는 나이든 하녀 병식 역에 윤여정이 선택됐다. 병식은 새로운 하녀와 주인 남자 사이의 미묘한 관계를 지켜보는 인물이라고. 임상수 감독과 윤여정의 만남은 <바람난 가족> <그때 그사람들> <오래된 정원>에 이어 네 번째다.
키라 나이틀리가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의 신작 <토킹 큐어>에 캐스팅됐다. 작가 크리스토퍼 햄튼의 동명 연극을 영화화하는 <토킹 큐어>는 정신분석학을 연구한 프로이트와 그의 제자인 칼 융, 그리고 그들의 정신분석대상인 사비나 슈필라인의 이야기다. 키라 나이틀리가 사비나 슈필라인을 연기할 예정이며, 프로이트 역에는 크리스토프 발츠가 칼 융 역에는 마이클 패스밴더가 캐스팅됐다.
[캐스팅] 이정재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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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영화 전용관 인디스페이스가 2009년 12월30일 오전 간판을 내렸습니다. 영화진흥위원회와 위탁 운영 계약이 만료됨에 따라 2009년 12월31일까지 독립영화 전용관을 운영키로 한 인디스페이스는 늘샘 감독의 <노동자의 태양>을 마지막으로 2년2개월 동안의 운영을 마쳤습니다. 영진위가 사업자 선정 방식을 공모제로 전환키로 했다지만, 이런저런 정황을 감안하면 사실상 인디스페이스는 쫓겨난 셈이지요. 독립영화야 내년에도 다른 극장에서 상영될 겁니다. 하지만 독립영화 배급의 전초기지 역할을 했던 인디스페이스의 노하우는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는 것이지요. ‘언젠가 다시 돌아온다’는 인디스페이스 친구들의 다짐이 하루빨리 현실화되길 바랍니다.
2014년까지 한국영화는 연평균 1.9%의 소폭 성장을 이어갈 것이라는 예측이 나왔네요. 영화진흥위원회는 최근 ‘2010∼2014 한국영화 흥행구조 및 시장규모 예측’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한국영화 관객 수는 2010년에는 향후 5년간 연평
[에누리 & 자투리] 인디스페이스는 돌아올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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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나는 말레이시아 여자가수다. 하지만 <지구촌 VJ특급>에 나오던 말레이시아 민요를 떠올리면 곤란하다. 이 음악은 여지없이 어쿠스틱-포크-팝이다. 물론 그녀는 히잡을 쓰고 기타를 연주하고 노래도 하지만 목소리, 노래만 들어보면 말레이시아가 아니라 백인 여자 포키가 떠오른다. 그 정도로 유나의 음악은 국적이 드러나지 않는다. 미국화되었다기보다는 글로벌하다는 게 적절할 것이다. 열몇살에 처음으로 노래와 작사, 작곡을 시작한 유나는 남자친구가 마이스페이스에 그녀의 음악을 올린 걸 계기로 유명해졌다. 두장의 EP는 일체의 홍보없이 2천장이 팔렸고 그걸 계기로 유럽 투어도 돌았다. 유튜브에서 ‘YUNA’를 검색하면 그녀의 라이브 영상을 쉽게 찾을 수 있다(신기하게도 소녀시대 윤아와 별로 헷갈리지 않는다). 그 정도로 글로벌하다는 것, 그러니까 전세기에는 상상도 못할 방식으로 음악을 만들고 공유한다는 게 새삼 신기하다. 짧지만 편안하고 따뜻한, 심지어 예쁜 노래다.
[음반] 국적을 넘어선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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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가 “어느 겨울밤이면”인데 영가처럼 들리기도 한다. 넓은 의미에서 이걸 솔이라고 불러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If On A Winter’s Night…≫의 수록곡들은 민요와 포크, 캐럴과 재즈를 넘나든다. <Gabriel’s Message> <Now Winter Comes Slowly> <Lullaby for an Anxious Child> 같은 곡들이 인상적인데 이른바 ‘겨울에 대한 단상’인 만큼 수록곡들 모두가 통째로 춥고 쓸쓸하고 외롭고 가파르다. 한없이 추락하는 꿈을 꾸다가 일어난 아침, 창밖을 보니 함박눈이 쏟아지더라는 뭐 그런 감성으로 가득하다. 스팅의 전작, ≪Nothing Like the Sun≫이나 ≪Ten Summoner’s Tales≫가 연상되기도 하는데, 압축된 정서의 밀도가 높은, 그래서 뭔가가 터지기 직전의 위태로움과 충만함이 공존하는 앨범이란 생각도 든다. 딱 겨울을 위한 음반이고, 겨울을 위한 음악이다. 그
[음반] 겨울을 닮은 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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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은 낙타의 속도로 움직인다.’ 알랭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읽은 독자라면, 열에 아홉은 이 문장을 기억할 것이다. 아라비아의 이 아름다운 속담을 통해 보통은 미래로만 전진하는 인간과 추억을 짊어지고 뒤늦게 인간을 따르는 영혼을 얘기했다. 인간의 속도와 영혼의 속도가 다르다면, 어느 쪽이 진짜일까. 정답은 ‘둘 다 진실’이겠지만, 모든 것이 빠르게 진행되는 21세기엔 인간의 속도가 진리다. 슬프게도 영혼은, 자주 잊혀지고 무시당한다.
같은 제목의 전시가 열린다. 사진, 일러스트레이션, 수채화, 드로잉 등을 다양하게 전공한 여덟 작가의 그룹전이다. 인간의 시간으로 작품 활동을 해온 이들은 작업 중에 영혼의 시간을 잊지 않는다. 노준구 작가의 <Barbershop Kami>에는 현대인의 번지르르한 외양과 메마른 내면이 공존한다. 김지현 작가는 <Saturday Night>에서 변화된 현실과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영혼을 표현하며
[전시] 잊혀진 낙타를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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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경험이었다. 흥분보다는 긴장이 앞서더라. 태어나서 처음 본 발레 공연 <호두까기 인형> 이야기다. 부끄럽지만 나는 남들 다 봤다는 스티븐 달드리 감독의 <빌리 엘리어트>도 끝까지 못 본, 순수한 의미의 발레 첫 경험자다. 그래서 다 아는 이야기인데다 어린이 관객의 호응도가 높은 발레 공연이라는 걸 알면서도 공연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겁기만 했다. 하지만 33년 동안 러시아 볼쇼이발레단을 이끈 솜씨답게, 안무가 유리 그리가로비치는 나의 발레 공포증을 눈 녹이듯 누그러뜨렸다. 그는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친근한 안무를 앞세워 관객을 크리스마스 파티가 열리는 마리네 집으로 친절하게 안내했다.
휙휙 돌고 팔짝 뛰고 공중으로 솟아오르는 동작들이 무대 위에 내리는 눈과 함께 화려하게 펼쳐진다. 줄거리와 상관없는 2막의 ‘디베르티스망’에서 과자요정들이 선보이는 각종 춤은 <개그콘서트>의 봉숭아학당이 떠오를 정도로 다양하고, 왕자와 마리의 2인
[공연이 끝난 뒤] 인생을 압축한 그 안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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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 라이브 섹션 추천 지수 ★★★★
애상 지수 ★★★★★
너무 잘 알려진 사람의 단점은 쉽게 진부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마이클 잭슨이나 마릴린 먼로, 안젤리나 졸리 같은 사람들. 그들이 진부하다는 것이 아니라 대명사화된 그들의 이름이 진부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앤디 워홀도 그런 사람 중 하나다. 현대미술을 말할 때마다 툭하면 언급되는 그의 이름도,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캠벨 수프나 실크 스크린 기법도 이제는 다소 진부하다. 재미있는 점은 그럼에도 어디선가 워홀의 이름이 들리면 귀를 쫑긋 세울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볼 만큼 봤다고 생각해도 막상 전시회가 열린다면 주목하게 되고 기어이 찾아가서 보게 된다. 이게 바로 셀레브리티의 힘인가?
앤디 워홀의 작품을 소개하는 전시회가 열린다. <앤디 워홀의 위대한 세계전>(이하 <위대한 세계전>)으로, 워홀의 사망 20주기를 기념해 리움에서 열었던 회고전 이후 2년 만의 대규모 전시다. 앞선
[전시] 20세기의 거대한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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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버 색스는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에서 이렇게 말한다. 만일 누군가에 대해 알고 싶다면, 그의 내면에 자리잡은 진실한 인생 이야기를 알아야 한다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의 전기(傳記)이자 이야기라고. 그런데 자기 인생 이야기가 마음에 안 들면 어쩌나. 사실 자기 인생이 자랑스러운 사람보다는 과거를 바꾸고픈 욕망과 진실이 선사하는 압박감 사이에서 위태롭게 사는 사람 이야기가 더 재미있다. <오즈의 닥터>는 억지로 상담을 받게 된 세계사 선생님 김종수의 이야기에서 시작된다. 소설 초반부는 다소 의아한데, 요란하되 익숙한 이미지로 도배되어 있다시피 하다. 상담의사인 닥터 팽은 검은색 홈드레스를 입고서 치맛자락을 들어 털난 종아리를 과시하는가 하면, 파이프 담배를 물고 프로이트 흉내도 내는 괴짜 중년남. 닥터 팽이 해외 게이 퍼레이드에 나올 법한 이미지로 뭉쳐진 캐릭터라면 주인공 김종수는 한국 사람들에게 익숙한, 고생 많이 한 주인공이다. 그는 폭력을
[한국 소설 품는 밤] 닥터, 내 인생을 말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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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한 사람의 삶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역사를 알 수 있다. 페기 구겐하임이 그렇다. 그녀의 삶이 곧 현대미술의 기록이다. 20세기 최고의 미술 후원자, 갑부 컬렉터, 베네치아 구겐하임 미술관의 설립자인 페기 구겐하임로서의 페기 구겐하임. 그 영향력은 참으로 충만하고 전설적이었다. <페기 구겐하임 자서전-어느 미술 중독자의 고백>은 이렇게 겉으로 포장된 페기의 삶을 한 꺼풀 벗겨내는 작업이다. 사망 30주년을 맞아 발행된 이 책은 1960년 페기 구겐하임의 회고록이다. 페기 구겐하임은 책을 통해 미술에 문외한이었던 자신이 어떻게 현대미술에 중독되었으며 작가가 아님에도 20세기 미술사에 기록될 전설 속의 인물이 되었는지 거침없이 설명한다. 또 브랑쿠시, 콜더, 폴록, 에른스트, 탕기 등 거장들과의 기행과 열정, 사생활까지 공개되지 않았던 비밀스러운 에피소드를 망라한다. 책장을 넘기다보면 결국 페기의 내밀한 고백은 결국 곧 현대 미술사의 중요한 축대로 환원되고 만다. ‘알코
현대미술의 큰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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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미래를 논하지 않는다. 2010년의 한국에서는 무엇이 유행할까를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2010 트렌드 웨이브-MBC 컬처리포트>는 현재의 한국을 읽는 다양한 키워드를 제공한다. 각종 뉴스와 게시판을 통해 파편적으로 접해온 지식을 한큐에 꿸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취직 때문에 고민하며 하루종일 고양이와 놀고 스마트폰으로 걸그룹의 뮤직비디오를 본다든지 카메라를 들고 동네 골목길 탐험에 나서거나 걷기 여행을 떠난다거나. 언젠가부터 조금씩 달라진 사람들의 일상이나 탈일상의 유행을 짚어준다.
예컨대 90년대 들어 사라진 농심 과자 ‘비29’가 2009년 부활했다. 다시 먹고 싶다는 사람들이 인터넷 카페를 통해 모였고, 그 ‘크라우드 소싱’의 힘이 결국 비29의 부활로 이어진 것이다. 몸매 가꾸는 아저씨와 남자 심리학 책의 유행, 걸그룹을 소리내 응원하는 삼촌 팬들의 범람, 남성 화장품 커뮤니티가 모두 ‘꽃중년’의 카테고리 아래 묶인다. 내년에 ‘뜰’ 아이템을 궁리하
내년의 유행을 알려주마~ 팍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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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과 사랑에 빠진다 지수 ★★★☆
영화판을 보고 싶다 지수 ★★★★
놀랍게도, <자학의 시>는 은유적인 제목이 아니다. 여주인공 유키에에게 인생은 그 자체가 자학. 백수건달에 마작과 경마, 파친코에만 열을 올리고, 술에 취해 상을 뒤집어엎는 것 외에는 할 줄 아는 게 없는 남자 이사오와 함께 사는 삶 자체가 유키에 자신을 괴롭히는 일이다. 1985년부터 1990년까지 일본에서 잡지 <주간 보석>에 고다 요시이에가 연재한 4컷만화 중 유키에와 이사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펴낸 책이 바로 <자학의 시>.
백수건달에 폭력적인(여자는 때리지 않지만 매일같이 상을 뒤엎는다) 남자와 그럼에도 그가 좋아 죽겠다는 여자의 이야기. 초반에는, 이 만화를 보며 대체 웃어야 하는지, 싸우자는 건지 분간하기 힘들다. 유키에와 이사오는 동거 중. 결혼을 하려고 해도 어쩐지 운이 닿지 않아(이사오의 마음이 내켜 구청에 가면 공휴일) 마냥 같이 사는 두 사람인데, 이
인생에는 분명 의미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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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치는 사랑이다. 일주일 전, 아이폰을 만져보고는 그 아이를 사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버렸다. 그 이후 사고 싶어서 잠을 설치고 있다(지금 쓰는 휴대폰의 노예계약이 꽤 남아 있다). 복잡한 기계는 딱 질색이고, 심지어 게임조차 어려워서 하지 않는 인간인데, 이건 달랐다. 글로 읽고 사진과 동영상으로 봤을 때와는 차원이 달랐다. 이걸 만져보지 않고 안다고 하는 자들이여, 물렀거라. 단점이 많은 기계인 걸 몰라서는 아니다. 배터리 교체 불가라는 말의 무서움도 알고 있다. 여기저기 만지고 주물럭대면 ‘조루’소리 듣는 배터리가 훨씬 빨리 닳는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그런데 어쩌라고. 만지는 순간 사랑에 빠졌는데.
만져보면 알 수 있다. 좋아하는지 안 좋아하는지. 인간관계가 특히 그렇다. 싫으면 만지기는커녕 마주하기조차 싫다. 쩝쩝거리고 소리내 밥 먹는 것만 봐도 토할 지경이다. 한 인간의 존재 자체가 견딜 수 없는 노이즈로 다가온다. 성추행과 작업의 차이도, 너무 미묘해서 유감스럽지만,
[이다혜의 작업의 순간] 만져봤수? -최종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