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성을 내려놓다
<솔트>에서 안젤리나 졸리는 억울하게 누명을 쓴 CIA 요원 에블린 솔트를 연기한다. 그녀는 오해를 풀기 위해 조직을 떠나고, 외부에 칩거하며 거대한 음모를 한 단계씩 파헤쳐나가야 한다. 이러한 설정은 주인공이 여자라는 점을 제외하고는 사실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졸리는 이미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의 미세스 스미스로 조직의 등을 보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인간 병기 역할 또한 낯설지 않다. 졸리는 이미 고고학 유물이 있는 곳을 찾아 오지를 누비는, <툼레이더>라는 거대한 게임 원작 프랜차이즈의 주인공이다. 심지어 졸리가 제임스 본드나 제이슨 본이 할 만한 역할을 맡은 것조차 어딘가 익숙하다. 5년 전, <007 카지노 로얄>의 본드걸로 출연 제안을 받았을 때 안젤리나 졸리가 했던 말을 기억하면, 그렇다. “본드걸이라고요? 난 본드 연기를 해보고 싶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트>는 졸리에게 도전이다. 에블린 솔트는 안젤리나 졸리가 이제껏 맡아왔던 여장부 캐릭터의 핵심에서 벗어난 캐릭터다. 그 핵심이란 바로 ‘여자답게 보이는’ 것이다. 미세스 스미스는 남성들의 판타지라는, 남편의 하얀 와이셔츠 한장만 걸친 채 무기를 난사한다. 허벅지 안쪽에 총을 붙인 채 여자 몸의 부드러운 곡선을 최대한 돋보이게 하려는 <툼레이더>의 쫄쫄이 복장은 또 어떤가. “내가 이제까지 촬영한 영화에서는 액션 장면에 어김없이 ‘유혹’이란 요소가 존재했다. 여자이기 때문에.” 덕분에 졸리는 늘 우아하고 품위있는 동작을 사용하는, 섹시한 캐릭터를 연기했지만 ‘여’전사 대신 남자들과 대등한 위치에서 싸우는 전사가 되지는 못했다. <솔트>는 졸리의 이러한 갈증을 채워주었다. 진짜 요원이라면, 멋지게 보일 여유 따위는 없으니까. “너무 꾸미지도 않고, 체조처럼 보이지도 않으며, 너무 튀지 않는, 말하자면 그저 에블린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액션을 선보여야 했다.” <솔트>는 결코 여자에 대한 영화가 아니라고 졸리가 강조하는 이유다. 여성성을 내려놓은, 순도 100%의 거친 액션. 안젤리나 졸리가 에블린 솔트로부터 얻으려고 한 것은 바로 이러한 변화다.
‘여’전사가 아닌 전사로
마침내 ‘본드걸’이 아니라 ‘본드’의 지위로 등극한 이 여전사에게 무서울 것이 있겠나 싶지만, 앞으로는 이 궁극의 악녀를 자주 보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졸리는 얼마 전 <베니티 페어>와의 인터뷰에서 “연기를 오래 하지는 못하겠구나 싶다”라는 무시무시한 발언을 늘어놓았다. “집에 돌아가면 가족 모두가 음악을 틀어놓고 춤을 추고 있다. 어느새 이 재미있고 괴짜인 사람들 사이에서 춤추고 있는 나를 발견하면, 그 자체로 너무 행복하다.” 브래드 피트와 여섯 아이가 선사하는 기쁨을 만끽하며 “연기는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게 아니”라고 말하는 졸리의 차기작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니 뎁과 함께하는 <투어리스트>와 <나일강의 여왕, 클레오파트라>다. 감히 단언컨대, 이른 은퇴를 얘기하는 안젤리나 졸리의 짐작은 틀렸다. 파자마 차림에 슬리퍼를 신고 있다가도, 도전의 과제가 주어지면 언제든 침대를 박차고 나올 사람이 바로 그녀이기 때문에. 본질은, 거짓말을 하는 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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