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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의 뼈> Whale Bones
오에 다카마사/일본/2022년/88분/부천 초이스: 장편
<드라이브 마이 카> <간니발> <모두 잊었으니까>의 각본가로 명성을 구가 중인 오에 다카마사의 장편 연출작이다. 그가 <고래의 뼈>로 펼치는 이야기 역시 범상치 않다. 약혼녀와 헤어진 마미야는 데이팅 앱으로 만난 여자 고등학생의 죽음을 마주한다. 그런데 이 고등학생은 아직 세상에 살아 있다. 증강현실 애플리케이션 ‘Mimi’를 통해서다. 특정 장소에 자신의 영상을 저장하면 다른 이용자가 해당 위치에서 영상을 재생할 수 있는 앱이다. 죽은 고등학생은 아스카라 불리는 Mimi의 인기 이용자였다. 죽은 아스카를 여전히 사랑하는 팬들은 도심 속에 흩뿌려진 그녀의 영상을 찾아 헤맨다. 이에 마미야는 그들을 만나 단서를 얻고 점차 아스카의 과거에 다가간다.
아스카란 이름은 명백하게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동명 등장인물을 떠올리
BIFAN #2호 [프리뷰] 오에 타카마사 감독, '고래의 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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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취미생활>
하명미/한국/2023년/118분/코리안 판타스틱: 장편
박하마을 토박이인 정인(정이서)은 이혼 뒤 심신이 무너진 채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곳에서 평안을 얻으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할머니는 죽고, 그를 업어 키웠다는 마을 사람들은 그녀의 삶에 함부로 침입한다. 며칠 뒤 윗집에 이사 온 멋진 여자 혜정(김혜나)을 언니처럼 따르며 웃기도 하지만 마을 사람들의 무례는 끝도 없이 심해지고 폭력을 일삼던 전남편까지 나타나자 미소마저 잃는다. 결국 물심양면으로 돕겠다는 혜정을 곁에 두고 악순환의 고리를 직접 끊고자 결심한다.
동명의 유명 미스터리 소설이 원작인 <그녀의 취미생활>은 통쾌한 복수극은 아니다. 정인은 그와 같은 쇼를 펼치기에는 여전히 두려움이 많다. 그럼에도 행동하는 과정에 서린 짙은 페이소스가 긴 여운을 남긴다. 인물에 대해 또렷하고 사려 깊은 태도를 유지하는 연출이 신뢰감을 준다. 정인이 가정 폭력을 당하던 결혼 시절로
BIFAN #2호 [프리뷰] 하명미 감독, '그녀의 취미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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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댓.구>
박상민/한국/2023년/80분/코리안 판타스틱:장편
오태경, 그는 누구인가. 영화 <화엄경>에서 5천 대 1의 경쟁을 뚫고 주인공 선재 역으로 발탁된 이후 국민 드라마 <육남매> 맏아들 창희, <허준>의 아들 허겸, 영화 <올드보이>의 어린 오대수를 연기하며 고공행진 롤러코스터를 탄 듯했지만 아역배우 이미지가 굳어지면서 다양한 작품을 접할 기회가 줄어들었다. 카메라 앞에 서고 싶은 열망이 컸던 그는 이곳저곳을 전전하다 마침내 유튜브의 세계로 발을 들인다. 배우 오태경의 실제 배경으로 시작하는 영화 <좋.댓.구>는 다소 시끄럽고 산만한 유튜브 세계관으로 들어서며 이야기를 빠르게 전개시킨다. ‘리틀 오대수’의 줄임말 ‘BJ리오’로 활약하는 그는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것을 대신 해소해주며 주목을 끈다. 하루는 광화문에 선 피켓남의 정체를 밝혀달라는 소원이 접수되고, 그의 가족과 지인까지 동원해 사연을 파
BIFAN #2호 [프리뷰] 박상민 감독, '좋.댓.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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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키초의 탐정 마리코> Life of Mariko in Kabukicho
우치다 에이지, 가타야마 신조/일본/2022년/117분/매드 맥스
‘동양의 마굴’이라 불리는 가부키초 골목 안, 바와 탐정 사무소를 겸하는 ‘칼 몰’의 주인장 마리코가 주인공이다. 마리코를 찾아온 손님들의 이야기가 마치 <심야식당>의 플롯 구성처럼 흩어지는데 그들의 정체는 혼란스러울 정도로 각양각색이다. 부녀관계의 트라우마를 겪는 마리코, 닌자 가문의 후계자, 암살자로 훈련받은 자매, AV 배우인 딸과 그녀를 찾는 아버지, 미국으로 운송되던 중 탈출한 외계인의 이야기 등으로 난장이 펼쳐진다. 이러한 옴니버스식 구성 속에서 인물들의 인생사를 관통하는 세상살이의 애수, 인간관계의 아픔이 마리코를 중심으로 하여 안정적인 하나의 궤를 이룬다.
<벼랑 끝의 남매> <실종> <간니발> 의 가타야마 신조 감독, <살색의 감독 무라니시> <미
BIFAN #3호 [프리뷰] 우치다 에이지, 가타야마 신조 감독, '가부키초의 탐정 마리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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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친>
김수인/한국/2022년/104분/코리안 판타스틱: 장편
등교한 줄 알았던 여고생 유리(강안나)가 동반 자살했다. 사건을 맡은 오형사(오태경)와 팀원들은 다른 자살자들과의 연관성이 없는 유리를 중심으로 수사를 진행한다. 엄마 혜영(장서희)은 평소 마음에 들지 않던 유리 단짝 예나(최소윤)가 착한 딸을 나쁜 길로 이끌었고, 유리를 특히 신경 썼다는 담임 기범(윤준원)에게는 석연치 않은 무언가가 있다고 믿는다. 반면 유리가 엄마 때문에 힘들어했다는 걸 아는 예나와 기범은 혜영에게 어떤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독한 부모를 뜻하는 제목과 달리 <독친>은 나쁜 엄마를 표적 삼지 않고 사건과 관계된 인물 모두를 고루 오가며 유리 한 사람의 윤곽을 진중히 그려 나간다. 그 과정에서 가족을 필요로 하는 예나와 가족에게서 벗어나고 싶은 기범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곁들여 전체 서사를 탄탄히 구축한다. 자극적인 사건 앞에서 인물들이 과열되지 않도록 절제하고 중
BIFAN #3호 [프리뷰] 김수인 감독, '독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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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홀> #Manhole
구마키리 가즈요시/일본/2023년/100분/아드레날린 라이드
남부럽지 않은 직장에 다니며 사장 딸과 결혼을 앞둔 카와무라(나카지마 유토)의 인생에는 구멍이 없다. 대신 구멍에 빠진다. 결혼식 전날, 성대한 축하 파티를 하고 취한 채 걸어가다가 맨홀로 추락한 것이다. 눈 떠보니 다리는 아프고 사다리는 망가졌고 GPS는 먹통에 경찰은 답답하기만 하다. 가까스로 전 애인 마이(나오)와 연락이 닿으며 희망을 품지만 알 수 없는 거품까지 흘러들어오자 목숨을 부지할 방법을 서둘러 찾기 시작한다.
라이터와 넥타이 같은 소지품을 활용한 고전적인 생존법으로 몸을 푼 탈출영화 <맨홀>은 스마트폰을 활용한 자구책으로 독자적인 길을 간다. SNS에 도움을 요청하는 계정을 만든 주인공과 유저들이 빠져나갈 방안을 함께 마련하는 과정이 속도감 있게 펼쳐져 몰입감을 준다. 카와무라가 올린 사진과 동영상만으로 그의 현 위치를 빠르게 좁혀나가는 유저들의
BIFAN #3호 [프리뷰] 구마키리 가즈요시 감독, '#맨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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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소녀> The Artifice girl
프랭클린 리치/미국/2022년/93분/부천 초이스: 장편
“헤이 시리, 옳은 것과 틀린 것은 어떻게 구분하지?” AI에게 많은 질문을 건네고 그에 대한 답을 구하는 디나(신다 니컬스)는 온라인 아동 포르노의 가해자를 추적하기 위한 AI 시스템이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어린 소녀의 영상 이미지를 활용한 AI 체리(테이텀 매튜스)는 초기 목적과 달리 독립적으로 사고하는 능동적 단계로 발전하게 된다. 어느덧 10년의 시간이 흐르지만 인간보다 오래 생존하고 늙지 않는, 하지만 계속해서 시스템 발전을 거듭하는 체리를 두고 영화는 AI 활용에 대한 윤리의식이나 도덕적·규범적 책임을 다각도로 비추며 묻는다. A.I. 개발자는 이제 체리를 자신의 자식처럼 여긴다. 직접 만날 수도 손으로 만질 수도 없는 존재와의 관계가 일상 곳곳에 스며들수록 갈등과 불안은 모순적으로 더 커진다. 이처럼 <A.I. 소녀>는 다양한
BIFAN #4호 [프리뷰] 프랭클린 리치 감독, 'A.I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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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심장을 받아줘> With Love and a Major Organ
킴 올브라이트/캐나다/2023년/92분/메리 고 라운드
생각할 필요도 없이 앱이 정해준 대로 살면 되는 근미래의 직장인 애나벨(안나 맥과이어)은 튄다. 느끼는 대로 행동하고 직접 인연을 맺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소원은 공원에서 무감각한 남자 조지(함자 하크)를 만나면서 이뤄진다. 여자는 첫 만남에 사랑에 빠지지만 애석하게도 남자는 여자와 같은 마음이 아니다. 자신에게 이별을 고하는 조지에게 애나벨은 자기 심장을 보낸다. 몸 안에서 펄떡펄떡 뛰는 진짜 심장을 말이다.
로맨틱 코미디 <내 심장을 받아줘>는 말 그대로 다채로운 영화다. 의상부터 공간까지 극에 쓰이는 모든 색을 창의적이고 치밀하게 조합해 독특한 분위기를 낸다. 심장을 꺼낼 때마다 뿜어져 나오는 오묘한 보라색이 대표적이다. 배우 애나 맥과이어의 유쾌하고 쓸쓸한 매력이 살아있는 연기는 이 영화의 강점으로 작용한다. 친구,
BIFAN #4호 [프리뷰] 킴 올브라이트 감독, '내 심장을 받아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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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씨딩> The Seeding
바나비 클레이/미국/2023년/95분/부천 초이스: 장편
남자 등산객이 황무지를 헤맨다. 그리고 우연히 만난 소년을 쫓는다. 그러다가 사막 한가운데 구덩이에 갇힌다. 사방은 암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안엔 외딴 오두막이 하나 있다. 오두막엔 성인 여성 한 명이 살고 있다. 어떻게든 바깥으로 탈출하려는 남자와 달리 여자는 이미 구덩이 속 일상에 익숙한 것처럼 보인다. 남자는 연신 구덩이를 오르려 하지만 구덩이 위에서 나타난 정체불명의 소년들이 그를 방해한다. 심지어 소년들은 남자와 여자에게 생필품과 음식을 내려주며 사육하듯 관리한다. 남자는 이러한 일상에 적응하는 듯하다가도 종종 찾아오는 공포감과 무력감, 분노를 이기지 못한다. 종국에 인물들의 갈등은 격해지고 남자의 심신은 되돌릴 수 없을 만큼 피폐해진다.
데시가하라 히로시의 <모래의 여자>를 참고한 듯한 우화 영화다. <모래의 여자>처럼 사회의 젠더 구조를 모래
BIFAN #5호 [프리뷰] 바나비 클레이 감독, '더 씨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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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코> Amiko
모리이 유스케/일본/2022년/105분/저 세상 패밀리
거침없는 초등학생 아미코(오사와 카나)는 자기 손으로 즐거운 나의 집을 끝장낸다. 유산 이후 맥없어진 엄마(오노 사치코)를 위로하고자 죽은 동생의 묘비를 만들었는데, 그걸 본 엄마가 완전히 무너져 회복 불가능한 상태가 된 것이다. 오빠는 이탈하고 부모는 무력해져 집이 폐허가 됐음에도 불구하고 세상 탐구에 열심이던 어느 날, 아미코는 베란다에서 이상한 소리를 듣고 동생의 유령이 찾아왔다고 생각한다.
평화로운 해변 마을이 배경인 <아미코>는 뜻밖에도 관객을 불편하게 한다. 아미코의 순수함과 아이가 초래한 주변인들의 불행을 끊임없이 마찰시키는데, 그 과정에서 생기는 기묘한 전조로 사람을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하는 연출력이 돋보인다. 초반 묘비 사건 이후 아미코가 언제 또 돌출 발언이나 행동을 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은 내내 팽팽한 긴장감을 자아낸다. 아이가 혼자 있는 장면조차 마음 졸
BIFAN #6호 [프리뷰] 모리이 유스케 감독, '아미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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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버시> Privacy
수디프 칸왈/인도, 미국/2023년/85분/메탈 누아르
뭄바이에 사는 루팔리(라지슈리 데슈판데)는 화면 밖을 벗어나서는 안 된다. 감시통제센터 요원이 그의 직업이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그걸 잘 알고 있지만 직접 현장에 나가 수사하고 범인을 내 손으로 잡고 싶다는 욕망을 막을 길이 없다. 그 갈망은 CCTV 너머로 강도살인 사건의 실마리를 찾으면서 들끓는다. 결국 모니터 앞을 지키라는 상사의 경고를 한 귀로 흘리고 혼자서 진상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프라이버시>는 압도적인 캐릭터 영화다. 목표에 무섭도록 집중하며 필요하다면 자신까지 미끼로 쓰는 주인공의 카리스마를 동력 삼아 전진한다. 카메라는 종일 모니터링을 하다 남몰래 현장을 둘러보고 유력 용의자를 미행하다가 귀가해서도 CCTV 화면 앞에 앉는 투철한 직업인의 일거수일투족을 보여준다. 영화가 가진 흡인력의 상당 부분은 루팔리를 연기한 배우 라지슈리 데슈판데에게서 나온다. 적은
BIFAN #6호 [프리뷰] 수디프 칸왈 감독, '프라이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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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5>
박재인/한국/2023년/105분/코리안 판타스틱: 장편
남북통일 10주년을 맞은 가상의 2035년 한국이 배경이다. 대형 산불로 인해 북한 주민들이 남한으로 대거 피난했고, 남한이 이들을 도운 일을 계기로 통일이 이뤄진 상황이다. 그런데 미국 방송국에서 일하는 한국인 스티븐과 그의 후배 김덕정이 과거 통일 과정에서 석연찮은 지점을 발견한다. 산불의 원인이 불명확한데다가 당시 상황을 제대로 증언하는 이가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당시 사건의 북한 측 관계자들은 행적을 감추고 있다. 두 사람은 10년 전 사건과 관련된 북한 이주민들의 증언을 듣기 위해 취재를 이어간다. 그 결과 통일을 이룩한 산불의 시작이 북한의 핵 연구와 연관돼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2035>의 핵심은 엉성한 듯하지만 교묘하게 잘 짜인 구성과 연출에 있다. 우선 촬영 측면에서 영화는 두 기자의 캠코더 촬영본을 기본으로 삼아 조악하게 느껴지는 영상을 보여준다. 그러나 촬영
BIFAN #7호 [프리뷰] 박재인 감독,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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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사회>
김병준/한국/2023년/107분/코리안 판타스틱: 장편
영길은 도박중독자다. 그를 사랑하고 믿어주는 아내 하림과 장모의 기대와는 영 딴판인 인간이다. 급기야 그는 사채에까지 손을 대 허구한 날 카지노 룰렛을 돌린다. 결과는 늘 쪽박이다. 도박에 빠진 건 영길만이 아니다. 교사인 진수 역시 도박으로 진 사채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빚이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나자 사채업자는 그의 신변을 위협한다. 이런 상황에서 영길과 진수는 카지노 근처에서 우연히 만난다. 서로의 처지를 파악한 둘은 묘한 동행을 시작하며 함께 사채에서 벗어날 방법을 강구한다.
<위험사회> 속의 카지노는 가령 마틴 스코세이지의 영화에서 봤던 쿨하고 멋들어진 장소가 아니다. 도박으로 피폐해진 이들이 자신의 삶을 더 피폐하게 만드는 구렁텅이일 뿐이다. 주인공 영길의 일상은 지리멸렬하다. 도박으로 돈을 몽땅 잃은 후 카지노 근처를 빙빙 돌며 사람들에게 차비를 동냥하는 게 하루의
BIFAN #7호 [프리뷰] 김병준 감독, '위험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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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이렇게 많은 영화제가 있었나. <이 중에 네가 좋아하는 영화제 하나는 있겠지>. 직관적인 제목을 담은 이 책을 읽다 보면 자신이 살아온 고향에서도, 지금 사는 동네에서도 작은 영화제가 열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부산국제영화제나 칸영화제처럼 유명한 영화제보다는 작지만 분명한 색깔을 가진 내실 있는 영화제들을 직접 발로 누비고 취재한 작가의 생생한 경험담이 실려 있다. 이 책을 쓴 김은 작가는 1990년대 신도필름에서부터 영화 수입 및 제작, 투자, 배급 업무를 두루 거치다 홍보 대행사 아담스페이스를 이끌며 영화는 물론 전시, 공연, 문화재 등 다양한 콘텐츠를 알리는 일을 했던 마케터 출신이다. 영화에 관한 거의 모든 일을 경험한 그가 특히 영화제에 주목한 이유에 대해 들었다.
- 책을 쓰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 2017년쯤 넷플릭스가 한국에 진출하면서 일종의 변혁기가 시작됐다. 같이 영화 일을 했던 후배들과 함께 콘텐츠를 만들어보자며 유튜브 채널을
[인터뷰] 영화제는 우리 곁에 있다, ‘이 중에 네가 좋아하는 영화제 하나는 있겠지’ 김은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