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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핍과 경험은 성장의 좋은 밑거름이다. 배우 유수빈은 이미 <사랑의 불시착>, <인간실격>, <스타트업>, <D.P.> 시즌2 등 여러 작품에서 활약했음에도 여전히 자신의 연기가 모자라고 아쉽다고 고백했다. 성장이란 스스로의 부족함을 인지하는 결핍과 갈망에서부터 출발한다. 수줍게, 하지만 명료하게 자신의 생각을 말로 옮기는 이 신중하고 듬직한 배우의 원동력 역시 ‘더 잘하고 싶은 마음’에 있다. <거래>에서 홀로 고립된 납치 피해자 역은 늘 팀의 일부로 활약했던 그에게 새로운 도전이었다. 언젠가 연출에도 도전하고 싶다는 그는 좋은 이야기를 찾아내는 눈과 거기에 생기를 부여할 줄 아는 성실함을 지닌 배우다. 모자람을 알고 새로운 경험을 추구하는 그는 배우로서 무럭무럭 자라는 중이다.
- 민우는 처음엔 납치극의 피해자였는데 점점 한편이 되는 것처럼 보이는 독특한 캐릭터다. 그의 선택에 따라 상황은 더 엉망이 되고, 이야기는 점
[인터뷰] 청춘의 표상, ‘거래’ 유수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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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생 재효는 모종의 이유로 학교에서 퇴학당할 위기에 처한다. 재효는 갓 전역한 준성(유승호)을 민우(유수빈)와의 술자리에 부른 뒤 민우가 인사불성으로 취하자 자신의 자취방에 민우를 납치, 감금한다. 그리고 민우 엄마(백지원)에게 몸값으로 현금 10억원을 요구한다. 배우 김동휘는 그런 재효를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스스로를 세뇌하는 캐릭터”라 요약했다. 하지만 재효와 달리 김동휘는 재효의 궤적을 시청자에게 납득시키기 위한 수많은 연기적 근거를 마련해두고 있었다.
- 재효와 준성은 오랜 친구였다가 범죄의 공범이 되고 또 서로의 눈엣가시가 된다. 두 사람의 사이를 어떻게 규정했나.
= 준성이 전역 당일 재효를 만나러 온 걸 보면 두 사람은 둘도 없는 친구였을 것이다. 그래서 둘의 관계가 계속해서 변해도 단짝이라는 점은 가져가려 했다. 재효가 준성을 납치극에 끌어들인 이유 또한 준성을 진심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혼자 저질러도 되는 범죄지만 준성의 상황도 여의치 않으니 그냥
[인터뷰] 주도하고 계획한다, ‘거래’ 김동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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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출발을 하고 싶은 어떤 절박함이 있는 거다.” 유승호는 <거래>의 준성을 그렇게 묘사했다. 배우 자신의 인상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다. 웃을 때면 사정없이 휘어지는 반달눈과 소년 같은 미소는 여전하지만, 표정을 거두고 난 유승호의 얼굴엔 무엇이든 쉽게 담판 짓지 않으려고 고민하는 인간의 우수가 묻어나온다. 5살에 데뷔해 31살이 된 지금, 유승호는 “가장 나다운 모습으로 존재할 수 있어서” 택한 배우의 일에 여전히 혼란해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그는 어느새 해사한 얼굴 뒤에 걸린 짙은 그림자를, 중후하게 나이 들 미래를 궁금하게 하는 배우가 됐다. KBS 사극 <꽃 피면 달 생각하고>(2021) 이후 첫 OTT 시리즈에 진입해 30대의 새 행로를 개척 중인 유승호를, <봉이 김선달>(2016) 이후 7년 만의 <씨네21> 인터뷰로 만났다.
- 이정곤 감독의 전작 <낫아웃>에서 정재광 배우가 보여준 반골 기질의 이미지가
[인터뷰] 이유 있는 딜레마, ‘거래’ 유승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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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21일 대한민국 국회는 최초로 ‘국무총리 해임건의안’과 ‘국회 단독 과반 정당의 현직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가결했다. 총리 해임건의는 현 정부 국정운영의 총체적 실패를 사법적 또는 헌법적 차원에 이르기 전의 한도에서 최대치로 선고하는 것이다. 대통령이 불수용하면 그의 막돼먹음과 옹졸함만 부각되고, 이 역시도 총체적 국정 실패의 근거가 된다. 체포동의의 결과는 ‘구속’이 아니라 ‘구속영장 실질심사’다. 제1야당 대표의 주변에서 거대 부패사건들이 벌어졌던 것은 사실이니 그의 책임을 놓고 중간 판단이 필요했다. 거대양당의 당론이나 다수 의견은 하나만 찬성하고 다른 하나는 반대하는 것이었지만, 다들 가결돼 이 사안들에서 나같은 시민들은 그들보다 더 크게 이겼다. 둘 다 찬성한 시민들이 거대양당을 역이용해 전승을 거뒀다. 이런 날이 언제 있었더라.
2010년 기초의원으로서 구미시 박정희 기념사업을 반대했을 때, 사퇴를 요구하는 친박단체, 면전에서 비난하는 지역 유지, ‘생매
[김수민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주유소 습격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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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면 꿈을 꾼 것 같다. 지난 4년간 다큐멘터리 13편을 취재·연출했다. 이들 중에는 세상에 내놓을 정도는 된다고 여기는 것도 있고 그보다는 부끄러움이 앞서는 경우도 있다. 칸영화제 취재기처럼 한달 만에 급조한 것도 있고 오랜 기간 땀과 눈물을 흘리며 인류의 위기를 걱정한 특집 다큐멘터리도 있다. 모두 초저예산 독립영화 수준의 제작비와 가차 없는 제작 기간 속에 낳은 자식 같은 아이들이다. 산고는 대개 화면엔 드러나지 않는다. 난관의 시작은 카메라 앞에 등장인물을 모시는 과정부터다.
주제에 맞는 인물을 찾더라도 대중 앞에 나서겠다는 이는 몹시 드물다. 비슷한 일을 겪은 다른 분을 찾아내더라도, 제작 기간 내 서로 일정이 맞지 않기 일쑤다. 세상 모든 영상 제작자에게 코로나19는 누구도 겪어본 적 없는 제약을 가져왔다. 무슨 수를 쓰든 그분을 만나야 해. 어떻게든 만나서 그 말 한마디를 받아야 한다. 가까스로 카메라 앞에 세웠는데, 전화로 나눴던 말씀을 촬영 중에는 왜 안 하
[비평] 다중몽(多重夢), ‘거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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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를 납치할 수밖에 없었던 두 남자와 친구들에게 납치당한 남자. <거래>는 이 기구한 소동에 발 묶인 친구라는 이름의 낯선 자들에 대한 이야기다. 경쾌한 스포츠물의 동료이거나 우정 맺힌 청춘물의 일원일 수도 있었던 유승호, 유수빈, 김동휘는 비좁은 자취방에 갇혀 서로를 묶고 묶이는 처량한 현실을 살아내기로 한다. 그들은 속고 속이는 스릴의 방아쇠를 쥘 때조차 누구 하나 머뭇대는 법 없이 차례로 팽팽히 겨눈다. 10월6일 웨이브에서 공개되는 8부작 납치 스릴러 <거래>의 끈끈한 삼각관계를 소개한다. 친구, 인질, 공범을 오가는 세 남자의 속사정. 들여다볼수록 퍽 절박하고도 흥미롭다.
*이어지는 기사에서 <거래>의 유승호, 유수빈, 김동휘 배우와의 인터뷰가 계속됩니다.
[커버] 세 남자의 속사정, ‘거래’ 유승호, 김동휘, 유수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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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지 스콜리모프스키의 놀라운 걸작 <당나귀 EO>를 말하기에 앞서, 이 작품이 두번의 오마주를 거친 결과물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당나귀 EO>가 각색한 <당나귀 발타자르>는 로베르 브레송이 도스토옙스키의 <백치>를 각색했다고 밝힌 영화다. 브레송은 <백치>의 주인공 미쉬킨이 당나귀에 관해 말한 짧은 대목을 읽고, 아예 미쉬킨을 당나귀로 치환한 새로운 서사를 착상했다. 하지만 <당나귀 발타자르>는 <백치>와 무연하다고 봐도 무방한 독자적 작품이다. 갑작스레 상속된 유산, 공원의 벤치 장면 등 원작을 연상하는 요소가 엿보이지만 그 정도 유사성은 다른 작품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여기에는 도스토옙스키의 장기인 시끌벅적한 난장판과 과장된 만화적 유머 감각 대신 평론가 폴린 케일을 질색하게 했던 지독한 엄숙주의가 있다. 우리는 <백치>를 각색했다는 브레송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서로 다른
[비평] 죄의식 대신 물질의 흐름에 집중한 시청각적 환상곡, '당나귀 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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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출장은 유독 시차 적응이 되지 않았다. 아무리 커피를 들이부어도 금세 의식이 넘어가 꾸벅꾸벅대다가 그대로 꼬꾸라질 것만 같았다. 걷고 있는 내 발에 닿는 것이 땅인지 매트리스인지 모를 감각으로 무대 인사를 하러 시네테카에 갔다. 행사까지 시간이 떠서 다른 팀원들은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가고 나는 혼자 극장 앞 벤치에 앉아 눈을 감았다. 강렬한 햇볕에 눈을 감아도 여전히 눈이 부셨다. 선선한 바람에 머리카락이 자꾸 얼굴을 간지럽혔다. 그렇게 졸다 보니 시간이 다 되었다. 조용한 관객들은 이 선선한 바람처럼 극장에 흘러들어갔나.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기에 분명 아주 적은 관객이 들었을 것이라는 직감이 들었다. 적은 관객이지만 깊은 인사를 나누자 마음을 다잡았다. 프로그래머와도 간단한 인사를 나눈 뒤 상영관에 들어섰는데 이런. 단 한명의 관객도 있지 않았다. 텅 비어 있는 극장에 당황스러운 기시감이 들었다. 아주 오래도록 꾸었던 악몽의 실물을 이렇게 마주하다니. 에이, 아닐 거야. 애
[김세인의 데구루루] 너그럽게 열린 극장 문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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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취적인 단편영화를 발굴해 창작자의 의욕을 고취시키는 ‘제15회 대단한 단편영화제’가 9월7일부터 12일까지 총 6일간 진행됐다. 9월7일, KT&G 상상마당 시네마에서 KT&G 사회공헌실 심영아 상무의 개막 선언과 함께 축제의 막이 올랐다. 올해는 총 601편이 출품됐고 예심을 거쳐 25편의 영화가 본심에 올랐다. 예선 심사에 참여한 형슬우 감독의 “새롭게 등장한 배우와 감독님들을 기대해달라”는 소감 뒤로 “최선을 다해 마음이 가는 작품을 선정하겠다”는 본선 심사위원들의 포부가 이어졌다. 올해 본선 심사위원은 이종필·한준희 감독, 공민정·유승목 배우 등 감독 2인, 배우 2인으로 구성됐다. 개막작으로 선정된 한준희 감독의 <시나리오 가이드>와 이종필 감독의 <달세계여행>이 상영된 뒤 장소를 옮겨 개막파티가 시작됐다. 상영작 감독들뿐만 아니라 심사위원, 예술영화관, 매니지먼트와 단편·장편 배급사 등 관계자들이 다수 참석했다. 밝은 분위기 속에
[리뷰] ‘대단하게, 재미있게!’ 제15회 대단한 단편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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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영화 <집으로…> 이후 매년 빼곡하게 필모그래피를 채워가던 시절의 유승호를 만났다. 늦은 오후 한강 둔치에서 만난 그는 곧 치를 중간고사를 걱정하고 현장에서 감독님에게 혼나는 것을 두려워하는, 영락없는 14살의 싱그러운 소년이었다.
[ARCHIVE] 유승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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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ST’는 매주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에게 취향과 영감의 원천 5가지를 물어 소개하는 지면입니다. 이름하여 그들이 요즘 빠져 있는 것들의 목록.
가을 하늘 보기
가을이 선사하는 하늘을 맘껏 쳐다보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매년 가장 좋아하는 일.
책 <아침의 피아노>
지난해 봄에 만난 책이다. 올가을에 다시 읽고 싶어 꺼내 읽는 중이다. 문장들은 짧지만 마음에 이는 공명은 그 어떤 글보다 깊게 닿는다. 아끼는 누군가에게 선물을 해야 한다면 이 책을 전해주면 어떨까
최백호의 <바다 끝>
단연 취미라 자신 있게 꼽을 수 있는 것은 ‘음악감상’이다. 몸이 지친 날에도 귀만은 피곤하지 않다. 덩그러니 누워 두눈을 꼭 감고 노래를 듣는다. 다소 소란한 곳이라도 노이즈 캔슬링을 통해 조용한 세상을 구축할 수 있다. 최근 가장 많이 들은 곡은 최백호님의 <바다 끝>.
아이스라떼
요즘 아이스라떼를 좋아하게 됐다. 집 근처 카페에
[LIST] 전여빈이 말하는 요즘 빠져 있는 것들의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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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 앤더슨의 <기상천외한 헨리 슈거 이야기> 외
넷플릭스 ▶▶▶▶▷
올해 <애스터로이드 시티>로 다시금 도약한 웨스 앤더슨이 로알드 달의 단편소설을 원작으로 한 네편의 영화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했다. 40분가량의 <기상천외한 헨리 슈거 이야기>를 비롯해 15분 남짓한 <독> <백조> <쥐잡이 사내>가 그것이다. 개별로 떼어놓고 봐도 근사하지만 단숨에 재생할 때 훨씬 연결된 묘미를 만끽할 수 있다. 베네딕트 컴버배치, 데브 파텔, 루퍼트 프렌드, 리처드 아이오아디 등이 작품별로(또는 작품 안에서도) 자리를 옮겨가며 내레이터가 되어 관객을 분할된 픽션의 세계로 안내한다.
<해리의 소동>
시리즈온, 왓챠 ▶▶▶▶
잭 트레버의 소설을 영화화한 앨프리드 히치콕의 <해리의 소동>은 감독 자신이 제일 좋아한 작품이었다. 피상적으로는 우스꽝스러운 촌극이지만, 그 가벼운 외피 안에 쉽게 덤비지 못
[OTT 추천작] ‘기상천외한 헨리 슈거 이야기’, ‘해리의 소동’, ‘귀를 기울이면’, ‘피아니스트 이고르 레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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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 감독·각본 이충현 / 출연 전종서, 김지훈, 박유림 / 플레이지수 ▶▶▶▷
중학교 동창인 옥주(전종서)와 민희(박유림)는 성인이 되어 우연히 재회한다. 옥주는 경호원이 되었고, 민희는 발레리나가 되었다. 이 둘은 떨어져 지낸 시간을 채우고도 남을 만큼 깊고 농밀한 우정을 나눈다. 모처럼 민희의 전화를 받고 민희의 집으로 향한 옥주는 그곳에서 민희의 사체와 친필 유서를 발견한다. “꼭 복수해줘. 왠지 너라면 할 수 있을 것 같아서”로 시작하는 유서엔 민희가 당한 참변의 원인으로 보이는 최 프로(김지훈)의 SNS 계정이 적혀 있다. 옥주는 뒷조사와 미행을 통해 최 프로가 불법 약물을 밀거래하고 클럽에서 젊은 여성들을 그루밍(심리적으로 지배한 뒤에 성적으로 착취를 일삼는 행위)하는 악질임을 알게 된다. 그리고 옥주는 민희가 성범죄 피해자임을 알게 된다. 옥주는 친구를 앗아간 범죄자에게 잔혹한 지옥을 선사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최 프로에게 접근한다.
눈이 즐거운 프로덕션
[OTT 리뷰] ‘발레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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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독 은퇴를 선언했던 미야자키 하야오가 10년 만에 복귀한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소년과 신비의 동물 왜가리가 펼치는 판타지 어드벤처다. 11살 소년 마히토는 화재로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는 죽은 어머니를 닮은 어머니의 여동생 나츠코와 재혼한다. 그리고 마히토와 아버지는 어머니의 고향에 있는 저택에서 살기 시작한다. 낯선 집과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으로 힘든 나날을 보내던 마히토 앞에 정체불명의 왜가리가 나타난다. 인간의 언어로 말을 하는 왜가리는 저택 옆에 있는 탑으로 홀연히 날아가버리고, 마히토는 저택에서 일하는 일곱 할멈으로부터 이 탑에 얽힌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리고 어느 날, 돌연 자취를 감춘 나츠코의 실종으로 저택은 소란스러워진다. 마히토는 새엄마를 찾기 위해 왜가리가 이끄는 대로 시공간을 초월한 탑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인생과 그동안 선보였던 작품을 집대성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 개봉 4일 만에 <센과 치히로의
[Coming soon]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