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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삶이 선사하는 놀라운 우연성을 담아, <와일드 로봇> 크리스 샌더스 감독, 배우 루피타 뇽오
유선아 2024-10-03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가사도우미 로봇 로즈(루피타 뇽오)가 야생의 섬에 불시착한 후, 가족을 잃은 아기 기러기 브라이트빌(키트 코너)의 보호자가 된다. 기계와 자연은 영화에서 으레 대립 관계에 있어왔다. 그러나 <릴로 & 스티치> <드래곤 길들이기>를 만든 크리스 샌더스 감독의 신작 <와일드 로봇>에서는 또다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로봇과 동물이 풀숲 우거진 외딴섬에서 가족과 친구가 되어 만난다. 각색과 연출을 맡은 크리스 샌더스 감독과 로즈의 목소리를 연기한 배우 루피타 뇽오에게 원작에서 애니메이션에 이르는 작업 과정과 고민, <와일드 로봇>을 바라보는 시선을 물었다.

루피타 뇽오

- 원작의 일러스트레이션에서 시작해 지금의 드림웍스 작화로 발전시키기까지 무엇을 중점적으로 고려했나.

크리스 샌더스 처음 원작을 읽었을 때 대단히 정교한 이야기라 생각했고 내 상상 속에서도 섬세한 이미지가 펼쳐졌다. <장화신은 고양이: 끝내주는 모험>이나 <배드 가이즈> 시리즈 같은 기존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의 일러스트레이션 스타일에서 더 나아가고 싶었고, <와일드 로봇>을 통해 인상주의 회화와 부드러운 붓 터치의 질감을 표현하려 의도했다. 이 작품이 지금까지의 컴퓨터그래픽 영화처럼 되지 않길 바랐다.

- 원작자 피터 브라운과 <와일드 로봇>을 함께 썼다. 각색의 주안점은 무엇인가.

크리스 샌더스 피터 브라운의 원작이 가진 핵심을 온전히 스크린으로 옮기는 데 집중했다. 어떤 부분은 캐릭터를 축소하여 단순화하기도 했고 관객이 놀랄 만한 변화를 주기 위해 이야기에 복잡함을 더하기도 했다. 각색이 어떻게 이루어지든 원작의 중심 주제를 놓치지 않으면서도 영화적 스케일이 느껴지는 작품이 될 수 있도록 이야기를 확장했다. 이 과정에서 브라이트빌의 성장이 강조됐다.

- <와일드 로봇>은 우화적이고 은유적인 성격이 강한 SF애니메이션이다. 당신은 로즈를 어떻게 보았나.

크리스 샌더스 인간이나 인간성에 관한 좋은 이야기는 때로 비인간 캐릭터로 말할 때 가장 완전해진다. 이게 내가 로봇 영화에서 놀랍다고 느끼는 점이다. 로봇은 사람일 수도 있고 동물일 수도 있다. <와일드 로봇>에 등장하는 모든 비인간 캐릭터가 보이는 그대로일 거라 생각지 않는다. 이들은 인간의 감정과 실패, 식욕과 충동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내게 그들은 모두 작은 인간이다. 그렇기에 영화 속 캐릭터와 그 사연에 누구나 쉽게 접속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루피타 뇽오 로즈에게는 사랑하지 않고는 못 배길 순박함이 있다. 또 지적이고 정교한 캐릭터로 많은 가능성이 잠재한다. 섬에 도착했을 때는 새것이었지만 숲에서 지내며 점점 흠집이 생기는데 그런 일에서조차 로즈는 많은 것을 배운다. 그는 경험하고 알아가며 성장하는 캐릭터다. 정말로 부모가 되기 전까지는 누구도 어떻게 부모가 되는지 모르며 로즈도 마찬가지다. 어떤 면에서 <와일드 로봇>은 누구나 처음일 수밖에 없는 부모가 되어가는 과정을 찬미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 <정글북> 이후 두 번째 목소리 연기다. <와일드 로봇>의 로즈 역을 수락한 이유는.

루피타 뇽오 피터 브라운이 쓴 원작을 읽었는데 그 이야기가 가진 풍성한 상상력에 사로잡혔다. 이런 이야기는 시대를 타지 않는다. 배우로서도 로봇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에 흥미가 생겼다. 로즈는 독립체이긴 하나 생명체가 아니라 기계이기 때문에 감정을 드러내는 방식을 고민해야 했다. 로즈가 경험하는 발견과 변화가 목소리를 연기하는 내게 도전하는 즐거움을 안겨줄 거라는 기대도 있었다.

크리스 샌더스

- 사람이 아닌 캐릭터의 목소리를 연기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면.

루피타 뇽오 로즈에게는 영혼과 마음, 감정이 없다. 그가 느끼는 것을 감정적으로 표현해야 한다는 생각에 빠지면 안됐다. 대신 감정을 가진 동물의 행동을 모방함으로써 감정을 지닌 것처럼 보일 수는 있다. 대본을 고치는 과정에서 많이 나눴던 이야기인데 나는 로즈에게 감정이 없다는 설정을 저버리고 싶지 않았다. 표정 없는 로봇에게서 보이는 감정은 대부분 관객이 로즈를 향해 투사하는 것이다. 내 감정에 의존해 로즈를 해석하고 표현하는 일을 가장 경계해야 했다.

- 영화 전반에 액션 장면이 상당히 고르게 분포되어 있다. 그 이유는.

크리스 샌더스 영화의 밸런스 때문이다. 이 작품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들기로 결정하기에 앞서 스토리 스케치 작업을 먼저 시작했는데 무엇을 덜고 더할지 결정하는 과정은 꽤 무자비하게 이뤄졌다. 쓰고, 각본을 읽어보고, 스토리보드를 짜는 오랜 과정에서 몇번이고 들여다보며 반복적이거나 균형을 깨는 요소를 지워나갔다. 드라마와 액션의 균형과 영화 전반의 속도를 공들여 심사숙고했다.

- 목소리 연기를 하는 동안 마음을 가장 크게 움직인 장면을 꼽는다면.

루피타 뇽오 브라이트빌이 철새를 따라 이동하는 장면이 가장 감동적이었다. 왜냐하면 모든 부모는 아이가 세상을 스스로 살아가도록 가르치고 자립하길 바라면서도 언젠가 힘든 작별을 고해야 하는 순간이 오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니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웃음) 가족을 떠났는데 부모님은 나를 보내면서 어떤 마음이었을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분명 아주 어려운 일이었을 거다.

- <와일드 로봇> 작업이 당신에게 남긴 유산은 무엇인가.

루피타 뇽오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 처음 <와일드 로봇>을 보았는데 이 영화가 얼마나 많은 것을 아우르고 있는지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이 작품에는 진심이 어려 있고 나는 어쩔 수 없이 그런 것에 끌린다. 삶의 어떤 시기가 가혹했더라도 진심이 있었다는 것만으로 가치는 있다. 크리스 샌더스를 비롯한 존경하는 창작자들과 함께 작업한 경험은 나를 최고의 모습으로 끌어낼 수 있었던 경험이었다.

크리스 샌더스 “삶은 알 수 없지”라는 대사는 내가 썼다. 우리는 많은 것을 계획하지만 우연 역시 적잖게 일어난다. 나는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어느 대학에 가야 할지 몰랐다. 어느 날 할머니께서 지역 신문을 읽고 계셨는데 캘리포니아 예술학교에서 애니메이터를 양성한다는 기사가 실려 있었다. 그날 저녁에 할머니가 본 한 토막의 기사가 내 인생 전체의 행로를 바꾸었다. 할머니가 신문을 읽지 않았더라면 <릴로 & 스티치>도 없었을 거다. 우연은 미미할지라도 결과는 엄청나다. 내 삶은 아주 작고 사소한 일로 크게 변했고, 이 영화에 바로 그런 놀라운 우연성을 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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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유니버설 픽쳐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