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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정전 70주년을 맞이했지만 한국전쟁이 남긴 상흔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여기, 폭력과 죽음의 현장을 제 발로 직접 뛰어다니고 제 손으로 직접 매만지며 역사적 상흔을 기억하고자 하는 이들이 있다. 이들의 목표는 희생자들의 유해를 찾아 유족의 품으로 돌려주는 것이다. 이 발굴단원들의 여정을 4년간 동행한 허철녕 감독의 다큐멘터리 <206: 사라지지 않는>에서 206은 인간을 구성하는 뼈의 개수를 의미하는데, 애초 희생자들의 206개의 온전한 뼈를 찾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그 역설에서 비극이 극대화된다. 나이도, 사는 곳도, 직업도 제각각인 이들은 어떻게 유해 발굴 작업에 참여하게 된 것일까. 이는 십수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 2005년, 국가기관으로 출범한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1기는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 문제를 조사하며 유해 매장지를 찾고 유해를 발굴하는 등의 활동을 했지만, 여러 외부 요인으로 인해 2010년 활동을 종료한다. 이에
[리뷰] ‘206: 사라지지 않는’, 환상통처럼 사라지지 않는 시대의 아픔을 기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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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야생동물을 찍는 다큐멘터리 감독 존과 요리사인 몰리는 결혼한다. 샌타모니카의 한 비좁은 아파트에서 살림을 시작한 부부에겐 꿈이 있었다. 그 꿈은 자연과 완벽한 조화를 이룬 전통식 농장을 만드는 것. 여의치 않은 현실의 벽 앞에서 부부는 한 생명을 만나며 꿈에 가까워진다. 존은 집 안에 200마리의 개를 기르고 사는 애니멀 호더를 촬영하다 초대형 견들과 지내는 개 ‘토드’를 발견한다. 부부는 안락사에 처한 토드를 입양하며 함께 살기로 한다. 하지만 부부가 집을 비우면 토드가 짖기 시작했고, 집주인은 퇴거 통지를 한다. 그렇게 부부는 도시를 떠나 24만평의 황무지를 구해 ‘애프리콧 레인 팜스’란 농장을 운영하기 시작한다.
<위대한 작은 농장>은 황무지를 생명이 넘치는 농장으로 일군 부부의 8년간의 기록을 담은 다큐멘터리영화다. 부부의 우선 과제는 죽은 토양을 되살리는 것이었다. 부부는 전통 농법 전문가 앨런 요크의 도움을 받는다. 앨런은 자연 생태계의 섭리를 모방하
[리뷰] ‘위대한 작은 농장’, 미래세대를 위한 꿈의 농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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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과 필리핀인 사이에서 태어난 마르코(강태주)는 필리핀에 거주 중이다. 돈내기 복싱 시합에 출전해 몸을 혹사하면서까지 병든 어머니를 정성스레 모시고 있다. 무책임한 한국인 아버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그러던 중 아버지가 보냈다는 변호사가 찾아와 마르코에게 한국행을 권한다. 권유라기보다 강제에 가까운 태도인데, 친부가 어머니의 수술비를 마련해줄 수 있다는 이야기에 마르코는 어쩔 수 없이 한국행 비행기에 오른다. 한편 이런 마르코의 행적을 ‘귀공자’(김선호)란 이름의 청부업자가 쫓고 있다. 여타 청부업자들을 압도하는 실력자이자 조금의 자비도 주지 않는 냉혈한이다. 그는 마르코를 아버지 집으로 데려가려는 자들을 모두 제거하며 마르코와의 추격전을 계속한다. 마르코를 쫓는 이는 귀공자뿐이 아니다. 마르코의 형이라는 재벌 2세 한 이사(김강우) 역시 마르코를 잡기 위해 혈안이다.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영문을 알 수 없던 마르코는 자신을 구해준 윤주(고아라)에게 자신과 아버지에
[리뷰] ‘귀공자’, 귀공, 어찌 코미디로 돌아오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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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뉴욕 록펠러 센터 앞에서 여러 발의 총성이 울린다. 경찰이 체포한 남자는 20대 초반의 대니 설리번(톰 홀랜드). 심문관 라야(어맨다 사이프리드)는 총을 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그에게서 특별한 면을 발견하고 사건과 관계없는 그의 내밀한 이야기를 들어주기 시작한다. 어렸을 때 죽은 쌍둥이 동생 아담, 엄마 캔디(에미 로섬), 가장 친한 친구 조니 그리고 계부 말린에게서 도망쳐야 했던 순간에 자신을 받아준 이트잭과의 이야기 등 다양한 에피소드가 취조실을 채운다. Apple TV+의 10부작 드라마 <크라우디드>는 1970년대 미국 오하이오주에서 성폭행범으로 체포된 빌리 멀리건의 이야기를 재구성한 픽션으로 6월2일, 첫 번째 에피소드가 공개됐다. 주연배우이자 제작자로 활약한 톰 홀랜드, 배우 어맨다 사이프리드, 에미 로섬과의 화상 인터뷰를 통해 몇 가지 질문을 건넸다.
- 어떻게 이 작품에 출연하게 됐나.
톰 홀랜드 이전에 해보지 않은 역할을 하고 싶었다.
[현지보고] ‘크라우디드’, 착한 사람도 나쁜 의도를 지닐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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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준 지음 / 을유문화사 펴냄
<유현준의 인문 건축 기행>은 발상의 혁명적 전환을 보여주는 건축물 30개를 지역별로 선정하여 소개하고 있다. 먼저 유럽 지역에서는 이미 너무나 유명하지만 그렇다고 빠질 수는 없는, 20세기 전반의 건축을 대표하는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 작품이 등장한다. 철근 콘크리트로도 다채로운 공간을 연출한 ‘빌라 사보아’, 벽면에 구멍을 내서 빛이 밤하늘의 별 같은 그림을 그리게끔 만든 ‘피르미니 성당’, 좁은 공간에서 이용자가 최대로 편하고 개성적으로 살 수 있게끔 궁리한 마르세유의 아파트 ‘유니테 다비타시옹’까지 한번쯤 직접 가서 경험하고 싶은 건축들이다. 베를린을 여행한 사람이라면 한번쯤 방문했을 ‘독일 국회의사당’도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노먼 포스터의 이 작품은, 돔을 유리로 만들고 내부에 전망대를 지어 최고 권력자만이 아니라 누구든 높은 곳에서 도시 전망을 내려다볼 수 있게 했다.
북아메리카의 창의적 건축으로는 고든 번샤프트의 ‘바이네
씨네21 추천도서 - <유현준의 인문 건축 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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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타비아 버틀러 지음 / 장성주 옮김 / 비채 펴냄
SF계의 거장 옥타비아 버틀러가 그려낸 디스토피아 ‘우화’ 시리즈의 완결편이다. 기후 위기와 경제 위기가 겹쳐 ‘말세’ 혹은 ‘역병기’로 불리는 2015년에서 2030년이 소설의 배경이다. 평화로운 유년 시절을 보내던 소녀 로런은 혼란의 시대에 느닷없이 공격당해 집과 가족을 잃고 고생하다 남편 반콜레를 만나고, 산속에 에이콘이라는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었다. 갈 곳 없는 약한 사람들을 하나둘 받아들인 것이다. 목사였던 아버지의 영향 속에서, 로런은 새로운 종교 지구종을 창시한다. ‘변화가 곧 하느님이다’라는 믿음으로, 지구뿐만 아니라 바깥의 우주 세상으로도 생명의 씨를 뿌리고자 하는 종교다. 공동체 모두가 지구종을 믿지는 않지만, 다들 성실하게 농사를 지어 작물을 내다 팔면서 위험한 세계 속에서 한 조각의 평온을 찾는다. 로런이 타인의 감정을 고스란히 흡수하는 ‘초공감자’라는 설정은, 등장인물이 어떤 고통과 기쁨을 느끼며 삶을 꾸
씨네21 추천도서 - <은총을 받은 사람의 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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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멜라 지음 / 창비 펴냄
김멜라 작가의 첫 장편소설 <없는 층의 하이쎈스>의 아세로라는 도끼를 들고 그야말로 설친다. 요가 매트 위에서도 도끼를 휘두르는 연습을 하고, 창밖에서 욕지거리로 이웃이 싸우는 소리가 들릴 때에도 도끼를 손에 쥔다. 누구를 해칠 용도는 아니다. 사람에게 눈, 코, 입, 손이 있듯이 도끼가 원래 아세로라에게 쥐어진 존재와 같다. 소설은 두개의 챕터로 나누어져 있다. 앞장에서 아세로라에 의해 동거인으로만 소개되는 인물이 아세로라의 할머니 사귀자씨다. 2장이 할머니 하이쎈스의 이야기다. 아세로라와 하이쎈스는 남산빌리지라는 낡은 상가 건물의 없는 층에 산다. 할머니와 아세로라가 사는 2층에는 주소가 없다. 왜 주소가 없냐고 묻자 할머니는 답한다. “처음부터 그랬어. 주소는 못 만들었어.”
어느 날 아세로라는 우연히 할머니의 비밀을 알게 된다. ‘신문보도안, 남산 아래 간첩 조직 일망타진. 하숙을 경영하며 소시지 반찬으로 하숙생을 포섭, 암호명 하
씨네21 추천도서 - <없는 층의 하이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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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현진, 김기태, 하가람 지음 / 문학과지성사 펴냄
문학과지성사의 <소설 보다> 계절 시리즈도 어느덧 출간 5년째다. ‘이 계절의 소설’을 선정해 계절마다 엮어 출간하는 이 단행본 시리즈 덕분에 잘 쓰는 젊은 작가와 여럿 만났다. <소설 보다: 여름 2023> 역시 마찬가지. 공현진의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와 김기태의 <롤링 선더 러브>, 하가람의 <재와 그들의 밤>이다. 하나의 주제로 묶이질 않는, 개성이 다른 소설가들의 단편소설을 읽고, 이어지는 작가 인터뷰를 읽는 것이 이 시리즈의 묘미다. 공현진의 단편소설은 암울하고 비관적인 제목과 달리 다정한 온기가 묻어난다. 사회가 정해놓은 규칙에 잘 어우러지지 못하는 주호와 희주는 수영장 초급반에서 만난다. 초급반에서 나란히 꼴찌인 두 사람을 향해 강사는 못하는 사람은 뒤로 빠지라고 소리 지르지만 눈치 없는 주호는 끝까지 앞에 선다. 대열에 잘 끼지 못하고 강사의 철칙에 의
씨네21 추천도서 - <소설 보다: 여름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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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영 지음 / 엘릭시르 펴냄
김태희, 임지연 두 배우가 주연을 맡은 지니 TV 오리지널 드라마 <마당이 있는 집>의 원작 소설. 김태희는 주란 역을, 임지연은 상은 역을 연기한다. 소설 <마당이 있는 집>은 김진영 작가의 스릴러로, 마당에서 시체 냄새가 나면서 모든 사건이 시작된다. 마당이 있는 판교 신도시의 주택으로 이사를 한 뒤 친구들을 초대한 주란은 안 그래도 걱정하던 마당의 악취에 대해 친구들이 한마디씩 하자 신경이 곤두선다. 스물네살에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결혼을 하고 가정주부로 15년간 살아온 일을 후회하지는 않지만, 친구들이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사회생활이 간단하지가 않아”라는 이야기를 꺼낼 때면 무능한 기분이 들고 마음이 가라앉는다. 와중에 악취의 원인을 확인하기 위해 “파보면 되잖아”라는 것도 어쩐지 남편의 눈치가 보인다. 남편이 딱 잘라 거름 냄새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주인공인 상은은 임신한 사실을 숨기고 가구 매장에서 판매원
씨네21 추천도서 - <마당이 있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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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이 있는 집 _ 김진영 지음
소설 보다: 여름 2023 _ 공현진, 김기태, 하가람 지음
없는 층의 하이쎈스 _ 김멜라 지음
은총을 받은 사람의 우화 _ 옥타비아 버틀러 지음
유현준의 인문 건축 기행 _ 유현준 지음
씨네21 추천도서 - <씨네21>이 추천하는 6월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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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고아라를 연상할 때 떠오르는 역할은 보통 명랑함을 무기 삼은 밝은 인물이다. 반면 <귀공자>의 윤주는 냉담한 말투와 상대방을 압도하는 눈빛, 원하는 것을 포획해내는 질주 본능까지 지금껏 보지 못한 고아라의 얼굴을 이끌어낸다. 윤주를 처음 보았을 때 고아라는 자신과 설핏 겹쳐 보이는 모습들을 발견했다. “유일한 여성 캐릭터인 윤주는 많은 남성 인물 사이에서 유려하게 액션을 선보인다. 워커홀릭이라 자신의 임무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일을 할 때 집중도가 높다는 점에서 나와 비슷했다.” 얼떨결에 사건에 휘말린 마르코(강태주)의 아군인 듯 아닌 듯, 귀공자(김선호)와 아는 듯 모르는 듯 영화 중반까지 정체성이 드러나지 않는 윤주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 영화가 일일이 설명하지 않는 윤주의 태도와 미묘한 뉘앙스를 자연스레 녹여내기 위해 고아라는 면담을 앞둔 학생처럼 긴 대화를 자처했다. “하루는 박훈정 감독님에게 액션 훈련을 언제 시작하면 좋겠느냐고 질문했다. 그러자 감독님이
[인터뷰] 준비된 액션 배우, ‘귀공자’ 고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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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아이템>과 <공작도시>에 이어 김강우가 또 한번 정장을 빼입은 재벌을 연기한다. <귀공자>의 한 이사(김강우)는 모종의 음모를 품고 마르코(강태주)를 한국으로 데려온다. 한 이사는 수를 쓰지 않는 광인이다. 자신의 수하가 의심스럽거나 계획이 어그러질 때, 본인이 몸소 움직여야 직성이 풀리는 캐릭터다. 김강우는 이런 한 이사를 “권력을 휘두르는 데 거리낌이 없고, 계획한 일에 차질이 발생하는 걸 견디지 못하는 중세 시대의 영주”에 비유했다. 한 이사는 ‘안하무인의 사이코 재벌’ 캐릭터의 연장선상에 있다. 김강우는 애써 한 이사만의 차별점을 찾아내기보다 시나리오에 쓰인 인물을 정석대로 돌파하는 길을 택했다. “오히려 내가 변별적 특성을 줄수록 캐릭터가 더 촌스러워지거나 전형적으로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악역을 연기할 때마다 김강우가 세우는 대원칙은 스스로를 빌런으로 상정하지 않는 것이다. “자칫하면 뻔하고 재미없는 연기밖에 안 나온다. 연
[인터뷰] 절실하게, 정확하게, ‘귀공자’ 김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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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1. 신인 강태주가 <귀공자>의 마르코 역을 거머쥐기 위해 뚫은 경쟁률이다. 아픈 홀어머니를 부양하며 불법 복싱 선수의 삶을 전전하는 마르코는, 생사 여부조차 모르던 아버지가 어머니의 수술비를 마련해준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국으로 향한다. 강태주는 <귀공자>에 합류하기 위해 세 차례의 긴 오디션을 치렀다. “1차 오디션까지만 해도 캐릭터에 관한 정보가 일체 없었다. 제작진이 풀숏과 바스트숏으로 촬영한 연기 영상을 요청해 ‘몸 쓰는 걸 보고 싶으신가’ 하는 생각뿐이었다. 2차 오디션에 가서는 불우한 처지에 놓인 소년의 이야기가 담긴 타 작품의 대본을 받아보았다. 짐작건대 부모에 관한 사연이 있는 캐릭터의 감정 연기를 준비해가면 되겠다는 판단이 섰고 3차 오디션에서 <쌈, 마이웨이> 속 고동만(박서준)을 연기했다. 그리고 외국어에 자신이 있다는 점을 어필했다. ‘영어로 욕도 잘하냐’는 질문에 자신 있다고 답했더니 ‘욕 잘해서 좋겠네’라는 답이 돌아
[인터뷰] 온몸으로 배우다, ‘귀공자’ 강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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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도 정체도 공개되지 않은 채 마르코(강태주)의 삶에 불쑥 끼어든 귀공자는 내내 이름도 밝혀지지 않는 미스터리한 인물이다. 능청스러운 태도와 비죽거리는 웃음, 포커페이스로 생동감을 자아낸다. 단막극 드라마 <미치겠다, 너땜에!>의 김래완과 <으라차차 와이키키>의 차우식을 통해 개성을 선보인 그는 드라마 <스타트업>과 <갯마을 차차차>에서 로맨스 주역으로 입지를 다졌다. 그런 김선호에게 귀공자는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경계를 넘나들도록 문을 열어준 인물이다.
“처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머릿속으로 빠르게 그림이 그려졌다. 추격 누아르는 배우라면 늘 꿈꾸는 장르다. 모든 액션을 능가하는 귀공자가 위트를 잃지 않는 모습도 좋았다. 이런 역할이 주어진 게 너무 감사했다.” 귀공자는 진지하기보다 장난스럽고, 묵직하기보다 가볍다. 그의 태도를 체화하기 위해 김선호는 상황마다 귀공자가 현실적으로 얻고 싶은 게 무엇인지 생각했다. 신에 담긴 주요 맥
[인터뷰] 경계를 넘어선 도전, ‘귀공자’ 김선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