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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추리문학의 대부로 불리는 마쓰모토 세이초(1909~92)의 소설 <제로의 초점>이 영화 <제로 포커스>로 재탄생했다. 감독은 이누도 잇신이다. 1950년대 전후 일본을 배경으로 실종된 남편의 자취를 따라 진실에 접근해가는 한 여인의 추리극을 이누도 잇신은 과연 어떻게 그려냈을까?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메종 드 히미코> <황색눈물> <구구는 고양이다>까지 어느 작품을 떠올려도 쉽사리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다만 이누도 잇신은 인물의 내면을 섬세하게 그려내는 데 일가견이 있는 감독이다. 한 여인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제로 포커스>에서도 이누도의 섬세함은 유효하다. 히로스에 료코, 나카타니 미키, 기무라 다에 등 일본의 인기 여배우들은 이누도 잇신의 지휘 아래 자신들의 매력을 맘껏 발산한다. 영화 홍보차 한국을 찾은 이누도 잇신 감독을 만나 <제로 포커스>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spot] 스릴러와 호러도 좋아한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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잿빛 하늘의 인천 차이나타운. 흐린 날씨와는 달리 아이들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맑다. 선물가게 앞에서 호랑이 인형을 가지고 여자 친구들에게 얄궂은 장난을 치는 기태(이제훈), 좋아하는 보경이와 함께 있어 마냥 좋은 희준(박정민), 그리고 큰형처럼 분위기를 주도하는 동윤(서준영)은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절친’이었다. 그러나 작은 균열이 돌이킬 수 없는 파멸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세 친구는 알고 있을까. 아무것도 모른 채 세 친구가 행복한 순간을 즐기고 있는 이 풍경, <원스 어 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1984)에서 뉴욕 브루클린 다리 앞을 행복하게 걸어가는 네 사내아이들을 떠오르게 한다.
지난 3월26일 인천역, 차이나타운, 월미도 선착장에서 한국영화아카데미 제작연구과정 3기의 일환으로 제작되는 윤성현 감독의 <파수꾼>의 보충촬영이 한창이었다. 세 공간의 촬영분은 영화에서 가장 밝은 장면이다. 인물들의 가장 행복한 순간인 만큼 배우들이 감정에서 다 빠져나
[cine scope] 내일 이 친구들에게 무슨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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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동네에서 비오는 날 여자들만 노리는 연쇄살인사건이 일어난다. 사건을 쫓는 건 두 남자다. 정민(김동욱)은 매일 반장에게 찍혀사는 신참 형사, 영석(유오성)은 사업 말아먹고 2년간 실종자로 살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온 백수다. 정민은 바닥을 친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 사건에 뛰어들고, 영석은 딸(심은경)에게 자신의 생명보험금을 남겨주기 위해 사건에 뛰어든다. 여장을 하고 살인현장에 먼저 나타나는 영석을 딸과 경찰이 살인범으로 생각하면서 문제가 조금씩 꼬여가기 시작한다.
<반가운 살인자>는 하이브리드 장르영화다. 영화의 모티브가 된 서미애의 동명 단편소설은 (영화에서 유오성이 연기하는) 백수가 주인공인 일종의 추리스릴러였다. 단편을 장편으로 늘리기 위해 감독 김동욱은 자기 일에 도무지 매력이라곤 느끼지 못하는 양아치 형사를 또 하나의 주인공으로 끌어들였다. 형사가 이야기의 또 다른 축을 담당하면서 영화는 스릴러에 코미디적 요소를 집어넣으려 애쓴다
하이브리드 장르영화 <반가운 살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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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돌 ‘노조미’(배두나)는 어느 날 갑자기 사람의 움직임과 감정을 갖게 된다. 바깥세상이 궁금해진 그녀는 주인 몰래 외출을 시작하고, 사람들의 말과 행동을 배우게 된다. 그러던 중, 노조미는 비디오 가게에서 점원 ‘준이치’(아라타)에게 반하게 되고 아르바이트생으로 취직한다. 주인이 없는 낮엔 평범한 비디오가게 아르바이트생으로, 밤엔 섹스돌로 지내는 동안 노조미는 점차 자신의 정체성에 눈을 뜨게 된다.
인간의 고독에 대한 질문이라면, 고레에다 히로카즈에겐 뗄 수 없는 숙제다. 그가 그 주제를 건네는 방식은 독특하다. <원더풀 라이프>(2001)에서처럼 이승과 저승 사이 림보의 인물을 그린다거나, <아무도 모른다>(2004)에서처럼 사회로부터 철저하게 배제된 아이들을 그리는 식이다. 솔깃한 소재인 건 확실하지만, 아이디어에 국한되지 않는 철학적 사고로 그의 영화는 깊은 울림을 자아낸다.
<공기인형> 역시 현대인의 고독에 대한 탐
현대인의 고독에 대한 탐구 <공기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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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작가 앨리스(브리타니 머피)는 창작을 위해 프로듀서가 빌려준 집에 들어가 얼마간 머물기로 한다. 그런데 그 집에 들어간 얼마 뒤부터 앨리스는 이상한 기운을 느낀다. 마치 누군가가 집에 함께 있는 것 같은 느낌. 궁금증에 집 안을 뒤지던 앨리스는 루시(도라 버치)와 데이빗(마크 블루카스) 부부가 여기 살았던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비밀도 함께.
<데드라인>은 공포영화다. 공포영화에서 시나리오작가 한 사람이, 그것도 과거의 잊지 못할 상처를 지닌 누군가가 오래된 기운이 스며 있는 집에 들어가 머문다. 그렇다면 이제 방향은 좀더 분명해진다. 그 집은 어떤 집일까. 대개 ‘유령 들린 집’이다. 공포영화의 오래된 불문율이기도 하며 <데드라인> 역시 그렇다. 주인공 앨리스는 이 집에 발을 들여놓은 순간부터 뭔가 스산한 기운을 느낀다. 전에 이 집에 살았으나 비운의 운명을 맞은 루시와 데이빗 부부의 사건이 유령 들린 집의 원인이다
‘도플갱어’ 법칙을 반복하는 사연 <데드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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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영심(김규리)이 편지 한통 써놓고 집을 나갔다. 남편 성희(지진희)는 후배 동민(양익준)을 데리고 아내를 찾아 나선다. 그런데 여행을 떠나온 건지 아내를 찾으러온 건지 이 둘은 좀 시시껄렁하다. 아내의 오래된 전화기에서 전화번호부를 추린 다음 전화를 걸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알게 되는 아내의 비밀들. 별안간 유곽(이문식)이라는 아내의 오빠까지 알게 된다. 셋은 이제 일행이 된다.
<집 나온 남자들>은 이하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다. 첫 번째 장편영화는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 <집 나온 남자들>은 현실세계의 감각을 유지하면서도 무언가 미끄러지듯 기묘한 캐릭터와 관계로 구성되어 있다는 특징을 전작과 공유하고 있다. 다른 점이라면, 전작이 냉소적이었다면 이번 작품은 시종일관 명랑해 보인다는 데 있을 것이다.
등장인물들이 재미있다. 음악 칼럼니스트인 성희는 영화 초반부 라디오 생방송을 진행할 때 딱 한번 그윽한 목소리를 내
이상한 남자들의 이상한 여행의 기록 <집 나온 남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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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의 큐레이터 베스(크리스틴 벨)는 여동생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로마에 간다. 48시간 동안 로마에 머물게 된 베스는 결혼식장에서 한때 풋볼 선수였던 스포츠신문 기자 닉(조시 더하멜)을 만난다. 닉과 관계를 진전시키려던 베스는 우연히 닉이 다른 여자와 키스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식장에서 나와 사랑의 분수에 뛰어든 베스는 분수 바닥에 가라앉은 동전들을 홧김에 줍고, 이후 동전의 주인공들은 베스에게 열렬한 애정 공세를 퍼붓는다.
로마에 가면 사랑의 분수에 떨어진 동전을 주워볼 일이다. <로마에서 생긴 일>은 사람들이 사랑의 분수를 향해 소원을 빌 때, 그 소원은 휘발되지 않고 동전에 고스란히 담기며, 동전 주인의 사랑은 분수 바닥에 가라앉은 동전의 운명과 함께한다는 설정에서 출발한다. 그리하여 동전을 줍는 사람은 동전 주인의 구애를 받게 된다. 허술한 듯 보이는 설정이 한편으로는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만들어낸다. 동전의 주인공들인 소시
캐릭터들의 상호작용이 즐거운 로맨틱코미디 <로마에서 생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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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코디네이터 애나(에이미 애덤스)는 안정된 직장에 고급 아파트 입주를 앞둔 골드미스다. 그녀의 유일한 골칫거리는 4년째 연애 중인 의사 남자친구가 청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속앓이를 하던 애나는 ‘아일랜드에선 2월29일이 되면 여자가 남자에게 청혼하는 풍습이 있다’는 로맨틱한 이야기를 듣고 애인의 출장지인 더블린으로 향한다. 그러나 그녀는 폭풍우로 인해 아일랜드 시골에 홀로 남게 되고, 그곳의 토박이 데클랜(매튜 구드)과 사사건건 충돌하게 된다.
최근 로맨틱코미디의 경향 중 하나가 바로 ‘농촌 로맨스’다. 지난해 <프로포즈>부터 올해 초 <들어는 봤니? 모건부부>까지, 시골을 배경으로 한 로맨틱코미디가 종종 눈에 띈다. <프로포즈 데이>도 그런 작품 중 하나다. 도시의 새침한 처녀가 털털하고도 퉁명스러운 시골 총각을 만나 티격태격하다가 정이 들고, 결국은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이다. 솔직히 이야기상으로 새로울 건
‘농촌 로맨스’ 로맨틱코미디 <프로포즈 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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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더이상 신을 섬기지 않기로 했다. 분노한 제우스(리암 니슨)는 인간들에게 공포를 보여주려 하고, 지옥의 신 하데스(레이프 파인즈)가 해저괴물 크라켄을 앞세워 제우스의 뜻을 받들어 모신다. 한편, 제우스와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페르세우스(샘 워싱턴)는 신의 아들이란 이유로 이 난관을 타개할 전사로 추앙받는다. 마침 신의 분노로 지상의 가족을 잃은 그는 복수를 다짐하고 위험천만한 모험에 나선다.
페르세우스 신화는 수많은 영웅담의 원형이다. 신과 인간을 가리지 않는 제우스의 섹스 편력으로 잉태된 페르세우스는 태어나자마자 바다에 버려졌다. 이후 평범한 인간으로 자란 그는 우여곡절 끝에 아름다운 공주를 구하고 영웅이 된다. 레이 해리하우젠이 1981년에 만든 <크래시 오브 타이탄>은 이 신화에서 몇 가지 설정을 바꾸긴 했지만, 영웅신화의 형태를 충실히 따른 작품이었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했던 그가 고난의 행군을 거쳐 결국 아버지의 인정을 받게
2010년 블록버스터 시즌의 신호탄 <타이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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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마엘(루이스 가렐)과 줄리(뤼도빈 사니에르)는 거의 10년 가까이 사귀어온 오랜 연인이다. 지나치게 익숙해져버린 탓에 다른 친구인 알리스(클로틸드 에스메)를 끌어들여 ‘스리섬’을 가져보기도 한다. 그러다 줄리가 갑작스런 사고로 세상을 뜨게 되고 이들의 관계에 변화가 생긴다. 하지만 줄리의 가족은 이스마엘을 구속하려 들고, 그런 가운데 예상치 못한 또 다른 사랑이 나타난다.
지난 2008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사랑의 찬가>라는 제목으로 상영됐던 <러브 송>은 독특한 스타일의 뮤지컬영화다. 인물들은 노래와 춤을 추겠다는 특별한 준비없이 거리를 걷다 껴안고 키스하고 사랑을 노래한다. 그래서 어쩌면 정형화된 뮤지컬이라기보다 그저 색다른 연기방식의 차용이라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무대나 주변의 환경이 뮤지컬의 무대로 바뀌는 게 아니라 오직 주인공들만 그렇게 자유분방한 몸짓으로 ‘내 소중한 천사’ ‘너의 향기’ ‘할렐루야’ ‘죽음의 노래가
독특한 스타일의 뮤지컬영화 <러브 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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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지방도시 오카야마에는 정신과 의사 야마모토 마사토모가 설립한 코랄 오카야마 병원이 있다. 야마모토 박사와 자원 봉사자, 재택 도우미들이 운영하는 병원에는 정신적인 문제와 재정적인 문제를 껴안고 사는 환자들이 찾아온다. 누구는 거식증, 누구는 대인공포증, 누구는 조울증, 또 누구는 심각한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다. 그들은 우유를 배달하는 ‘파스텔 우유배급소’와 사람들에게 무료 식사를 공급하는 ‘미니 코랄’식당에서 일하며 조금씩 사회를 향한 새로운 발걸음을 연습한다.
일본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들은 정신병에 관대하지 못하다. 정신과 상담 이력만으로 취업에서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다. 정신병을 앓는 환자들이 불쑥 찾아온 카메라를 반길 이유는 전혀 없다. <멘탈>의 무대가 일반적인 정신병동이 아닌 코랄 오카야마 정신 건강 상담소인 이유도 그 때문이다. 코랄 아카야마 병원은 대안적인 병원이다. 진료의 야마모토 마사토모 박사는 일본 정신학계에서는 꽤 이름난
정신병에 대한 담담한 다큐멘터리 <멘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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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작은 소도시. 사람들이 미쳐간다. 평범한 노인이 야구장에 총기를 들고 난입했다가 보안관 데이빗(티모시 올리펀트)에게 사살당하는 것을 시작으로 마을 사람들이 광인으로 변해 무차별적 살인을 저지른다. 알고 보니 마을 어귀에 추락한 군수송기에서 치명적인 광기 바이러스가 새어나왔기 때문이다. 정부는 군부대를 투입해 도시를 폐쇄하고 모든 생존자를 수색해서 처단하기 시작한다. 데이빗과 임신한 아내(라다 미첼) 일행은 미치광이들과 군대의 광기를 피해 탈출을 꾀한다.
<크레이지>는 좀비 장르의 거장 조지 A. 로메로 감독의 <분노의 대결투>(The Crazies, 1973)를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그런데 <분노의 대결투>가 로메로의 가장 좋은 영화였던가? 글쎄. 컬트팬이 꽤 있는 영화이긴 하지만 로메로의 대표작으로 거론할 만한 영화는 아니다. 다만 요즘 리메이크하기에는 아주 적절한 영화다. 비밀스런 공권력, 치명적인 바이러스, 새롭게 업
원전을 뛰어넘는 리메이크 <크레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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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탄>은 이른바 ‘<아바타> 이후’를 노리는 블록버스터 중 하나다. 바로 그런 유의 작품들이 가질 만한 허와 실 모두를 보여준다. 그 규모에 비할 바 못되지만 오히려 눈길을 끄는 영화는 조지 A. 로메로의 <분노의 대결투>(The Crazies, 1973)를 리메이크한 <크레이지>다. 로맨틱코미디 두편 <로마에서 생긴 일>과 <프로포즈 데이>도 함께 개봉하지만 다소 배우가 약하다.
두편의 일본영화는 전혀 다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공기인형>은 배두나가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반갑고, <멘탈>은 정신장애인의 사회적 처지에 관한 다큐멘터리다. <러브 송>은 <몽상가들>(2003)의 루이스 가렐의 팬이라면 반가울 뮤지컬영화이고, <데드라인>은 지난해 세상을 뜬 브리타니 머피의 주연작이라는 점에서 쓸쓸한 공포영화다.
한국영화로는 유오성이 오랜만에 돌아온 <반
[금주의 개봉영화] 오랜만에 돌아온 유오성 <반가운 살인자>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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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10월 개최되는 영연방경기대회(Commonwealth Game) 준비로 델리는 사방이 공사 중이다. 마치 황사 바람이 불어온 듯 온 시내가 희뿌연 먼지로 뒤덮여 그야말로 회색 도시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 같다. 뉴델리 바산트 비하르에 자리잡은 프리야 시네마도 인근 지하철 공사로 먼지 바람을 피할 수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극장표를 사기 위해 매표소 앞에 늘어선 사람들의 긴 줄은 언제나처럼 변함이 없었고, 영화가 끝나고 극장 출구를 빠져나오는 사람들 가운데서 오늘의 인터뷰 대상자를 만날 수 있었다. 연기와 연출, 1인2역을 소화해낸 라훌 아가르왈 감독의 <Na Ghar Ke Na Ghaat Ke>를 보고 나온 스물한살 청년은 무작정 극장에 들어갔다가 이제는 뭘 할지 고민하며 나오는 길에 인터뷰 요청을 받았다며 할 일이 생겨 은근히 반가워하는 눈치였다.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이름은 마헨드라이고 올해 스물한살이다. 델리대학에서 무역학을 전공하고 있다. 하하, 살면서 인
[세계의 관객을 만나다-델리] 덥고 먼지 날리고… 극장으로 피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