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루> Lou
벨린다 차이코/ 오스트레일리아/ 2010년/ 80분/ 플래시 포워드
다소 특별한 방식으로 성장의 통과의례를 치른다는 점에서 제인 캠피온의 데뷔작 <스위티>를 떠올리게 하는 영화다. 세상의 모든 소녀와 소년은 자라고 그들은 비슷해 보이지만 조금씩은 다른 방식으로 어른이 되어간다. <루>의 주인공 루는 치매를 앓는 할아버지와의 사랑을 통해 성장한다. 어른들의 세계를 꽤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루는 자기 또래의 소년은 아이로 여기고, 가든파티에 가서는 몰래 음료에 술을 조금 섞기도 하는 당돌한 소녀다. 루는 싱글맘인 엄마의 히스테리가 남자친구 때문이라는 것도 알고, 곧 거리로 나앉아야 할지도 모를 정도로 집안 사정이 안 좋다는 것도 안다. 돈 때문에 고민하던 엄마는 궁여지책으로 할아버지를 집으로 모셔오고, 자기 방을 내주게 된 루는 할아버지를 달가워하지 않는다. 할아버지는 갑자기 발작을 일으키기도 하고 루를 죽은 자신의 아내로 착각하는 등
한 소녀가 상처를 치유하고 성숙해지는 이야기 <루>
-
<맹인영화관> My Spectacular
루양/ 중국/ 2010년/ 120분/ 뉴 커런츠
영화는 ‘보는’ 것이기에 영화를 보는 사람을 ‘관객’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시각을 잃은 맹인의 영화 감상은 단지 소리만을 듣는 것일까? <맹인영화관>이라는 독특한 제목부터 눈길을 끄는 이 영화는 영화의 본질을 생각하게 만든다. 불법 DVD를 판매하던 첸유는 경찰에 쫓기다가 우연히 극장으로 도피하게 되는데 그곳의 관객들이 모두 맹인이라는 사실에 놀란다. 첫사랑이 시력을 잃자 영화를 설명하기 시작했다는 영화관 주인 가오는 떠나간 아내에 대한 사랑의 기억을 보존하기 위해 수지에 맞지 않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 오갈 데 없는 첸유는 영화관에 잠시 머물며 영사기사 일을 보기로 하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관객들 한명 한명의 사연도 알게 되고 이들이 영화를 체험하는 방식도 이해하게 된다. 이곳의 관객들은 가오가 설명해주는 영화의 내용을 다 알고 있으면서도 영화관에 오는 것을 즐거워한
영화의 본질을 생각하게 만든다 <맹인영화관>
-
<아들의 연인> Memories in March
산조이 낙/ 인도/ 2010년/ 104분/ 뉴 커런츠
교통사고로 졸지에 아들을 잃은 엄마는 장례식을 치루고 그의 아파트에 머물며 유품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사고가 났던 곳에도 가보고 아들이 다니던 광고회사도 찾아가면서 엄마는 진정한 이별을 위한 시간을 보낸다. 첫날부터 자신을 돌봐주던 아들의 회사 동료 샤하나와 아들이 연인관계였을 것이라고 막연히 믿고 있던 엄마는 그녀로부터 뜻밖의 진실을 듣게 된다. 아들의 연인은 상사 아르놉이었던 것이다. 엄마는 10살이나 많고 직위도 높은 아르놉이 아들을 유혹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그에게 적대적인 태도를 보인다. 예상치 못한 연인에 대한 엄마의 편견이 정당하지는 않지만 흔히 나타날 수 있는 태도라 할 수 있다. 짐작한대로 이 영화는 엄마와 아들의 게이연인이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뻔해질 수 있는 스토리에 차별을 준 건 아들과 아르놉이 공유한 ‘엄마’라는 존재의 의미이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애도하는 과정 <아들의 연인>
-
치열하고 참담했던 부안 ‘방폐장’ 사건을 기억하는가? 그게 적잖이 눈물과 아쉬움으로 되짚곤 하는 지난 참여정부 때 일어났다면 믿겠는가? 비록 주민의 힘으로 ‘방폐장 계획’은 몰아냈지만, 어줍지 않게 경주로 간 ‘방폐장 현실’은 여전히 말도 많고 탈도 많다. 정작 부안 사람들, 무엇보다도 방폐장이 들어설 뻔 했던 위도사람들 머리와 마음, 그리고 피 속에 남은 서로 갈리고 나뉘어 싸우고 부딪쳤던 흉터와 응어리는 또 어쩔 것인가? 잘못된 제도나 정책이 얼마나 큰 해악을 끼치는지, 이른바 ‘생활세계의 식민화’를 벌이는지, 당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아니 당하고도 절절하게 느껴보지 않은 사람들은 잘 모른다. 또 견디다 못해 맞서고 부딪쳐보려고 나선 사람들이 흔히 뉴스나 힘 가진 이들이 손가락질 하듯이 꾼들이 아니라 여느 사람들이라는 것도 잘 모른다. 그러니 어느 새 까맣게 잊고,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고, 그 바람에 4대강 사업 같은 ‘방폐장’ 못지않은 대재난을 나 몰라라 하고 지나치는 것이다
문명의 작은 촛불 <야만의 무기>
-
-
광주는 무엇인가? ‘폭도’들의 난동인 ‘광주사태’인가? 그 덕에 이룬 민주화 열매로 꾸며 기린 ‘광주 민주화 운동’인가? 아니면 당사자들이 고통스럽게, 그렇지만 자랑스럽게 기억하는 ‘아름다운 공동체’, ‘함께한 나눔의 세상’인가? ‘일상’이면서도 어느새 ‘타자’가 돼버린 살아남은 사람들의 ‘욕’이며 ‘업보’인가? 이 영화는 당시 광주에 함께 했던 ‘민초’들인 구두 닦는 아저씨, 자장면 집 아저씨, 꽃집 아저씨, 시장 아줌마들, 계엄군 출신 어느 대안학교 목사, 신부 같은 사람들의 담담하고도 절절한 기억과 오늘의 삶으로 그 답을 찾아간다. 어느새 30년이 지나 색 바랜 사진첩 같은 기억을 하나하나 조각보처럼 꿰고 이으면서 말이다. 배우지도 가지지도 못한 사람들이 나서 만든 나눔의 공동체, 신념과 이념이 아니라 불의에 대한 항거였단다. 강도도 도둑도 휴업하고 하나 된 세상, 여고생도 아줌마들도 밥 짓고 주먹밥 만들어 나누던 날들이었단다. 그 때 죽어간 사람들 뿐 아니라 살아남은 사람들의
감독 자신의 광주에 대한 사랑 <오월愛>
-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는 이색적 강연이 마련됐다. 영화사에 얽힌 뒷이야기를 각종 영상자료를 참조해 풀어가는 ‘영화보다 재미있는 영화이야기’다. 올해는 아시아영화 전문가인 토니 레인즈와 이란 감독 아미르 나데리가 강연을 맡았다. 10월12일, 오후 8시 그랜드 호텔 중원에서는 토니 레인즈가 ‘중국영화의 비밀스러운 역사’란 주제로 강연하며, 다음날인 13일에는 아미르 나데리 감독이 ‘흑백에서 컬러 시대로의 전횐기, 영화미학의 변화 - 한국과 일본영화를 중심으로’를 같은 장소에서 강연한다. 입장료는 무료다.
인터넷 예매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들을 위해 부산영화제가 콜센터(1666-9177)를 운영한다. 매일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 운영되는 콜센터는 한국어와 영어로 모두 이용 가능하며 영화 예매와 행사 안내 외에도 부산지역의 교통, 숙박 등 다양한 정보를 제공한다.
와이드앵글 부문 상영작인 다큐멘터리 <종로의 기적> 커밍아웃 파티가 8일(금) 저녁 10시 호프집 샤델리
[한줄뉴스] 부산영화제에서 열리는 이색 강연 外
-
올해 아시안필름마켓의 화두는 ‘제2의 <똥파리>를 찾아서’쯤 될 것이다. 제13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첫 상영된 <똥파리>는 이후 전 세계 영화제를 돌며 수많은 상을 수상했다. 아시안필름마켓의 남동철 실장은 “<똥파리>처럼 가능성이 크지만, 규모가 작은 영화들이 영화관계자의 눈길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하는데 주력했다”고 말했다. 먼저 올해 처음 개설된 온라인 스크리닝은 단 4일에 불과한 마켓기간동안 최대한 많은 영화를 볼 수 있도록 만든 시스템이다. “미팅이 많은 마켓 관계자들이 마켓 스크리닝으로 볼 수 있는 영화는 몇 편이 안된다. 온라인 스크리닝은 그들이 영화제 기간뿐 아니라, 영화제가 끝난 이후에도 작품을 볼 수 있도록 만들었다.” 한국 독립영화의 해외판매를 돕는 부스도 있다. 키노아이, 시네마 달, 아뮤즈, 한국독립애니메이션협회등 마켓에 참가하지 않던 회사들이 공동으로 세일즈 오피스를 마련한 것. 남동철 실장은 “칸영화제 같은 행사에 비싼 수업료를
제2의 <똥파리>를 찾아서
-
와이드 앵글은 숨겨진 부문이다. 숨겨진 보물이 많은 부문이란 소리다. 특히 재작년 와이드 앵글 부문으로부터 신드롬이 시작됐던 <워낭소리> 덕분에 한국 다큐멘터리에 대한 관심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홍효숙 프로그래머는 올해도 놓치지 말아야 할 다큐가 많다고 자부한다. 그녀의 추천작은 광주항쟁을 다룬 <오월愛>, 아동성폭력에 관한 <가면놀이>, 대전 콜텍 기타공장 노동자들의 투쟁을 다룬 <꿈의 공장>, 아이를 키운다는 것에 대한 <아이들>, 한국 동성애자들의 삶을 쫓아가는 <종로의 기적>이다. 다큐멘터리가 첨예하고 강력한 주제를 다룬다면 단편 부문의 특징은 “사회적인 이슈보다는 스토리텔링에 중점을 둔, 전체적으로 따뜻한 감성을 드러내고 캐릭터들이 부각되는 작품이 많다”는 것이다. 장편에 비해 관객의 관심이 조금 덜한 단편 부문의 기운을 북돋우기 위해 올해 관객과의 대화는 한 작품이 끝나는 사이사이 진행된다. 올해 와이드 앵
첨예한 문제 다룬 다큐들이 온다
-
“작품 선정의 제1기준은요?” 한국영화 프로그램을 담당하고 있는 이상용 프로그래머는 대뜸 ‘교감’을 꼽는다. 올해로 4년째, 프로그래머 일을 하면 할수록 선정 자체보다, 선정 과정에서의 화학작용이 결과에 긍정적 영향을 주었다는 분석이다. “편집 과정에서 감독들과 특히 의견교환을 많이 하게 된다. 심각한 개입은 자제하지만, 이런 교류가 이젠 업무의 중요과정이 되었다.” 특히 올 상영작인 윤성호 감독의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는 온라인으로 상영되는 시트콤을 보고, 감독에게 선뜻 영화버전을 제안한 케이스다. “예전에는 작품 간의 편차가 심했다면, 이젠 골고루 다 수작이다. 올해는 그래서 색다른 관점을 적용해 보자 싶었다.” 바로 한국에서 영화를 만든다는 것에 대한 다양성에 주목했다고. 윤성호 감독의 케이스를 비롯, 조성규 스폰지 대표처럼 제작자가 영화를 만든 케이스, 김기덕 감독의 조감독 출신인 이상우, 노홍진 감독의 작품은 모두 이런 취지에 묶인다. “20억 규모의 영화는
새로운 영화 세대 만들자
-
부산영화제 개막작 <산사나무 아래>는 순수한 사랑의 가치를 절실히, 그리고 집요하게 신봉한다. 영화가 믿는 순수함은 정확해 말해 순진무구의 세계다. 남자와 여자는 징검다리를 건널 때, 차마 손을 잡지 못하고 나뭇가지를 사이에 둔다. 남녀가 같이 눕기만 해도 아기가 생기는 줄 아는 여자는 남자를 만난 지 1년이 넘도록 그를 뭐라고 불러야 할지조차 모른다. 급기야 남자는 아직 어린 여자를 위해 맹세한다. “난 평생 기다릴 수 있어.” 1970년대의 중국, 문화혁명시대의 어느 시골마을을 배경으로 삼지만, 사실상 이들의 첫사랑은 아예 다른 시공간에 놓여있다. 믿고 싶어도, 이해하기 어려운 사랑. 그럼에도 영화 속의 두 배우, 두오샤오와 저우동위는 이들의 사랑을 무결함 자체로 그려냈다.
두오샤오가 연기한 라오산은 여자를 위해 키다리 아저씨를 자처하는 남자다. 두오샤오의 훤칠한 키와 건실한 얼굴은 라오산을 매력적인 남자 이전에, 믿을 수 있는 남자로 묘사하고 있다. 그는 오로지
무결점 순수함의 눈망울
-
2010년의 한국영화를 지켜보면서(아직 공개되지 않은 영화를 포함하여) 반복적으로 떠올렸던 말은 폭력과 현실이었다. 8월에 극장가를 달궜던 <아저씨>와 <악마를 보았다> 때문만은 아니다. <이끼>가 건드리고 있는 공동체 속에 은폐된 폭력의 문제는 여러 영화에 고루 분산되어 있다. <시>는 미자라는 60대 여성이 경험하는 순수(시)와 폭력(자살) 사이의 문제를 보여준다. 새롭게 소개되는 박수영 감독의 <돌이킬 수 없는>도 이러한 흐름 속에서 살필 수 있을 것이다. 경기도 부근의 한 마을을 배경으로 어린 소녀의 실종과 전과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은 영화를 이끄는 긴장감의 두 축이다.
폭력이 등장하는 순간 문제가 되는 것은 ‘윤리’이다. <이끼>의 주인공 류해국의 목소리를 빌리자면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근거, <시>의 미자가 손자를 경찰에 넘길 수밖에 없었던 결단의 순간이야말로 윤리의 지점을 이룰 것이다. 2
고맙다, 한국영화
-
제15회 부산국제영화제에 각국 정부 사절과 영화기구 대표단들이 대거 찾아온다.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러시아, 체코, 이탈리아 등 15개국 대사관과 영화진흥기구는 자국 영화를 홍보하는 파티와 리셉션을 열고, 유럽영화 국제 프로모션을 담당하는 유러피안필름프로모션(EFP)도 부산에서 홍보 행사를 개최할 예정이다. 올해 부산영화제 해외 리셉션 중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건 ‘쿠르드 리셉션’과 ‘태국영화의 밤’이다. 나라 없는 민족인 쿠르드족의 유일한 자치정부인 이라크의 쿠르디스탄 정부는 ‘쿠르드 시네마 특별전’을 위해 정부 관계자와 문화계 인사가 대거 포함된 사절단을 파견하고, 쿠르드 전통예술 공연단 역시 함께 귀국해 11일 월요일 오후 7시 피프빌리지 야외무대에서 공연을 갖는다. 10월10일 일요일에 열리는 ‘태국영화의 밤’에서는 타이의 우볼라타나 라자칸야 공주가 직접 부산을 방문해 리셉션을 주재할 예정이다. 각국 행사들은 행사별 초대장 소지자에 한해서 입장이 가능하나 행사장 입구까지
영화 외교의 중심지는 부산!
-
한동안 잊고 있었다. 그 남자가 얼마나 거칠고 흉폭했었는지.
1997년 <하나비>로 베니스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받을 때까지, 기타노 다케시 영화의 키워드는 폭력과 절망이었다. 감독 데뷔작인 <그 남자, 흉폭하다>(1989)로 시작하여 <3-4x10월>(1990), <소나티네>(1993), <하나비>까지, 기타노 다케시의 영화에는 언제나 고요의 순간에 작렬하는 폭력, 죽음이 담겨 있었다. 성장영화인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1991)와 <키즈 리턴>(1996)과 코미디 <모두 하고 있습니까>(1995)에도 허무와 절망의 냄새는 진하게 배어 있었다.
비트 다케시라는 이름으로, 한때 엔터테인먼트의 신이라 불렸던 남자. 일주일에 20여개의 TV 프로그램에 출연했고, 수많은 연예인을 휘하에 거느리며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기타노 다케시.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고, 영화도 연출
폭력의 피와 뼈를 경험하라
-
종종 영화계 사람들은 이런 말을 한다. “바닥에 퍼지고 앉아서 김동호 위원장과 소주도 마시던 남포동 시절이 그립다.” 흠. 솔직히 모두가 그 때를 그리워하는 건 아닐 수도 있다. 어떤 사람들은 깨끗한 해운대에서 편안하게 영화제를 즐기는 걸 더 선호할 테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 남포동 시절의 속닥한 분위기가 그립다는 분은? 올해 부산영화제에서는 10월8일(금)부터 13일(수)까지 시클라우드 호텔 옆, 노보텔 건너편에 있는 미성복어불고기에서 예술포장마차가 운영된다. 밤 10시부터 새벽 2시까지 페스티벌 카페처럼 운영되는 포장마차에서는 매일 밤 김동호 위원장을 볼 수도 있단다. 남포동 시절의 향수를 간직한 분들이라면 들러서 올해를 마지막으로 영화제를 떠나는 김동호 위원장의 웃음과 함께 소주잔을 기울이시라. 술은 전부 위원장이 쏘는거냐고? 그렇게까지 공짜 좋아하다간 머리 벗겨지십니다.
[BEHIND PIFF] 그때 그 분위기, 다시 한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