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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주의 시대를 풍미했던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 로베르트 슈만(1810∼56)의 200살 생일을 축하하는 공연이 풍성하다. 그중 이번 공연은 네개의 시기로 나뉘는 슈만의 작품세계 중 두 번째 시기인 ‘가곡의 해’(1840)의 궤적을 따라간다.
로베르트 슈만에게 1840년은 ‘노래의 해’다. 동시에 ‘사랑의 해’다. 만 서른이 되던 이 해에 슈만은 클라라와 정식으로 결혼했다. 절망과 괴로움 끝에 쟁취한 사랑은 슈만의 에너지를 북돋웠고, 이 해에만 무려 140여곡의 가곡이 탄생했다. 슈만 가곡의 최고봉으로 평가받는 작품도 이 시기에 쏟아져 나왔다. <미르테> <여인의 사랑과 생애> <시인의 사랑>, 두개의 <리더크라이스>(Op. 24와 Op.39) 등이 이때 나온 작품집이다. 스물여섯곡으로 이뤄진 연가곡 <미르텐>은 결혼식 전야에 클라라에게 바친 사랑의 맹세다. 괴테, 뤼케르트, 바이런, 무어, 하이네, 번스, 모젠의 시를 가사로 이용
[공연] 세기의 사랑 노래를 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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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태, 에잇! 흐흐흐. 또렷해~.” 송새벽은 얼마 전 <마더>에서 함께 작업한 봉준호 감독에게 한통의 문자를 받았다. <방자전>에 변학도로 출연한 그를 보고 보낸 문자라 했다. 이 말에 동의한다. 송새벽은 변태다. 마음에 드는 여자를 포승줄로 묶어놓고 엉덩이 때리며 ‘좋지?’라고 묻는 변학도를 천연덕스럽게 연기하려면 변태의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또 송새벽은 또렷하다. 무표정한 얼굴로 구사하는, 어딘가 허전한 전라도 사투리로 송새벽은 <방자전>의 방자와 춘향, 이몽룡에 버금가는 존재감을 드러낸다. 영화배우로서 처음 맡았던 <마더>의 세팍타크로 형사가 영화의 무게감을 덜어주는 잔재미를 선사했다면, <방자전>의 변학도는 송새벽이 더이상 쉽게 지나쳐선 안될 배우임을 일깨워준다. 극단 연우무대를 거쳐 단 두편의 영화 출연작으로 충무로에 이름 세 글자를 확실히 아로새긴 송새벽을 만났다.
# 당신 전라도 사나이 맞지?
제가 고향이 전라
[송새벽] 유쾌한 고집불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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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번에 새로 부임하신….
=안거! 인나! 안거!
-갑자기 왜 그러시는지.
=아니 뭐 별건 아니고, 좋은 게 좋은 거다고 인터뷰하기 전에 몸도 좀 풀고 뭐 그러잔 얘기거든? 뭐 딱히 기분 나쁜 게 있는 건 아니고, 뭐 그런 오해를 할 필요도 없고, 그러니까 그게 90도로 인사를 안 해서 그렇다기보다 또 뭐 여기자가 안 나와서 그런 것도 아니고, 하여간 니 얼굴이 내 마음을 좀 뭐 불편하게 하는 뭐 그런 게 있거든?
-정말 죽을죄를 졌습니다. 새로 부임하신 사또님도 몰라보고 다시 정식으로 큰절 올리겠습니다.
=그럴래? 내가 뭐 꼭 절을 받으려고 그런 게 아니라는 건 너도 알 거야. 너 자꾸 그러면 내가 진짜… 좋다.
-이번에 새로 부임하시고 어떤 정책을 펴실 건지 많이들 궁금해 하고 있습니다.
=난 목표가 뚜려대(뚜렷해). 너도 잘 알 거야. 요즘 전국적으로 사또 스폰서 문제가 말이 아니거든? 부산에 박기준 사또라고 내가 걔랑 좀 친한데 애가 너무 예의가
[가상인터뷰] 내가 사또가 된 이유를 알려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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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문2>를 보며 사각의 링 위에 선 홍금보를 보니 애틋한 향수가 일었다. 그가 복싱 장갑을 끼고 링 위에 섰던(물론 실내체육관의 링은 아니다) 영화 중에는 이소룡의 <용쟁호투>(1973)가 있다. 당시 1960년대 초부터 단역과 스턴트, 무술지도로 이미 홍콩영화계의 거목으로 자리잡아가던 홍금보는 <용쟁호투>에서 이소룡과 대련하는 시꺼먼 얼굴의 단역이었다. 엽문이 이소룡의 스승이었음을 떠올려보면 거의 37년 만에 홍금보가 <엽문2>에서 무술감독은 물론, 엽문이 가장 존경한다는 무도가 ‘홍진남’으로 출연하는 장면이 감개무량하다. 37년 전 이소룡에게 무릎을 꿇었던 그가 세월이 흘러 이소룡이 존경하는 선배로 출연한 셈이니까. 게다가 차례로 원탁에 올라 엽문을 테스트하는 홍콩 선배 무도가들로 과거 장철 영화의 단골 주인공 중 하나였던 라망이 ‘라사부’로, 성룡 영화에 늘 인상적인 악당으로 등장했던 풍극안(<쿵푸 허슬>에서는 악기로 음공
[now & then] 홍금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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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룡과 제이든 스미스가 주연한 <베스트 키드>가 미국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3주간 정상을 차지했던 <슈렉 포에버>는 <베스트 키드>와 <A-특공대> 두 편의 신작에 밀려 3위로 내려앉았다. 4000만 달러의 제작비를 들인 <베스트 키드>는 개봉 첫 주에 5600만 달러의 흥행 수익을 올리며 제작비를 전액 회수했다. <베스트 키드>는 1984년에 미국에서 개봉한 동명의 작품을 리메이크한 영화로, 베이징으로 이민 간 미국 소년 드레(제이든 스미스)가 아파트 관리인 미스터 한(성룡)에게 쿵푸를 배운다는 내용의 액션영화다. <베스트 키드>에 제작자로 참여한 윌 스미스의 아들 제이든 스미스가 드레 역을 맡아 쿵푸 솜씨를 뽐낸다. 국내에선 6월 10일 개봉했다.
2위는 <A-특공대>가 차지했다. <A-특공대>는 1983년부터 1987년까지 미국 <NBC>를 통해 방영됐던 인기
성룡의 <베스트 키드> 미국박스오피스 1위 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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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월드컵 직전까지, 각국 전력 분석만큼이나 자주 들려오는 소식은 남아공의 극도로 불안정한 치안에 대한 것이었다. 돌이켜보면 아프리카에 대한 뉴스가 폭력과 무관하기란 얼마나 힘들었나. 아프리카 문학이 (인종차별을 비롯한) 정신적 폭력과 (부족간의 대학살과 같은) 물리적 폭력을 주로 다루는 건 당연해 보인다. 우웸 아크판은 나이지리아 출신의 예수회 사제인데, 미국에서 석사 학위를 받으면서 <뉴요커>에 단편을 발표해왔다. <한편이라고 말해>는 그렇게 발표했던 단편을 모은 소설집이다. 그 자신이 직접 돌아본 케냐, 나이지리아, 에티오피아, 르완다의 현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첫 번째 단편 <크리스마스 성찬>의 무대는 케냐. 주인공 소년은 극심한 가난에 시달리는 집에서 형제자매들과 복닥거리며 크고 있다. 그는 한참을 고대하던 학교에 갈 수 있게 되었다는 설렘에 들뜨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누나가 몸을 파는 일을 그만둘 수 없다. 누나가 창녀촌에 들어가 돈을
[도서] 꿈꾸기 위해 필요한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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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조건으로서 유령성
엄밀한 공간 디자인과 시각적 스타일을 통해 로만 폴란스키가 다루려는 것은 표면적인 진실이 아니라 캐릭터가 느끼는 심리적 진실이다. <유령작가>의 모든 사건은 주인공의 백일몽처럼 보일 정도로 그의 심리에 달라붙어 있다. 랭을 저격하는 퇴역 군인은 문득 유령작가가 머무는 모텔에서 말을 걸고, 황량한 섬에서 만난 노인은 뜬금없이 주인공의 의심을 확신시켜주는 의미심장한 목격담을 전한다. 믿을 수 없는 타인들 혹은 낯선 이들에 대한 불안은 신경증을 자극하며, 환각과 실재 사이에서 인물들을 허우적거리게 만든다. 그 또한 스스로 실제의 모습을 감추어야만 하는 대필작가는 가면 너머 숨겨진 진짜 얼굴을 찾아내려 하지만, 진실을 찾아내는 순간 그를 기다리는 것은 죽음이다.
첫 장면에서의 개성적인 등장 이후 유령작가의 존재감은 점차 옅어진다. 전 대필작가 맥아라의 유령인 동시에 대필의 대상이 되는 인물인 애덤 랭의 유령인 그가 진실을 향해 접근해갈수록 이 사내는
[전영객잔] 유령들만 사는 세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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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작가>는 로만 폴란스키가 단속적으로 이어온 존재의 근원적 공포를 다룬 이전 대표작들을 계승한다. 서스펜스 구축의 고전적인 원리와 다채로운 이미지 직조술에 기초한 이 영화의 스타일은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는 폴란스키에 대한 세간의 평판이 그릇된 판단이었음을 입증한다. 어떤 면에서 <유령작가>는 70년대 전성기를 누렸던 폴란스키 스타일의 화려한 복원을 목격하는 감격적인 순간을 만들어내고 있다. 닫힌 상황 속에서 무력한 개인이 겪는 곤경, 알 수 없는 외부세계로부터 숨통을 조여오는 공포의 기운, 야만적 폭력에 깨어지는 인간의 신념은 로만 폴란스키 영화와 흔히 연결되는 테마다. <유령작가>가 여기에 덧붙이고 있는 것은 진짜 삶을 상실했고, 그것을 찾을 방도마저 묘연해진 유령적 존재의 신산스러운 운명이다.
모든 인물이 연극배우처럼
<유령작가>에서 빈발하는 유령의 모티브는 여러 층위에서 고찰될 필요가 있다. 우선적으로 이 영화에서 유령으로 단
[전영객잔] 유령들만 사는 세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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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는 영화에 필요한 음악을 따로 만들고, 영화 상영 이후 공연에 쓰이는 음악은 동시녹음 소스라는 부산물을 가지고 새롭게 만든 것이다. 그렇게 두 가지 다른 음악이 만들어지는 거다. 공연에 쓰일 음악에도 역시 내가 생각하는 감독의 느낌이 들어갈 거다. 이를테면 윤성호 감독은 말이 많고 언어로 노는 걸 좋아하지 않나. 그러니 공연에서 나올 음악도 그게 반영되지 않을까.
장영규는 장영규다. 장영규의 이름을 더이상 영화음악집단 ‘복숭아 프로젝트’나 밴드 ‘어어부프로젝트’와 붙여 설명할 필요는 없다. 그는 지금 한국 영화음악의 최선전에 서 있는 영화음악가다. 그럼에도 장영규의 이름이 낯설다면 그가 작업한 리스트를 한번 되새겨보자. <미쓰 홍당무> <반칙왕> <여고괴담4: 목소리> <달콤한 인생> <복수는 나의 것> <타짜>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어어부프로젝트’라는 이상한 밴드의 멤버였던 그가
[장영규] 영화 부산물에서 나오는 즉흥음악 들어보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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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스의 신을 꿈꾸는 아이들이 있다. 칼리(니콜라 벌리)와 그녀의 친구들이다. 이들에게 세상은 무엇 하나 쉬운 게 없다. 스트리트댄스 챔피언십 결승전을 앞두고 에이스 제이가 개인적인 사정(?)으로 탈퇴하질 않나, 하나뿐인 연습 공간마저 잃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나마 내세울 만한 팀워크마저 균열을 일으키기 시작한다. 그런 그들에게 로열발레단 원장 헬레나(샬롯 램플링)가 구원의 손길을 내민다. 물론 공짜는 없다. 발레단의 연습 공간을 빌려주는 조건으로 헬레나는 칼리에게 자신의 발레단과 함께 스트리트댄스 대회에 출전하기를 원한다. 제자들의 성장을 위해서다. 이후 벌어지는 상황은 쉽게 예측 가능하다. 서로 다른 춤을 추는 아이들이 티격태격하면서 댄스 대회에 출전하고, 경쟁을 통해 상대방을 이해하는 방법을 배운다. 한마디로 <스트리트 댄스>는 전형적인 성장영화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줄거리를 논하는 것은 다소 무의해 보인다. 3D를 최대한 활용해 보려는 듯 감독은 이야기보
댄스의 신을 꿈꾸는 아이들이 있다 <스트리트 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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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리다 저서 <회화 속의 진리>에는 ‘파레르곤’이라는 제목의 글이 수록되어 있다. ‘파레르곤’이란 ‘주변’을 의미하는 ‘파라’(para)와 ‘작품’을 뜻하는 ‘에르곤’(ergon)을 합친 말로, 주요한 것이 아니라 부수적인 것을 가리킨다. 그것은 어떤 저자의 주변적 저작을 가리킬 수도 있고, 작가가 주작을 만들기 위해 제작한 작은 소품들을 가리킬 수도 있다. 미술에서라면 작품의 주변을 이루는 요소, 즉 작품을 감싸는 액자 같은 것을 의미할 것이다. 아무튼 위에 언급한 글에서 데리다는 ‘파레르곤’을 이렇게 정의한다.
“파레르곤: 작품(ergon)도 아니고 그렇다고 작품 바깥(hors d'œuvre)도 아니고, 내부도 아니고 외부도 아니고, 위도 아니고 아래도 아니다. 그것은 모든 대립을 뒤흔드나, 그렇다고 비결정적인 것으로 남지 않고 작품을 발생시킨다.”
우리가 벽을 바라볼 때 액자는 그림에 속하나, 우리가 그림을 바라볼 때 액자는 벽에 속한다. 한마디로 액자는 작품의
[진중권의아이콘] 이 나라에서 진보정치는 거의 실험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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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A>라는 게임이 있다. 높은 자유도(게임 안에서 어떤 규칙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의미)에 범죄자를 주인공으로 온갖 범죄를 구사하는 3D 3인칭 액션 롤플레잉 게임이다. 내용 탓에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지만 자극적이며 흥미로운 요소의 게임성으로 엄청난 인기를 누린 게임이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바로 이 <GTA>의 무대를 서부시대로 옮긴 것이 <레드 데드 리뎀션>이다. 게임이란 가상세계의 나를 내세운 대리만족의 극치라 할 수 있다. <스카페이스>처럼 범죄세계의 입지전적인 인물이 될 수도 있으며 <내일을 향해 쏴라> 따위는 우스울 정도의 버라이어티한 서부시대를 살아갈 수도 있다. <레드 데드 리뎀션>은 <레드데드> 시리즈를 <GTA> 개발사가 새롭게 <GTA>식으로 버무린, 자유도 높은 서부액션활극이다.
게임의 자유도가 높기 때문에 농장에서 닭이나 키우며 인
[디지털] 서부영화의 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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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제품, 특히 휴대용 기기 구입에 앞서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기기의 수명. 휴대용 기기는 사용자가 따라오지 못할 정도의 빠른 기술 개발과 발전 속도를 가지고 있다. 특히 디지털카메라가 대표적인데, 신제품 디지털카메라를 구입하고 뿌듯해하는 것도 잠깐. 하룻밤 자고 나면 몇 백만 화소가 늘어난 제품이 출시되는 환장할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제품을 구입해야 비교적 오래 사용할 수 있나? 가장 표준이 되는 제품을 사서 사용하다가 그때에 맞추어 발빠르게 교환할 것인가, 아니면 최신 기술이 도입된 최신예 제품을 구입해 다음 기술이 나올 때까지 최대한 버틸 것인가. 다행히 이번에 새롭게 출시된 캐논의 익서스 300HS는 이런 걱정을 그나마 덜해도 된다. 익서스 300HS는 현재 사용자가 요구하는 표준적인 기능과 경쟁제품에 비해 좀더 완벽한 하드웨어적인 튜닝, 그리고 최신 기술을 탑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익서스 300HS의 출시는 캐논으로서 다소 비장한 면이
[디지털] 흔들림은 적고 연속 촬영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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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에서 중국을 떠난 엽문(견자단)은 1950년대 홍콩에 살고 있다. 제자를 받지 않으려 했던 엽문은 가족의 생계를 위해 도장을 차린다. 하지만 이곳 역시 불산에 있던 무관의 거리처럼 수많은 무술사범들이 서로를 견제하는 도시다. 엽문의 도장이 번창하자 지역 최고의 무술사범인 홍가권의 고수 홍진남(홍금보)은 그에게 다른 사범과 겨루어 자격을 인정받으라고 강요한다. 많은 사범을 쓰러뜨린 뒤, 홍진남과 무승부를 기록한 엽문은 그와 무술고수로서의 존경을 교감한다. 한편, 당시 홍콩을 지배하던 영국 군부는 자국의 권투챔피언인 트위스터(다렌 샤라비)를 데려와 영국의 위대함과 중국의 무력함을 증명하려 든다. 홍진남은 민족적 자존심을 위해 그와의 대결에 나서고, 엽문은 홍진남의 출전을 불안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전편인 <엽문>은 엽문이 수련하는 영춘권의 철학을 “중용을 지키고 평화를 위해 싸우는 것”으로 소개한다. 엽문의 액션이 예의와 여유를 지키는 스타일을 갖는 것도 그 때문이다.
홍금보의 등장 <엽문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