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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에도 스위스와 스페인전을 봤다. 축구팬이 아닌데도 밤을 새워서 보게 된다. 왜 이럴까 생각해봤는데, 이게 역시 월드컵의 힘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축구를 사랑하든 말든 어쨌든 축구를 보게 만드는 힘 말이다. <Listen Up! The Official 2010 FIFA World Cup Album>은 남아공월드컵 공식 앨범이다. R. 켈리가 아프리카 소웨토의 가수들과 함께 부르는 <Sign Of A Victory>는 딱 희망과 열정을 이야기하는 공식 주제가 느낌이고, 샤키라의 <Waka Waka>는 축구를 관람하면서도 골반을 흔들고 부부젤라를 불며 춤추는 아프리카의 리듬을 그대로 닮았다. 게임 <피파 2000> 오프닝 곡이었던 로비 윌리엄스의 <It’s Only Us>에 비견할 만한 슈퍼 히트 싱글이 없는 게 좀 아쉽긴 하다. 이 앨범의 수익금 전액은 아프리카 관련 자선단체에 기부되어 교육, 공중보건, 축구를 위한 스무개의
[추천음반] ≪Listen Up! The Official 2010 FIFA World Cup Alb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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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선 음악웹진 ‘보다’ 편집장 ★★★☆
음악계의 ‘노 임팩트 맨’인 잭 존슨의 새 앨범. 이제 어느 정도 일가를 이룬 만큼 음악에 커다란 변화는 없다. 앨범 제목은 바다를 얘기하고 있지만, 난 이 음악을 들으면서 볕 좋은 잔디 위를 떠올렸다. 어떤 이미지든 둘 다 ‘자연친화적’인 것만은 분명하다. 처음 들을 때보다 반복해 들을수록 깊은 맛이 느껴지는 유기농 음악.
이민희 음악웹진 ‘백비트’ 편집인 ★★★
언제나 그렇듯 살짝 졸립다. 그러나 또 언제나 그렇듯 아무 생각없이 누리는 평온이 무엇인지를 일깨운다. 세지 않은 비트, 전반적인 골격을 이루는 어쿠스틱 연주, 누구의 일과든 삶이든 절대 방해하는 법이 없는 침착한 목소리 덕분이다. 해안가라는 자연을 벗삼아(알려진 대로 그는 서퍼이자 태양 에너지형 녹음실을 설계한 친환경 뮤지션이다) 미국식으로 읊는 시조와 가락이란 바로 이런 것.
차우진 대중음악평론가 ★★★
음악으로 지구 환경의 중요성을 환기시키는 ‘좋은’ 앨범이지만
[Hot Tracks] ‘노 임팩트 맨’의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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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살스러운 동작, 촌스러울 정도로 분명한 메시지, 금방이라도 움직일 듯한 선의 역동성. 키스 해링의 그림은 쉽고 다정하다. 주인을 닮았기 때문일 것이다. 대중과의 소통을 위해 지하철 벽을 캔버스 삼아 그림을 그리던 해링은 경찰에게 잡혀가는 모습마저 사진으로 남길 정도로 위트가 넘치는 예술가였다. 그림 그리는 과정을 ‘마법’이라 믿으며, 드로잉이야말로 인간과 세계를 포용하는 도구라 믿었던 이 낭만적인 예술가는 서른한살의 나이로 안타깝게 요절했다(사인은 에이즈였다). 그러나 해링의 전매특허인 둥근 머리 사람들이 티셔츠와 벽화, 자전거를 넘나들며 밝은 에너지를 선사할 때, 적어도 ‘포용’에 대한 키스 해링의 믿음은 옳은 것으로 판명된다.
<팝아트 슈퍼스타, 키스 해링전>은 해링의 사후 20주년을 기념해 열리는 전시다. 실크스크린, 석판화, 에칭, 조각 작품 등 이번 전시에 이름을 올린 150여점의 리스트 중에는 해링을 그야말로 스타덤에 올려놓은 <아이콘> 시리즈와
[전시] 예술이 된 낙서화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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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실은 여러 얼굴을 가지고 있다. 빛과 온도를 안정적으로 조절하는 효율성과 외부와의 차단을 암시하는 폐쇄성, 그리고 근대화를 상징하는 역사성. 문경원 작가는 개인전 <GreenHouse>에서 온실의 이러한 다면성에 주목한다. 이번 전시는 온실을 소재로 상상한 이미지를 유화 또는 설치로 풀어낸 작품들을 소개한다. 그림의 가장자리를 휘감고 도는 넝쿨은 액자처럼 견고한 모습인데, 그 안을 가득 채운 풍경은 작품마다 유연하게 바뀐다. 그림 속의 장면이 변화함에 따라 넝쿨과의 조화 또한 달라진다는 점이 흥미로운 전시다.
[전시] <문경원 개인전: GreenHo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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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악기의 뒷받침없이 첼로만의 향연을 들을 기회다. 그것도 1대가 아니라 12대. 인간의 목소리와 가장 비슷한 음색을 갖고 있다는 첼로. 한 무대 위에 12대의 첼로를 늘어놓고 연주를 한다면 그 느낌은 어떨까?
베를린 필 12첼리스트가 이번에도 어김없이 우리를 찾아온다. 2년에 한번씩 오는 반가운 친구들이다. 첫 여성 멤버를 영입한 2008년 내한에 이어 올해는 여성주자가 한명 더 합류한다. 12첼리스트는 1972년 결성된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산하의 앙상블이다. 그런데 왜 12첼리스트냐고? 사실 베를린 필의 첼로주자는 모두 13명이다. ‘12’라는 숫자가 갖는 상징성 때문에 관례상 한명씩 돌아가면서 불참한다.
7번째 내한인 이번 공연에서는 합창곡으로 유명한 폴랑의 <인간의 얼굴>, 바흐의 <푸가의 기법>, 피아졸라의 <천사 시리즈>와 영화음악, 샹송 등 왕성한 식욕을 과시할 예정이라고.
7월1~2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공연] 2010 베를린 필 12첼리스트 내한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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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미스터리 소설 <쌍두의 악마>에는 ‘독자에 대한 도전장’이 세번에 걸쳐 등장한다. 해당 부분까지 충분히 단서가 주어졌다고 생각하는 사건에 대한, 작가가 독자에게 던지는 도전장이다. 지금까지의 단서를 토대로 이 미스터리를 풀 수 있겠는가 하는. 퍼즐 미스터리 작가로서 아리스가와 아리스가 정정당당한 게임을 하겠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월광게임>과 <외딴섬 퍼즐>로 이미 친숙해진, 에이토 대학 추리소설연구회 회원들이 수수께끼 같은 살인사건 해결에 나선다.
세상과의 교류를 거부한 채 창작에만 몰두하는 예술가들이 기사라 마을에 모여 지내고 있다. 그 마을에 들어간 친구 소식을 들은 추리소설연구회 회원들은, 그녀를 데리러 마을까지 가지만, 도무지 마을 입성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추리소설연구회의 에가미 부장 한 사람만 마을에 간신히 잠입하는데 갑작스러운 폭우 때문에 기사라 마을은 고립되고 만다. 기사라 마을 안과 밖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하자, 서로 연락이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도전에 응해 보시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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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반갑다. 왜 이제야 나왔나 싶다. <한겨레> 논설주간이었던, 한때 <씨네21>의 ‘유토피아 디스토피아’에 글을 쓰기도 했던 김선주의 산문집 <이별에도 예의가 필요하다> 얘기다. 오랜 시간 써온 글을 모은 책인데도 2010년 대한민국이라는 맥락이 그대로 살아 있으니, 약간은 신기한 마음마저 든다. 남의 눈을 의식하느라 허리 졸라매 없는 돈을 쥐어짜 허세를 부리고 싶어 하거나, 무엇이 바른 일인지 뻔히 알면서도 눈앞의 편안함에 젖어 바르지 못한 삶에 안주하고 싶어 하는 심리는 시간이 가도 변하지 않기 때문이겠지. 1995년에 쓴 교육문제 관련 글은 이렇다. “고등학교에서 국·영·수 시간은 잠자는 시간이라고 한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과외를 통해 이를 따로 공부하고 있고, 교사도 그런 전제로 수업을 진행한다. 학생들로선 과외 수업이 입시에 훨씬 효과적이고, 학교 진도가 과외 진도보다 늦기 때문에 부족한 잠을 수업 시간에 보충한다는 것이다.” 15년이
[도서] 왕언니가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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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에 관심없는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가사에 종사하는 주부에게 청소기란 대단히 중요한 전자제품이다. 청소기의 성능에 따라 청소가 얼마나 빨리, 편하게, 완벽하게 이루어지는지가 좌우되기 때문에 성능에 따라 그날 가사노동의 강도가 정해지는 것이다. 유럽에서 청소기를 구입하는 것만으로 자랑거리가 되는 청소기가 있다고 한다. 자랑거리가 될 정도로 좋은 청소기로 청소를 한다면 분명 가사노동의 강도는 ‘매우 약’쯤 되지 않을까? 그 자랑거리가 되는 청소기가 다름 아닌 다이슨 청소기.
다이슨 청소기의 혁신과 그 성능은 잘 알려져 있다. 먼지통을 없애고 고유의 사이클론 구조를 통한 강력한 흡입력을 마련해 공기에서 먼지를 분리해내는 독특한 방식의 먼지 처리장치는 다이슨 고유의 것이다. 다이슨의 새로운 제품 DC26알러지는 무려 A4용지 사이즈 안에 몸 전체가 들어가는 콤팩트한 크기를 자랑한다. 작은 크기라고 청소기의 성능이 저하된 것은 아니다. 다이슨 고유의 루트 사이클론 시스템은 그대로, 기
[디지털] 크기는 작고 미세먼지는 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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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페르시아의 왕자: 시간의 모래>가 개봉 중에 있다. 2000년대 초에 만들어진 동명의 게임을 소재로 제작된 영화인데 사실 게임이 영화화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대중의 인지도를 가지고 있다는 것. 게임 <페르시아의 왕자> 역시 출시 당시 DOS시스템을 가진 컴퓨터를 소유한 사람치고 거의 이 게임을 하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자랑했다. 요즘에는 찾아보기 힘든 횡스크롤의 2D 그래픽 기반 게임이었지만 각종 장애물을 넘고 적들과 싸우며 전진해나가는 모습은 당시로서는 거의 불록버스터급의 폭발력을 가진 액션 게임이다. 특히 점프를 하거나 벽에 매달리고 다시 올라가는 모습의 자연스러운 애니메이션은 나름대로 혁신이었다.
게임 <페르시아의 왕자: 망각의 모래>는 <페르시아의 왕자> 1편(1989)에서 많은 세월이 지나 3D버전(2003)으로 재탄생한 뒤에도 5번째 출시된 최신 게임이다. 바로 전작에서 새롭게 시도한 카툰 랜더링의
[디지털] 4원소까지 조절하는 액션의 왕자로 컴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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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자전>을 언급하기 위해서는 이야기에 대한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방자(김주혁)는 통속 소설의 일인자인 색안경(공형진)에게 “저 같은 상놈의 이야기도 소설이 되나요?”라고 질문하며 영화는 그러한 방자의 이야기로 이루어진다. <음란서생>에서 양반인 윤서(한석규)가 소설을 썼다면 <방자전>에선 상놈인 방자가 이야기를 한다. 그것이 <음란서생>과 <방자전>이 같은 맥락에 있으면서도 다른 가장 기본적인 차이다.
소설과 이야기는 다르다. 소설은 고독한 개인의 고독한 집필실에서 만들어진다. 소설은 파편화된 개인이 탄생하는 근대의 한 형상이다. 이야기는 고독하지 않다. 이야기는 공동체에서 만들어지며 말하는 자와 듣는 자의 상호 소통과 교류 속에서 태어난다. 소설은 어떻게 보면 이야기의 타락이다. 인간과 인간, 인간과 사물 사이의 소통에서 오는 경험이 상실되어 버린 사회 속에서 이야기할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야
[영화읽기] 방자는 방자가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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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는 일이에요.” 영화 포스터를 만드는 ‘꽃피는 봄이 오면’(이하 꽃봄)의 포스터 디자이너 서정국(32) 팀장은 자신의 일을 사랑한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그는 매일 새벽 3~4시에 퇴근하고, 주말에도 회사에 나와서 일한다. 진정 즐기지 않으면 못할 일이다. 그런 열정 덕분에 그는 3년 동안 <7급 공무원> <하모니>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무법자> <마음이2> 등 수많은 영화 포스터를 디자인했다. “총 4일에 걸쳐 200여명의 배우들을 찍는 등 지금까지 한 디자인 중에서 가장 어려웠다”는 <포화속으로>를 바쁘게 진행하고 있는 그를 만났다.
-대학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했다. 어쩌다가 포스터 디자인이라는 분야에 발을 담그게 됐나.
=대학을 졸업하고 여러 일을 했다. 광고회사도 다녔고, 앨범 재킷 디자인도 했다. 촬영을 진행하고 헤어·메이크업하는 분들을 만나는 재킷 디자인 일이 특히 매력적이었다. 이후 그래
[professional] 트렌드를 아는 멀티플레이어가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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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층간의 대립구도에는 관심없어
몽룡이 귀향한 뒤, 변학도를 이용해서 춘향과 미담을 공모한다는 이 영화의 설정이 실은 전면적으로 새롭지는 않다. <춘향전>에서도 암행어사 출두를 알리기 전, 귀향한 몽룡은 거지꼴을 하고 나타나 신분을 속이고 이야기를 꾸몄다. 혹은 그 자체로 미담인 암행어사 출두의 성공을 위해 그는 잠시 선의의 거짓을 빌렸다. 말하자면 <방자전>이나 <춘향전>이나 몽룡이 상황을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무언가 세팅했다는 점에서는 공통된다. 다만 그것이 어떤 목적을 향해 있는지에 차이가 있다. <춘향전>에서는 변학도의 부패를 고발하기 위한, 간단히 말해 정의의 실현이 목적이었다. 하지만 <방자전>에서는 몽룡 자신의 출세, 즉 신분상승의 욕망을 위한 것이다. 이야기 뒤의 진실이 문제가 아니라, 무엇이 이야깃거리(요즘 식으로 말하면, 대중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만한 기삿거리가 되느냐)가 되느냐의 문제가 중요해진다. 진실은
[전영객잔] 순진과 냉소사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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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자전>의 흥행을 둘러싸고 시나리오의 힘이라는 말이 심심찮게 들려온다. 감독이 데뷔전까지 시나리오작가로 활동했던 이력이 주는 신뢰, 그리고 우리에게 이미 익숙한 <춘향전>의 색다른 변주가 주는 감흥 때문일 것이다. 감독이 몇몇 인터뷰에서 한 말 중 가장 귀담아들을 내용 또한 유사하다. 그는 이야기에 대한 자신감과 애정을 “내가 감독으로서 다른 감독과 비교할 때 그나마 가산점이 있다면 이야기의 운용일 것이란 강박관념이 있다. 그러다보니 내가 쓴 이야기에 의지하면서 이야기에 대해 말하려고 하는 성질이 인물에게 투영된 것 같다”(<씨네21>, 756호)고 표현했다. 그리고<춘향전>을 택한 이유에 대해 “원작의 순진한 결말을 비틀어보고 싶었다. 양반 자제 이몽룡과 기생 딸 춘향이 맺어지는 결말은 민초들 입맛에 맞게 가공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신분이 다른 두 남자가 한 여자를 사랑하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춘향전> 같은 좋은 ‘파일
[전영객잔] 순진과 냉소 사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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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단편을 만든 뒤 두근거리며 영화제 출품신청서를 쓰던 날, 가장 난감했던 과제는 이른바 ‘연출의도’라는 항목을 채우는 일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관객이나 프로그래머의 감상 포인트를 묻는 기능적이고 간단한 질문이건만 당시에는 ‘도대체 왜 이런 고만고만한 콩트를 만들어서 영화제 사무국의, 또는 안 그래도 점점 더워져가는 지구의 엔트로피를 증가시키는가’ 준엄하게 묻는, 과장하자면 염라대왕이 디미는 ‘업경대’처럼 느껴졌다. 그리하여 내가 기입한 문장은 연출의 변이라기보다 제작 동기에 관한 쭈뼛쭈뼛 이실직고. ‘영상을 전공하지 않은 저희들이 이런저런 설을 어느 정도의 비주얼로 풀어갈 수 있을지 궁금했습니다.’ 지레 겁먹은 티가 확 난다. 또는 미리미리 너그러운 감상을 청하는 은근한 잔머리.
연애 초보의 프러포즈랑 비슷한 행동 ‘ctrl+v’
그 뒤로도 한동안은, 단편을 촬영하고 편집하는 데 들이는 머리와 가슴의 기회비용만큼이나 그놈의 연출의도를 쓰는 데 기운을 뺀 것 같다. 너무 정직
[윤성호의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 쳇바퀴를 응원해달랄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