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 친구> <와이키키 브라더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날아라 펭귄> 가운데 한편이라도 본 관객이라면 능히 짐작할 것이다. 임순례 감독은 경쟁사회가 뒤돌아보지 않는 패자와 약자의 곁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이다. 고통에 예민하게 감응하는 그녀가 인간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이익을 대변할 목소리조차 갖지 못하는 동물 복지에 마음을 기울이고, 풀 한 포기와 꽃 한 송이로부터 쉽사리 눈길을 돌리지 못하는 것은 놀랄 일도 아니다.
공리주의 철학자 제레미 벤담은 “어떤 존재의 이익을 고려해야 하는 조건은, 이성적으로 사고할 능력 혹은 대화를 나눌 능력의 여부가 아니라 고통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이다”라고 말했다. 1년째 동물보호 시민단체 카라(KARA Korea Animal Rights Advocates)의 대표로 일하고 있는 임순례 감독에게도 동물의 권리 보호는 감정적인 ‘애호’의 문제를 넘어 세상에 존재하는 부당한 억압과 착취의 일부에
[임순례] 인권과 생명권은 하나다
-
영화가 시작하자, 암전된 화면 위로 내레이션이 흐른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이야기가 완전히 사실인지는 모른다. 일부는 전해 들은 이야기다.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도 많은 것들이 애매하고 질문은 남아 있다.” 주의 깊게 생각할 단어는 ‘애매함’이다. 그건 또한 감독 미카엘 하네케의 주장이기도 하다. 그는 “급진적으로 해답을 부정할 때, 관객은 자신만의 해답을 찾아나설 것”(<씨네21> 760호)이라고 말했다. 이 영화에 대한 거의 모든 평들도 그 점을 미덕으로 꼽는다. 알려진 대로 스릴러의 외투를 빌리고 있지만, 누가 사건의 범인인지에 대한 답을 밝히지 않는 설정에 대해 충분히 납득한다는 견해들이다. 낯설지 않다. 하네케는 자신의 서사 안에서 ‘누가 그랬는지’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지 않은, 혹은 그것을 회피하거나 중시하지 않아야 된다는 일종의 원칙이 있는 감독이다. 그는 그것이 역사와 현실 속에서 영화를 만들 때, 감독으로서의 윤리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의 전작인
[전영객잔] 그 울림은 슬픔에서 비롯됐다
-
얼마 전 오아시스가 15년의 역사를 기록한 ≪TIME FLIES… 1994-2009 The Complete Oasis Singles Collection≫을 발매했다. 90년대 브릿팝 좀 들었다는 팬들이라면 오아시스의 영원한 경쟁자 블러를 회고할 만한 새 음반이 언제쯤 나오냐며 자문했을 거다. 정식으로 국내 수입된 ≪Live At Hyde Park 02 July 2009 : All The People≫은 그에 대한 블러의 대답이다. 블러는 지난 2009년 7월2일과 3일에 10만명의 팬들을 환호하게 만든 리유니언 투어를 벌인 바 있다. 이번 앨범은 그 불타는 25곡의 실황을 담은 2CD 라이브 앨범이다. 초창기 히트곡 < She’S So High >로 시작해 눈물이 흐르도록 아름다운 < The Universal >로 끝난다. 오아시스 따위 필요없다며 블러를 부르짖는 <씨네21> 편집장은 이미 이 앨범을 지르고 있을 거다. 블러의 팬인 당신 역시 마찬가지
[추천음반] ≪Live At Hyde Park 02 July 2009 : All The People≫
-
김학선 음악웹진 ‘보다’ 편집장 ★★★★
우리는 지금 아이돌 출신이 자신의 음악적 꿈을 이뤄가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보고 있다. 태양의 < Solar >는 그 증거물이다. 보컬의 표현력은 더 깊어졌고, 음악적 폭은 더 넓어졌다. 한마디로 좋은 알앤비 앨범이다. 디즈와 진보가 만들어놓은 2010년 국내 알앤비신의 ‘돋는’ 명단에 새롭게 이름을 올려놓은 걸 축하한다.
차우진 대중음악평론가 ★★★
솔로로 데뷔하는 데 있어서 회사(혹은 사람들)가 원하는 것과 자신이 원하는 것의 균형을 유지하려고 애썼다는 인상이 강하다. 그래서인지 심심하게 들리기도 하는데 뭐 <나만 바라봐> 같은 곡이 수두룩하지 않다고 그동안 태양을 오해했다고 말할 순 없다. 한큐에 어마무시한 걸 쳐내는 것보다 지속적으로 유효한 볼을 쳐내는 게 더 중요하다고 믿는다. 그래서 좋은 출발이다.
이민희 음악웹진 ‘백비트’ 편집인 ★★★☆
방금 히트했던 빌보드 알앤비를 능란하게 소화하는 YG에 태양은
[Hot Tracks] 그리고 아이돌은 성장한다
-
-
요즘 사비, 토레스 등 아름다운 스페인 남자들의 현란한 발놀림이 우리의 새벽을 즐겁게 한다. 스페인 선수들의 호감도와 나라에 대한 관심이 비례한다면 지금이 바로 그들을 알 기회다. 한국과 스페인 수교 60주년을 맞아 국립현대미술관이 <언어의 그늘, 바르셀로나현대미술관 소장품전>을 준비했다. 주제는 ‘언어’(language). 63명의 스페인 작가들이 138점의 작품으로 언어와 소통을 고민한다. 가우디의 후예답게 건축성이 강하게 드러난 설치미술(후안 미뇨즈, 미셸 프랑수아, 리타 맥브라이드의 작품)과 문학성이 짙게 반영된 작품들(마르셀 브루타에스, 호안 브로사)이 특히 인상적이다. 국내에서 접하기 힘든 사뮈엘 베케트의 실험미술 필름도 상영되니, 챙겨볼 것.
[전시] <언어의 그늘, 바르셀로나현대미술관 소장품전>
-
레오나르도 다빈치에게 관찰은 창작의 힘이었다. 물론 관찰한다고 누구나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같은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수많은 시행착오와 인고의 세월을 담보로 하는 ‘관찰’은 그 자체로도 가치있다. 사비나미술관은 ‘관찰’을 주제로 작업한 12명 작가의 50작품을 소개한다. 주제가 주제인지라 참신하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할 만한 작품들이 많다. 특히 사람을 닮은 나뭇잎의 노화를 관찰한 <변해가는 K의 옆모습>(김미형)이나 상추를 예술 작품처럼 배열한 <네 개의 상추>(박재웅) 등의 작품이 재미있다.
[전시] 〈Smart Art: 레오나르도 다빈치처럼 관찰하기〉
-
뮤지컬 <코러스라인>
8월22일까지 코엑스아티움
남경읍, 임철형, 이주노, 이현정, 한다연, 신선호, 수현, 윤길 등
02-722-8884
타이틀만으로도 자극되는 뮤지컬 <코러스라인>이 한국에 상륙했다. 1975년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초연, 그해 토니상 9개 부문을 휩쓴 명작이다. 그동안 여러 차례 국내에 소개됐지만 정식 라이선스 공연은 이번이 처음. 게다가 초연 당시 코니 역으로 무대에 섰던 바욕 리가 한국 공연의 연출을 맡았다.
뮤지컬 <코러스라인>은 꿈을 찾아 춤을 추는 젊은 청춘들의 이야기로 내용은 단순하다. 8명의 댄서를 뽑는 최종 오디션에 참가한 댄서 17명의 아픔과 상처를 담고 있다. 오디션 결과보다 열정과 패기, 그리고 삶 자체가 더욱 중요하다는 강한 메시지를 담는다. 작품은 한국 배우가 출연한다는 점만 빼고 대본, 음악, 무대효과 등 브로드웨이 공연을 그대로 옮겨왔다. 그래서인가, 작품의 시계는 1975년 브로드웨이에 멈춰선
[공연] 브로드웨이 원작의 맛
-
영혼 따위는 손쉽게 악마에게 팔아넘기고, 결국 철학깨나 읊어야 했던 파우스트야 유명하다. 여기 파우스트 버금가는 고뇌를 겪게 되는 남자가 또 있다. <달콤한 악마의 유혹>은 유명 작가가 되고 싶어 악마에게 영혼을 헐값에 팔아치운 한 남자의 이야기다. 한번도 책이 출간되지 않은 워너비 작가 제이베즈 스톤(알렉 볼드윈). 같은 처지라 여겼던 친구마저 출판사와 계약을 하면서 그의 절망은 급기야 땅을 친다.
그를 구원할, 아니 결국 나락으로 떨어뜨릴 악마는 매혹적이고 섹시한 여자 악마다. <일곱가지 유혹>에서 섹시한 악마 역을 맡은 엘리자베스 헐리처럼 매혹적이길 원했을 제니퍼 러브 휴이트가 악마로 분한다. 다음 과정은 불 보듯 뻔하다. 스톤이 그토록 원했던 작가로서의 잠깐의 성공이 있고, 또 그가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불행한 날들이 짐작 가능한 형태로 펼쳐진다. 그리고 변호사 역을 자처하며 그를 악마와의 부당 거래에서 구해줄 유명 편집자 웹스터(앤서니 홉킨스)가 등장하
악마에게 영혼을 헐값에 팔아치운 한 남자의 이야기 <달콤한 악마의 유혹>
-
부모의 이혼으로 겪게 되는 어린 소녀의 혼란. <유키와 니나>는 스와 노부히로 감독의 전작 <퍼펙트 커플>의 에필로그 같은 이야기다. 결혼 15년 만에 이혼 직전에 이른 부부를 통해 이별을 앞둔 인간들의 심리를 파헤친 그는 이제 <유키와 니나>를 통해 부모의 이혼으로 인해 원치 않았지만, 친구와 이별을 겪게 되고 환경의 변화를 감내해야 하는 10살 소녀의 내면을 따라가기로 한다. 어린아이의 시각이라는 점을 제외한다면, 결국 <듀오>나 <M/other>에서부터 그가 집요하게 고수해온 타인에 대한 이해라는 점까지 거슬러 연결할 수 있는 셈이다.
이번엔 혼자가 아니었다. <퍼펙트 커플>을 연출하던 2004년, 남자주인공으로 물망에 올랐던 프랑스 배우 이폴라트 지라르도가 이 영화의 공동연출로 참여했다. 오랜 연기자 생활에도 본업 외에 연출에 뜻을 두었던 배우가 이폴라트였다면, 현장에서 짜여진 시나리오 대신 배우들에게 상황만
부모의 이혼으로 겪게 되는 어린 소녀의 혼란 <유키와 니나>
-
해국(박해일)은 20년간 의절한 아버지 목형(허준호)의 부고 소식을 듣고 아버지가 머물렀던 시골 마을을 찾는다. 이장 천용덕(정재영)과 그를 따르는 덕천(유해진), 석만(김상호), 성규(김준배), 영지(유선) 등은 그에게 경계의 시선을 보낸다. 해국은 점차 아버지의 죽음과 마을 사람들 사이에 어떤 연관이 있는지 의심하게 되고, 자신 때문에 좌천됐던 검사 민욱(유준상)에게 도움을 청한다.
한국 현대사의 가장 더러운 진면목들이 가상의 낯선 시골 마을에 뭉쳐 있다. 한국에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 그 수많은 트라우마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베트남전, 부동산 투기, 수상쩍은 기도원, 경찰과 검찰로 대표되는 공권력의 폭력 행사, 자력구제할 수 없는 소녀를 마을 남자들이 집단으로 강간하는 사건. 어느 한구석에는 반드시 ‘걸려든다’. 이 모든 더러움이 파멸과 구원의 양 갈래로 치닫는 속도전, 크고 넓고 빠른 그 이야기가 <이끼> 원작의 세계다. 윤태호 작가는 <이끼>의
모든 더러움이 파멸과 구원의 양 갈래로 치닫는 속도전 <이끼>
-
중년의 남자 진분(게유), 이 사람의 정체를 제대로 알기란 어렵다. 괴짜라는 것은 분명하다. ‘분쟁 제로기’라는 사람들끼리의 분쟁을 막아주는 간단하면서도 기발한 발명품으로 적지 않은 돈을 번 것 같은 이 남자가 결혼할 마음으로 온라인에 공개구혼을 한다. 이날부터 맞선을 보는 것은 진분의 가장 중요한 일이 된다. 별별 여인들이 다 찾아온다. 마음에 드는 사람은 없다. 그런 날이 이어지던 중에 소소(서기)가 온다. 자신의 직업을 스튜어디스라고 소개한 소소는 이런 답답한 맞선에는 어울리지 않을 만큼 활기차고 매력적이다. 왜 왔을까. 그녀에겐 사연이 있다. 소소에게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지만 그는 유부남이며 그 때문에 괴로워하다 온라인에서 우연히 진분의 공개구혼을 본 다음 홧김에 이 자리에 왔다. 계기는 엉터리였지만 하여튼 둘은 비밀도 나누고 마음도 통한다. 훗날 소소가 애인과의 관계에 지친 나머지 이제 모두 잊고 진분과 새로운 연애를 하겠다며 다시 그를 찾아오고 둘은 홋카이도로 여행을 간다
대중에 호소력있는 펑샤오강의 로맨틱코미디 <쉬즈 더 원>
-
프랑수아 오종 감독의 11번째 장편영화 <레퓨지>는 깊은 상실과 아물지 않은 상처에 대한 영화다. “죄책감이 들 겨를도 없었다. 루이의 죽음과 임신 소식. 그가 내게로 들어온 거라 생각했다.” 주인공의 고백처럼 <레퓨지>는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으로 시작한다. 함께 헤로인에 취했던 연인 루이(멜빌 푸포)와 무스(이자벨 카레). 루이는 헤로인 과다복용으로 사망하고, 무스는 루이의 아이를 임신한 채 살아남는다. 시골 바닷가 집으로 거처를 옮긴 무스는 부풀어 오르는 배를 보며 아이를 낳기로 마음먹는다. 그런 무스의 집에 루이의 동생 폴(루이스 로낭 슈아시)이 찾아온다. 무스에게 폴은 낯선 방문자다. 시간이 지나면서 무스는 스스럼없고 매력적인 젊은 남자 폴이 자신의 곁에 있어준다는 데 고마움을 느낀다. 폴에 대한 무스의 감정은 고마움을 넘어 질투심, 애틋함으로까지 이어진다.
여배우에 대한 사랑과 존경을 스크린에 투영해 복잡미묘한 여성 캐릭터의 심리를 곧잘 묘사했던 프
프랑수아 오종 감독의 11번째 장편영화 <레퓨지>
-
1920년대. 인도차이나 반도를 지배하던 프랑스 관리들은 베트남 출신 비밀 경찰들에 독립군의 정신적 지주 디칸을 체포하라는 명을 내린다. 살인 기계 같은 경찰 생활에 염증을 느끼던 청(자니 뉴엔)은 모진 고문을 당하던 디칸의 딸 쑤이(응오 탄 반)의 탈출을 돕고, 경찰의 끈질긴 추적이 시작된다.
‘리얼 액션’ 유행의 시발점은 타이였다. <옹박>으로 비롯된 그 열풍은, 그러나 얼마 전 개봉한 <레이징 피닉스>에서도 볼 수 있다시피 이제 기예 수준에 다다른 액션의 정교함을 펼쳐놓는 과정에만 지나치게 집중하는 인상이다. 액션을 위한 액션영화. 베트남에서 날아온 낯선 영화 <더 레블: 영웅의 피>(이하 <더 레블>)는 액션이 돋보이려면 그를 뒷받침할 수 있는 서사 역시 중요하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있다. 1920년대 식민지 시절을 배경으로 하는 액션서사극 <더 레블>은 분명 흥미로운 결을 보여준다.
서사 자체는 도식적이다. 뛰어난
자신이 속했던 세계를 파괴, 새로운 영웅으로 재탄생한다 <더 레블: 영웅의 피>
-
영화 하나로 기억되는 배우의 기분은 어떨까. 그런 문제라면 케이트 허드슨만큼 정확한 답을 해줄 이도 드물다. 21살, <올모스트 훼이모스>에서 록가수를 추종하는 발랄한 그루피 소녀 페니 레인을 연기하면서 허드슨은 ‘진짜’ 배우가 됐다. 덕분에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랐고, ‘골디 혼의 딸’이 아닌 ‘엄마가 골디 혼’인 배우로 인식될 수 있었다. 오 마이 갓! 그게 벌써 10년 전이다. 이후의 행적은? 13살 차이의 크리스 로빈슨과 결혼했고, 6년 만에 파경했고, 최근엔 6개월 만에 만난 록스타 매튜 벨라미와 두 번째 결혼을 발표했다. 참, 그녀를 스타덤에 올려준 <10일 안에 남자친구에게 차이는 법>으로 로맨틱코미디의 건강하고 매력적인 금발 미녀가 된 적도 있었다.
문제는 그녀를 떠올리려면 끊임없이 <올모스트 훼이모스>를 언급해야 했고 <10일 안에 남자친구에게 차이는 법>을 상기해야만 했다는 것. 그러니 마이클 윈터보텀의 스릴러
[now & then] 케이트 허드슨